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대구강의(피)07-광야에서선지자예언과마주침2
09대구강의(피)07-광야에서선지자예언과마주침2
이름 : 구득영(IP:203.223.97.161)
◈ 성도가 내세울 것은 오직 '약속' 밖에 !!
이 세상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을 서로 경계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성도는 약속과 약속이 아닌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도 저들과 너무나도 똑같은 인간이기에 말이다. 성격도 엄청 급하고, 고집도 나무나 세고, 또한 자기 것밖에 전혀 모르고 말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내세울 것은 오직 약속밖에 없는데, 즉 무엇을 해도 약속을 내세워서 해야만 하는데, 그런데 약속이 아닌 다른 것을 내세우게 되면, 그만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답답해지고 마는데, 그러니 약속을 제발 좀 내어놓으라는 것이다.
그러니 목사의 설교는 교회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직 약속만을 내세워야 하는데, 복음만 말이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엇이 겁나서 하나님의 약속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느냐는 말이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계속해서 교재를 살펴보자.
** 악마의 종들이 하는 일은 목적이 있다. 어떻게든 선택을 받은 자들로 하여금 천국으로부터 눈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자꾸 가짜를 생산하는 것이다. 가짜 사도, 가짜 교회, 가짜 천국, 가짜 십자가, 가짜 성화, 가짜 예수, 가짜 성령 등등, 이런 것들을 대규모로 유포를 시켜서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된 양 현혹을 시킨다.
◈ 외로워 외로워서 !!
마귀는 이렇게 가짜 명함을 마구 뿌리는데, 가짜 사도, 가짜 교회, 가짜 천국, 가짜 성화 등등을 자기 스스로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말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도에게 제일 힘든 것은 자로 자기와의 싸움인데, 왜냐하면 진짜로 복음을 전하게 되면, 그 상대방과는 지진이 일어나서 갈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 혼자 남게 되니 그만 외롭다는 것이다.
정낙원 목사님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번에 십자가 마을 수련회에 서울에 계신 목사님들이 몇 분 내려오신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너무나 외롭다는 것이다. 외로워서 참석을 한다는 말이다.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라는 노래도 있는데, 아마 문주란이 불렀지 싶은데, 아닌가요?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주목해주지 않은 내용을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권태로운 짓인가! 당장 땟거리가 없이 온 가족이 거리에 나가서 앉게 된 마당에 아직도 예수 타령이나 한다고 해서 현실이 속히 달라질 리는 없다. 그렇다면 복음이란 배부를 때나 복음이 아닌가?
◈ 찬양은 '나다나엘' 처럼 !!
십자가 마을 사이트에 조 장로님이 질문을 올린 것이 있는데, "찬양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해서, 아마 신학생들이 질문한 것을 장로님이 다시금 정리를 해서 올려놓았지 싶은데, 조 장로님이 요즘에 인터넷으로 신학교 강의를 하니까 말이다.
거기에 대한 제 답변이 무엇인고 하니, 나다나엘을 이야기했는데,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하면 되는데,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젊은 아이들이 자꾸 분위기에 휩쓸린다는 것이다. 박수도 쳐야되고, 소리도 질러야 하고 말이다.
그러니 나다나엘처럼 무화과나무 아래가 아니라, 그야말로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이라는 말이다. 어떤 경웅에는 마치 이승철의 리사이틀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에게 찬양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혼자서 하라고 하면 하지 않는데, 그러니 그것이 무슨 기도이고 찬양이냐는 것이다.
◈ '제임스 리' 목사를 기억하며 !!
'제임스 리' 목사가 자기 죽음을 앞두고 십자가 마을에 올린 글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복음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목사는 설교를 하면서 교인이 있던 없던 간에 자기 혼자 죽어야 하는데, 바로 그러한 '제임스 리' 목사의 글처럼 말이다. 즉 "나는 요럼시롬(요렇게?) 죽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여기 교재에서 "아무리 주목해주지 않은 내용을 혼자 중얼거리고, 당장에 땟거리가 없이 온 가족이 거리에 나가서 앉게 된 마당에" 라고 했는데, 그야말로 거지 나사로라는 것이다. 거지가 찬양을 한다고 해서 거지에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복음이라고 해도, 그것이 자기가 배가 부를 때, 그럴 때 말하는 그러한 복음이 아니냐는 것이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데, 목사가 되어서 교인이 없다고 삐쳐서 성경말씀도 전혀 보지 않고 말이다. 아니, 성경말씀을 보는 것과 교인이 있고 없고 하는 것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 목사가 말씀을 보지 않는다면?
그런데 목사가 되어서 교인이 없다고 성경말씀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그러면 그동안 성경말씀을 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러니 은근히 노리는 것이 바로 영업을 위해서, 교회장사를 하려고 말씀을 본 것에, 아니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마케팅 서적은 얼마든지 그렇게 봐도 되겠지만, 그러나 이 생명의 말씀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떤 목사는 돈까스 집을 해도, 그 바쁜 와중에서도 성경말씀을 매일 착실히 본다고 하는데 말이다. 물론 저의 일방적인 주장인데, 아마 이 부분을 녹취하면서 뜨끔할 수도 있지 싶은데 말이다. (돈까스 집 주인장 - 전혀 뜨끔하지 않습니다. 녹취를 하려면 성경을 보지 않으려고 해도 도저히 안 볼 수가 없습니다. 강의도중 말씀하신 것과 성경구절이 다른 것이 많아서 확인한다고 말입니다. ㅋㅋ)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사도행전 5장을 보면, 하루 동안 두 사람이 교회에서 죽어서 나간다. 돈의 일부를 감추어놓고서 헌금을 한 죄였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들은 사람을 속임이 아니라 성령님을 속였다" 라고 말이다. 성령님이 계시는 교회를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가볍고 만만하게 본 것이다. 당연히 사단의 역사이다. 주의 영을 시험한 것이다.
(행 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행 5: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행 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행 5: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 주여, 우리교회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되게 하소서 ??
여기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는 우리교회의 윤덕귀(?) 집사님의 기도가 생각하는데, 그분이 주일오후 예배시간에 뭐라고 기도했는고 하니, "주여, 우리교회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되게 하소서" 라고 했다는 말이다(ㅋㅋ).
그러니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사단이 주의 영을 시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지만 이렇게 시험해서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믿음은 전혀 시험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믿음은 말씀자체가 덮치는 것이지, 자기가 믿어주는 식이 아니기에 말이다. 자기가 측정하고 판단해서 말이다. 이것은 그냥 말씀이 덮치는 방식인데, 아까 말한 것처럼 "됐나? - 됐심더!" 라고 말이다.
◈ 됐나 - 됐심더 !!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 이삭을 바쳐라. 됐나? - 됐심더!" 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빵빵한 에어컨보다도 더 시원하다는 것이다. 얼마나 시원한지 속이 다 시릴 정도라는 말이다.
사랑이 임하게 되면 두려움이 없듯이, 그렇게 속이 시원한데 뭐가 겁이 나고 말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즉 "됐나? - 됐심더!" 라는 것이다. 자기 속에 괴물이 있는지 몰라도, 자기 속에서 "됐나? - 됐심더!" 라는 것이 자꾸 들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장에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자기는 모든 것이 예수 안에서 '노'가 아니라 '예스' 라는 것이다. 그러니 목회실패나 인생실패, 그런 것은 전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주를 받은 사람은 성공을 해도 그것이 독 실패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 자체가 실패한 한 토막에 불과하니 말이다.
(고후 1: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고후 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계속해서 교재를 살펴보자.
** 현대인들의 삶은 목적도 이유도 따지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부터 가볍게 다룬다. 그 버릇이 교회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농담과 가벼움으로 성령의 일하심을 테스트한다. 진지한 것은 오직 돈을 세는 떨리는 손 느낌뿐이다.
그러니 돈이 진지한 것이지, 성경말씀을 펴놓고는 자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진지해야 되는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성경말씀인데, 그것이 곧 생명인데,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쏟아 부어주시려고 성경말씀을 펴라고 하시는데, 그런데 목사가 헌금에 신경을 쓴다고 하면, 그 자체가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교회에서 성경책을 펴고 설교하는 자도 복음과 세상 멸망을 농으로 여기고, 그 밑에서 성경책을 펴들고 듣는 그들도 역시 농으로 받아넘긴다. 너도 농담, 나도 농담, 모든 교회가 진지함을 상실하기로 작심했다. 화끈한 기적의 이벤트가 벌어지면 그때야 진담으로 믿겠다는 것이다.
여기 '그 밑에서' 라고 하니 생각이 나는데, 경북 청도에 가면 각북교회라고 있는데, 강대상이 얼마나 높은지, 그야말로 삼층천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제가 실제로 그 강대상에 올라가 보았는데, 거기서 교인들이 앉는 의자를 쳐다보면, 저기 아래로 보인다는 것이다. 바로 그 밑을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강대상에 있는 목사도 농담으로 설교하고, 물론 그 밑에 있는 교인들도 농담으로 듣고, 그렇게 모두가 다 농담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마치 농담 따먹기를 하듯이 말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되기 직전과 똑같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각북교회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말이다(ㅋㅋ).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만약에 누구 하나 세상 멸망과 십자가 피를 진지하게 여기는 자가 있다면, 추방당해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왜 눈치 없이 부담을 주는 언행을 일삼느냐는 죄목이다. 성경을 펼쳐놓고 둘러앉아 주고받는 대화는 "성경을 진담으로 여길 근거가 희박하다" 라는 체험담뿐이다.
교인들이 모여 앉아서 예배를 마치고 밥을 먹으면서 뭐라고 하는가?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이야기한 것은 진담이 아니라 농담이라는 식으로 대화를 몰고 가는데, 그리고 나서는 세상 이야기로 입가심을 하고 만다는 것이다. 에피타이저(디저트?)로 말이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무리 기적을 모른다. 그것은 요나의 기적이다. 죽음으로 인해서 땅에 묻히는 행위가 곧 기적이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더러운 세상에서 사라져주는 기적, 이것이 이 세상의 종말을 말해주는 진정한 기적이다. 이것보다 더 적절한 기적은 없다. 이것이 바로 기적 중의 기적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은 메시야마저도 죽음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악하고 악한 세상인데, 그러니 멸망을 당해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흔적들, 그런 것만이 진정한 기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성도는 그런 기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말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참으로 위험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주님이 주신 생명나무가 아니라고 하면, 저희들도 역시 무심코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들인데, 그런데 주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십자가를 알게 해주시고, 그 메시야가 바로 저희들의 손에 의해서 죽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서, 저희들을 떠나는 자들로 만들어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저희들 앞에 다가오는 것이 모두가 다 좁은 길이고, 또한 그 길이 영생의 길이고 구원의 길임을 알고, 항상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9,09,16 오후 11시 30분에 마침.
요즘 십자가 마을이 강사문제로 조금 뜨거운데,
이런 강의를 과연 누가 또 할 수 있을까? 바로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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