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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산 8월 14일 강의 고후13:2 용서하지 아니하리라강의고린도후서

안산 8월 14일 강의 고후13:2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이름 : 관리자(IP:124.59.85.46)

090814 고후13:2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관리자(IP:124.♡.85.46)

09-08-15 22:14

http://media.woorich.net/신학강의/2009안산/안산090814고후13장2절.hwp

관리자(IP:124.♡.87.52)

10-10-12 18:51

안산090814고후13장2절

안산090814고후13장2절 :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2010-10-10 21:34:27 이름 : 박온정

안산090814고후13장2절:용서하지 아니하리라 / 이근호 목사

고린도후서 13장2절에 보면『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도대체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는 용서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사도바울이 하는 말이,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무슨 죄를 지었기에,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단 말인가. 상당히 궁금하지요?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라고 했을 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용서가 안 되는 죄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우리 인간이 지은 죄는 용서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관련된 사항은 용서 가 안돼요. 창조주가 인간의 죄를 용서하되, 용서하시는 창조주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그 용서한다는 혜택의 실제선, 실제로 용서한다는 그 실제선, 실제로 용서하고 구원하신다, 는 창조주 하나님의 혜택을 거부할 때는 이것은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의 용서하심’에서 이 용서라 하는 것은 우리 좋아라고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벌여놓으신 일에 대해서 전적으로 찬동하느냐 거부하느냐, 하나님의 자존심과 관련되어 있죠? 만약 우리 자신이, 무슨 죄도 용서 받는다하면 ‘나 이제 하나님 안 믿을래’ ‘용서 해줄게 용서 해줄게’ ‘야...역시 하나님 우리편이야’ 이런다 이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용서라든지 구원이라든지 뭐든지 그것은 우리 자신과 상관없고, 내가 너와 연결된 그 고리 자체에 대해서 부인하거나 부정해 버리면, 하나님이 만든 세계기 때문에 그 자체에 대해서 하나님의 속성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속성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 무서움이죠.

첫 번째 그림 보세요. 우리가 보통 뚝, 떼어내서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 제가 믿습니다’ 또는 ‘저는 믿기 싫습니다’ 이렇게 돌아서는데, 하나님은 이렇게 보시는 게 아니고 이 안에 하나님으로 보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식이라도 하나님을 못 벗어난다 인정하면 이게 용서가 되지만,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도 ‘나는 하나님과 안 놀아’ 해버리면 이 안에는 두 가지 속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공의로움’과 ‘자비’ 흐르는데 자신의 현실성, 하나님 안에 있음을 인정 자비가 주어지고, 하나님의 선을 거부하면 이 사람은 무서운 심판이 주어져서 이러나저러나 인간이라는 피조물은 하나님의 속성 두 가지 중 하나를 맞이해야 될, 그런 목적으로 이 세상에 인간이 만들어 졌습니다. 빼도 박도 못하죠.

그래서 그 뒤의 3절4절,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지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또 어려워요. 방금 전 제가 하나님이라고 했어요.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사도바울은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하나님은 물론 용서하지 않겠죠? 사도가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은 건데.

제가 방금 하나님 얘기 했는데, 여기 고린도후서 13장4절에 보면, 그리스도에 대해 얘기 했다 이 말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평소에 익히 안다고 여기지만 ,하나님은 뭐고 그리스도는 뭐냐, 두 분 다 승계되느냐, 하는 그런 문제를 다른 사람이 지적해서 질문하면 답변하기가 난처할 때가 있어요.

뭐더라? 뭐더라? ‘나 아는데, 아는데 답변 어떻게 하지?’ 그리스도만 믿는데, 그리스도, 예수 다 믿어야 되는가, 아니면 하나님과 예수를 믿어야 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가, 아니면 하나님 믿는데 예수 안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은 믿는데 하나님 안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겠지요?

이 문제는 요한복음14장에 보면 풀립니다. 도마가 ‘아버지를 보여주소서’ 하니까 예수님 하신 말씀이 ‘왜 자꾸 나에게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그래서 제자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봐야 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버렸어요. 하나님 아버지 안 봐도 구원되는 길이 여린 겁니다. 그게 편하지 않습니까?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보았다,’ 왜요? ‘내가 있는 곳에 아버지가 있거든, 내가 없는 곳에는 누가 없다? 내가 없는 곳에는 하나님도 없는 거예요. 사람들은 자기가 중심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여기 계시면 하나님도 여기 계신다‘ 고 보는 거예요. 여기 있는 하나님 없습니다. 가짜입니다. 인간이 지어낸 거예요. 예수님 계신 곳에 하나님이 있어요. 아버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기 있고, 하나님이 여기 반대방향에 있는 이런 법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천지를 만들었으니까 천지를 만드신 그 배후에 하나님이 천국에 앉아 계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얘기하는, 예수님이 계시면 아버지 계신 곳이고, 다른 곳에는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겁니다.

감리교에서 그렇게 말하죠.「예수 믿지 않더라도 하나님 믿으면 구원받는다.」그렇게 이야기해요. 그래서 꼭 예수 믿을 필요 없다. 절에 가도 하나님 잘 섬기면 구원받는다, 예수는 같은 인간일 뿐이다. 예수님을 본 자가 하나님을 보았고, 예수님을 믿는 자가 아버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 ’ 이렇게 해서 기존에 믿던 여호와, 하나님이 가짜며 우상인 것이 폭로가 되어버립니다. ‘대한 예수교지 대한 하나님교’ 가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 한국 민족한테는 충격이에요. 왜냐면 한국 사람들은 기독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조물주가 ‘천지신명’이라는 것을 믿어 왔었어요. 천지신명. 사람이 조물주가 이 세상 전부를 총괄하는 개념을 신이라고 하는데, 꼭 신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길에 가다가 들은 풍월이라든가, 어릴 때 어른들 하는 얘기 귀동냥으로 들었든 간에, 천지신명, 부처님, 조물주 하면 그 개념은 뭐냐 하면 온 우주천지를 만드시고 총괄하는, 완전히 거기에 포함시키는 개념으로 뭔가 하나 갖고 있어요.

그래서 평소에 교회도 안 나가고 절에도 안 나가도 갑자기 다급한 일이 생기면 자기가 방향을 정해요. 그래가지고 빕니다. ‘천지신명이여’ ‘조물주여’ ‘부처님이여’ ‘예수님이여’ ‘아무나 좋습니다, 내 마음 알지요?’ 이러거든요. 아무 신이나 좋지만, 내가 누구를 의지하고 겸손하게 비는 그 마음을 어떤 신이 되었든 간에 상관없이 누구 하나는 봐 주지요? 이런 뜻이다 이 말이지요. 그게 총괄개념이에요. 총괄개념.

나보다 더 월등한 어떤 주체가 있는데, 그 주체에 의해서 선지자를 만들었고, 비록 내가 무지해서 상세하게 모르지만, 나는 다급하고 어려운 순간에는 겸손하게도, 있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있다고 치고, 나는 비니까. 어떤 행운을 가져다 달라. 그거는 어린애든 모두 다 그래요.

그래서 이걸 가지고 ‘총괄적인 허상 개념’을 로마서 1장에서는 뭐냐, ‘저희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개념으로 사용한 겁니다. 하나님 개념으로. 예수님은 뭐라 하냐면,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면 다른 것은 하나님 있지도 않고, 그 하나님은 여호와든 하나님의 어떤 개념이든,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허구적 개념’인 겁니다. 허구적 개념.

용... 이런 거죠. ‘용’ 있습니까? 없지요? 없지만 용이란 말은 쓰잖아요. 마찬가지로 예수그리스도에게 함께 있는 하나님 말고, 다른 알라, 하나님, 신, God, 뭐가 됐든, 여호와가 됐든 뭐가 됐든 그것은 다 용‘과 같은 허구적 개념입니다. 그냥 한번 불러봤어. 그냥 불러 보는 거예요. 답답해서 불러보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다른 예수, 다른 복음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어요. 저주.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저주 받는다’ 똑같은 거예요. ‘나(예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저주 받는다’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오늘 강의에서 어려운 대목에 들어가는데, 이 대목은, 수련회 참석 못하신 분 특별히 고려해서 수련회에서 나왔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오늘 13장4절에요,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라는 대목이 나오지요. 모든 성경말씀 밑바탕에는 뭐냐 하면, 우리 사람이 알고 있던 시간관과 다른 시간관이 밑바탕에 바치고 있습니다.

수련회 참석하신 분은 알지만,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복습하는 차원에서, 우리 인간의 시간관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인간의 시간관은, 현재에 있는 내 몸이 시간을 조장하는데, 뭘 조장하냐 하면, 두 개를 조장해요, 하나는 과거를 조장하고, 하나는 미래를 조장합니다.

과거는 어떻게 조장하냐면, 기억을 가지고 현재 자기 몸이 요구한대로, 필요한 기억을 가지고, 이걸 과거라고 하지요. 필요한 기억. 때로는 이 기억이 과거와 동일합니까 동일하지 않습니까? 전혀 동일하지 않아요. 상당히 과장되어 있지요.

“내가 고등학교 때 잘 나갔지, 17:1로 붙었잖아 내가” 그때 마침 동창생이 지나가면서 “어이~너 고등학교 3학년 때 싸움 건 놈 너 이리와” “아이쿠, 반갑다 친구야, 이게 몇 년 만이야, 10년 만이제? 너 지금 무슨 얘기 하는데?” “너 옛날 고등학교 때 17:1로 싸웠잖아” “에라이~ 구라다 구라, 내가 안다, 너 17대1일 아니고 도망갔어 너” 그러면 제 삼자가, “아흐, 깜박 속을 뻔했네.”

도망가 놓고 왜 17:1로 싸웠다고 왜 얘기합니까. 지금 현재 자기 이야기 듣는 사람을, 만약에 여자라면 꼬시기 위해서. 자기 아내 만들기 위해서 구라를 치는 거예요. 인간이 기억이라는 것은 전부 조작된 겁니다. 얼추 괜찮은 과거 골라서 자기 유리한 쪽으로 조작한 걸 과거라고 한 거예요. 그걸 한동안 써먹으면요, 본인도 진짜 17:1로 싸웠다고 기억 속에 굳어져버려요. 나중에 34:1됩니다. 나중에 몇 년 뒤에 가면...

사람의 기억이라 하는 것은 여러 가지 기억 중에서 현재 자기 생존에, 자기 몸에 유리한 쪽으로 조작을 해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조작된 기억을 기초로 해서 미래를 조작해요. 예를 들면 돈이 없어서 채소반찬만 하니까 아이들이 “엄마, 우리도 고기 좀 사먹어!” 했다 말입니다. 불쑥 엄마가 거짓말 하죠. “아빠 출장 갔다 돌아오시면 고깃국 끓여줄게” 무엇을 근거로 합니까. 남편 돌아오는데 빈털터리 되었는데,

미래라 하는 것은 항상 지금에 대한 ‘결핍’ 결핍을 놔두면 힘드니까, 상상으로만 결핍을 미리 채움으로서 약간의 위로 받겠다는 심보로서 미래가 만들어집니다. - "Boys Be ambitious! 청년들이여 야심을 가져라!- 다른 말로 하면, ‘네가 위로 않으면 누가 위로하나’ 조작해서라도 지금의 심정을 네가 계속 위로해 나가야 스트레스가 풀립니다.

그렇다면, 로마서7장에 보면 우리의 몸은 무엇을 양성하는 몸입니까. ‘죄’를 만들어내요. 실제의 과거와 실제 미래, 뭣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내 일방적으로 유리한 쪽으로 조작해내는, 죄만 짓는 그러한 신앙관입니다. 이 신앙관에 예수님 이야기하고 남들 이야기하면 이 조작된 신앙관이 떠나질 않아요.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 하면, ‘주여, 맞습니다. 제가 믿으면 복 받죠’ 자기 맘대로 해석해갖고 교회 다니고, ‘믿습니다’ 기도한 거예요. 그걸 목사가 또 이용한 거예요. 그러면 이거는 엉터리니까, 두 번째 시간관으로는, ‘세상의 시간’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누구의 시간이에요? ‘하나님의 시간관’이에요. 하나님의 시간관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인간의 시간관은 과거와 현재에서 미래를 내다보지요.

하나님의 시간관은 remind 하는 겁니다. 미래에서, 현재에서 과거로 들어갑니다. 리마인드, 필림을 거꾸로 돌리면, 인간의 신앙 같으면 ‘오! 신이시여! 이런 일을 하면 복 주겠습니까? 라고 과거를 기초해서 과거의 원인이 있으면 이런 결과 줍니까? 라고 묻던 사람이 ’하나님의 시간관‘을 알게 되면, ’내가 이렇게 된 것도 하나님의 예정하신 은혜입니다.‘ 다르잖아요.

‘내가 이렇게 된 것도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왜? 감기는...양탄자는 감겨 돌아가니까. 감겨가니까. 양탄자 한번 깔아볼까요? 깝시다 그럼, 현재 우리가 여기 있죠? 미래에서 내려온 양탄자기 때문에 우리가 돌돌 말리면 어디로 갑니까.

미래에서 미래로 끌려가죠? 미래는 아직 우리가 안 가봐서 모르지만, 미래에서 온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면, 우리의 갈 곳은 뻔하죠? 어딥니까. 성령이 왔던 곳이 어딥니까. 천국 아닙니까. 성령 오게 되면 천국으로 가는데, 가면서 우리 몸은 죄된 몸이기 때문에 또 뭐가 있습니까. 인간의 시간관이 있죠?

인간의 시간관은 우리의 시간관으로 흐르고, 과거에서 현재로 흐르고, 우리 고집대로 흐르고, 그 고집을 더 센 고집으로 미래로 잡아당기는 하나님의 고집 있죠? 우리는 맨날 뭐가 됩니까. 맨날 회개하다 볼일 못 보죠, 회개하다가.

예를들어서, ‘하나님, 우리는 왜 이렇게 돈도 없고 가난합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구나’ 가난해서 구원받으라는 거구나, 한 3초 생각했습니다. 3초 지나고 난 뒤에 갑자기 또 뭘 생각 하냐면, 3초 지나고 난 뒤에, ‘그런데 하나님이여, 제가 무슨 죄를 지어서 제가 가난합니까? 또 과거에 무슨 죄를 지어서 현재 이렇게 현재 가난하게 되었나 묻게 된 겁니다.

앞으로의 소망은 뭐가 됩니까. 나도 언젠가 뭐하겠다? 부자 되려고, 또 자기 형편이 어려우니까, 과거에서 과거에 결핍된 것을 보충하는 의미에서 ‘하나님 기도할 테니까 돈보따라 하나 터억, 던져주세요’ 라고 하다가 다시 성경 보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했거든요. 우리가 미래에서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지만. 마차는 내가 앉아 있으면 내가 끌고 가면 마차 아니죠?

나는 앉아 있으면 마부가 끌고 가듯이, 우리는 하나님께 끌려가는 입장인데, 이쪽은 뭐냐 하면 마차에 앉은 채로 손을 뻗어 자기가 끌고 가겠다는 거예요. 이게 우리의 일상생활입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예수 믿으면 부자 될 건데’ 한다 이 말입니다. 예수님은 몇 번이겠습니까? 예수님은 1번이겠습니까, 2번이겠습니까? 2번이었어요. 예수님은 말씀에 순종하죠. 말씀 안에는 2번, 하나님의 시간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을 때까지 약했어요. 약해져야 코스가 무슨 코스냐, 구원받을 직전의 코스라는 미래를 미리 알아 채버린 겁니다. 그래서 약해도 약해지지 않은 거예요. 오히려 약함이 주님의 믿음은 더욱더 강해진 겁니다. 어렵죠? 참 어렵습니다. 우리의 상식은 1번인데 성경은 2번이라는 시간위에 말씀을 놔버렸다 입니다.

그러면 내가 사망과 실패했다, 왜요, 사업에 실패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끌고 가기 때문에 그래요. 사업에 실패하는 식으로. ‘에구,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무슨 죄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지신 것이 원인이 되는 겁니다. 십자가에 지셔서 우리 죄를 용서했다는 것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와의 관련성 때문에 우리는 사업의 실패를 통해 끌려가는 거예요.

지난 수요일 날 기도회 하면서 기도 제목의 예가 이렇습니다. 하나님 공로가 어디 있는지 찾읍시다. ‘주님의 공로가 어디 있는지 찾읍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너 잘했다 나 잘했다 하지 말고 주님의 공로가 어디 숨어있는지 찾읍시다. 그래야 그 예배가 찬미가, 감사의 예배가 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면 우리 생활이 어떠해야 되요. 뭐해야 됩니까? ‘나는 돈 못 벌었다’ 하지 말고 도대체 이 가난한 우리 집에 하나님의 공적과, 공로와, 하나님의 수고가 집의 어느 안방에, 마룻바닥에, 어느 툇마루에, 어느 부분에 있는지 한번 찾아보자 이 말이지요. 찾아볼 것도 없지요. 전부 다지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지요 은혜.

이건희 씨의 눈으로 보면, 방구석의 바퀴벌레 다니는 것도 은혜입니다. 1번 시간의 눈으로 보면, ‘저걸 내가 약을 진작 친다는 게, 컴베트를 붙인다는 게 안했더니...다음에 쳐야지’ 이게 1번이거든요. 1번 약 쳐가지고 바퀴벌레 없어져 보세요. 그 다음 바퀴벌레가 또 있습니다. 감사가 없어요. 계속 내 몸의, 나의 영광만을 위한 나의 영역으로, 내 몸이 가상적이고 환상적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냐면 자꾸 십자가에 들려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어떤 십자가냐, 연약한 십자가죠, 약한 십자가죠. 아까 봤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뭐해야 됩니까. 맨날 더 강하게, 더 더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죠. 거기다 십자가 들이대면, 약해도 괜찮아, 약해도 괜찮아.

유현상이라는 가수가 부른 그런 노래 있지요? 수영선수와 결혼했던 사람이 부른 ‘여자여, 여자여’라는 노래가 있어요. ‘여자여~♩여자여~♬’ 그다음 가사가 뭡니까. ‘약해지면 안돼’ 그걸 몰랐어요? 약해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뭐냐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약해도, 끝까지 약해도 하나님 권능으로 사는 것처럼 너희들도 약해졌다고 해서 실패한 게 아니과, 오히려 약해질 때가 믿음이 더욱 더 강해질 때다, 이 말입니다.

바나나 먹어 보셨죠? 바나나 알맹이가 노랗습니까 하얗습니까. 하얗죠. 그런데 사람들은 노랗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얗다는 걸 확인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노란 껍질을 벗기면 하얀 알맹이가 나오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껍데기, 종교적인 껍데기가 얼마나 노랗게 물들었냐, 그걸 보는 게 아니고, 우리는 돌아서면 종교, 종교로 자기를 입히는 거예요.

내가 종교적인 행위를 과거에 해 놓으면 그 복을 받아서 잘된다 하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종교적인 껍데기에 바빠요. 종교적인 껍데기를 벗겨보면, 안에 들어있는 예수님이 주신 것이 그대로 속살이 있기를 원해요. 그 능력이 바로 강한 능력이 아니고, 약해도 괜찮은 능력을 우리는 품고 있어요. 그게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를 믿는다는 말은, ‘괜찮아!’ ‘아...괜찮아!’ 이런 뜻이에요. 그게 오늘 본문 이야기라니까요.

목회자가 ‘복음’ 전했는데 있던 교인들 다 나가보세요. 맥빠집니다. 하지만 내가 과거에 복음 전하면 미래 교인 수가 많아진다는, 나의 시간관을 노란 바나나 껍데기로 여기고,

“너 몇 명 전도하고 몇 명 목회했나?”
“한 명도 없었습니다.”
“왜 너 마누라는”
“우리 마누라도 그만 갔습니다”
“그래? 언제든지 와! 천국으로!”
“한 명도 전도 못했는데요?”
“나는 속살 본다! 껍데기 안 봐, 몇 명 전도하고 기도 오래한 거 나는 안 봐요!”

사람들이 왜 그걸 신경쓰느냐 하면, 그게 있어야 자기 생계가 보장되거든요. ‘주의 일’ 그거 핑곕니다. 자기 밥벌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 되풀이하는 거예요. 그 좋다는 천국, 일찍 가면 안 됩니까? ㅡ나는 요새 가고 싶어 죽겠어요, 누가 장난삼아 뒤에서 안 받나 기대합니다ㅡ 복음 전해도 말이 많으니 도대체, 왜 복음만 전하냐고 시비 하냐고요, 왜 복음 전하냐고 시비거는데...

복음 안 전하면 내게 화가 임할 것 같습니다. 왜 그러냐면, 복음을 위해서만 만들어졌거든요. 저 뿐만 아닙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복음을 위해서 만들어졌어요. 때로 우리는 늘상 복음...복음 하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하죠. 그럴 때마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욕망의 껍데기를 벗겨버리는 그런 일들을 주께서 일으키시는 겁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나탈리’ 라는 학자가 잘 이야기 했는데요,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첫 번째는, 1)내가 무엇을 원하지? 조금 더 깊이 나가면, 2)내가 왜 그것을 원하지?’ 여러분들은 보통 1번만 생각하거든요. 2번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는 저 비타500 이라는 음료수가 먹고 싶어’ 이거는 얇은 생각이고요. ‘나는 왜 저 비타500을 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냐’

이 말은 뭐냐, 내가 뭘 원한다가 1번이라면 나로 하여금 그걸 원하게 만든 그 배후에 뭐가 있느냐 이거에요. 왜 2번이 중요하냐면, 사람이 뭐가 하고 싶어도 뭔가, 예로 들어서 로마서7장에 나오는 이야깁니다만, ‘나는 거짓말 하면 안돼’ 1번이죠? 나는 거짓말 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런데 거짓말 하지 않은 나로 하여금 ‘거짓말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너는 뭐냐? 나보다 더 센 너는 뭐냐? 2번이 돼야 인간은 자기 욕망을 파악했다고 볼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내가 욕망을 가진 게 되지만 2번이 되는 욕망은 뭐냐 하면, 욕망이 나를 가져요. 이걸 갈라디아서 3장에서는《감금되었다》했어요. ‘갇혀 있다’ 인간은 갇혀 있어요. 갇혀 있습니다. 북한이 남한보다 나쁜 나라죠? 그렇지요? 북한 다녀온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있습니까. 왜 그럴까요. 왜 그렇습니까? 거기서 무슨 교육 받았어요.

어디 갇혀 있느냐 하면, 죽음에 갇혀 있어요. 죽음이 협박하면 내가 선을 하고 싶어도 죽음이 협박하면 악을 행해야 합니다. 가정주부들은 이런 병이 별로 없는데요, 살림만 살기 때문에, 남편 퇴근하면 자기 세계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하죠. 남편 같은 경우, 집단적 범죄에 동조가 되어야 거기서 살아남을 수가 있어요.

이게 나쁘지만, 남이 대모 할 때 같이 대모 해줘야 그 집단에서 따돌림을 안 받아요. 승진도 가능하고 짤리지도 않고, 돈을 벌어야 아내가 좋아하는 , 자기만의 가정을 구할 수 있어요. 아내는 그것도 모르고, ‘여보, 내가 가정 잘 꾸며 놨지?’ 그러면 남자는 이러죠. ‘내가 바깥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너는 아나?’ 그것도 속으로만 이야기하죠. 겉으로 하면 잔소리 하니까.

당신이 이렇게 소박한 내 가정, 아이 학교 보내놓고, 남편 직장 보내고 자기만의 아트리에를 꾸며놓고 아기자기 사는 거, 그게 돈 없이 될까요? (마죠마죠) 어느 여자치고 돈 주면서 아기자기 살아라 하면 그거 못할 여자 있습니까? (맞습니다 맞고요) 남편이 돈 천만원 주면서 살아보라 하면 어떤 여자가 못살겠어요. 한 달에 50만원 갖다 주니까, 우유값도 안 나오니까 문제가 되는 거 아닙니까.

죽음의 유혹을 인간적으로 이겨낼 수 있다면 십자가라는 말이 왜 나왔겠어요. 십자가를 ale으라는 말을 사도바울이 왜 했겠어요. 다시 합시다. 인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냐 하면, ‘나는 인간이다’ 이래서 인간을 몰라요. 당신이 어떤 행위를 하는가?를 통해서 인간을 알거든요. 이거는 예수님도 말씀하셨죠.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 했죠? -누가복음 6: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 그 사람의 본질을 파악하라,는 거죠. 그런데 인간이 행위를 할 때는 반드시, 의도를 가지고 하거든요. 그걸 욕망이라고 했어요. 욕망이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뭐냐, ‘내가 무엇을 원하다,’ 이거잖아요. 그런데 이거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내가 왜 그 욕망을 가져야 하는 인간인가? 그 말이죠. 내가 왜 하필이면...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목표가 있어요. 노린게 있어요. 이 목표를 나타날 때는《큰 타인, 큰 타자-남》그러니까 사람은 남이 갖고 싶은 것을 자기가 갖고 싶어해요. 그 대표적 사람야곱이 있죠. 야곱이 혼자 살았으면 속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자기는 없는데 타인은 갖고 있는 게 있었어요. 장자권이었죠.

다시 해봅시다. 이거 중요한 거니까 다시 합니다. 성경의 시간은 뭐였다? 성경의 시간은 미래ㅡ>현재ㅡ>과거로 이렇게 흘러 지나가죠. 그럼 과거에 사도바울은 미래에서 보면 뭐였어요. 예수 믿는 사람 잡아 죽인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잘했다는 게 아닙니다!! 역시 나는 사람 잘 죽였어! 이게 아니고 뭐다? 그게 은혜였다 이 말입니다. 이번 수련회에 때 했었죠? 어쩔 수가 없었다. 두 개 배웠어요. 하나는 1)어쩔 수가 없다. 2)십자가에서는 뭐다? ‘괜찮아!’

성경에 미래는 뭐가 있죠? 하나는 천국이고 하나는 지옥이죠. 이거는 확정된 거죠. 확정된 미래가 미리 댕겨서 양탄자처럼 깔려서, 파리자리가 파리 먹듯이 파리자리가 혀를 내밀어 낼름 잡아먹잖아요. 그러는 것처럼, 미래의 천국과 지옥의 노선이 나란히 밀면 똑 같은 쌍둥이도 하나는 어디 가야 됩니까?

하나는 지옥을 가는 시간에 휘말리고, 하나는 천국 가는 시간에 휘말리게 되겠지요. 그래서 둘 사이는, 본인이 원든 않든, 갈라져야 하는 거예요. 그것은 그 사람의 행위로 나오는 겁니다. 천국을 보여줄 행위 같으면 이 사람은 ‘나는 죄인입니다’가 나올 거고, 지옥갈 행위란 뭡니까. ‘나는 죄인입니다, 주의 은혜입니다’가 나올 거고, 지옥 갈 행위가 뭡니까, 아까 했잖아요. 노선을 누가 만든다? 내 과거가 만들잖아요.

지옥 갈 특징이 뭡니까. 주께서 날 인도하는 은혜를 믿지 않고 뭐를 믿는다? 내 인생은 누구 하기 나름이다? ‘내 죽음’ 내가 없이 내 인생은 내가 하기 나름이다. 를 믿지 않습니까. 그것이 그 사람의 행위가 되었고, 그 사람의 열매가 되었으니까 그 사람이 뭐다? 지옥 갈 사람의 폼을 다 내고 있어요. 폼을 다 내고 있다고요.

대표적인 사람이 전두환, 노무현도 마찬가지. 김대중, 김영삼 전부 다예요. 솔직히 이명박도 그래요. 소망교회, 소용없어요. 그 사람들 행위를 보게 되면, 반드시 자기의 바탕에서 자기의 죄를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나는 내 행위로 살겠다’ 하다가 하나님의 미래의 시간이 주어지면 ‘아차, 내 행위로 사는 게 아니고 미래에서 천국 보내려고 나에게 찾아왔구나’ 회개하고 자기 죄를 깨달을 때, 그 열매가 뭐다? 천국 가는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열맨데 지옥 갈 사람은 뭐가 나오냐, 반성은 하되, 회개는 안 나와요. 회개를 하면 그리스도의 공로가 높아지는데 반성을 하면 본인이 훌륭한 사람이 돼버려요. 얼마나 훌륭합니까. -오늘 물이 많이 쓰인데이-

고린도후서 13장 4절에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가 뭐냐, 이거 참 중요합니다. 왜냐면 십자가를 이해할 때 ‘그리스도가 강하다’ 하지 말고 약하다고 보자 말이죠. 그리스도가 약하니까, 우리는 더 약해도 괜찮다 말입니다. 『고후13장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

《살리라》속에 뭐가 들어있다? 이미 하나님의 시간이 담겨있기 때문에 살리라는 말은 반드시 살려줄게 믿느냐 이 말입니다. 우리 디모데후서 한번 봅시다.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디모데후서 2장11절: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미쁘다’는 믿음직하다 라는 말이에요.

믿음직하다 이 말은요,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살 것이요...’ 이 말을 세 글자로 하면? 《괜찮다!》이 말입니다. ‘목사님 그래도 죽으면 안 돼잖아요’ 마지막 감금상태가 ‘죽음’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을 가지고 한 이유가, ‘너희가 그렇게 무서워 하는 죽음’ 건들지말라 이 말이지요.

주님께서는 ‘도’를 주시는데, 앞면은 죽음이고 뒷면은 부활이라는 말이지요. 앞면만 보면 우리는 죽음만 보지요? 자기 뒷면 보세요, 죽은 뒤에 뭐가 있습니까.《살리라》가 있잖아요. 그러면 앞으로 볼 때 주님이 죽인다 한 말은 뭐를 드러냅니까.〈살려줄게〉라는 말로 들으면 모든 게《괜찮다》이 말이에요. 괜찮은 상황이다 말이죠.

노인들 늙을수록 걱정이 많아요. 거짓말하죠. 허세부리죠. ‘아이고, 죽으면 죽지뭐,’ 해놓고 전화는 뭐 그렇게 해대는지 몰라요. 돈 달라 그 말이지요뭐, ‘바쁜데요’ 그러면 ‘돈이나 부쳐 줘’ 그럼 못된 자식은 그러죠, ‘삼년 전에 오 만원 부친 거 다 썼습니까’ 하죠.'에궁, 자식 믿을 거 못된다‘ 자식 믿을 거 못되는데 자식을 왜 믿어요 그래? 자식이 메시아도 아닌데.ㅎ ㅎ

자식 믿으니까 자식과 함께 실망하죠.(메시아도 아닌데) 적어도 믿으려면 실망 안 할 걸 믿어야죠. 믿음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믿음은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고, 자기 행위를 믿으면 그걸 믿음이라 하지 않고 행위라 합니다. 예수님의 행위를 믿으면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습니다’ 하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고 알맹이 내용이 중요해요.

예수님 행위가 함께 죽으면 살리라, 그 행위가 우리에게 주어져 운명으로 고정되고, 그렇지 않고 자기를 믿는 사람은 지옥 갈 사람이에요. 지옥 갈 시간에 와 있기 때문에 지옥으로 데려간 겁니다. 그러니까 입만 살아 있으니까 회개도 안 나오고, 죄가 안 나오고, 죄가 안 나오니까 은혜란 말도 안 나오지요. 나올 리가 있습니까. 자기 잘난 맛에 사는데.

지 잘난 맛에 사는데, 집에 있는 가구 지가 알아서 돈 벌어 산 건데, 하나님이 뭐 하나 가져가면, ‘아이고, 하나님 왜 가져갑니까’ 따지는 사람인데. 그래서 그 사람은 항상 강해져야 하는 거예요. 약해지면 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은 약해져도 강하고 약해져도 그거 안 믿고, 십자가 믿고 강하고!

그래서 그 뒤에 뭐가 나오냐면, 이것을 가지고, 이 십자가를 가지고 너 자신이 과연 신자인지 아닌지 테스트해보라, 다른 말로 하면 ‘성경말씀을 늘 보라’ 이 말입니다. 성경말씀 보고서 ‘아멘’ 되거든 신자고, ‘나 담부터 성경 안 볼래, 내 소망하고 관계없는데’ 하면 그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려고 미리 지옥의 노선에서 온 컨베이어시스템 a conveyer system 움직이는 선반에 올라간 사람이에요.

5절에 봅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상당히 재밌죠? 너희가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니다, 너희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다? 믿음에 놓여 있는가, 믿음이 신용카드가 아닙니다. 믿음이 카드, 소지물이 아니고 믿음을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믿음 속에 내가 놓여있는가 보라, 이 믿음이 누구 믿음입니까? 이게 십자가에서 나온 믿음이에요. 십자가가요, 가만히 있는 죽은 십자가가 아니에요.

그림을 그릴게요. 이 십자가가요, 죽은 십자가가 아니에요.-아 이거 어려운데, 어려운 거 한번 해봅시다- 요한계시록 11장에 한번 봅시다. 제가 읽습니다:『계11:8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우리가 알기로 십자가에 누가 죽었습니까. 예수님 죽었고 그때 강도 두 사람도 있었죠. 두 감람나무 같은 두 성도가, 순교자가, 증인이 죽었잖아요. 영적으로 해석하면 여기가 어디요? 죽은 장소가 어디였습니까. 방금 읽었잖아요. 죽은 장소가 십자가잖아요. 주님의 십자가가 죽음의 십자가가 아니고, 반복해서 십자가의 능력이 계속해서 움직일 때, 그 십자가가 작용할 때, 그 공간 안에 놓여 있을 때 그 사람은 믿음 안에 놓여 있죠.

이런 용법이 히브리스 11장에 나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일 때 그 믿음은 우리가 가진 믿음이 아니고, 믿음이 우리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믿음이. 믿음대로 행한다,가 뭐냐면 ‘주님이 시킨대로 한다,’ 이 말이에요. 믿음 내 놓아라 하는 말이 아니빈다. 믿음이 우리보다 더 커요. 내가 믿음을 품고 있는 게 아니고, 믿음이 나보다 더 커서 믿음에서는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에게, 우리를 장악하고 있어요. 그래야 우리는 죽음이라는 감금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이길 수가 있는 겁니다.

왜냐면 ‘그 십자가가 죽음에서 이겼다’ 라는 표시거든요. 예를 들면, 박스 하나가 예수님의 생명이라고 합시다. 생명을 갖고 있으면 죽음이 오더라도 박스 안에서 힘이 나오니까 이 힘 안에 뭐가 있습니까. 죽음이 오더라도, 저주가 오더라도 심판이 오더라도 십자가의 능력이 그것을 케치하는 겁니다.

마태복음 8장17절 한번 봅시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여기 친히 ‘담당’하는 게 있죠? 그럼 논리상 어떻게 되요, 우리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서 하는 말이 ‘담당했다’ 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가만있는데 ‘담당했다’ 이 말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죠? 너는 가만있어도 죄를 누가 가져갔다? 예수님께서 가져갔다 이 말이지요. 그러면 가져가기만 하고 그 혜택을 안 주게 되면 ‘담당’이 성립 안 되겠지요. 담당이 성립 안 되게 되면 우리 죄를 가져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져가서 해결되었음을, 해결되었다는 우리를 삼키기까지 될 때 뭐가 성립됩니까. ‘담당했다’가 무사히 성취되죠.

새 언약 성취는 예수님 홀로 이렇게 해서 성취하신 겁니다. 새 언약은. 그런데 여기 불신자가 있다 합시다. 불신자가 있는데, 똑 같이 ‘예야, 담당했다’ 했을 때 신자는 무슨 말인지 알아먹는데 불신자는 ‘저 양반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담당했다 가 무슨 소리지?’

‘인생은 내가 한 사랑이 아니야? 나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미쳤구나, 저 예수 미쳤구나’‘ 뭘 내 죄를 왜 가져가? 내 죄는 내가 착해서 내가 알아서 처리해’‘지가 뭔데 왜 가져가? 그리고 나와 시간상 거리가 2천년이라...’ ‘2천 년 전의 인간이 내 죄를 왜 가져가는데?’ ‘거리도 수천 킬로미터야, 무슨 이스라엘 사람이 대한민국 한반도 사람의 죄를 왜 가져가는데?’ 이게 불신자가 그런 생각 들어요. 우리도 그런 생각 듭니다. 우리도.

그때마다 성령께서 깨우쳐 ‘아! 또 내가 옛 성품을 발휘했구나’ ‘친히 담당’을 놓쳐버리니까 사람이 ‘십자가의 죽으심’에서 시선을 딴 데로 돌리니까 예수님의 죽으심 혜택 바깥에서 보란듯이 이스라엘 외곽에 누가 있습니까. 이방 나라가 진치고 있다가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의 의미를 벌일 때마다 와서 노략질 하고 여자와 아이들과 포도주와 축복의 산물들을 다 뺏어 가고 그들을 압제하고 이랬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시선을 이방나라보다 누가 서 세다? 너희와 함께 있는 여호와가 더 세다, 하니까 이방나라는 작살나는 거죠. 우리가 약해져도 괜찮은데 약해지면 죽는다 해가지고 우리가 겁을 집어먹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스럽게도 마귀까지 동원해 우리로 하여금 때리시잖아요. 마귀를 동원해서. 이방나라를 통해서.

바벨론, 앗수르, 바벨론...이번에 다 배웠죠? 메대, 바사, 페르시아, 헬라마케도니아, 이런 나라를 동원해가지고 그 나라보다, 그 신상보다 더 센 분이 누굽니까. 지금 다니엘 세 친구와 함께 있는 그 인자 되시는 분이 바깥의 으르렁거리는 짐승보다도 더 세다,고 수련회에 강의 했지요?

그게 바로 십자가의 의미의 혜택을, 지금도 우리가 믿든 안 믿든 혜택 받고 있어요. 받고 있으니까 이것이 가끔 가끔 이것이 생각나는 겁니다. 만약에 우리가 신자가 아니라면, 예정된 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깜깜해요. 아예, 성경을 거부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다시 한번 십자가라는 것을, ‘약해도 괜찮구나’라는 것이 믿어진다면 그건 이미 우리는 미래에서 잡아 댕기는 도르래가 힘차게 끌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그것이 너희 믿음 속에 있다는 것을 날마다 확인 하라는 것이 고린도후서 13장5절의 말씀입니다. 6절에 보면 :『우리가 버림 받은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버리운 자가 아니다’ 이 말입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를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자기 능력을 다시 바라보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의 눈꼬리를 나 자신 바라보지 말고, 놋뱀 쳐다보듯이 높이 들리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십자가에서 나오신 미래의 능력으로 우리가 미래의 천국으로 이끌려 가고 있음을 오늘도 감격하면서 찬미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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