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낚는 어부되자 (주객전도)
목사 낚는 어부되자 (주객전도)
이름 : 김대식(IP:124.59.85.46)
목사 낚는 어부되자
십자가를 위해 교회가 이용 당해야 할 것을
거꾸로 교회를 위해 십자가를 이용하겠다는 이 인간의 본성을
십자가는 반드시 들추어내어서 십자가만을 뽑아낸다.
여기에 목사님들 께서는 낙심을 하신다.
마치 부자청년 처럼 근심하고 등돌리고 뒤돌아서는 모습이다.
교회에 써 먹을려고 하다가 도리어 부정 당할 판국이니
결국 그 교회란 자신이 상상해 놓은 우상이였음을 지적 당하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부인을 못한다.
결국 교회란 자기 밥줄 용인 자아실현의 터 (꿈의 동산) 였을 뿐이다.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이유없이 미워하며 달려들기를 하겠는가? 아무도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 철벽수비의 바벨탑이니. 그 정도로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높아졌다는 식의 가식으로 비켜 갈 뿐이다. 차라리 무식했던 과거에 교회에 돌 던졌던 그 사람들이 오히려 그리워 질 정도로 정말 솔직한 모습이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과거의 시각에서는 교회를 핍박한다는 구실로 결집력을 추구하는 동기유발이 되었지만, 이제는 모두다 취미일 뿐이다. 문화센터가 꿈이다. 성경공부도 취미요, 예배도 찬양도 기도도 금요철야도 다 취미생활일 뿐이다. 말만 경건이지 경건도 취미다 권태로움 때우기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반드시 교회를 허물어 버리겠다고 하시고
다시 사흘만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인간들은 특히 목사들은 십자가가 싫다.
누가 자기 목숨까지 버려 가면서 십자가를 증거하겠는가?
그래서 그 대처방안이 자기 목숨을 교회를 위해서 버리는 모습으로 때운다.
오 요거 요거 먹혀 든다. 대박이 터진다.
바로 이 수법이 교회사 2천년을 뒤 덮은 것이다.
예수님과 십자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나 목사는 십자가가 아니라 교회이다. 성전이다.
뗄레야 뗄 수 없는 목사와 교회는 거의 일치성을 추구한다.
그래서 참으로 고맙게도 십자가에 가장 제대로 걸려드는 자들이 목사다.
누락되어야할 교회를 가장 애착있게 붙잡고 있으니
그 목사를 치면 그를 흉내내는 교인들은 자연스레 교회를 붙잡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멋진 본보기가 되는 가장 큰 월척이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로 증거하셨지 교회를 증거를 하지 않았을까?
더더욱 왜 목사는 교회로 증거하고 있지 십자가를 증거 못하는 것일까?
그 교회라는 장소에서 제물이 되는 어린양이 예수님이였지만
목사는 제물 된 적도 없이 그저 그 제물이 된 고기를 취한다는 것에 입맛만 다실 뿐이며
그저 주님의 공로를 늘 가로채는 짖만 했을 뿐임을
우리는 늘 보아 왔지 않은가?
결국 한 통속이였다. 그 고기 같이 입맛 다신 것이다.
주객전도
죄로 출발하지 않고
특히 목사들의 주장대로 교회로 출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십자가에 제대로 걸려 들었기에 십자가를 증거하는 부정적인 1등 공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 주어야만 할 것이다.
토기장이의 열심으로 진노의 그릇으로써 말이다.
(참 제사장 이나 목사? 죄 때문에 상대적으로 세워진 것이다. 죄가 없다면 있을 필요 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 듣는 듯이 거부반응이다. 이상하다.
은사? 왜 주셨을까? 겉사람을 후패케 하기 위한 용도이다. 그래서 속사람이 날로 새롭다. 이것도 처음듣는 소리인듯 거부반응이다.
그래서 신비롭다.)
목사에게 낚이지 말고, 목사를 도리어 낚는 가장 믿음 없는 자들인 목사에게 복음을 증거하자. 주객전도.
강구만(IP:118.♡.241.216)
09-09-24 11:44
"목사가 천국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가는 만큼 '절망' 이구나" 라고 아는 목사가 있다면 주께서 주신 '절망'인데 (어느 누구도 말씀 앞에 절망인 것은 같지요) 절망을 감사하는 목사님들 되시길 빕시다.
이미아(IP:115.♡.203.64)
09-09-24 12:09
과연 목사들이 복음을 받아 들일까요???
그것도 목사가 아닌 일반 평신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는데
목사들은 자기가 전한 복음(?)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자들 같습니다.
복음 그 자체의 능력이 발산 되었기에 바울은 약해졌고 두려워했고 심히 떨기까지 한 자로 소모되었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목사들은 목사를 위한 복음인지 복음을 위한 목사인지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소모품인지 영구품인지 말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
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
기로 작정 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1-5)
안종오(IP:121.♡.64.156)
09-09-25 09:10
좋은 글 감사 잘 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