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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산강의 2007년04월13일(고린도후서 4장) (2/2)자유게시판고린도후서

안산강의 2007년04월13일(고린도후서 4장) (2/2)

이름 : 조현창(IP:222.108.62.231)

지금 그런 이야기, 사도바울이 지금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사도바울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요. 거의 없다 말이죠. 다만 하나님께서 미리 영적으로 깔아 놓아 사람.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바울이 에베소나 고린도에 갈 때 뭐라 했습니까? 영생 주기로... 그 다음 뭐라 했습니까? 작정. 영생주기로 작정한 사람. 이게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이러겠어요.

영생 주기로 작정한 사람. 또는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음이라. 다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 백성이 딱 정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 전도하실 때 이렇게 했습니다. 내가 전한 이 이야기는 소위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슬기롭고 똑똑한 사람은 다 가리고 이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에게만 나타남을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뒤의 말은 뭔지 알아요? 이와같이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 선택받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예수님이 전한 이야기를 무슨 말인지 무른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도저히 못 알아듣게 되어있다, 이래 되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자기 밖에 모르니까. 자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이것이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나와 있는 뭡니까? 세상 신이 그 얼굴을 팍팍 가려버렸어요.

여기 안산에도 전에 황사가 일어났습니까? (예) 지난 일요일 날, 그죠? 전국에서 대구가 제일 심했어요. 낮에 시커멓었으니까. 황사가 심해지면 흑사가 되어버려요. 흑사란 아주 시커멓다는 뜻이예요. 굉장히 짙었어요. 희미합니다. 오늘 날 길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인생 우에 사나? 희미하죠. ^^ 희미한 평생 황사입니다. 평생 황사예요. 애기 아빠한테 물어보세요? 우에 사나? 황사죠. ^^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안개 낄 때 차를 몰아보면 목적이 없어요. 갈 때 까지 가 보는 거예요. 10센티가면 10센티만큼 늘어 날 뿐이예요. 그처럼 우리 인생은 황사 속에 질주하는 차와 같이 위험천만입니다. 어느 길이 어느 길인지 몰라요. 그냥 황사 속을 뚫고 지가 가는 겁니다. 하루하루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살아가면서 주름살 생기고 머리 빠지고 하는 거예요. 왜 죽는지도 몰라요. 죄 값이 사망인 것도 몰라요. 자기 앞에 안개에 가린 절벽이 있다는 것도 몰라요. 그저 남들처럼 갈 때 까지 그냥 가 보는 거예요.

옆에서 영적인 이야기 해 봐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습니다. 왜? 오늘 본문에 보니까 왜? 본인이 아이큐가 낮아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에 뭡니까? 4장4절에 세상 신이, 악마가 눈을 흐리게 했지요. 눈에 황사가 끼게 했다니까요. 악마가 눈에 황사끼게 했으니까 성경을 봐도 육적인 해석밖에 나올 수 없는 겁니다. 나이 먹은 것을 자랑할 필요 없어요. 나이 먹은 만큼 황사를 많이 겪었었다는 경험을 많이 했다는 것 뿐이예요.

백 날 나이 먹으면 뭐 합니까? 맨 날 황사인데요. 10미터 간다고 황사가 없어집니까? 그 자리에 가도 맨 마찬가지인데. 안개가 우리 무서워 물러가는 안개가 어디 있어요. 안개보다 더 짙은 것이 악마의 안개입니다. 현미의 노래가 생각이 나요. 밤안개 ^^. 밤♬안♬개♪ ^^

밤 안개가 어떻다고요? 자~욱 하죠. 밤 안개가 자~~~욱 하잖아요.

이 시대가 대구면 대구, 서울이면 서울, 안산이면 안산... 모든 게 지금 자~~욱 해요. 그저 5미터 앞에 보이는 게 뭐 FTA 보이고, 북한 핵 보이고, 박지성 축구하는 거 보이고 이승엽 야구하는 그것만 보이지, 자~~욱해요. 10미터 앞도 이야기 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교회에 가도 마찬가지예요. 교회에서 ‘기도하면 5미터 정도 뚫을 수 있을 걸?’ 이렇게 하고 있어요. 복 주어서 당신이 요구하는 5미터 가도록 하나님의 능력으로 5미터 더 가게 해준다는 거예요. 복 준다, 이 말이예요.

제가 주일날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람이 소위 재산에 몇 십억 있어야 안심이 되겠느냐, 5천억? 6천억? 하나님의 약속을 알면 그 것 만큼 평안한 사람 없어요. 하나님의 일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싸움으로 해서 결정났어요. 이기는 쪽이 가져가게 되어 있어요. ‘우리 집에 왜 왔니 왜왔니 가위바위보!’ 할 때 다 가위바위보 하는 것이 아니고 대장만 해요. 대장이 이기면 이기는 쪽이 상대방 쪽을 가져갑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예수님께서는 지금 남의 집에 악마의 집에 찾아 왔어요. 마귀가 하는 말이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하잖아요. 마태복음 8장에 나오잖아요. 예수여 아직 우리가 멸망할 때가 아닌데 왜 왔습니까 안합니까. 돼지 치는 마을에 갔을 때 그 때 귀신아 나가라 하니까 나갈 데가 없어요, 하니까 돼지에게 가라, 돼지 떼에 올라가서 바다 속에 다 빠져 죽었잖아요.

돼지를 죽이는 그 마귀가 악령이 지금 이 자욱한 안개처럼 모든 사람 등어리에 다 타져 있어요. 어디로 가야할지도 몰라요. 타면 눈이 멀어버리니까. 눈이 감겨서 인생의 목적도 없어요. 그냥 짐승같이 살아요. 희미하게 그냥 퇴근해서 술 한잔 먹고 들어오고. 그 뿐이예요. 그저 이슬먹고 살죠. 무슨 이슬? 참 이슬. 참이슬 먹고 살고. 참이슬이 생명수라. 소주가 생명수지 딴 거 없어요.

산다는 것에 대해, 왜 사는지 생각해 본적도 없어요. 그냥 자욱한 황사니까, 황사. 결혼 왜 했습니까? 왜 애 낳았는데. 5미터 가니까 앞에서 5미터까지 따라가는데 까지 가다 보니까 애 낳게 된 거예요. 주님께 기도해서 애 낳은 것 아닙니다. 왜 기도해서 애를 안 낳느냐하면 주님께 기도해 봤자 네가 애 낳는 것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싸우는 것과 무슨 상관인데... 이렇게 이야기해버리니까, 재미없으니까 기도 안 하죠.

소유는, 이 땅의 소유는, 영적인 100원짜리 돈, 영적인 사람을 소유할 때에는 그 소유를 향하여 자기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자기 자신에게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게 만듭니다. 더 이상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그런 소유는 영적인 소유인데 그것이 성령이죠. 육적인 소유는 자기 자신을 더욱 더 방어하고 철저히 수호하고 자기 집착에 매달리게 만듭니다. 나중에 자기 자신과 더불어 폭파하죠. 그것이 자살 아닙니까. 자기 자존심과 함께 자살하죠.

이 고린도후서에서, 고린도전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항상 사도바울이 변함없이 이야기 하는 것은 뭐냐? 너는 영적인 사람이냐 육적인 사람이냐? 딱 두가지만 물어요. 다른 것은 안 물어요. 네가 얼마나 착하냐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너 영적인 사람 맞아? 아니면 영적인 사람 아니야? 너는 뭐야? 그린도교회 다닌다고 인정 안 해줘.

영적인 사람의 기준은 뭐냐? 고린도전서에서는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인데 십자가의 특징은 무엇이냐? 어리석음이죠. 철저한 어리석음이죠. 어리석은 십자가를 믿는다는 말은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이 되었다? 어리석은 인간이 되기로 작심했다는 뜻입니다. 남이 나를 등신이라 해도 나는 그것을 기쁘게 받기로 작심했다는 뜻입니다. 남들이 어리석다고 하는 십자가를 뗏목으로 여기고 올라탔으니 세상에 그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 옆에 달린 강도 있죠? 그 천국 간 강도가 얼마나 어리석어요. 안 믿는 사람이 보면, 둘이 놀고 있네, 안 그러겠습니까? 둘이 곧 죽어가면서 예수여 저를 용서해 기억해 주소서, 예수님이 네가 오늘 밤에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할 때 십자기 밑에서 안 믿는 사람이 보면서 둘 다 놀고 있네. 아이고 잘 논다. 마지막 최후의 발악을 하는구먼. 그러니까 똑똑한 강도는 뭐라 했습니까? 에이라. 둘이 맞박을 때려버릴라. 그래 사기치지 말고, 죽어서 좋은데 간다고 차기치지 말고 지금 네가 메시야거든 우리를 못에서 빼내어 살게 해봐라, 그러면 내가 믿을 께. 이러잖아요. 그게 얼마나 육적인 해석이고 문자적인 해석입니까.

지금 악마를 이기는 것은, 고린도후서 3장 말씀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이것은 복음의 광채가 뭐 별로 좋아해지지를 않아요.

5절 봅시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참~ 이 한 마디...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한마디에 뿅 갑니다. 왜냐하면 복음 전하는 사람은 이 굴욕을 밥 먹듯이 당해야 돼요. 주님께서 복음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굴욕당하게 하는 이유가 뭐냐하면 예수님의 가신 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굴욕이었어요. 태어 날 때부터 죽을 때 까지. 한 순간도 예수님이 굴욕 안 당한 적이 없어요. 침 뱉음을 당하고, 심지어 가장 굴욕적인 것은 일가 친적들로부터 배척당할 때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배척당하고 어머니가 자기를 몰라 줄 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가 물로 포도주 만드는 그러한 재주꾼, 마술꾼으로 온 줄 아느냐. 철저하게 굴욕의 길을 갔다 말이죠.

자, A 지점 -> B 지점 -> C 지점 -> D 지점... -> 십자가에 도착했다고 하면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이 예수님이 가신 코스, 이 A, B, C, D... 이 코스를 그대로 성령을 가지로 우리를 동행해서 그대로 밟게 하십니다. 쭉 밟게 하시면서 A라는 지점에서 ‘봐, 마리아가 나를 오해해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니까 그렇게 오해했던 대목이야’ B라는 지점은 ‘세상에 베드로가 잘난 체 한다고 몇 번이나 용서해 줄까요 이 정도면 될까요? 이따위 소리해댄 지점이야’,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영적으로 성경을 볼 때마다 ‘아이고 이것은 나 보고 한 이야기구나’. C란 지점에서 말이야 풍랑 일어가지고 죽겠다 할 때 그 때 잠자는 나를 깨울 때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책망을 들었죠.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 바다 풍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생명이잖아, 이렇게 책망하실 때가 이 대목이야. D 지점은 성전세 없을 때 물고기 아가리 벌려서 준 거야.

또 이 지점은 베드로가 나를 세 번씩 부인할 때 닭이 울던 대목이야... 쭉 성경 말씀 전체를 통해서 영적인 해석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할 때 구석구석마다 뭐냐하면 우리의 부족하고 우리가 이렇게 나 밖에 모르는 인간이구나.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를 가지고 십자가 능력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이미 구원받은 신분으로서 구원받은 티를 내려고 우리로 하여금 굴욕적인 삶을 살게 하시는구나. 인생이란 그렇구나 하는 것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성령이 함께 있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이렇게 굴욕적인 거예요. 아주 우사스럽게 만들어요. 나 밖에 내 세울게 없게 만들어요. 심지어 우리로 하여금 아예 교도소 가게 만들기도 하고. 기대하는 사람에게 실망스런 결과를 낳게 만들기도 하죠. 우리를 향해 기대하는 많은 시선들이 있는데 그런 시선들을 낙담케하고 실망케하는 그런 사건들이 우리에게 덮치죠. 그렇게 덮치게 되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방어가 안 되고, 자기 집착이 안 되는 사람에게는 그런 수모가 들어와도 ‘주여 저는 예수님보고 기뻐했지 언제 내 자존심보고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 걸 확인하게 되고. 반면에 육적인 사람 같으면 ‘참 이래도 내가 예수 믿어야 되나’, 하는 식으로 자기 본색을 드러내게 마련이죠.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인간은 결국 자기의 본질대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아무리 신앙인 흉내를 내고 교회에 다니고 복음 복음 이야기 하지만 결국은 자기 본색은 속일 수 없어요. 결국에는 자기 얼굴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뭐 사람하나 꼬실려고 심방 천 번 댕기고 일당 주고 특별히 감사기도 더 그 사람 위해 백날 기도해도 자기 본색대로 다 돌아갑니다.

그런데 평소에 말씀에 관심도 없어서 내 팽개쳐 놓았었는데 결국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은 주께서 그렇게 돌아오게 하신 거예요. 잃어버린 100원짜리예요. 한 마리의 양으로 오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라는 것이 양이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양이라면 내가 양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지 말고 누구 덕분으로 지금 이런 코스를 밟고 있느냐 그 분의 고통과 아픔과 그 분의 굴욕을 증거하는 그런 모임이어야 그것이 교회입니다.

우리 지금 몇 명 안 되잖아요. 하지만 두 세 사람이 있는 곳에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는 것이 어디에 나오죠? 마태복음 18장 19절에 나오죠. 그러니까 굴욕적으로 모임의 숫자를 확 빼버리는 거예요. 누가요? 주께서. 그렇게 해서 다시 한 번 마태복음 18장 19절 잊어버렸던 말씀을 다시 찾아서 하는 겁니다. 주님은 자기 말씀밖에 몰라요. 우리 사정은 고려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책임지고 우리를 구원해 내기 때문에 우리가 좋던 싫던 주님은 말씀가지고 들이대게 되어 있고 그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내가 떠나고 싶어도 주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아요. 주님께서는 찾아오셔서 자신의 굴욕적인 삶에 우리를 동참케 하십니다. 내가 싫다 해도 찾아오시고 강제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이 그 두꺼운 층을 뚫고 들어오십니다.

다시 그림을 봅시다. 우리 인간들이 있잖아요. 인간 위에 무슨 두께가 있습니까? 악마의 두께가 있지요. 이것을 우리 힘으로 솟뚜껑 같은 이것을 우리 힘으로 안 되지요. 종교를 생각해도 소용이 없지요. 종교생활 신앙생활 아무 소용없어요. 뭔가 영적인 것이 뚫고 들어오죠. 뚫고 들어오면, 한 번 보세요. 영적인 것이 뚫고 들어오면 무엇까지 뚫고 들어왔어요? 악마의 층을 뚫고 들어오죠. 그러면 뚫고 들어와서 우리 속에 있다면 우리 속에서 뭐도 발생됩니까? 악마의 층이 이런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죠. 뚫고 들어왔으니까. 통과했으니까. 어떤지 아시겠지요? 통과했으니까.

삼겹살이 몇 겹 살입니까? 삼겹살은 삼겹살 아닙니까? 삼겹살을 이렇게 칼로 자르면 겹이 하나가 아니고 세 겹 다 보이죠. 이미 영적인 데서 악마 층을 뚫고 들어왔으면 이 뚫고 들어 온 사람은 뭐도 알아요? 예수님도 알고 성령님도 알지만, 뭐도 알아요? 악마의 정체도 알지요. 그리고 악마의 정체가 그동안 나로 하여금 나만 위하고 내 위주로 내 방어 위주로 살도록 누가 일했다? 악마가 일 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고백하게 되겠지요.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하잖아요. 당신 성도 맞아요? 맞습니다. 그러면 자기 죄를 이야기 해야지, 자기 죄. 내 죄가 뭔데요? 그동안 악마하고 짝짜꿍 했잖아요. 무슨 죄? 성경 공부했다고 구원받았고, 십일조 했다고 복 받았다고... 지금 악마의 이야기 아닙니까. 영적인 것은 뭡니까?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자기의 ‘너 오늘 밤에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일방적인 선언으로 우리가 선택되어 통과된 것이 영적이라면 나머지기 전부는 뭐예요? 그 것 빼고 나머지는 전부 뭡니까? 육적인 거죠. 다 육적인 거죠. 성경공부 했다고 자랑하고 전도했다고 자랑하고 전부 다 자랑은 뭡니까? 악마가 만든거죠.

그래서 그렇게 받은 사람은 뭡니까? 예수님 좋다고 물동이 버려두고 물동이 깨지는 굴욕이잖아요. 우리도 물동이 버리도록 해야 되는데 우리는 물동이 포기안하잖아요. 그러면 주께서 발로 차버리죠. 이단 엽차기로 차버리면 그때서 주께서 하셨군요, 하면서 감사하죠.

사람이 자기한테 안 매이면 그 보다 더 위대한 자유자는 없습니다. 최고의 자유인은 자기 자신에게 안 얽매이는 사람이여야 해요. 자기 자신에게 안 얽매였다는 말은 뭐냐? 나를 쥐고 흔드는 분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자인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하나 고린도후서를 설명해 보면 이 말씀이 얼마나 대단한 말씀인지...

그 다음에 봅시다. 5절. 참 진도 나가기 아깝다 정말^^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요, 벌써 이것은 뭘 말합니까? 사도바울을 뭐가 쥐고 있다? 성령이 쥐고 있다 이 말 아닙니까. 그 다음에 다 같이.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뭐만 앞장세웁니까? 예수 그리스도 주 되심이죠. 그냥 미쳤죠. 한마디로 미친 사람이죠.

오용익 목사님이 우리교회 오후 예배에 참석해서 설교를 하셨어요. 몇 주 전이죠. 시간있으면 그 설교 한 번 들어보세요. 오 목사님이 사마리아 여인보고 미친년이라고 했어요. 들어봤어요? 그 설교 얼마나 잘 했어요. 나는 왜 그렇게 ‘미친년’이 될 수 없느냐 말이죠, 왜? 나는 왜 그렇게 정상인 되려고 그렇게 애쓰느냐 말이죠, 나를. 이것은 내가 생각한 ‘나’를 따로 챙겨 놓았기 때문에 그래요.

성경에서 말하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싸운다’는 그런 생각하는 ‘나’라는 생각은 안 들고, 내가 생각한 ‘나’가 따로 있는데 그것을 어디서 만들어내느냐 하면, 과거에 생각해 놓은 내가 있기 때문에 그 과거의 틀에서 못 벗어나서 과거에서 좀 더 향상된 현재의 나를 자꾸 꾸미고 미래를 꾸미다 보니까 자기가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미친년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갈수록 정상인 되기를 원하죠. 더덕더덕 파스 붙인 사람이 아니고, 파스가 하나도 없는 정상인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온 몸 전체에 파스가 붙은 그런 병든 자를 부르러 왔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주님께서 만든 코스대로 돌면 알 수 있죠. 굽이굽이마다 죄인 아닌 것이 없어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전부 다 누구보고 이야기해요? 다 나보고 이야기해요. 제자들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다 나 보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여기 영적으로 생각한다는 그 아이디어가 하나의 좋은 예인데요, 어떤 조각가가 있는데 어떻게 조각하는지 잘 한번 보세요. 어떤 여자분(모델)을 조각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사진을 찍어요. 사진기로 사진을 찰칵 찍어요. 그러면 사진 한 장 나왔죠. 한 면만 나왔죠. 그 다음에 약간 각도를 틀어서 또 찍어요. 그러면 두 장 나왔죠. 계속 뒷면도 또 찍어요. 이렇게 한 사람을 찍는데 400장을 찍어요.

400장 전신을 다 찍어놓고, 그 다음에 조작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여자와 비슷한 스티로폼을 가지고 윤곽은 없고 형태만 있는 여자를 만들어요. 그리고 여기에 아까 찍은 사진을 다 갖다 붙여요. 그러면 수평적으로 있던 사진이 뭐가 되어요? 부풀어 오르죠. 입체가 되겠죠? 그런 조각가가 있어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은 수평적으로 납작한 평면에 살 때에는 우리가 죄인인 줄 몰라요. 그런데 주님의 영적 세계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죄인으로 풍선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어느 구석 죄가 안 부풀어 오른 것이 없어요. 전부 다 죄입니다. 바늘로 찌르면 삐리리 소리나며 터져버립니다.

영적이라는 것은 우리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어서 그 죄의 파스, 예수님의 피죠, 예수님의 피의 공로와 능력만 온 우주에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를 채용하는 겁니다. 그럴 때 무슨 소리가 나오느냐, 고린도후서 4장 5절의 복음이 나와요. 내가 자랑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누구를 자랑한다? 예수님의 주 되심을 증거한다. 이것이 영적으로 부풀어야 나올 이야기입니다. 수평으로 딱딱하게 되면 안 나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막 바람을 집어넣어요. 성령 자체가 바람 아닙니까. 우리에게 바람을 집어넣어요. 수평으로 납작할 때에는 우리가 잘 난체 하다가, 갑자기 성령이 오니까 우리가 뭐가된다? 죄인이 되어버리고 그러면서도 우리의 윤곽에 나타나는 것은 주의 십자가 피의 공로가 드러나게 됩니다.

납작한 파스가 부풀어지면 파스가 늘어나게 되어서 부풀어진 파스가 되죠. 그것을 주께서 원하십니다.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 사도바울의 모습이죠.

7절 봅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 보배를... 애가 있는 부모에게 보배는 누구입니까? 애 밖에 없죠. 돈 잘 버는 남편이 있을 때, 돈 못 버는 남편 말고, 보배는 누구입니까? 남편이죠. 돈 잘 벌고 살림 잘하는 여자를 두고 있는 남편에게 보배는 누구입니까? 아내가 되겠죠. 그래서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 같이 하라. 다 거품이라는 거죠. 그것은 나를 위한 아내이고, 나를 위한 자식이고, 나를 위한 남편이었잖아요. 주를 위한 남편과 아내는 아니었다, 이 말이죠.

진짜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은 우리 안에 보배가 들어있어야 되요,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이 들어 있어야 됩니다. 나는 예수님 만났다! 메시아 만났다! 세상 끝장 낼 그 분을 내가 직접 만났다! 나는 그 분 보고 싶어 미치겠다! 그것 말고 더 큰 보배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다 거품인데.

짓밟으면 빵 터져버리는 다 거품이죠. 새우깡 큰 봉지 다 먹고 난 다음에 밟아 보세요. 뻥 소리가 나지요. 그것처럼 우리는 지금 새우깡 빈봉지 한 가지 뿐이잖아요. 안에 보배가 있어야지요.. 안에 보배가 없고 그냥 자욱한 황사예요, 황사. 이 몸 가지고 이 몸이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까? 그런데 가치가 있데요. 누가 그러는데? 그건 몰라. 그냥 느낌이야. 나 안 죽어야돼. 왜? 몰라. 그냥 안 죽고 싶을 뿐이야.

이것이 전부다 육적인 세상이고 이것이 전부다 문자적 해석을 하고 있는 세상이예요. 살기 위해서 교회가고 복 받기 위해서 교회가고 예수는 뒷전이고 자기 밖에 모르고 그냥 안개 걷히는 고 재미. 하루하루 살았다 또 내일도 살자. 안개 헤치고 가는 그 재미. 그런데 그것은 목마른 물을 긷는, 그러면서 헤치는 세월 속에 몸은 늙어져서 다 망가지고 어디로 가는 것도 모르고 넓을 길로 가고 있고. 좁은 길로 안 가고 넓은 길로 가면서 좁은 길로 가고 있다고 우기며 있고.

7절을 봅시다. 우리가 이 보배를 가졌은즉 능력이 심히 큰 것이... 어디에 있고요? 하나님에게 있고. 누구한테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있지 않죠. 이런 고백을 우리가 언제 해 봤냐 이 말입니다. 몇 년 만에 해 보았냐 말이죠. 우리는 이런 고백하기도 싫잖아요. 7절에 이렇게 만들어 줄 까봐 겁나가지고.^^ 이것이 언제 적 고백이냐 말이죠.

그저 포대기에 이 말씀 주어 담으면 구원받는 줄 알았지요? 이 말씀이 우리를 죽입니다. 이 말씀이 황산 용액이예요. 몸에 피부에 닿으면 다 타버립니다. 이 말씀은 염산이고 황산이예요. 애가 아파 울고 있을 때 이 말씀이 주어지면 애고 뭐고 메시아가 중요하지 애가 중요한가! 이런 마음으로 우리가 영적으로 부풀어 올라야되요. 우리가 다시 한 번 서랍에 있는 파스 꺼내서 지금 여기가 문제군요 하면서 파스를 붙이는 온 파스를 다 붙여야 되요.

8절 봅시다. (고후 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여기에 보면 답답한 일, 우겨쌈을 당하는 것, 핍박... 전부다 그동안 누가 써 먹던 겁니까? 그동안 이 세상에서 우리를 두껍게 둘러싸고 있었던 악마가 그동안 써먹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에 전부 다 굴복했었단 말이죠. 그런데 성령이 오니까 이 두꺼운 층을 뚫고 성령이 오니까 우리는 어떻게 되었어요? 당하면 더 커지고 부풀어 오르는 거예요. 답답한 일도 답답한 일이 아니고 낙심하지도 아니하고...

여러분 낙심한다는 것은 이미 내가 없는데 무슨 낙심이 됩니까. 낙심할 내가 없는데 무슨 낙심이 되겠어요, 낙심 안되죠. 중국집 주방장이 주는대로 먹으면 되지 왜 자기가 자장면 짬뽕을 고릅니까. 주는대로 처 먹으면 되었지. 내 인생 이렇게 되어야 하고 내년도 계획은 이래야 되고...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라. 내년도 계획이 어디있어요.... 주는 대로 처먹지... 무슨 계획이 있어요.

여러분 꽃 봉우리는 법대로 핍니까? 법 없이 핍니까? 법 없이 그냥 피워요. 화단 만드는 자재나 규격은 법대로 해요. 하지만 생명은 우리 말 안 들어요. 그냥 피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의 생명은 그냥 핍니다. 그 생명 앞에 우리는 그대로 깨어져야 하지요.

그 다음 말씀, 핍박을 당하여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야,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 안에는 내 것 말고 다른 사건이 있어야 되요. 우리가 일으킨 사건 말고 다른 사건. 지금 손 목사님 가정에서 성경공부하는 것은 손목사님에게 육적으로는 이익 될 것이 없어요. 하지만 다른 사건이 있어서 허락했다고 저는 이래 믿습니다. 좋게 이야기 해야지 또 물 안 주면 곤란하니까 ^^

우리가 우리를 장악한 것 말고 다른 것이 와서 장악되어야 돼요. 내가 내 인생되면 곤란합니다. 그것은 지옥가는 인간입니다. 나 말고 다른 분이 장악하셔야 됩니다. 그 이야기예요.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내가 내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것도 아닌데 왜 낙심합니까. 전부 남의 것 가지고. 그 주제 넘는 이야기 아닙니까? 남의 것 가지고 자기가 왜 낙심합니까? 우리는 종이면서... 주인이 시킨대로 하면 되지요.

망해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보세요 예수 죽을 때 그냥 죽은 것이 아니고 코스가 있잖아요. 이 가는 코스가 우리 속에 있으면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몸에 버짐 나타나고 여드름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에는 내 속에 나만 있지 않고 나를 장악하고 계신 다른 분이 계시다는 것을 드러내는 그런 생명이 있는 사람이 누구야! 나 그 100원짜리 동전이라고 생각하고 돈 주우러 왔다’고 사도바울이 지금 돈 주우러 온 거예요. 이 말씀 고린도후서를 들이대면서, ‘너 같은 형제 맞아?’ 하면서 우리에게 묻고 있는 거예요. ‘네가 돌맹이야 아니면 하늘나라에서 보내 준 동전이야’ 하고 묻고 있는 겁니다. ‘동전 맞습니다’, 한다면 우리는 사도바울의 말씀에 동참해야 되요. 이 사도 바울의 말씀을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주께 감사합시다, 하고 이렇게 해야되요.

마지막 하나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11절에 우리 산자가 항상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

항상 살았다고 여기면 어디에 넘겨져야 돼요? 주님한테 넘겨져야 돼요.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죽이고 죽은 우리 육체에 주님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 되면 그 사람은 이단입니다. 그리고 이단을 용서하지 마세요. 주님이 용서하지 않는 이단을 내가 왜 건방지게 이단을 용서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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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