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 신학에 문제있다?
이근호 신학에 문제있다?
이름 : 이근호(IP:117.55.138.18)
이근호 신학에 문제 있다?
조규현 장로님이 우리교회에서 신윤식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은석교회를 옮겼습니다.(09년 10월 18일) 그쪽 교회에 있는 어떤 분이 의아해하시면서 조규현 장로님께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왜 은석교회로 옮겼습니까?” 조규현 장로님께서 다음과 같이 답변했답니다. “이근호 목사는 십자가만 강조하고 행함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옮겼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십자가만 강조한 것이 이근호 목사 신학의 문제점이고 잘못된 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행함을 말하는 교회로 옮겼다는 논리입니다. 즉 십자가+행함이 되어야 바른 신학이라는 겁니다. 달리 말해서 ‘피+행함’이 되어야 구원받고 천국 간다는 것이 그분의 신학입니다.
왜 이런 식으로 인생을 사는 겁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피를 가지고 그 사람 속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성령을 통해서 직접 사람 속에 들어오지 아니하면 아무리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성경에 나와 있어도 어디까지나 그 십자가 피는 사람들의 판단과 관찰의 대상으로만 머물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펼쳐놓고서는, “성경에 뭐가 있나 어디 볼까?”라고 살피다가 십자가 이야기도 있고 ‘행하라’ 이야기도 있으니 이것도 주워 담고 저것도 주워 담는 식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그 사람을 장악하는 주님이 아니라 여전히 그 사람 속에 주님은 본인이 되는 겁니다.
즉 자신이 여전히 의인으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게 됩니다. “내가 예수님의 피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을 정도로 나는 아직도 괜찮은 존재다”가 되고 마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전혀 자신이 죄인일 수가 없는 겁니다. 참으로 자신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미워하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죄인이라면 예수님의 피가 용서의 위력을 발산하면서 그 사람 속에 직접 쳐들어왔다는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증거하고 감격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열매입니다.
“나의 정과 욕심으로 인해 나는 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만이 늘 살아서 말씀 성취해 나가시고”가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모습입니다.(갈 5:24)
그렇지 않고 예수님께서 들어오지 않는 자는 성경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죽어서 천국 가려면 성경 말씀을 지켜야 하는데 성경에 있는 내용들을 다 내 안에서 끌어들이자. 십자가가 있다면 십자가도 받아들이고, 성화가 있다면 성화도 받아들여서 모든 좋은 것을 다 끌어들여 나를 더욱 괜찮은 나로 변모시켜 천국 가는데 지장이 없도록 단속을 단단히 두자”라는 식으로 나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아 죽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들의 신학은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과 모세의 기적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되었은즉 이제부터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성신의 도움으로 행해서 하나님의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것이 선택받은 백성의 마땅한 도리다”고 말입니다.
바로 이 신학이 오늘날 한국교회를 존재케 한 개혁주의신학도 같은 정신의 신학입니다. 즉 성령을 받지 못하면서도 남들에게 성령 받은 흉내를 곧잘 내는 사람들이나, 혹은 다메섹에서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기 전에 생각했던 그런 육적인 인간들이 최고도의 종교성과 신에 대한 숭고함과 도덕성을 발휘했을 때 나오는 발상이 바로 이런 신학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처는 단호하십니다. “네들의 아비는 악마요 너희들은 그 악마의 자식들이다,”(요 8:44) 말입니다. 이러니 유대신학적인 발상을 고집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행함=구원’을 유대주의, 혹은 개혁주의를 외치는 자들이 오직 ‘하나님의 피=천국’을 부르짖는 자들 미워하고 핍박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새언약 원칙에 의해서, 생생하게 매일같이 터지는 새언약 효력은 예수님께서 직접 성도 안에서 행하실 모든 행함을, 성령을 받아본 적도 없는 자들은 주님이 안 계시에 성경에 나오는 모든 권면과 명령을 자신의 도덕성으로 성취하려고 하시하는데, 문제는 날이 가면 갈수록 성경에 나오는 말씀과 위배되고 격차가 지니까 점점 위선자로 변모해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십자가 복음과 십자가 피를 외치는 성도들을 향하여 이단들이라고 매도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이 보장받을 수 있는 지경까지 나아갑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들의 모든 권면과 명령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서, “왜 우리가 죄인일 수밖에 없는가”를 말해주시는 말씀들입니다. 즉 왜 예수님께서 그 고귀한 피를 흘러야 네가 구원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처참한 존재인가를 되풀이 해서 일깨어주시는 말씀들입니다.
그 말씀들이 없으면, 인간들은 예수님이 피마저 자신의 정당함( 예수 믿어줄 정도로 훌륭한 인격을 지닌 자기 행함의 정당함)을 변호하기 위해 이용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예수님이 피를 가지고 쳐들어오시고 난 뒤부터 왜 우리는 죽어 마땅하며 왜 우리는 아직도 목숨 붙어있는 것도 나의 노동의 댓가가 아니라 주님의 살려주시는 은혜인지를 새삼 늘 깨달아서 범사에 감사하고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이란 자신에게 시선이 돌아가면 자신의 자존심과 자기가 그동안 쌓아놓은 의와 위신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부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에 시선이 박히면, 바로 자신을 자기가 지키려는 것이 얼마나 악마적인 행위인가를 알게 됩니다. 남에게 꿀리지 싫고 인생 게임에서 패배자가 되기 싫어해서 기어이 내세울 만한 업적이나 장기하나 남겨놓으려고 애쓰고 몸부림치면서 점점 위선 돌멩이로 변모되어가는 자아가 얼마나 추잡한 괴물에 불과한지를 알게 되는 겁니다.
세리와 창기가 먼저 천국 간다는 예수님의 말씀(마 21:31)은 오직 예수님의 용서의 피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정신에게 나오는 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열매, 즉 ‘온유와 화평이요 양선’입니다.
강구만(IP:211.♡.68.12)
09-10-20 11:07
누구는 자식들에게 긍정적 사고를 가르치기 위해 부정적 사고만 심는 복음을 들려줄 수없다고 교회 떠났습니다. 이 사람에게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도 긍정적 사고로 출세하고 그 빵빵한 자아로 죽어서도 천당가는 십자가 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도 교회에서 인정받을 만 하고 모든일에 판단할 가치와 능력이 있고 교회라는 놀이판에서 존재감을 느끼고 싶은데 나의 가치를 몰라준다고 떠났습니다. 이사람에게 십자가는 아직도 가능성 입니다. 한번도 성령 받아 진정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받아 보지 못한자 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스스로' 예수 믿다가 한이 쌓여서 내 교회 한번 해보겠다고, 내가 주인된 왕국 설립에 매진 했습니다. 가르치기에 열심했고 교인 단속에 열심했고 혼자 재정 관리에 열심 햇습니다. 누구도 간섭 받지않는 내이름의 왕국 입니다. 이를 위해선 목사도 설교에만 전념 하도록 물심 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실수가 있엇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복음이 스스로 능력으로 일하심을 몰랐습니다. 복음이 선포되는곳에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수고가 아닌 주님의 교회가 '발생' 된다는 사실을 몰랏던 것입니다.주님의 일하심을 믿지 못한거지요. 세월이 흐를수록 십자가앞에 벌겨벗겨진 죄인의 감사는 없고 본전 생각만 간절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기회가 왔습니다. 교회에 뭉치돈이 들어오자 재빨리 챙겨서 떠나버렸습니다.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서 여러 교인들을 선동해서 교회를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따라주지 않는 하나님 때문에 나는 억울하다고.. 남은 사람들은 분노 했습니다. 허탈 했습니다. 이럴수가 있냐고. 그러나 이럴 수가 있었습니다. 교회이기 때문에, 주님이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을 사랑 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요13:1) 저들은 자기의 갈길을 가야만 했습니다.맡은바 사명을 충실히 다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떠나면서 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 십자가 복음에 문제 있다는 겁니다. 참으로 마지막으로 정직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지요. 맞습니다. 십자가가 어떻게 사람의 이성 앞에 문제가 없을 수 있단 말입니까.(고전1;18) 진작 이렇게 나왔어야 합니다. 난, 십자가에 힘없이 죽어 버린 예수 못 믿는다고. 아니 믿는줄 알았는데 아무리 애쓰고 신학박사 공부하고 그래봐도 날 전적으로 죄인 만드는, 구원 불가능의 죄인 만드는 십자가는 싫고, 믿기지 안는건 할수 없더라. 엄연히 내가 이렇게 있는데 얼마든지 하나님 일도 할수있고 교회도 만들수 있고 맡겨만 주면 잘 관리하고 키워서 하나님의 협력자로 같이 잘 할 수 있는데, 이런 나를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죽었고 '내'가 산게 아니라면 나는 뭐냐고. 내가 '믿어서도' 아니고 오직 예수 공로로 구원 받는다는 복음 만큼은 이제 도저히 더이상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고전2;2 ) 30년 장로를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나의 개척과, 8년의 수고한 역사를 무시하고... 이와같이, 이토록 말씀은 놀랍습니다. 말씀대로만 이루십니다.지금도 주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이 오직 선택으로 은혜로 몸된 교회를, 그 손아래 있는 일곱교회를 붙들고 계십니다.교회 간판과 상관없이.(계1:12 ) 국민 여러분! 교회에서, 교회 가지고 장난치지 맙시다. 사람은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수 없음을 아는것이 복 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2
김대식(IP:124.♡.85.46)
09-10-20 11:30
091019 피12강 [자아] 라는 괴물
http://media.woorich.net/신학강의/2009대구/대구091019피p042괴물.hwp
강이아빠(IP:219.♡.86.60)
09-10-20 12:02
어제 대구강의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듣다가 호주머니에 있던 짱똘 꺼낼 뻔 했습니다. 속으로 '뭐 우라야 말이야!!!'. 건내냄을 당하면 그냥 감사할 뿐입니다. 내 속엔 나도 모르는 '괴물'이 들어있다.
강구만(IP:211.♡.68.12)
09-10-20 12:22
믿음은 곧 행함 입니다. 약2:17 믿음 + 행함을 말하는것은 나는 믿음이 없다는 뜻 입니다.믿음이 없기에 행함으로 불안을 지우고 싶은 겁니다. 마치'구원 그 이후'를 내가 고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안다면서 감사가 없는 자유가 방종인 것 처럼.
권범식(IP:61.♡.241.100)
09-10-20 12:32
아멘...
김풍호(IP:203.♡.147.32)
09-10-21 15:45
유대인들이 행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보다 유대인들이 지옥에 가야되는 것은...행함을 강조해서 구원을 얻는다 라는 것만 알았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피는 몰랐습니다. 그들에게 알필요가 없는 것이었죠... 유대인들이 행하는 행함은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지키며 살만큼 자긍심이 뛰어났죠...
십자가 마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함에는 부족함이 없으나, 그래서 더더욱 십자가마을 사람들은 인간의 헛점을 더 잘알기에 판단하는 것은 삼가해야될 줄 생각됩니다. 그 판단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알아서 지옥보내고 천국보내고 할 일인줄 압니다. 그러면, 여기 계신분들은 성령께서 우리속에 있기때문에 괜찮다..성령이 하는 일이다 라고 하실 요량이면...십자가마을 성도만이 아니라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사람 모두는 성령님이 자신속에 있다가 자처합니다...그런데,, 똑같이 성령이 속에 있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이듭니다...왜냐면..그것또한 자기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서 끌어다쓰는 이야기이기때문입니다. 모든기독교인이 보편화시켰기때문에요.. 인간자체가 하나님을 이용하는데는 이골이 났습니다. 지옥이든 , 천국이든..이단이든,,삼단이든... 그거슨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판단하고 십자가만이 기준이 되는 것이지...인간이 하는 것이 아님을 생각했음 좋겠다 싶네요...
우리는 하나님의 로보트입니다. 십자가만 증거하라시면...그것만 하고 살면됩니다.
남이 뭘하든....십자가만 증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강구만(IP:211.♡.68.12)
09-10-21 17:50
사람의 사사로운 판단이 아니고 십자가를 관찰하다 떠난 사람들에 대한 증언 입니다. 십자가를 증거 하시는 분은 십자가마을이 아니라 성령이십니다.교회에서 범죄한 자를 꾸짖는 일과(딤전5;20) 다른 복음을 분별해서 증거하는 일은 교회에 주신 은사 입니다.(갈1:8)(빌3;18) 성도는 하나님의 로봇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이요(빌1;1) 천사도 부러워 하는 양자된 신분 입니다.(롬8;14) 성경 어디에도 성도를 로봇이라고 하지 않습니다.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신분이 어디 로봇을 위해서 주셨겠습니까.(롬8:32) 십자가를 증거하는 복음은 반드시 비 복음, 즉 죄를 지적하면서 증거됩니다.
이세상이 예수님을 죽인 악한세대요 우리의 싸움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에 대함 이기에 그렇습니다.(엡6;12) 성도에게 남의일 간섭할 '나의일'은 없습니다. 성도가 설겆이를 해도 주의 일 입니다
한진영(IP:211.♡.245.116)
09-10-21 22:10
암덩어리에 메스 대고 있는 마당에 고작 고름이나 짜고 고약 바르면 된다고 생각 하는건가. 따지고 보면 이근호 목사님만큼 오지게 '행함'에 대해 족을 치는 분이 없는데..
김풍호(IP:203.♡.147.32)
09-10-22 08:47
나의일이 없으니..로봇이지요...하나님께서 입력하신 데이터가 십자가이니 죽어라고 그것만 증거하는것 아닙니까... 어떤 의미에서 로봇맞지요... 죄를 지적한다는 것 과 죄를 심판하는 것은 다르지요.
심판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다했는데.. 새삼스레 심판입니까..
죄를 지적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강구만(IP:211.♡.68.12)
09-10-22 10:17
데이터만 입력해놓고 제대로 작동하나 않하나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 곧 십자가의 영이 성도안에 계셔서 탄식 하시며 근심 하시며 시기 하시기 까지 직접 역사하고 인도 하십니다. 하나님과 성도는 일의 관계가 아니라 피로 사신 '사랑의 관계' 입니다. 심판은 주를 사랑하지 않음으로 이미 심판을 받은 것 입니다.(고전16;22)
강구만(IP:211.♡.68.12)
09-10-22 11:40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일4:1~3)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 한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 아무 것도 알지 않겠다는 바울의 고백이고, 그피가 세상을 고발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피 없이 살기를 원하는 악한세대요, 피만으로 부족해서 사람의 행위를 더하고 그 주체인 인간의 가치를 주장하는 십자가의 원수를 말합니다. 성도에게 개인의 적은 없습니다. 딤후2:3
유상준(IP:121.♡.254.22)
09-10-22 22:12
저는 은석교회 교인 아닙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머 먹고 사는 교회인가?
배너에 있는 은석교회 클릭 했다가
피 바가지 썼습니다.
은석교회 주일설교 (다 올리면 관리자님께 야단 맞음)
천국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에게만 허용됩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에게만 해당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결단이나 각오, 의지 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82강) 마가복음 14:27-31 베드로의 호언장담
한마디로 예수님의 세계에 나는 없습니다. 예수님만 존재하시고 예수님의 이름만 있습니다
(83강) 마가복음 14:32-42 겟세마네의 제자들
믿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는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물론 예수의 피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자기 선행에서 확인하려고 합니다. 선을 행하고 인격적으로 나아지는 소위 성화를 통해서 자기 믿음의 참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결국 선행이 없으면 믿음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피가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 자신의 선을 내용으로 삼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몸과 피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나의 선과 의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신자는 무엇을 해도 나는 무익한 종일뿐임을 고백하게 되고 하나님이 은혜가 나를 살게 한다는 생각에서 떠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몸과 피를 믿는 것입니다.
(81강) 마가복음 14:22-26 몸과 피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인간은 예수님의 일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3년간 예수님과 동행을 하면서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을 직접 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팔기도 하고 거부하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어느 한 사람도 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80강) 마가복음 14:10-21 말씀대로
오늘날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자신이 살고자 하는 도구로 활용을 하면 안됩니다. 말씀대로 선한 일을 하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신자됨을 확보하고 구원을 확실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기위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79강) 마가복음 14:1-9 향유를 부은 여인
전하는 말씀에 피로 받은 믿음만 보인다
은석교회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가신분은 잘못 가신듯…
그러나 그곳으로 인도 하시는 주님은 미쁘시다
강구만(IP:211.♡.68.12)
09-10-23 10:22
아직도 주님의 피와 살을 전하는 교회가 있음은 주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 입니다.
이상규(IP:114.♡.136.17)
09-10-23 11:11
설교 전문을 올려 주셨으면 좋았을 걸요.
워~낙, 무늬만 복음들이 많아서요.
철저히, 자기 부인함을 빼먹는 편안한 복음들이 많아서요.
요즈음,이목사님 강의하시는,빈자리에
주님이 아닌 "복음아는나, 교회"등이 자리를 틀어 않아 있는데도,
그모습을 보고 회개하지않는다면
짜가 복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성근(IP:211.♡.41.211)
09-10-24 00:00
아 상당히 안좋은 일이 생겼군요....안타깝게도. 여하간 잘정리되었음 합니다.
강구만(IP:211.♡.68.12)
09-10-24 09:25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계2:2) 복음을 훼방하는 적 그리스도의 영이 교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성도를 미혹하고 대적함을 새삼 알았습니다. 일곱촛대 사이를 다니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신 주님은 미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벧전4:17)
관리자(IP:124.♡.85.46)
09-10-26 15:50
사이코패스와 찰떡궁합인 히스테리
2009/08/07 00:41 in 교회와 양립불가인 십자가
사이코패스와 찰떡궁합인 히스테리 - 김대식
사이코패스 와 히스테리
사이코패스[psychopath]
반사회적인격장애(anti social personality disorder)로써 타인의 고통을 즐기며 남을 괴롭히는데 있어서 아무런 감정이 없는 한마디로 말해서 나쁜 놈이다는 것이다.
주로 전형적인 인물로 목사가 대표적인데 겉으로는 거룩을 말하면서 뒤로는 나쁜짖을 하는데 있어서 대표적인 사례자가 된다. 물론 미국이 주 사례자로 나타났지만
종교지도자들이 전형적인 대표자들이다. 반 사회적 인격 장애
그리고 교사, 공무원들이 이에 해당된다.
일반노동자들은 징계로 인해서 바로 짤리거나 바로 수정작업을 하는 반성이 있지만
이들은 짤리는 법이 없기에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다. 쉽게 짤리지 않고 왠만하면 복원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료들끼리 서로 보호막을 형성하게 되면
어떤 잘못도 다 가리우게 되는
그럼으로 인해 그 주변인들은 더욱더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려면 히스테리가 되어 살아남게 된다.
이런 사이코패쓰와 찰떡궁합이 바로 히스테리 이다.
히스테리는 저런 목사에 딱 맞게 남편의 사랑에 갈증을 느끼는 자들은
목사의 사랑을 받고자 광신도가 될 수 밖에 없다.
항상 사이코패스 주변에는 히스테리가 수두룩 깔려 있다.
히스테리는 어디든 언제든 인정받고파 사랑받고파 안달해 있다. Anti Social Hysterie
그런 히스테리에게 사이코패쓰 반사회적인격장애는 영원한 밥풀떼기가 된다.
사이코패쓰는 이런 히스테리를 자신의 보호막으로 삼아서 더욱더 타인을 괴롭히는 일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이다. 사이코패쓰가 시키는대로 맹목적인 행동대장을 수행한다.
종교의 100%는 바로 이런 현상 뿐이다.
목사로부터 인정 받고자 2인자 자리를 놓고 서로 서로가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이다.
타인에게 2인자 자리를 빼앗길까봐 정치를 하고 이간질하며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누워서 타인을 조정하도록 히스테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목사는 사이코패쓰로써 더욱더 이런 자들이 겹겹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신의 반사회적인격장애를 펼칠수가 있다.
타인을 고통은 자신의 즐거움이 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행함과 실적은 자신의 유익이 된다.
이런 사이코패쓰에게는 약도 없다.
섣불리 치료하고자 나서면 안 된다.
이런 사이코패쓰의 가장 큰 분노는
가장 악날한 짖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이슈화가 되지 않고
큰 사건인데도 큰 기사꺼리로 되지 않고 묻혀버렸을 때 분노를 표출한다. 무시당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쓰는 어떤 감정도 나타내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외로 흥분하게 된다.
즉 무시 당했을때가 사이코패쓰의 분노의 때다.
히스테리도 같은 현상이다. 무시 당할까봐 미리 이런 사이코패쓰에게 인정받고파 달라붙는다.
종교란 마약이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사이코패쓰에게 달라붙은 히스테리 환자들임을 잊지말자.
ps: 종교란 결국 행함이다. 믿음을 포장한 행함 뿐인 사이코패스들이다.
행함을 주장하는 자들이 교회 속에서 나타나면, 무조건 사이코패스와 히스테리로 보면 100 %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