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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5대구강의17(교회를넘어서)22-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9-2자유게시판고린도전서

05대구강의17(교회를넘어서)22-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9-2

이름 : 구득영(IP:203.223.97.173)

◈ '나' 라는 주체가 없어지게 하신 분은 누구인가?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교회를 넘어서' 라는 책을 볼 때는, '나' 라는 주체가 없어졌으면, 그 '나' 라는 주체를 어떻게 규정해야만 하는지,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이 '나' 라는 주체가 없어지게 하신 분이 누구인가?" 라고 생각을 하면 되는데, 바로 그렇게 그동안 자기를 대하신 주체자가 예수님이란 것을 또 다시 기억나게 하는 기회로 삼으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힘든 일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의 원수가 잘 될 때인데, 그때가 정말로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자기는 시기와 질투가 없다고 할지 몰라도, 하지만 과연 그러하겠는가? "저 인간은 죽어야 돼" 라고 하는 인간은 더욱 잘 되고, "저 사람은 잘 되어야 하는데" 라고 하는 사람은 망해버리고 말이다.

바로 그럴 때, 누구 말대로 살짝(?) 기분 나쁘다는 것이다. 즉 살짝 기분이 나빠지면서 분통이 터트려진다는 말이다. 그것을 시편 7편에서는 살짝 미끄러질 뻔했다고(?) 하는데 말이다. 왜 악인이 잘되고 의인이 제대로 풀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 제가 암으로 일찍 죽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그런데 은석교회에 다니던 어느 집사님이 죽으면서 하는 고백이 무엇인고 하니, "제가 암에 걸려서 일찍 죽게 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의 소원이 일찍 죽는 것인데, 그것이 자기의 소원이 될 줄을 정말로 상상도 하지를 못했다는 말이다. 자기는 평소에 그렇게 살고 싶어했는데,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사건을 일으키니, 사도바울의 고백이 자기의 고백이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모든 공로를 주님께 돌리더라는 말이다.

그분이 나이가 아직 50도 안 되었지 싶은데, 그분이 요구한 것은 무엇인가? 남북통일도 아니고, 넓은 아파트도 아니고, 사도바울처럼 정말이지 죽는 것이 복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혀로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이지 기쁨으로, "야, 나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다" 라고 말이다. 그것이 진리로서 다가올 수 있는 축복은, 성령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집사님이 돌아가시면서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하는데, "얘들아, 이 성경말씀이 맞는 것이니, 제발 좀 믿어라" 라고 했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표현으로 하자면, "성경말씀이 맞거든요.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철학과 학문은 되었거든요. 돈 자랑과 재물 자랑은 다 되었거든요" 라고 했다는 말이다.

◈ 사도바울 - 내가 너거들 때문에 살짝(?) 고생한다 !!

그러므로 정말 사도바울이 가졌던 소원, 즉 "나는 죽는 것이 소원이지만, 너희들 때문에 이렇게 살아서 고생을 하고 있다" 라고 하는 고백이, 그것이 바로 참되고 진정한 자유가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것보다 더 큰 자유가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렇지 않나요? 그런 자유를 우리도 좀 누리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바로 그런 성경말씀에 있는 고백이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해달라고 하는 간절한 기도를 아마 해본 적이 다들 오래 되었지 싶은데, 물론 자기가 하는 일이 잘 풀릴 때는 그러한 기도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원수가 잘 될 때는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주체를 포기하지 못한 상태로 삶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신약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감을 조금은 잡았지 싶은데 말이다.

이제 계속해서 진도를 나겠는데, 교재 293페이지를 보자.

**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라는 말씀이 있다. 이 본문에서 '몸' 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성전' 이라는 구약적 용어가 튀어나오면서, 결론적으로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작품으로만 성립이 된다는 말이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앞서서 '텅 빔'에 대해서 강의를 했는데, 그것이 상당히 어렵고도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러니 여러분도 두고두고 그것이 과연 맞는지 한번 살펴보라는 것이다. 저도 계속해서 되풀이하면서 강의를 할 것인데, 물론 그럴 때마다 더 깊은 논리를 가지고 할 것이고 말이다.

◈ 이제 인간의 '신체'에 대해서 !!

여기에서 우리가 성경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을 찾는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인간의 '신체' 라는 것이다. 이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여러 번 했지 싶은데, 이 인간의 신체라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진도는 언제 나가지?)

이 신체를 나누는 데는 몇 가지 이론이 있는데, 즉 인간의 신체는 몸과 영혼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혹은 몸과 정신, 혹은 몸과 마음, 그렇게 두 가지로 나눈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이 흔히들 말하는 이분법인데, 그러니 몸이 그냥 몸이 아니라 물질적인 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신체를 물질과 정신으로 나누는 것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신체의 개념을 자꾸만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 퀴즈 - 음료수를 마시겠다고 결정한 것은 과연 언제인가?

여기서 제가 문제를 하나 내겠는데, 이렇게 제가 음료수를 마시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음료수를 마시겠다고 제가 결심을 언제 한 것이겠는가? 그것은 저기 음료수가 있다고 했을 때 결심을 했는지, 아니라면 음료수를 마셔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때 결심을 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음료수를 마시겠다고 손을 내밀 때에 결심을 했는지 말이다. 왜냐하면, 마시겠다고 해놓고는 금방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마시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러니 손을 음료수에 대었을 때 마시겠다고 결심을 한 것인지, 아니면 컵에 부었을 때 그렇게 결심을 한 것인지, 아니면 입에 대었을 때 결심을 한 것인지, 그러한 것 가운데서 어느 것을 딱 잘라서 "내가 바로 이 의지에 의해서 음료수를 마시게 되었다" 라고, 과연 그렇게 결정을 할 수 있는 문제이냐는 것이다.

◈ 라이 - 인간은 의지도 없고 감정도 없다 !!

그런데 그것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 허구이기 때문에 말이다. 즉 인간은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라이(?)' 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는데, 즉 인간은 의지도 없고 감정도 없다는 것이다. (이름이 라이? 구라??) 그것은 바로 인간이 조작해낸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니 결국 남는 것은 신체가 느껴지는 것뿐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주장이 무엇인고 하니, 어떤 한 순간에 결심을 했다고 하면, 우리는 그것을 마음에서 결심을 했다고 보는데, 하지만 이 양반은 그런 노선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는 것이다. 마음에서 결심한 것이 아니라, 신체가 제도적인 환경에 의해서 바로 결심이라고 느껴지는 현상을 유발했을 뿐인데, 그래서 그런 현상을 유발하고 0.1초도 지나지 않아서 그 결심이 다시 사그라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체를 몸과 마음으로 구분해버리면 이 결심은 사그라지지 않고, 그것은 어디로 집어넣는고 하니, 자기에는 마음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마음이 결심을 했다고 하면서, 그렇게 추억 속에 집어넣어서, 그것이 그만 고정화되고 만다는 것이다. 제가 미리 어렵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로 어렵다는 말이다.

◈ 이승엽이 친 홈런의 경우에 !!

예를 들어서, 이승엽이 홈런을 56개 쳐서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는데, 그런데 그때 홈런을 친 그 배트를 그대로 사용하면 홈런이 56개가 나오는가? 그것이 도깨비 방망이가 아닌 다음에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승엽이 홈런을 56개 친 것은 하나의 사건인데, 그러면 그 사건이 야구 방망이에 붙어있는가? 전혀 붙어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건이 과연 재현되는가? 물론 재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새로운 선수가 나타나서 홈런을 60개를 쳐도, 그것은 이승엽이 친 바로 그 사건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친 60개의 새로운 홈런사건이고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반짝' 하고 일어나는 현상을 어디에 집어넣는고 하니, 자기 마음 안에다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마치 자기 안에 고정된 것처럼 "내가 쳤다. 내가 쳤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쳐봐라?" 라고 하면, "물론 지금은 못 치지" 하고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승엽 선수의 나이가 95세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는 도저히 더 이상 홈런을 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 칠 수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아무튼 인간들은 자기 기억 속에는 그러한 것들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즉 자기 마음속에 말이다.

하지만 '라이'의 주장처럼,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마음속에 그런 것이 들어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이 없다" 라는 것이 참으로 신선하고도 충격적인데, 아무튼 그렇게 마음이 없다고 해버리면 도대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여러분들이 의아해하는 그 마음을(?) 알기는 알겠는데 말이다. 만약 그렇게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물질과 함께 뭔가 다른 것을 표현할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하지만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분명 마음이 아닌 다른 것도 역시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인간은 무엇인가? 어차피 '내' 마음과, '내' 마음으로 이어질 수 없는 다른 무엇인가와 결합이 되어야 비로소 온전한 '내'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분법, 혹은 삼분법과 같은 이론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신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 아, 첫 사랑이 보고 싶어 !!

지금 강의가 참 어려운데, 다시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남자가 보고 싶다고 했을 때, 그런데 그 남자를 또 만났을 때는 그만 보고 싶지를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남자가 그렇게 보고 싶다는 것은 한 순간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착각이라고도 하는데 말이다.

왜 결혼식을 그렇게 빚을 내어서라도 성대하게 하는가? 결혼은 착각이기 때문에 금방 헤어질 가능성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강제라도 붙잡아두어야만 사회적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결혼을 했으면 여자의 경우에 자기 시집의 사람으로 낙인을 찍어놓아야 하는데, 그래야만 엄청나게 고된 시집살이를 해도 도망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곧 관행이고 관습이 되어서, 사회가 제대로 유지가 되어왔다는 것이다.

◈ 남자는 여자의 육체를,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것을 거부하는데, 그래서 일단 동거를 해서 서로 한번 살아보고 마음에 들면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육체를 훔치기를 원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훔치기를 원한다. 그것도 영원히" 라는 말이 있는데, 오랜만에 바른 소리를 한번 했는데, 아무도 받아서 쓰는 사람이 없어서 좀 그렇지 말이다(ㅋㅋ).

그런데 육체라는 것은 신비감이 떨어지면 맛이 가는데, 그래서 마누라가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같은 음식이 며칠 연달아서 나오면 먹기가 싫다는 것이다. 물론 저 같은 경우는 예외인데, 제 아내가 닭을 가지고 간장 양념으로 맛을 내어서 찜을 하면 한 달을 연달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말이다(ㅋㅋ).

하지만 보통의 경우에, 인간은 같은 음식이 연이어 계속해서 나오면 먹기가 싫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신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경우에 여자도 남자를 무조건 욕하면 안 되는데, 그 남자가 특별하게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신체라는 것이다. 즉 남성 호르몬의 특징이 그렇다는 말이다. '테스토스테론' 인지 뭔지 하는 말이다.

◈ 남성 호르몬, 여성 호르몬 때문에 !!

그리고 남자보다 여자가 더 깔깔거리면서 잘 웃고 또한 같은 환경에 처해도 더 오래 동안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은 바로 여성 호르몬 때문에 그러한데, '에스트로겐' 인지 뭔지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서로 전혀 다른데, 그런 모든 것이 호르몬의 작용으로 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가 공을 던질 때는 아주 힘차고 멋있게 던질 수가 있는데, 여자가 던질 때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의 경우에 그 신체구조가 공을 잘 던지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잘 낳도록 하는, 그런 자손을 번식하도록 하는 신체구조로 되어있기에 말이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처럼 씩씩하게 공을 던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에, 공을 남자처럼 힘차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구부려서 조금은 곱게(?) 던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여자가 그렇게 공을 던지는 것은 내숭을 뜨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낳기 위해서 근육이 아닌 지방이 발달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그래서 할 수 없이 엉성하고도 섹시한(?) 폼으로 던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신체의 차이 때문에 그러한데, 그래서 성경에서는 여자를 '약한 자' 라고 하는데, 마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는 말이다. 즉 약한 것은 사회적으로 약하다고 하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약한 자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약한 자와는 싸우지 말라고 하는데, 왜냐하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약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강한 자이니 말이다.

◈ 남자는 여자의 머리 !!

에베소서 5장에 보면, 남자를 여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위치에, 즉 머리로 간주하는데,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겠는가? 즉 남자가 보호자의 모습이 아니라면 머리가 될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자와 같이 싸우려고 하면 그것이 무슨 그리스도의 모습이냐는 것이다. 그렇게 여자의 머리는 남자인데, 그러면 남자의 머리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인데, 그러니 여자에게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하는 것처럼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남자의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 이분설이나 삼분설은 다 엉터리 !!

그러한 모든 근거를 몸과 마음의 관계가 아니라, 그것이 신체에서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신학이 신체를 몸과 영혼으로, 즉 그렇게 둘로 나누는 이분설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태서 삼분설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루터이든 칼빈이든 간에 말이다. 물론 개혁주의에서도 하는 이야기가 그런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성경말씀과는 맞지 않는데, 기껏해야 그런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은 스토아 철학이나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몸보다도 영혼을 단련해서, 즉 몸은 버리더라도 영혼이 천당에 가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경우도 "영혼이 떠나시다" 라고 되어있으니, 영혼은 그렇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태복음 27장에서 그렇게 "영혼이 떠났다" 라고 표현한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표현방식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고방식을 반영해서 예수님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러한 표현을 했다는 것이다. 즉 언어적으로 그렇게 동원했다는 말이다.

(마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 예수님의 신체는, 언약달성을 위한 신체 !!

하지만 언약적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래서 신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면, 거기에 관한 논문을 다 훑어보아야 하는데, 그러한 논문이 또 한 가방이나 되고 말이다. 그렇게 하려면 이 '신체' 라는 개념을 가지고 성경을 다시금 새롭게 갈아엎는 마음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힘이 들고, 또한 목 디스크가 걸려도 말이다.

그렇게 힘이 들어도 우리가 이 신체성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의 십자가에 담긴 예수님의 몸은, 즉 예수님의 신체는 하나님의 언약과의 관계를 통해서 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참 어려운데,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의 신체는 신체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언약을 달성하기 위한 신체라는 것이다.

◈ 우리 신체와 예수님 신체의 관계성 !!

그렇다면 지금은 우리도 이렇게 신체를 가지고 있고, 또한 예수님도 신체를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의 신체는 옛날의 언약과 관련이 되어있고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루신 그 새로운 언약이 점점 더 우리 신체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바로 그것을 증명하려고 한다면, 우선은 예수님의 신체가 언약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먼저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관계가 먼저 규명이 되어야만,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신체를 가지고서 새언약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몸과 영혼이 아니라 우리의 신체를 가지고 말이다. 바로 거기서 나오는 것이 곧 '성령'이고 말이다.

◈ 예수님의 세례와 성령 !!

먼저 예수님의 신체와 언약과의 관계를 살펴보자면,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이 열리면서 성령이 내려오셨는데, 바로 그 성령에 의해서 예수님의 신체는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고치는 신체로서, 즉 성령께서 그러한 신체로서 활용하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누가복음의 기록이고 말이다.

예수님의 마음이 그렇게 하셨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물리적인 법칙이 작용하는 몸으로 하셨는가? 그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게 마음도 몸도 아니라 예수님의 신체(몸)로 하셨는데, 그렇다면 그 신체(몸)에서 구원이 가능한가? 물론 가능하다는 것이다.

◈ 아하, 그래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구나 !!

그러면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체인데, 즉 지금 우리의 신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신체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체가 곧 그리스도의 신체이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의 뜻이 있다고 하면 감기에 걸려서 아파야 하고, 또한 놀이터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나야 안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님의 뜻이 있으면 우리는 죽기도 하는데, 그래서 우리의 신체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말이다.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그래서 고린도전서 6장에 보면,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니 창기와 합하지 말라고, 즉 더럽히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첩과 간통한 자는 그만 죽여버리는데, 왜냐하면 신체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 주님의 소관이기 때문에 말이다. 물론 스데반 집사도 돌에 맞아서 죽어야 하는데, 그의 신체는 주님의 언약을 위한 신체이니 말이다. 그러니 바로 이러한 새로운 관점에서 신체를 바라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고전 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고전 6:16)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고전 6: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 한 영 - 새언약에 있어서 예수님과의 언약적인 관계 !!

다음 시간에 여기에 대해서 조금 더 강의하기로 하고, 이제 이것만 더 하고 마치도록 하겠는데, 바로 그 신체를 '한 영'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렵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현재 신체와 우리 신체를 합해서 '한 영' 이라고 하니 말이다. TV에 나오는 그 '한 영'이 아니고 말이다.

이러한 '한 영'은 이분법으로 몸과 영혼을 이야기할 때 말하는 그 영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영은, 새언약 시대에 있어서 예수님과의 언약적인 관계를 두고서 '영'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신체(몸)를 두고서 '영적 몸' 이라고 이야기하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 '영적 몸'이 무엇인고 하니, "아하, 영적인 몸은 예수님이 그 속에 있어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관리하는 대상으로서의 영을 두고 말하는 것이구나" 라고 하면 정답이라는 말이다. 자기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오직 주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즉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고, 아파야 한다고 하면 아프고 말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다 주님이 알아서 하시는데, 즉 "너는 어디서 태어나서 어디서 살아야 하고, 누구와 결혼을 해야되고, 얼마나 살아야하고, 또한 너는 어떻게 어떻게 해야된다" 라는 것을 전부 다 말이다. 바로 그렇게 주님께서 다루시는 사건을 유발시키는, 즉 언약사건을 발생시키는 장소(?), 혹은 그러한 관계가 바로 '한 영' 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한 영'에서는 예수님과 우리가 전혀 분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면, 그동안 우리가 신약성경을 너무 가볍게 다루지 않았는지, 어떤 관점에서 그러한가? 즉 몸과 영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로 신약성경을 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성경을 보면 제대로 된 성경해석과는 거리가 멀고, 또한 많이 미흡(?)하다고 밖에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몸이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무슨 이야기인지 다시 한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우리는 우리 몸이라고 찰떡같이 믿고 살아가는데 말입니다. 즉 우리 자신의 의지와 결심이 우리 자신을 다루고 있고, 또한 그것이 분명한 현실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것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이 있다고, 아니 참 된 현실이 따로 있다고 하니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깨우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9년 00시 21분에 마침.

이건 완전히 그대로 이번 주 설교 그 자체이다. 탱큐, 미스터 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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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분설 [二分說, dichotomy] - 그리스도교에서 인간은 두 부분, 즉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 그리스도교의 성서에는 이분설과 삼분설을 나타내는 곳이 있다. 이분설은 인간이 육체와 영혼(마태복음 10:28)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학설이다. 이것은 인간이 물질적 요소와 영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서 몸인 육체와 영혼을 구분한 것을 볼 수 있다. 삼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등을 근거로 하는데,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분설에서 말하는 영과 혼은 인간의 두 가지 다른 요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적 실체를 나타내기 위해 두 가지 다른 견지에서 사용된 것이다. 영은 혼의 영적 존재양식을 나타내거나 혼과 마찬가지로 몸을 가진 인간 자신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의 인간론에서 말하는 육체(몸)는 하느님에 의해 흙으로 창조되었다. 육체는 죽게 되면 썩고 다시 부활함으로써 썩지 않을 새로운 육체로 변화된다(고린도전서 15:42). 영혼은 하느님이 육체를 창조한 후 육체에 생기를 불어 넣음으로써 기원이 되었다(창세기 2:7). 생존해 있는 인간에게 육체와 영혼이 완전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나뉠 수 없고,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이 분리된다.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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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분설 [三分說, trichotomy] - 인간의 본성이 육체·혼·영(pneuma)의 셋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설(說). 그리스어의 '셋으로(tricha)', '나누다(temnein)'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러한 생각의 실마리는 신약성서의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5장 23절에서 볼 수 있다. 후에 아우구스티누스, 테르툴리아누스 등의 2분설(二分說)을 취하는 학자에 의하여 비판을 받았으나 근대 이후, 특히 독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학설의 지지자들이 많이 나왔다. - 두산백과

첨부파일 : 0517.hwp (80.9K), Down:13

구득영(IP:203.♡.97.173)

09-08-29 23:35

이번 강의는 복음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특히 '텅빔'의 성전의 총화사상(?)이 어떻게 사도바울까지 나아가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근호 목사님의 신학을 접하면서,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느낌이 드시는 분들은 반드시 '교회를 넘어서' 라는 강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번 강의와 다음번 강의를 말입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귀한 복음을 깨닫게 해주신 이근호 목사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강의는 내일 녹매교회 설교원고 될 것입니다. 녹매교회 교인들은 읽지 마세여. ㅋㅋ

한진영(IP:58.♡.226.208)

09-08-30 16:39

"이러한 '한 영'은 이분법으로 몸과 영혼을 이야기할 때 말하는 그 영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영은, 새언약 시대에 있어서 예수님과의 언약적인 관계를 두고서 '영'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신체(몸)를 두고서 '영적 몸' 이라고 이야기하고 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영, 다른 산 짐승들과의 공통성이나 공통적 생존 본능이나 충동성에 관해서는 혼, 다른 피조물과 같이 흙으로 환원되는 공통적 의미에서는 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에 대한 질문과 답변, P125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목사님 소생들을 위하여 가끔 이래 꼬리글을 달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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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2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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