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04b 울산강의-출애굽기4장
20090904b 울산강의-출애굽기4장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48)
20090904b 울산강의-출애굽기4장
(강의:이근호 목사)
사람이 학창시절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첫사랑을 배태한 만들어낸 환경 안에서의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 거기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이미 환경이 바뀌어버렸으면 그 사랑도 바뀌어야 되는데 환경은 바뀌어버렸지 옛날 그때 좋았던 첫사랑은 그립지 그러니까 첫사랑을 데려오면 환경도 바뀌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막상 이십 년, 삼십 년 지나서 첫사랑 만나보면 그때 그 분위기 아니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인간이라 하는 것은 세포로 돼있고, 물질로 돼있거든요. 물질로 돼있으면서 여기서 물질을 지배하는 그 무엇이 있어요. 그걸 일단 영으로 할게요. 인간은 물질로 돼있고 기계인데 이걸 지배하는 어떤 영이 있는 겁니다. 이 기계는 지금 움직이죠. 인간은 움직이잖아요. 교도소에서도 움직이고, 군대도 움직이고, 병원에서 아파서 툴툴거리면서 움직이고 있다고.
움직이는 그것이 제가 아까 이야기했듯이 뭔가 환경 따라서 어떤 사람은 A로 움직이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움직이고 당기는 곳이 움직임이 다 달라요. 같은 환경인데 감사하고, 미워하고 그렇다. 뭔가 당기는 것이 달라요.
다를 때 움직이는 이 힘을 기존 세상에서는 ‘법’이라 합니다. 결국 이건 뭐냐? 법이니까 선과 악에 관한 문제죠. 이걸 어떤 사람은 양심이라 하는데 인간은 비록 기계로 돼있고, 물질로 돼있지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선과 악의 용량에 따라서, 선이 많은 사람, 악이 많은 사람 용량에 따라서 그 물질은 다루어지기 일반이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렇다면 이 말이 맞습니까? 선과 악, 이런 법에 의해서 다뤄진다. 그러면 이 법은, 양심은 어디서 나오느냐? 이거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정답을 모르겠다는 거예요. 왜 내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지 그걸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걸 다른 말로 하면, ( ) 내가 왜 그것을 원하는지 내가 모르겠다.
여기 만약에 물이 있다. ‘물 먹고 싶다.’ 하면 되는데 ‘왜 나는 물을 먹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 말입니다. 그럼 물을 안 먹으면 그걸 누가 빼앗아 가면 이 나쁜 놈 하고, 어떤 사람이 물주면 좋은 사람이라 하거든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그러한 기계로써 움직여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거는 히브리인들이든 애굽 사람이든 구분됩니까, 구분 안 됩니까? 구분 안 되지요. 히브리인들도 양심이 있고, 애굽 사람도 양심이 있고. 그런데 제가 아까 이야기했듯이 하나님께선 똑같은 인간은 뭐로 나눈다? 한쪽을 이스라엘로 만들고, 한쪽을 애굽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애굽의 대표자가 뭐냐? 강퍅한 것. 아주 고집 센 것, 자기밖에 모르는. 이스라엘 특징은 뭐냐? 감사거든요. 감사하며 살라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강퍅과 감사가 나오고 구분되기 이전의 원상태, 원상태의 모든 인간들은 제가 아까 설명한 것처럼 인간은 기계 외에 뭔가 영적인 요소가 있는데 영적인 요소는 뭐로 구성돼있다? 법. 다른 말로 하면 로마서 7장에 보면 법을 양심이라 하거든요. 이방인에게는 양심이 있다 하거든요. 유대인들에는 법이 있고. 법적 감각, 양심 감각 이런 게 있어서 내 속은 선을 원하지만 또 다른 법이 있어서, 내 안에 악이 있어서 내가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 말이죠.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이 말은 뭐냐 하면, 사람에게는 두 개의 층으로 돼있는데 하나는 있고, 하나는 겉에 있는데. 겉에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고, 안 쪽은 뭡니까? 악을 좋아하고 선을 싫어하고. 두 개의 어떤 것이 같이 묶여져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층이 뭐냐? 성령 받았기 때문에 이걸 이야기할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은 세포로 돼있고, 물질로 돼있는데 세포는 단백질로 돼있으니까 그냥 물질이에요. 근데 물질을 지배하고 움직이는 것은 어떤 법이다, 양심이란 말이죠. 양심을 분해해보니까 선악으로 돼있고, 인간의 양심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한다. 하지만 사도 바울에 의하면, 인간은 그것 말고 악을 좋아하고 선을 싫어하는 이것이 껍데기에 있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것보다 더 우세해요. 더 힘이 센 거예요.
이러한 선과 악을 유발시키는 자극하는 것은 외부에서 온 다른 더 바깥층부터 왔다는 겁니다. 율법이 오게 되면 사람은 잠자고 있는 악을 자극을 줘서 악으로 하여금 계속 악으로 유지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점점 어려워지죠. 복잡해요. 너무 어려운 건 생략하고. 하여튼 우리 속에 악이 있는 이것을 성령을 받은 사람만, 다른 층, 영적인 층에 있는 사람만 육은 이런 구조로 돼있다는 것을 파악하는 겁니다.
일단 그렇다 치고 여기서 제가 진도 나가고 싶어요. 다시 출애굽 돌아와서 출애굽 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과 무엇을 분리한다? 여러분 답변해 보세요. 아시니까. 애굽과 이스라엘을 분리했다. 이렇게 분리한 기준은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가를 때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애굽은 아직 미지수고, 이스라엘도 아직까지 미지수. 이스라엘이 뭔지 모른다 했어요.
그런데 애굽이 되기 위해서는 애굽 같은 환경도 함께 만들어져야 되고, 이스라엘 되기 위해서는 환경도 같이 만들어져야 되는데 이렇게 애굽과 이스라엘로 갈라지는 원재료는 이스라엘과 애굽과 관계없이 둘 다 동일하게 무엇에 갇혀있다 했습니까? 선악. 이걸 법이라 했고, 선악과죠. 선악과 따먹었잖아요. 인간은 법에 의해서 이거는 선한거야, 이거는 악한 거야. 법이라 하니까 어렵네. 양심, 양심이 법이거든요. 이게 제 말이 아니고 로마서 7장에 나옵니다. 이방인에게는 양심이 율법의 기능을 한다 했으니까. 로마서 2장에도 나와 있고, 7장에도 나와 있고.
양심이 있어서 양심이 법으로 해서 그건 나쁜 거야, 이건 좋은 거야, 판정을 내립니다. 판정을 내리는 그 환경 따라서 물질로 돼있는 이 세포는 조정 받게 돼있다 이 말이죠. 선악과라 하는 것은 물질에서 뿜어낼 수 없는 다른 층이 있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인간은 육체로 돼있다. 이 육체가 육체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뭉개는 게 아니라 다른 외부에 둘러싼 벡터라 했지요. 다른 힘에 의해서 무너진다. 이렇게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람들의 양심이 만들어낸 종교성이에요. 까불면 맞는다.
어린아이가 있어요. 여러분, 어린이들은 자기 육체를 자기가 감당을 못합니다. 육체를 조정할 수 있는 외부에서 통째로 빌려와야 됩니다. 이 외부가 누구냐 하면, 아빠, 엄마에요. ‘엄마, 내가 뭐하면 되지?’ 자꾸 묻는 거예요. ‘아빠, 뭐하면 돼?’ 나라는 세포 덩어리를 어떻게 굴리면 나는 아빠한테 사랑 받을 수 있고, 엄마한테 사랑 받을 수 있어? 라고 자꾸 묻는 거예요.
이 묻는 게 뭐냐? 엄마, 아빠 흉내를 내는 겁니다. 아빠가 욕을 하면 아빠가 욕을 해도 되는 줄 알고 자기도 욕을 해요. 엄마가 나쁜 짓하면 자기도 엄마가 나쁜 짓하는 것처럼 되는 줄 압니다. 엄마가 늦잠 자면 애도 같이 늦잠 자요.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인간의 물질은 영적인 것으로 항상 이불처럼 덮이지 않으면 물질이 어떻게 돌아가질 않습니다. 뭔가 덮여야 돼. 그러니까 아빠, 엄마의 잔소리를 가지고 양심이 됩니다. 이게 법이 돼버려요.
그런데 아빠, 엄마는 자기 외부인이잖아요. 자기 몸 밖의 다른 신체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걸 아까 이야기한 아이의 커가면서 나오는 환경이 되는 겁니다. 환경에 따라서 사는데 애가 청소년기 되면 이제는 환경에 따라서 일방적으로 받는 애에서 자기가 환경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좀 컸다 이거거든요. ‘나도 좀 컸으니까 판단력이 있으니까 이제는 아빠, 엄마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줘. 휴대폰 사줘. 컴퓨터 바꿔줘.’ 자기가 환경을 바꾸려 해. ‘엄마 머리 좀 바꿔. 엄마, 옷 좀 다른 옷 입어.’ 애가 간섭해요. 심지어 독일에서 간섭해요. 전화해서. 멀리서 간섭해요. 원격조정해요. 왜냐하면 아빠, 엄마는 이제는 자기와 뗄 수 없는 자기 환경이에요. 그 환경 때문에 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를 위한 환경으로 바꿔지는 거예요.
여기서 이걸 가지고 학자들은 외부를 영적인 것을 영적이라 하지 않고, ‘타인’ 또는 ‘타자’라 하죠. 쉽게 남. 예수님을 믿었다. 어떻게 믿느냐? 예수님한테 복종해서 경배하며 믿습니다. 신앙생활 한 십 년 한 그 다음부터는 뭐냐 하면, 예수님한테 많이 복종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어떤 예수냐 하면, 내 소원을 들어주는 예수여야 한다는 본래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요.
제가 아까 목사님들 하고 이야기했지만 순복음교회가 한국교회 평가하면서 저 인간의 본성을 모르고 껍데기가 종교 생활하는 걸 바보 같이. 껍데기를 확 벗겨버려라. 사람들이 교회 나오는 목적은 세 가지밖에 없어요. 하나는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걸 확정짓고 싶고, 두 번째는 부자 되고 싶고, 세 번째는 몸 건강한 거예요.
순복음은 세 가지를 다 주는 겁니다. 방언을 하게 되면 성령 받은 사람 되니까 구원받은 사람 되고, 그 다음에 기도하면 부자 되고, 그 다음에 병 낫고. 이게 민중들이 원하는 기본적인 종교성이잖아요. 그래서 그게 삼박자 구원 아닙니까.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건강하기를 원하노라.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힘이라 하는 것은, 바로 내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인간이 선한 사람 되고, 부자 되고, 강건하고 이것을 위해서 누가 타인이라 했어요? 예수란 타인, 하나님이란 타인, 성령이란 타인, 목사란 타인을 자기에게 덮어씌우기를 원할 때 이 사람은 교회를 나옵니다. 자기가 만든 환경이에요. 이런 환경되기 전까지는 환경에 대해서 순응하다가 어느 정도 된다 싶으면 자기를 위한 환경으로 바뀌는 겁니다.
특히 장로, 오래된 집사, 헌금 많이 하는 집사, 개척교회 하는 목사. 주님한테 한다 해놓고 나중에 결국 자기 소유의 교회가 돼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는 정당하고, 자기 야심을 이룰 수 있고, 자기 선함을 알 수 있는 그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장독 열고 끄집어내잖아요. 이런 것이 인간이라면 분리를 시킬 때 어떻게 분리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등장하죠. 히브리인들도 이렇고, 애굽인들도 이러니까. 이쪽은 강퍅한 쪽으로 끌고 가고, 이쪽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쪽으로 끌어당기는 작업을 중간에 개입하는 인사를 통해서 분리해야 되니까. 이 중간에 개입하는 사람이 모세입니다.
모세는 뭡니까? 모세는 이런 인간하고 다릅니까? 똑같잖아요. 모세 몸에 뭐가 감겼다 했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프로그램이 칭칭 감겼다 했지요. 그걸 하나하나 풀어내면 모세가 움직이는 곳마다 무슨 일이 터진다? 모세가 쥐는 지팡이마다, 모세가 손을 집어넣을 때마다 뭐가 되겠어요? 모세가 지팡이 던지니까 뱀이 되고, 모세가 손을 집어넣으니까 문둥병 되고, 집어넣으니까 멀쩡하게 되고, 모세가 물을 떠서 육지에 부으니까 피가 되고.
그러니까 모세가 가는 곳마다 분리작업을 해야 되는데 분리작업하려면 모세가 하나님의 정보와 프로그램으로 칭칭 감은 것처럼, 감았다는 말은 외국영화에 보면 주인공이 여기에 총알 칭칭 감아 들고 다니는 그것 생각하면 됩니다. 자기 몸에 감긴 모세가 프로그램이 조금씩 풀릴 때마다 이쪽은 악마적인 프로그램이 감겨야 되고 바로 왕부터 해서 애굽을 칭칭 감아야 되고, 이쪽은 뭐로 감겨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는 사랑이, 용서가 칭칭 감겨야 되겠지요.
그렇다면 모세한테는 뭐가 감겨야 돼요? 무엇이 강퍅이며 무엇이 사랑인가를 양쪽 다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같이 감겨있어야 되겠죠. 왜 모세는 그래야 하느냐 하면, 아직도 이스라엘, 애굽, 히브리인 이 사람들은 선과 악이라는 법에 종속돼있어서 인간적인 그런 식의 선악적인 그런 단계의 영적 존재에 불과하거든요. 이것이 둘로 쪼개지면서 하나는 애굽으로, 하나는 이스라엘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에 하나님께서 작업에 들어가요.
이 작업에 들어갈 때 방법이 뭐냐? 인간은 뭐로 돼있다? 물질로 돼있다. 물질을 조정하는 것은 인간의 법이다. 여기다 한 층을 더해요. 이게 뭐냐 하면, 약속. 약속 층. 다른 말로 말씀 층.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는 게 뭐냐 하면, 교회 나오면 구원받습니까? 아니요. 그러면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법과 물질로 돼있는 이 층에서 문을 열어서 약속 층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 사람은 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문이 열리죠.
물질로 된 층은 바퀴벌레 수준이잖아요. 그게 짐승이에요. ‘법이고 뭐고 나는 술 처먹고, 마약하고, 밥이나 먹고 살면 그만이지. 인생 뭐 있어. 한방이지’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 물질로. 그 다음에 ‘아니야. 인간이면 인간답게 살아야지.’ 아직까지 법 층이죠. 그렇게 해도 법과 물질은 또 하나의 환경과 실체기 때문에 서로 법 안에 있는 악마가 물질을 다룰지, 선이 물질을 다룰지 이것은 결국 악이 선보다 우세하니까 모든 인간은 판사, 검사, 대통령 되도 악이 다루죠. 이거는 성도도 마찬가지죠. 그러면 이것을 다룰 수 있는 이런 인간이 개과천선할 수 없습니다.
옛 부대에 새 포도주가 담기면 포도주가 샙니다. 찢어지니까. 그래서 새 포도주의 값을 하기 위해서는 부대 자체도 새로 만들어져야 되죠. 그러니까 옛 부대는 율법이죠. 율법으로서는 주님의 복음을 담을 수 없고, 옛 부대는 옛 술만 담아요. 그런데 새 부대는 새 술만 담는데 새 부대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침투돼야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 층에서 나온 게 침투가 되게 되면 이 인간은 달라지지 않아요. 이거는 죽을 때까지 김 성도, 우 성도라도 이런 인간은 달라지지 않고 더 노골화되죠.
나는 나 잘난 척 한 것밖에 모르구나. 아침에 눈만 뜨면 나 잘났다부터 시작해서 눈 감을 때까지 나 잘났다. 심지어 꿈속에도 나 잘났다. 꿈꿔보세요. 꿈의 주인공이 누굽니까? 역시 내가 주인공이에요. 꿈에 하나님 경배하고 이런 것 없습니다. 경배해도 경배하는 내가 잘난 존재가 돼요. 이거는 달라지지 않아요. 그대로 있어줘야 돼요.
그래서 이걸 통째로 죄가 되기 위해서 주께서 활성화시키죠. 불신자한테는 애굽 사람한테는 뭐가 없느냐 하면, 약속으로서 이걸 정당화하는, 더욱더 하나님 약속에 대해서 반격을 가하는, 도전하는, 대드는 것으로 모이게 돼있고 주님께서는 굴복시키는 사건들이 툭툭 터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건들은 세 가지 봅시다. 제가 아까 물질과 선악과, 양심 다른 말로 법, 그 다음에 여기다 영적인 층으로 세 가지로 나눈 이유는 이겁니다. 어렵기 이야기해서 말씀이 인간에게 다가왔을 때 인간은 어느 대목에서 이 말씀과 반항하느냐 이 말입니다. 여기에 창세기 3장에 보면, 정말 이런 것들은 어렵다. 하나님 오기 전에 그들은 무슨 대목입니까? 생식기관에서 뭘 느꼈어요? 수치를 느꼈죠. ‘아이고, 부끄러워라’ 안 그랬어요.
왜 그러냐 하면, 예를 들어서 손이 움직이면 가만있어. 이렇게 하면 가만있어. 그러나 아무리 인간이 다스리지 않는 온 몸에 퍼져서 발산하는 게 있습니다. 그게 성욕입니다. 번식과 관련된 성욕은 노인네가 구십이 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안 되서 못하지. 심지어 세 살, 두 살 애도 마찬가지.
이 성욕은 온 몸을 영적으로 지배해요. 그래서 성욕과 관련된 여기만 가려버리면 온 몸 전체의 수치가 가려버린 게 되는 거예요. ‘아이고, 나는 수치스럽다.’ 하는 게 아니고 ‘여기만 가리만 괜찮지롱.’ 그러니까 뭔가 성욕과 관련된 이 대목에 있어서는 전체의 수치와 자존심을 대변해주는 어떤 기관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 기관이 생식기관이 됩니다. 뭐냐 하면, 육에서 육을 낳는 기관은 DNA 같으면 하나님의 정보가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육적인 기관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는 수치를 남성의 생식기에다 할례를 행함으로 말미암아 육적인 인간과 약속의 인간을 분리시켜버려요. 다시 말해서 네가 인간 본성적으로 인간의 존재자체가 뭐냐? 자식새끼를 번식하기 위한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성욕이 없이는 그게 안 돼요. 자식이 안 되잖아요.
정신병자들하고 정박아에게 암이 없답니다. 스트레스를 안 받으니까. 그런데 암은 없어도 댕기는 건 있습니다. 성욕은 정신병자, 정박아 상관없어요. 그래서 정신병동에서 조치를 취하잖아요. 성적인 번식을 불가능한 강제적으로 조치를 취하잖아요. 놔두면 계속해서 정신병 유전자가 번식되니까.
인간의 육에서 육을 낳는 그 부분에다 주께서 어떤 약속의 흔적을 남깁니다. 너는 거룩한 백성이다. 누구든지 할례 받지 않으면 내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없다. 흔적을 남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받는 약속은 이런 인간적인 생식기능 말고 다른 방식의 자식이 태어나야만 그들이 모여서 이스라엘이 된다는 겁니다. 약속의 자녀가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뭐냐? 육의 번식이 아니라 할례와 할례의 번식으로 이어져야 돼요. 그럴 경우에만 하나님의 아들 되는 겁니다. 이게 출애굽기 4장에 보면 모세가 애굽에 내려가기 전에 뭘 안 했어요? 자기 자식 할례를 안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여 버리는 거예요. 죽인다는 말은 모세를 무로 돌리는 거예요. 모세 없는 거로 하는 겁니다.
없는 모세 생기는 것은 할례 약속 때문에 새로운 모세가 등장하는 겁니다. 할례 행했습니다. 나는 피와 관련돼있습니다. 하는 모세로 새로 등장해야 모세 같은 사람들만이 유월절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하기 전에 할례를 행한 사람만이 유월절 양의 고기와 피를 바르는 것이 효험이 있어요. 할례 없는 사람에게는 효험이 없습니다.
논리가 상당히 듬성 뛰어버렸는데 앞으로 계속 나오기 때문에 조밀하게 할 것이고요. 여기서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인간이 물질은 물질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물질을 휘감고 있는, 이거는 성경이고 뭐고 다 떼어놓고 인간이라 하는 것은, 새로운 물질을 번성하고자 하는 그 본성은 물질 온 전체를 휘감고 있다는 이 대목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휘감고 있는 성욕과 번식욕에 하나님의 영이 접촉한다 이 말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근거가 뭐냐? 근거가 바로 창세기 3장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만날 때 그들은 바로 치마를 엮어서 만들었다는 이 대목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때 인간이 죄 지었다는 반응을 어느 흔적에서 반응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과 접촉했느냐 이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에게는 할례언약이었고, ‘할례 행했어?’라고 묻는 거고, 창세기 3장에서는 성적인 것과 관련돼있고, 오늘날 우리한테는 번식욕, 그냥 이성 간에 당기는 거예요. 하고 싶다든지. 어른이 되면 왠지 당신과 관계하고 싶다. 이런 번식욕구가 나이불문, 직분불문, 목사, 장로 관계없이, 신앙생활 상관없이 연륜도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항상 나오게 마련이에요.
이것이 안 나올 때는 몸이 아플 때. 몸이 아플 때란 말은 죽음과 가까울 때. 죽음과 가까우면 번식욕구가 다운되니까. 그런데 몸이 건강하면 이 몸은 그냥 몸이 아니고 이 몸을 확장시키는 번식하는 욕구가 몸과 비례해서 같이 확대가 되면서 몸 건강하면 젊은 아가씨도 감당할 수 있어. 나이 칠십에 스무 살 아가씨 꼬시고. 우리나라 말고 외국에. 이건 여자, 남자 구분 안 돼요.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일곱 번하고. 또 젊은 남자, 서른다섯 살 연하를 사귀고 하잖아요.
그럴 때 ‘너는 양심도 없느냐’ 하죠. 그런데 양심이란 환경은 물질이 욕구한대로 양심은 환경도 수정되죠. 내가 아까 했잖아요. 잊어버렸습니까? 환경이 몸을 지배해도 몸이 어느 정도 되면 주변에 있는 법도 바꾸고, 환경도 바꾸고. 그래서 술 먹으면 나쁜 짓 하는데 직장생활하면서 술 먹은 게 나쁜 짓 돼요, 안 돼요? 세연이? 별로 나쁜 짓인지 모르겠지. 세연인 술 안 먹으니까. 입에 못 대니까. 술 먹으면 넘어오고.
이게 뭐냐 하면,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 해도 보세요. 이것 예를 드는데 성경이 약속이죠. 술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 에베소서 5장에 나오죠. 하지만 옛날 자기 몸이 술 안 먹을 때 그러니까 열두 살 때, 아홉 살 때 이 말 들으면 ‘그래 성경 말씀에 술 취하면 나쁜 짓이야.’라고 어디서 받아들입니까? 몸을 둘러싸고 있는 양심이 받아들이죠. ‘그래, 나는 술 안 먹을 거야.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술 먹고 왔어. 우리 아버지는 장로면서 나쁜 장로’ 애들이 그런다고. 엄마는 집사면서 나쁜 집사.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했는데 왜 술 취해서 들어오느냐 이 말이죠. 엄마가 그러죠. 나는 술 먹었지만 취하진 않았다. 아직 두 병은 거뜬해.
그런 식으로 살다가 이 사람이 그만 직장에서 바이어 만나고 술 먹어놓으니까 자기 몸이 술 잘 받는 몸으로 바뀌었죠. 술 받는 몸이 되니까 자기 둘러싼 양심은 악에서 선한 사람이 돼야 되니까 뭘 바꿉니까? 법을 바꿔요. ‘성경에서 술 취하지 말라 했지 술 먹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바꾸다가 나중에 진짜 술 취해버리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뭐냐? 이근호 목사가 나와요. 이근호 목사는 죄 져도 구원받는다 하더라.
그러니까 뭡니까? 이근호 목사가 말하기를 인간은 죄 져도 예수 피만 있으면 구원받는다 하더라. 이게 복음이라 하더라. 되니까 그 사람은 뭐가 오해에요? 뭐가 양심이 됩니까? 내가 십자가 복음을 믿어주는 의인이 되잖아요. 그 사람은 죄인이 아니에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내가 누구 목사님이 전하는 복음을 믿어줄 정도로 나는 그만큼 의인이 돼버려요. 그 사람은 죄인이 아니야. 죄인이 안 되니까 지옥 가는 거죠. 죄를 못 느끼는 거예요.
술 먹으면 나쁜 줄 알지만 복음으로 캄푸라치, 보상이 됐으니까 괜찮잖아. 심지어 용서받은 것도 마일리지가 돼요. 성경에 용서하라 했잖아. 그런데 너희들은 왜 날 용서 안 해. 빨리 용서하란 말이야. 나 이제 용서받았다. 그러니까 나는 정당하다. 나는 의인이다.
그러면 이게 인간인데 이런 식의 인간을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안 가고 이스라엘로 가는가? 여기에 바깥의 약속 층에서 피를 내어버립니다. 희생의 피를 내어버리면 무엇을 덮칩니까? 안에 있는 우리의 인체, 물질과 내 몸을 정당화하는 섞어빠진 양심, 더러운 양심, 선악과 양심 이것이 바깥에 피가 묻으면 이 피는 죄인으로 규정해버려요.
그런데 같은 피인데 애굽 사람들은 이 피가 뭐냐 하면, 이 죄를 심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십자가 기능이 어떤 기능이냐 하면, 하나님의 속성이 하나는 공의로움이고 한쪽은 사랑, 자비인데 십자가를 통해서 십자가를 모르는 사람은 공의로움, 정의로 두 가지 속성이라 하는 것은 로마서 11장에 나옵니다.
공의란 무슨 뜻이냐 하면, 어떤 봐주는 것 없다. 사랑은 공의와 반대에요. 무조건 용서한다. 하나는 진노의 그릇, 하나는 사랑의 그릇. 이 두 가지 속성이 하나님께 다 있었거든요. 그래서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가 두 개 있었습니다. 피조물이 선악과 아는 이상 그건 저주받아요. 선악과 따먹지 않으면 생명, 이래 되거든요. 이 두 가지 속성이 약속을 통해서 내려오게 되면, 피라는 것을 통해서 내려오게 되면 한쪽은 심판 받게 돼있고, 한쪽은 용서받게 돼있어요.
용서받는 쪽이 뭐냐 하면, 내가 이런 식으로 나를 정당화하는 자체가 죄가 되며, 이런 나는 절대로 변한다, 안 변한다? 절대로 변하지 않도록 주께서 유지시켜줘요. 이 죄를. 계속해서 유지시켜줍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나는 예수를 피를 믿었다. 그래서 나는 구원받는다.’라는 것은 뭐로 봅니까? 죄로 규정해요. 이걸 죄로 규정해줘야 너의 그런 고백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너를 둘러싼 너를 푹 젖혀버린 예수님의 피 때문에 구원받는다. 만약에 내가 착하다. 착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너에게 함께 하신 성령을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죠.
그런데 여기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더욱더 강퍅케 만듦으로 말미암아 유월절의 피 속에서도 무서운 심판의 대상으로 애굽을 조성해야 돼요. ‘조성한다’는 말 있지요. 황무지를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말은 뭡니까? 공원이 있었다는 말입니까, 없었다는 말입니까? 공원 없었는데 예산 10억 들여서 태화강을 개발해서 동그란 다리 만들고 해서 공원으로 조성했죠. 이거는 애굽을 조성해야 돼요. 이건 이스라엘로 조성해야 됩니다. 그 작업에 보통 죄 지은 인간을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이 출애굽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 피 남편 돼요. 피의 의미를 결국 유월절 피와 관련돼있는데 피를 보고 그냥 한쪽은 그냥 넘어가고, 피를 무시한 쪽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대로 임해버리죠. 그리고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지옥이 있다는 것은, 어느 강의에서 이야기했죠. 천국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지옥이 있어야 된다.
지옥에 십년 살다가 나오면 안 된다 했어요. 왜냐하면 지옥에 십년 살다 나온 경우가 생긴다는 말은 곧 어떤 사람은 천국 가도 십년만 살고 나오는 경우가 되죠. 이건 큰일 날 문제 아닙니까. 지옥 간 사람이 걱정되는 게 아니고 누가 걱정됩니까? 천국 갔다가 십년 되서 나와 버리면 또 죄 지면 안 되잖아요. 천국의 복락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옥에서 어느 누구도 한번 들어갔다 하면 나와 주면 안 돼요. 그러니까 부자는 지옥 가고 거지 나사로는 천국 갔는데 십년 후에 부자는 드디어 사면 되서 나왔더라. 이렇게 나오면 천국 간 나사로가 벌벌 떱니다. 같이 또 나오면 안 되니까.
에서는 야곱의 사랑을 위해서 에서가 미움 받아야 돼요. 그리고 야곱은 에서를 위해서 서로가 있어야 주님의 속성을 배분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는 공의의 그릇, 하나는 사랑의 그릇으로 배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피조물이라 하는 것은 피조물이 있음으로서, 존재가 있음으로서 거대한 주님이 생성되는 겁니다. 주님 가운데서 만들어지는 거죠.
그러면 출애굽기 4장 봅시다. 과연 이 말이 맞는가 봅시다. 첫 번째 기적이 뭐냐 하면, 지팡이를 던지니까 뱀이 되죠. 요한계시록에 보면 애굽을 뱀이라 합니다. 애굽이 뱀이 아닌데 뱀 돼야 돼요. 누가 등장할 때만 애굽이 뱀이 됩니까? 모세가 등장할 때만 되는 거고. 모세가 애굽 나라에 안 가고 미국가면 안 되잖아요. 모세가 꼭 애굽에 가야 될 이유가 뭐냐 하면, 그리고 더 중요한 이유는 히브리인들이 애굽 말고 다른 나라 가있으면 안 돼요. 왜? 애굽 안에 들어가 있어야 되고 자기 힘으로 못 빠져나와야 돼요.
그래서 히브리인들 주위를 애굽이 둘러싸야 되고, 히브리인들은 거기서 자력으로 이스라엘을 만들어내지 못해야 됩니다. 그래서 자력으로 구원받으면 안 돼요. 어떤 사람은, ‘나는 물은 좋은데 우물은 싫더라.’ 이게 말이 됩니까? 물은 어디 있습니까? 우물 속에 있잖아요. 죄 속에서 진리가 나와요. ‘나는 죄는 짓기 싫어. 진리만 알래.’ 그러면 안 돼요. 죄 안에서 구원이 나오고, 진리가 나오고, 사랑이 나오는 다 나오는 겁니다. 우리가 어디에 갇혀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어야 비로소 구원의 의미가 얼마나 고마운 줄 아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살게 하시고 거기에 푹 잠기고 우리가 그 세상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죠. 주일날 교회는 나가지만 교회 주일날 끝나기가 반갑지요. 다시 세상 사람들처럼 적금 넣고, 펀드하고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요. 내가 내 식대로 재미있단 말이죠. 왜 그렇게 돈 버는 걸 좋아합니까? 세 살 애가 돈 안 좋아합니다. 두 살 아이가 돈 안 좋아해요.
그러면 뭡니까? 돈 누가 좋아했어요? 아빠, 엄마가 돈 좋아했잖아요. 아빠, 엄마의 환경이 누구를 만들었다? 아빠, 엄마의 환경답게 자식 만들어놓고, 저 놈의 자식이 이제 아빠, 엄마보다 한 술 더 뜨네. 술은 누가 잘 하느냐? 아빠, 엄마가 좋아하는데 아빠, 엄마 본보고 자식이 술 먹고 난 뒤에는 이제는 술 자식이 더 세. 아무래도 젊은 몸이니까.
엄마를 둘러싼 양심적인 몸은 늙어가고 있잖아요. 이 늙은 몸을 대신해서 새 몸이 옛날 아빠, 엄마 하는 행실을 그대로 한다니까요. 보란 듯이. 그래서 아빠, 엄마가 뭐라 하면, ‘아빠, 엄마도 그래놓고. 아빠, 엄마 젊을 때 더 했잖아.’
그러니까 이 몸이 아빠, 엄마의 영향에 의해서 몸이 커가면서 이 몸은 번식의 본능을 갖고 있고, 이 번식이 오게 되면, 또 몸이 몸을 낳고 육이 육을 낳죠. 그러면 뭐가 따라 옵니까? 이 몸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환경이죠. 이 몸을 습관화시킨, 이 몸을 일으킨, 이 몸으로 만들었던 DNA가 뱀 또아리처럼 감고 있잖아요. 아빠, 엄마의 DNA가 있잖아요. 그 DNA를 누구한테 물려줍니까? 자식에게 물려주는데 자식한테 억지로 물려줍니까? 안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온 몸을 휘감고 있는 성욕에 의해서 자기는 밤에 기분 푼다고 했는데 애가 생겼어. ‘여보, 우리 작전 짜서 애 낳자.’ 이런 경우도 있지만 그러면 작전 짜서 애 하나 만들자. 해서 만들면 그렇게 만든 것은 억지가 되고 상당히 기계적이 되잖아요. 그런데 보통 서로 좋다고, 좋다고 붙들다보니까 애가 생겼잖아요. 이거는 자기 몸이 명령한 것이 아니고 자기 몸을 둘러싼 성욕이, 말할 수 없는 나도 주체할 수 없는 욕정이 내가 원치 않는 애를 낳게 된 거예요. ‘여보, 오늘밤 애 낳자. 세 시부터 네 시까지 낳자.’ 이래도 안 온다니까요. 좋다고, 좋다고 안다보니까 애가 생겨버렸잖아요. 이 애 언제 생겼지? 그때 좋다고 할 때 그때 생긴다니까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더 이상 자식 못 낳겠다 싶을 때는 몸에다 강제로 수술할 때 국가에서 시킵니까, 자기가 자발적으로 합니까? 애가 지금 둘인데 하나 더 낳으면 경제가 어렵고, 내 몸이 위태롭다. 밥 먹고 살기 힘들다. 애 열여덟 명 낳아보세요. 기가 찰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 몸을 정당한 몸 만들기 위해서, 품위 있는 몸으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강제로 끊어버릴 때 그것이 뭐냐 하면, 내 몸을 위한 환경이 내 몸을 봉사하기 위한 환경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뭐냐? 자기 몸밖에 모르기 때문에 주위 환경도 누구 위주로 한다? 내 위주로 환경을 해석을 다 해요. 예수도, 하나님도, 성경이고 전부다 하나님이여, 내 몸 부자 되게 해주시고, 건강하게 해주시고, 품위 있게 살게 해주시고, 안 아프게 해주시고, 천당하게 해주세요. 이게 일방적인 우리의 사고방식인데 이걸 평생 주께서 그렇게 몰아가신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복음이란 말이죠.
우리가 뭘 믿는다 할 때 그 믿음도 따져보면 나 믿어서 옆 사람 김 집사 좋으라고 믿지는 않잖아요. 자기 좋으라고 믿는 거예요. 그게 무슨 믿음이에요. 같은 교인들끼리 사랑이라 하는 것은 가식이고 위선입니다. 진짜 이거는 내가 원치도 않았는데 믿음이 와버리면, ‘어, 내가 원치도 않았는데 믿음이 왔는데 김 집사도 믿음이 왔네. 그럼 우리 둘이 형제잖아.’라고 할 그 짧은 순간에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사랑을 하지요.
그렇지 않고 나 구원받으려고 내가 믿어버리면 저 인간도 믿었네. 더러워서. 나 혼자 가려했는데. 천당 가서 같이 살려하니까 기가 차다. 이게 무슨 이웃사랑입니까? 이웃 질투지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오게 되면, 이 전체가 죄인데 이 죄를 은혜로 하나님의 공로로 구원했다는 순간이 올 순간 바로 옆에 있는 김 집사가 왠지 귀해 보이고, ‘저분도 소중한 것을 받았구나.’라고 생각합니다. 2.5초 동안만. 돌아서면 마찬가지지만. 그 짧은 순간만 그래요.
어떤 사람이 물어요. 이것하고 마치겠습니다. 왜 목사님은 그 짧은 순간, 짧은 텀, 왜 2초, 3초 짧게, 짧게 그렇게 이야기합니까? 왜 길게, 길게 이야기 안 합니까? 뭐든지 연속적이 돼버리면 나는 길다 해버리면 누구 것이 된다? 성령도 이미 내 것이 되죠. 나는 두 시간 가. 나는 기도하면 두 시간은 간다고. 이러면 이건 누구 솜씨에요? 주님의 솜씨가 아니고 자기 솜씨죠.
그냥 맡기시면 주께서 늘 연속적으로 두 시간이 아니라 평생 동안 인도하는데 우리 몸이 죄인이 되어서 그걸 깨닫는 순간이 2초, 3초에요. 2초, 3초 아니라도 은혜를 받고 사는데 우리가 바쁘다 보니까 죄인 된 내 몸 챙기다 보니까 잊어서 그렇지 다시 정신 차리고 보면 주의 은혜 속에 이미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현상이 있거든 여러분 이미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출애굽 4장 다음에 합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피조물 있는 이유가 날 위해서 하나님 계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 속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만들어졌음을 알았습니다. 평생 할 것은 죄밖에 지은 게 없는데 주님께서 십자가 공로로 구원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사오니 이제는 그 복음마저 내 소유로 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 자신이 주님의 소유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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