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와 성령
Re..마 12:30-32 (인자와 성령)
이름 : 이근호(IP:)
2003년 11월 31일본문 말씀: 마태복음 12:30-32
예수님은 뭔가 자꾸 싸우시는 분입니다. 그 싸움의 여파가 십자가 죽으심으로 번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싸우시는 그 대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갈 수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심판주로 오셨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심판을 내리시기 이전에 먼저 심판의 기준부터 통보하려 오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하심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하나님 편에서 주어진 그 무수한 지시와 거기에 따라 등장되는 형벌들은 다 무어란 말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얼마나 무수한 죄를 짓습니까. 그런데 그 죄에 대해서 유일하게 심판 권한을 가지신 심판주의 입에서 '용서'라는 용어가 튀어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반갑고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용서 방침'은 확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이란 욕망의 요동침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으로 인해 마음은 '욕망의 지형도'가 됩니다. 욕망은 밀림의 하이에나처럼 먹이감을 노리면서 덤벼듭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인간들이 자신의 욕망을 어떤 법칙에 준해서 조종하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선악체제에 의해서 조정하게 됩니다. 즉 스스로 판단해서 악한 욕망이라고 여기면 눌려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그 욕망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딴데로 그 에너지를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욕망은 욕망의 속성상 굶주림을 느끼게 됩니다. 새로운 먹이감을 찾아 욕망은 자체적으로 해소와 발산을 추구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싸움은 바로 이런 선악체제와의 싸움입니다. 즉 인간의 근본은 선악체제가 되면 안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노아 방주에 들어 있었던 정결한 제물을 받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는 물로서는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이것은 인간들의 생각하는 것이 모두 악함이니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 사실도 모르고 은총이라는 방석 위에 앉아있으면서도 그 위에서 선악 체제에 준해서 자신의 올바름과 정당함을 마음껏 과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심판주로 오신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에 앞서서, 이런 세계에 향하여 바른 심판의 기준을 먼저 제시해 주시고자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동안 바리새인들은 인간들이 해낼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윤리와 도덕을 신봉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면 그것 외에 또다른 심판이 기준은 없을 거라고 확답하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모든 체제를 뭉개버리려고 이런 '용서' 사건을 우발적으로 일으키시는 겁니다. 천국의 기준은 이미 확정되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기준은 바로 예수님의 손에 달린 용서의 법칙입니다.
바리새인 뿐만 아닙니다. 모든 인류가 다 이런 선악체제에 준해서 그동안 자녀 교육과 공교육을 시켜왔습니다. 모든 교훈과 훈계도 이 차원에 준해서 실시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말씀까지 이 법칙에 준해서 해석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 체제는 용서체제의 원수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결정적으로 그들의 악마성을 들추어내는 논리를 준비하셨습니다. 선악체제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발언을 하시는 겁니다. 즉 이 땅에서의 사건은 그 원인에 의해서 생긴 결과들입니다. 원인없이는 절대로 못일어나는 결과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자들에게 의도적으로 헷깔리게 하십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추방하는 일에 대한 원인을 둘도 나누고 계신 것입니다. 과연 성령님이 하신 일까요 아니면 인자 되시는 예수님 자신이 하신 일일까요? 둘 중의 하나를 찝어야 할 판입니다.
왜 인자되시는 분이 이렇게 오셔야 합니까? 그것은 이사야 53:1-4에 의하면 인자되시는 분은 아무도 이해 못하는 못하는 식으로 오셔야지만 말씀이 완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러나 나중에 성령님이 오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가 최종적으로 다 드러난 시기입니다. 따라서 그런 시기에 성령이 하시는 일을 막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즉 예수님이 보시는 죄란,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를 시시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 대신 선악체제에 의한 자기 정당성과 의로움을 그대로 유지하는 자가 지옥하는 식의 심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