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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13장 - 14장 주석자유게시판창세기

창세기 13장 - 14장 주석

이름 : 이진용(IP:222.99.120.160)

창세기 13장 - 14장

아브람의 가나안 땅 도착은 곧 이방인의 모습으로 그 지역에 들어온 셈이다. 그는 아무데도 도움을 바랄 수가 없었다. 그는 여호와를 의지하면서 모든 결정은 그 스스로 내려야 했다. 그러나 언약의 내용은 이런 처지에서 비로소 조성되어 간다. 나에게 약속을 내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과연 이런 상황에서 그 분께서는 어떻게 사태를 처리하게 되는가? 여기에서 나온 사실들로 인해 복의 세계는 지상에 그 흔적을 남긴다.

그 땅에 기근이 있을 때 아브람은 그 장소를 떠나는 모험을 감행한다. 애굽 땅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이 지속되리라는 것을 그는 믿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복의 근원이기에 어떤 수를 써서라도 생존해야만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자기 아내를 희생시켜 이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융성한 대접과 많은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브람 자신의 처신술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이 애굽 왕에게 주어진 일 때문이었다. 마치 개인적인 출애굽 사건 같다.

아브람은 다시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제단을 쌓은 곳에 이르게 되니 아브람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즉 나에게 나타나 약속하신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권세보다 더 세다는 것과 또 하나님이 나를 기어이 다시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 힘이 바로 그 주어진 약속을 성취시키는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그 땅에서는 나그네요 이방인이요 객인 아브람은 이 땅이 자신의 소유 땅이 되고 여기서 주어지는 자식들의 번성은 이 모두가 자기를 애굽에서 끌어올리시는 약속에 대한 능력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주권에 자신의 선택권까지 맡긴다.

거기에 비해 조카 롯은 그 당시 주위에서 가장 기름지고 비옥한 땅에서 살기로 결심을 하고 삼촌의 곁을 떠난다. 그러나 그 장소는 장차 멸망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소돔과 고모라 땅이었다. 그 땅은 마치 에덴동산처럼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또한 주위 사람들에게 유혹의 자리가 된 것이다. 그 자리를 중심으로 하여 아름답지 못한 탐욕의 전쟁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롯은 외형만 보고 스스로 탐욕의 전쟁터에 자진해서 내려간 셈이 된다.

조카 롯의 재산을 약탈당하고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브람은 私兵 318명을 데리고 가서 도시 왕들을 쳐부수고 롯을 무사히 구출시킨다. 이러한 아브람의 용감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우리는 그 답변을 살렘왕 멜기세덱을 영접하는 과정에서 찾게 된다. 세속왕 소돔왕과 함께 만난 아브람은 이번 전쟁의 승리를 자기 힘으로 돌리지 아니했다. 그것이 이 땅을 지배하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덕분으로 돌린다. 그리고 소돔왕으로부터 오는 전리품을 단호히 거절한다. 아브람은 이번 전쟁을 인간적인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용사가 되어 치른 거룩한 여호와 전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 전쟁은 아브람에게 내린 약속과 관련되어 있기에 자기는 그냥 동원된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 교회의 역할은 거룩한 신적인 전쟁에 동원됨이다. 이 전쟁의 승리의 요소는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신뢰하되 어디까지 신뢰해야 하는가 하면 자신을 희생물로 제공될 때까지 신뢰해야 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만약 교회가 세속의 영화와 번영에 눈이 팔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사탄의 종으로 자처하는 것과 같다.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이 선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원한다고 해서 그것을 교회도 가지려고 해서도 아니 된다. 거기에는 반드시 탐욕의 함정이 설치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차지하면서 불의를 행사하고 그것을 유지한다고 불의를 행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천국을 위하여 과감히 미련을 철수해야 될 필요가 있는 단체이다. 왜냐하면 그들만큼은 세상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사모하기 때문이다. 그 증표를 보여야 한다. 아브람이 세속왕 소돔왕의 거래를 거절한 것처럼 불순한 동기를 이용하려 들어서는 아니 된다.

13:1-13

애굽에서 삼촌 가정과 조카 가정이 같이 나왔는데 조금 지냈다가 헤어지게 된다. 이렇게 두 가정으로 헤어지는 원인이 소유라는 토대 때문이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유라는 토대는 겉보기에 불과하며 내면에는 신앙의 토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두 가정이 소유가 막강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발전에 방해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아브람은 갈라서기로 마음 먹는다. 이처럼 단지 소유의 대결로 비치고 믿음의 질의 차이로 보여지지 않는 것은 믿음이란 각자의 세계만을 통보하기 때문에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 속성을 지닌다. 소유 자체에 대해 아브람이 양보를 함으로서 애초부터 신앙성에서 차이가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9절에 아브람은 조카 롯의 내심의 선택에 우선권을 부여하므로 서 자신의 선택하는 바가 따로 있음을 내비친다. 롯의 선택권 안에서 롯과 경쟁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네가 선택하는 바대로 다 하되 너의 선택 정신과 동일하게 내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말이다.

롯의 선택 정신은 10-11에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 동산 같고, 더구나 그 뒷 단어, '애굽 땅' 같은 곳이라고 표현된 땅을 선택했다. 애굽은 비옥한 땅이었고 그리고 물도 넉넉했던 지역이라 엄청난 땅의 소산물을 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서로 갖고 있는 가축이나 재물을 증식하려면 애굽 나라와 같은 조건을 가진 땅을 점거하는 것이 계속된 성공의 조건임을 삼촌 아브람이 잘 알고 있기에 롯에게 우선권을 넘긴 것이다. 너의 토대의 길로 가라는 뜻이며 아브람은 소유라는 토대를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토대를 고대했다.

과연 롯이 아브람 곁을 떠난 후 하나님은 홀로 남은 아브람에게 다시 찾아오신다. 14-17에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것이다. 비록 소유라는 토대는 롯에게 넘겼지만 그 빈 자리에 '하나님의 약속 성취'라는 새로운 토대를 갖게 되었다.

롯과 헤어지고 다른 길로 가게 되는 그 시점에서 하나님의 일관된 약속이 다시 그에게 주어진다. 롯이 선택한 땅까지 사방팔방 눈에 보이는 모든 땅이 다 아브람의 것이 된다고 하나님의 일방적으로 약속하셨다. 이 약속을 믿는 것이 바로 신앙의 바른 토대이며 인간의 힘이나 선택이나 생존 요령에서 주어진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그 약속에만 기대를 걸고 사는 자가 바로 참 신앙인이다.

하나님에 의해서 친히 인도 받는 신앙인들은 늘 자신의 토대를 바꾸기를 원하게 된다. 즉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는 심정으로 사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더 확실한 쪽이기 때문이다.

좋고 유명한 것은 누구에게나 좋아 보이는 법이다. 따라서 너도 나도 그것을 얻기 위해 달려들 것이며 그것 때문에 자신이 진정 누구이며 자신은 무슨 토대 위에 사는 지를 무관심할 수가 있다. 우리는 바로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구원되어야 될 자이다.

14:8-16

본문의 내용은 현재 우리들이 처해 있는 그 전쟁의 내막을 밝혀주게 된다. 자기 몸 하나 유지하기도 힘든데 하나님은 우리가 원치도 않는 전쟁에 몰아넣어서 하나님의 군사가 되라고 강요하신다. 에베소서 6:12에 사도 바울은 엄청난 우주적인 전쟁까지 관여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신자이다. 신자의 눈에 영적 전쟁의 실체가 비친 것이다. 우리도 같은 신자이면서도 그런 영적 전쟁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세속적인 전쟁에 너무 시달리다 보니 내 몸과 내 가족의 생존이 급선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자와 지배 받는 계층이 있어서 그 안에서 생존의 규칙에 익숙해져 있다. 가진 자, 힘 있는 자가, 없고 약한 자를 괴롭혀서 빼앗는 이 생리가 이 사회이다. 이 규칙 안에 우리 신자가 놓여 있다. 그 안에서 신앙도 지켜 내려고 하니 힘든 것이다. 하지만 힘들다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힘들게 된 그 실체와 원인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 의하면 신자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망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다. 만약 신자가 그런 세속의 힘에 의해 위험스러운 지경에 처하면 하나님이 개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그냥 살아 보겠다고 나서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 두지 않는다. 거미줄 같은 생존의 규칙과 법칙으로 그를 곧장 묶어 버린다. 아브람의 조카 롯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아브람이 개입하는데 아브람 입장에서 자기 조카 롯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어차피 구원 해 봤자 사고방식이 여전히 세속적이라 또다시 세속의 그물로 뛰어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고방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구원이라는 것도 없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귀한 보혈의 피로 빼내준 대상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개입할 때면 다른 사람보기에 세속전쟁으로 보일 것이 뻔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영적인 전쟁을 벌이시겠다는 취지로 개입하시는 것이다.

신자는 육적인 전쟁에서 못 벗어나는 현실성을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이 벌이는 영적 전쟁의 군사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돈 사랑하는 그 사랑보다 예수님의 목숨 바친 그 사랑이 더 큰 사랑임을 증거 하는 전쟁이어야 참된 영적 전쟁이다. 남들은 돈으로 살지만 나는 주님의 사랑의 은덕으로 산다는 고백으로 전쟁에 나서는 것이 성도이다. 이것은 양이나 숫자의 전쟁이 아니라 질의 전쟁이다.

시편 44:3-5에 최후의 전쟁이 앞당겨 온 것이다. 최후의 전쟁은 주를 사랑하는 자는 구원 받고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 전쟁이다. 비록 성도라 할지라도 이 세상의 생존의 전쟁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려야 하며 그래도 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신도 어쩔 수 없이 붙잡을 수 없는 요소가 신자에게 있다. 그것은 돈이 아니다. 신자는 돈 때문에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신자에게 넣어진 예수님의 피의 고귀함 때문에 세속 전쟁에서도 하나님의 전사가 되는 것이다. 이 전쟁은 예수님도 치른 적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말이다.

아브람은 기적적으로 전쟁에서 이긴다. 이미 다섯 왕이 대들어도 두 번씩이나 깨어져 버린 막강한 힘을 가진 세력에 대해서 아브람은 개인 집에 국한 된 일군들을 데리고서도 승리를 일구어 냈다. 그것은 오로지 조카 롯을 구출하는데 하나님이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미래의 전쟁 모델이다. 최후에 예수님이 천사들과 함께 와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순전히 택한 자 만을 건져내기 위한 조치이다. 우리가 귀해서가 아니라 우리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겨냥해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 하나님이시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는 영적 전쟁 속에 놓여 있다.

14:17-24

소돔왕이 제공하는 재물을 자신이 받을 수 없고 도리어 자신의 가진 것에서 십분지의 일을 떼어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드리는 이유는 이번 전쟁을 하면서 자신의 훌륭함으로 얻어진 승리가 아님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시편 44:3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는 그 기뻐하심으로 인해 인간들의 칼이나 강한 무기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사병 318명으로 거대한 연합군을 물리쳤고 조카까지 너끈하게 구출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힘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을 알았던 것이다. 결코 자신의 힘으로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 아님을 본인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아브라함 자신의 명예심이나 자존심을 고려한 전쟁도 아님을 알고 있다. 이 전쟁과 승리의 의미를 알려준 분이 바로 말기세덱 이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했는데 이는 자신의 얻은 전리품의 전부를 드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멜기세덱이 중심이 되는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자신의 힘과 능력이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아니했다는 것은 자신은 그저 전쟁에 초대된 자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전쟁은 멜기세덱 중심이다. 시편 110:1-2과 4절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데리고 전쟁을 하는데 정작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 오른편에 계시는 주께 있다는 것이다. 그 주님이 바로 아브라함이 만났던 그 맬기세덱과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멜기세덱의 기능으로 인해 모든 하나님이 개입하는 전쟁은 승리가 주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속의 왕들은 힘과 완력으로 백성을 통치하고 지배하지만 멜기세덱은 제사장의 제사 행위 그 자체로서 자기 백성을 통치하는 것이다. 다른 왕들은 전장에 나가서 앞장 서서 칼 들고 전쟁하며 통치를 하는 반면에 제사장으로서의 왕인 멜기세덱은 조용히 제사 지내고 기도만 해도 전쟁에서 승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제사 자체가 곧 승리의 비결이요 무기요 통치 방식이 되는 것이다. 참된 제사에서는 의가 나오고 그 의가 거룩되지 못한 하나님의 원수를 쳐부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라 오실 주께서 하나님의 원수를 격파하는데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 자신은 하나님의 전쟁에 초대 받은 것이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선물로 준다. 이것은 가나안 땅에서 나온 생명의 산물이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떡과 포도주 같은 자신의 생명을 주신다. 하늘 나라의 생명을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한다는 증거이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같은 일생이 될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도 자신이 개입한 일이 늘 승리로 끝맺기를 간곡히 소원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과 타인으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전쟁에 불과하다. 이런 전쟁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 받지 못하며 정말 하나님의 전쟁에 초대 받은 자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서 또 다른 분의 개입을 느끼게 된다.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있어서 지금도 멜기세덱 같은 기도를 하시는 분이다. 그분의 기도 덕분에 우리가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자가 오늘날의 아브라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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