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유주의 신학의 본질
지유주의 신학의 본질
이름 : 이근호(IP:117.55.141.96)
칼 바르트 및 판넨베르그 및 정용섭 류들이 주장하는 흔히 자유주의 사상의 특징은
1. "성경에 오류가 있다"
즉 성경을 전적으로 믿지 말라. 오류 투성이다. 솔직한 것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바른 태도다. 성경에 오류가 있는 이유는, 역사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조립된 책을 신주단지처럼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특정 사물(책)을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상숭배에 해당된다. 성경을 보되 이성적으로 따져서 보아라. 무턱대로 성경을 신앙하지 말라. 우리의 신앙 대상은 예수님이지 결코 성경책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성경은 어디까지나 참고 대상일 뿐이다.
2. "역사는 우리 손으로 뒤집어야 한다"
나쁜 역사는 방치하면 안된다. 우리 손으로 뒤집어야 한다. 그것이 신자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다. 나쁜 교회는 뒤집어야 하고, 나쁜 기독교도 뒤집어야 한다. 지난 온 교회 역사의 모든 것은 이렇듯 뒤집고, 또 뒤집고, 또 뒤집어온 투쟁의 산물들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신자가 해야될 일은 이 역사를 보다 진리에 가까운 쪽으로 뒤집어야 한다.
그냥 이 역사를 방치하고 혼자서 천당가려고 해서는 안된다.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악을 용납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일하시지 결코 인간을 비켜가서 일하지는 않는다. 인간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라. 새로 거듭난 '새 피조물'들은 얼마든지, 마음껏 긍정해도 괜찮다. 혼자서 "죄인, 죄인' 한다고 해서 세상은 변화되지 않는다.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처럼 세상을 뒤집는 능력자가 되자!
3. 십자가는 이제 잊어버려라. 부활의 시대다!
부활의 시대의 특징은 무한한 능력에 있다. 죄를 이기고, 악을 이기고, 죽음조차 무서워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능력이 부활의 능력이다. 마음껏 써먹자. 이 부활의 능력을!
이들 주장의 문제점
1.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하는 그 이성적 무오류성은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나온 건방짐인가? 차라리 이렇게 해야 옳다. "나는 아무 것도 못믿겠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나의 판단뿐이다" 그렇다면 바로 본인이 내놓은 하나님, 예수님, 계시 개념만이 만을 믿기에 결국 자기 자신만이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신앙 대상이 된다.
이러한 신앙적 겸손의 티를 박살내는 것은 십자가 사건 뿐이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내가 죽고 네가 죽고 예수님은 택한 죄인을 대신하여 죽고,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죽어야 할 죄인이기 때문이다.
2. 이처럼 자신이 이미 죽은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이는 골로새서 3:1-4에 나오는 말씀과는 정반대가 된다 본인이 살아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여기서 '자기 만의 역사', '나 만의 둥지', '나만의 공간'이 따로 조립이 되고 따로 정립이 된다. 일반인들 같으면 자기 사업체, 자기 직장이 되고,주부 같으면 나만의 가정이 되고, 목사 같으면 나만의 교회가 된다. 이 역사는 지금까지의 세상 모든 흐름과 역사와 변화를 자기 중심의 가치를 살려주는 변화로 다 모아들이게 된다.
그러니까 "역사를 좋게 뒤집자"라는 말은 "내가 만들고 내가 소속된 나의 영광을 챙길 수 있는 역사를 완전한 역사로 만들어내겠다"는 주장에 불과하다. 내 가정의 역사, 내가 소속된 교단(예를 들면 십자가 마을 같은 것)의 역사, 내 교회의 역사 (예를 들면 우리교회 같은 것), 내 인생의 역사가 정당화되는 역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상숭배의 역사를 박살내는 것도 역시 십자가 사건 뿐이다. 십자가 사건에서 우리는 날마다 죽음에 넘기게 되고, 이미 죽어버린 우리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우리 자랑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 자랑과 공로 뿐이다.(고후 4:11)
3. 부활의 능력은 곧 성령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을 날마다 우리를 죄를 말씀으로 들추어내는 능력인 것을 모른다. 그래서 자유쥬의자들은 행여 자신이 죄인으로 들통날까봐 성경보다는 뉴스와 사회변화에 치중한다. 반미운동 것에 매진한다. 왜냐하면 뉴스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규정하지 않는 반면에 성경은 자세히 보면 하나의 오점도 없이 말씀대로 살기에 영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의 신봉자들은 자신을 여전히 '의인'이라고 간주할 만한 구석을 향해 자꾸만 숨어들어가게 된다. 이는 곧 자기보다 못한 자들을 찾아다녀서 상대적으로 의인이 주는 느긋함으로 인생을 보낼려고 한다. "아무리 나를 비난해도 그래도 나는 괜찮은 존재야"라는 것을 늘 확인하는 가운데 아직도 세상을 살 보람을 갖고자 한다.
"비록 나는 부족해도 사회적으로 많은 개혁과 변화를 주도했고 가담했고 참여해서, 이만큼 사회를 살기좋은 세상으로 바꾸는데 기여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누구도 나에게 돌을 던지지 말라. 내 공로를 알아줘"라는 포부에 살 희망을 건다.
맨날 환상만을 키워대는 젊은 이들이 여기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고, 늙은 자유주의자들은 과거 젊을 때 투쟁한 것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이 십자가를 잊고자 하는 것은 곧 이제는 예수마저 귀찮고 짐스럽다는 주장이 오히려 솔직한 신앙 고백에 해당된다. 쉽게 말해서 "예수가 밥먹여주나"이다. 그렇다면 이들 생각에 누가 자신들에게 밥먹여주나? 그것은 이웃과 동료 뿐이다. 곧 사람이다. 예수님이 아니다. 하나님도 아니다.
서로가 죄인이라고 하지 말고 서로가 의인이라고 해서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이 곧 '신의 일'이 된다고 긍정하고 또 긍정하는 가운데 놀라운 힘이 생겨난다고 이들은 믿는다. 이 힘으로 투쟁이 나서는 것이다. 결국 이들이 내세우는 부활의 힘이란 '누구 인간 긍정 대열에 같이 합류해 주실 사람 없어요?"라고 회원 모집을 위한 구호가 된다.
이렇게 해서 이들에게는 '하나님 영광'을 빙자한 ' 자기 영광'이었음을 포기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들통난다.
왜 이들이 십자가를 싫어할까? 그것은 십자가 사건을 유발시킨 그 장본인들이 "예수야, 날 건드리 말고 그냥 곱게 죽여버려!" 라는 인간 자기 긍정 정신과 꼭 일치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도들이 무엇 때문에 죽음의 길을 갔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인간 긍정'을 위하여 모든 부정을 긍정으로 다 해석해버린다. 칼 바르트 신학이 그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했다. 십자가 피의 능력 말라고 저주받을 복음이라고! 그리고 십자가는 결코 인간 이성에서 알아챌 수 없는 거라고! 십자가는 그 안에서 늘 성도를 죽이고 또 죽이는 성령의 능력이 나온다고!
사도들이 이해하는 부활의 의미는 세상 전부를 "십자가 못 박하신"그 사실를 심판의 기준점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적용시켜서 끝내기 심판 감행하는 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사랑하면 우상숭배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곳에 없는 것이다.
결론
사람은 성과물을 고대하고 그리워한다. 보지 않고서는 못 믿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예수님에게 나온 신앙은 히브리서 11장의 선배들처럼 '보지 않고 믿는 것이요, 로마서 8장의 말씀처럼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님'을 아는 것이요, 사도 바울처럼 '위의 것을 보며' 사는 것이다.
목사의 성과물은 초짜 때는 '내 교회 갖기"다 왜냐하면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중심 센터로 자리잡기 위해서이다. 좀 컸다 싶으면,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변화라는 성과물을 보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건전한 것만 생각하는 이 몸은 왜 날마다 해체될까?" 그것은 세상을 멸망시킬 예수님께서 지금 내 몸을 파괴하면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그 연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만의 성과물은 인간이 예상하는 성과물과는 다르시기에 모든 공로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피흘리심에만 집중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인간이 예상하는 성과물은 파괴되어야 마땅하다.
피를 흘리지도 않으면서 내가 만든 단체가 번영하기를 기대하고 활성화되기를 기도하는 것도 우상숭배에 해당된다. 날마다 교회나 특정 단체를 부수시는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지 않는 교회나 단체는 그 자체가 우상이다.
김영완(IP:218.♡.131.90)
09-09-25 10:43
그의 주장 중에 독특한 부분이 하나 있더군요. 십자가 사건이 우연이라는 주장...
...
다시 우리의 관심을 십자가의 역사 문제로 돌리자. 예수의 십자가는 역사의 필연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만약 예수의 십자가가 그렇게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필연의 과정에 불과했다면 그것은 인류의 구원할만한 사건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일종의 역사 결정론은 성서와 기독교 신앙에서 말석도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역사 결정론에 사로잡혀 있다. 모든 게 하나님이 계획한 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기독교인들은 생각한다. 그런 걸 예정, 또는 섭리라고 부른다. 그러나 예정론과 섭리론은 역사 결정론과는 격을 달리한다.
내가 보기에 예수의 십자가는 역사의 우연이다. 여기서 우연이라는 말은 주사위처럼 여러 가능성 중에서 어쩌다 선택되었다는 게 아니라 역사를 열려진 사건으로 본다는 의미이다. 예수에게는 이미 출생부터 십자가가 결정된 게 아니라 열려져 있었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다. 기독교 신앙을 설명할 때 이런 게 좀 까다로운 부분이다. 원칙적으로는 예수의 십자가가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지만, 또한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서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그래서 인류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섭리가 바로 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지만 예수의 십자가가 이미 필연적으로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이 세상이 이런 필연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오히려 우연 안에서 하나님의 개입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는 게 바로 우연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행위이고 능력이다. 이런 우연의 개입으로 인해서 우리의 삶에는 긴장이 작동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에 마음을 열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
이근호(IP:117.♡.141.96)
09-09-25 10:49
'말씀대로 응했다'는 성경의 표현을 무시하는 주장이 됩니다. 왜 그들이 '말씀대로 응했다'를 거부하느냐 하면, 바로 그들이 주장하는 인간이 자유성이 말씀 안에서 보장받지 못하고 예속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역사인가 우연인가 하고 묻는다면 우연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란 인간이 조작해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필연인가 우연인가 묻는다면 필연이 맞습니다. 단, 인간이 알 수 없는, 인간의 능력으로 파악할 수 없는 필연이지요.
이종호(IP:124.♡.73.140)
09-09-25 12:19
바르트를 자유주의라고 하니 좀 황당합니다.
바르트는 자유주의자들의 파티에 폭탄을 던진사람이라고 하지않나요?
죄송하지만, 한국장로교출판사에서 1997년에 출판한 <자연신학>을 좀 서평해주세요.
1,'성경에 오류가 있다'
노아의 방주라든가. 삼층천이라는가, 베데스다 연못이라든가 이런 표현을 해석하는 차원이 아닐까요? 에덴동산의 뱀을 사탄으로 표현한것도 원죄를 나타나기 위한 종교적언어가 아닙니까?
2,'역사는 우리손으로 뒤집어야 한다.'
구원은 하나님손에 맡기고, 이땅에서 좀더 재미있게 살고싶은 인간의 몸부림정도로 받아드립니다.
3 '십자가는 잊어버려라, 부활의 시대다'
"no cross, no crown"
지나가는 똥개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부활은 십자가를 증거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의 이런평가가 세인들로부터 문자주의 내지는 초칼빈주의라는 지적을 받는 듯 합니다.
강구만(IP:118.♡.241.216)
09-09-25 13:48
이근호 목사가 십자가의 도만 전한다는 것은 복음은'내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도는 누구라도 주님께 받은것이 있고 또 그것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배우고, 깨우쳐서 내것이 될수 없는것이 복음 입니다. 사람이야기, 세상이야기(교회, 신학,등)그만하고, 예수님이야기,복음이야기 좀 합시다 제발. .
이근호(IP:59.♡.216.141)
09-09-25 18:13
이종호 목사님께서 이번에는 [자연신학]이라는 책을 서평하셔서 다른 분들에게 "칼바르트가 알고 있는 진리는 이것이다"는 점을 소개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물론 그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겠습니다. 이종호 목사님께서 어떤 관점에서 칼 바르트를 접근하시는지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저를 보고 세인들이 '문자주의'로 평한다는 것은 저를 비난하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화낼 표현입니다. 저를 '초칼빈주의'로 표현하는 것도 하는 것도 그들을 분노케 하는 칭송에 해당됩니다. 그들은 이종호 목사님께서 저를 문자주의와는 반대인 '영지주의자'로 증명해주기를 바라며, 칼빈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단으로 증명해주기를 학수고대하는 자들입니다.
김영완(IP:218.♡.24.79)
09-09-25 23:14
다니엘과 친구들의 사건처럼...
들어갈수도 밖으로 나갈수도 없는 사건...
그 사이에는 공기의 흐름조차 없슴니다.
오늘날 예수 안과 밖의 현실로 극멸하게 구분이 됨니다.
한 우물에서 단물과 쓴물이 나올수 없듯이
산자와 죽은자가 말이 통할수 없으며
죽었다가 다시 이땅에 와서 전도를 하더라도 통할수 없는 갈라짐 임니다.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않은 사람 아니 인간은 질문에서도 육적인
질문을 할수 밖에 없슴니다.
나의 믿음과 존재를 인정해 달라는 검니다...
내가 예수를 믿어 주는데 이렇게 나올수는 없다는 주장임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다는 말씀에는
근본적으로 달라짐...
인간이 완전히 질적으로 달라짐을 말씀하심니다.\
A에서 AB가 더해지는게 아니라 C 임니다.
설교 3편? 들어 볼것도 없슴니다.
이런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초등학문과 상관없이
살과 피...성령이라는 비밀로 성도들을 밀어 부치심니다.
이종호님의 칼바르트는 이것이다...하지만 이것이 맞슴니다...
그런 간증?을 학수고대 하며...
이종호(IP:124.♡.3.214)
09-09-26 10:15
넵, 알겠습니다.
혹부리 영감이 된 기분입니다.
<철학과 신학의 허상>을 참고삼아 숙제해보겠습니다.
김영완학생은 선수과목을 이수하고 오시기를, 마우스 내리기가 좀 그러네요~~~
김영완(IP:218.♡.24.79)
09-09-26 12:38
학생아니요...특유의 대구성서아카데미 말투가 나오는 구만...내공을 좀더 쌓아 오라?
이곳은 당신이 학생이라 부를 사람이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