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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울산 9월 4일 출애굽기 4장강의출애굽기

울산 9월 4일 출애굽기 4장

이름 : 관리자(IP:124.59.85.46)

090904 지옥이 땡기는 vs 천국이 땡기는 자로 분류

관리자(IP:124.♡.85.46)

09-09-05 07:38

http://media.woorich.net/신학강의/2009울산/울산090904a출4장a.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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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IP:220.♡.176.169)

09-09-13 10:36

울산090904a출4장a

20090904a 울산강의-출애굽기4장
(강의:이근호 목사)

출애굽기 3장 내용을 누가 봐도 어린애가 봐도 이런 내용입니다. 모세가 양 치고 있었어요. 하나님이 찾아왔어요. 하나님이 먼저 질문을 던졌어요. 모세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그대로 받았어요. 하나님은 모세보고 애굽으로 가라했어요. 모세는 가면서 ‘누가 보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이야기할까요?’라고 대꾸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가 너를 보냈다고 이야기하라.’고 했어요. 모세한테 하나님의 계획을 이야기했어요.

이걸 볼 때 방금 제가 한 이 이야기가 모세가 여기 있다면, 모세 몸에 뭐가 담겨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프로그램의 칭칭 감겨있는 그런 느낌이 들지요. 모세는 자기 몸 혼자 간 줄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고 앞으로 진행될 하나님의 모든 프로그램이, 마치 이창섭 목사님 가방 두룬 것처럼, 온 몸에 무거운 가방을 쇠사슬처럼 칭칭 감고 모세가 애굽으로 갑니다.

그러면 앞으로 하는 일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모세 몸에 감긴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풀어내면 되지요. 이러한 아이디어는 생물학에서 나옵니다. 인간은 아빠, 엄마의 DNA가 결합해서 작은 세포를 이루고, 그 세포가 확장되고 쪼개지고, 쪼개지고 분열하면 그것이 나선형의 우리 몸이 된다 했습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생물학자들은 처음에 있었던 DNA가 사슬처럼 꼬이는데 그것이 풀려가면서 거기에 있던 정보들이 하나하나 발현이 되면, 어떤 사람은 송승헌처럼 눈썹 짙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키가 작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얼굴이 쪽 째진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몸에 털이 많은 사람도 있고. 이처럼 각각 개성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의 몸이라 하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원래 인간의 몸을 장악하고 있고 지배하고 있는 것은 DNA라고 정보 집합체, 정보를 압축시켜서 묶어놓은 거죠. 제가 어릴 때 여러분 다 아시죠. 나이 비슷한 분들이니까. 뻥튀기할 때 우리는 뻥튀긴 것을 먹지만 실제로 만드는 걸 보면, 곡식을 압축시켜 그걸 눌러서 뻥하고 터져서 조그마한 것이 크게 뻥튀기를 그렇게 만든다 말이에요.

우리의 몸이 우리가 귀하게 여기고 다듬고 화장발 받네, 안 받네 하는 이 몸은 사실은 작은 것을 펑하고 뻥튀기한 겁니다. 그 안에 내장돼있는 DNA 정보가 압축돼있는 겁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도 DNA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다고 돼있어요. DNA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다는 말을 알기 쉬운 말로 하면, ‘딱 내 타입이네’ 그렇게 된다 말이에요.

서울 의대를 나와서 의사가 된 아가씨하고, 서울 법대 나와서 판사가 된 어떤 남자가 만나서 둘이 결혼을 했다. 둘이 만날 때 한 사람이, “왜 그 사람이 좋습니까?” 하면, “제 타입에 맞아요. 제가 저런 남자를 원했습니다.”라고 하지만 제삼자가 볼 때는 수능점수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난 거예요. 그렇잖아요. 하나는 이공계고 하나는 문과지만. 이거는 뭐냐 하면, 이미 DNA가 공부 잘하는, 흔히 머리 좋은 DNA가 있어서 둘이 나중에 서로 만나게 된다 이 말이에요.

결국은 인간이라 하는 것은 프로그램이 온 몸을 칭칭 감고 있는 겁니다. 어떤 분이 오늘 아침에 전화가 왔어요. 목사님, 성경의 내용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싶은데, 젠더. 그냥 남성, 여성을 젠더라고 하거든요. 남성, 여성의 평등으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데 성경에서 참고할 게 있으면 알려주세요. 했어요.

성경에서는 참고 안 될 게 아무것도 없어요. 다 참고 되는데 남성, 여성에 대해서보다도 근원적으로 ‘인간이 뭐냐?’라는 것에 대해서 성경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인간 자체가 뭐냐? 나는 인간이고,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천국 가기 위해서 성경을 보는데 그건 애초부터 잘못된 거죠. 왜냐하면 ‘인간이 뭐냐’부터 규정을 해야 어떤 인간만이 천국에 모인다. 이렇게 되는데 ‘나는 인간이거든요’부터 시작해서 ‘천국에 들어가렵니다’ 하는 이거는 남자가 여탕 가겠다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여기 한번 봐라. {여탕} 네가 정작 여탕 가려거든 너도 하리수처럼 수술해라. 트랜스젠더, 네가 성을 바꿔서 오너라. 여기는 바뀌지 않으면 못 오는 곳이다 말이죠. 현재 우리 인간으로서는 천국에 못 갑니다. 제가 보내준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성경 몇 구절 외치고 들어가면 됩니다. 이럴 입장이 못 돼요.

예수님께서 재림한다. 이건 어렵기 때문에 조금 있다 서론하고 설명할게요. 굉장히 어려운 문제인데. 쉬운 것부터 하고. 예수님이 재림하시잖아요. 여러분 다 아시잖아요. 어릴 때 보면 우리 집 뒤에 독이 이만큼 있었어요. 된장, 간장을 할머니가 아주 잘 담갔는데 그 시꺼먼 간장을 뜨려면 간장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와서 뚜껑 열어서 합니까? 아니잖아요. 우리 할머니가 그 무거운, 두꺼운 장독 뚜껑을 열어서 옆에 옮겨놓고 그 다음에 쪽박으로 뜨는 거예요.

재림은 뭐냐 하면, ‘뚜껑 열기’입니다. 장독 뚜껑을 열어준단 말이죠. 그러면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가 알아서 가는 겁니까, 누가 열어줘서 퍼내야 됩니까? 아무리 우리가 교회 다니고 기도 열심히 하고 전도해도 뚜껑 열고 누가 쪽박으로 안 퍼주면 우리는 이 세계 자체에서 못 벗어나게 돼있습니다. 누가 열어주는 걸 가지고 ‘구원’이라 합니다. 여기선 ‘출애굽’이라 하죠.

사람들은 출애굽이라고 말하고 구원 아무리 이야기해도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느냐 하면, 내가 알아서 간다. 내가 요령 부려서 내가 이렇게, 이렇게 조치하면 나는 천국에 간다. 룰루랄라~ 지가 소풍 갑니까? 하나님께서 추방시켜버린 것을 어떻게 소풍 가듯이, 이리 오너라. 안동 권씨 양반 행세 하는 것처럼 ‘이리 오너라!’ 그럼 저쪽에선 ‘저리 가거라!’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와? 우리 할머니가 장독 뚜껑을 열어서 쪽박으로 퍼내지도 않았는데 네가 어떻게 독 안에서 바깥으로 나올 수 있단 말입니까? 인식 자체가 독안에 든 쥐고, 독안에 갇혀있고 꼴인데. 누가 꺼내줘야 바깥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복음이고 이게 성경의 핵심이에요. 누가 꺼내주지 아니하면 우리는 이 세상 자체에서 아무리 발광을 하고 종교의 득도를 하고 뭘 해도 그냥 득도한 채 갇혀있죠. 그냥 빠져나올 수 없어요.

그 뚜껑이 뭐냐? 하늘 뚜껑이 재림하신 거예요. 주께서 오셔야 하는 거예요. 우리 보고 팔짝팔짝 뛰라는 게 아니고 뛰어봐라. 하늘까지 닫겠네. 신발 신었습니까? ‘어이 기다리고 있어. 내가 뚜껑 열고 손 내밀어서 죽은 자들, 산 자들 천사들 나팔소리와 더불어서 내가 꺼내줄게.’ 이것이 바로 재림이죠. 꺼내줄 때 예수님이 주신 용서의 증표, 용서한 능력이 있는 자만 꺼내주는 거예요. 김칫독에 김치가 있더라도 썩은 김치는 손 안 대고 진짜 알곡 같은 김치만 꺼내듯이 주님 보시기에 알곡 김치와 썩은 김치가 주님 기준에 의해서 판명되는데

목사님, 그 기준이 뭡니까? 그 기준은 이미 예수님을 통해서 만천하에 공개됐습니다. ‘예수님처럼만 되라. 내가 안 꺼내줄 아버지가 아니다.’ 이 말이거든요. 예수님 같은 분만 꺼내서 예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 가운데서 예수님 될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무슨 재주로 우리가 온 율법을 다 이룹니까? 안 되지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중간 매개체가 되셔서 예수님의 자기의 공로, 자기의 성과를 집어넣어서, 그 성과 중에 하나가 성령입니다. 누구에게 성령을 보낼 수 있는 권한이 생겼어요. 그전에는 없었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주가 되시고 난 뒤에 누구한테 성령을 줘서 그 성령이 꽂혀있는 사람, 고래 잡는 포경선의 화살처럼 성령이 꽂히면 그 꽂힌 성령을 감아 당기면 딸려 나오듯이 하게 돼있어요. 누구든지 성령,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은 죽어도 예수님처럼 살리라. 그 원칙밖에 없는 겁니다. 그것도 뚜껑 열고 맛있는 김치를 꺼내주듯이 주님께서 이 어두운 세상에 꺼내주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겁니다.

제가 길게 이야기했지만 간단히 이야기해서 꺼내주지 아니하면 우리는 그냥 갇혀있는 꼴, 그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 힘으로 독 벽에서 자일 꼽고 팩 꼽아서 영차영차 뚜껑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그런 것은 다이하드3나 영화에나 나올 이야기지 현실에서는 아무리 등산을 다녀도 우리를 가두고 있는 독 뚜껑을 우리 힘으로 밀어젖혀서 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재주는 우리한테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의로 이 어두운 세상에서 구원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선을 쌓으면 안 됩니까? 선을 쌓지도 마세요. 의를 쌓으면? 의도 쌓지도 말라니까. 그냥 꺼내주기만 기다리면 돼요. 꺼내주는 것을 고대하면 돼요.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바로 그 과정, 주께서 오셔서 우리 백성이라고 확인하고, 확인한 사람에게는 ‘기다려라. 내가 꺼내줄게.’ 바로 이 프로그램을 칭칭 감고 지금 모세는 애굽나라에 있는 자기 백성에게 갑니다. 뭐 하려고? 꺼내주려고.

그런데 그 꺼내주는 방식이 뭐냐 하면, 그러면 얼마나 착하면 됩니까, 얼마나 성실하면 됩니까, 말씀을 얼마나 잘 지키면 됩니까? 라고 묻고 싶은데 출애굽기 4장 1절부터 보면 그런 게 없어요. 그냥 기적이에요. 그냥 기적입니다. 여기 출애굽기 4장 봅시다. 여기 세 가지 기적이 나옵니다.

지금부터 해서 오늘 이 강의가 지금까지 울산강의 가운데 제일 어려운 강의에 돌입하게 됩니다. 나도 지금 어느 정도 어려운지 감이 안 잡힐 정도인데요. 어렵거든 질문하지 말고 그냥 듣기만 하세요. 너무 어렵기 때문에.

출애굽기 4장에서 세 가지 이적이 나오는데 첫째 이적은 뭐냐 하면, 지팡이 던지니까 뱀이 되었어요. 두 번째 기적은 모세가 손을 자기 품에 넣으니까 문둥병이 되었어요. 근데 다시 끄집어내니까 멀쩡하게 되었어요. 세 번째 기적은 뭐냐 하면, 네가 물을 길어다가 육지에 부으면 그것이 피가 된다는 기적. 이 세 가지 기적으로 꺼내주십니다.

우리 할머니가 장독에 있는 장을 꺼낼 때는 쪽박으로 그냥 푸기만 하면 됐는데 주님께서 자기 백성 건질 때는 이 세 가지 기적이 한 조합을 이루어서 우리를 끄집어내주는 거예요. 그러면 이 세 가지 기적으로 끄집어내는 의미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어렵지만 제가 쉽게 하려고 합니다.

그건 이렇게 합니다. 분리에요. 분리작업인데 어디서 분리냐 하면, 너는 애굽에 살 사람이 아니야. 너는 이 땅에 살 사람이 아니야. 너는 종류가 달라. 족속이 다른 족속이야. 애굽에서 분리했는데 이게 뭐냐 하면, 이것이 ‘미지수’가 되는 거예요. 이런 게 어려워요. 우리가 알기론 애굽에서 분리된 건 이스라엘로 알고 있잖아요. 이스라엘로 알고 있는데 누가 이스라엘이냐 하는 것은 구원받은 본인도 몰라요. 미지수로 남아요. 계속해서.

바라기는 새순교회 교인 모두가 뚜껑 열고 좋은 김치 되어서 주께서 “아이고, 김치 잘 숙성되었구나.” 재림이란 뚜껑 열고 손이 와서 여러분을 건지시기를 저는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이거는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누가 구원받을지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릅니다. 물음표로 남아요.

여기서 제가 강의가 어렵다는 말은, 왜 하나님께서 누구누구 구원받는다고 하지 않고 미지수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뭐냐? 사람들은 뭔가 확정이 돼버리면 자기 위주로 확정된 결론인양 그렇게 일방적인 해석을 하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그게 오독, 오인, 잘못된 해석이라 하는데.

천국이 있다고 하니까 사람이 보통 목사님이, ‘여러분 천국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백이면 백, 앞에다 뭘 다느냐 하면, ‘내가 갈 천국 말이죠?’ 꼭 반드시 그걸 달아요. 그게 오인이에요.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니까요. 사람이 날 때부터 특징이 뭐냐 하면, 뭐 하나 있으면 ‘내가’를 꼭 붙이는 아주 더러운 버릇이 있어요.

하여튼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나쁜 것은 자기가 다 빠지고, 좋은 것은 자기가 다 들어갑니다. 목사님이, ‘지옥이 있거든요.’ 하면, ‘아, 저건 내가 안 갈 지옥 말이구나.’ 자꾸 일방적으로 그 지옥에는 자기는 안 간데요. 무슨 근거로 그렇게 큰소리칩니까? 천국하면, ‘아, 내가 갈 나라.’ 무슨 근거로?

그래서 목사님들은 교인들,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소비자가 왕이니까. ‘여러분들이 가실천국입니다.’ 하면 좋다하지요. 죄송합니다. 천국은 여러분들이 갈 곳이 아니고 주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따라서 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되어서 못 갑니다. 천국은 있긴 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은 가도 너는 못 가.

너는 못 간다는 그 내용, 이제 어렵습니다. ‘너’라는 내용도 미지수가 되는 거예요. 천국 못 가는 너는 누구며, 천국 가는 그는 누구냐 하는 겁니다. 천국 못 갈 사람과 갈 사람을 애굽과 이스라엘을, 애굽도 미지수고, 이스라엘도 미지수고 둘 다 미지수로 남겨 두고 그 중간에 분리되는 사건과 분리되는 작업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대로, 애굽은 애굽대로 차후에 결정될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게 어려운 거예요.

침례교처럼 ‘천국이 있습니다. 갈 사람 손들고 나오세요.’ 이런 것 아닙니다. 목사가 보고 있고, 교인들이 보고 있는데 여기 천국 갈 사람 이렇게 물을 수도 있지만 저가 침례교 목사 같으면, ‘천국 안 갈 사람 손 들어보세요?’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다 만약에 어떤 아주머니 아들이, ‘나 천국 안 갈란다.’ 하면 집에 가서 직사케 맞죠. ‘엄마 가오를 생각해야지 그런 식으로 안 간다 해.’ 그러니까 이건 좋든 싫든 여기 천국 안 갈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아무도 없단 말이죠. 자기 가오가 있으니까, 자기 명예가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천국, 지옥을 우리들의 자유의지에 자유선택에 내맡기질 않습니다. 그거는 선교단체나 침례교에서, 요샌 침례교나 장로교, 순복음 할 것도 없지만. 하여튼 그런데서 하는 거고. 우리가 성경공부 왜 합니까? 원래 성경해석은 그게 아니고, 항상 우리는 좋은 것 같으면 자기 것이고, 나쁜 것은 남의 것이고, 자기 애먹이는 인간은 다 조지고. 원래 이 자체가 죄악 아닙니까.

원래 죄악 된 바탕 위에 천국과 지옥을 접수를 하니까 진짜 자기 몸에 지옥 가는 프로그램으로 칭칭 감은 놈들은 그저 뭘 해도 지 중심이고, 진짜 그 몸에 모세처럼 천국 갈 프로그램이 칭칭 감긴 사람은 주께서 하실 겁니다. 믿는 것도 주께서 믿게 하실 겁니다. 주께서 믿게 하셨습니다. 내가 이 교회 나오는 것은 누구 집사 전도가 아니라 주께서 전도하셨습니다. 모든 어떤 일을 하나 개념 하나에 나를 붙이는 것이 아니고 누굴 붙이겠어요?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주님을 주체 자리에 놓고 그렇게 살아간다 이 말이죠.

그러나 인간이라 하는 것은 얼마나 머리를 잘 쓰는지, ‘주께서 하셨습니다.’라고 내가 말했지롱. 십자가마을에 댓글 하나 달아놨습니다. ‘왜 사람들은 예수를 싫어하느냐’ 하니까 이미아 씨가 ‘모르겠습니다. 그냥 답변해주세요.’라는 식으로 해서 제가 답변을 드렸어요.

왜 사람은 예수를 싫어하느냐 하면, 사람은 자기가 죄 진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죄 짓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들어요. 왜 하나님이 만드느냐 하면, 죄 짓도록 만들어줘야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 풍성히 드러내가 위해서 싫든, 좋든 우리는 계속 죄 짓도록 하나님께서 부추기십니다. 그런데 그 죄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라는 것을 압니다.” 하는 그 죄, 그것마저 죄로 드러나게

그래서 제가 이렇게 결론 내렸지요. ‘내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이 고집을 죄라고 규정하시면서 오직 주님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다시 할게요. “‘나는 예수님께서 은혜로만 나를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합니다.’라는 것을 아는 이것으로 내가 구원받는 줄 믿습니다.” 하는 그것이 바로 죄가 되면 오직 우리는 주님의 공로로 구원받습니다. 뭔 뜻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슨 소리해도 오직 주님의 공로로 구원받지 내가 무슨 한 소리했다 해서 그 덕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에서 뭘 배우면 꼭 그걸 자기 안 주머니에 챙겨놔요. ‘난 이것 가지고 천당 갈래.’

그래서 제가 했잖아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라는 것을 내가 알지롱. 그런데 재는 모르지롱.” 나는 구원받고 지옥 가죠. 주님의 공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어떤 신앙의 고백을 했든 안 그러면 만약에 나쁜 짓해서 교도소를 들락거리든 상관없이 진짜 믿어지는 것은 내가 인생을 어떻게 살았던 상관없이 주님의 공로가 임하면 어떤 자리에 있던 구원받는 것을 주께서 믿어지게 했다는 고백, 이게 복음입니다.

지금 모세하고 애굽에 있는 자기 백성들하고 싸워야 되지만 하나님은 지금 모세하고 싸워요. 모세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는 말도 못 하니까 다른 사람 보내소서. 했다고. 이게 뭐냐 하면, 아직도 자기가 구원하는데 뭔가 이바지할 거라는 옛날에 있었던 개한테 줘야 할 더러운 버릇 있잖아요. 내 구원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그 버릇, 그 습관. 왜? 인생을 누구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제가 하나님 일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뭐라 했습니까? 네가 고따위 소리하는 그것도 하나님 일에 포함돼있어요. 이런 겁니다. 어느 고급식당에 가서 남자가 웨이터 불렀어요. “안심 스테이크. 그런데 안심 스테이크는 어떻게 만들지요?” “예. 이렇게, 이렇게 만듭니다.” 나중에 계산서 보니까 원래는 오만육천 원인데 오만팔천 원 됐어요. 이 이천 원이 안심 스테이크 설명한 값이에요. 이미 그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그 시간은 모든 조명발부터 해서 음악까지 전부다 원가에 다 포함돼있는 겁니다.

저 주의 일 안 할래요? 난 이제 교회 안 나올래요? 그게 그 사람이 나중에 천국 가게 되면, 그런 발언하는 것도 그 사람이 해야 돼요. 발언을 해줘야 하나님을 모독하고 예수님 싫어하는 그것이 있는 곳에 은혜가 더욱더 넘친다. 그렇게 돼야지만 그 사람은 나중에 천국 가서 당신 어떻게 구원받았어요? 온전히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어요. 바퀴벌레 계속 나오는데 저것도 포함돼있어요. 저것도 주의 프로그램에 칭칭 감겨있어요. 계속 왔다 갔다 하는데. 바로 이런 관점, 모든 것이 주로부터 말미암아 주로 간다는 관점을 가지고 출애굽기를 다시 봐야 됩니다.

이진용 목사님이 주석을 쓰자고 하는데 저는 주석을 제가 쓰고 싶지 않고 여러 목사님들이 나눠 쓰고 싶어요. 왜냐하면 목사님도 좋고 안 그러면 다른 집사님도 좋고 쓰게 되면 자기 공부가 돼요. 그리고 제가 주장하는 것보다도 더 나은 주장이 담을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특별히 하나님께 은혜 받은 것을 집어넣으면. 이 주장이 해석이 옳으면 된다고.

그럼 누가누가 썼다는 것보다도 우리 모두가 쓴 주석이 돼요. 그렇게 될 공산은 약간 적다고 봅니다. 왜? 목사가 혼자 다 하이소. 그럼 난 혼자 다 하죠. 그렇게 될 공산이 70%, 아예 각오하고 있습니다. 시간 없어 못한다고 하는데 그건 핑계고요. 항상 시간 없어 못한 적이 없어요. 분명히 시간이 없었는데 일은

다시 봅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은 기적의 내용으로 분리가 되는데 애굽과 이스라엘이 분리됩니다. 왜 분리되느냐 하면, 기적 자체가 창세기 3장 15절을 이루기 때문에.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는 뱀의 후손, 하나는 여자의 후손으로 나눠지잖아요. 나눠지는 게 약속이기 때문에 약속이 이렇게 실현됐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장? 그걸 쉽게 하면 자기장. 자력이 움직이는 자기장.

자기장이란 표현이 적당한데 왜냐하면 자기장의 특징이 뭐냐 하면, 보통 영역, 필드 같으면 그만 가만있는 필드지만 자기장의 특징은 뭡니까? 한쪽은 남쪽에서 한쪽은 북쪽에서 뭔가 당기는 게 있죠. 뭔가 당기는 힘이 있는 그 영역을 그걸 제가 쉽게 자기장이라 했지만 수학적으로 벡터. 수련회 때 벡터 배웠지요.

서로 당겨주는 거예요. 한쪽으로 전부다 몰리는 겁니다. 세포 내에 핵분열 때 방사선 모이는 것처럼 잡아당기는 당기듯이. 여기 주름살 없애는 수술하면 당기듯이 당기는 겁니다. 당길 때 내가 어디 갈꼬? 하는 그 결정을 우리 자신이 믿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배후에 약속 안에 예정된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했다는 그 칭칭 감겨있는 정보, 프로그램대로 당길 것은 당겨야 되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집사님들 가운데 걱정이 늘어집니다. ‘요새 우리 애가 교회를 안 나왔어요. 내가 보기에 지옥으로 당기는 것 같아.’ 그것도 문제된 것이 뭐냐 하면, 일단 그 애가 집사님 애가 아니고 하나님 애라는 겁니다.

아까 강의 처음부터 다시 해 볼까요. 뭐 하나 천국 이야기하고, 지옥 이야기하면 꼭 뭘 집어넣는다? 나를 집어넣던지, 안 그러면 자기는 빼고 자기애를 집어넣던지, 자기 남편을 집어넣던지 꼭 집어넣어요. ‘목사님, 우리 남편은요?’ 이런다고. 이번에 우리교회에 자기 남편 때문에 두 가정 나갔어요. 교인 몇 명 되지도 않는데 세 가정 나갔어요.

그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을 우리가 알 필요 없고, 알 필요 없으면 그럼 교회 가지 말란 말인가? 그게 아니고, 너무 어렵기 때문에 결론부터 이야기할게요. 너무 복잡해서. 일단 하나님께서 나를 당기는 천국으로 당기는 자력장이 형성되면, 자력장 특징이 뭐냐? 자석만 있는 게 아니고 자석 주변에 자력이 퍼지게 돼 있잖아요.

지구에 뭐가 있느냐 하면, 자력이 있어서 오로라가 생긴다 했잖아요. 이게 있어야 태양에서 오는 태양빛을 막을 수 있으니까. 이 자력은 안에 있는 핵과 바깥의 핵에 대한 물질의 비중의 차이에 의해서 자전하다 보니까 생겼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학자들이 내핵과 외핵의 차이점이 있는데

성도가 됐으면 내가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에서 뭐가 풍기냐 하면, 복음이 풍겨 나오게 돼있습니다. 나는 작은 예수, 작은 자석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복음을 알면 복음을 아는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게 되면 그다음에 누가 구원받고, 안 받고는 우리 몫이 아닙니다. “보내지 않았는데 누구 전하리오.” 이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막대자석을 보냈기 때문에 자석은 외치지 않고 싶어도 속에서 자력이 나오니까 자연적으로 복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지난 수요일 날 설교 초반에 이런 이야기했거든요. 내가 이렇게 용서받은 것이 십자가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 사람은, 이 사람은 어디 가다가 예배당에 십자가만 있으면 다른 사람한테 소개한다고. “어이, 저 십자가 보이지. 저 십자가에서 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단다. 어이, 어이. 십자가 또 있네. 저 십자가에서 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십자가 피에서 나왔데. 너 몰랐지.”라고 진짜 용서받은 사람 같으면 십자가 보기만 보아도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면서 자꾸 십자가를 소개하려고 할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용서가 나온 걸 자기가 직접 받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이론으로 지식으로 십자가에서 날 용서해준다면서 하고 끄덕끄덕 대면서 지식으로 한 사람은 십자가 봐도 잊어버립니다. 자기 하는 일이기 때문에. 십자가 보면 맨송맨송해요.

그런데 진짜 매일같이 십자가에서 용서받고 있는 사람 같으면 십자가만 봐도 ‘반갑다, 십자가야.’ 그게 바로 막대자석이라 안 합니까. 복음을 알고 사랑을 공급받고 있는 사람은 자기 죄 지은 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착한 일 때문에 우쭐대지 않고 그것 상관없이 주께서 저 십자가 피로 나를 여자의 후손 쪽으로 당겨가고 있어. ‘난 정말 기분 좋아. 진짜 평생 받을 복을 다 받았어.’ 왜? 힘이 있으니까. 벡터 아닙니까.

스칼라, 벡터라는 게 뭐냐 하면, 이게 하나하나 끊어져 있는 것을 그냥 양입니다. 양적 개념이라 하는데. 벡터라는 것이 뭐냐 하면, 이게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냄새가 난다든지, 여기서 뭔가 힘이 나와서 비타500 쪽으로 당기게 만드는 것, 그런 걸 말합니다. 목사님, 그런 물건이 어디 있어요? 왜 그런 물건이 없어요. 여자란 물건이 있지. 예비군훈련 할 때 보세요. 젊은 아가씨 미니 입고 가보세요. 전부다 벡터, 심지어 운전수 빼놓고 전부다 돌아가지.

어떤 분이 지난 우리교회에서 결혼식 했는데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이영애가 결혼했거든요. 벡터가 어느 쪽이 강합니까? 이영애는 몰래 해도 다 쏠렸어요. 여자 배우 장진영 죽은 날에 서울의 벽제화장터에 한두 명 죽은 게 아닙니다. 많이 죽어도 장진영 그 배우나 뉴스에 나가지 다른 사람 죽은 것 뉴스에 나가지도 않습니다. 벡터가 달라요. 당기는 게 있다고. 오늘 그걸 설명하려고 해요. 그 어려운 것 설명하려고 해요. 이해되든, 안 되든 설명해봅시다. 오늘 진도 더 나가지 않고 이것 설명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어렵습니다.

사람은 생각하기를 나는 나다. 너는 너다. 우리 이야기하자. 할 때 내가 너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오인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내가 어떤 상대방한테 이야기할 때는 A라는 사람이 B라는 할 때는 우리 둘의 공통되는 빨간색, 빨갛게 되는 어떤 분, 어떤 사건, 그분이 나와 한편이라는 입장에서 너라는 사람에게 설득하는 식으로 이야기하게 돼있어요.

그래서 어느 학자는 말하기를 모든 말은 ‘명령’이라 했어요. 언젠가 강의한 적이 있어요. 플리즈, 플리즈. 돈 메이크 어 노이즈. 시끄럽게 마세요. 플리즈를 백 번을 해도 항상 모든 언어는 명령 바탕 위에 이야기하게 돼있습니다. ‘참 오늘 날씨 좋다.’ 이게 무슨 명령입니까? ‘내가 날씨 좋다는 이 범주에 너도 강제로 동의해. 이놈아.’ 이 뜻이에요.

아내가 머리해서, 이런 게 뭐예요? ‘나는 지금 머리 잘 됐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라는 명령입니다.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무슨 일 있나. 왜, 왜?” “뭐, 달라진 것 없어?” “뭐, 뭐, 뭐. 뭐가 달라졌는데?” “당신은 내 머리 한 것 안 보이나?” 보통 남자들은 똑같이 보여요.

왜 남자는 여자가 머리했다는 이 정보를 담고 명령하듯이 이야기했는데 왜 남편은 아내 머리한 것에 관심이 없었느냐 하면, 그때 남편은 자기 사업구상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면서도 ‘여보, 오늘 바이어 만나서 일이 잘 됐거든.’ 이건 뭐냐 하면, 남편은 자기와 동의해줄 수 있는 사람, 자기가 정당하다고 여기는, 내 편이라고 여기는 이 세력을 그대로 아내한테 명령하듯이 대화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다 그래요. 심지어 유치원에 막 다녀온 ‘엄마, 오늘도 유치원 다녀왔어.’ 하고 받아쓰기 시험지 들고 온다는 게 뭐예요? ‘엄마, 이 시험지 봐. 받아쓰기 백 점 했어.’ 하는데 엄마가 “시끄럽다. 저리 가라. 손님 온다.” 음식하고 있는 거예요. 음식 하는 순간은 애 시험이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삼십 분 뒤에 방문할 그 손님에 대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입장할 때 너는 지금 조용해야 될 시점이라는 겁니다. 명령이다. ‘조용해.’ ‘엄마는 오랜만에 백 점 맞았는데.’ 삐지지요.

여기까지 여러분 이해되시죠. 그렇다면 두 사람 간에 온전한 해석이 된다, 안 된다? 온전한 해석이 안 돼요. 이쪽 사정은 사람의 뜻이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서 뜻이 달라지게 돼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지금 앞으로 무슨 일을 하느냐 거기에 따라서 같은 단어라 해도 단어 쓸 때마다 환경에 따라 달라져요.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천하의 예수 잘 믿는 수제자였지만 예수님이 잡히고 난 뒤에는 천하의 배신자 됐잖아요. 같은 베드로인데 왜 그렇습니까?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환경에 맞는 베드로가 되기를 원했던 거예요. 그러면 그 전의 베드로는 뭐냐? 비록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속마음은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예수님 환경에 일치된 적이 없고, 예수님 세계 따로, 베드로 세계 따로 된 채 삼년 동안 같이 한 덩어리 되서 돌아다닌 겁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사님, 집사님 하죠. 돈 거래 한번 해보세요. 이틀 만에 깨져버립니다. 이것은 부모, 자식간에도 마찬가지고 매사가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끌고 온 환경이 동일한 환경이라도 그 사람에 따라서 그 환경의 해석이 다르고, 딴 사람 그쪽에 있으면 다른 거예요. 같은 영화 [국가대표]라는 영화를 봐도 한 사람은, ‘참 감동적이다.’ 한 사람은 ‘그저 그렇다.’ 똑같은 영화를 봤는데 마찬가지로 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잠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뭐냐 하면, 사람이라 하는 것은 주변의 환경, 주변 환경 속에는 뭐가 있다? 벡터. 벡터라 하는 것은 그냥 가만있는 진공 상태가 아니라 뭔가 끌어당기는 그런 힘이 있는데 그 힘은 일방적 환경이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중요한 것 해요. 이 몸도 어디에 포함돼있다? 이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는 환경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의 몸은 주변의 환경과 주고받고, 주고받고 하면서 같이 동질화되는 거예요. 같이 한 덩어리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이라 하는 것은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자기 환경을 몸이 만들어짐에 따라서 오히려 주변 환경도 몸의 크기에 따라서, 몸의 성질에 따라서 이 환경도 바뀌게 돼있어요. 일반적으로 환경이 이 사람을 만들어낸 게 되고, 만들어 낸 이것이 또 환경을 만들어요. 변화시킵니다. 그러니까 한꺼번에 둘 다 어느 것이 주인공이고, 어느 것이 보조고가 없이 전부다 한 덩어리 되서 같이 굴러가는 거예요.

애굽 사람들이 똑같이 그들은 유월절을 겪었지요. 하지만 애굽 사람들은 결코 안 나왔고, 이스라엘 사람들, 히브리인들만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왜 똑같은 환경인데 판단해보고 자기 아들 죽었는데 왜 안 빠져나왔느냐? ‘우연한 사건이겠지.’ 이렇게 보는 거예요. 같이 복음 듣고 같이 교회 다녀도 한 사람은 지옥 가고, 한 사람은 천당 가고 왜 그러느냐 말이죠.

그것은 주께서 일으키신 환경이, 주님의 약속의 환경에 맞는 사람은 주께서 그 사람한데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새로 만들어내요. 히브리인들, 너희들 같이 나온나? 알겠습니다. 이렇게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이 히브리인들이나 애굽 사람이나 똑같은 인간들이에요. 똑같이 세상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분리 되어서 이스라엘에 살 수 있는 환경

지금쯤 제가 여러분한테 ‘이해하지요’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네요. 왜냐하면 벌써 뒤죽박죽 됐으니까. 제가 알아서 정리하겠습니다. 애굽과 이스라엘은 미지수라 했지요. 지금까지 제가 말한 이론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단독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고 이스라엘 되게 하는 환경도 조성해야 된다. 여기 환경이 나중에 광야가 됩니다. 광야 없는 이스라엘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았다’ 까불다가 망했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맞는 환경이 있고, 애굽은, 바로는 점잖은 사람이었어요. 나중에 모세가 자꾸 쑤셔댈수록 애굽은 점점 더 강퍅해지는 겁니다. 왜 애굽 바로 왕이 강퍅해지는가? 그 이론을 학자들이 못 풀어요. 신학자들이 풀 수가 없어요. 왜 멀쩡한 사람을 강퍅케 하시는가? 이론을 몰라요. 정답은 뭐냐? 애굽은 그냥 고정된 애굽이 아닙니다. 애굽처럼 만들어져야 돼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죄 짓는데요. 목사님, 우리 보고 죄 지란 말입니까? 우리는 죄질 능력이 없습니다. 주께서 죄 지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께서 은혜를 드러내는 죄를 짓게 하실 거예요. 감사하세요. 그것도. 나쁜 짓, 담배 한번 피워볼까? 피워 봐도 나중에 담배 맛이 쓴 맛이 들어서 못 피울 거예요.

정말 너는 네가 신앙고백 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정도가 아니라 신앙고백 하나, 안 하나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그 절묘한 타이밍, 절묘한 은혜를 아는 환경까지 누구 몫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서 그 사람의 인생에 프로그램을 칭칭 감게 만드는 것이 바로 모세에게 나타난 겁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 집구석부터 피바다가 되는 거예요. ‘아이고, 당신은 피 남편이다.’ 피 남편 할 때 항상 생각나는 사람이, 정낙원 목사님 사모님. 돈도 안 되는 글을 새벽 세 시까지 쓰는. 당신은 할 수 없이 써야 돼. 맞죠? 제 아내는 자거든요. 남편이 뭐 하든지 밤새도록 하든 말든 주무시고.

어떤 분이 이야기해요. ‘목사님, 쉬엄쉬엄 하면서 공부하시고, 쉬엄쉬엄 하면서 복음 전하세요.’ 하는데 제 경험상 다음에 하지가 허용이 안 돼요. 왜냐하면 다음에 하지 하니까 그때 그 말하려고 생각한 것들을 다 잊어버립니다. ‘다음에 할 때 이 말 해야지.’라고 기억했던 것이 막상 그 시간 되니까 생각이 하나도 안 나는 거예요. 깜빡 잊어가지고. 생각날 때 그때 전할 걸. 다음에 전할게 하는 게 얼마나 후회 되던지. 그러다 엉뚱할 때 다시 생각날 때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때 얼른 주어서 전해야 돼.

그래서 성경에 보면,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너는 복음을 전하라. 뭡니까? 사도 바울에게 때, 시간까지 자기 시간이 아니라 주께서 칭칭 감아주는 그게 있어요. 사도 바울 계획에 자기가 폭풍 맞아서 추장한테 복음 전하는 계획은 도무지 사도 바울 아이디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로마로 끌려가는 도중에 보너스로 멜리데 섬에 가서 추장하게 복음 전하고 독사한테 물리는 계획도 없었고, 독사가 물어야 되는데 안 물리고 독사가 떨어지고. 그것 보고, ‘어머나, 하나님 보낸 사람이다’ 해서 엎드려 절하는 것. 이런 계획들이 아예 사도 바울에게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진짜 어렵게 이야기해서 사람이 존재가 있고, 사건이 온다 하는데 그게 아니고 존재가 만들어져서 존재들이 모여서 사건을 음각적으로 사건을 유발시킵니다. ‘음각’ 아십니까? 경주 엑스포 할 때 조각인데 파서 만든. 상대성원리에 보면 이런 게 있어요. 질량이라 하는 것은, ‘질량이 주변의 있는 공간을 휘게 한다.’라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공간이 휘어짐이 질량을 결정한다.

자식이 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자식이 생기기 전부터 엄마의 사랑이 사랑받는 자식으로 주변에서 깎아서 만들어간 거예요. 사랑 포대기를 먼저 만들어놓고 그 안에 자식이 담겨 있는 거예요. 그런데 자식은 오해하기를 ‘내가 엄마 자식이니까 사랑하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식 되게 한 환경을 엄마는 사랑해요. 그래서 그 환경 속에 그 자식이 나쁜 자식이든, 좋은 자식이든 다 사랑하게 돼있어요. 오랜만에 좋은 말한다.

처음에 남자가 연애할 때 진짜 지독한 사랑, 미칠 듯이 연애할 때는 남편이기 때문에 사랑한 게 아니라 남편의 주변도 다 사랑해서 이런 시아버지, 이런 시어머니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왜? 그런 시아버지, 시어머니 때문에 이런 귀한 남편이 있었구나. 이렇게 주변부터 사랑스럽고 주변에 접근해가면서 남편을 사랑하죠. 살다가 남편 미워해보세요. 저런 인간 만든 집구석, 교육 엉망진창으로 가르쳤구나. 이제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다 미워.

존재에게 사건이 오는 게 아니고 사건을 위하여 존재가 만들어져야 되는 겁니다. 육의 사람에 성령이 와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성령을 설명하기 위해서 육의 사람들을 주위에 배치가 돼야 돼요. 이런 육의 사람도 용서받는 걸 통해서 ‘성부, 성자, 성령님께서 이런 분이구나’ 하는 자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피조물이 주변에 배치가 되는 겁니다.

우리 피조물 구원하려고 하나님 계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속성과 그 본성과 하나님의 존귀를 드러내기 위해서 주변에 깔리듯이 만곡처럼, 음각처럼 피조물들이 배치가 되는 겁니다. 따라서 악마는 반드시 있어야 되죠.

10분 쉽시다.

관리자(IP:220.♡.176.169)

09-09-13 10:37

울산090904b출4장b

20090904b 울산강의-출애굽기4장
(강의:이근호 목사)

사람이 학창시절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첫사랑을 배태한 만들어낸 환경 안에서의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 거기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이미 환경이 바뀌어버렸으면 그 사랑도 바뀌어야 되는데 환경은 바뀌어버렸지 옛날 그때 좋았던 첫사랑은 그립지 그러니까 첫사랑을 데려오면 환경도 바뀌지 않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막상 이십 년, 삼십 년 지나서 첫사랑 만나보면 그때 그 분위기 아니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인간이라 하는 것은 세포로 돼있고, 물질로 돼있거든요. 물질로 돼있으면서 여기서 물질을 지배하는 그 무엇이 있어요. 그걸 일단 영으로 할게요. 인간은 물질로 돼있고 기계인데 이걸 지배하는 어떤 영이 있는 겁니다. 이 기계는 지금 움직이죠. 인간은 움직이잖아요. 교도소에서도 움직이고, 군대도 움직이고, 병원에서 아파서 툴툴거리면서 움직이고 있다고.

움직이는 그것이 제가 아까 이야기했듯이 뭔가 환경 따라서 어떤 사람은 A로 움직이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움직이고 당기는 곳이 움직임이 다 달라요. 같은 환경인데 감사하고, 미워하고 그렇다. 뭔가 당기는 것이 달라요.

다를 때 움직이는 이 힘을 기존 세상에서는 ‘법’이라 합니다. 결국 이건 뭐냐? 법이니까 선과 악에 관한 문제죠. 이걸 어떤 사람은 양심이라 하는데 인간은 비록 기계로 돼있고, 물질로 돼있지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선과 악의 용량에 따라서, 선이 많은 사람, 악이 많은 사람 용량에 따라서 그 물질은 다루어지기 일반이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렇다면 이 말이 맞습니까? 선과 악, 이런 법에 의해서 다뤄진다. 그러면 이 법은, 양심은 어디서 나오느냐? 이거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정답을 모르겠다는 거예요. 왜 내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지 그걸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걸 다른 말로 하면, ( ) 내가 왜 그것을 원하는지 내가 모르겠다.

여기 만약에 물이 있다. ‘물 먹고 싶다.’ 하면 되는데 ‘왜 나는 물을 먹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 말입니다. 그럼 물을 안 먹으면 그걸 누가 빼앗아 가면 이 나쁜 놈 하고, 어떤 사람이 물주면 좋은 사람이라 하거든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그러한 기계로써 움직여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거는 히브리인들이든 애굽 사람이든 구분됩니까, 구분 안 됩니까? 구분 안 되지요. 히브리인들도 양심이 있고, 애굽 사람도 양심이 있고. 그런데 제가 아까 이야기했듯이 하나님께선 똑같은 인간은 뭐로 나눈다? 한쪽을 이스라엘로 만들고, 한쪽을 애굽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애굽의 대표자가 뭐냐? 강퍅한 것. 아주 고집 센 것, 자기밖에 모르는. 이스라엘 특징은 뭐냐? 감사거든요. 감사하며 살라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강퍅과 감사가 나오고 구분되기 이전의 원상태, 원상태의 모든 인간들은 제가 아까 설명한 것처럼 인간은 기계 외에 뭔가 영적인 요소가 있는데 영적인 요소는 뭐로 구성돼있다? 법. 다른 말로 하면 로마서 7장에 보면 법을 양심이라 하거든요. 이방인에게는 양심이 있다 하거든요. 유대인들에는 법이 있고. 법적 감각, 양심 감각 이런 게 있어서 내 속은 선을 원하지만 또 다른 법이 있어서, 내 안에 악이 있어서 내가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 말이죠.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이 말은 뭐냐 하면, 사람에게는 두 개의 층으로 돼있는데 하나는 있고, 하나는 겉에 있는데. 겉에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고, 안 쪽은 뭡니까? 악을 좋아하고 선을 싫어하고. 두 개의 어떤 것이 같이 묶여져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층이 뭐냐? 성령 받았기 때문에 이걸 이야기할 수 있는 겁니다.

인간은 세포로 돼있고, 물질로 돼있는데 세포는 단백질로 돼있으니까 그냥 물질이에요. 근데 물질을 지배하고 움직이는 것은 어떤 법이다, 양심이란 말이죠. 양심을 분해해보니까 선악으로 돼있고, 인간의 양심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한다. 하지만 사도 바울에 의하면, 인간은 그것 말고 악을 좋아하고 선을 싫어하는 이것이 껍데기에 있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것보다 더 우세해요. 더 힘이 센 거예요.

이러한 선과 악을 유발시키는 자극하는 것은 외부에서 온 다른 더 바깥층부터 왔다는 겁니다. 율법이 오게 되면 사람은 잠자고 있는 악을 자극을 줘서 악으로 하여금 계속 악으로 유지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점점 어려워지죠. 복잡해요. 너무 어려운 건 생략하고. 하여튼 우리 속에 악이 있는 이것을 성령을 받은 사람만, 다른 층, 영적인 층에 있는 사람만 육은 이런 구조로 돼있다는 것을 파악하는 겁니다.

일단 그렇다 치고 여기서 제가 진도 나가고 싶어요. 다시 출애굽 돌아와서 출애굽 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과 무엇을 분리한다? 여러분 답변해 보세요. 아시니까. 애굽과 이스라엘을 분리했다. 이렇게 분리한 기준은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가를 때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애굽은 아직 미지수고, 이스라엘도 아직까지 미지수. 이스라엘이 뭔지 모른다 했어요.

그런데 애굽이 되기 위해서는 애굽 같은 환경도 함께 만들어져야 되고, 이스라엘 되기 위해서는 환경도 같이 만들어져야 되는데 이렇게 애굽과 이스라엘로 갈라지는 원재료는 이스라엘과 애굽과 관계없이 둘 다 동일하게 무엇에 갇혀있다 했습니까? 선악. 이걸 법이라 했고, 선악과죠. 선악과 따먹었잖아요. 인간은 법에 의해서 이거는 선한거야, 이거는 악한 거야. 법이라 하니까 어렵네. 양심, 양심이 법이거든요. 이게 제 말이 아니고 로마서 7장에 나옵니다. 이방인에게는 양심이 율법의 기능을 한다 했으니까. 로마서 2장에도 나와 있고, 7장에도 나와 있고.

양심이 있어서 양심이 법으로 해서 그건 나쁜 거야, 이건 좋은 거야, 판정을 내립니다. 판정을 내리는 그 환경 따라서 물질로 돼있는 이 세포는 조정 받게 돼있다 이 말이죠. 선악과라 하는 것은 물질에서 뿜어낼 수 없는 다른 층이 있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인간은 육체로 돼있다. 이 육체가 육체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뭉개는 게 아니라 다른 외부에 둘러싼 벡터라 했지요. 다른 힘에 의해서 무너진다. 이렇게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사람들의 양심이 만들어낸 종교성이에요. 까불면 맞는다.

어린아이가 있어요. 여러분, 어린이들은 자기 육체를 자기가 감당을 못합니다. 육체를 조정할 수 있는 외부에서 통째로 빌려와야 됩니다. 이 외부가 누구냐 하면, 아빠, 엄마에요. ‘엄마, 내가 뭐하면 되지?’ 자꾸 묻는 거예요. ‘아빠, 뭐하면 돼?’ 나라는 세포 덩어리를 어떻게 굴리면 나는 아빠한테 사랑 받을 수 있고, 엄마한테 사랑 받을 수 있어? 라고 자꾸 묻는 거예요.

이 묻는 게 뭐냐? 엄마, 아빠 흉내를 내는 겁니다. 아빠가 욕을 하면 아빠가 욕을 해도 되는 줄 알고 자기도 욕을 해요. 엄마가 나쁜 짓하면 자기도 엄마가 나쁜 짓하는 것처럼 되는 줄 압니다. 엄마가 늦잠 자면 애도 같이 늦잠 자요.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인간의 물질은 영적인 것으로 항상 이불처럼 덮이지 않으면 물질이 어떻게 돌아가질 않습니다. 뭔가 덮여야 돼. 그러니까 아빠, 엄마의 잔소리를 가지고 양심이 됩니다. 이게 법이 돼버려요.

그런데 아빠, 엄마는 자기 외부인이잖아요. 자기 몸 밖의 다른 신체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걸 아까 이야기한 아이의 커가면서 나오는 환경이 되는 겁니다. 환경에 따라서 사는데 애가 청소년기 되면 이제는 환경에 따라서 일방적으로 받는 애에서 자기가 환경을 변화시키는 거예요. 좀 컸다 이거거든요. ‘나도 좀 컸으니까 판단력이 있으니까 이제는 아빠, 엄마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줘. 휴대폰 사줘. 컴퓨터 바꿔줘.’ 자기가 환경을 바꾸려 해. ‘엄마 머리 좀 바꿔. 엄마, 옷 좀 다른 옷 입어.’ 애가 간섭해요. 심지어 독일에서 간섭해요. 전화해서. 멀리서 간섭해요. 원격조정해요. 왜냐하면 아빠, 엄마는 이제는 자기와 뗄 수 없는 자기 환경이에요. 그 환경 때문에 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를 위한 환경으로 바꿔지는 거예요.

여기서 이걸 가지고 학자들은 외부를 영적인 것을 영적이라 하지 않고, ‘타인’ 또는 ‘타자’라 하죠. 쉽게 남. 예수님을 믿었다. 어떻게 믿느냐? 예수님한테 복종해서 경배하며 믿습니다. 신앙생활 한 십 년 한 그 다음부터는 뭐냐 하면, 예수님한테 많이 복종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어떤 예수냐 하면, 내 소원을 들어주는 예수여야 한다는 본래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요.

제가 아까 목사님들 하고 이야기했지만 순복음교회가 한국교회 평가하면서 저 인간의 본성을 모르고 껍데기가 종교 생활하는 걸 바보 같이. 껍데기를 확 벗겨버려라. 사람들이 교회 나오는 목적은 세 가지밖에 없어요. 하나는 자기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걸 확정짓고 싶고, 두 번째는 부자 되고 싶고, 세 번째는 몸 건강한 거예요.

순복음은 세 가지를 다 주는 겁니다. 방언을 하게 되면 성령 받은 사람 되니까 구원받은 사람 되고, 그 다음에 기도하면 부자 되고, 그 다음에 병 낫고. 이게 민중들이 원하는 기본적인 종교성이잖아요. 그래서 그게 삼박자 구원 아닙니까.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건강하기를 원하노라.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힘이라 하는 것은, 바로 내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 인간이 선한 사람 되고, 부자 되고, 강건하고 이것을 위해서 누가 타인이라 했어요? 예수란 타인, 하나님이란 타인, 성령이란 타인, 목사란 타인을 자기에게 덮어씌우기를 원할 때 이 사람은 교회를 나옵니다. 자기가 만든 환경이에요. 이런 환경되기 전까지는 환경에 대해서 순응하다가 어느 정도 된다 싶으면 자기를 위한 환경으로 바뀌는 겁니다.

특히 장로, 오래된 집사, 헌금 많이 하는 집사, 개척교회 하는 목사. 주님한테 한다 해놓고 나중에 결국 자기 소유의 교회가 돼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는 정당하고, 자기 야심을 이룰 수 있고, 자기 선함을 알 수 있는 그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장독 열고 끄집어내잖아요. 이런 것이 인간이라면 분리를 시킬 때 어떻게 분리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등장하죠. 히브리인들도 이렇고, 애굽인들도 이러니까. 이쪽은 강퍅한 쪽으로 끌고 가고, 이쪽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쪽으로 끌어당기는 작업을 중간에 개입하는 인사를 통해서 분리해야 되니까. 이 중간에 개입하는 사람이 모세입니다.

모세는 뭡니까? 모세는 이런 인간하고 다릅니까? 똑같잖아요. 모세 몸에 뭐가 감겼다 했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프로그램이 칭칭 감겼다 했지요. 그걸 하나하나 풀어내면 모세가 움직이는 곳마다 무슨 일이 터진다? 모세가 쥐는 지팡이마다, 모세가 손을 집어넣을 때마다 뭐가 되겠어요? 모세가 지팡이 던지니까 뱀이 되고, 모세가 손을 집어넣으니까 문둥병 되고, 집어넣으니까 멀쩡하게 되고, 모세가 물을 떠서 육지에 부으니까 피가 되고.

그러니까 모세가 가는 곳마다 분리작업을 해야 되는데 분리작업하려면 모세가 하나님의 정보와 프로그램으로 칭칭 감은 것처럼, 감았다는 말은 외국영화에 보면 주인공이 여기에 총알 칭칭 감아 들고 다니는 그것 생각하면 됩니다. 자기 몸에 감긴 모세가 프로그램이 조금씩 풀릴 때마다 이쪽은 악마적인 프로그램이 감겨야 되고 바로 왕부터 해서 애굽을 칭칭 감아야 되고, 이쪽은 뭐로 감겨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는 사랑이, 용서가 칭칭 감겨야 되겠지요.

그렇다면 모세한테는 뭐가 감겨야 돼요? 무엇이 강퍅이며 무엇이 사랑인가를 양쪽 다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같이 감겨있어야 되겠죠. 왜 모세는 그래야 하느냐 하면, 아직도 이스라엘, 애굽, 히브리인 이 사람들은 선과 악이라는 법에 종속돼있어서 인간적인 그런 식의 선악적인 그런 단계의 영적 존재에 불과하거든요. 이것이 둘로 쪼개지면서 하나는 애굽으로, 하나는 이스라엘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기에 하나님께서 작업에 들어가요.

이 작업에 들어갈 때 방법이 뭐냐? 인간은 뭐로 돼있다? 물질로 돼있다. 물질을 조정하는 것은 인간의 법이다. 여기다 한 층을 더해요. 이게 뭐냐 하면, 약속. 약속 층. 다른 말로 말씀 층.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구원받았다는 게 뭐냐 하면, 교회 나오면 구원받습니까? 아니요. 그러면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법과 물질로 돼있는 이 층에서 문을 열어서 약속 층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 사람은 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문이 열리죠.

물질로 된 층은 바퀴벌레 수준이잖아요. 그게 짐승이에요. ‘법이고 뭐고 나는 술 처먹고, 마약하고, 밥이나 먹고 살면 그만이지. 인생 뭐 있어. 한방이지’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 물질로. 그 다음에 ‘아니야. 인간이면 인간답게 살아야지.’ 아직까지 법 층이죠. 그렇게 해도 법과 물질은 또 하나의 환경과 실체기 때문에 서로 법 안에 있는 악마가 물질을 다룰지, 선이 물질을 다룰지 이것은 결국 악이 선보다 우세하니까 모든 인간은 판사, 검사, 대통령 되도 악이 다루죠. 이거는 성도도 마찬가지죠. 그러면 이것을 다룰 수 있는 이런 인간이 개과천선할 수 없습니다.

옛 부대에 새 포도주가 담기면 포도주가 샙니다. 찢어지니까. 그래서 새 포도주의 값을 하기 위해서는 부대 자체도 새로 만들어져야 되죠. 그러니까 옛 부대는 율법이죠. 율법으로서는 주님의 복음을 담을 수 없고, 옛 부대는 옛 술만 담아요. 그런데 새 부대는 새 술만 담는데 새 부대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침투돼야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 층에서 나온 게 침투가 되게 되면 이 인간은 달라지지 않아요. 이거는 죽을 때까지 김 성도, 우 성도라도 이런 인간은 달라지지 않고 더 노골화되죠.

나는 나 잘난 척 한 것밖에 모르구나. 아침에 눈만 뜨면 나 잘났다부터 시작해서 눈 감을 때까지 나 잘났다. 심지어 꿈속에도 나 잘났다. 꿈꿔보세요. 꿈의 주인공이 누굽니까? 역시 내가 주인공이에요. 꿈에 하나님 경배하고 이런 것 없습니다. 경배해도 경배하는 내가 잘난 존재가 돼요. 이거는 달라지지 않아요. 그대로 있어줘야 돼요.

그래서 이걸 통째로 죄가 되기 위해서 주께서 활성화시키죠. 불신자한테는 애굽 사람한테는 뭐가 없느냐 하면, 약속으로서 이걸 정당화하는, 더욱더 하나님 약속에 대해서 반격을 가하는, 도전하는, 대드는 것으로 모이게 돼있고 주님께서는 굴복시키는 사건들이 툭툭 터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건들은 세 가지 봅시다. 제가 아까 물질과 선악과, 양심 다른 말로 법, 그 다음에 여기다 영적인 층으로 세 가지로 나눈 이유는 이겁니다. 어렵기 이야기해서 말씀이 인간에게 다가왔을 때 인간은 어느 대목에서 이 말씀과 반항하느냐 이 말입니다. 여기에 창세기 3장에 보면, 정말 이런 것들은 어렵다. 하나님 오기 전에 그들은 무슨 대목입니까? 생식기관에서 뭘 느꼈어요? 수치를 느꼈죠. ‘아이고, 부끄러워라’ 안 그랬어요.

왜 그러냐 하면, 예를 들어서 손이 움직이면 가만있어. 이렇게 하면 가만있어. 그러나 아무리 인간이 다스리지 않는 온 몸에 퍼져서 발산하는 게 있습니다. 그게 성욕입니다. 번식과 관련된 성욕은 노인네가 구십이 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안 되서 못하지. 심지어 세 살, 두 살 애도 마찬가지.

이 성욕은 온 몸을 영적으로 지배해요. 그래서 성욕과 관련된 여기만 가려버리면 온 몸 전체의 수치가 가려버린 게 되는 거예요. ‘아이고, 나는 수치스럽다.’ 하는 게 아니고 ‘여기만 가리만 괜찮지롱.’ 그러니까 뭔가 성욕과 관련된 이 대목에 있어서는 전체의 수치와 자존심을 대변해주는 어떤 기관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 기관이 생식기관이 됩니다. 뭐냐 하면, 육에서 육을 낳는 기관은 DNA 같으면 하나님의 정보가 자식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육적인 기관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는 수치를 남성의 생식기에다 할례를 행함으로 말미암아 육적인 인간과 약속의 인간을 분리시켜버려요. 다시 말해서 네가 인간 본성적으로 인간의 존재자체가 뭐냐? 자식새끼를 번식하기 위한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성욕이 없이는 그게 안 돼요. 자식이 안 되잖아요.

정신병자들하고 정박아에게 암이 없답니다. 스트레스를 안 받으니까. 그런데 암은 없어도 댕기는 건 있습니다. 성욕은 정신병자, 정박아 상관없어요. 그래서 정신병동에서 조치를 취하잖아요. 성적인 번식을 불가능한 강제적으로 조치를 취하잖아요. 놔두면 계속해서 정신병 유전자가 번식되니까.

인간의 육에서 육을 낳는 그 부분에다 주께서 어떤 약속의 흔적을 남깁니다. 너는 거룩한 백성이다. 누구든지 할례 받지 않으면 내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없다. 흔적을 남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받는 약속은 이런 인간적인 생식기능 말고 다른 방식의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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