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8:1-6 / 단 지파의 횡포
단 지파의 횡포 2008년 6월 15일 본문 말씀: 사사기 18:1-6 (삿 18: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삿 18: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자기 온 가족 중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삿 18:3) 『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삿 18: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빙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삿 18: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이 세상에는 악도 자라납니다.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이 무성한 악 속에 우리가 태어났고 그 지배를 받습니다. 성경에서 어떤 나쁜 경우를 말씀하시거든 꼭 우리 자신들보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악이 범람해도 우리는 그것이 악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악을 욕하거나 비난할 입장에 있지 않고 도리어 인간이란 악이냐 선이냐를 따지는 것이 ‘나의 생존에 유리함’이 곧 나에게 뭐가 되었던 선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국가를 생각하기 보다는 인간들은 우선적으로 자기 처지만 생각합니다. 남들처럼 나도 생존에 급급합니다. 자기 처지만 골몰하게 생각하다보니 참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관심 돌릴 여유가 없습니다. 세상이 망해도 자신만 안 망하면 아무 탈이 없다고 여깁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대상이나 지금의 시대상이나 근본적으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에 대해서 심사숙고해 보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우리 내면을 찔려주십니다. 우리가 판정내리는 악이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악이 있다는 것이 더 큰 심각한 문제요 과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속의 악을 제대로 지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보니 항상 탓을 남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이 남들로부터 사기를 당하면 그냥 가만히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힘이 약한 자를 상대로 또 되갚아주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피해본 만큼 뭔가 보충이 되어야 자기 내부에 평형감이 유지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 지파는 어떤 의미에서 피해자일런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에게 모세에게 내린 약속대로 마땅히 받게 될 자기 지분의 땅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연유인지 적절한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떠돌게 되는 집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나라든 권력의 중심지에는 각종 쓸만한 정보들이 오고가게 마련입니다. 그 중 하나라도 걸리기만 하면 횡재하는 수가 생기는 법입니다. 일제 시대가 끝나고 일본사람들이 남기고 간 땅을 누가 먼저 차지하겠습니까? 그것은 행정기관에서 끝까지 남아서 일본사람들 밑에서 충성을 다 할 사람에게만 우선적으로 부동산의 정보다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소위 권력이 권력을 낳고 증폭되는 법입니다. 없는 자는 있는 것도 언젠가 남의 땅이 공산이 큽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으면 언제든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니 벌써, 저만큼 뒤처져있게 마련입니다. 남들처럼 따라잡아도 중간쯤하기 마련인데 남들이 눈독 들이는 정보에 어두우면 그만큼 있는 재산도 다 날아가는 수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좋든 싫든 치열한 정보전에 끼어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주류에서 밀려버린 단 지파는 자기네보다 더 힘이 없는 자들을 상대로 거의 도적질 하다시피 하면서 적당한 땅을 얻고자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좀 사는 집안이 미가 집에 들이닥친 것입니다. 처음에 다섯 명의 정탐꾼이 미가 고을에 찾아왔다가 레위지파에 속한 소년 제사장 하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에도 탐을 내었습니다. 그 소년 제사장에게 제안을 합니다. “너는 한 가정의 제사장 할래 아니면 한 지파의 제사장 할래”라고 말입니다. 말이 제안이지 실제로는 납치입니다. 이들 단 지파에게는 ‘이렇게 해서는 된다 아니된다’를 고려할 마음조차 없습니다. 그저 무슨 수단을 쓰던지 살아남는 것이 그들에게는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제사장에서 관심을 갖습니까? 종교라는 것이 그런 겁니다. 자기가 죄인됨을 알기 위해서 종교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까지 동원시키기 위해 종교를 갖는 겁니다. 단지파는 미가 가정에 사적인 제사장이 있다는 것에 탐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땅 뿐아니라 제사장까지 무조건 강탈하려고 했습니다. 당연히 미가 가정에서 반대했지만 완전 무장한 깡패 집단에 아뭇 소리없이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단지파는 이러한 횡포는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판단하는 차원이 아니라 단지 ‘내 욕망이 무엇을 원하고 있느냐’만 고려조건이 될 뿐입니다. 이 단지파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마음 속에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어쩌면 남들에게 당한 만큼 복수해주려는 심보는 아닌지요. 즉 ‘나라는 인간은 결코 이런 너절한 인생이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것은 뭔가 하나님의 실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바른 신앙생활을 하여 화려한 남의 여생으로 전환하겠다’는 심보가 아닌가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 제사장상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7:8에 보면,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된 제사장 앞에서 오직 ‘산 자냐’ 아니면 ‘죽은 자냐’라는 평가만 마련되어 있을 뿐입니다. 내 인생이 얼마나 걸레같은가 라는 것은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더러운 걸레보다 더 걸레같더라도 ‘산 자’가 되면 그런 것을 문제가 안됩니다. 반면에 아무리 화려하고 영광받으면서 살아도 ‘죽은 자’라고 소용없는 인생을 사신게 됩니다. 참된 제사장은 오늘날 목사가 아닙니다. 오직 ‘영원히 살아있는 제사장’은 예수님 뿐입니다. 인간 목사한테 아무리 아부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진정한 축복은 하늘에 계신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인간이 내리는 축복은 항상 부도수표이며 효력도 없이 남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오늘날 목사가 있어야 합니까? 그것은 진정한 제사장은 오직 하늘에 가 계신 예수님 뿐임을 말하기 위해 죽어가면서 외쳐야 하는 자들이 목사입니다. 즉 “저는 제사장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영원히 살아계신 제사장이십니다. 그 분의 희생을 여러분을 살려줍니다”라는 말을 외치기 위해서 목사가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에게 관심두는 목사는 세상이 만들어낸 거짓 목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모시는 곧 우리가 천사와 같은 ‘하나님 사람’임을 실감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34강-삿18장1-6(단지파의횡포)-jdg080615.mp3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34강-삿18장1-6(단지파의횡포)-jdg080615.wmv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사기-2007/34강-삿18장1-6(단지파의횡포)-jdg080615.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