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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야교회 이기 때문에 풀어버린 불뱀 2자유게시판디모데전서

광야교회 이기 때문에 풀어버린 불뱀 2

이름 : 김대식(IP:220.81.176.169)

광야교회 이기 때문에 풀어버린 불뱀 2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나타난 정죄함 없는 사귐의 사랑)

교회(성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두 세계를 몰고 다닌다.

마치 예수님이 항상 움직이시는 곳에서 두 세계가 나누어지듯이
예수님은 늘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을 그때 그때 창조하시면서 나누어 버리신다.

교회인 성도에게는 끊임없는 마귀의 유혹과 성령의 인치심이 쉼 없이 활동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실상으로 드러내는 사건을 몰고 다니고
눈에 보이는 것을 허상으로 드러내는 사건을 몰고 다니는
이 양쪽의 세계를 교회가 움직일 때 마다 드러내도록 되어 있다.

즉 이 양쪽 세계가 교회인 성도를 건드리지 않는
고정된 교회는 이미 죽은 가짜 교회이기에 백프로(100%) 교회 실내 장식인 인테리어에 정신팔려 버리듯
자기 꾸미기 또는 확장, 자기 챙기기 등등의 시험에 이미 빠져 고정되고 딱딱한 소금기둥으로 변한 모습이다.

교회란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들이다.
무엇으로부터 탈출하여 무엇으로 들어가는 자들이다.
탈출만 해도 소용 없다. 그 탈출한 몸을 다시 버리고 새로운 몸으로 교체 당해야 한다.

그것을 보도록 동원되는 것이 불뱀이다.
사단의 가시다.

은혜가 무엇인가? 곧 창조가 무엇인가?
유대인들의 신앙은 그야 말로 창조의 신앙의 원조이며 창조믿음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형성되지 않는 자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은 단 한번도 창조를 믿은 적이 없다.

즉 은혜가 무엇인지 가장 모르는 자들의 대표자들이다. (오늘날 자칭 교회와 똑같다)

(고후 12:1, 개역)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고후 12:2, 개역)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3, 개역)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4, 개역)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후 12:5, 개역)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고후 12:6, 개역)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고후 12:7, 개역)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12:8, 개역)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고후 12:9, 개역)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10, 개역)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11, 개역)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에게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고후 12:12, 개역)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딤전 1:15, 개역)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고전 10:13, 개역)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후 1:18, 개역)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오늘날 교회라고 불리우고 교회를 세우는 자들에게서 창조 곧 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쩜 그리 유대인들과 똑같이 단 한번도 창조를 믿음 조차 없으면서 오히려 더욱더 극성 스럽게 창조에 대해서 운운하고 떠벌리는 자들이다.

가장 창조를 거부하는 자들이 가장 창조를 선전하는 셈이다.
그것도 가짜 창조 만을 골라 골라서 퍼트린다.

참 창조와 참된 은혜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과연 창조는 무엇인가? 은혜란 무엇인가?

그것은 광야 교회에게 물어보면 된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광야 교회란 스데반 집사님이 언급한 광야교회이다. 오늘날 교회 간판 이름을 광야 교회라고 붙인 사업장이 많은데 아마 광야교회를 가장 거부하는 자들이 광야교회 간판을 붙여서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는 폭력성을 겉으로는 가장 교묘하게 감추인 모습일 것이다.)

광야 교회는 어쩔 수 없이 두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과로 시험과 미쁘심이라는
창조로 나누어진 열매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선악의 열매는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지만
생명나무의 열매는 싫어버린바 되고 아무도 찾지 않는 거부감만 있을 뿐이다.

광야교회가 우리에게 그 속내를 드러내는데 있어서 두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바로
시험과 미쁘심 이다.

시험이란 광야교회가 받은 것이 아니다.
시험은 광야교회를 인도하는 여호와 하나님께 늘 행해졌다.
광야교회는 늘 하나님을 시험했다.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을 시험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고
가장 먼저 해야 하실 일은
바로 모든 인간을 시험케 즉 자기 챙기기 밖에 모르는 괴물이 된
그 내막을 끄집어 내는 미쁘심의 작업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는 일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 했듯이
광야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 했다.

그래서 시험과 미쁘심은 마치 육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의 양보할 수 없는 싸움으로 드러난다.

여호와 하나님은 단 한번도 광야교회를 시험하신적이 없다.
그러나 광야교회야 말로 (세상이나 애굽나라가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시험한다.

유대인 만이 예수님에게 너 자신을 구원하는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기적을 보여주면
너야 말로 우리들의 메시야요 참 하나님이기에 제대로 믿어주겠다고 시험한다.

인간의 믿음이란 곧 시험이다.
찔러보고 익었는지 덜 익었는지 따져볼 것 따져보고 모든 검증을 거쳐서 믿어주겠다는 결과물 획득인 것이다.

결국 절대 손해 보는 짖을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다짐이요 결심이다.
인간의 결심이 믿음이 되어버렸다.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믿음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믿음이 되시는 예수님은 미쁘시다.
얼마나 믿음 직스러웠으면
제대로 밟혀 버림을 당하신다.

인간의 믿음인 시험(자기 우상 찾기= 자기를 위하여)을 하는 그 시험에
제대로 밟히고 발가벗겨지고 더 이상의 수치를 가리울 것이 없이
모든 것 즉 몸의 껍데기 벗겨지듯이
인간들의 믿음에 시험당하며 자기를 위한 수치 가리우기의 강박과 집착이
도리어 예수님의 모든 실체를 발가벗겨버리는
남을 꺽음으로 자신의 수치를 더욱더 가리우는 거룩한 옷의 집착으로 인해
자신들의 모든 믿음을 퍼붓는다. 곧 시험이다.

그 시험을 피해서 패쓰 옮기우고프나 마음껏 시험당하고 유린 당한다.
얼마나 미쁘신지 세상에 이렇게 제대로 밟혀버린 미쁘심이 없을 정도다.
미래완료적으로 더 이상의 이런 밟혀짐이 없을 정도로 미흡함 없는 미쁘심이다.

미쁘심 = 너무 너무 믿음직 스러운

즉 십자가야 말로 미쁘심이다. 사랑이다.
우리가 제대로 예수님을 싫어했다는 증거이다.
부정 못할 빼도박도 못한
광야교회가 제대로 구원자 여호와를 시험했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불뱀을 쳐다보라는 것이다.

그 믿음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의 믿음인 시험과 예수님이 장대 높이 달린 십자가 저주의 제대로 밟힌 미쁘심의 만남이다.

우상과 실상(약속)의 만남이다.

인간은 오늘도 예수님에게 시험한다.
나를 위한 예수님이 되어 달라고

그런 감추어진 속내를 인간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낼 리가 없다.
그래서 마련된 것이 교회다. 광야교회이다.

광야교회란 자연스럽다. 인공적이지 않은 그야말로 미쁘신 피조물이다.
모든 더럽고 인위적인 인공물을 유감없이 토해버리도록 되어 있다.
그 자연스러움이란 죽음이다. 내어줌 이다.
광야교회란 결국 예수님의 피를 보기위함이지
광야교회가 또 피를 흉내내고 내어줌과 낮아짐을 따라하면 그것보다 더 위선적인게 없다.
그저 내어주심 앞에 내어줌을 당할 뿐이며 낮추심 앞에 낮추심을 당할 뿐이다.

미쁘신 여호와 하나님은 광야교회 속에 있는 괴물을 하나 하나씩 끄집어 내신다.
얼마나 미쁘셨으면 제대로 밟아버리니 허걱 하고 뭔가가 튀어나온다.

물 없는 곳으로 인도 하니 물 없다고 원망하며 괴물이 튀어나온다.
양식 없는 곳으로 인도 하니 양식 없다고 원망하며 괴물이 튀어나온다.
고기 없는 곳으로 인도하니 고기 없다고 원망하며 괴물이 튀어나온다.

마치 환자가 불치병으로 괴로워 하는 아픔을 외면한채 미쁘시게 쭉쭉 찢고 푹푹 짤라낸다.
의사는 환자를 상대하지 않고 오로지 병만을 상대로 하면서 암덩어리가 깊숙이 몸과 동질이 된 하나됨 그 속에서 기가막히게 가려내고 나누어 내듯이 말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감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증폭이다.
더더욱 이스라엘은 믿음을 포장한채로 더더욱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한다.
시험의 증폭이다.
그런 인간 속의 우상을 끄집어 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미쁘심 또한 더더욱 증폭적이다.
창조의 증폭이요 잉여의 증식이다.

아예 대 놓고 나를 시험해 보라 라고 하신다.
넉넉한 미쁘심이다. 넉넉하게 내어주시겠다는 것이다. 아예 몽땅 다 가져가라 라는 것이다.
챙기면 챙길수록 인간의 믿음은 삭제 당할 판국 뿐이며 거짓으로 드러날 뿐인 미쁘심만 증폭된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은 바로 미쁘심과 시험을 동시에 보여주는 그 순간에 창조된 잉여물이다.

그래서 미끼다.

미끼란 숨어있는 두 세계를 드러내는데 이용되는 도구이다.

시험하는 자인 마귀(그냥 마귀가 아닌 선악의 법을 쥔 법으로 송사자)와
미쁘신 예수님의 정죄함이 없는 십자가(죄인에게만 뿌려지는 죄사함의 피)

그래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 걸려들어야만 한다.
창조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두 나무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나누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우리는 장대 높이 달린 인자 만을 쳐다보기 위해 태어났다.
또 인자 만을 드러내기 위해서 죽어야만 한다.

살든지 죽든지 말이다.

그런데 인간의 믿음은 그것 마저도 인위적으로 쥐어짜낼 뿐이다.

가장 미쁘신 방법이 뭘까?

그렇다 이제야 말귀를 알아먹을 정도로 우리는 어리석다.

불뱀을 풀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시험했기에 풀어버리는 불뱀이 아니다.

시험을 통해서 미쁘심을 보도록 하기 위한 창세전의 노선이다.
선악나무의 내막을 모르고서는 생명나무를 알 길이 없다. 차이성이다.

율법을 모르고서는 율법 외의 한 의를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또 인위적으로 어두움을 알아야 빛을 알기에 어두운 짖을 새로 할 필요가 없다.
원래 지금까지 쭈욱 어두운 짖만 해 온 우리다.
지금까지 성질대로 살아 와 놓구선 뭐 새롭게 성질대로 살겠다는 다짐 또한 타인의 욕망에 따라 자신을 가리우는 그야말로 인위적인 것이다. 자연스럽다는 의미가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어두움이 믿음이라는 좋은 의미로 포장 되어 왔고
착하고 선한 마음으로 실천하고 행동해 왔다고 자부했던 그 마음이 어두움 이였다.
따로 새삼스럽게 어두운 짖 할 필요 없다.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의도적으로 지을 필요가 없듯이)

차이성으로 말씀이 알려주시는 빛 앞에서 차이나는 자아를 발견하면 된다.
예수님과 비교하면 된다. 인간과 인간 끼리의 비교는 아무 의미 없다.

빛은 늘 하루 하루 새롭게 비추어 진다.
그 빛에 의해 눈 뜨게 되는 하루이고
그 빛에 의해 광야교회처럼 늘 자기를 챙기는 시험에 빠지게 된다.
자기를 볼 수 없는 어두움 속에서가 아닌
빛이 훤하게 비추어 주시는 그 속에서 자신이 시험에 빠져 허덕이는
자기 챙기기에 몰두하는 광야 속에서의 들추임 당하는 괴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추시는 것이다. 낮추실려고, 목이 곧은 백성임을 비로소 알게 하실려고,
목이 곧은 백성이 안될려고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미리 낮추면 낮출수록 더욱더 뻣뻣한 목으로만 곧아질 뿐이다.
더욱더 인위적이고 위선적일 뿐이다.

그냥 내어주면 된다. 주님이 마음껏 미끼로 삼아서 발가벗기시든 삶아먹든 뽁아먹든
마음대로 하시도록 말이다.
그러나 격렬한 저항을 보고서 사적인 개인 속의 괴물이 아닌
집단 속에서 군대 마귀가 어떻게 포진해 있는지를 보도록 광야교회를 삼으신 것이다.

교회야 말로 마귀를 보여주는 유일한 곳이다. 그곳에 긍휼히 여김이 있기 때문이다.
광야교회야 말로 집단 시험에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이 미쁘시게 당하는지를 보는 유일한 곳이다.
[영문 밖에서 (히 13:11, 개역)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히 13:12, 개역)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3, 개역)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바로 그 원수된 광야교회와 미쁘심의 만남이다.

헌 몸의 종착으로써, 새 몸의 출발지인

십자가에 못 박힐 광야교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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