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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23장-24장 주석자유게시판창세기

창세기 23장-24장 주석

이름 : 이진용(IP:222.99.120.160)

창세기 23장-24장

죽음의 땅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약속밖에 없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나 늘 인간은 자기 위주이다. 사람은 감정에 의해서 살아간다. 인간은 몸에 의해서 정신이 움직여지는 것이다. 이웃 사랑은 자기가 배불러야 한다.

아브라함의 아내가 그곳에서 죽는다. 이것을 기회로 하여 아브라함은 그곳을 영원한 약속의 터전으로 삼고자 한다. 더 이상 이 지역에서 나그네로 머물 수 없다. 사라의 죽은 시체를 본토 아비 집에 묻을 생각을 아브라함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곳, 여기에서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그 분이 나타나 약속의 자녀들에게 부활의 기쁨을 안겨 줄 때까지 아내의 매장지를 구하는 일에 대하여 그 곳 주민들이 우호적이다.

이미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벌어진 일에 대하여 그들이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냥 매장지를 주겠다는 호의를 거절하고 기어이 값을 주고 그 매장지를 구입한다. 이는 비 언약적 자손이 무상으로 약속형성에 개입하는 경우를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정당한 값을 치르고 이루어진 그 이후의 소유권 주장은 합법적인 것이며 법을 앞세우는 그들에게도 할 말이 있는 것이다. 세상으로부터의 유입은 그 어떤 것이라도 희생을 치르지 않고 약속 안으로 들어 올 수 없는 것이 약속이 지닌 특색이기도 하다.

사라는 죽음의 땅에 묻힌다. 죽음의 땅이지만 장차 약속이 이 땅에 서게 될 것이리라. 누군가가 나타나는 땅이다. 요셉도 시체를 철수하여 약속의 땅으로 온다. 약속대로 해골이 이곳이 묻혔다. 부활의 기쁨이다. 이삭에게 나타난 그 현상이 나(아브라함)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삭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그 약속을 믿는 사람에게도 이삭과 같은 부활의 경험을 누구에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삭이 죽을뻔한 경험에서 살아 난 것은 소생이다. 그래서 이삭도 예수님을 기다려야 한다. 나사로의 경험도 소생이다.

대속의 원리는 약속의 핵심에 속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아브라함은 그 지역 사람을 취하여 가계를 형성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본토 아비 집에 있는 자신의 혈족을 이곳으로 불러 모아 약속의 자손을 만들려고 한다. 그것은 약속의 민족은 아브라함 자신이 겪은 인생의 과정을 반복 답습시킴으로써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약속에 포함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불러 내었던 것처럼 이제는 자신이 복의 근원의 자격으로 그들을 불러 약속에 참여 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 친족들도 믿음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시도에 대해 하나님이 반드시 도와 줄 것이라고 여겼다.

아브라함은 앞으로의 세계 역사는 자신에게 내린 하나님의 언약대로 이루어 지는 것에 조금도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 법칙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자나 자기가 보낸 자를 선대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이 복 내려 주려고 예약된 사람으로 간주해도 좋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아브라함의 종은 며느리 감을 구하면서 이 원리를 써먹고 있다. 이 처녀 가운데 내가 물을 구하였을 때 물을 제공할 수 있는 그 처녀가 바로 며느리감으로 확정해 버린다. 이렇게 하여 얻은 며느리가 리브가였다. 이 처녀의 앞으로의 운명은 아브라함 언약에 준해서 수행될 것이다. 사라에게 일어 났던 일은 이제 이 처녀에게도 적절한 형태로 주어진다. 그들은 시집가는 누이 동생에게 다음과 같은 축복을 했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 원수란 말은 이러한 천만인의 어미가 되는 축복을 방해하는 세력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너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 큰 민족을 이루는 어미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축복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리브가는 사라가 일생을 살고 간 그 장막에 다시 들어 가는 것이다. 즉 리브가가 사라의 약속에 참여 되는 것이다.

태의 열림과 많은 자손은 곧 하늘의 복의 결과로 주어 지는 것이며, 반면에 태가 열리지 않고 멸절 당하는 가문은 하늘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이해하던 그 시대에 있어 복의 근원이라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들어간 리브가에게 이런 요구(24:60)를 한 라반의 소원은 당연한 것이다.

리브가의 선택은 인간의 잘남이 아니다. 리브가는 불임 여성으로서 사라의 연속성을 갖는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연장이다. 모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씨 핏줄의 연장이다. 하나님이 새로운 핏줄인 아브라함 자손의 핏줄과 기존의 아담의 핏줄이 서로 견제하면서 나란히 가도록 하는 것이다. 에서가 아니고 야곱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약속은 뭔가 단절되었을 때에 일어난다. 리브가가 천만인의 어미가 되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하다. 단절을 의미한다. 인간의 힘이 끊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아신다. 그래서 그녀는 불임여성이다. 인간이 손을 땠다는 것이다. 오병이어, 젖먹이, 소년 다윗의 물매 돌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자 굴에 들어갔다는 것은 우리를 살려주는 분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불 속에 들어갔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를 믿으라 는 것은 예수 믿으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 시켜주는 것은 내가 아니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를 사랑하느냐를 믿고 계신다. 경건의 훈련이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것뿐이다.

23:1-9

아브라함은 우리와 똑같이 실제로 이 세상을 사셨던 분이다. 아내인 사라가 죽었다. 이 사실에서 두 가지의 힘을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그는 그 동안 나그네 인생을 살아오면서 세상이 안겨다 주는 세속적인 힘을 느꼈다. 실제로 현실 속에 있으면 눈에 보이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곧 각자 쥐고 있는 소유의 힘이다. 소유한 것만큼 힘을 발휘하는 세계이다. 이 속에 신앙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이 우리와 같은 처지와 신분으로서 살고 있다. 그는 평생 이 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늘 이방인의 지역에서 평생을 보내야 될 팔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아내 사라가 죽고 난 뒤는 전혀 또 다른 힘을 느껴야 했다. 죽음의 힘이다. 본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죽음이 찾아 든다. 큰 힘으로 말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슬퍼하며 애통한다'고 되어 있다.

아브라함도 소유에 나선다. 4절과 9절에 내 소유지로서 된 매장지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제안에 대해서 현지인들은 당신의 죽은 아내의 시신은 현재 우리가 장만해 놓은 공동묘지 터에서 얼마든지 골라 잡아 쓰시되 돈은 지불하지 않더라도 좋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이들에게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자기 소유의 매장지를 따로 장만하려고 했다. 아브라함이 세속적인 힘만 의식했다면 그들이 시키는 대로 그들의 공동묘지를 활용했을 것이다. 죽음의 힘은 의식하지 않고서 말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의 의식 자체를 따르지 않았다. 그들의 소유의 힘과 전혀 다른 힘이 작용하는 아브라함 만의 세계로 펼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을 사라의 시신이 묻히는 것부터 시작 한다. 사라가 묻히는 곳에 아브라함 본인부터 자자손손 같이 묻히기를 아브라함은 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죽음의 힘의 현실과 소유의 힘이 작용하는 이 현실 세계를 모두 넘어서고자 한 것이다.

히브리서 11:11에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다'고 되어 있다. 태가 이미 죽었으나 그 죽음 속에서 죽음을 극복하는 생명의 힘이 다시 주어졌다고 말씀하신다. 12절에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라는 말씀이 나온다. 분명 죽어서 그 뒤에 결코 나타날 자들이 없어야 하는데 무려 하늘의 별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은 씨들이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죽음을 극복한 그 생명의 힘이 낳은 열매들이다.

그렇다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 뛰게 하는 힘은 바로 약속이다. 약속을 믿는 자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사라는 이 생명의 힘을 하나님의 스스로의 약속 수행 과정에서 얻게 되었고 그 결과로 죽은 자와 같았던 가계가 하늘의 별 같은 많은 생명체로 새로 출현 시켰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 즉 이삭과 야곱과 요셉 같은 사람은 다 죽음을 극복한 씨들이다. 이러한 생명의 씨의 시작이 바로 사라로부터 일어난다. 창세기 25:8-10에 아브라함도 아내 사라가 먼저 묻혀있던 그 막벨라 굴에 죽음으로서 합류한다.

성경에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 즉 '구원의 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그런 막벨라 굴을 자기 소유로 영구히 삼음으로 이 세상 한 가운데 생명의 세계가 존재함을 증거 하려 했다. 물론 아브라함은 그 이후에 이 세상에서 나그네 생활을 청산한 것은 아니다.

히브리서 11:13-16에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은 더 나은 본향, 하나님께서 친히 장만해 놓은 성에서 만나고 있다. 세상의 힘이 좋다한들 죽음 아래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더 나은 현실 세계를 바라 보며 살아야 할 것이다.

24:1-9

아브라함은 모든 생활에 있어 그저 편리한대로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려준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원칙을 본문에서 '하나님의 맹세' 라고 한다. '하나님의 맹세' 가 있기에 그 맹세를 의식하면서 모든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그 맹세를 지켜서 구원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맹세가 도리어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인도한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6:13-16에 하나님의 약속을 지킬 위인이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자기에게 맹세해 놓고서 그 맹세 한 대로만 일하시고 그 밖으로는 절대로 일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7절에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아버지 땅에 잘 살고 있던 아브라함 자신을 이곳 가나안 땅까지 이끌어낸 것은 순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자기 맹세의 위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맹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 22:16-18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쳐놓고 보니 모든 지시의 바탕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맹세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 맹세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후손이 받은 복은 아브라함 자신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씨로 인하여 주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이 맹세에 따라야 될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적 아무 며느리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며느리의 요건은 바로 약속의 씨의 출발을 아브라함 자기 자신에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부인이었던 사라에게 둔다. 왜냐하면 사라의 죽은 태에서 약속된 산 씨인 이삭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맹세의 씨가 되는 위인도 사라 같은 며느리를 통해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맹세로 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단지 아브라함의 아이디어가 아닌 것은 본문에 보면, 며느리 찾기 작업에 하나님의 사자가 친히 인도한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결코 아브라함의 소원이나 듣고 아브라함의 한이나 풀어주는 분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에 의해서 파견된 분이기에 하나님의 맹세만을 고집하는 천사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고자 하는 일은 아브라함 개인의 취향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확정된 뜻에 따라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바로 여호와의 맹세에 의해서 인도 받는 여인만이 약속의 씨를 배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사라처럼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작용해서 사라는 죽은 태에서 산 생명을 잉태했고, 나중에 그 아이가 커서, 죽을 자리에서 도로 살아났다.

이런 여호와 맹세의 위력이 없고서는 결코 약속된 씨라고 말 할 수 없다. 만약 아브라함에게 전에 자기가 살던 본토 아비 집의 신에 머물러 있다면 그가 보여주는 씨라는 것은 기껏 해서 아스마엘이나 자기 종인 엘리에셀을 내세우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들은 약속의 씨가 될 수 없다. 맹세가 낳은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자신이 맹세한 대로만 일하시고 그 밖으로는 일하시지 않으신다. 아브라함은 이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씨는 예수님이다. 모든 축복이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짐이 확정되었음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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