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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91021/우리교회수요설교녹취자유게시판예레미야

20091021/우리교회수요설교녹취

이름 : 오용익(IP:59.3.147.38)

20091021우리교회 수요설교/예레미야 9장 17-22절/황폐한 예루살렘

(기도)

이 시간 우리 한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앞에서 누가 더 높으냐 할 때 예수님 하신 말씀이 ‘너희는 세상의 권세자들처럼 누가 더 높으냐, 하지 말고 누가 섬길 것이냐를 생각하라, 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한 것이 아니고 너희를 위하여 나를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 고 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소유로 비교하고 소유로 경쟁하는 이 시대에서 도리어 저희들은 봉사하고 섬기는 예수님 제자들의 모습을 보일수 있도록 다 같이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지배하기 좋아하고 남 다스리기 좋아하는 이런 못된 악마적인 속성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줄 압니다. 심지어 제자들마저 예수님한테 배웠다 하면서도 누가 더 높은자리에 앉을 것이냐를 두고 다투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저희들 예수님을 안다, 안다 하지만 예수님을 이용해서 남을 지배하려 들지는 않았습니까? 진정 예수님을 안다면 봉사하고 섬기는 것을 보람으로 여길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 예레미야 9장 17절에서 22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066페이지입니다.

예레미야 9:17-2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하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보내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오되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서 물이 쏟아지게 하라 이는 시온에서 호곡하는 소리가 들려 이르기를 우리가 아주 망하였구나 우리가 크게 수욕을 당하였구나 우리가 그 땅을 떠난 것은 그들이 우리 주택을 헐었음이라도 함이로다 부녀들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귀에 그 입의 말씀을 받으라 너희 딸들에게 애곡을 가르치며 각기 이웃에게 애가를 가르치라 대저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와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너는 이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시체가 분토같이 들에 떨어질 것이며 추수하는 자의 뒤에 떨어지고 거두지 못한 뭇같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 선지자 이 사람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하나님과 상대를 한 뒤에 사람과 상대를 합니다. 이것은 일반인들과의 차이점입니다. 그냥 사람들과 상대해 버리면 사람들의 반응에 자기의 생각이나 모든 것을 조절하게 되지요. 그런데 선지자는 사람들의 반응이 자기의 의견을 굳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입에 담아주는대로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대로 꼼짝 못하고 그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지자를 볼 때, 예레미야, 이사야 같은 분들의 성격이 우리와 같으니, 다르니 그런 것 보다도 뭘 우리가 감청해야 되느냐 하면 선지자와 하나님사이에 주고 받던 그 통화내역을 감청해야 됩니다.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올라가는 도중에 얼마나 헉헉대며 올라갔는지, 올라가서 며칠을 굶었는지,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모세와 하나님사이에 무슨 말씀이 오고 갔는지를 우리가 주목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다니엘에 보면 나오지요. 벨사살왕이 잔치벌이는 와중에 손가락이 나와서 글씨를 썼습니다.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라는 글귀를 썼거든요. 그 글귀를 썼을 때에 그걸 쓴 손가락은 보이는데 팔둑은 왜 안보이느냐, 그 손가락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피부가 고왔는지, 무슨 로션을 발랐는지 그런데 신경쓸 것도 아니며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 손가락이 벽을 후벼 파면서 남긴 그 글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글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선지서를 볼때에 ‘예레미야, 너는 뭐야? 이사야, 너는 뭐야? 같은 인간이면서 까불지마.’ 이렇게 나오면 안되고 예레미야를 삭제시키고 이사야를 삭제시키고 남는 것이 뭐냐?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죠. 마치 손가락으로 벽에다 예레미야를 쓸 때 세상 사람들같으면 ‘누가 여기에 낙서를 했어?’ 라고 나올 것이란 말이죠.

‘누가 여기에 이런 낙서를 했어’ 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글의 내용이 뭐며, 그것이 어디서 온 내용이냐, 그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하도 요즘 세상이, 교회 안에서조차 마찬가지인데, 모든 것을 사람들하고만 상대하려 하지 진리라든지 복음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너는 태생이 어디야? 너 어느 학교 나왔어? 나는 한 달 수입이 이정도야’ 라고 하면서 전부 다 사람이 사람을 붙들고 뭘 하면 교회가 부흥되는 줄 알고, 또 교회가 커지면 그것이 교회인줄 아는데 진짜 교회는 사람들이 전부 다 날아가 버리고 거기에 복음과 진리만 수북이 담겨 있어야 그게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 문 열면 말씀이 관심사여야 되지 교회 문 열면 ‘오늘 누가 안 왔나’ 거기에 관심두면 안되지요.

그래서 마귀의 역사는 다른 것이 아니고 교회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서 모든 것을 환원시킨다고나 할까요, 전락시키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는 그 교회에 몇 명이 오고 그 교회 목사가 누구냐가 아니라, 그 교회에서 주고받는 그 내용이 성경내용, 복음과 진리와 일치되는냐,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되는냐, 그것이 교회의 관심사 여야 된다는 말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교회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서 애들 자녀교육에 영 안 좋더라’ 그 말이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서 애들에게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안겨주기 때문에 그 교회에 애를 못 보내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같은 예레미야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예레미야는 부정적인 정도가 아닙니다.

울기를 전문으로 하는 우는 아줌마를 부르라고 합니다. 불러서 먼저 선창해서 울게 하고 그 다음에 그 아줌마들이 우는 것을 보고 같이 온 사람들이 같이 울도록 예레미야, 너는 그렇게 시도하라, 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부정적인 세상관이 어디 있습니까? 왜 울라고 시킬까요? 오늘 본문에 보니까 유대나라가 망한다는 겁니다.

유대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유대나라를 보호했던 보호막이 철수되었다는 겁니다. 사자 뒤에 아주 꾀 많은 늑대 한 마리가 따라가고 있으니까 그 동물의 왕국에 있는 모든 짐승들이 전부 다 사자한테 절하는데 자기는 사자 뒤에서 그 절을 널름널름 받아먹는 거예요. 요즘도 거리에 가면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병원 엠블런스나 소방차가 막 달리니까 그 꽁무니에 붙어서 길 죽죽 뚫리니까 공짜로 따라가는 사람들. 한참 따라가는데 소방차나 엠블런스가 좌회전해서 가버리면 저는 갑자기 신호에 걸려버리죠.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이런 말씀입니다. “대저 사망이 우리 창문에 올라오며 우리 궁실에 들어오며 밖에서는 자녀와 거리에서는 청년들을 멸절하려 하느니라.”

이것은 바로 유월절 그 어린양의 보호장치, 보호제도가 이 예레미야의 시대에 철거되었다는 말입니다. 유월절에 문설주에 피 바르고 문지방에 피 발라 놓았더니 그게 어떤 효과를 내었느냐 하면, 옆집에 있는 애굽사람, 옆 동 202호에 갑자기 울음소리가 났어요. ‘아이고, 얘야, 정신차려라.’ 하는데 죽어버렸어요.

그런데 그 죽음의 사자가 202호 거쳐서 201호 오는데 그 201호 우리 집은 아무 일 없어요. 그 다음에 203호가 또 난리나 버렸네요. ‘아이고, 내 아들이 갑자기 왜 이러냐?’ ‘어어, 엄-마!’ 하고는 죽어버렸다는 말이죠. 청와대 맡아들을 비롯해서 대법원장, 감사원장집도 마찬가지고 장관의 맏아들까지 다 죽었어요. 온 집안의 맏이라는 아들은 다 빼앗아가 버렸어요. 경찰서장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집이든 상관없이 유월절 그 피, 그냥 피가 아니고 혈액원에서 나온 피 말고, 1년 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집 안에서는 그 양의 고기를 먹고 있을 때 그 때 그 최후의 날, 애굽 최후의 날에 그들은 죽음 속에서 버텨낼 수 있었어요. 죽음을 이긴 최초의 종족이 이스라엘입니다. 인간이 죽음을 이긴다?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죽음을 이긴 최초의 종족입니다. 그 이스라엘이 신약에 오면 너희들을 열두지파를 만들겠다(마 19:28 ; 눅 22:30 ; 행 26:7 ; 계 21:12) 하는 그것이 교회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교회를 두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 고 되어 있습니다.

‘옛날 유월절 때문에 살아남았던 이스라엘이 바로 너희들이다. 그래서 내가 열두제자를 뽑았고 그 열두제자가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마지막 남은 이스라엘로 쳐주는 것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이며 그 교회가 그 때 그 이스라엘에 해당되었던 죽음에서 보호받는 그 보호 장치가 그대로 유효하다.’

그런데 그 죽음이 구약에서는 그냥 맏아들 목숨 빼앗는 그 정도였지요. 신약시대에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보면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닙니다. 죽는 것보다 더 난처한 상황이 벌어졌어요. 안 죽습니다. 안 죽고 어디 가느냐? 마귀가 가야되고 마귀에게 내려야 될 그 벌, 무시무시한 유황불, 구더기도 죽지 않고 튀김하는 것처럼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단순히 죽음이라는 것은 꼴까닥, 하고 목숨 잃는 정도가 아니고 영원한 저주가 바로 죽음 안에 내포되어 있던, 죽음이라는 것이 하나의 산이라면 그 밑바닥에서 마그마처럼 올라오는 것이 뭐냐? 그것이 지옥에서 올라오는 저주의 바람이었습니다. 저주의 세력, 저주의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이스라엘, 유대나라한테 이렇게 울라고 하는 것은 뭘 염두에 둔 것이냐 하면 ‘항상 지옥을 염두에 두고 너희들은 살아왔었어야 한다’는 겁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이런 말입니다. ‘예수 믿었으니 이제 지옥은 잊어버리고 우리 맘대로 하면 된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이것은 아직도 천국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의 맛을 못보고 있는 사람이에요. 구원을 받았습니까? 구원을 받았으면 항상 잊지 말아야 될 것은 ‘나는 어디서부터 구원을 받았는지를 잊지 말아야 돼요.’

어디서부터 구원받았느냐 하면 지옥에서부터 구원받은 거예요. 그러면 지옥에서부터 구원받았으면 지옥이 무엇인지,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지옥 들어가야 하는 사람인지를 명확하게, 명확하게 남은 평생 그것을 연구해야 됩니다. 누가 지옥가야 될 사람인지를, 누가? 좀 심하게 이야기해서 거리를 가다가 ‘실례합니다만 혹시 지옥 갈 사람이 아닙니까? 아닙니까? 미안합니다.’

이렇게 물어볼 정도로. 모든 관심사가, 모든 관심사가 ‘누가 지옥에 가느냐’ 그것이 궁금, 궁금, 궁금해야 돼요. ‘누가 지옥에 가느냐?’ 그래서 제가 책을 하나 썼지요.『지옥의 하나님』이라고. 아마 한권도 안 팔렸을 거예요. 진짜 지옥에서 구원을 받았다면, 십자가 피로 구원받았다면 그 지옥이 뭔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옥에 누가 가는가를 나름대로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 지옥은 이럴 경우에 가는구나.’ 왜 그러냐 하면 히브리서 6장에서 보는 대로 한번 성령의 비췸을 받고 지옥에 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히브리서 10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8, 29절에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여기서 부정한 것이란, 쉽게 하면 불결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사람을 위하여 쓴 책인데 구원 받은 사람을 위해서 쓴 책에 이처럼 지옥 가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지옥 간다는 것이 명쾌하게 나와 있어요.

과연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 맞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지옥가야 되느냐 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은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도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복음을 전파한 후에 나도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고전 9:27) 하고 사도바울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요.

그러면 지옥을 누가 가느냐? 히브리서 10장 28,29절의 방금 읽은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짓밟고…, ‘짓밟고’는 군화 발을 연상하시면 되고요, 시답지 않고 시시하게 여기는 것, 어린양의 피, 우리를 거룩하게 했던 그 피, 아들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친히 흘리신 그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매도하고 모독하게 하는 것, 그 힘은 바로 우리 자신을 지옥으로 당겨주는 저주의 힘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면 어떤 점이 예수님의 피를 매도하고 모독하게 하느냐?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어떤 분이 교회 나왔어요. 성경을 보면 ‘하라, 하지 말라’ 가 있습니다. 그 하라와 하지 말라, 를 열심히 지키면서 ‘하나님, 이정도 하면 구원받겠지요’ 라고 했습니다. 지옥 갈 사람입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예수님의 피를 모독한 겁니다.

교회에 나와서 착하고 바르게 살겠다고 하는 사람도 이처럼 예수의 피를 모독한 거죠. 왜냐하면 그렇게 지키면 지킬수록 누가 더 예뻐지고 누가 더 귀해지느냐 하면, 착하게 살았다는 것이 누적이 되어 있는, 평생토록 착하게 살았고 바르게 살았고 신사답게 살았다는 내가 귀하게 여겨지고 내가 귀하게 여겨지는 순간 누구를 시시하게 보느냐 하면 바로 나를 위해서 흘렸던 그 예수님의 피가 시시하고 별로 중요시 되지도 않고 두 번 다시 듣기도 싫고 차버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거든요. 내가 만약에 중요하다면 이미 예수님의 피는 나에게는 뒷전이었다, 가 되어버려요. 그래서 시시한 부류가 되어서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는 겁니다. 지난 주일설교에서 이야기했지만 아브라함보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바치라는 이유가 뭡니까? 아브라함 너의 자식보다도 이 하나님이 제시하는 것이 더 거룩하다 그 말입니다.

왜? 너는 불결하니까. 불결한 너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희생 제물로 구원했다면 이제부터 무엇이 안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한가를, 그전에 중요하게 여겼던 것에서부터 이제 더 중요한 것으로 우리의 발판을 옮겨나가야 돼요. 그러면 누가 정말 천국 갈 사람이고 누가 예수의 피를 모독하지 않을 사람인가? 그것은 나를 중요시 하지 않게 여기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게 세리와 창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당시에 ‘세리와 창기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천국에 먼저간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리와 창기의 특징이 뭐냐 하면 본인이 생각하도 본인이 전혀 안중요해요. 그래서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 것이라’ 고 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 는 말은 자기가 내세울 것이 없어요.

자기 안에 자존심 창고에 들어가 보면 텅텅 비어 있어요. 내세울 자존심이 아무것도 없어요. ‘많이 용서 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고. 막달라 마리아가 그동안 자기가 귀하게 여겼던 향수병이 있었어요. 시집가려고 장만했던지 알 수 없지요. 그거 모은다고 수년이 걸렸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한순간에 예수님의 발 앞에 깨버렸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나는 예수님이 더 귀합니다. 그런 고백이죠. 그리고 예수님이 그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이야기합니다. ‘너희들이 이 여자의 행위를 본받아라. 내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 이 여자의 행위도 병행해서 전해지게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물론 요즘도 교회가 전하지요. 뭐라고. 돈을 내라고. 귀한 금고 털어서 교회에 바치라고 하지요. 그거하고 복음하고 관계없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세리와 창기는 하나님 앞에서 ‘지옥 갈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내가 바로 지옥 갈 사람이다’ 라는 것을 명쾌하게 알았어요. 이것이 본래의 자기 자리라는 것을 아주 명심의 명심을 한 겁니다. 세리와 창기가 착한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착한 일을 자기 자리에 보탤 생각이 전혀 없어요.

내가 지옥 갈 인간이 착한 일을 한들 그것 가지고 지옥 가는 것을 빼줄 수 있는 능력이 못 된다는 것을 뻔히 아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백성을 어디로 데려가요.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니까 따라가지요. 따라가면 어디로 가느냐 하면 십자가로 가요. 십자가로 가면 ‘주님께서 왜 따라오라고 했지?’ 라고 가 보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상을 받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 저주를 받아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졸졸 뒤따라왔던 사람이 어떻게 됩니까? 따라오라고 해놓고 기껏 주님께서 보여주는 것이 뭐냐 하면, 바로 저주받는 거예요. 그럴 때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백부장이 뭐라고 합니까? ‘저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합니다. ‘내 죄를 처리하려고 따라 오라고 했고 저주 받아야 될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고 바로 나 인 것을 깨달으라’ 고 따라 오라고 한 거예요.

성령께서는 그 십자가를 가지고 이제는 따라 올 것도 없이 집안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이불 호청 뜯어내면서 성령께서 십자가를 가지고 들이 대버리면 이불호청 뜯다가 구원받아요. 설거지 하다가 구원받습니다. ‘내가 왜 살지? 이 짓 하려고 사나? 내가 누구지? 십자가가 무슨 의미지?’ 하다가 ‘아얏!’ 하고 바늘 찔려도 괜찮아요.

‘십자가가 무슨 의미지? 대체 한평생 내가 자식하고 남편위해서 살았는데 나라는 이게 무슨 천당을 갈수 있다고, 나이 좀 더 들면 노인정에 가서 10원 먹기 화투 칠건데, 이게 나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거야, 도대체.’ 교회라 하는 것은 이처럼 나를 거룩하게 한 예수님의 그 피를 날마다 되풀이 하고 반복해서 전함으로 말미암아 한주동안 자신의 가치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자신을 귀하게…, 이게 버블, 거품처럼 부풀어서 나를 노동의 주체로서 봐서 고귀하게 봤던 그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뻥, 새우깡 다 먹고 그 봉지를 바로 밟아서 뻥, 터지듯이 빵, 하고 터뜨려버려야 돼요.

그렇게 터뜨려야 되는데 교회를 한 번 안와, 두 번 안 오게 되니까 이게 봉지가 더 커져서 2주째 쌓여 있습니다. 6개월째 안 나온 사람은 뭡니까? 밟아버려야죠. 뻥, 하고 터져 버려야죠. 2년째 안 나온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놀라운 사실은 꼬박꼬박 나와도 안 터진다는 사실입니다. 꼬박꼬박 나와도 안 터진다는 거예요.

심지어 신학교 나와서 목사가 되어도 안 터져요.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목사님, 여자가 목사 되어도 괜찮습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런 질문 수십 번 받았습니다. 답변도 수십 번 했어요. 다음에 또 나올걸요. 계속 질문하는 거예요. 계속 질문하는 질문이 한 두개가 아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뭐냐?

‘성경에는 여자는 가르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자도 목사 할 수 있습니까?’ 라는 그 질문입니다. 거기에 대한 답변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짓을 왜 하려고 합니까?’ 남자 목사가 똥 푸고 있는데 그게 뭐가 부러워서 ‘우리도 똥 풀 수 있습니까?’ 라는 그 질문을 왜 하느냐 말이죠.

그러니까 목사를 뭐로 보느냐 하면 섬기고 봉사하다 욕이나 실컷 얻어먹고 결국에는 온 가족이 빌어먹는 그런 직업으로 보지 않고, 양복입고 하루 일하고 6일 놀고, 만 날 등산가고 낚시하면서 놀고, 행세는 행세대로 다 하면서 심방가면 맛있는 것 다 얻어먹고, 봉투 다 챙기고, 교회 가서 어른 행세하는 것, 그렇게 목사를 보니까 여자들이 보기에 뿔이 나잖아요.

성경도 모르니까 ‘여자도 목사하게 해다오’ 라고 데모하고 있는 거예요. 국민일보에 이빨 허옇게 내놓고 웃으면서 사진 커다랗게 나오고 그런 것, 그게 목사인줄 알고 있어요. 목사는 누구냐 하면 스데반집사입니다. 스데반 집사 돌에 맞거든 그 옆에 있는 아줌마들 하세요. ‘주님이여, 저희들도 목사되게 해주세요.’ 그러면 목사 하세요. 그러면 목사 시켜주지요. 방금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목사라 하는 것은 무엇이 불결한 것이고 무엇이 거룩한 것인지를 명쾌히 알아서, 그 유월절 날 피 발랐던 그 어린양의 피만 거룩하고,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행위만 거룩하고 나머지 모든 인간의 행위는 예수님의 행위 앞에서 더럽고 천국 못갈 육적인 것이라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 그게 바로 성도인데 그 성도는 특징이 뭐냐?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12장 25절 말씀처럼 자기생명을 미워한다는 겁니다. 자기생명을 미워해요. ‘아이고, 인간아, 인간아, 너 왜사나? 울자, 우리 울자.’ 그래서 주님께서는 유대나라를 통해서 웃음과 울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는 겁니다. ‘너희들이 여호와를 버렸다’ 는 말은 그동안 이스라엘을 지켜왔던 보호 장치가 제거되기 때문에 ‘너희들은 이제 죽었다. 이제는 사망이 창문을 타 넘고 들어온다’는 거예요.

상상해 보세요. ‘사망이 창문을 타 넘고 들어오고 그 사망이 궁실에까지 들어오고 온 부녀들은 모여서 통곡하고 울어야 된다’ 그 말이지요. 여자들이 울음이 또 많아요. 왜냐하면 자기소유와 일체화를 잘 시켜요. 자기소유와 일체화, 하나 되기를 잘해요. 그런 일이 많습니다. 남자는 무슨 일이 터지면 도망치기 바쁜데 여자는 무슨 일이 터지면 꼭 챙길 것을 챙겨요. 파운데이션 같은 것들.

남자친구가 창문 열고 ‘어이, 빨리 나온 나’ 하면 ‘응, 곧 나간다’ 하면서 30분동안 화장하고 있어요. 소돔과 고모라에서 ‘그냥 나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롯의 부인이 뭘 또 안가지고 나왔나 싶어서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 되잖아요. 이게 누가복음 23장에 나오는데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는데 예수님보고 안됐다고 하면서 예수님만 안 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엄마도 안됐다 합니다.

너무 일체화를 시켜요. 자기가 갖고 있는 소유, 자식이죠, 너무 자기하고 일체화를 시켜서 잘 떨어지지 않아요. 떨어지지 않는데 떨어졌으니까 그 떨어진 폭만큼 우는 겁니다. 여자들 우는 것 보면 뭐를 귀하게 여겼다는 것이 표시가 나요. 드라마를 봐도 막 울어요. 드라마하고 일체화되기 때문에.

그래서 이 유대나라가 하나님나라인데 내 나라라고 여기니까 그 유월절 보호 장치를 철거시켜 버리고 ‘너희들은 그렇게 애타던 그 나라 이제는 망했다. 예레미야야, 그들로 망하게 하라.’ 왜? 망하는 것도, 어린양의 피를 무시하면 망한다는 사실을 보이는 그 기능도 사실은 유대나라가 했어야 되는 기능 중에 하나입니다.

축복과 저주, 저주와 축복, 이 두 가지가 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오늘날 성도들을 세워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 구원받은 것만 헤헤거리지 말고, 그것은 가짜 성도이고 진짜 성도라면 물론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지만 그 기쁨과 동시에 어떤 사람이 지옥 가느냐,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잊지를 말아야 돼요.

그걸 잊지 말아야 예수님의 피를 더욱더 귀하게 남은 평생 증거 하게 되는 거예요. 지옥이 무서운 것을 모르는 사람은 가짜신자지요. 그 사람은 예수님을 또 이용해서 자기 천당 가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부정적인 것을 싫어한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기를 귀히 여기지요. 그게 바로 어린양의 피, 아들의 피를 짓밟는, 예수님의 피를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교회 와서 착해졌나, 하지 말고 교회 와서, 우리가 얼마나 못된 인간인가를, 아셔서 이런 못된 인간을 구원해주신 그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찬미합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단순히 우리의 구원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지옥이 있음을, 그리고 천국이 있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 아직도 우리를 인도한 줄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치나 의미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우리는 이미 세리나 창기같이 죄인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기정사실로 여겨서 이런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증거 하는 자로 삼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091021우리교회 수요설교.hwp (59.5K), Down:16

이미아(IP:119.♡.119.36)

09-10-22 17:18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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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1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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