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녹취]20090829c 대구특강-리델보스의 하나님나라c자유게시판미가

[녹취]20090829c 대구특강-리델보스의 하나님나라c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48)

20090829c 대구특강-리델보스의 하나님나라c

(강의:이근호 목사)

시작합니다. 아까 신상 다시 그려보겠습니다. 신상이 무너졌다. 무너지고 발이 있다면, 금, 은, 놋, 철, 진흙이 있는데, 이 발과 인자의 나라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역사 자체를, 역사 전체를 넘어뜨리는 인자의 나라가, 묵시의 나라가 온다 했으니까 이걸 역사적으로 보면 틈이 없는데 그것은 바로 그 다음에 온다는 뜻이 아니고, 이미 틈도 없이 바로 밑층에 이게 있다는 뜻이에요. 계속 주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사람들은 역사적 존재기 때문에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묵시가 미리 와서 전한다. 미래가 미리 와서 주어진다 해서 미래의 ‘선취’라 하는데 이건 잘못됐어요. 왜냐하면 선취라 하는 건 취득한 게 되잖아요. 그런데 원래 미래의 선취가 아니고 미래의 먼저 선점 내지는 침노, 공격. 미래가 현재를 공격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말도 사실은 정확한 말이 아닌 것이, ‘그러면 그때 미래 가서 잘하지.’ 이러잖아요. 마치 기름 준비하는 열 처녀들처럼. 미래, 아직도 미래 아니니까 지금보다 미래라니까 그때 가서 하지 하는데 미래의 선취라는 말은, 지금 주인이 갔더라도 주인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 있다면 기름 준비해야지. 지혜로운 다섯 처녀나 달란트 비유에서 항상 주인이 먼 타국에 갔더라도 지금 있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께서 먼 타국에 갔다는 말을 왜 하시는가?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시간론에 내가 저촉 받지 아니한다는 것, 너희들의 게임의 룰에 내가 놀아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그 게임의 룰을 리델보스는 유지하고 있어요. 임시적인 것, 현재적 왕국, 미래적 왕국. 그런데 슈바이처는 철저적 종말론 해서 이거는 종말도 아닌 것이, 현재도 아닌 것이 그저 종말이 ‘가까이 왔다, 가까이 왔다’ 그것만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 이게 몇 센티 왔다는, 몇 시간 남았다는 말입니까? 가까이 왔다는 말을 풀어 해석할 수 없도록 가까이 온 거예요. 말하는 내가 잘못이다. 방금 말한 것은 취소합시다. 해봐야 어려우니까.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아무리 가까이와도 가까이 옴을 역사적 의식을 갖고 있는 우리들은 그걸 해석할 수가 있다, 없다? 하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왜? 우리는 항상 미래라 하는 것은 아무리 가까이와도 미래는 여지가 있는, 아직도 뭔가 남아있는 거예요. 우리는 미래를 맛볼 수 있다, 없다? 맛을 못 보는 거예요.

회개하라.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할 시간은 줄게. 왜? 가까이 왔기 때문에 줄게. 이 회개하라는 결국은 뭐냐? 회개 된다, 안 된다? 회개 안 된다는 겁니다. 결국 너희들의 시간 가지고 아무리 해도 회개가 안 될뿐더러 하늘나라가 와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죄가 뭔지도 모르기 때문에.

죄는 언제 안다고요? 죄는 오셔서 그 자체적인 의미를 담고 십자가에 죽어도 의미 압니까, 모릅니까? 몰라요. 사울이라는 사람은 예수님 십자가에 죽어도 몰랐어요. 예수를 이단으로 본 겁니다. “어떤 인간이 와서 십자가 죽었는데 그 십자가 피가 죄를 용서해 준대. 웃기지. 여러분들. 그런데 내가 이런 자를 가만두면 하나님 뜻이 아니지, 종이 아니지. 잡아 죽여라.” 해서 사울이란 사람이 잡아 덮쳤습니다. 25년 전에 일어났던 십자가 사건에 있어서는 그건 하나의 과거 사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고 예수님이 부활하고 만나고 난 뒤에 지난 사건이 어떻게 됐어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 분명히 십자가 사건 때는 강도 둘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십자가와 함께 죽었으니. 뿐만 아닙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여러분도 십자가 함께 죽지 아니하면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이 아닌 게 된다고.

그렇다면 세례, 연합이란 개념은 이미 무슨 개념을 벗어나야 됩니까? 역사적, 내가 정열 해놓은 내가 배열시킨 역사적, 시간적 의미를 어떻게 해야 돼요? 그것을 공격하고 그걸 죄라고 지적하는 그 힘, 그 힘 안에 뭐가 들어있다? 비로소 주님의 묵시적 사건의 의미가 그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날 치세요. 내가 무슨 생각하든지 날 때려달라고. 까라면 깝니다.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옵니다. 주께서 주님이니까 해달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그래서 지금 리델보스의 약점이 그거에요. 주님께서 안 된다는 차원에서 공관복음,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이야기했는데 리델보스가 하나님나라 의미를 주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으로 채우다보니까 ‘하면 이렇게 됩니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어요. ‘회개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라는 식으로 물론 본인은 주춤주춤 하지만 그런 식의 논리가 전개될 수밖에 없어요.

만약에 리델보스가 진짜 제대로 하늘나라를 안다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가지고 하나님나라를 쓰면서도 제목을 [하나님나라] 해놓고 남아있는 하나님나라 하든지 덜 된 하나님나라. 왜냐? 사도 바울에 의해서 하나님나라가 다 되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마태, 마가, 누가 중점으로 한 것은 천국이란 이 개념이나 하늘나라 개념이 거기에 중점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아마 그것 뽑아내면 하늘나라 책 한 권 되리라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적은 거예요. 쓴 거다 이 말이죠. 이 책 안 봤으니까 말하기가 뭐 하네요. 하지만 이 책에 목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때문에 여러분하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야기 계속 해봅시다. 여기 제가 방금 뭐라 했습니까?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해도해도 안 된다를 보여주기 위해 한 거죠. 안 된다. 불가능이죠. 우리는 불가능 속에 놓일 수밖에 없는데. 그 불가능을 어디까지 확장시키느냐 하면, 우리가 들어가고자 하는 천국까지. 천국까지 합쳐서 우리는 항상 불가능이 돼요.

그래서 제자들이 이야기했잖아요. 부자가 천국 가지 힘들다 하니까 제자들이 하는 말이, “그러면 누가 갈 수 있습니까?” 할 때 예수님의 단정이 뭡니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 불가능성으로 있어야 돼요. 그러면 그 다음엔 뭡니까? 하나님은 하신다는 말 자체가 예수님 하신 말씀인데 우리한테는 모순되죠.

왜냐하면, 우리는 안 된다, 하나님은 하신다는 것은 포함시킬 때 이거는 역시 예수님이 보시기에 해석 틀려먹었음이 되죠. 왜? 그렇게 해석하는 자체가 어디서 나온 해석입니까? 해석 불가능성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렇게 다짐에 다짐을 해도 그건 어디에 포함돼요? ‘여전히 너는 나를 몰라’에 포함되죠. 그렇지요?

만약에 제자들이 그 말 알았더라면 누굴 안 죽였습니까? 예수님 십자가 안 죽였든지, 예수님 십자가에 죽을 때 자결했을 거예요. 도망치지 않았을 거예요. 안다, 안다 해도 백날, 천날 이야기해도 예수님 십자가 죽을 때 다 어떻게 됐습니까? 한 놈은 팔아먹고, 한 사람은 배신해버리고. 아무리 예수님의 말을 많이 듣고, 기억해도 그거는 여전히 어디 안에 녹아 있느냐? 나의 불가능성 안에 녹아 있는 잘못된 해석 풀장에, 그런 욕조 안에 그저 눌러있는 거예요.

목사님, 우린 아니죠. 우린 아니지만 그런 절차를 밟아야죠. 이런 제자들의 절차들을 밟고 가야 돼요. 그럼 밟으면 됩니까? 그 절차를 평생 끌고 가야 돼요. 주체는 불가능, 주체가 깨지면 가능.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예수님이 어떻게 표현했느냐 하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인과 종으로 표현했어요. 뭐냐 하면, 하늘나라는 독자적으로 내가 판단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누구누구의 종이 되어야 주인 덕분에 들어가는 나라라고 표현해요. 누구누구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종은 어떤 특징이 있느냐 하면, 종은 절대로 종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종은 먹든지 마시든지 누구를 표현해야 됩니까? 주인을 표현해야 돼요.

그걸 예수님께서 발전시키면서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대목에서는 너희들은 나의 신부, 혼인잔치 이야기했어요. 어떤 때는 종이라고 했고. 이걸 한꺼번에 말해서 구약적으로 해서 백성이라 했고, 내 자녀라 했다고. 아들.

그렇다면 제가 쉬운 것 해보겠습니다. 종이라면 누구 이야기한다? 주인 이야기한다. 아들이라면 누구 이야기한다? 아버지 이야기한다. 신부라면 누구만 이야기해야 신부다? 나는 신부다 하면 안 되지요. 누굴 증거해야 된다? 남편을 증거해야 된다.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 항상 남편과 아버지와 그리고 주인을 예수님과 아버지하고 연결시켰잖아요. 이걸 집어넣었다고. 집어넣어도 아직까지 불가능 속에 있는 사람들은 신부를 이해 못하고, 자녀 됨을 이해 못하고, 종을 이해 못하는 거예요.

제가 이야기하는 초점이 뭐냐 하면, 아들 됨을 이해 못할 때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를 누구 아들이라 했습니까? 아버지의 아들로 해서 아들에 의해서 아버지는 장차 아들 될 제자들에게 이 아버지는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지금 그걸 묻고 싶은 거예요. 안 보이죠. 알아요, 몰라요? 답변해보세요. 이 당시에. 모르지요. 모르면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우회해서 아버지를 보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도마가 하는 말이, “아버지를 제게 보여주세요.”라고 할 때 “그래 내 뒤에 계시다.” 보여주면 되는데 뭐라고 이야기하시느냐 하면,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보았는데 왜 자꾸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 말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들이 알고 있는 그들이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생각할 때 ‘예수님 계시고, 아버지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그 아버지는 진짜 아버지입니까, 가짜 아버지입니까? 그게 가짜 아버지에요. 가짜 아버지기 때문에 베드로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예수님 끌러가는 곳에 아버지 계시기 때문에 저도 가겠습니다. 목숨이요? 까짓것 내 목숨 자르고 죽기까지 가겠습니다. 하니까 예수님이 네가 죽어도 못 가는 곳이다. 왜? 처소가 마련 안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 처소가 마련되지 않은 인간이 아버지를 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건 아버지를 몰라요.

이 책에 보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방식이 나와요. 리델보스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율법으로는 못 들어가고. 주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들어간다. 맞는 말이죠. 근데 제가 보기에는 그게 내용상 맞는데 표현상 달라요. 틀려요. 또 다 잊어버렸죠. 표현은 어디서 표현된다? 혼자서는 안 되고, 어떤 구조 아래, 어떤 주변의 환경 속에서 표현된다 했지요. 하여튼 돌아서면 잊어버려. 그래서 어렵다니까. 나 혼자 의미 알아버리면 이거는 자기 몸 안에서 의미기 때문에 이건 일방적인 의미고, 인간의 표현이잖아요. 그건 아니고. 어떤 구조에 따라서 천국이 되는데

율법으론 못 들어가고, 주님의 사랑으로 들어간다면, 베드로가 얼마든지 목숨 바쳤으니까 따라 갈 수 있다고 장담할 만 합니다. 왜? 그동안 사랑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물 위까지 걸었잖아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율법으로 못 들어가고 사랑으로 간다는 그 의미조차도 이미 천국에 처소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석하는 율법과 사랑의 개념은 옳은 의미입니까, 옳은 의미 아니에요? 엉터리죠. 잘못된 거예요. 그것조차 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바로 베드로도 알고 있는 그런 사랑을 마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그거는 진짜 베드로처럼 주님을 배신할 사람이고, 객기 부릴 사람이에요. 그런데 기존의 신학에서는 사랑을 뭐라고 보느냐? 방금 엉터리 사랑을 세 자로 ‘아가페’ 사랑이라 합니다. 기존 조직신학에서 사랑을 셋으로 나눠요. 제일 위에 있는 걸 아가페, 두 번째 밑에 있는 걸 필레오, 세 번째로 에로스라 합니다. 철학교수 들으면 멱살 잡히고 귀싸대기 세 방 반 더 맞습니다. 이 무식한 놈.

철학에서 이래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지 마음대로에요. 아가페는 신의 사랑이고, 필레오는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고, 에로스는 육적인 욕망에 의해서 성적인 사랑이라 하는데. 죄송합니다. 다 틀렸습니다. 에로스 사랑 안에 신의 사랑이 들어있어요. 에로스 사랑은 뭐냐? 신을 향하여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사랑을 에로스 사랑이고, 몸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신은 뭐냐? 잡신. 다신이에요.

필레오 사랑은 인간 대 인간의 사랑을 말하는데 인간 대 인간의 사랑도 신이 주신 아가페 사랑에서 나온 필레오기 때문에 이것도 아가페 사랑에 예속됩니다. 육체보다 정신이 더 높다는 것에서 아가페, 필레오, 제일 밑바닥에 에로스 이렇게 서열을 매긴 겁니다. 이것하고 예수님 십자가하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 믿으시면 지옥 갑니다.

그러면 왜 교회에서 아가페 사랑을 이야기하느냐? 그것은 사람이 누구나 역사적 환경 속에서, 철학이 어디서 나왔어요? 너나 나나 같은 인간이고 같은 몸이잖아요. 철학자도 나하고 같은 인간이니까 나보다 좀 연구 더했다 뿐이잖아요. 그런데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가능할 수 있는, 불가능이 아니고. 인간이란 이름으로 가능할 수 있는 최고 정점에 철학자가 있고, 성경적으로는 바리새인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그야말로 고상하고, 아주 품위 있고, 우아하고, 성스러운 것은 다 모아놓고 그게 자기 인생의 하나의 교회 다니는 목표, 하나의 비전, 하나의 소망으로 교회 다니는 어떤 동기유발이 될 수 있잖아요. 나도 테레사 수녀처럼. 우리 십자가마을은 그런 게 없어서 좋아요. 나는 이근호 목사처럼, 그런 게 없어 좋아. 나 혼자 웃는다.^^

어떤 경우라도 육은 목표가 있어요. 저 사람처럼 잘 살기, 저 사람처럼 똑똑하기. 그게 목표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앞날의 아름다운 성과를 위해서 지금은 자기 몸을 때려가면서 인내하고 절제하고 참는 겁니다. 그게 바로 사랑의 구조 안에서 이뤄지는 거예요. 이게 바로 지옥의 힘이라니까.

이게 바로 예수님 목숨, 마지막에 뭐냐? 순교 아닙니까. 내 목숨 바치고 주님한테 가겠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이겁니다. 제발 좀 순교하지 마세요. 왜 순교해서 죄인 될라 합니까? 안 해도 죄인인데. 목사님, 순교해서 죄인 된 것을 알라 합니다. 그러면 순교하세요. 그런데 순교하는 작자들이 자기 죄인 되려고 순교 안 합니다. 죄를 벗어나서 의인 되려고 순교해요. 그게 얼마나 죄악된 겁니까.

조금 있으면 돼지고기 바비큐 합니까? 바비큐 먹는 게 죄고, 그게 순교입니다. 주님 증거하면 돼요. 예수님의 정보가 나온다는 자체는, 나는 순교 아니라 주께서 순교되게 하십니다. 왜? 예수님의 정보만 나오기 때문에. 그렇다면 여기까지 결론 내립시다. 주께서 일하는 모든 사건은 우리를 파괴시켜서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자기 정보 캐내기. 이게 바로 성도의 사명이에요.

발로 차고, 말씀으로 때리고, 쪼개고. 그걸 히브리서에서 말씀으로 후비고, 쪼개고, 쪼개서 네 안에 내 정보 들어있다. 예수 정보 들었다. 그게 성령이죠. 내 안에 성령이 들어오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으니까. 네 정보 말고 죄 정보 말고, 너를 용서하는 예수님의 정보 들어있다. 모든 종말에 모든 인간은 저주받아야 마땅한데 그런데 나는 너를 이렇게 사랑했다는 끊이지 않는 사랑을 줬다는 그 정보를 우리는 만날 도배하고 도배하면 깨버리고, 도배하고 도배하면 깨버리고, 해체시키고. 그걸 말씀으로 해체시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설교요, 그게 강의요, 그게 성령의 은혜 아닙니까. 그게 묵시의 사건이 아직도 떠나지 않고 계속 우리 안에 있는 거죠. 뭘 해도 죄며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 은혜가 항상 임하는

그러니까 여러분, 늘 깨어지고, 늘 부셔지고 주님의 말씀이 늘 복입니다. 축복인 줄 알아라, 이것들아. 내 안에 누구 들어있다. 그걸 뭐라고 합니까? 주님의 종. 종은 뭐해야 된다? 종은 주인만 이야기하면 돼요. 신부는 뭐만 하면 된다? 신랑만 이야기하면 된다고요. 물론 사람들은 신랑 잘 꿰찬 자기 자랑하지만. 우리 신랑 괜찮다. 그것 이야기하면 신부라고. 남편하고 살며 지 자랑하면 그건 동거죠.

그래서 거기에 하나님나라란,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비유했습니까? 하늘나라란 강도가 쳐들어와서 집구석을 뒤져서 주인을 묶고, 그동안 주인 안에 예속돼있는 가구를 들쳐 업고 가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나라다. 뭔 뜻입니까? 어느 인간도 독자적인 존재는 없고, 네게 나한테 오기 전까지는 누가 주인이었다? 마귀가 주인이었는데 이제는 주인이 어떻게 됐다? 예수님이 주인으로 바뀌었다. 성령의 전으로 바뀌었다. 그 바뀌는 힘이 바로 하늘나라가 임했기 때문에, 묵시가 덮쳤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런데 리델보스는 이걸 보면서 사랑을 행하자. 마태, 마가, 누가에 있잖아요. 서로 사랑하라 있잖아. 너 해보세요. 사랑을 하는 게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하늘나라에요. 믿는 게 하늘나라가 아니고 믿어질 수밖에 없는 게 하늘나라라니까.

세 번째 시간은 두 번째 시간 어려운 고비를 견뎠기 때문에 세 번째 어려운 것 이제부터 하겠는데 좀 참으면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다니엘 이야기인데 다니엘이 기도를 했어요. 그림으로 하겠습니다. 물어서 합시다. 내 힘드니까. 다니엘에게 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몸 있지요. 그러면 다니엘에게 역사적 의미가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오죠. 인간이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는 자기와 연결 고리된 타인의 역사와 접속을 해요.

그래서 어떤 경우는 제가 서울에 강의한다든지, 집에 볼 일 보러 가버릴 때 그때 좀 미안한 게 뭐냐 하면, 누가 질문하면 즉각 답변을 하는데 어디 볼 일 본다든지, 안 그러면 1박2일로 멀리 갔다 오면 질문이 이만큼 있거든요. 그러면 속으로 미안해요. 왜? 목사님은 내 질문을 무시하는 모양이다. 왜 다른 사람은 곧잘 답변해주는데 내 질문은 벌써 세 시간째 안 해줘. 그거는 다른 사건과 접속돼서 그래요.

나라는 역사적 환경에서는 다른 역사적과 접속이 돼버려요. 타인과 접속이 돼버리면 이쪽 전에 있던 접속이 잠시 중지가 되고 타인과 접속이 돼버립니다. 지금 다니엘은 누구와 접속이 돼있냐 하면, 이스라엘 역사와 접속이 됐습니다. 예레미야 예언과 접속이 되었어요. 예레미야 예언에 보면 70년 만에 돌아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다니엘은 기도하는 가운데 첫 번째, ‘왜 70년입니까?’라는 질문과 그 전에 ‘왜 우리는 포로 잡혀야 됩니까?’ 하는 이 문제.

여러분, 이 문제가 지금 이스라엘과 접속이 안 돼있고 대한민국과 접속돼있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하고 접속돼있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과 접속되면 왜 이스라엘은 멸망당하고 그것도 70년 동안 멸망당했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나다나엘이 와서 두 가지 다 응답을 해줍니다.

그 응답에 대해서 두 번째 질문, 왜 우리 민족은 성전은 불타 버려야 되고, 왜 우리는 남의 나라 쫓겨 다니고 해야 됩니까? 거기에 대한 응답은 뭐냐 하면, 너희들이 지은 죄는 잘못된 죄의 개념이라는 거예요. 죄의 개념은 미래에서 찾아와야 돼요. 미래소년 코난. 만약에 미래에서 안 찾아오면 내가 이 정도 잘못했는데 이 정도 성전 불탄다? 너무 심했다. 주님께서 너무 오바하신다. 적당히 이야기하면 회개할 텐데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

우리는 현재에서 자기가 알고 있는 윤리관으로 자기 죄를 평가하고 회개하고 반성하다 보니까 진정한 죄의 의미를 몰라요. 주님께서는 죄의 의미는 네가 지은 죄 지은 자가 죄 의미를 아는 것이 아니고 차후에 진짜 그 죄를 유발시킨 분이 진정한 죄는 이렇다고 알려주기 위해서 그들은 그들의 자리를 떠나야 되고 성전은 깨져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성전은 내가 지은 육체의 몸과 관련된 죄가 아니라, 이것 마지막 어려운 거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돼요. 성전에 깨어짐과 관련된 죄의 의미다. 왜 그런데요? 너는 네 이름이지만 성전은 주의 이름 있잖아. 주의 이름이 있는 성전이 깨어질 때 주의 의미 층에서 비로소 알려주는 죄가 우리에게 덮치는 그것이 칠십 년 동안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칠십 년 동안 성전은 마음껏 유린 돼야 돼요.

유린 되면 얻는 게 뭡니까? 누구야 성전 깬 놈? 바벨론입니다. 앗수르입니다. 아니야, 아니야. 그건 역사적 의미야. 누구야? 주의 이름이 있는 성전을 깬 놈이? 그거는 주의 이름에 의해서 지옥 갈 놈이 깼습니다. 그 놈이 누구야? 땅에 없습니다. 올라오라 해. 어디서 올라와요? 바다에서 올라오죠. 그러니까 바벨론을 뭐라 합니까? 짐승이에요. 땅에서 땅의 문제가 해결 안 된다는 거예요. 땅에 있는 놈들은 인간들밖에 없어요. 인간들에서 인간들이 해결이 안 돼요.

그럼 진짜 인간은 왜 죄 짓는가? 바다에 있는 놈이 올라와야 되는데 바다에서 올라오는 놈은 한 자 없을 無, 무에서 새로 창조되려면 묵시적 표현 층, 어디?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그쪽 층에서 안식의 차원에서 있는 창조도 없는 걸로 돌려버리고, 바다와 땅의 경계를 허물어버리고, 바다에 있는 놈들 땅에 올라와. 거기서 나온 영화가 [해운대]. 하나님의 노아언약에 의해서 경계를 정하사 바다가 땅에 못 올라오게 돼있는데 올라온 거예요. 드디어 땅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 땅은 주의 이름을 대적하는 짐승의 세계였음을 옛날부터 그랬는데 그게 마지막 때에서 들통 났죠. 역시 짐승의 왕초였구나.

그렇다면 너희들의 주인은 예수, 하나님 백날 부르짖어도 네가 가구라면 가구의 주인은 누구였다? 마귀였느니라. 마귀하고 성령 받은 인자, 주님하고 맞짱 떠서 주님이 이기면 전리품으로 누굴 채간다? 악마에 속한 너희들을 채간다. 다 같은 가구라고 채가는 게 아니고 내가 약속한. 나는 세상사람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온다. 왜 이스라엘 양입니까? 시편 143편 보니까 그들 위에 주의 이름이 있거든. 다니엘에 보면 인자의 이름이 있거든. 언약 대로에요. 그럼 언약 바깥에 있는 사람은, 미안하다 그냥 집에 가줘요.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 이름을 의지하지 않고 누구 이름을 의지한다?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주의 이름을 내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주의 이름에 나올 수 있는 능력으로 내 능력이 아니고 믿는 능력이 아니라 주의 이름에서 나오는 능력, 믿음으로, 소망으로, 사랑으로 아가페가 아니고, 주의 이름의 사랑으로 저는 구원됐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구나.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다니엘 70이레 할 때 기도 내용에 보면, 성전이야기 나오고, 그 성전이야기가 왜 나오느냐 하면, 성전에는 뭐가 있다? 주의 이름이 나오고, 주의 이름은 주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종을 부르게 돼있는데 종이 아무리 도망쳐도 한 번 주의 이름이 불러주면 그 다시스로 도망가도 종은 끌려오게 돼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설교했잖아요. 요나가 예루살렘을 벗어나서 다시스로 도망갈 때 요나 자기 혼자 나왔다고 했는데 요나 따라온 것들이 누구였습니까? 바람, 구름, 날씨, 기상캐스터, 선장, 배 다 따라온 거예요. 그러니까 표현은 어디에서 밝혀진다? 표현이 의미되는 것은 구조. 또 잊어버렸죠. 요나란 표현은 요나가 만나는 게 아니고, 요나를 구성하고 있는 환경구조로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나는 자기 의미로 삐져서 아이고, 니느웨 사십 일 만에 망한다면서 안 망하네요. 하니까 요나 주변에 박 넝쿨 환경 줘버리니까 어, 박 넝쿨 시원하다. 새로운 구조에 시원하다고 이야기했지요. 졸지에 박 넝쿨 시들게 하니까 요나는 뿔다구 내지요. 그것보고 너는 환경 속에 나타난 나의 언약을 왜 모르나. 니느웨는 멸망당할 족속이 아니고 멸망당할 유다와 이스라엘 이야기할 하나의 바깥 환경이었다. 바깥 표현 층.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주의 이름이 이스라엘만 주의 이름이 아니고 니느웨까지 포함된 주의 이름이죠. 그렇다면 온 천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되는 것 그래서 그게 예수의 나라가 곧 천국이죠. 천국이 예수의 나라가 아니라 예수의 나라가 그게 천국이죠. 천국이 예수의 나라는 틀렸다. 왜? 이미 천국이란 개념을 내가 만들어놓고 거기에 객체로써 술부로써, 언어에 주부와 술부가 있거든요. 동사 뒤에 나오는 붙어있는 목적어 이런 것. 주부는 내가 잡고 있고, 술부는 성경으로 채우니까 리델보스야, 이건 인간의 나라지 하늘나라가 아니다. 개혁주의가 잘못 됐다 이 말이에요. 왜? 주체를 자기들이 아는 신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더 어려운 게 남아있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어려운 것 들어갑시다.

나다나엘에 의해서 기도응답이 그렇게 나왔을 때 나다나엘이 첫 번째는 해줬지요. 뭐라고? 성전. 성전에 뭐가 있다? 주의 이름이 있다. 주의 이름에서 성전의 개념은 주의 이름이 떠나면 멸망이겠죠. 답변 좀 하세요. 무식하니까 답변도 안 한다. 주의 이름이 떠나면 저주죠. 그럼 주의 이름이 있으면 사랑이겠지요.

그러면 저주를 알리기 위해서 주의 이름이 갖고 있는 저주의 속성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됩니까? 성전은 떠나야 되죠. 떠나고 난 뒤에 이걸 무라 하고, 이걸 공터라 하고, 이걸 빈터라 하죠. 허공이 되죠. 성전은 허공이죠. 주의 이름이 이 땅에 오면 허공이 돼야 돼요. 며칠 동안? 십자가 죽고 난 뒤에 사흘 동안 허공이 되죠. 그런데 성도한테는 성령이 옴으로 말미암아 허공이 새로운 주체로서 채워지지만 성도 아닌 사람한테는 영원한 없는 사람. 그래서 없는 사람 믿는 놈은 미친놈이죠. 예수 믿는 놈은 미친 놈. 왜? 없는데.

현재 이순신 장군 믿는 사람은 누구밖에 없습니까? 이순신 장군 귀신을 섬기는 무당이죠. 지금 최진실 믿는 사람은 누구밖에 없습니까? 최진실 유골 훔치라고 뒤에서 배후한 무당밖에 없죠. 최진실이 말하기를 답답해서 못 살겠다. 뿌리라고 해서. 그래서 결론은 신내림. 성령의 신내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의 신내림은 하늘나라 천국. 요한복음 2장에. 그걸 리델보스는 설명을 못합니다. 왜? 허공. 리델보스는 허공을 용납 안 해요. 뭐라도 채워져야 돼.

그런데 주의 이름은 주의 이름이 떠남으로서 도리어 더욱더 감추어진 주의 이름을 부각시키죠. 이 땅에 누구만 산다? 인간이 사는 줄 알았더니만 바다에 있는 짐승을 불러내서. 그런데 짐승을 불러냈지만 사람들 보기에 짐승이, 짐승이 아니고 누굽니까? 그냥 인간이죠. 느부갓네살은 알았어요. 왜냐하면 자기가 칠 년 동안 계시에 의해서 짐승 생활 해봤기 때문에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이 뭐냐? 주의 이름이 없는 곳, 다시 말해서 성전이 아닌 사람은 사람이다, 아니다? 사람 아닙니다. 사람 아니니까 짐승이죠. “목사님, 제 남편이 예수 안 믿는데 같이 살아야 됩니까?” 그 말 다시 질문해보세요? 이렇게 해야 돼요. “제 남편이 짐승인데 같이 살아야 됩니까?” 살 수 있지요. 왜? 짐승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밤 자리에 짐승처럼 달려드는 것 좋아하는 사람 있습니다. 짐승으로 살면서 지가 예수 믿으면 돼요. 이혼할 필요 없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짐승이 교회 가지 말라고 패면 어떻게 하느냐? 본인이 짐승이면 같이 살고, 본인이 주의 이름이 있으면 잠시 떠남으로 말미암아 남편은 짐승이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예수 정보를 가진 사람으로의 기능을 다해서 표현 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참 사도 바울이 못 됐어. 여러분 속에 주님 이름이 있습니까? 예. 그럼 혼자 사세요. 결혼하지 말고. 너무 심한 말 아니에요? 혼자 사는 게 편하다는 거예요. 괜히 예수님 정보가 있는데 같이 살면, 전에는 주님을 위해서 주님, 주인입니다. 하다가 그 다음부터 남편에게 잘하려고 그렇게 애쓰니까 주님이 얼마나 섭섭하겠느냐고 고린도전서 7장에 나옵니다. 있어요. 찾아보세요.

그럼 결혼 안 한 사람은 잘했느냐? 천만의 말씀. 결혼 안 한 것 때문에 반대로 결혼 한 것이 뭐가 돼요? 빈터가 없어요. 빈터 되기 위해서 결혼해야 되죠. 제가 해도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하여튼 알아서 해석하세요. 결혼 한 사람은 결혼 안 한 자가 빈터가 되지만, 결혼 안 한 사람은 결혼 한 게 빈터가 되지요. 결국은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뭐다? 죄인이다.

왜 하필 70년입니까? 하니까 나다나엘이 하는 말이, 70년 아니야. 70년 되면 돌아가라 했는데. 돌아가지 마. 그럼 70년 아니고 무니까 무의 세계에선 70년이 아니고 70이레야. 이레니까 70*7하니까 490년이구나. 그런 해석은 역사적 해석이고. 이레란 말은 창조의 단위라서 이레는 일로 풀지 말라. 그냥 이레에요. 이레가 칠 년이 뭐가 된다? 일년처럼 앞으로 그렇게 다루겠다. 창조의 단위니까. 모르면 여기 교재 보면 나옵니다. 하여튼 대충 그렇게 알고 넘어가요.

센티미터를 ‘c’하고 ‘m’하고 나누면 안 되잖아요. 이사도라란 이름을 ‘이사’와 ‘도라’면 개판 됩니다. ‘이사’하고 ‘도라’는 합쳐야 되지요. 이레라는 것을 나누면 안 돼요. 첫째 날, 둘째 날 해도 그건 일곱째 날 안식 안에 다 포함이 돼있어요. 그런 식으로 1, 1, 1 ... 7이 아니고 이미 안식입장에서는 하나님 형상 입장에서는 칠일 전체가 안식이에요. 첫째 날 괜찮고, 둘째 날 못하고 그게 없어요. 전체가 하나의 창조덩어리, 단위가 되는 겁니다.

로켓이 일 단계, 이 단계 합쳐서 로켓이 되는 거예요. 나로호 되는 거예요. 페어링 분리가 안 되서 문제가 됐잖아요.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는 일단 예수 믿고, 그 다음에 선한 행함으로, 야고보서에 행함 있잖아. 이렇게 둘로 나눈 것이 아니라 그 믿음 안에 이미 완료가 다 포함돼있다니까요. 페어링이 필요 없어요. 묵시가 흐르니까.

그러니까 70년 만에 가는 것이 아니고 70이레 되면 돌아가게 해줄게. 어딜? 고향으로. 그래 가자 고향으로. 고향이 어딘데? 그럼 성전은? 너는 가지 마. 고향이 하늘나라인데. 인자의 나라. 인자의 나라 처소를 소멸하는 하나의 처소라 했지요. 그런데 거기 가면 어떻게 됩니까? 거기 가면 두 가지 사건이 터진다. 그게 관건인데 관건이 뭐냐 하면, 70이레가 되면 어디로 간다? 영원한 성전이 지어지면 그 성전에 주의 이름이 있으면 자기 백성에게 영원한 긍휼과 용서가 주어지고 성전에 이름이 없으면 저주가 주어지는 거예요.

목사님, 왜 저주는 십 년 살다 나오지 않고 영원합니까? 주의 이름의 속성이 영원하기 때문에. 주의 저주가 영원해줘야 돼요. 저주가 영원해줘야 반대 방향에 있는 주의 긍휼이 영원해지거든요. 만약에 주의 집에 십 년 살면 우리에게 주어질 축복도 십 년밖에 안 돼요. 미쳤습니까? 그런데 가게. 천당 십 년 살고 다시 나올래요? 몰랐지요, 그거.

지옥이 왜 영원하냐 하면, 천국이 영원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걸 요한복음에 뭐냐? 빛과 그리고 그림자라. 이게 뜻이냐 하면, 빛이 실체라면 그림자는 빛 따라간다. 뭐로? 크기와 길이로. 영원히 빛이 비추기 위해서는 그림자는 영원히 그림자에요. 그러면 지옥은 뭡니까? 천국의 그림자죠. 지옥 간 부자는 누구의 그림자입니까? 천국 간 거지의 영원한 그림자죠. 그래서 나사로 거지가 이리 가면, 부자도 지옥에서 이래 짝을 이뤄야 돼요. 천국 간 탕자가 이래 간다면 지옥 간 맏아들은. 페어, 커플. 커플링을 해요.

짝이에요. 하나는 진노의 그릇이고, 하나는 긍휼의 그릇이고. 에서는 누굴 위해서 있습니까? 야곱을 위해서 있습니다. 야곱은 누굴 위해서? 에서 저주받는 이야기하기 위해서 야곱이 있는 거죠. 참 이래 이야기하면 안 됐지요. 누구? 지옥 갈 사람. 자기 역사 갖고 있는 사람. 나는 때려죽여도 예수 안 믿는다. 내가 믿는 건 나의 역사다. 다른 말로 나는 내 몸을 믿는다. 무슨 뜻입니까? 자아는 뭐로 구성돼있는 줄 알아요? 그때까지 있었던 역사적 체험으로 뭉쳐져 있기 때문에 아까 강이가 십 년 살았으면 십 년짜리 역사가 되고, 팔십육 년 사시면 나머지 역사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구십 살고 돌아가셔도 돌아가실 때 되면 영 살이에요. 왜? 그 시점에서는 과거는 날아가 버렸으니까. 죽는 시간은 모든 살아온 구십 년이 그 죽는 순간에 다 없어지고 죽는 순간만 남아요. 그래서 인간은 역사적 존재가 아니고 처음부터 묵시적 존재에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이에요. 하루 쪼개보세요. 그 안에 또 천 년 들어있지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이다. 하루 쪼개보세요. 하루 안에 천 년, 또 하루가 들어있고.

수학에서 말하는 무한분열. 그래서 사람들은 이걸 집합으로 규정하잖아요. 무한을 표현 못해서. 칸토하는 수학자는 집합으로 했어요. 차후에 이렇게 규정하자. 그 말이 뭐냐? 주체라 하는 것은 항상 차후에 규정된 게 주체에요. 그러면 사건 터지고 난 뒤에 만든 것이 주체지요. 우리의 주체는 뭡니까? 만날 과거에 사건 터지고 난 뒤에 그런 인간이었구나. 기타 좀 좋아하면 처음부터 기타 쳐야 했구나. 나중에 기타 재미없으면 기타 부셔버리고. 나는 바둑을 좋아하는구나. 꼭 사건 터지고 난 뒤에 자기를 규정해요.

그런데 성령을 받고 보면 변하지 않는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했다는 것이 믿어져요. 예수님의 정보가 담겼죠. 그 주변에는 나의 역사적 정보가 같이. 앙꼬는 예수님의 정보과 바깥에 밀가루는 만날 나밖에 모르는 나의 정보, 이게 같이 섞이면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죄인이며 주님은 이걸 용서하시는 언약이 되는 겁니다. 그게 뭐냐? 매일같이 살과 피가 먹는 셈이 된다 이 말이죠.

그건 그거고 조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70이레가 있는데 제일 먼저 7이레죠. 마지막에 1이레죠. 이게 역사적 순서가 제일 먼저 7이레 돼있고, 이 위에 62이레 돼있고, 그 다음에 1이레 돼있죠. 제일 끝에 소멸하는 지점에 인자가 있죠. 인자 되시는 예수님은 이 땅에 몇 년 살았습니까? 33년. 그러면 7이레라 했으니까 성전 없다가 성전이 자꾸 지어지는 기간이 있을 것 아닙니까. 49년인지.

이 성전 지을 때, 성전 짓고 간 사람 있을 것 아닙니까. 스룹바벨 같은 사람들. 그 사람은 성전 안에서 뭘 느끼겠습니까? 주님께서 약속대로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이 성전 짓게 하셨구나. 주님 살아계신다. 나름대로의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의 묵시를 빼내겠지요. 그럼 이 사람 천당 갔습니까? 이러면 메시아 안 와도 되겠네요. 예수님 안 와도 되겠네요. 하지만 62이레 거치면서 이 성전 다 깨지죠. 1이레 올 때까지 깨지죠.

그럼 깨진 기간 동안 뭘 생각하겠습니까? 주께서 또 성전 깨시는구먼. 아이고, 우린 기다릴 것은 메시아밖에 없다. 또 이런 생각하겠지요. 그럼 그런 생각한다는 자체가 구원입니까? 아니죠. 그냥 기다림이지 구원은 아니죠.

그러니까 이 위에 있는 층들은 7이레 층들 보고 얼마나 우습게보겠습니까? “아이고, 우리 선배들, 참 무식해. 학개 성전 지을 때 울고불고. 나 같으면 안 운다. 깨질 것 뻔한데 왜 울어.” 그래도 하나님께선 그런 식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긍휼을 알게 하니까 주의 이름의 능력을 알게 하니까 역시 말씀대로 되는 걸 알게 하니까 아마 그 시절은 그 정도로 구원받았을 거야. 하지만 우리는 기다린다. 언젠가 성전 짓기를.

이 사람들은 뭘 짓느냐? 실제 건축구조물 성전 짓기를 기다렸죠. 나중에 예수님 와서 뭐라 했습니까? 46년 동안 짓는다 하니까 그것 내가 사흘 만에 지을게. 이건 어느 수준입니까? 62층도 아니고 7층도 아니고 어느 층? 1이레 층에서 어디를 해석한다? 저 밑에 있는 층들을 다 해석해내죠. 묵시적으로.

그런데 열두 제자는 무슨 층입니까? 아직까지 62층에 있기 때문에 아이고, 예수님 어떻게 이걸 짓습니까? 하지요. 나중에 부활되고 보니까 그것이 성전이 건축구조물이 아니고 인자의 이름은 예수님의 몸에 임해서 몸의 부활이죠. 누구 몸? 예수의 몸이 부활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것까지.

나중에 사도 바울이 보니까 예수의 몸에 누가 들어간다? 성령 받은 우리도 이미 있는 한 몸, 그리스도의 몸에 우리가 하나의 모퉁이 돌로써 또는 여러 가지 벽돌로써 참여한다는 걸 주의 이름의 솜씨였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게 바로 우리는 이미 묵시적 존재로서 역사적 체험을 주체를 갖고 있는 그러한 두 가지 점을 다 갖고 있는, 죄인이면서도 의인으로 인정받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두 개의 층을 세 개로 나눈 거예요.

그럼 목사님, 예수님 죽고 난 뒤에 역사가 아직 남아 있잖아요. 그건 안 남아있어요. 왜냐하면 이 70이레를 처음에 높아진 우상을 엎어지니까 마지막 때 어디에 놓여있습니까? 한 치 오차 없이 마지막 때 부활됐지요. 이 7이레를 세워보세요. 이게 이렇게 70이레, 62이레. 시간적으로 7이레 다음에 62이레, 1이레 되잖아요. 그런데 이걸 인자 중심으로 삼각형을 우뚝 세워버리면 70이레 전체가 뭐가 된다? 역사의 시작과 끝이죠.

결국은 이 보좌가 역사의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란 분이, 우리라는 짧은 인생을 육십, 칠십 인생을 태산처럼 덮어버리면 우리는 오늘 밤에 죽어도 낙원에 있으리라가 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야하고 모세하고 예수님하고 변화산 나타날 때 엘리야가 나이 많았습니까, 모세가 나이 많았습니까, 야곱이 나이 많았습니까? 답변해보세요. 정답은 똑같지요. 우리가 역사적으로 보면 엘리야가 오래 살아서 선배지만 ‘선배님’하다간 예수님한테 얻어맞아요. 똑같아요.

이렇게 하세요. 엘리야는 그때 시대에 태어나야만 했고, 야곱은 태어나야만 했고, 야곱의 형 에서는 태어나야만 했고, 오늘날 우리는 대추밭에서 태어나서 각자의 나이에 여기 있어야만 했고, 죽으면 누구나 오늘밤에 낙원에 있으리라. 그런다고 집단자살하란 말은 아닙니다. 오늘밤에 낙원에 있으리라. 누구 이름으로? 주의 이름으로. 그래서 우리는 누굴 증거한다? 주의 이름만 증거하는 주의 정보가 들어있는 자가 성도인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믿는 것이 아니고 믿어지고 주께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체가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역사가 있기 때문에 힘들게 안 살라고 요령부리면서 복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타고난 본성이니까 주께서 잘 알아주셔서 이 본성과 우리 속에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그 관련성만 그 용서받은 것만 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090829c 대구특강.hwp (58.5K), Down:26

서경수(IP:116.♡.101.7)

09-09-01 22:51

한윤범 목사님은 나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 '피곤하다. 힘들다. 시간이 없다.'가 다 헛소리가 된다.
설교하시고, 세 아이 돌보며 주부로서의 사명 잘 감당하시고, 부산, 울산 강의 녹취하시고
특강이 있으면 소리 소문없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아, 하나님이 시키셨나?) 속전속결로
녹취해 올리시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강의가 무진장 어려웠는데 차근차근 읽어봐야겠습니다.

신직수(IP:222.♡.150.103)

09-09-01 22:58

목사님..제가 먼저 댓글 쓸라 했는데, 출력하는 사이..ㅋ 한목사님 정말 너무하시네^^*...ㄳ요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2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8,017 자유게시판 05대구강의19(교회를넘어서)24-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11-2 로마서 최고관리자 09-09-05
8,016 자유게시판 05대구강의19(교회를넘어서)24-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11-1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9-09-05
8,015 묻고답하기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무서워 하면서도 즐기는 이유는?? - 최고관리자 09-09-03
8,014 묻고답하기 사영리 전도법의 위험성은?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9-09-03
8,013 묻고답하기 세례식 - 최고관리자 09-09-03
8,012 묻고답하기 영접기도...마음의 문을 연다?...어떤 건가요? [신학] 최고관리자 09-09-03
8,011 자유게시판 주석 쓰는 법 잠언 최고관리자 09-09-03
8,010 우리교회 렘 7:16-20 (기도하지 말라)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09-09-02
8,009 묻고답하기 왜 예수가 싫은가? - 최고관리자 09-09-02
8,008 우리교회 [일반] 왜 예수가 싫은가? [일반] 최고관리자 09-09-02
8,007 강의 부산 9월 1일 조지래드 31 신약신학-제43과 요한서신 [신학] 최고관리자 09-09-01
8,006 자유게시판 배신의 계절 미가 최고관리자 09-09-01
열람 ➜ 자유게시판 [녹취]20090829c 대구특강-리델보스의 하나님나라c 미가 최고관리자 09-09-01
8,004 자유게시판 [녹취]20090829b 대구특강-리델보스의 하나님나라b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9-09-01
8,003 자유게시판 [녹취]20090829a 대구특강-리델보스의 하나님나라a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9-09-01
8,002 자유게시판 05대구강의18(교회를넘어서)23-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10 열왕기상 최고관리자 09-08-31
8,001 자유게시판 05대구강의15(교회를넘어서)21-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8-2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9-08-31
8,000 자유게시판 05대구강의15(교회를넘어서)21-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8-1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9-08-31
7,999 우리교회 [주보] 고소 고발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9-08-30
7,998 우리교회 삼상 26:13-25 (다윗의 하소연)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09-08-30
7,997 설교 마가복음 14장66-72절 제목 : 베드로의 배신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9-08-30
7,996 우리교회 막 14:66-72 (베드로의 배신)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9-08-30
7,995 자유게시판 제안 - 최고관리자 09-08-30
7,994 자유게시판 05대구강의17(교회를넘어서)22-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9-2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9-08-29
7,993 자유게시판 05대구강의17(교회를넘어서)22-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9-1 미가 최고관리자 09-08-29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