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대구강의(피)06-사로잡힌바됨2
09대구강의(피)06-사로잡힌바됨2
이름 : 구득영(IP:203.223.97.161)
그러니 교회 안에서만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으로 나가도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이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퍼지고 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은사인데, 즉 자기가 어떻고 하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우산까지 빌려주시고 !!
그러니 객지에 가서 자동차가 펑크가 났는데 세상에 여호와의 증인이 와서 고쳐주고, 또한 비가 오면 통일교 교인이 우산을 빌려주고 말이다. 그것을 도대체 누가 그렇게 하셨는가? 동부 프로미가 그렇게 했겠는가? 그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께서 다 알아서 인도를 하셨다는 것이다. 마귀도 움직이시는 주께서 말이다.
안식교 교인이 우리 집에 물이 안 나온다고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주는데, 물론 여전히 그는 이단이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말이다. 또 담배를 피운다고 야단을 치다가도, 나중에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때는 화끈하게 받고 말이다. 그러면 저는 "아이쿠, 담배를 피우니 그렇게 마음이 넓네요" 라고 구리를 치고 말이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악적으로 우리 자신을 자책한다든지, 자기를 스스로 피고로 세워서 재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도 우리를 피고로 세우지 않는데, 건방지게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는 말이다. 피고는 없는데, 다만 하나님의 백성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주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는 말이다.
불가능함 - 니 자신을 지워버려라 !!
이제 조그만 더 하고 마치겠는데, 아무튼 '불가능' 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불가능한 것을 누가 하지 못하는가? 예수님이 그러한가?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불가능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당연히 부인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자기 가치를 주장하고 우기느냐는 것이다.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한 것이 없는데, 그런데 뭐가 잘났다고 그렇게 우기느냐는 말이다. "주여, 왜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까?"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주님이 뭐라고 하시겠는가? "그러면 니가 알아서 해봐라. 되는가?" 라고 하시지를 않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전혀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하지를 못하니, 그러니 자기는 무익한 종이라고 여기고서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불가능함'은 결국 자기의 것을 지워버리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예를 들어서, 목사의 심성으로 볼 때, 지난 주 예배시간에 한번 참석한 교인이 내 교회 교인인지, 아닌지 여전히 등록하지 않는 유동성 있는 교인인지 명확히 정리가 안 되는 목사는 불편해진다. 명확하게 나의 것이 될 때만 만족해하고 편안해한다.
목사가 자기 교회의 교인인지 아닌지, 그런 것을 전혀 판단할 능력과 권한이 없는데 왜 마음이 불편해지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가 여전히 살아서 그러한데, 즉 "이것은 내 교회이다" 라고 하는 말이다. 자기가 살아있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게 감사가 아니라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오는데, 왜냐하면 초조하고 불안하니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묻는 질문이 "목사님, 무엇을 해야합니까?" 라는 것인데, 그러면 그때마다 제가 대답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사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주님께서 가르쳐준 답변이고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이처럼 인간은 항상 경계선 순찰에 나서는데, 그 경계선은 '나의 것'과 '나의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하기 위한 경계선이다.
인간은 항상 경계선 순찰에 나서지만 !!
여기에 보면 "인간은 항상 경계선 순찰에 나서는데" 라고 히는데, 제가 봐도 정말 멋있는 표현인데, 누가 섰는지 몰라도 말이다(ㅋㅋ). 아무튼 인간은 그렇게 말뚝을 박아버리는데, 누가 들어올까 싶어서 말이다. 즉 항상 자기의 경계선을 순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순찰을 하시는 분이 따로 있는데, 녹매교회의 구자면 씨가 순찰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건 사람이 아니라 독수리인데, 물론 천사인데 말이다. 그러니 순찰은 그 독수리에게 맡기고, 우리는 순찰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이미 순찰이 필요가 없는 생명나무의 세계에 있으니 말이다.
(계 8: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매일같이 순찰하고 점검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서로를 다독거리고 말입니다. 물론 그것이 살아가는 재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무거운 짐이 되어서 불안을 야기하고, 불평과 불만을 터트리지는 않습니까? 그러니 불가능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이제는 주님이 주신 그 불가능 속에서 감사하면서, 그 불가능을 찾아 살아가는 재미로서 남은 생애를 보내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9, 09, 14 오후 10시 30분에 마침.
선덕여왕을 보면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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