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세상 살이에서 갈망하는 천국
고단한 세상 살이에서 갈망하는 천국
이름 : 심재성(IP:119.71.214.25)
사람들이 세상을 향한 기대는 유토피아의 세계이다. 얼마든지 모든 인간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가능하다고 기대하고 꿈꾸게 하는 것이 유토피아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고 헛된 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대를 갖게 하는것은 지협적으로는 인간의 노력에 따라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 지고 있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재로 우리나라의 수십년전 상황은 대 다수의 사람들이 매우 살기 어려워 끼니를 떼우는것이 최고의 꿈이었던 시절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은 유토피아의 세계가 펼쳐 졌다고 볼수 있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게 되었고 의식주는 물론교육이나 의료 기타 복지분야도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나아진 환경이 우리의 주위를 둘러 싸고 있지만 지금 현재를 유토피아의 세계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경쟁구도 속에 뛰어들어 생존 경쟁을 펼칠수 밖에 없게 되어있다.
이러한 생존경쟁에서 낙오된 자들은 자신을 비참하고 못난 인간으로 치부하게 된다. 또한 불안, 공포, 좌절등과 함께 자존심에 막대한 상처를 입고 세상에 살 소망마저 잃어 버리고 우울증과 함께 자살 충동을 받게 되며 급기야 선택하기도 한다.
사탄은 세상의 헛된 꿈을 심어 줌으로 사람들을 미혹케하여 꿈이 이루어지면 교만하게 하고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사람인양 하나님도 부럽지 않은 초인이라도 된것처럼 설쳐대게한다. 꿈이 좌절되면 직장,사회,국가,교회에 분노를 쏟아내고 타인과 자신에게 화풀이 하게 한다. 자기 자신이 이렇게 되는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사탄은 이러한 부끄러움을 당치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잡힐듯한 꿈이 다가가면 갈수록 멀리 달아나 버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른사람의 성공담을 들어 보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노력하는자)고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풀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수가 없어 굿이라도 해야할 심정이기 일수다.
왜 이렇게 세상은 살기 고단할까?
사람들은 성공한 타인을 부러워 하지만- 예를들어 판 검사, 의사, 교수, 정치인, 지식인등- 그들도 나름대로 고통과 좌절을 호소한다. 이것은 이세상에 몸을 담고 있다는 자체가 고단한 삶을 위해 주어진 운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고 싶겠지만 이 세상은 아담의 범죄이후 그 자체 만으로도 가시밭이요 피곤하고 고달픈 삶이다.(창세기 3장)
사람들은 고단한 세상을 유토피아로 바꾸기 위해 오늘도 분주히 움직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세상은 절대 유토피아가 될수없고 망하는 장치로써 시한 폭탄과 같은 것이라고 신구약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유토피아는 사람이 이 지상에 건설할수 있는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께서 건설하시는 세계인 천국만이 유일한 유토피아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다만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고단함과 피곤함과 고통과 좌절을 맛보아야 하며, 그 고통의 시간을 진저리 나도록 몸소 겪게 한 후 인간 자신에 대한 포기를 요구하고 그 포기를 통하여 생소한 목수의 아들, 십자가를 지신 예수가 구원자 였음을 바라보게 한 후 천국을 맛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원 방식은 사람들의 머리로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다. 기왕 구원 시켜 줄 것이면 고생 시키지 않고 구원 하게 하실수 있는 하나님이 왜 인간에게 고통을 주셔서 구원하시냐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꼭 그러한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아브라함을 죽을 고생시키시고 가나안땅을 언약하시고, 이삭을 제단위에 올려 놓고 아버지가 든 칼이 눈앞까지 왔을때 구원시키시고, 야곱을 환도뼈를 망가뜨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종살이 하게 하시고 구원을 이루시고.....구약의 모든 선지자들도 그러한 방식으로 구원을 이루시고, 십자가를 지신 자기의 아들도 그렇게 해서 죽게하기고 부활시키시고, 사도들 역시 복음의 전령으로 세우실때 자신에 대해 실망하게 하시고 증인되게 하시고, 순교하게 하시고 구원하시고....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 께서도 이세상에서는 고단한 삶을 사셨고 죽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지체된 모든 성도는 마땅히 그러한 삶 가운데로 인도 됨이 당연한 결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를 세상에 보내는 것이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고단한 세상이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고단하게 살아도 좋다는 고백을 바로 '믿음" 이라고 하는것이다.
그 믿음이 바로 성도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이곳이 바로 성도가 믿어야 하는 눈물겹도록 소망하는 천국이다.
나는 종종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주님 오시기를 고대한다.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눈물이 두 볼에 타고 내리며 주님을 애타게 고대한다. 주님은 늘 듣는둥 마는둥 아무 기척이 없으시지만 날마다 주님을 기다린다. 정말 애타게 기다린다. 가슴터질듯이 애타게 기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무슨일로 그리 바쁘신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주님 오심이 내소관이 아니라 주님소관이기에 어떻게 할 도리는 없다. 하지만 주님이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주님(천국)에게는 죄와 사망이 없고 오직 사랑만 그 속에 있게 때문이다.
나는 좀 과장을 보태자면 한 순간도 이러한 천국의 소망을 잊어 본적이 없다. 순간 순간 주님께 타향살이 그만하게 하시고 주님이 지으 놓으신 본향, 주님이 건설하신 고국인 천국으로 돌아 가고싶다고 호소한다. 이것은 정말 진심이다. 지금 당장 죽으면 좋겠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주님께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감사 찬송하고 죽겠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싶다.
처자식은 어떻게 하고 그렇게 무책임한 소릴 하냐고 말한다면 원래 나는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아니 무책임 할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처자식 걱정을 이유로 빼앗기지 말아야 할 나의 마지막 소원을 빼앗길수 없습니다라고 말할것이다. 고단한 세상에서 단 하나 남은 나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님이 건설하신 천국입니다.라고 주저없이 말하고 싶다.
이상규(IP:114.♡.136.17)
09-08-25 11:59
기적이다.
목사님 입에서 이런고백을 하시다니.
눈물이 나올라 칸다.
(성령님 계셔서 일 하고 계시네요..)
이미아(IP:115.♡.203.64)
09-08-25 12:16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25)
강구만(IP:118.♡.241.167)
09-08-25 12:31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귀한 피를 흘리시고 경이롭게 바라보면서 엎드려 경배하는 자리에 있다면 이미 천국 입니다!
이능우(IP:203.♡.124.203)
09-08-25 13:01
복음으로 인해 이 땅에서 겪는 고생 참 즐겁지요
주님의 심정을 조금 이라도 헤아려 볼 수만 있다면
주님의 사랑이 어떠한 아픔을 품고 있었는지
그 아픔을 통해 죄인에게 주신 생명의 귀함을 느낄때
천국을 바라 본다는 것조차 지니친 욕심이 아닐까
성도의 소망은 지금 현재 함께 계시는 주님만을 자랑 하는 삶
나머지는 나도 몰라요~~~~
김을수(IP:210.♡.228.30)
09-08-25 13:45
‘피’ 라는 책에서 뭐라고 했는고 하니, “남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기 이전까지는, 아직 죽음의 의미를 모른다” 라고 했는데, 그야말로 “너는 이제 죽었어” 라고 하는 마음이 들 때에, 바로 그때 “아하, 바로 이런 마음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셨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워낙 사람이 좋아서,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아” 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직도 주님의 아픔을 모른다는 것이다. 정말로 아픈 것은 얻어맞아서 아픈 것이 아니라, 당장 칼을 들고 죽이고 싶은데, 그런데 그것이 바로 죄라는 것일 알게 될 때 오는 자기 내부의 균열, 그것이 바로 진짜 아픔을 맛본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근호 목사님 대구강의 중에서)
그렇다면 인간은 처음부터 십자가를 향하여 창을 높이 들고 돌진하면서 누구든 나를 건드리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 본질이고, 복음의 능력 앞에서 구원받은 자들이 내뱉는 소소리는 단 두 마디 - "깨갱!"(구득영 목사님 댓글)
이능우(IP:203.♡.124.203)
09-08-25 20:52
할 말이 없다
부화가 치밀어 오른다
쉬지 않고 솟아 오르는 더러운 마음
이 마음 속에 주님이 오실까
이 더럽고 추한 곳에 주님이 오실까
십자가 피의 능력은 모든 것을 소멸 시키시는
주님의 약속 만을 바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