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주석
창세기 1장 주석
이름 : 이진용(IP:210.117.115.97)
어제 말씀 하신대로 우선 1장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처음해보는 작업이라 잘될런지.... 보시고 지적하시면 2장부터는 좀 나아질것입니다. maybe?
창세기
성경은 통일성이 있다. 성경은 인간의 전체를 부정하기 위해서 있다. 인간을 칭찬하기 위한 것은 없다. 성경은 인간을 부정한다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잡자. 십자가이다. 하나님이 아들을 던져 버리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의인은 없다. 하나님이 아들을 버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잘남을 나타내지 말아야 한다. 십자가에서 약속을 만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약속 하나 믿고 나왔다 약속을 포기했기에 망했다. 그 약속은 인간의 행할 수 있는 약속이 아니다. 인간이 지킬 수 없는 약속이다. 하나님만이 지킬 수 있는 약속을 던져 주었다. 인간이 지킬 수 없기에 인간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 받은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의 나라는 약속의 나라이다. 하나님만이 이룰 수 있는 약속이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했다는 법칙이 통용되는 나라이다.
신앙이 아니라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을 믿는다. 인간이 만든 것이 없다. 에덴 동산은 인간이 만든 것이 없다. 인간이 경작했다고 해서 인간의 움직임을 공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이것이 성경적 차원이다. 경작을 해도 그 모든 공로는 인간에게 돌아가지 않는 것이 성경적 법칙이다.
시 65:9-13
9)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10)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
11)주의 은택으로 년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12)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13)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성서의 중심사상을 하나로 잡는다는 것은 어렵다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경험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양한 경험들이 하나의 공통적인 확신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 때문에 중심개념에 대한 기대 또한 버릴 수가 없다.
그들이 본 것과 느낀 것과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같이 참여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 신앙이라는 점에서 어떤 동질성을 형성해 보고자 하는 시도 곧 성서해석 작업의 한가지 목적이 될 수 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라는 절대자가 이 우주에 무엇을 남겨 두었나 하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절대자의 창조사역은 단순히 창조작업 그 자체만을 위한 기록일 수는 없고 구원자로서의 하나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근본적인 기초의 구실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성서에서 보면 어떤 질서를 갖추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 질서는 또한 본래 창조의 목적을 지향한 질서이다. 따라서 이 창조질서가 만약 붕괴 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곧 구속사역의 동기가 될 것이다.
창조가 말씀대로 그대로 시행됨으로 창조자의 입장에서 볼 때 만족스러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말씀이 우주질서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기에 만약에 창조질서가 붕괴되었다고 했을 때 그 회복은 오직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차원에서 시행될 것이다.
그리고 그 창조질서는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하면 최종 만족상태 즉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사역을 쉬게 될 때까지 지속되는데 그 최종만족 상태는 마지막에 창조된 피조물과 관련 있다.
마지막 창조물은 인간이고 그 인간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데는 한가지 이유밖에 없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소극적으로 다른 피조물과 차이 나는 점이라는 데서 파악될 수 있고 적극적으로는 그들에게만 특별히 부여된 사명과 상관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존재론적으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다루어야만 된다. 만약 존재의 유무로 생각하면 인간은 지상의 작은 신이 되어버리며 '우리의 형상' 이라는 복수의 개념이 단일체 안에 집결되는 식이며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얼굴형이 진짜 표준형 되어버린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천상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인간을 통해 시행하겠다는 의지로 보여진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수행 못했을 때는 단순한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에 대한 합당한 응분의 책임을 묻게 된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과 그 결과 초래된 죽음도 이에 해당되는 실례가 될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하시고 싶은 이야기는 원래 창조의 모습은 전혀 하자 없었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선언의 배후에는 만약 이후의 어떤 잘못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잘못이지 하나님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정신세계와 교회가 혼란에 처해 있다.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래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본래의 인간이란 하나님에게 책임지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지 신이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신과 같은 인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세상을 한탄하고 말세를 부르짖는 자는 많아도 누구도 이것을 책임지고자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다.
교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유일한 치유책인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등에 짊어지고 저주 받은 세상에 등장하는 역할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종으로 여기지 않고 세상에 대하여 왕이라는 칭호를 내려주신다.
바른 인간이란 중보자적 사명을 인식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 그 자체를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형상이 세상과 중보적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창 1 장 사상
인간을 마지막에 창조-인간이 만든 것은 하나도 없다.
대상 29:11-14
11)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시50:9-12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 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하나님은 창1장의 사상을 포기한 적이 없다.
창조가 부서지면 인간이 회복할 수 없다. 인간이 하나님이 원하는 만족상태를 만들 수 없다. 안식은 하나님의 만족 상태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만족하신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만드실 안식을 내다보라는 것이다.
창조가 깨어질 때 인간은 회복시킬 수 없다. 하나님만이 회복할 수 있다. 창조가 깨어진 이유는 선악과를 따먹으므로서 말씀을 어김. 만약 말씀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창조를 회복할 수 있다. 말씀으로 창조했기에 말씀으로 창조 회복되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죄가 사라지고 의가 발생하며 그 의를 기초로 해서 나타나는 나라가 의의 나라가 발생하고 그 의의 나라가 하나님이 회복되기를 원했던 창조의 세계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의는 적극적으로 바르게 사는 것과 철저하게 죄악을 영벌에 처넣는 것이다. 사탄 적그리스도도 유황불에 들어간다. 결국 이스라엘을 선택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회복 과정 속에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하나의 시범 조교로 선택되었다. 인간이 이렇게 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놀랍게 충만하다. 이 양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선택되었다. 언약 가운데는 이 두 가지가 다 들어 있다.
하나님의 만족은 자신이 만든 창조가 완벽하게 이루지지 않으면 만족하시지 않는다. 그 만족 상태는 인간의 죄(말씀을 어기는 상태) 때문에 깨어졌다. 그렇다면 말씀을 그대로 시행하면 된다 인간은 시행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
최종 만족 상태에 들어가려면 말씀을 기초로 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말씀으로 창조된 상태이다. 형상은 죄로 인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말씀으로 재창조된 형상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으로 보는 것이 좋다. 인간 속에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1:1-5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심판권도 같이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의 모든 뜻은 창조 때부터 예수님이 홀로 해 내고 있다. 홀로 이룬 그것을 우리에게 '있음'이라는 창조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했다.
하나님께서 하루 하루를 어떻게 보시는가 하면 보기에 심히 좋은 하루로 보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 하나님에 창조의 뜻이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창조에 대해서는 미련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달성하신다. 창세기 1:26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요소가 나오는데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심히 좋았더라' 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게 되었다. 신약에 와보면 이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예수님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심판까지 이끄는 창조다. 창조에는 반듯이 마무리가 있다. 그것은 누가 은혜를 아느냐 하는 것이다.
1:3-5
창세기의 구분의 전체 틀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빛이 있는 기간을 낮이라 하고 빛이 없는 기간을 밤이라는 구분뿐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때부터 인간을 통째로 잡아서 그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구분 짓기를 원했다. 인간과 인간 사이를 구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신약 시대에서는 예수님의 의를 기대하고 바라보는 자를 빛의 자녀라고 했다. 신약 시대에 있어 어두움이란 그리스도의 의가 없는 것을 말한다. 빛과 어둠을 가지고 나누는 것은 구약 때나 신약 때나 똑같은 것이다.
인간들은 밝음과 어두움이라는 틀 속에 존재하는 피조물이다.
1:6-13
둘째 날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바는, 하늘 안에도 복음이 들어있고 셋째 날 통해서 말씀하시는 바는 땅 안에서도 복음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째 날도 둘째 날도 셋째 날도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하심과 복음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허락만 하면 항상 위에 있는 물이 지상으로 쏟아지도록 그런 구조 안에서 우리를 창조했다는 것이다(노아의 홍수).
셋째 날은 땅에 관한 것이다. 레위기 25:55 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품군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나의 품군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라고 되어 있다. 이 세상은 땅 주인이 하나님이다. 언약이 있는 땅이기에 언약에 위배되는 사람이 이 땅에서 살 가치가 없다.
1:14-23
왜 낮이 주관되어야 하며 어떻게 해서 밤이 주관되어야 될 상대가 된다는 말인가? 시편 19편에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라고 되어 있다.
날은 날 그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전달하기 위해 있는 것이고 밤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밤은 달의 통치 아래서 그 다음 밤에게 무엇을 전달하게 되고 낮은 해의 통치 아래서 다음 낮에게 무엇을 전달하게 된다.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라고 되어 있다. '침묵의 소리'이다. 인간에게는 침묵이지만 저희들끼리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다. 그 통하는 것이 무엇인가? 시편 19편에 보니, 그것은 바로 '말씀'이다.
해가 존재하는 이유는 5째 6째 날을 번창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번창하면서 뭔가 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복 있는 인간이 묵상하는 말씀 그 자체다. 날은 날에게 밤은 밤에게 전하고 싶은 그 내용은 다름 아닌 태초에 개입하신 그 분의 희생으로 축복을 받고 창조가 회복된다는 내용이다. 이게 바로 언약이다. 장차 오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 이미 창조 안에 담겨 있었고 우리 인간은 죄를 지어 몰랐지만 피조 세계는 알았다. 그러나 이제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은 알고 있다.
1: 24-28
인간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진 것인가?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인간은 자기가 만든 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 없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우주의 지배자임을 증거하고 보여주어야 될 책임자로 최후에 창조된 피조물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이란 최후에 나타나 가장 근본적인 창조 근거를 보여주는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골로새서 1:15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씀이 이런 뜻이다. 모든 피조물들은 모두 다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그 분만이 마지막 하나님의 형상이요 본래의 하나님의 형상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 되게 한 최고의 하나님의 형상이 따로 계신다. 그 분이 우주의 통치자요 지배자다. 그 분은 또한 살려주는 영이다. 그 분의 능력이 없으면 우리에게는 다시 사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오로지 예수님만을 증거하며 살 것이다. 그 분에 의해서, 그것도 그 분을 위해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29-2:3
안식일 제정은 일종의 하나님의 창조의 취지를 최종 담아내는 '종합 편'이라고 할 수 있다.안식일의 취지가 신명기 5장에 보면 나온다. 12-15절에 보면 안식일을 지킨 이유가 태초에 천지를 창조했던 그 창조의 힘으로 애굽의 종으로 살던 너희들을 동일하게 작용해서 끄집어내어 주었으니 세상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