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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6장 주석자유게시판창세기

창세기 6장 주석

이름 : 이진용(IP:222.99.120.160)

창세기 6장

심판의 당위성은 확실하게 인간의 범죄에 있다. 이러한 성서의 주장은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결코 묵과하거나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할 수 없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범죄의 시발점을 하늘과 땅의 요소의 혼합에 있었다고 말씀하신다. 온전히 대치되어야 하는 것끼리 서로 섞였다는 것은 인간적인 것이 신적인 것에 가미된 기형(畸形)적인 사상을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고대시대에 명성을 날리는 용사요 거인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요소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 못 된다. 오히려 자체에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창조취지를 재 천명할 필요를 느끼셨다.

결코 죄악을 행사하는 인간은 창조할 때부터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분명 생령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육체가 되어 있다. 그들의 생존은 길어봐야 12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단명은 그들 세계에 하나님이 어떤 의도에서 급작스럽게 개입했음을 시사한다. 그들의 죽음이 단지 자연사가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 형식으로 이루어 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또 다른 관심은 노아라는 개인에게 특별 나게 발휘되고 있었다. 하나님은 죄악세상을 심판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취지를 노아의 운명에다 담아두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영원히 인간세상에서 적용되는 법칙이 되게 하셨다. 이제 새로운 질서는 노아가 보여주는 일생 속에 담겨 시작이 된다.

노아 안에 새로운 질서가 배태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언약중심의 세계이다(또는 계약). 아담에게 말씀하신 그 약속이 이제 언약이란 구체적 형식으로 인류역사 안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 언약의 기초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노아가 당대의 완전한 자요 의인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노아 개인의 자질이나 노력,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은 그 의인과 다른 이의 죄악을 대비시킨다. 노아는 사실 하나님의 작품이었고 그 작품을 가지고 언약을 구성하게 된다. 이렇듯 언약은 심판을 전제로 한 언약이요 하나님의 '쓸어버림' 가운데서도 살아 남기 위한 언약이다.

저주와 멸망을 전제로 하지 않는 언약은 그 의미가 사라진다. 하나님의 진노를 전제로 하지 않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종말과 끝 날을 앞둔 언약이기에 언약 안에 있는 자는 항상 종말 안에 있는 자가 된다. 그들의 등장 자체가 곧 종말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했는데 방주제조는 심판에 동원되는 수단을 암시해주는 동시에 구원 이후 이 땅에서 새롭게 시작될 세계에 살림마련을 위한 조치도 된다. 하나님은 어디서부터 빠져 나오는 경험을 토대로 새 세계를 건설하고 난 뒤에도 구원의 요소를 제거하지 않는 것이다. 구원이란 새 창조의 영원한 본질로 남는다. 구원을 위한 언약이 그 재료가 된다.

즉 노아는 새롭게 정비될 땅의 영원한 중보자가 되는 것이다.

이후의 모든 육축과 새들은 노아의 혜택을 입지 않은 적이 없을 것이며 다시 홍수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도 말할 것도 없이 노아 혜택의 결과이다.

이렇게 생명이란 노아의 은혜가 함유되지 않는 생명은 없다. 많은 이방인들은 그 모든 은총을 자기 조상이나 해와 달과 별과 기타 크고 힘센 짐승이나 신기한 자연물에 돌렸다. 이것은 당연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노아 언약의 혜택 속에서 있으면서도 그들은 언약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항상 외부로부터 한시라도 도움을 입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자신도 남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야 할 책임도 동시에 지니게 된다. 좋은 것은 자기 탓이요 나쁜 것은 남의 탓으로 돌리는 습성은 결국 하나님까지 거추장스러운 분으로 간주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 편리를 위하여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다. 또한 교회라는 조직체를 위한 분도 아니라 다만 그분의 은혜에 모든 것으로 응답하는 그들이 바로 진정한 교회이다.

하나님이 심판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동행할 수 없다 그들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동행한 사람은 노아 한 사람뿐이다. 노아와의 동행 이유는 에녹과 같은 관점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사명은(창5:29) 노아란 이름을 지어주심으로 노아를 통해서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땅의 안식을 회복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아를 찾아가신다. 예수님이 노아 때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했다고 한다. 창6장의 악함은 음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소돔 고모라의 경우이다. 예수님이 저주했던 벳세다 고라신은 음란하고 다르다. 예수님과 그 제자의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다른 신을 섬긴 음란으로 본다. 먹고 마시는 것은 인자의 때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 죄이다. 그래서 새로운 약속을 하신다. 노아의 언약이다

6:1-6

2절에 인간의 본능에 대해서 육체가 됨이라 라는 것이다. 육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이 동행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누구든 '육체'라고 하나님으로부터 불리게 된다.

하나님의 간섭이나 동행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당연시되는 그런 분위기가 우리가 사는 인간 세계이다. 이러한 상식화된 독립적 성향의 생각은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종족으로부터 이미 출발이 된 상태이다.

3절에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중대한 결단은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게 되는 일이다.

육신에서 육신 아닌 것이 되려면 로마서 8:12-14에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신에 의해서 동행할 때만 육신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있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육신, 즉 육체가 되어 죄 아래 팔려있는 상태인 것이다.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은 성령의 인도를 말하고, 성령의 인도란, 십자가 능력으로 인도됨을 말하고, 십자가 능력이란 곧 죄 용서함의 능력이다. 따라서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은 '죄 용서 하심'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다.

아무리 죄가 커도 용서함은 그것보다 더 큰 권력으로 작동을 한다. 세상 끝을 생각해 볼 때 죄 용서함 보다 더 큰 행운과 축복은 없다. 그것은 한 번이 아니라 늘 평생을 따라 다니면서 큰 용서함을 실시해 주시는 성령의 인도함을 이제 누구에게도 자랑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악한 세계 밖으로 나와서 홀로 거룩하게 살아보겠다고 장담해서는 아니 된다. 그런 식으로 도피한다고 해서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불신자와 혼인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으로 하나님의 아들 되는 것이 아니다. 불신자와 관계를 끊을 생각하지를 말고 도리어 그들에게 없는 것을 알리는 기쁨을 가져야 할 것이다.

6:5-8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창세기 5장에서 보았다. 동행이라는 것이 단순히 자신의 구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늘 나타내면서 진행된다. 그 상황이 무엇인지 유다서 1:15절에 나와 있다.

에녹은 단지 구원받은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선지자이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전해도 실효성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실제적으로 말씀대로 이루어져야 되는 것이다.

7절에 에녹에게 내린 심판의 저주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된다. 선지자가 미리 예고한 바에 의해서 인간들이 갑작스러운 심판이라고 하나님께 항의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인간들이 저주를 받는 이유는 5절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인간의 마음이 항상 악하다는 것이다. 늘 악한 마음이고 또한 거기서 나온 계획도 항상 악하다는 것이다. 로마서 1:28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항상 합당치 못한 일과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신다. 자신의 마음의 주도권을 하나님에게 양도하지 않으려고 투쟁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 안에 하나님이 있지 않고 자기 자신 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것이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자기를 최우선적으로 섬기는 생활을 할 것이 뻔한 것이다.

악이고 선이고 모두 마음의 문제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마음의 수준은 신명기 6:5절에 그 대답이 나온다. 마음의 일부를 쪼개어 그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다 드려야 한다. 마음의 전부를 바치라는 말입니다. 조금이라도 남겨 두지 말고 말이다. 이런 마음은 예수님만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오늘날 나름대로 언약이 있다. 히브리서 8:9-10에 새 언약의 내용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돌판 삼아 마음에다 말씀을 새기신다는 것이다. 마음의 주도권이 완전히 하나님께 넘어간 것이다. 우리 마음이 항상 완전하다는 말이 아니라 마음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언약이 주는 은혜이다. 노아가 이런 은혜를 받고 살아갔다.

이런 은혜를 못 받은 자는 마태복음 15:7-8에 형식적으로 "하나님, 하나님"을 외치나 마음은 전혀 무관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마음을 고치기 위해 오셨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좋아해야 하며 흠모하고 사모하고 사랑해야 한다. 이런 마음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6: 9-17

온 세계가 물에 잠겨버렸다. 이 홍수가 자연의 우연적인 부조화로 생긴 일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대 홍수가 일어났다. 세계의 움직임은 그저 자연의 조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힘으로 자연을 상대로 싸울 것이 아니라 하나님하고 해결해야 될 문제이다. 누가 일으켰느냐에 대해 관심을 두어야 한다. 화산이나 지진이나 홍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을 야기 시킨 하나님에 대해 주목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연의 존재는 믿지만 하나님의 존재는 안 믿고 하나님을 제쳐놓고 살고 싶어한다.

"노아가 은혜를 입었다"라는 말씀은 노아조차도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주시는 것은 우리 스스로 버텨내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우리의 문제점을 발췌하기 위함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이 던져주시는 사태에 대비할 수 없는 존재이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사건이 인간의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이다.

은혜라는 것이 은혜 받는 자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은혜 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전파하기 위해 은혜를 주시며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안에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꼭 심판해야만 하는 이유가 담겨 있게 된다.

은혜를 입은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삶이 되는 것이다. 노아의 삶이라는 것은 곧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꼭 멸망을 받아야 되는 삶인지를 보여주는 삶이다.

노아는 은혜를 입고 난 뒤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는데 방주를 만들라는 것이다. 방주에 노아가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노아의 삶이 갇혀 있는 셈이 된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담겨 있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밀한 사랑의 한복판에 노아는 서 있다. 하나님의 은총의 지배와 통치에 둘러싸여 있는 삶이 바로 노아의 삶이요 이것이 곧 은혜를 입고 사는 인생이다.

온통 사방이 하나님의 용서하심이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세계이다. 이렇게 볼 때에 노아 이외의 사람들의 삶은 무척이나 개방되고 자유자재로 활개 칠 수 있는 삶으로 보이지만 이는 곧 신을 삭제한 삶이요 신의 지시와 간섭을 배제한 삶이다. 자기 자신이 절대적 신이 되어 있는 개방된 삶이다. 이들은 사명도 아무것도 없는 삶이다. 자신이 곧 신이기에 오직 자신의 명령 따라만 사는 인간들이다. 은혜를 입었으면 은혜만을 드러내는 사명자 된 것 그 자체만으로 감사가 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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