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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12:30-32 (인자와 성령)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12:30-32 (인자와 성령)

이름 : 이근호(IP:)

인자와 성령

2003년 11월 31일본문 말씀: 마태복음 12:30-32

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뭔가 자꾸 싸우시는 분입니다. 그 싸움의 여파가 십자가 죽으심으로 번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싸우시는 그 대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갈 수가 있는 겁니다.

마태복음 12:14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거늘"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뿐만 아니라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상대로 싸우고 있습니다.

이미 21세기에 접어든 우리들 눈으로 볼 때, 이 둘 진영 가운데의 싸움은 다 사소하고 부질없는 자존심 전쟁처럼 보입니다. 차라리 예수님편에서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그 모든 적들을 용납해 주어서 그 시대와 그 사회에 평화가 찾아드는 것이 더 선한 일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전쟁을 그런 안일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심판주로 오셨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심판을 내리시기 이전에 먼저 심판의 기준부터 통보하려 오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하심입니다.

오늘 본문 31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깜짝 놀란 이유는, 하나님쪽에서 먼저 '용서하심'을 제안하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즉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 생각해봐도 너무 죄가 많아 신의 진노가 무서워서, 하나님에게 집단적으로 하소연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지못한 용서를 결정하신 것이 아니라 아예 애초부터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용서함을 얻되'라는 방침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하나님 편에서 주어진 그 무수한 지시와 거기에 따라 등장되는 형벌들은 다 무어란 말입니까?

죄를 지었을 경우에는 가차없이 저주를 퍼부어시는 그 하나님의 엄포는 그냥 무기력한 엄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렇지않다면 하나님의 새로운 면을 접하고서는 제가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얼마나 무수한 죄를 짓습니까. 그런데 그 죄에 대해서 유일하게 심판 권한을 가지신 심판주의 입에서 '용서'라는 용어가 튀어나왔다는 것은 참으로 반갑고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용서 방침'은 확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확정적인 것에다 남은 목숨을 섞어 넣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사람은 평소에 늘 흔들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흔들임이란 다름 아닌, '욕망이 요동침'입니다.

사람의 행동이란 욕망의 요동침에서 비롯됩니다. 이것으로 인해 마음은 '욕망의 지형도'가 됩니다. 욕망은 밀림의 하이에나처럼 먹이감을 노리면서 덤벼듭니다.

욕망이란 물침대와 같은 한 쪽으로 누르면 다른 쪽으로 황급히 쏠리게 마련입니다. 욕망의 에너지가 어디론가 빠져나가지를 않고 늘 우리 안에서 춤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인간들이 자신의 욕망을 어떤 법칙에 준해서 조종하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선악체제에 의해서 조정하게 됩니다. 즉 스스로 판단해서 악한 욕망이라고 여기면 눌려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그 욕망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딴데로 그 에너지를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소위 악한 욕망에서 선한 욕망에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조종술입니다. 하지만 뭐든지 과한 것은 아예 아니한만도 못하다는 상식처럼, 아무리 착한 일이라도 과도한 욕망이 집중되어 실시하면, 짜증이 나게 마련입니다. 자기 자신이 불편해 합니다. 여기서 공자의 이론이 도입됩니다. 소위 '중용', 혹은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욕망이 아니지요.

가만히 있는 욕망은 욕망의 속성상 굶주림을 느끼게 됩니다. 새로운 먹이감을 찾아 욕망은 자체적으로 해소와 발산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렇듯 인간은 평생을 살면서 불안정에서 오는 불편함을 겪습니다. 이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을까요?

예수님의 싸움은 바로 이런 선악체제와의 싸움입니다. 즉 인간의 근본은 선악체제가 되면 안된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나 할 것없이 하나님이 주신 방석을 깔고 앉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노아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은총성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방주에 들어 있었던 정결한 제물을 받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는 물로서는 이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이것은 인간들의 생각하는 것이 모두 악함이니라"고 말입니다.

즉 노아 이후의 세상은, 인간의 잘, 잘못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내려지는 은총 속의 세계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언약입니다. 무지개처럼 세상을 하나님이 은총으로 아우려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악인이 횡행하고 설쳐서, 계절의 안정된 변화와 무상으로 주어지는 햇빛과 단비가 제공되기 마련입니다. 우리 인간은 지금도 이런 은총 안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 사실도 모르고 은총이라는 방석 위에 앉아있으면서도 그 위에서 선악 체제에 준해서 자신의 올바름과 정당함을 마음껏 과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심판주로 오신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에 앞서서, 이런 세계에 향하여 바른 심판의 기준을 먼저 제시해 주시고자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2:22에 보면,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말하며 보게 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의 자질이나 인격을 아예 보시지 아니하시고 일방적으로 귀신이 물러가게 하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충돌은 이런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방적인 '용서의 사건'이라는 발화지점으로 비롯됩니다.

그동안 바리새인들은 인간들이 해낼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윤리와 도덕을 신봉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면 그것 외에 또다른 심판이 기준은 없을 거라고 확답하고 있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모든 체제를 뭉개버리려고 이런 '용서' 사건을 우발적으로 일으키시는 겁니다. 천국의 기준은 이미 확정되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기준은 바로 예수님의 손에 달린 용서의 법칙입니다.

이 용서의 법칙은 기존의 선악 법칙을 축출해 버립니다. 아담이 선악과 따 먹고 난 뒤, 인간들의 욕망은 이 선악체제에 의해서 다스려 왔습니다. 욕망의 교통정리는 선한 욕망과 악한 욕망으로 분리시키도록 했습니다. 악마의 얼굴과 천사의 얼굴을 놓고서, 천사의 얼굴을 갖는 것이 심판에서 구원되는 길이라고 다들 그렇게 알고 삽니다. 왜냐하면 달리 다른 대책이 없기 때문이죠.

바리새인 뿐만 아닙니다. 모든 인류가 다 이런 선악체제에 준해서 그동안 자녀 교육과 공교육을 시켜왔습니다. 모든 교훈과 훈계도 이 차원에 준해서 실시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말씀까지 이 법칙에 준해서 해석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 체제는 용서체제의 원수입니다.

마태복음 8:11-12에 보면,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소위 '나라의 본 자손'들이 쫓겨나야 비로소 참되게 예수님의 용서체제 안에 있는 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 작업을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입장에서는 뭐든지 선악체제로 이해하기 때문에, 현 율법 준수 이외에 다른 용서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병고침은 약령이 저질른 일어야지만 앞 뒤 논리가 맞다는 겁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결정적으로 그들의 악마성을 들추어내는 논리를 준비하셨습니다. 선악체제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발언을 하시는 겁니다. 즉 이 땅에서의 사건은 그 원인에 의해서 생긴 결과들입니다. 원인없이는 절대로 못일어나는 결과들입니다.

이 말은, 하나의 결과는 오직 하나이 전 단계의 원인이 있을 뿐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결과는 하나인데 그 결과를 낳게 하는 바로 전 단계의 원인은 결코 둘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자들에게 의도적으로 헷깔리게 하십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추방하는 일에 대한 원인을 둘도 나누고 계신 것입니다. 과연 성령님이 하신 일까요 아니면 인자 되시는 예수님 자신이 하신 일일까요? 둘 중의 하나를 찝어야 할 판입니다.

'인자'란 다니엘 7장에 의하면 하늘에서 나타나시는 심판주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심판주가 선악체제와는 다른 오직 '용서하심'이라는 방식으로 심판 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한 사태입니다.

왜 인자되시는 분이 이렇게 오셔야 합니까? 그것은 이사야 53:1-4에 의하면 인자되시는 분은 아무도 이해 못하는 못하는 식으로 오셔야지만 말씀이 완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인자의 이러한 고난성과 이해불가성은 모두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그것을 용서하시겠다는 차원의 완성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따라서 인자를 지금 이 시대에서 못알아보는 자는 용서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성령님이 오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가 최종적으로 다 드러난 시기입니다. 따라서 그런 시기에 성령이 하시는 일을 막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즉 예수님이 보시는 죄란,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를 시시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 대신 선악체제에 의한 자기 정당성과 의로움을 그대로 유지하는 자가 지옥하는 식의 심판입니다.

이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당함에 속아넘어서는 아니됩니다. 자신의 욕망의 교통정리를 정당화 하는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해서는 아니됩니다. 모든 기초는 무너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용서의 세계 안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싸움을 우리도 하게 하옵소서. 죄인을 무조건 용서하시는 그 사랑만이 감사하고 즐거워하면서 지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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