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사상
출애굽기 사상
이름 : 이진용(IP:222.99.120.158)
출 애 굽 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등장함으로써 시작되는 출애굽기는 언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어떤 평가와 처벌을 받는가를 보여주며 이스라엘 민족의 건짐이 결코 이스라엘 자신의 의로움의 대가가 아니라 선조에게 하신 언약의 실현과정의 일부임을 나타내어 준다. 하나님의 건짐 또는 하나님의 구원을 인간들이나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들의 현 관점에서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는 출애굽기 전체에서 큰 주제거리로 부각된다.
언약에 대한 몰이해는 애굽 사람뿐 아니라 이스라엘 자체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레위 지파인 모세와 아론까지도 말이다. 이런 점에서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12아들들에게 행한 예언은 의미심장한데 좋은 운명을 예고 받았든 나쁜 운명을 부여 받았든 간에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온당치 못한 존재들이며 다만 거기와 대조적으로 언약의 하나님만이 한없이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예언인 것이다.
이제 이점을 실제로 역사 안에서 검증을 하게 된다. 동시에 언약이 과연 무엇인가를 역사 안에 있는 나라들에게 알려 주게 된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으로 인해 종 노릇하게 된 히브리 민족은 종이라는 신분이 언약 안에서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언약의 민족이 꼭 종 된 자들의 집합으로 규정될 타당성이 무엇인가? 민족의 정체성을 꼭 그것으로 고정시켜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삶의 정황에서의 해방과 구원이란 역사 안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게 되는가? 라는 점들이 파악되어야 한다. 언약의 민족이란 단순히 그들이 언약을 가지고 있다가 아니라 언약이 그들을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약이 역사 안에서 표현하고 싶은 바를 그들의 실존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이라는 신분은, 또는 종처럼 대우 받는다는 것은 이미 앞선 언약의 내용 가운데 그런 비운(悲運)의 처지에서 비로소 언약이 구현된 사실이 있음을 말해주며 그것이 이제는 개인단위가 아니라 민족단위로 이루어진다는데 차이를 두고 있을 뿐이다. 요셉을 제대로 알던 바로왕은 종의 위치에 있는 요셉을 치리 자의 위치까지 상승시켰지만 요셉의 가치를 모르는 왕이라면 당연히 그 전의 위치로 되돌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풀리는데 노예와 죄인의 위치에서 통치자와 主의 위치로 옮겨질 때 옮길 수 있는 언약적 근거와 정당성이 바로 이스라엘에게 있어 구원의 근거와 정당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게 된 것은 하나님 때문이다. 이점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이것만큼 중요하면서도 무시당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요셉 개인의 자질이 아니라 요셉을 내세운 하나님이 그를 主의 자리에 앉혔다면 왜 그를 主가 되게 했는지는 이제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의 체험 속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 15:13-21 에 나오는 내용에 의하면 애굽의 430년 간의 체류는 가나안 땅에 죄악이 관영 할 때까지의 기간인 동시에 그들을 징벌할 적절한 구실이 있는 민족의 팽창도 아울러 고려한 기간이다. 죄를 징벌할 만큼 의로운 민족이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권이지만 하나님은 죄라는 규정을 하나님 자신에 대한 도전과 공략으로 간주하시기 때문에( 창세기 3:4, 14) 하나님 자신이 선택하고 내세운 언약의 민족에 대한 학대와 무시가 곧 저주를 내릴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창세기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요셉은 야곱의 12지파가 꼭 하나님의 언약의 민족임을 자기 시체의 이동을 걸고 확신했다(창세기 50:25 여호수아 24:32).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오해하여 나선 자가 있으니 바로 레위지파의 모세이다. 그의 구원 관은 억압 받는 자가 억압하는 자에 대한 분노에서 나온 항거의식의 발로에 불과하다. 이러한 해방의식은 창세기 34장에 나오는 사건의 재판으로서 무력에 의한 해방은 언약 자체가 무력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창세기 32장의 얍복강 사건)이 입장과 충돌된다.
폭력으로부터의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구출이 구원이라는 언약의 성격과 일치되지 않을 때는 설사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손치더라도 야곱의 공동체이지 이스라엘은 아닌 것이다. 동시에 여호와와 상관없는 단체가 되고 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