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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91006b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요한계시록자유게시판요한계시록

20091006b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요한계시록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48)

20091006b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요한계시록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에 요한계시록에서 인이 도장이거든요. 도장을 맞았다, 찍었다. 이 말은 제가 어려운 걸 쉽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됐죠.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 되시는 것은 무엇을 염두에 두느냐 하면, 사람은 항상 자기의 속성, 악마의 속성, 뱀이 ‘따먹어라, 하나님처럼 된다.’ 이게 누구 성질이에요? 악마 자기 성질이라고요. 너는 신처럼 된다. 창세기 땐 몰랐죠. 요한계시록에 보면 그게 드러나죠.

사람이 하나님 되려고 하죠.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되시는 와중에 충돌이 일어나고 이 충돌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이 생각해서는 하나님의 성소는 하늘에 있는 걸로 돼있죠.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은 사람 안에 있어요. 사람을 자기 거주지로 삼았어요. 이거는 어떤 경우에만 충격이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모든 인간에게 충격이 돼버려요.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은 인간, 어떻게 하면 신처럼 본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사람 된 건 충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 될 때 그냥 사람 된 게 아니고 사람에게 버림받은 사람이 돼버려요. 마귀에게 버림받은 사람이 돼버려요. 그럴 경우에만 마귀는 영원히 유황불에 가둬도 할 말이 없기 때문에. 그게 바로 어린양의 희생입니다.

그래서 이 어린양의 희생이 어디에 담겨 있느냐 하면, 바로 구약의 성소, 제사, 성전 그 모든 한 가운데 보면 어린양의 피가 거기 지성소에 묻히게 돼있죠. 그 전체가 뭐냐?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이 예뻐서가 아닙니다. 그 안에 뭐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주해야 될 하나님의 성소, 성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속에 거하는 겁니다.

거하면서 바깥에서는 계속해서 성소의 어린양의 의미와 취지와 안 맞는 사람을 바꿔치기 하는 현상이 벌어지죠. 그래서 이스라엘은 늘 망하고 늘 망해야 늘 새롭게 됩니다. 대번 생각나는 게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의 교체. 이스라엘의 테두리는 변하지 않는데 그 안에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은 망하고, 망하는 과정을 통해서 숨어있던 이스라엘이 나오고. 숨어있는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라고 우기다고 또 망하고. 망했다 했는데 또 나오고.

삼손이 하나님께서 힘주실 때 삼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처럼 느껴서 삼손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삼손은 여자 때문에 망하고, 삼손이 망하면서 뭐가 나오고? 진짜 이스라엘은 또 나오고. 삼손은 죽고 또 나오고.

어린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영원한 보좌가 되죠.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성소가 된다 말이죠. 출애굽기 15장 말씀처럼. 어린양이 있는데 바깥에 있는 어린양에 의해서 배태하고 생산한 이스라엘은 무엇과 달랐다? 어린양의 정신과 다른 정신이죠. 그러면 이들이 어린양의 정신을 이탈해서 딴 데 가버리면 하나님께서 이걸 죽여 버리고 다시 어린양에서 생산되어 나오는 새로운 이스라엘로 교체되는데, 교체돼봤자 외부에 또 하고. 죽었다가 또 만드는 이 과정 자체가 안에 있는 어린양의 자기 정체성, 자기 본질성을 드러내는 바깥의 이스라엘이라 이 말입니다.

그럼 여기서 앞으로 둘째 시간에 생각할 건 뭡니까? 이스라엘은 왜 망했는가? 교회는 왜 망했는가?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에서 3장에 보면, 일곱 교회가 왜 책망 받는가가 나타나면서 4장부터 교회가 안 나오죠. 이스라엘이 나오죠.

제일 바깥층에 교회고, 그 안 층에 이스라엘이고, 더 안 층에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어린양이 있다. 그러면 바깥의 교회 갈아치우기 하는 그 능력,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어린양에서 이스라엘을 통과해서 교회 나온 거죠.

지금 교회를 바꿔치기 하는 모든 능력은 어린양에서부터 이스라엘로 나왔다 이 말이죠. 그런데 요한계시록의 시간적 배열은 교회에서 이스라엘로 어린양으로 들어가죠. 그러니까 이건 요한계시록 자체는 시간적 순서가 아니죠. 그러데 무천년주의자들은 이거는 시간적 순서가 아니고 묵시적이라는데 멈추었죠. 그래서 문제가 되는 거예요. 거기서 스톱한 게 문제에요. 천년주의는 아예 말도 안 되는 거고.

무천년주의, 안토니 후크마라 해서 캘빈,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이 무천년주의자들인데 그들이 요한계시록 해석을 제대로 했는가? 내가 보기에 해석 제대로 하지 못 했어요. 무천년, 다시 말해서 시간 없음, 묵시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 어린양을 이야기해요.

시간이 무천년 돼버리면 여기서 변화가 없어야 돼요. 그런데 시간은 시간대로 정지돼있으면서 그 안에 온갖 변화를 일으키려면 이거는 무천년주의라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아까 정지위성 했지요.

왜 신학자들이 무천년주의가 옳다고 하느냐 하면, 외부에서 지구와 위성을 다 봐야 되는데 지구에 있으면서 위성이 정지됐다고 보는 걸로 족하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런 의식 가운데 뭐가 박혀 있느냐 하면, 모든 성경은 사람이 납득되도록 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납득하면 그게 정답이다. 자기가 납득되는 쪽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 목회자로서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이스라엘로 넘어오면서 뭘 떼지요? 일곱 인을 떼지요. 일곱 인 뿐만 아닙니다. 일곱 나팔, 대접 다 뗍니다. 떼게 되면 교회라는 현실에서 이스라엘로 넘어옵니다. 다른 사람 보기에는 과거 이야기한 것처럼 보이죠. 사실은 이 안에 들어있는 모든 이야기는 과거의 구약성경 이야기입니다. 구약성경의 용어들이 완전히 쫙 깔려 있어요. 타일처럼.

이 깔려 있는 것을 교회로 잡아당기면 이건 요한계시록의 해석에 어긋나버려요. 교회로 잡아당기지 말고 어린양 쪽으로 다가서야 돼요. 그러면 진짜 내가 하면서도 ‘이해하십니까?’란 말 포기해버렸어.

수평적으로 보면 교회가 현재고, 과거가 이스라엘이고, 어린양은 창세전이니까 태초거든요. 태초니까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미가엘 싸움하는 것 있잖아요. 처음에 창세기 3장 15절 이야기 나온다고. 어린 아들 안고 어떻고.

수평적으로 교회에서 이렇게 가는 게 아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수직으로 배치해요. 교회 그 다음에 이스라엘, 그 다음에 어린양 이렇게 배치해버립니다. 점점 더 이렇게 배치해버리면 처음에 교회라 하는 것은 마치 이 역사가 인간 역사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게 현실로 보이겠지요. 현실로 느껴지는 사람을 그들이 모르는 더 깊은 현실로 내려가죠. 그러면 구약에 있는 이스라엘에 담겼던 모든 언어, 상징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에 보면 누가 읽어보세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어린양이 들어오죠. 어린양은 무슨 이야기입니까? 결국은 출애굽 때 어린양 피 혜택 받고 넘어오잖아요.

그 다음에 15장 2절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바다 건너가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게 모세 노래 부르잖아요. 그렇다면 현재 제일 위층 교회가 현실로 보면 교회가 되기 전까지는 과거에는 모세가 있었던 일이 있죠. 변화산에서 모세하고 엘리야하고 이야기 나오죠. 모세는 천 몇 백 년도 사람이고, 엘리야는 팔백 년도 사람이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맞먹잖아요. 같이 이야기한다고. 예수님하고. 무려 천 몇 년의 틈을 깨고.

그것을 오늘날도 그렇다는 거예요. 앞으로가 아니라 오늘날도 그렇다는 거예요. 오늘날 현실은 교회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교회를 뭐로 봤느냐? 돼지 껍데기로 봤어요. 안에 있는 삼겹살로 안 보고. 안에 삼겹살로 들어가면 현재 이스라엘이 활동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현재 언어로 사용하려 하니까 상징으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 말이죠.

모세의 노래가 어떠니, 유리 바다가 어떻고, 어린양이 어떻고. 그건 과거 모세 때 이야기 아닙니까? 아니라니까요. 현재 이야기에요. 여기서 더 내려가면 이스라엘도 사라져요. 이스라엘도 사라지면 뭐가 나타나느냐 하면, 이거는 이스라엘도 없던 시절, 교회가 인간이잖아요. 교회에서 더 내려가면 이스라엘 되는데 이스라엘은 인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되면 인 맞은 언약공동체가 돼요.

인간이 모였던 것이 교회니까 자칭 네가 부요하나 가난한 자라. 유대인들은 사탄의 회고 어떻고, 너는 이세벨을 조심하고 있잖아요. 전부 인간적 이야기잖아요. 더 밑에 보니까 이스라엘 나오면서 언약적으로 설명해요. 이건 인간이 아닙니다. 언약에 인 맞은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여기서는 뭐냐? 사람을 이야기하지만 밑에 보면 숫자로 이야기해요.

사람 숫자로 이야기하면 기분 나쁩니다. 어이, 7번. 이건 군대에서 하는 이야기에요. 어이, 13번, 35번. 저 이름 있는데요? 너는 이름 없어. 왜 없느냐 하면, 현재 교회에서 이스라엘 내려오면 여기는 언약공동체가 되면 나의 이름은 날아가고 주의 이름으로 숫자화 된 주의 이름이 우리한테 있는데 그 주의 이름이 우리 이마에 박히면서 우리는 주께 속한 숫자로서만 존재하게 되는 거예요.

그것을 주석 책에는 어떻게 보느냐 하면, 이 숫자를 아래에서 설명해야 될 것을 오늘날 교회에서 인간 역사에서 당겨서 해석해달라고 요구하니까 엉터리 같은 해석이 나오는 거예요. 그걸 왜 당겨서 해석해.

여기서 말하는 위에서 말하는 생명책과 아래쪽에서 말하는 생명책이 달아요. 모든 구약 성경개념이 내려가면서 개념들이 다 달라져요. 영적으로 내용이 더 첨가되면서 달라져요. 여기 있는 생명책은 흐려져요. 이름이 있더라도. 아래 생명책은 인박히면 흐려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행함 책과 행위 책이라 해서 아예 인간은 간데없고 책만 두 권 달랑 남아버렸어요. 그럼 인간은 뭡니까? 책이 만들어낸 거죠. 생명책이 만들어낸 존재가 돼요. 인간이 생명책에 있는 곳에 가는 것이 아니고 생명책에 합당한 인간을 생명책에서 제조해내요. 이 말이 어려워요.

행위 책은 행위에 합당한 인간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에서는 태어나기 전부터 미움 받아야 될 제품이에요. 밉상 같은 제품을 만들고, 야곱은 사랑받을만한 제품을 만들어서 야곱이 나온 거예요. 그렇게 하면 설명이 안 되는 겁니다.

제가 이런 소리 하면 역사 측에서 목사님, 그렇게 해서 교회 목회 안 되는데요. 지금 계속해서 관심사가 뭐냐 하면, 현재 갈아치우기 하는 교회에 관심이 있다고. 사실은 어린양 때문에 죽은 사람인데 여기는 교회 때문에 순교하고 교회 살리기 위해서 목회한다고 이런다 말이죠. 내 교회, 내 사유화된 교회.

요한계시록 2장, 3장 해석치고, 설교치고 이래서 ‘우리 바른 교회합시다.’ 하는 그렇게 해석하는 설교는 거의 없어요. 우리 노회 목사님 빼놓고. 이 이야기 또 해줘야 돼요.

모든 요한계시록뿐만 아니고 모든 성경해석이 반드시 다시 올라오면 안 되고 쭉 내려가면 교회 되는 것은 누구 작품이다. 어린양께서 지금 교회를 만들어내면 돼요. 그것도 몇 교회? 여덟 교회? 아닙니다. 아홉 교회? 아니에요. 딱 더도 덜도 말고 일곱 교회.

그래서 여기서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죠. 아래층에서 가면 그냥 신부에요. 신부는 몇 명입니까? 한 명입니다. 일곱이란 숫자가 아래쪽에서는 ‘1’ 되었어요.

하나님의 인 맞은 사람이 몇 명이냐? 십사만 사천 그 이전에 만이천이죠. 열두 지파가 천 명이니까 만이천이잖아요. 만이 천에서 더 내려가면 십사만 사천. 더 내려가면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 점점 내려갈수록 숫자가 무한대 되잖아요. 무한대가 다음에 1 나와요. 왜 1 나오느냐? 예수님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럿, 하나를 말하기 위한 여럿이다. 신천지, 여호와증인 다 엉터리죠. 그것만 엉터리겠어요?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누가 누구 보고 이단이라 해요? 다 이단인데.

666을 해석하라. 이 목사님, 666을 해석해보세요. 뭐라고 해석합니까? 하나. 짐승은 하나에요. 왜 그렇습니까? 십사만 사천도 하나로 끝나듯이 666은 짐승의 순위 바로 666으로 해석하지만 하나 돼요. 하나인데 모든 인류의 모든 인간이 다 666에 포함돼요. 왜? 짐승의 역사니까.

그래도 십사만 사천이 있지 않습니까? 십사만 사천이 된 것은 그들이 하나 된 그리스도의 신부기 때문에 십사만 사천이 됐는데 그들이 짐승의 숫자가 된 게 아니라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새로 만들어낸 사람이죠. 그래서 도장을 받아요.

도장, 인이라는 것은 이미 완전히 창세전부터 이뤄진 것을 열 때마다 역사가 하나씩 나와요. 역사라 하는 것은 사건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모서리에 일곱 개 인이 있는데 그것 뗄 때마다 역사 하나씩 만들어내요. 만드는 작업에 천사들을 동원해요. 천사를 동원한다는 말은 ‘인간들아 너는 손떼라.’ 더 이상 인간들은 짐승이기 때문에 할 것도 없어요.

그래서 사도 요한은 어디서 이런 계시 받습니까? 밧모섬에서. 밧모섬에서 무슨 짓합니까? 그냥 받은 환상을 적고 전할 뿐이에요. 지가 뭐 할 것 없어요. 빠삐용처럼 되는 게 아니에요. 밧모섬에서 뭘 이용해서 탈출해볼까? 이런 것 없어요. 밧모섬이 예수님이 계시는 성전이에요. 신부가 있는 곳에 신랑이 있고, 신랑이 있는 곳에 신부가 있어요. 비록 신부가 목 베어 죽어도 그냥 그것이 첫째 부활이고, 둘째 부활이에요.

교회에서 이스라엘로 내려오면서 언약공동체화 되면서 숫자화 되죠. 이건 민수기에 나옵니다. 민수기에 보면, 이스라엘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이십 세 이상 된 사람을 하나의 군대로 봐서 개개인이 얼마나 착하냐, 개개인이 양심적으로 고우냐, 사적인 생활이 괜찮으냐 그걸 보는 게 아니고 숫자가 줄었느냐, 늘었느냐 그것만 보는 거예요.

그러니 이스라엘이란 하나의 집단이 중요하지 거기서 얼마나 사람이 죽어나갔고, 새로 태어났고 문제 삼지 않아요. 이스라엘 하나만 있으면 하나님의 거주지가 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아무 일 없습니다. 어떤 교회가 망했습니다. 망해도 괜찮아요. 일곱 교회는 든든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라 하는 것은 교회 자체로 교회 되는 것이 아니고 밑에서 올라오는 어린양 때문에 받쳐줄 때 교회가 교회되게 돼있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에서 3장에 나오는 모든 교회 이야기할 때 반드시 무슨 훈계하느냐 하면, 요한계시록 1장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묘사를 근거로 밑받침을 해서 이제 그러면 교회란 뭡니까? 밑에 예수님이 계시고 위에 교회가 있기 때문에 교회가 일곱 촛대죠. 촛대가 있어야 성전 되니까 예수님 계신 일곱 촛대 가운데 예수님이 거닐잖아요. 거니는 예수님의 정체성, 예수님이 이런 분이란 걸 보여주기 위해서 역사가 필요한데 짐승의 역사가 여기 동원돼야 되죠.

인간들은 그걸 뭐로 봅니까? 인간의 자기 역사로 오해하죠. 우리가 살 수 있는 우리들의 역사로 보죠. 역사 해석을 자기가 하고. 인자가 해야 될 걸 자기가 하는 거예요. 그런데 악마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그러한 사건들은 숨어있던 예수님의 역사가 뭔지 보여주기 위해서 이러한 활동들을 하면서 그 활동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하나하나 해석을 해주는 거예요.

그럼 요한계시록 해석은 어떻게 하느냐? 요한계시록 해석은 요한계시록 자체 내에서 해석을 해줘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달라지느냐? 꼭 집어서 뭐냐가 아니라 어떤 존재가 어떻게 달라집니까? 그 달라지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어린양에서 비춰 나오는 어린양의 자기의 본질이 된다. 우리는 어린양의 본질만 알면 돼요.

생명책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들어갑니까? 이러면 안 돼요. 주께서 어떻게 들어가게 하십니까? 이것만 알면 된다고. 우리가 교회 와서 얼마나 내가 완벽한가 그걸 알 필요 없어요. 오늘도 주께서 이 교회 내에서 어떤 사건을 일으켜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가 다 이루었다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 출애굽할 때 어린양이 죽었는데도 왜 구원받느냐? 하는 그 문제.

그 이야기해봅시다. 어린양이 피 흘리고 죽었잖아요. 그런데 홍해가 갈라지면서 자기 백성이 홍해를 건너옵니다. 어린양의 피를 믿지 않는 사람은 홍해에서 죽어버리고 건너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돼요? 모르죠. 다윗의 핏줄이 와서 인을 떼 줘야 이게 드러납니다. 어떻게 되느냐? 모르겠다. 납득이 안 된다. 납득이 안 될 수밖에 없죠. 우리는 역사의 의식 층, 제일 위층에 있기 때문에 모르죠.

그런데 아래층에 들어가면 뭐가 등장합니까? 바다에서 온 짐승이 나오죠. 결국은 주님은 영적인 존재기 때문에 영적 존재만 상대하는데 육에 속한 육의 역사밖에 모르는 인간이 영적 존재를 이해하려고 하니 이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걸 역사적 언어로 통역해줘도 그 사람은 역사적 언어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인간 역사의 이해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된다 이 말이죠.

그럼 이해가 안 되는데 왜 이야기합니까? 이해가 안 되도 성령을 받은 사람은(요한계시록에 성령 이야기 많이 나와요. 성령이 하는 말을 너희가 들을지어다.) 그걸 역사적 인간 이야기 안 해도 딱 보면 압니다. 어린양을 아는 사람은 요한계시록을 보면 주께서 혼자 다 하셨구나를 알아져요. 설명하려 하면 언어로 문자적으로 설명하면 논리가 안 돼요. 시간적으로 혼동되니까. 앞뒤가 안 맞는다니까. 그런데 갈라지는 균열인데.

아래층에 어린양이 있죠. 어린양이 위층에 올라가면 중간에 이스라엘에 있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치고 우리 이스라엘 구원받는다고 하고 우리 이스라엘 망한다고 하는 사람 없어요. 이스라엘이 국가잖아요. 여러분, 국가가 뭡니까? 국가란 자기 정체성이에요. 모든 인간의 국가는 자기 정체성입니다.

파라과이 선수가 울고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왜 우리는 파라과이 청소년 선수를 관중들을 이해할 필요 있어요, 없어요? 이해할 필요 없어요. 왜? 나의 정체성이 아니기 때문에. 그럼 나의 정체성은 어디입니까? 김민우가 한 개 어시스트하고 두 골 넣었잖아요. 3:0으로 8강 들어갔지요. 목사님 몰랐어요? 무천년주의라서. 다 알아요.

왜 청소년 8강이 톱뉴스입니까? 우리 모두의 정체성인 거예요. 그 정체성이 없는 사람이 없어요. 다 있어요. 저 산 속에 도사는 자기가 나라에요. 자기가 대통령이라. 더 내려가면 국가가 정체성이 아니고 나는 영적 존재, 내가 신이라는 이것이 자기 정체성이 됩니다.

이 국가는 이스라엘과 대비되는 새로운 국가가 등장해요. 더 많은 나라를 한 나라로 봅니다. 음녀, 바벨론이에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많은 나라가 한 나라로 말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요한계시록의 해석의 지혜입니다. ‘어떻게’란 말 하지 마세요. 이거는 영적이기 때문에. 이백이십 개가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 그걸 묻지 마세요. 역사적 언어로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 먼저 여럿이 하나가 된 게 있죠. 이스라엘이죠. 이스라엘은 하나가 되기 위해서 무수하게 이스라엘이 하나라고 여기던 인간 역사의 이해가 이스라엘이 진짜 하나 되기 위해서 그들은 하나라고 우기던 이스라엘이 망하고, 망하고, 또 망하고 또 망해.

그런데 고맙게도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주께서 주위에 뭘 배치했는가? 모압, 암몬, 블레셋, 바벨론, 앗수르 이런 이방나라, 다른 신들을 섬기는 나라들은 배치해서 그들도 망하고 이스라엘도 망하게 하는 역사적으로 모든 나라는 망함으로써 다른 하나, 영적인 하나를 찾도록 도와줬어요. 악마가.

사실은 악마가 한 게 아니고 배후에 누가 했습니까? 하나님이. ‘야 임마. 나와, 나와.’ 왜 나와야 됩니까? 내가 세 번째 인을 뗐거든. 내가 두 번째 나팔을 불었거든. 내가 네 번째 대접을 쏟았거든. 그러니까 악마는 엑스트라에요. 시나리오대로 가야 돼요. 소품이에요. 빨리 나와, 빨리 나와. 나와서 황충이 돼. 황충이 하는 일은 쏘아대는 겁니다. 누굴 쏘아대요? 이스라엘을 쏘아대요. 그리고 같은 불신자들을 쏘아대고.

그러니까 다니엘에서의 짐승의 특징은 뭐냐? 서로가 하나라고 우기면서 열 개의 왕이 등장합니다. 절대로 어떤 나라도 나라가 열 개라고 하지 않습니다. 필리핀한테 물어보세요. 이 나라의 중심이 누굽니까? 필리핀. 중국한테 지구의 중심이 누굽니까? 이름 자체가 중화민국, 지구의 중심. 미국사람에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미국은 합중국. 스웨덴 보세요. 하나.

우리 보기엔 열 개의 제국이 있어도 내부적으로, 사람이 정체성이 균열되면 안 돼요. 하나로 모아질 때 정체성이라 해요. 반드시 내부적인 방향성, 속성은 언젠가 하나가 되리라. 그러니까 저희들끼리 다투고 싸우고.

이거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중학생 학급에 꼭 남한테 밉상 받는 애들 있을 거예요. 다른 애들 쉬쉬해서 그렇지 학교 오면 쥐어박는 애들 있어요. 우리 클 때 있었어요. 약간 멍청해서. ‘어이, 지영이 왔나. 저거 웃는 거 봐. 저 병신 학교 왜 왔는지 몰라.’ 이거는 한둘이 한 애를 괴롭힌 게 아니고 반 전체가 괴롭힌 겁니다. 이걸 일본말로 이지메라 하죠. 왜 괴롭힐까요? 한 학급의 정체성을 이루는데 있어서 그 애가흠집을 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의 중학생 학급도 그런데 교회, 친목회, 골프모임, 낚시모임, 국가 어느 단체든 하나 됨의 지향성 악마가 심어준 본성이고 이 악마의 본성은, 예수님이 결국 어린양 한분뿐인 것은 알려주기 위해서 악마를 통해서 시킨 속성이 우리 인간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바리새인이 이런 소리 했지요. 예수님이 병 고친 것은 바알세불, 악마의 왕이 악마를 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를 이야기했죠. 어떤 나라든 싸우면 갈라지게 돼있다. 내가 온 것은 이 악마의 나라를 쳐부수기 위한 다른 하나, 그 하나는 다른 노선입니다. 그건 바로 언약의 노선인데 언약의 노선은 시간과 관계없이 영적, 질적인 문제에요.

교회에서 이스라엘 보면서 여기에 뭐가 등장했습니까? 언약이 등장하죠. 언약공동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구약에 가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거는 울산서 강의할 때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특징은 반드시 없는데서 있게 하고, 죽은데서 살리죠. 이게 중간층이죠.

그러면 이 중간층에서 이스라엘 만드는 것이 없는데서 있고 죽은데서 살린다면 이런 힘을 공급하는 것은 아래층, 어린양에서 나오죠. 어린양 곁에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처음에 현실에서 선악과를 따먹었죠. 그런데 요한계시록 22장에 선악과나무가 없어요. 생명나무만 있고 열두 과실을 맺죠.

그러면 이스라엘 위에 있는 참된 일곱 교회는 어느 혜택을 입습니까? 선악과나무 혜택이 아니고 생명나무 혜택을 입죠. 그러면 어린양의 생명나무가 바깥에 현실적으로 나타날 때는 조롱과 모독과 핍박과 순교와 죽음을 통해서 하는 거예요. 왜 죽어야 됩니까? 죽어줘야 죽은데서 살아나고, 없어줘야 없는데서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스라엘 나라가 잘못은 뭐냐? 있다는 거예요. 있다니까 문제 되는 거예요.

십자가마을 강사문제 나올 때 십자가마을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있는 십자가마을 잘 하려면 민주적으로 해야 된다 이 말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뭐라 했어요? 십자가마을 있는 게 아니고 없다고 해야 돼요. 만약에 십자가마을만 있다고 한다면 다른데서 뭐라고 합니까? 십자가마을 너희만 구원받나, 우리는 구원 못 받나? 마찬가지거든요.

창원에서 이장우 목사님, 늘푸른교회만 교회가? 우리는 교회 아니가? 라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어요. 그럴 때 우리 교회만 복음 있거든. 이러면 안 돼요. 왜? 복음이 있어버리면 복음 있는 교회가 되는데 이거는 모든 교회가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고. 그러면 우리는 교회가 없고 누구만 있다? 예수님의 거주지만 있다. 예님이 계셔서 날마다 없는 늘푸른교회를 있게 만들고 날마다 죽게 만들고 새롭게 만드는 그것만 있는 거예요.

그런데 십자가마을만 십자가 있고, 우리는 없느냐? 그런 공격하는 이유가 어떤 차원에서 어떤 입장에서 하느냐 하면, 우리도 제발 이단이라 하지 말고 인정해달라는 거예요. 서로서로 인정해달라 이 말 아닙니까. 그게 바로 부르너와 칼 바르트 논쟁에서 나왔잖아요.

바르트, 당신은 약간만 마음을 열어서 다같이 험악한 19세기 자유주의가 팽만한 이 시대에 우리 진짜 보수주의, 개혁주의가 교회를 참된 교회를 만들 수 있는데 부르너의 정신이다. 그래서 캘빈을 이야기한 거예요. 그럴 때 가서 네가 이단이다. 그런데 바르트는 이래 설명을 못해요. 여기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기존에 있는 신학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기 때문에. 성경 내용은 없어요. 그냥 감은 잡아서 성경구절 툭툭대요.

이스라엘이 왜 망했느냐? 망해야 되니까. 이스라엘에게 뭘 주고? 호세아에 나오죠. 내가 이스라엘 망하게 하는데 하나님이 뭘 줬습니까? 왕을 줬잖아요. 왕을 주면서 왕 때문에 망하게 한다고.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말 이해 못하는 거예요. 살도록 하려면 왕을 안 줘야지. 망하라고 왕 주는 그런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그게 하나님이에요. 왜? 그래서 생긴 이스라엘 믿지 말라고. 그래서 생긴 교회 믿지 말라고.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거예요. 그전에 내가 강의하면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십자가마을이 있는데 왜 자꾸 없다고 하느냐? 십자가마을 있는 걸 있다고 하면 그게 뭐 흠이 되는데? 그게 왜 흠이 안 돼요? 다른데 다 보고 있는데. ‘너만 십자가 있느냐, 우린 십자가 없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완전히 포진하고 있는데, 주위에. 십자가마을 언제 망하나 보자. 십자가마을 우린 안 망한다 하면 안 되고, 우리는 아침 눈만 뜨면 망하게 돼있어요.

이게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 아닙니까. 나는 내 안에 그리스도 십자가에 죽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살게 함이라. 고린도후서 4장에 우리는 날마다 죽음에 넘기우며.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의인되었고 살았는데 왜 자꾸 이근호 목사는 죽었다고 하느냐? 그게 바로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영을, 성령을 안 받아서 관심사가 내 사유의 나도 교회 있단다. 이 교회가 자기 정체성이잖아요. 이 교회 건드리면 날 건드린 거다. 누가 한국 청소년축구 16강 못 간다고 했어? 8강 들어갔잖아. 이게 뭡니까? 자기 정체성이잖아요. 자기 정체성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라는 그걸 못 알아들은 열두 제자 전부한테 해당되는 거예요. 베드로 세 번 부인했죠. 세 번 배신했잖아요. 사도 요한 도망가 버렸죠. 여자들은 그저 시체나 치우려고 왔죠.

인간인 이상은 뭘 포기 못해요? 육인 이상 영으로 건너갈 수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새로 만들어내야죠. 만드는데 필요한 것이 뭐냐? 복음 때문에 수난 받고, 고난 받고, 조롱받고, 모독받고 핍박받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주변에 있는 모든 징벌과 징계 이런 것은 역사적 차원에서 해석을 하면 안 되고 어린양의 안목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그 모든 변화가 이해가 돼요.

다시 말해서 이 대자연은 생명나무 하나 그걸 드러내기 위해서 어린양의 보좌를 드러내기 위해서 배치됐는데 어린양이 튼튼하기 때문에 자연세계가 튼튼하다가 아니라 이러면 또 인간의 지혜 돼버리죠. 어린양의 튼튼함, 어린양의 영원한 새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더럽고 추잡한 이 자연세계가 허물어져야 되는데, 허물어질 때 그냥 허물어지면 재미없잖아요. 마귀가 어떻게 이걸 유지하려고 애쓰는 가운데서 그걸 억지로 허물어뜨리는 일곱 대접, 일곱 인, 일곱 나팔 천사들의 혹독한 비정한 냉정한 징벌과 심판과 저주를 받아야 되죠.

음녀의 특징은 아름다움이죠. 음녀가 모든 무역하고 장사하는 것은 뭐냐? 음녀는 음녀가 아니고 그 자체가 영원한 제국을 만들기 위함이잖아요. 제국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모든 각양 귀한 보석은 여기다 집결. 그 행위 자체가 집결함으로 말미암아 우쭐대고 으스대고 스스로 보기에 자기가 자랑스럽지요. 자랑스럽다는 게 뭐냐 하면, 누굴 모독하게 돼있어요? 그 치마에 예수님의 어린양을 모독하는 훼방하는 그런 글귀들이 써있다 이 말이에요.

그런 글귀를 글귀로 보면 안 됩니다. 현재 돌아가는 서울, 부산, 대전, 대구 찍고 목포 모든 인간의 움직임은 뭐냐 하면, 예수 없이도 살 수 있잖아, 봐. 나 이번 주에 교회 안 가도 살잖아. 하나님 안 섬겨도 되잖아, 봐. 이래도 잘 살잖아. 그게 뭐냐? 나의 정체성의 아름다움. 이게 역사적 해석이란 말이죠.

그걸 저는 복음의 광채가 가렸다. 눈부신 광채가 안 보이죠. 그래서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하잖아요. 그런 게 하나가 인간이 행할 수 있다는 게 아닙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제발 네 자신이 죽어라.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살리라. 죽으라. 그러면 살 것이다. 없어져라. 그러면 있게 될 것이다. 그 이야기입니다.

그 짐승들은 할 일이 뭐냐 하면, 요한계시록 11장 8절에 봅시다.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보세요. 성이 나오죠. 아까 제가 이야기했죠. 모든 중심은 이스라엘 중심이고, 더 좁게 예루살렘 중심이고, 더 좁게 말해서 성전 중심이고. 그 성전 안에 어린양이 있는데 바깥에서 요란스럽지요.

어린양의 정신을 알기 위해서 바깥에 요란스러운데 그게 뭐냐 하면, 스스로 있다, 스스로 안 죽으려는 모든 세력과 그리고 ‘죽어도 좋아’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만남이죠. 그러면 바깥에 있는 악마들이 해야 될 일이 뭐냐 하면, 그 어떤 사건을 지명을 바꿔야 돼요. 소돔으로 바꿔야 되고, 애굽으로 바꿔야 되고. 8절에 나오죠.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고, 애굽이고 그 다음에 뭡니까?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야 된다.

악마가 해야 될 일이 있어요. 계속해서 성도와 불신자의 만남을 그 공간을 예수님 십자가 죽는 자리로 바꿔줘야 돼요. 바꿔주게 되면 악마가 승리하죠. 그러면 여기서 누가 죽습니까? 성도가 죽죠. 죽고 난 뒤에 13절에 보면, 지진이 일어나죠. 그러면 그들이 그렇게 아름답게 꾸미려면 그들의 성소, 그들의 성전이 뭡니까? 이 자연 속의 성전이잖아요. 인간들의 성전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아닙니다. 헌 하늘과 헌 땅 속에 바벨론 음녀를 만들어서 봐. 하나님, 예수 없어도 되잖아. 우리가 예수님 잘 때려죽였잖아. 예수 없어도 잘 살 수 있잖아. 봐라.

그런데 갑자기 십자가란 것을 그들을 통해서 두 증인을 죽임으로써 성도를 죽임으로써 십자가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에 예수님 십자가 달릴 때 하늘이 캄캄해졌고 지진이 일어났죠. 그게 대규모적으로 전체적으로 확산이 되면 바로 그들이 죽었을 때 자연세계가 아름답지도 않고 믿음직스럽지도 못하다는 것을 마귀의 모독과 조롱 가운데서 같이 무너지게 돼있어요. 무너지게 해놓고 드디어 13장에 들어가면 그 다음에 16장 같은데 보면 하나님의 성전이 나오죠.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 나오잖아요. 그 다음에 일곱 대접 나오죠.

일곱 대접하는 건 결국 뭐냐 하면, 갈수록 내려가기 때문에 짐승이 하는 일이 자연세계에 변화를 통해서 구체화돼요. 짐승의 정체가 구체화되는데 그 구체화되는 것이 뭐냐 하면, 사람들은 누굴 옹호해요? 예수님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고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되고,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어려울수록 우리는 용기를 가져야 되고, 절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모든 게 진화론으로 됐기 때문에 앞으로 잘 될 것이고, 인간이 힘없이는 못 사니까 살든 죽든 이 세상밖에 믿을 게 없다는 것을 더욱더 결집이 되면서 하나로 모이죠. 마음속에. 그러면 그 마음속에 인간의 모든 행한 것은 나는 짐승의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를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그러한 걸로 질서가 재편성됩니다.

그러면 요한계시록 20장에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것은 그만큼 압박이 더 심한. 그 압박 중에 하나가 무저갱에서 놓이는 거죠. 그거는 뭐냐 하면, 천년이란 말은 모든 활동들이 설치는 것이 누구의 작전이다? 주께서 왕 노릇 가운데 포함된 시나리오에 해당되는 거예요. 그들이 활동을 해줘야 마지막 성도의 남은 본질, 성도의 본질이 뭡니까? 어린양 때문에 사는 사람들. 사나죽으나 우리는 죽어도 살고, 우리는 없는 자 같으나 있는 자고. 그 성질을 보여주는데 악마가 마지막 자신의 역할을 다 해주셔야 되는 거예요.

그래 교회는 들락날락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어이 복음 때문에 복음 듣기 싫어서 나간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복음만 전해야 돼요. 드디어 복음 때문에 그 교회 망했다고 할 때 우리는 짐을 더는 겁니다. 그놈의 교회 때문에 우린 사실 주님 얼마나 자주 못 봤잖아요. 교회 없어지니까 주님만 바라보게 되잖아요. 제임스리 목사처럼. 죽을 때 되면. 이젠 교회가 아니고 예수님 어린양만 있으면 족합니다. 내가 구원받는 게 아니고 나는 하나 중에 포함된 하나. 신랑은 다같이 한분 신랑을 보니까.

그래서 요한계시록 22장에 마지막에 보니까 신부가 어디서 내려옵니까? 분명히 죽었는데 하늘에서 내려와요. 내려오면서 그 하늘이 뭐가 되느냐? 하늘이 땅이 돼요. 이 지상의 땅과 하늘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아요. 왜? 이제 신부가 드러난 이상은 신부가 되기 위해서 도와줬던 고마운 악마들은 이제 유황불에서 후회하면서 통곡하면서 우리는 주님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주께 영광 돌리면서, 통곡하면서, 가슴 치면서 지옥 불에 그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그걸 한 마디로 말하면, 똑같은 짐승의 도장을 받은 사람들.

그러니까 지옥 가는 사람들 많지요? 안 많습니다. 지옥 가는 사람 몇 명이에요? 하나에요. 한 명이 아니고 하나에요. 하나만 지옥 가죠. 그들은 자꾸 여러 명 하는데 여러 명이라는 숫자는 이미 이스라엘이 하나가 된 이상은 그들도 하나로 움직였지 여럿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똑같은 정신상태로 복음을 핍박하는데 하나가 돼 움직였어요. 위아더월드, 손에 손잡고. 하나같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그때는 원수였지만 예수님 십자가 할 때는 그들이 한 몸이 되는 거예요. 그건 십자가 효과. 이게 바로 요한계시록의 의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성경을 보면서 결국은 너, 나가 아니라 한 몸 된 예수님의 한 지체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어떻게 라고 보지 말고 주께서 어떤 식으로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게 인도했는데 그 영광과 찬양과 감사를 면류관 반납까지 해가면서 이곳이 천국이라 여기면서 주께 영광 돌릴 수 있는 모세에 속한 사람들, 주님께 속한 어린양에 따라간 사람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091006b 부산강의.hwp (54.0K), Down: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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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