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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주보] 잃어버림과 되찾음우리교회마가복음

[주보] 잃어버림과 되찾음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69)

《 설교 요약 》 2009년 9월 27일

〈 지난 주 설교 요약 〉

개인용도의 천국이란 없습니다. 사람들이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는 인간들이 예수님을 꼴보기 싫어하고 예수님의 방식을 거부하는 증거들이 가득 실려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가지고 예수님은 천국 갈 사람을 지옥 갈 사람으로부터 격리시키십니다. 기적이나 인간의 지혜로는 천국에 못갑니다. 구원이란 깨달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입니다.

〈이번 주 설교 요약 〉

마가복음 15:33-37 버림받으신 예수님

버림받았다는 말은 하나님 곁에서 떠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과 은혜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하는 바대로, 악인이든 선인이든 가리지 않으시고 햇빛과 공기를 주시고 비를 내리워주셨고, 별빛과 달빛을 제공했습니다. 아는 사람들은 압니다. 해와 달과 별 자체가 하나님의 자비요 인자하심인 것을 말입니다.(시 136:8) 그런데 누구보다도 이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를 한 몸에 받으신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로부터 도리어 버림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심오한 일은 영원히 버림받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도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게 되는 그런 절차와 과정을 겪게 하십니다. 버림받은 적이 없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도리어 버렸다고 다시 되찾음 받은 적이 계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구원받을 모든 이들은 이 과정에서 이탈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도 몸을 휘감고 있는 하나님의 프로그램입니다. 로마서 8:32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그 어떤 인간의 행위가 침투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악마의 행위도 침투될 수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버리시고 자기 아들을 도로 찾으시는 작업을 행하십니다. 이 도로 ‘찾음’의 과정에 소위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될 자들이 같이 참여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성도들만이 압니다. 버려지지 말아야 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버려짐으로서 이미 버려진 자들 속에서 도로 찾아야 될 하나님의 자녀가 찾아지게 된다고 말입니다. 이 일은 곧 정작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버림받아야 될 자라면 결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일은 없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제7권 40 교회설립 (2001. 5. 4) 2009년 9월 27일

대한예수교 장 로 회

우 리 교 회

표어 : 복음으로 구원

담임 목사: 이근호

시무 장로: 최종훈, 강구만

협동 장로: 이종성

반 주 : 한명숙, 양선하

주소: 701-771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215(팔공보성APT상가 3층) .

교회 홈페이지 : http://www.woorich.net .

노회 홈페이지 : http://www.crossvillage.org .

☏ 교회 : (053) 983-7464 010-3511-0172 사택 : (053) 986-0172 070-7569-0172 e-메일 : knowcross@hanmail.net .

◈ 집 회 시 간 안 내 ◈

주일 낮 예배

오전 11:00

중고등 예배

오전 12:40

주일오후예배

오후 2:00

수요일 예배

오후 7:30

아동부 예배

오전 12:00

주일 낮 예 배

오전 11시 사회: 이근호 목사

※개회 송영 ............................. 묵 도 ................................. 반 주 자

※신앙 고백 .......................... 사도신경 ............................... 다 같 이

※개회 기원 .......................................................................... 사 회 자

※교 독 문 ............................ ( 40 ) ............................... 다 같 이

찬 송 .............................. ( 539 장 ) ............................ 다 같 이

기 도 ................................................................................ 이종성 장로

광 고 .................................................................................... 광고 위원

찬 양 .................................. ( 544 장 ) ...............,.............. 사 회 자

성 경 ................. ( 마가복음 15:33-37 ) ............... 다 같 이

설 교 ............... ( 버림받으신 예수님 ) ......... 이근호 목사

※찬 송 ......................,......... ( 334 장 ) .............................. 다 같 이

※축 도 ............................................................................. 이근호 목사

※표는 일어납니다 【 광 고 】

1. 예배시간 정숙을 위해 노력합시다.

2. 어린아이들에게 부엌의 가스,계단.유아실,방,창문 등으로부터 보호합시다. 3. 11월 중으로 세례식 있습니다. 받으실 분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오후 예배

오후 2시 사회: 이근호 목사

개회송영 ........................... 묵도 ................................ 반 주 자

찬 송 ............................ ( 188 장 ) .......................... 다 같 이

기 도 ...................................................................... 김휘동 집사

성 경 .............. 사무엘상 30: 1- 8 ............... 사 회 자

설 교 ............... 다윗이 해야 될 전쟁 ............. 이근호 목사

찬 송 ........................... ( 388 장 ) ........................... 다 같 이

폐 회............................................................................ 사 회 자

수 요 예 배

오후 7시 30분 사회 : 이근호 목사

묵 도 .......................................................................... 다 같 이

찬 송 ........................... ( 135 장 ) .......................... 다 같 이

기 도 .......................................................................... 다 같 이

성 경 .................. 예레미야 8:17-22 ............ 이근호 목사

설 교 .............. 하나님의 조치와 선지자 ......... 이근호 목사

찬 송 ........................... ( 500 장 ) .......................... 다 같 이

축 도 .................................................................... 이근호 목사

첨부파일 : 우리교회090927주보.hwp (32.0K), Down:10

우리교회

09-09-21 16:07

"버림의 신학"과 "되 찾음"의 신학

言約硏究(언약 연구)

xian | 조회 12 | 09.07.12 18:04

http://cafe.daum.net/xingyuanxiaoqu/AcpM/121

◈ 버림의 신학에 대해서

*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몰려온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인자가 그들을 같이 하나님께로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돌아가!' 라고 해서 그들을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하늘나라에 갈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즉, 십자가라고 하는 것이, 낚시 줄에 매달려서 구원받으려고 하는 인간을 예수님이 십자가로 데리고 가서 자신이 죽어버리는 것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셨는데, 어떤 인간이 육의 힘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인가? 예수님은 약속에 의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다 죽게 만들고 예수 안에서 예수님이 다시 살리시는 것이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기독교란 ? -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약속으로 구원할 때, 죽은 자들 가운데서 아버지의 뜻에 의해서 선택된 자들만 다시 끄집어내는데, 이것이 기독교라는 것이다.

* 그러니 십자가가 얼마나 중요한가? 이러한 십자가를 모르면, 인간의 구원에 대한 의지와 욕구가 긍정이 되고 마는 것이다. 부추겨 주면 덩달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진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무엇을 경험하는가? 자기가 십자가에 죽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그래서 사도바울 같은 경우에, 자기가 부활에 이르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러 간다는 것이다. 그 십자가가 있는 자리가 로케트를 쏘아 올리는 나사(NASA)의 휴스턴과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 그 어떤 인간도 자기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다.

*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과정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됨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도 십자가에 참여하게 되고 부활에도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말이다.

* 같은 죽음이라도 성도의 죽음은 순교이고, 성도가 아닌 자들의 죽음은 몸부림치고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죽음인 것이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서는 이미 영이 온 것을 부활을 일차적인 부활로 보고, 몸의 부활을 이차적인 부활로 보는 것이다.

* 발트 슈미탈트의 [ 불트만의 성서의 실존론적 해석 ] - 책상 앞에 두고 계속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왜 버림의 신학이 있어야 하는가? -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서 (씨 뿌리는 비유를 중심으로)

* 누가복음 15장의 3가지 비유 - ① 잃어버린 양의 비유
②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
③ 잃어버린 둘째 아들(탕자)의 비유

(눅 15: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눅 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 버림의 신학과 되찾음의 신학 - 이러한 일이 벌어지려고 하면, 반드시 잃어버림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되찾음의 신학이 있기 위해서는, 몽땅 이끌고 십자가에서 버리는 신학이 먼저 있고 난 다음에 되찾음의 신학이 성립되는 것이다. 잃어버린 적이 없는 99명보다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으로 인해서 하늘나라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눅 15: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눅 15: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라고 하는 고백이 나와야 한다. 정말 내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종으로서 살아가려는 신앙이 되어야 진정한 신앙이라는 것이다. 구원받았다고 입닦고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시편에도 이런 말씀이 나온다.

(시 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 문지기의 믿음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가? 교회의 사찰로 있음도 감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목사로서의 대우가 없으니, 사례가 적다고 불평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 질문 - 누가복음 15장의 이러한 비유와 16장의 '불의한 청기기' 와의 비유가 상관이 있는가?

* 답변 - 상관이 있다.

(눅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 16: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눅 16: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여기서 작은 것이란 재물을 의미하고, 큰 것이란 하늘나라로 본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돈을 사랑하면서도 돈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모르고, 돈을 사랑하면서도 하늘나라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네가 돈도 어디서 온 것인 줄도 잘 모르면서 어떻게 하늘나라에 대해서 가르치느냐?' 라고 하시는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재물의 종이 되어 있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없다는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를 통해서 그 당시 유대인들을 완전히 비꼬는 것이다. 돈에 관해서는 이 불의한 청지기가 너희들보다도 더 낫다는 것이다.

* 작은 것(돈)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어떻게 하늘나라의 본질에 대해서 안다고 떠들어대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누가복음 15장의 맏형 이야기하고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 탕자의 비유에서는 둘째 아들도 중요하지만 맏형도 함께 언급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맏형 이야기를 예수님이 하지 아니했다면 유대인들에게 욕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둘째 아들의, 탕자의 비유는 유대인들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인 것이다. 자기들도 하나님께 돌아와서 회개해야 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 그래서 이 맏형에 대한 비유로부터 16장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99마리의 양도 유대인들보고 하는 소리인 것이다.

* 이 말은 육적인 것을 가지고 구원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예수님이 구원할 자를 따로 뽑으시겠다는 것이다.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계속 이러한 점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이다. '구원받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라는 예수님에게 묻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러다가는 부자청년처럼 떠나고 마는 것이다.

* 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보고 구원에 관해서 묻는다든지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을 목사나 신학자들이 제일 싫어하지만 말이다. 예수님은 인간과 의논을 하시지를 않는다. 그냥 주님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믿어야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는 것은, "예수님은 나의 돗대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교회

09-09-21 16:08

"인자의 신학"을 기초로 "되 찾음의 신학"이 건설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이다.

言約硏究(언약 연구)
xian | 조회 6 | 09.07.12 18:08

http://cafe.daum.net/xingyuanxiaoqu/AcpM/122

⊙ 되찾음의 신학을 인자의 신학 위에다 건설하셨다. (책)

(막 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요 5: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무엇인가? 남에게 영광을 받고 뇌물을 받고 죄를 용서해주는 그러한 것인가? 그것은 권세가 아니고 오히려 연약한 것이다. 권세라고 하는 것은 일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고 용서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용서를 하시겠다고 하는데 왜 다른 사람이 시비를 거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안 믿어지면 신자가 아닌 것이다.

*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 것은, 조금 전에도 언급했지만, "예수님은 나의 돗대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인간 중에서 의인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의인도 아닌 주제에 무슨 입을 놀리는가? 호치킷으로 주둥이를 집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라고 하는 고백이 나와야 한다. 아버지가 측은히 여겨서 이미 가락지를 준비하여놓고 기다리는 것이다. 돌아왔다고 주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측은히 여기는 아버지의 마음인 것이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는 것이다. 그래서 큰아들이 열을 받지만, 아버지는 돗대로서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 우리가 목회자로서 목회에서 성공하겠다는 무거운 짐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닌 것이다. 교회 됨이란 것은, 십자가의 걸림돌이 있으면 교회이지, 숫자가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사실 탕자의 비유에서 어떻게 보면 형이 진짜 탕자인 것이다. 아버지와 항상 함께 있었지만 진정으로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 여기서 아버지는 아들을 두 종류로 나누고 계시는데, 아버지가 기뻐하는 요소가 아들에게 있어야 하는데, 큰아들은 자기의 소유에만 관심이 있고, 그래서 동생에 대해서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가서 창기에게 팔아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 아버지의 재산이 다 너의 소유라고 하면서 책망을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아버지의 마음이 큰아들이 아니라, 둘째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큰아들에게는 말로는 다 너의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한번도 마른 송아지라도 잡아서 잔치를 벌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버지는 큰아들은 소외를 시키고, 작은아들만을 편애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 그래서 한마디로 천국은 충격이라는 것이다. '저 놈이 다 천국에 왔나!' 라는 말이 연발 터지는 것이다. 놀라움의 연속인 것이다.

☞ 하나님의 선택, 204 페이지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 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 15: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것으로 인해서 미움을 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 속한 자의 모습이 아닌가? 예수님만을 높여서 미움을 받는 것이지, 우리가 법을 어기고 못된 짓을 해서, 사고를 쳐서 미움을 받는 것이 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 그래서 구원이라고 말할 때는 선택의 여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말하지 않는 교수들을 신자로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목사의 설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이 없다면 아무리 그 설교가 은혜롭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선택이라는 단어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고, 그 정신이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능성을 두는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에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교회의 역사나 전통, 교회성장 등이 되는 것이다.

◈ 종말의 특징 - 오직 하나님의 선택으로만 구원을 받는 痼甄?

* 종말 이전까지는 인간이 자기 할 일을 다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가 와도, 성전을 지어도, 왕을 주어도, 예레미야가 와도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종말 때에 하나님 이름의 기능으로 자기 택한 백성을 건지는 것이다. 이것을 종말론적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종말을 어느 시기부터 잡을 수 있는가?

* 답변 -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했을 때부터 종말이 온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를 왕으로 인정하는 왕을 주었는데, 그래도 깨어져 버린 것이다. 더 이상은 없는 것이다. 마태복음 21장의 악한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아들을 보내었는데도 죽여버리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때부터 종말로 보는 것이다. 박살이 나는 것이다. 다윗 시대도 포괄적으로 하나의 틀을 만드는 의미에서 종말로 드러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모든 계시는 다 드러나는 것이다. - [ 복음의 회복 ] 참고

☞ 하나님의 선택, 205 페이지

⊙ 선택되지 않고서는 이 종말의 때에 인자의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다. 세상이 지니고 있는 거짓 구원관의 허구성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은 십자가뿐이다. (책)

* 이렇게 종말이라는 말이 나오면, '아, 이제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가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만이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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