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목사다!
다 목사다!
이름 : 정석훈(IP:60.209.241.183)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겸손하다?
왜냐하면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곳에 가면 목사나 성도나 다 일반이니 말이다.
목사라고 특별히 복음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 목사 대우 해 달라는 사람도 없다.
늘 하는 말이 주님이 주셨으니 그 은혜로 복음을 전할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역전이 일어나고 있다.
늘상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고민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별로 아는 것도 없고 아는 것만, 받은 것만 전할 뿐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그런지 목사 아닌 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여긴다.
십자가 복음을..
물론 십자가 복음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그 십자가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와 높이를 다 아는가에 대한 것이다.
절대 그럴 수 없다.
땅의 인간이 죽을 때까지 알아가도 그 사랑의 깊이를 알 길이 없다.
단지 살면서 그 은혜로 날마다 그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 지를 알아갈 뿐이다.
그래서 성도에겐 감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성경이 왜 그리 두꺼운지 아세요?
죄의 깊이가 그만큼 깊고 주님의 사랑이 그만큼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주되심이 제대로 증거된다.
복음을 접한 성도나 목사들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일 것이다.
사실 그렇다. 그 기분은 어떻게 표현 할 수 가 없다.
그래서 찬양도 나오고 감사도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들이 모이면 주님의 은혜요라고 하는데 그곳에 성도가 끼면 성도도 주님의 은혜라 말한다.
그런데 어느 날 성도들은 아는 것이 왜 그리 많은지 더 이상 목사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
요한 일서의 말씀이 그러하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실상 목사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왜 그런고 하면 주님께서 일을 하실 때 그렇게 하시기 때문이다. 물론 철저하게 가르치는 자의 부정을 위해 사용하신다. 왜냐하면 머리 되시는 분이 따로 있고 그분의 지시에 따라 눈은 눈의 역할, 팔은 팔의 역할을 감당한다.
오래전에 이근호 목사님의 설교가운에 이런 예화를 잊을 수 없다.
교회에 어떤 집사님이 청소하고 계신다.
그래서 목사가 교회 청소하는 집사님에게 제가 청소할 테니 그냥 가세요라고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어디 감히 주님께서 시키신 일을 목사가 방해할 수 있느냐라고 하셨던것 같은데..
기억이란 내 중심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대략은 이런 내용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들 주변은 거꾸로 되어 버렸다.
목사 아닌 성도가 내가 목사 할 테니 목사 당신이 청소하고 돈도 벌고 헌금도 하고 하시오 라고 말한다.
목사 입장에선 그렇게 하죠. 얼마든지 그렇게 하면 됩니다라고 하면서 헌금도 십분의 일 정도는 정확하게 하고 그 이상을 헌금합니다. 청소도 하고, 설걷이도 하고.
목사는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자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목사가 말씀에 있어서는 상수가 아니겠는가?
물론 그런 은사가 없으면 목사 아니다.
또한 목사가 실수할 수 도 있고 잘못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자기는 어떤가?
늘 완벽한가?
누구의 증인인가가 핵심이 아닌가.
나는 이번에 놀라운 모습을 보았다.
목사는 늘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는데 성도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말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억눌림에 대한 반작용일까?
기존교회에서 얼마나 목사에게 당했으면 십자가 복음 전하는 교회에 와서 십자가 복음 이용해 정 반대로 목사에게 그 행세를 하는지..
이것을 20년 동안 보아 왔다.
그러니 이런 풍토에서 목사가 십자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기적이다.
왜냐하면 외부도 적이요 내부도 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도바울의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부의 적 때문에 기분나빠 자기의 길을 간자도 있는지...
성경에 답이 다 나와 있는데 자신에겐 그런 부정적인 말씀이 해당 안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지..
그러나 여지 없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일수록 마귀는 더 활개를 친다.
인간은 첫째 아담의 본성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인가?
왜 그리 선생이 되려고 하고 가르치는 자가 되려고 할까?
왜 자신이 꼭 앞장서야 하는가?
자신이 받은 것이 분명 따로 있는데 받은 것은 내 놓지 않고 받지 않은 것을 갖고 자꾸 목사 행세를 하려고 할까?
헌금하는 것이 복음 전하는 것이요 청소하는 것이 복음 전하는 것이요 기도하는 것이 복음 전하는 것임을 왜 모를까?
왜 꼭 가르쳐야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할까? 이것만 소중할까?
물론 뽄떼나는 것이 좋아 보이는 것인 죄인의 속성이다.
그러다 보니 다 목사다.
십자가 복음을 성도에게 가르쳐 보면 다 목사다. 다 눈이다. 그러니 팔도 없고 다리도 없고 코도 없고 , 귀도 없고 이게 무슨 귀신같은 모습인가?
이렇게 되면 누가 누구를 핍박 하는고 하면 복음을 안다는 자가 복음을 전하는 자를 핍박하게 된다.
어떻게?
목사가 설교하면 심판자로, 판단자로 서 있다.
오늘 제대로 설교하나 안하나.
설교시간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간이 아니다.
주님의 은혜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내 죄가 드러나는 시간이다.
물론 목사가 주님께로 인도하지 않고 세상 복으로, 돈으로, 건강으로 인도하면 가만히 두면 안된다.
지금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설교나 글을 읽을 때 왜 그런 글을 썼는지 파악하지도 못하고 초보적 기준을 갖다댄다.
내가 초보적 기준이라고 해서 이상히 여길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기준은 절대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한 것이 주님앞에 지옥갈 이유라면 십자가 복음, 오직 주님의 은혜, 행위부정조차도 주님 앞에 지옥갈 이유가 얼마 든지 될 수 있다.
인간은 그 정도로 창조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상한 심령도 흉내 내고, 애통한 것도 흉내 내고 십자가도 다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진심이다.
진심도 주님껜 역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열두 제자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1급장애인 같다.
그런데 이런 모임에서 십자가 복음이 계속 선포되고, 그 복음에 애통해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니 회개하라. 한풀이 하는 자여.-( )
회개하라 돈을 중히 여기는 자여.-()
회개하라 자기 몸둥이를 사랑한 자여.-( )
회개하라 자기 자식만 귀히 여기는 자여.-( )
회개하라 자기 가정만 소중히 여기는 자여.-()
회개하라 자기 시간만 아끼는 자여.-( )
이미아(IP:115.♡.203.64)
09-08-20 13:25
십자가의 도입니까? 양심의 호소입니까?
정말 희한한 역전입니다.
"다 목사다"와 "정낙원 목사님 히브리서 35강을 읽고"
이 두 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상규(IP:121.♡.211.217)
09-08-20 13:29
정목사님 안녕하세요.
속이 많이 상하신것 같은데
목사와성도의 말씀을통한교제에 부담이되고 신경이 좀 쓰이네요.
지혜로운방법이 있는지요?
김성환(IP:115.♡.26.5)
09-08-20 14:49
역시 목사와 성도의 역할은 차이가 나네요!!!
무대위 주인공은 따로 있으니까 주인공 흉내내지 말고(물론 죄성은 반대로 가지만...거기에 십자가있으니 안심하세요!) 목사는 목사의 역할대로 성도는 성도의 역할대로 그냥 사시면 되요. 이상규님^^
뭐가 그리 부담이 되세요.
공부 좀 제대로 해 보세요^^
아울러 완전히 뭉개지는 기쁨도 함께 누리시고요^^
십자가 영은 오늘도 택한 자녀에게 찾아 가네요^^
그것이 축복이니까 감사하지요~
서정진(IP:125.♡.58.142)
09-08-20 15:13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해 보입니다.
계획하신 이 주님이시고 이루시는 이 주님이시니까요.
인간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주만 바랍시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장 9절~12절]
성도의 반응은 상황과 시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앙의 중심이 십자가를 향한다면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질거라 생각합니다.
단지 성도는 십자가에 족하고 감사만 터져 나올 뿐입니다.
이상규(IP:121.♡.211.217)
09-08-20 15:43
목사입니까?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직업병 냄새가 나네요^^(목사 멘트)
권면 감사합니다.
저희교회에서 아주가끔 일을하다가 왜?일하냐 고말하면,
일 안하면 설교하라고할봐 일한다고 말하지요.
물론 농담입니다.
제역할(은사) 잘압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말씀을 통한 성도의(목사 포함) 교제입니다.
말씀선포자와(목사) 교인과의 교제에 더 은혜롭고 지혜로운방법이 있는지궁금해서
""정목사님께" 드리는질문 입니다.
목사님 말씀,그리스도안에 내 자아 뭉게지는 기쁨 매일매일 같이 나누어요.
권면의 말씀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퍼뜩 만나서,얼굴보고 이바구 합시다.
더위에 건강 하이소.
정석훈(IP:119.♡.135.162)
09-08-20 21:49
이상규 집사님 안녕하세요. 목사와 교인의 교제에 있어서 더 은혜롭고 지혜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서로의 대화나 나눔이나 만남 가운데(예배참석, 성경공부등) 주님사랑의 흔적(십자가의 흔적)을 서로서로 보게 된다면 참으로 은혜로운 교제가 아닐까요? 비록 모습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상규(IP:114.♡.136.17)
09-08-20 23:54
예,잘알겠습니다.
말씀으로,권면하고, 사정없이 책망해 주세요.
그게 세상에서 제일 큰사랑(아니 세상에없는 주님이주시는사랑)인걸 압니다.
타국에서 선교하시려 건강이 최고 입니다.
미녀사모님께도 안부전해 주세요(우리 집사람 보다는..)
건강하게 다시 만납시다.
강구만(IP:118.♡.241.143)
09-08-21 10:53
저는 가끔, 진짜 가끔 집사람 설겆이 해주고 꾸벅 인사합니다.
죄송하다고...
정석훈(IP:60.♡.86.104)
09-08-21 12:46
십자가의 도입니다. 희한한 역전이 아니라 죄라는 것이 목사에게는 저렇게, 성도에겐 이렇게 나타납니다.
제가 이미아 성도님에게 저에겐 쓰신 그대로 한번 써 보겠습니다.
저에게 댓글 다신 내용과 방법이 무엇에 대해 뿔타구가 나서 입니까 아니면 죄를 감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증거하는 모습입니까?
이미아(IP:119.♡.119.215)
09-08-21 13:53
십자가의 도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뿔따구가 안났습니다.
살아 있는 죄인이라 죄를 감출 것도 없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십자가를 증거케 하시는 분이 증거하시겠지요.
목사님께서 쓰신 "정낙원 목사님 히브리서 35강을 읽고"와 미묘한 갭이 느껴져서
댓글 달았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죄 아닌 것이 없는데....
정석훈(IP:60.♡.86.104)
09-08-21 15:05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바울이 선문답 식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고요.
철저하게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그 사람 사람에 따라서 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무엇을 일으키시는고 하면 단절을 일으키십니다.
단절을 일으키셔서 한 쪽은 어찌할꼬로 한쪽은 분노하는 쪽으로 갈라서게 합니다.
히브리서 35강을 읽고와 이 글의 차이점은 대상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갭이 느껴짐에 대한 고발입니다. 사실 갭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두쪽 부류 다 자기행위를 내세우는 자들이요, 십자가 복음을 이용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고픈 말을 이미아 성도님께서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죄아닌 것이 없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좀 죄를 제대로 드러내면 어떨까요?
선문답식이 아니라 자근자근하게 말입니다.
복음의 방언만으로도 족합니다.
김효은(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