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대구강의12(교회를넘어서)19-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6-2
05대구강의12(교회를넘어서)19-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6-2
이름 : 구득영(IP:203.223.97.192)
이제 교재를 한번만 더 보고 마치겠는데, 283페이지를 살펴보자.
** 따라서 예수님이 가는 곳은 항상 육신과 성령의 몸과의 싸움이 일어난다.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 라는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기준으로 해서 하신 말씀이다(마 12:32).
(마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 성령을 거역하면 !!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고 하니,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말씀인데 말이다. 이렇게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 라는 말씀에 있어서, 도대체 성령이 어디서 나왔느냐는 것인데,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니 몸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 몸으로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몸에서 이루어진 것을 누군가가 전달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이 오셔서 하는 일인데, 바로 이러한 성령이 하시는 일을 거역하게 되면, 결국은 자기 몸만 남게 되고, 그렇게 자기 몸만 덜렁 남게 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지옥이라는 말이다.
아무튼 예수님은 우리를 죄를 용서해주려고 오시는데, 그래서 살려주는 영인데 말이다. 그런데 용서해주려고 오시는 그런 용서를 거부하게 되면, 우리에게는 용서함이 없기에 죄를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논리가 얼마나 어려우냐는 것이다. 즉 용서를 거부했기 때문에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 우리의 입을 틀어 막아버리고 !!
그런데 이 논리 속에 무엇이 포함되어있는고 하니, "내가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 책임이지 내 책임은 아니다" 라는 것을 거부하게 되는데, 즉 "하나님이 용서해주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 책임이니, 하나님이 알아서 하소" 라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그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 말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용서하기 위해서 왔는데, 너희들이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너희들의 용서하지 않음이 그대로 너희들에게 머물러 있기 때문에, 나의 용서함이 들어가지 못해서 너희들이 용서받지 못한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말을 하고 보니 표현이 조금은 이상한데, 아무튼 그런 의미라는 말이다.
이제 정말로 이것만 더하고 마치겠는데, 교재를 보자.
** 사도가 선포하신 바도 예외가 아니다.
(갈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 성령으로 시작하는 것과 육체로 시작하는 것 !!
성령으로 시작하는 것과 육체로 시작하는 것이 차이가 나는가? 흔히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인간을 통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 맞는 말이라고 하면, 아무리 성령으로 시작을 했더라도 인간을 통해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러면 육체로 시작하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가?
제 아무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하셨다고 해도, 인간의 육체를 통해서 하게 되면, 그것은 결국 육체로 시작하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즉 "시작 시점을 먼저 당겨서 성령으로 하느냐? 아니면 나중에 당겨서 육체로 하느냐?" 라는 차이점이라고 하면, 육체로 시작하는 것이나 성령으로 시작하는 것이니 동일한 내용이 되는데 말이다.
◈ 성령으로 시작하면, 육체가 나오지 않아 !!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시작하는 것과 육체로 시작하는 출발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그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시작하는 출발점은, 육체로 했다고 하는 그런 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육체는 무엇인가? 그냥 훼방만 놓는다는 것이다. 성령에 대해서 우리는 시비를 걸고 짜증만 내었지, 바로 그것을 성령께서 극복하시면서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더 어려운 것은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고 말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령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서 살려주는 능력이 우리 속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에 의해서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하시고,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맡겨두는 여유가 있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9,08,11 오후 10시 50분에 마침.
녹취를 방해하는 귀신들은 물러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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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강의 중에서
2005080 이근호 강의, 서경수 정리
주체가 살아있으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가? 교재 16페이지를 봅시다. 이 노래는 30세에 비명(자살)에 가신 김광석이라는 통기타 가수가 부른, [서른 즈음에]란 노래입니다. 이은미라는 가수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운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이등병의 편지]라는 유명한 노래를 불러 젊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지요. 제가 [서른 즈음에] 가사를 읽을 텐데, 이 가사가 하나님 앞에 문제점이 뭔가를 파악해 보세요.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 노래를 부르면서 울만도 하지요? 이 노래를 다 한번 듣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주일날 복음적인 설교를 들어도 비가 내리면 '또 하루가 멀어져 가고 있구나. 내 신세는 왜 이 모양인가?' 이런 식으로 자탄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거든요. 우리는 복음적인 교회를 다니고, 늘 예수님의 사랑을 듣고, 11시에 예배당에서 말씀을 들을 때는 그렇게 천당에 간 것 같다가도 예배당 문만 열고 나오면 지옥이 되어버리는 식으로 끝없이 해결 안 나는 것 같이 되느냐 하면 여전히 이 김광석의 노래 같은 심보, 그 주체가 우리 마음속에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 노래의 제목이 [서른 즈음에]인데, 인생이 서른이 기점이란 사실이 성경 어디에 나옵니까? 예레미야에 나옵니까, 신명기에 나옵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안 나옵니다. 마태복음에 '서른 살부터는 내리막길이다.' 그런 게 안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주신 적이 없는데, 서른을 정점으로 해서 멀어져 가는 자신을 보면서 과거 가장 아름다웠던 서른 시절을 추억하며 안타까워하고, '행복했던 시절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데 계속 멀어져 갈 것 같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낳지 않겠는가' 하면서 자살을 했어요.
여기 가사에 보면,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라고 되어 있지요. 이것은 어떤 것을 목표로 삼고, '저것을 따내면 내가 행복하겠지. 로또만 되며 뭐가 되겠지. 아파트 값만 오르면 무슨 일이 나겠지' 자꾸 뭔가 채우는데, 채우고 채워도 결국은 채운 것 보다 더 큰 텅빈 것이 점점 더 확장되고 있는 거예요. 더 깊숙이 내려가 보니까 더 깊고 넓고 어두운 동굴이 거기에 있어요.
그러니 어느 세월에 그것을 다 채웁니까? 세월이 가도 가도 그것을 다 못 채우기 때문에 차라리 죽는 것이 낳지요. 공허의 폭이 넓으니까 지금 어지간히 가져도 자기 공허의 폭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50평, 60평 아파트에 살아도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더 많아요. 거기에다가 "예수님의 사랑이 어떻고, 십자가가 어떻고, 성령이 어떻고, 언약이 어떻고 ---" 해봐야 그것으로 채워집니까? 주일날 말씀 들으니까 그것으로 채워져요? 안 채워지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교회도 발 끊고, 자기 맘대로 살다가 죽어 버리는 거예요. 나중에는 교회도 점점 더 멀어져 갑니다. 나중에는 주님도 점점 더 멀어져 가죠. 이렇게 되면서 내린 결론이 뭔가 하면, 주님이 선택했다고 교회에서 목사님이 그렇게 가르쳤는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목사님은 몰랐지요. 사실은 "내가 예수님을 선택해서 믿어볼까 전에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서른 즈음에는 몰랐는데 서른 넘어서 보니까 내가 예수님을 선택해서 믿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룟유다와 같은 종족입니다.
그러니까 가룟유다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 참한 가룟 유다 하나 키우고 있어요. 예쁜 가룟 유다 하나 키우고 있어요. 낭만적이고 센티멘탈한 가룟 유다를 내 안에 키우고 있습니다. 직장 일이 바빠서 가룟유다까지 신경 못쓰지만 직장에서 쫓겨나면 갑자기 가룟유다가 튀어나오면서 "이 병신 같은 인간아! 너 왜 이렇게 사냐?" 하는 겁니다.
여기 보면 가사 중에,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이 말은, 어떤 특정한 사랑의 대상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 함께 소꿉놀이를 했던 자기의 누이동생도 결혼해서 "오빠! 보증 좀 서줘" 이렇게 나오고, 아버지든 누구든 전에는 가까이 있던 간격들이 세월이 가면서 점차 점차 자기 자식들밖에 모르고,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식으로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거예요. 이것이 오늘날 물리학에서 '우주팽창론'이라고 하는 겁니다.
물리학에서 '우주팽창론'이란 것이 있는데, 별과 별 사이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멀어지고, 저쪽과도 멀어지고. 풍선에다가 점을 찍어 놓고 풍선을 불면, 크게 불면 불수록 점과 점 사이는 풍선 표면상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겁니다. 이거 해결책 있어야 됩니다. 이거 해결책 없으면 안 되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노래 가사,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정말 점점 뭔가 내가 그리던 이상에서 점점 멀어져 갈 때, 이런 사고방식의 문제점이 뭐라고 했던가요? 지금 우리의 강의가 엉뚱한 것이 아니고 실제적인 겁니다.
여러분이 교회 와서 복음을 들을 때는 그게 비실제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 나가면 김광석의 노래가사 같은 이런 의식이 진짜 현실이고 참이고, '목사님의 설교는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자기가 예수님을 선택한 가룟유다 연구 세미나를 지금 벌이고 있는 겁니다.
첫째시간 결론을 내린다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택한 백성에게 찾아와서 선택할 때는, '나는 처음부터 죽어있는 존재구나' 하는 것을 파악하는 쪽으로 선택하시지, 하나님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를 선택하고 구원하는 식으로 구원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될 것은, 선택되지 않은 인간들이 결국에는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둘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도록 하나님이 뒤에서 유도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합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실 때는 그들을 이미 죽인 채 오신다는 것과, 선택 안 된 사람은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반드시 공격하도록 되어 있고, 이 둘 사이에 최후의 전쟁이 벌어지도록 하나님께서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 둘을 싸움 붙이느라고 무지 바쁩니다. 이런 사람은 신자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핍박받는다는 그런 느낌이나 분위기를 전혀 못 느끼고 사는 사람은 제가 보기에는, 수퍼에서 라면 하나 뽑듯이 여러 종교가운데서 예수 하나 자기가 선택해 놓은 겁니다. 그래놓고 성경 보니까 "네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너를 선택했다"고 하니까, "그것도 일리가 있네.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선택했다는 것을 내가 예수님을 선택하고 보니까 비로소 알았으니까 나는 이 선택을 내가 유지하겠다" 라는,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은 가짜일 확률이 많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성도와 비성도간의 싸움을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싸움을 붙이는가' 그 싸움의 방식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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