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6:11-17 (거짓과 반발)
렘 6:11-17 (거짓과 반발)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69)
본문 : 예레미야 6장11-17절
제목 : 거짓과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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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9-08-12 21:12
거짓과 반발
2009년 8월 12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6:11-17
(렘 6:11, 개정)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렘 6:12, 개정)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6:13, 개정)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렘 6:14, 개정)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 6:15, 개정)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6:16, 개정)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렘 6:17, 개정)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여호와를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만든 나라입니다. 이스라엘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이스라엘은 망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분명 자신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확신했습니다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심판을 받는 심판의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입니까? 어디에서 잘못된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른 것들을 미워해야 한다’는 원칙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뭐든지 하나님과 겸하여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람인지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일종의 취미 생활의 일환이 되고 말았습니다.
즉 인간의 몸이란 나름대로의 다양한 욕구가 솟아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과학, 어떤 사람은 음악, 어떤 사람은 미술, 어떤 사람은 신학 등 각가지 개성과 취향에 몰두 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곧 인간이란 전적으로 하나님만 생각하며 사는 존재가 될 수 없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나라와 교류를 하면서 안식일에는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하지만 모든 날들 속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신들을 찾게 된 것입니다. 신들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맞는 신을 자신들이 골라 믿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잘 사는 나라의 신과 문화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몸이란 이처럼 자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즐길만한 것에 다가서게 마련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은 자아의 방 속에 책꽂이가 있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그 책꽂이 꽂아놓습니다. 하지만 그 옆에다가 다른 신도 나란히 꽂아놓으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십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도대체 이스라엘의 근본 문제는 무엇이었던가요? 신약에 와서 밝혀집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되기 전, 사울로 살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찾아오니 사울의 몸은 땅으로 내동강이쳐졌습니다. 즉 사울이 예수님에게 신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예수님 몸 자체를 비교한 것입니다. 자신의 몸은 마땅히 죽을 몸이로되 예수님의 몸은 이런 저주받을 몸을 살리기 위해서 죽으셔야 했던 몸이었습니다.
더 이상 사도에게 십자가 복음을 믿는 신앙은 취미 생활 중의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자기 몸의 개성이나 취향에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의 몸이 그동안 ‘죽을 몸이다’는 사실은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까지 사랑해야 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것까지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우기지만, 막상 하나님께서 자기 집안, 자기 가족마저 심판한다면 그것마저 사랑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12-13에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남편과 아내와 나이 든 사람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그동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를 더 사랑했는지를 말입니다. 결국 인간이란 자기에게 속했다는 것에 대해서 전폭적으로 사랑하기에 더 이상 바깥에 사랑하는 대상이 남아 있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말 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외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이 점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니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참된 선지자의 예레미야의 말을 그들이 귀담을 들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들은 도리어 예레미야의 말을 자기들보다 욕하는 소리로 이해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그 당시 거짓 선지자나 제사장들이 거짓말을 했는데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다니엘에 보면, 짐승같은 국가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짐승 같은 군주가 전쟁을 치르는데 백성들이 덩달아 나서서 군말없이 전쟁을 한다는 점입니다. 요즈음에 만약에 대통령이 말하기를, “9월달부터 일본을 치 것이니 모든 20세 이상의 남자는 다 군대 나오기 바랍니다”라고 하면 국민들이 일어나서 “우리는 절대 못한다”고 반대하는 것이 전혀 이상스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고대 국가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까? 그것은 모든 인간들은 자신의 생각과 같은 군주를 만나 동질성을 이룰 때, 비로소 국가라는 것이 성립되는 겁니다. 즉 국가의 권력이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가 생각이 같음’에서 오는 효과를 말합니다. 따라서 비록 군주가 전쟁을 주도해도 그 징벌은 온 백성이 다 받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진 선지자와 제사장을 원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심판을 증거하는 참된 선지자보다 자기 몸을 위해주는 거짓 선지자들을 선호했습니다. 오늘 본문 13-15절에 보면,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피해 지하실 속에 그들의 만의 세상을 만들어놓고서는 그것을 낙원으로 꾸며놓은 셈이 됩니다. 그 안에서는 오직 “평안하다, 평안하다”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도시에 살아남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동안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미워하는 겁니다.
마태복음 10:34-37에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고 되어있습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저축해 놓은 그 단지를 깨야합니다. 그것을 깨져야 지금까지 주어진 모든 저주도 날아갑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만 사랑하고 나머지 그 어떤 자기 사랑도 남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우리교회
09-10-2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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