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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산강의 2007년03월09일(고린도후서 3장) (1/2)자유게시판고린도후서

안산강의 2007년03월09일(고린도후서 3장) (1/2)

이름 : 조현창(IP:222.108.62.231)

안산강의 2007년 3월 9일

- 강의 시작 전 질의 문답 -

질문자 ; ‘죽어서 가는 천국’ 개념을 부정하시는 것은 아니고요?

답 변 ; ‘죽어서 가는 천국’은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 이미 천국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죽어도 소용없는 거지요.

질문자 ; 예,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 할 때는 ‘죽은 다음에 가는 천국’을 배우고 가르쳐 왔잖아요?.

답 변 ; 예, 그렇지요.

질문자 ; 그런데 이제 지금부터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답 변 ;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아야 되요.

질문자 ; (지배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이 이루어진 사람만...

답 변 ; 간단하게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영화관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영화관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돌아다닙니다. 그래도 영화관 안에서는 영화가 벌써부터 이미 상영되고 있지요. 현재 영화관 밖에서 바쁘게 돌아다닌다는 것은, 자기 육체를 지니고 보고 싶은 것 보고 먹고 싶은 것 먹고 활개치(는 것이고), 그러다 죽으면 더 이상 돌아다니지 못하죠. 죽어서 흙이 되고 보니, 영화관에서는 지금 영화가 상영되고 있지요. 비록 이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영화관의 영화 상영에는 관심이 없고, 애 낳고 취직하고 분주해도 여전히 천국(영화관)은 이미 있습니다. 다만, 언제 이것을 아느냐? 분주히 살아 왔던 일 다 하지도 못하고 죽어서, 흙이 되어서 들어가 보니, 애초부터 천국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제일 좋습니다.

지금 질문이 보통 ‘죽어서 가는 천국’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이미 천국이 있어요. 다만, 일상생활이 바빠서 예수님 생각을 못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예수님 생각을 못해요. 그런데 천국(영화관)에서 능력이 와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이 허무하고 우리가 나그네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경은 천국의 말씀이니까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보면 우리가 숨이 끊어지지 않아도 이미 그 사람은 천국에서 나온 능력을 입었기 때문에 이런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우리가 죽어서 천당 갑니다’ 라는 것은 모든 종교입니다. 가짜입니다. 진짜 천국 가는 사람은 ‘지금 천국 생활을 못하는 사람은 죽어도 천국에 못 갑니다’ 이렇게 증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가짜 종교와 구분이 되겠지요.

‘죽으면 좋은 데 갑니다’ 하면, 속으로 ‘뭐, 가 봐야 알지... 누가 안다고... 아무도 몰라. 있다 하니까 한 번 믿어 보는 거지.’ 이런 것은 세상 모든 종교가 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가짜입니다. 진짜 종교는 천국의 능력이 지금 살아 있을 때, 여기에 작용해 주어야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자는 아예 안 죽는 거예요. 사람이 볼 때 어떤 사람이 여기 살다가 죽었어도, 주님께서 죽지 않았다고 하면 안 죽은 거예요.

누구 말을 들어야 됩니까?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그래서 성경 공부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 달 내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다가... 그리고 다른 사람의 그 말이 내 안에 있다가 자기 말이 되어서 튀어 나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의 말이나 자기 말을 들어서는 안 되고 성경 말씀을 보자 이 말입니다.

본강

오늘은 고린도후서 3장 말씀입니다.

(고후 3:8)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고후 3: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여기에 보면 ‘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세상 방송이나 신문에는 안 나오는 말이죠. 영이 있다, 영의 세계가 있다. 오늘 강의는 영의 세계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영의 세계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곳이 아니다’. 하셨습니다. 예를들어 우리가 일본 사람이라 합시다. 일본에 사는 집이 있는 일본 사람이 여기 한국의 안산 땅에 왔다면 그냥 놀러 온 거겠죠. 놀러 온 여행객이라면 여기 안산 땅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좀 참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스쳐지나가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좀 불친절해도 ‘뭐, 내 나라도 아니고 내가 살 동네도 아닌데 뭐 그냥 지나가자’ 하고 넘겨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산에 사는 사람은 이곳 아니면 살 곳이 없기 때문에 만약 자기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죽기로 붙들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 양보 없이 사투를 벌여야 할 것입니다.

영의 세계란 무엇인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내 나라는 이 곳에 있지 않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나라에 살다가 이 나라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졸졸 따라 다니면 예수님의 그 영의 세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종교 교리가 아니고 실제 상황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목자요 너희는 양이니’ 양은 목자가 어느 곳에 가든지 양이 음성을 듣고 따라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양치고 목자 싫어서 도망치는 양은 이 세상에 단 한 마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양이 목자를 알면, 그리고 목자가 양을 알면 그 둘 사이는 이 세상 어느 구석에 쳐 박혀 있어도 그 양은 목자가 인도하는대로 기뻐 즐거워하면서 목자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혼돈과 좌절을 경험한다는 것은, 목자를 따라 간다고 하면서도 목자의 지시를 받는다는 생각은 안 하고, 내가 나를 지시해서 내가 나를 끌고 가려고 하니까, 이것이 세상이 안 도와주는 겁니다. 시간이 나를 안 도와주는 겁니다.

지금 여기 집 주인 바쁘잖아요 ^^ 아까 연락을 했을 때에는 아무 일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바쁜 일이 있어서 어디 가신 모양입니다. 열쇠라도 있으니까 들어와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지 그렇지 않으면 길바닥에 있을 뻔 했습니다. ^^

내가 나를 끌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할 때에는 나도 안 도와주고 세상 사람들도 도와주지 않아요. 그럴 때 평소에 내가 나를 구원하겠다는 사람은 필히 털썩 주저앉아 좌절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안 도와주는데 내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느냐? 나도 삐졌다. 나도 이제 신앙생활 안 한다. 그 딴 거 다 소용없더라.

예수님 ; 어디에 소용이 없냐?

나 ; 내가 이 세상 사는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 ; 이 세상이 네 나라가 아닌데 왜 남의 나라에 와서 도움이 안 된다고 삐져 있나?

결국 이것은 영의 세계를 우선시 하지 않아서 생긴 현상입니다. ‘영의 세계’ 반대말은 ‘육의 세계’라고 합니다. ‘육의 세계’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 친숙합니다. 우리의 모든 버릇은 ‘영의 세계’에서 온 것이 아니고 모두 ‘육의 세계’에서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들어가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양을 구원하기 위해서 말씀을 성경을 주실 때, 이 말씀(성경)을 영적으로 풀어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육적으로 풀어야 되겠습니까? 영적으로 풀어야 마땅하지요. 영적으로 풀면 ‘영의 영광’이 나오지만, 육적으로 풀면 ‘육의 영광’이 나옵니다. 육의 영광은 여러 분들이 교회에서 많이 들었을 거예요. 집안 잘되고 고부간의 갈등 없고 자식들 공부 잘하고 남편 사업 잘되고 내 육신 건강하고... 전부 육에 관한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면 이 세상에 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관한 것이죠. 육에 속한 사람이 성경을 아무리 공부해도 육의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공부하면 내게 도움이 될까? 안 될까?를 생각하는 겁니다.

성경 공부를 아무리 해도 ‘육의 영광’과, 육적인 이익에 대해서만 관심을 둔다면 주님보다 이 땅에 관심이 있어, 이 땅이 없으면 나는 못 살아, 이 세상을 나의 세상으로 생각하고 머물고자 한다면 성경을 아무리 봐도 ‘육의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익/손해, 유리/불리 만 생각하겠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교회 부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제가 지금 글을 하나 쓰고 있는데 로마서 녹취한 것을 보충해서 글을 쓰고 있는데, 거기에 제가 목사가 교회 부흥시키려면 육의 영광대로 하면 교회가 부흥된다, 라고 썼어요. 예수도 육적인 예수, 하면 부흥되게 되어 있는데 이런 목회자의 약간의 단점은 딴 것이 아니고 이미 지옥가기로 예약되어 있다는 것이죠.

영을 이야기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영을 이야기 했거든요. 예수님은 분명히 이 세상은 내 세상이 아니니까 예수님은 영의 세계에서 오신 분이므로 영의 말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모세는 무슨 말만 하겠습니까? 모세는 영의 세계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3장 7절에 나오죠.

(7절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산 밑에 사람들은 육에 속하고 산 위에 모세는 영에 속하였고, 그렇다면 육에 속한 사람들이 모세의 영광에 제대로 주목했을까요? 못 했을까요? 못 한 거예요. 왜? 모세는 너무 영광스럽고, 자기는 너무 추잡스러우니까. 너무 너무 추잡스러워서. 기가 죽는 정도가 아닙니다. 원래 부자집에 가면 기가 죽잖아요. 그 정도가 아니고 아예 접근을 하지 못 한 거예요.

이 모세가 받은 영광은 해보다 태양보다 강한 정도입니다. 대낮에 우리가 태양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눈이 부셔서 손으로 가려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태양을 만드신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모세의 얼굴에 비친 그 영광은, 반사된 영광은 해 보다 더 밝아서 마치 태양이 하나 더 뜬 것 같아서 산 밑에 육에 속했던 사람들이 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들끼리는 잘 보겠습니까 못 보겠습니까? 잘 보죠. 왜냐하면 서로 같은 육이니까. 아주머니들 목욕탕에서 수다 떠는 것 보면 이야기 잘 하잖아요. 어떤 아주머니가 ‘너의 영의 영광으로 빛이 나서 못 보겠다’ 이런 것은 없잖아요. ‘따따따따 ’ 전화해가면서 수다 참 잘 떨지요. 왜? 이야기 소통이 잘 되니까.

그런데 만약 예수님 이야기 하면, ‘넌 좀 빠져줘, 너 때문에 대화가 안 되니까 좀 빠져달라’고 하죠. ‘노는 동네 번지수를 잘 못 찾아 왔다, 네 동네에서 놀지 여기 세속적인 우리끼리 노는데 우리 기죽이려 하지 말고 좀 빠져 주라.’ 이렇게 됩니다. 모세가 이야기 하는 것을 그 백성들이 못 알아듣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이야기하는 모세의 얼굴도 바라볼 수 없었어요.

오늘 본문 3장 7절에, 그 영광이 이 땅에 오면 없어질까요? 안 없어질까요? 없어 질 것이지요! 그렇게 눈부신 것도 없어 질 것입니다. 모세가 땅에 살면서 영광이 점점 없어진다 할지라도 모세는 어디에 속합니까? 영에 속하지요.

제가 복음을 전해도 사람들이 무시하고, 여러 분들이 복음을 전해도 무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이 분명이 영에 속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무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네가 말한 복음이 무엇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복음 전하는 너나 나나 똑 같은 사람인데 뭐 안 통할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나온단 말입니다.

모세의 영광도 처음에는 영광스럽다가 땅에 살면서 점점 없어진 것처럼 모세의 영광도 점점 없어집니다. 그런데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영광을 가지고 이 땅에 나타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러면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지요. 왜? 믿고 싶어도 자기가 너무 더러우니까.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나타나신다면 우리는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그 앞에서 그냥 죽어버리게 됩니다. 전부 다 죽어버려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산에서 모세가 내려옵니다. 모세의 얼굴은 영의 세계의 영광으로 얼굴이 빛나지요. 땅에 있는 사람들은 세속적이죠. 눈이 부셔서 도저히 대화가 안 되지요. 그래서 모세가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기 위해서 중간에 ‘물체’를 하나 동원시킵니다. 모세의 얼굴에 ‘수건’을 덮지요.

성경을 영적으로 푼다는 것이 이런 데 묘미가 있어요. 옛날에 모세가 백성과 대화하기 위해서 수건을 얼굴에 덮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 때 뿐이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달랑 모세만 영적 세계로 데려가고 우리는 버려둡니까? 그렇지 않지요. 우리보고 알아서 말씀 듣고 천국에 와라, 그러면 또 우리는 육에 속했기 때문에 못 알아듣지요. 영은 영대로 전달하면서도 영은 영광을 받으면서도 소통할 수 있도록 그 대화를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모세가 쓴 수건같은 역할을 할 무엇이 필요합니다. 이야기가 그렇게 됩니다.

모세의 이야기는 오늘 날 우리의 이야기를 앞 당겨서 보여주는 예고편입니다. 모세의 수건은 더러운 죄인이라도 모세의 입에서 나오는 영적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와 계기를 제공합니다, 수건의 역할이. 무서워서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지요. 모세가 목소리가 커서 메가폰으로 하듯이 멀리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회중이 모인 장소에서 말씀을 전해야 하니까, 말씀은 전해야 되겠고 모세의 얼굴은 빛이나서 볼 수가 없고... 이것을 한꺼번에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모세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려서 그들로 하여금 음성도 듣고 모세도 바라 볼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수건 참 멋있다! 오늘날에도 그 수건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말씀대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을 텐데.... 하겠죠. 그러면 여러분에게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이 모세 당시의 육적인 백성들이 당당하게 남들에게 모세를 보았다고 하겠습니까? 아니면 모세와 우리들 사이에 ‘무엇’이 있었다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나는 모세를 당당하게 바라보았다, 하겠습니까? 아니면 말씀은 들었는데 ‘무엇’ 덕분에 나는 모세 선생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하겠습니까? 후자이겠지요. 나는 모세의 ‘수건’ 때문에 구원받게 되었다, 라고 하겠지요.

그러면 오늘 날 정말 구원받은 사람들이 내가 똑똑하고 신앙이 좋아서 구원받았다, 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것은 완전히 사기이지요. 내가 기도해서 응답 받아 능력 받아 구원받았다, 이것도 사기지요.

다시 모세이야기로 돌아가서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모세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었어. 왜냐하면 모세 얼굴을 가린 수건을 내가 장만했거든. 내가 수건을 주머니에서 꺼내서 모세 얼굴을 가렸더니 구원받게 되었다’, 라고 한다면 이것은 완전 거짓말이죠.

모세 얼굴을 가린 수건 덕분에 모세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게 되어 내가 구원받게 되었지. 그런데 그 수건은 ‘누가’ 준비한 거였지? 그것은 ‘내가’ 준비한 것이야! 이러지는 않는단 말입니다. 그러면 무슨 은혜까지 더불어 붙여서 이야기 하겠습니까? 모세의 이야기뿐만 아니고 모세의 얼굴을 가린 수건까지 합해서 모두 하나님의 공로로 돌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겠죠. 그것을 신자라 할 수 있겠죠.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오늘 날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라면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일까요? 무엇을 첨가하게 될까요? 예수 믿는데 내가 똑똑해서 믿은 것도 ‘아니고’, 내가 기도 많이 해서 믿은 것도 ‘아니고’, ‘그 수건’을 (증거 하겠지요.)

그 수건이 무엇인지 봅시다. 16절을 봅시다,

(고후 3: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자 수건이 무엇입니까? 성령이죠. 예수님의 영이죠. 이해되십니까? 모세 당시에 무엇을 믿던 사람들이 나 누구 덕분에 모세 말씀 들었어, 내 수건 덕분이야 이런 이야기를 못합니다. 나 잘랐고 똑똑해서 들었어, 내 귀가 얼마나 좋은데, 이런 것들이 아니 란 말입니다. 그러면 뭡니까? 모세 쪽에서 제공한 모든 것들, 모세가 수건을 썼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듯이 오늘 날 진짜 구원받은 사람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나는 믿을 수 없었는데 주님께서 주의 영을 누구에게 보내서? 나에게 보내서 주의 영이 낚시 바늘처럼 나에게 꽂히니까 주께서 그것을 살짝 살짝 잡아당기니까 내가 주님을 벗어날 수가 없는 거지요. 주님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주님의 피가 내 죄를 씻었다는 것을 도저히 부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믿어서 구원됩니다. 옛날에 내가 주일학교 다닐 때 들었었는데,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는다 했는데, 뭐 지금 바쁜데 요새 나 안 믿는다.’ 이럴 때, 그 때 ‘믿습니다’ 하고 손 든 것은 뭐냐 하면 남을 의식해서 한 것입니다. 남에게 나 기 안 죽으려고 한것입니다. ‘지금 너만 믿나? 나도 믿는다.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구원받으면 좋은 것이네. 나도 천당가야지.’ 나, 오기로 자기 힘으로 자기 손을 들고 자기 양심으로 믿은 거잖아요.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정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면, 주의 영이 역사 하신다면, 진짜 택한 백성에게, 그 택한 백성의 그런 오기를 가만두겠습니까? 부수겠습니까? 1번 가만둔다, 2번 부순다, 몇 번인가요? 부수겠죠. 이걸 제가 강의를 해 보면 다른 것은 동의해도 이것을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부순다’를 동의하지 않아요.

첫 번째 까지만 이야기 하라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 우리 힘으로 구원 못 받고 성령으로 구원받는다. 예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이근호 목사의 말에 동의합니다. 저는 개혁주의 신학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우리의 능력이 아니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성령으로 구원받는다, 전부 다 동의하죠.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고, 그렇게 안 가르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들 이야기해요.

그런데 그 것 까지만 이야기 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무엇까지 이야기 합니까? 온전히 주의 성령으로만 구원하기 때문에 무엇을 용납하지 않느냐 하면, 내 힘으로 구원되기를 용납하겠어요? 용납하지 않겠어요? 절대 용납하지 않죠. 왜냐하면 그렇게 용납해버리면 섞이잖아요. 성령께서는 주님의 영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공로만 듬뿍 담고 있어요. 주님의 공로만 듬뿍 담은 그 바구니에 우리의 능력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이 침범될까요? 택도 없죠. 침범 안 되죠. 침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쫓아내지요. 그러니까 쫓아 낼 때, 그 때, 그 사람을 나는 성도라고 본다 그 말입니다. 성도.

그러니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성도가 아닙니다. 뭐냐하면 ‘’나는‘ 예수 믿는데, 주님의 능력으로 구원받는다.’ 이러면 성도가 아니예요. 이것은 의심스러워요. 모두 다들 이러하잖아요. 그런데 무엇까지 이야기해야 되죠? 주의 영이 무엇을 때려 부스더라? 내 힘으로 내 신앙생활 하는 것을 깨부수는 것까지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것은 성도가 아닙니다. 성도가 아니예요.

지금은 바쁘니까 교회 못가고, 나중에 한가할 때 교회에 가지 뭐. 이것은 평소에 믿었다는 것이 뭐냐하면 한가할 때 내가 집중력을 발휘해서 믿었다는 거예요. 이것은 모세의 ‘수건’이 아닙니다. 성경하고 달라요. 그래서 오늘 강의 처음에 ‘성경을 들으라’ 이 말입니다. 우리가 남의 이야기 듣지 말고, 교회이야기 듣기 말고, 내 양심의 소리 듣지 말아요. 그 양심의 소리도 다 남들에게 주어들은 것들이에요. 진짜 성경을 보자고요. 진짜 성경을 보면 듣도 보도 못한 말을 한다고요.

그러면 불신자가 뭐라고 하냐 하면 ‘목사님 그게 성경적이기는 하지만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내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내가 노력 안 해도 내가 구원받는다, 아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을걸요? 노력 안 하다가 지옥가면 당신이 책임질래요?’ 이래 나온단 말입니다.

자 이거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코를 고는 남편이 있다. 가끔 말고 매일같이 코를 고는 경우, 그럴 때 부인이 ‘주여 오늘도 남편이 코를 많이 골게 해 주소서’. 기도 안 해도 코 고는 소리가 집 밖에까지 흘러나오겠죠. 코 고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당신 남편 참 굉장히 코를 골데요.’ 이렇게 하면 그 부인이 ‘제가 기도 열심히 해서 코를 골았잖아요.’ 이렇게 하면 안~되~지. ^^

제가 무슨 이야기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이것은 자기가 기도하나 안 하나 남편은 아내의 기도 듣고 코 고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내는 코 골지 말라고 기도할 거예요. 그러니까 코 고는 것하고 아내의 기도하고는 상관이 없지요. 그런데 그 아내가 ‘제가요 한(많이) 기도 하거든요. 아이 제 기도 효과가 좋으니까 남편이 코를 곱니다’ 이것은 말이 안 되지요. 그런 소리하면 안됩니다.

그 말은 뭐냐? 그 과정에서 남편의 코골이는 아내도 어쩔 수 없다, 아닙니까. 그것을 ‘능력’이라 합니다. 여기서는 ‘코골이 능력’이지만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의 능력’입니다. 구원의 능력은 남편의 코골이 ^^ . 남편의 코골이는 말릴 수가 없어. 기도해도 안돼. 코 고시겠다는데 누가 말려요. 진짜 신앙인은 영의 세계이고, 우리는 육의 세계이거든요, 영의 세계는, 목자는 자기 양을 압니다. 이것이 포인트(요점)이예요.

양이 목자를 알아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목자가 양을 알기 때문에, 목자가 ‘너는 내 양이다!’하면 양은 그 소리를 알아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 양은 ‘주님의 능력으로 내가 알게 되었다!’ 이렇게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능력으로.

‘주의 능력으로 구원받았다’ 이렇게 알게 되니까 그 사람은 어디를 가도 구태여 자기 자랑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 기도 2시간 했다, 하니까 안 지려고 난 3시간 하겠다 구태여 이런 경쟁할 이유가 없잖아요. 긴장할 이유가 없죠? 신앙생활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신앙의 뽄때를 내려고 위장할 필요는 없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나쁜 짓을 했을 때 그것을 나쁜 짓 안 했다고 변명 할 필요가 없죠.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죠?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것이 무었을 의미합니까? 주의 능력. 주의 능력을 바꾸어 볼까요? 나.는.죄.인.을.부.르.러.왔.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주의 능력. 남편의 코골이 능력. 다른 말로 바꾸어 볼까요? 간음한 여인에게 한 말씀, 나.는.너.를.정.죄.치.아.니.하.노.니. 요것도 ‘코골이’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하면 남편이 코를 골더라도 참 은혜스럽죠. (드르렁) (드르렁)..이 아니라, (나는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나는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 (코고는 운율이 맞추어) 나는 다시는 너를 정죄치 아니하리니.. 드르렁 ^^ 이런 식으로 하는 코골이. 내가 내 피로 너를 구원하노니... 드르렁... ^^ 이런 코골이. 이런 식으로 들려야 되요. 들려야 합니다. 이게 평소에 안 들리면 주일날 교회에 와서 들어야 되고, 이게 안 되면 한 달 한 번씩 들어야 되요, 이 ‘코골이’를.

우리가 버릇이 워낙 이 세상에 살던 버릇이 되어가지고, 영의 이런 말씀이 시답지않은 소리로, 필요치 않게 안 중요한 것처럼 여겨요. ‘뭐 그거 다 아는 건데...’ 맨 날 이런 소리나 하고. 별로 안 중요하게 여겨요.

그래서 제가 교인들에게 그렇잖아요. 교회가기 싫어도 가보면 참 잘 왔다 싶고. 다음에 또 오라고 하면 가기싫어 가기싫어 하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만, 옛 날에. 다른 교회 다닐 때, 몸이 피곤하니까 자고 싶고 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완전 이단이죠. 그러니까 성경 말씀 봉독은 하잖아요. 해석은 말도 안되게 하지만, 성경 본문만 보고 은혜를 받아요. 목사가 어떤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면 저는 그 본문을 보고 설교작성을 따로 해요.

자 참 이런 코골이를 연상해 보시죠. (청중; 부인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코를 안 골도록 기도를 해도 골아지는 것을.... ) 맞아요. 이것은 ‘당신은 이제 영적인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해라,’ 하더라도 주님이 목자이시기 때문에 목자는 양에 대해서 ‘나도 이제 지쳤다. 감당이 안돼. 몰라 나도 이제. 네 알아서 해라’, 하는 목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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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2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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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67 묻고답하기 이단이 전하는 복음 - 최고관리자 09-08-24
7,966 우리교회 [일반] 이단이 전하는 복음 [일반] 최고관리자 09-08-24
7,965 자유게시판 05대구강의14(교회를넘어서)20-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7-2 로마서 최고관리자 09-08-23
7,964 자유게시판 05대구강의14(교회를넘어서)20-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7-1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9-08-23
7,963 자유게시판 05대구강의12(교회를넘어서)19-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6-2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9-08-23
7,962 자유게시판 05대구강의12(교회를넘어서)19-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6-1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9-08-23
7,961 우리교회 [일반] 장로님 참 편안하시죠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9-08-23
7,960 묻고답하기 목사도 인간이다. [신학] 최고관리자 09-08-23
7,959 자유게시판 Episodes - 최고관리자 09-08-23
7,958 자유게시판 29일 특강 안내 안내 최고관리자 09-08-23
7,957 우리교회 [일반] 왜 구원이 이토록 어려운가? [일반] 최고관리자 09-08-23
7,956 묻고답하기 왜 구원이 이토록 어려운가? - 최고관리자 09-08-23
7,955 자유게시판 특강 29일 교재는 다니엘 70 이레 다니엘 최고관리자 09-08-23
7,954 우리교회 [일반] 특강 29일 교재는 다니엘 70 이레 다니엘 최고관리자 09-08-23
7,953 우리교회 [주보] 울고있는 성경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9-08-23
7,952 우리교회 삼상 26: 5-12 (다윗의 판단)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09-08-23
7,951 설교 마가복음 14장53-65절 제목 : 사람들의 증거찾기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9-08-23
7,950 우리교회 막 14:53-65 (사람들의 증거찾기)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9-08-23
7,949 묻고답하기 김대중님, 가슴이 아픔니다. 로마서 최고관리자 09-08-22
7,948 자유게시판 다니엘 70이레에 대한 비역사적 해석 다니엘 최고관리자 09-08-22
7,947 우리교회 [일반] 다니엘 70이레에 대한 비역사적 해석 다니엘 최고관리자 09-08-22
7,946 우리교회 [일반] 동영상 파일 5시간 이후에 올라갑니다. [일반] 최고관리자 09-08-22
7,945 자유게시판 안산강의 2007년03월09일(고린도후서 3장) (2/2)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09-08-22
열람 ➜ 자유게시판 안산강의 2007년03월09일(고린도후서 3장) (1/2)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09-08-22
7,943 강의 광주 8월 21일 디모데후서 4장 1절 디모데후서 최고관리자 09-08-22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