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억울하며 누가 피해자인가?
누가 억울하며 누가 피해자인가?
이름 : 이근호(IP:117.55.135.184)
누가 억울하며 누가 피해자인가?
아침에 눈 뜨면 벌건 태양이 화염을 내뿜고 있다. 대지를 살리고 산천초목을 살린다. 모든 피조물이 이 태양의 혜택을 입고 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서 내려준 언약에 의해서 은혜를 입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은혜를 잊고 산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를 찾아 감사하지도 않고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누가 억울하며 누가 피해자인가?
지금도 숱한 신생아가 태어나며 가정에서 산후조리원에서 생글생글 물 익은 생명을 뽐낸다. 이로부터 어떤 이들은 10년, 어떤 이들은 30년, 어떤 이들은 5, 60년을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생명이 지탱하고 있다. 그래도 이들은 교회를 찾아 감사하지도 않고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평생 자기 힘으로 살아왔다고 주장한다. 누가 억울하며 누가 피해자인가?
하나님께서 2000 여 년 전에 이스라엘에게 미리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어주셔서 그분의 죽으심과 땀과 피와 살점으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죄까지 씻어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듣기 싫어한다. 십자가를 증거 하는 자를 폐쇄적이라고 욕한다. 과연 누가 억울해야하며 누가 피해자인가?
복음은 없애고 서로가 서로를 우대하고 칭찬해주는 모두가 영광 받는 친목단체를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 중의 어떤 이가 말하기를, “우리는 죄인으로서 마땅히 영광은 예수님에게만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자 교인들은 “인간의 공로를 무시하지 말라”고 되받아친다. 과연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연 누가 억울한 자며 누가 피해자인가?
감사가 끊어진 교회, 감사할 이유가 사라진 교회, 경배하고 감사할 마음조차 없는 교회, 그 원인은 자신이 왜 죄인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 의만 자랑하기 위해서 교회를 찾는 자들에게 있어 복음이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는 격이며 진주를 돼지에게 걸어주는 격이다.
왜 관심사가 예수님의 죽으심에는 가 있지 않는가? 우리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으셨다는데… 도대체 우리의 정체가 뭔가?
이미아(IP:115.♡.203.64)
09-08-12 16:03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긍하지 않는다고 했다.
교만하지 않다고 했다.
훼방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를 거역하지 않는다고 했다.
감사한다고 했다.
거룩하다고 했다.
무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원통함을 푼다고 했다.
참소하지 않는다고 했다.
절제한다고 했다.
사납지 않다고 했다.
선한 것을 좋아 한다고 했다.
배반하여 팔지 않는다고 했다.
조급하지 않다고 했다.
자고하지 않다고 했다.
쾌락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했다.
그런데,
말씀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하셨다.
돈을 사랑하고 있다고 하셨다.
자긍하고 있다고 하셨다.
교만하다고 하셨다.
훼방하고 있다고 하셨다.
부모를 거역한다고 하셨다.
감사치 않고 있다고 하셨다.
거룩하지 않다고 하셨다.
무정하다고 하셨다.
원통함을 풀지 않는다고 하셨다.
참소하고 있다고 하셨다.
절제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배반하며 판다고 하셨다.
조급하다고 하셨다.
자고하고 있다고 하셨다.
쾌락을 사랑하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고 하셨다.
제발,
네가 이것을 알라고 하셨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라고 하신 것을...이것이 너의 정체라는 그것을...
서경수(IP:116.♡.101.7)
09-08-12 17:46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용서의 피를 감격하고 있는 마당에, 용서를 모르고 자기 행위를 드러내고 있는 자는 이미 심판 받은 불쌍한 자입니다. 그런 자를
용서의 감격을 누리는 자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리라. (롬12:20-21) 아멘!
안영미(IP:58.♡.206.28)
09-08-13 11:35
십자가를 증거하다 폐쇄적이라는 욕을 먹는다고 해서 왜 억울해 해야 하고 왜 피해자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의아해집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지요. 즉 십자가를 모욕해 준 그들을 통해, 나같은 죄인에게 십자가를 알게 해주셨다는 그 사실을 다시 알게 되고 그래서 은혜에 감격해지고, 나아가 천국을 모르는 그들에게 천국을 아는 자의 배려가 생겨지지요.
스데반이 예수님을 증거하다 돌에 맞아 죽으면서 돌을 던진 자들을 위해 '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라' 한 기도가 기억납니다.
매 순간 복음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모욕하는 자가 있기에, 내가 십자가를 알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강구만(IP:118.♡.241.248)
09-08-13 11:59
억울한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이근호(IP:117.♡.135.184)
09-08-13 13:41
사도 바울 편지 뿐만 아니라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아벨부터 피해자와 가해자의 노선을 가지고 창세기 3:15의 약속을 역사 속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벨이 억울하게 죽었을 때, 땅이 그 억울한 피를 하늘에 호소했습니다. 그럴 때, 집사님은 옆에서서 "어이 아벨씨 입 다물어. 다 하나님의 뜻인데 뭐가 억울한데"라고 핀잔을 주게 되면 아벨이 뭐라고 답변하겠습니까? "내 속에 그리스도의 억울함이 있어 그것을 증거합니다"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달리실 때,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다"고 하셨습니다. (눅 23:34) 과연 예수님의 못박은 자들은 모조리 다 천국갔습니까? 아예 처음부터 지옥 자체를 철거시켜 버렸습니까? 사도행전 2:37에 보면, 이런 십자가 복음에 근거해서 "우리가 어찌할꼬?"하며 진정으로 회개한 자에게는 피해자 되시는 그 예수님께서 친히 용서해 주셨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즉 스데반집사님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십자가 말씀이나 모두 자동적으로 천국간다는 말이 아니라 이런 말씀 자체가 십자가 복음에 포함되어 있는 말씀이라서 그 말씀을 보고서 자신의 죄를 알고 진정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만 구원이 되고 용서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자신이 지은 잘못을 그것을 지적하는 그 타인의 잘못으로 전가시키고 (실은 도리어 나의 실수를 찾아주셔서 감사해야 할 될 일을 말입니다.) 그분들이 사정도 모르는 온 교인들로 부터 몰매맞아 천하의 용서할 줄로 모르고 죄를 덮을 줄도 모르는 천하의 악인 중에 악인으로 만들어버려서 사태를 호전시키고서 자신은 여전히 억울한 자에 해당한다고 행세할 때에 그래도 안집사님은 이런 가해자를 두둔하시겠습니까?
이근호(IP:117.♡.135.184)
09-08-13 13:54
답답한 점은, 여전히 교회 업무가 방해되고 있다는 실질적 상황입니다. 정말 실수를 인정한다면 원할한 업무 인수인계에 방해할 것이 아니라 협조해야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혼잡한 거리에서 실수로 접촉사건을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통 방해할 것이 아니라 길 한편에 비켜나서 시시비비를 가리더라도 일단 교통은 터지도록 협조는 해야하는 겁니다. 그런 협조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피해도 고스라니 교회가 떠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직접 이 피해를 직접 떠 안고 있는 분들이 악인으로 몰려서 몰매를 맞고 있으니 안집사님은 이 일을 어떻게 해서면 좋겠습니까?
안영미(IP:58.♡.206.28)
09-08-13 14:38
1. 강구만장로님 말처럼 억울하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고 인간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고 다 죄인일뿐입니다.
2. 교회업무가 왜 방해되는지 모르겠지만, 방해되는 실질적 상황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왜 목사님께서 걱정을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3. 교회는 예수님이시니까, 그 피해를 고스란히 예수님이 떠 안고 계시겠군요. 그런데 누가 예수님의 짐을 담당하고 몰매를 맞고 있다는 말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군요. 또 나같은 죄인이 어찌 하나님이 하신 일에 감나라 대추나라 할 수 있겠는지요. 단지 혹 자신이 예수로 인하여 몰매를 맞고 악인으로 몰리고 있다면 몰리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 되지 않겠는지요
4. 그리고 억울한 자라고 행세하며 착각하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정죄하실테니 답답해 하실 일이 아닌 듯 합니다.
5. 이 세상은 모두 하나님의 섭리로 돌아가고 있으니 죄인들은 그 세팅에 감사하고 감사하면 되겠지요
김효은(IP:211.♡.171.45)
09-08-13 15:16
목사님, 8,9년된 교회의 역사는 없듯, 지금껏 축적 되어 왔던 재정문제도 인계받은 시점에서 처음으로 시작한다고 하면 안되는지요? 상대방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벌이신 주님께서 말로, 입으로만 교회의 역사는 아무것도 아니요 교회조직 운영도 십자가 앞에선 걸림돌이라고 하는 우리들에게 이 상황을 직접 우리교회 현장에 펼치시는 주님의 의도를 잘 생각해 보았으면 해서요~
교회조직 운영, 업무마비, 교회분열이 십자가지신 주님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요~
교회 안에서가 아닌 우리 개인의 삶의 현장에서도 인간적으로 억울하고 답답함을 당할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의 주인이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갋으려하지 않고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듯이~
이 현장 가운데 상대편도. 억울하게 악인으로 몰리는 분들도, 아니 진실로 복음 안에 있는 자라면 내 안에 함께 하시는 주님 때문에 묻어갈 수있지 않을는지요~
분명히 주님은 이 사건 가운데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시고 계시는데...
진정 나의 마음은 어디에 빼앗기고 있는지~~
그리고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그 답답함 속에 은밀한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더 돈독해지는 은혜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더 깊은 사랑과 은혜를 누릴 수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사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을 전할 대상이 아닌,복음을 전하고 있는 나에게 늘~ 사도바울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니라 (고전9:27)" 이 말씀이 두려움으로 따라다니며 내모습을 보게 하며 그 모습으로 십자가 앞에 끌려나가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된답니다.
잠시후 이 시간들이 지나면 서로가 이 사건을 통해 은혜받은 주님의 은혜를 나눌수 있는 시간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이상규(IP:121.♡.211.217)
09-08-13 17:23
이번사건을 통하여 3가지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첫번째는 제가 반세기(50년)넘게 돈에 환장하고 살았다는겁니다.
돌찬치 상에서 돈을집은이후로 계속 돈돈돈.....하고 살고있읍니다.
지금고등학교 다니는 아들과 재수하는 딸이 있어서
10년정도는 더 돈돈돈...하고 살겠지요.
그후에는 노후 준비문제로 또 돈돈돈.....
죽을때까지 돈돈돈....할 놈이.. 그러나 그러나
십자가 피만으로 구원해 주심에 울었읍니다.
두번째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교인들과 복음을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ㅁ목사님만 복음을 전하셨지 조심스러워서(죄성 폭로로 자존심상함 혹은 마음의상처)
교인끼리 복음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지금ㅂ부터는 지혜롭게 복음전할수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바라겠습니다.
조금은 상처를 주고 소원해지더라도 말씀으로 교제하고 나누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악마의 마력이 어마 어마 하다는걸느꼈습니다.
말씀을 왜곡되게하고 상식도 이성도 통하지 않게 마비시키는 마귀의 능력을(?)보면서,
자기 백성을 악에 빠지지 않게,
눈동자같이 끝까지 지켜주심에 감사를드립니다.
사건사건들을통하여회개와 감사를주신 주님의권능을 찬양합니다.
아멘
이근호(IP:117.♡.135.184)
09-08-13 17:49
안집사님, 예수님이 피해자라고 한다면 왜 예수님이 피해자인지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체험되어야 그 이유와 원인이 규명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안 집사님에게 구타를 당했는데, 안집사님이 동네방네 다니면서 "얻은 맞은 것도 하나님도 뜻인데 그것도 모르고 그 사람이 얻어맞았다고 억울해 하니 진짜 억울한 사람은 예수님인데 왜 그 사람이 억울해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식과 같습니다. 성경에서 죄라고 하는 것은 두루뭉실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본인이 인정을 해야합니다. 회개한 유대인들은 십자가에서 분명히 했습니다. 우리가 메시아인 줄로 모르고 죽였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안집사님도 분명히 지적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오해로 인하여 마음 고생하신 분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심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성급했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안집사님 본인이 예수님을 어떻게 믿느냐와 상관없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철없이 할아버지의 수염을 잡아당긴 것에 대해서 할아버지가 너그럽게 용서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었으면 비록 철없던 시절에 행했더라도 할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은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철없이 한 행동이라고 정당화하면 그것이 바로 '자기 의 고수라는 겁니다.
그리고 김효은 집사님께 답변합니다. 교회란 내일이란 없습니다. '다음에 잘하지' 라는 생각도 실은 교회를 인위적으로 끌어가겠다는 안일함입니다. 교회 머리가 예수님이라는 말은, 우리가 아무 것도 생각하지도 말고 아무 것도 조치하지도 말고 방치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도리어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뭘 지시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순종하는 것만이 내일의 교회조차 여전히 예수님의 손에 맡기는 겁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재정적으로 장애가 일어나더라도 주님이 알아서 하신다는 말도 우리의 할 일을 소홀히 할 명분이 되지를 못한다는 말입니다. 아이가 학습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어려운 문제는 건너 뛰면 내일되면 주님께서 다 해결해 놓고 계시다고 여기는 것은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배워야 되고 깨달아야 될 것을 놓치는 바가 됩니다. 내일 일은 또 무슨 사건을 준비했는지는 예수님께서 퍼부어주실 것이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미 우리 손에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자꾸만 뒤 바꿔서 말씀하시는 분이 공개적으로 질의를 하니 그 진실을 밝혀주는 것도 목사의 할 일입니다.
김집사님의 견해는 이런 하나님의 지시와 업무를 해내가면서 늘 잊지 말아야 될 방향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로서 가해자가 피해자로 뒤바뀌버리고,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뀐 안목으로 교회 분위기를 몰고가는 것에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개적으로 묻는 분이 계시기에 계속해서 말이나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것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기 위해 전화를 수 차례하고 다른 분들도 수차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만 대화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서 대화를 막으신다고 여기고 김 집사님의 생각과 같이 나름대로 덮어나는 식으로 나가고 두 분 피해자도 그렇게 나갔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의 뜻에 의해서 사실을 밝혀야만 하는 계기가 제공되니 목사도 거기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안 집사님께서 김효은 집사님께서 막상 교회 참석하시고 예배 참석해 보시면 안집사님이나 김효은 집사님이 생각한 것처럼 교인들 모두다 오로지 주님의 복음만 사모하십니다. 감사하게도 말입니다. 심지어 조장로님 가족들 까지도 아픔을 다 잊으려고 하십니다. 정상을 찾아가십니다. 오로지 복음만 사랑하시려고 합니다. 이처럼 직접 참석하시는 것 하고 상상하는 것 하고는 천지차이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화를 끊지 말고 직접 만나서 애기하면 김효은 집사님 말씀대로 문제거리가 안됩니다. 악마의 작전은 이것입니다. 십자가 피 앞에서 문제거리도 안되는 것을 문제거리로 만들어 복음의 광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교회 안 나와도 간섭하지 말라. 우리가 바깥에서 어떤 욕을 해도 상관하지 말라. 우리가 특정 교인을 악하다고 비난해도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된 일이니 관여하지 말라"는 식으로 복음에 대한 관심사에게 이탈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직접 와보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제가 이러면 안집사님 또 이렇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내가 바깥에서 무슨 소리하든지 간에 다 하나님의 뜻인데 왜 이 목사가 거기에 걱정하느냐.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복음을 가리는 짓이 아니냐"라고 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이것입니다. 바로 그 걱정과 근심이 목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김효은 집사님께 생각하시는 내용은 고맙게도 이미 우리 교인들 속에 다 박혀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과거는 잊고 누구를 갋지도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지난 낮설교 때하는 말처럼 "죄없는 자가 돌을 치라. 누구를 비판하는 그 사람도 똑같이 비판받을 것이다"에 마음 속으로 다들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자꾸만 시비를 거는 것에 대해서 제가 답변할 책임이 있다는 이것도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일임을 김효은 집사님이나 안집사님은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안영미(IP:58.♡.206.28)
09-08-14 11:01
1. 목사님은 장부상의 숫자가 맞지 않는 것이 중요했는지 모르지만(세상에서는 그 숫자를 중시 여기겠지요), 저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사실로 은혜받았습니다. 즉 맞지 않는 장부이야기를 들으면서 8년간 교회재정을 재정을 맡았던 장로님의 짐으로 미루어 두었다는 나의 죄성을 마주하며 회개가 나오더군요. 목사님, 우리가 복음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면 그 맞지 않는 장부를 8년간 재정을 맡았던 그 장로님의 잘못으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8년 동안 당회가 무엇을 했었는지, 재직회가 무엇을 했었는지 회개하여야 옳지 않았는지요. 그래서 회개의 설교가 목사님에서부터 나오고, 회개의 목소리가 장로님들에서 나오는 것이 옳지 않았는지요. 저는 장부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공론화하려했다는 소문과 주일날 교회내의 스산한 분위기를 견뎌내면서 여러 날을 기다렸고, 또 드러내면 곤란할 수 있겠다 싶어 우리가 회개해야 한다는 단상의 글도 올렸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도, 그리고 두 분의 행보나 당회의 움직임에서도 회개하는 모습을 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마을 질문 코너에 질의를 했습니다. 물론 재정을 맡았던 장로님은 흔한 이니셜 김씨를 지칭하는 K로 그리고 나머지는 다 무기명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글을 삭제하셨더군요. 십자가마을 질문 답변 코너는 어떤 곳인가요. 형식적 교회이기는 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을 보고 겪은 사람이 질문할 수 있는 곳이 아닌지요. 그런데 답 대신 목사님은 글을 삭제하셨더군요. 그 때 목사님이 ?? 파장을 생각해서 글을 삭제했다고 하셨고 그 파장이 8년간 재정을 맡았던 장로의 가족에게 미칠까 염려해서 삭제한 걸로 들어서 저 또한 제 글을 삭제한 것에 대한 경악함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장로님과 여러 집사님들이 협의해서 끝난 일이라는 말을 남편 편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목사님이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고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저의 답글에 이미 끝난 것으로 되어 있는 그 내용을 목사님 중심으로 십자가 마을에 낱낱이 드러내셨더군요. 그것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말과, 제가 교회일을 방해했다는 말로 정리해서 말입니다.
목사님 우리가 복음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라면 회개를 하는 것이 옳지 않았겠는지요.
2. 그 글을 올린 뒤 8년간 재정을 맡았던 그 장로님께 전화를 해서 글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삭제를 요구하지 않으셨으니 그 분은 개의치 않는다고 볼 수 있지요.
목사님, 그 글이 없는 상황에서 목사님의 포장적인 글을 대하려니 조금 불편합니다.
이왕 목사님이 그 사건을 다 밝히셨으니, 제 글을 질문코너에 올려서 하나하나 지적하심이 어떠신지요. 제가 올리면 고쳤다는 오해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 글을 가지고 있는 다른 분에게 글을 올리라고 해서 차근차근 되짚어 보는 것이 어떠실런지요.
3. 시시비비의 정확성을 위해서 여기저기 글을 올리지 말고, 한 곳에서 시시비비를 가려 보는 것이 어떨는지요.
강구만(IP:118.♡.241.91)
09-08-14 12:48
예수님이 안영미 집사를 위해 있는것이 아니라 안영미 집사가 예수님을 위해 존재 해야 마땅 합니다.골1:16 나를 위해, 사람들 앞에 사는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사는 자가 되십시요.갈1:10
직접 사건의 내용을 설명해도 경솔한 글의 내용에 대해 사과는 커녕 오히려 일방적으로 왜곡되어 삭제된 글을 다시 올리기만 고집 하는것은 옳고 그름 ,사실과 허위의 관계없이 악한 의도가 있다고 밖에 볼수 없습니다. 교회 밖에서 시비를 거는것은 성도의 할일이 아닙니다. 성도가 할일은 주님께 엎드려 경배 하는 것 입니다. 거기에 나의 자존심이나 존재감은 찾을수가 없습니다.주님의 억울하심을 증언하는 자가 성도 입니다. 회개란 예수 믿지 않았음을 고백 하는것 입니다.
이근호(IP:117.♡.140.46)
09-08-15 12:14
안집사님, 교회란 천국에 갈 사람이 오는 것이지 교회에서 활동할 사람이라든지 활약할 사람을 모집하는 곳이 아닙니다.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는 이유는,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과연 나는 죄인이며 과연 나는 예수님의 공로만을 찬미하고 경배하려 하는가?"는 점 뿐입니다. 숱한 사람들이 교회까지는 나왔지만 천국행은 포기했습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자신이 말씀 앞에서 전적 죄인으로 드러나 남들의 행위들이 눈이 안들어올 정도의 사람이 되는 것에 겁을 집어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기 보다는 남들 앞에서 꿇리지 않는 사람이며 자신의 행위가 정당함을 뽐내고 싶어서 교회 나왔다가 티끌만큼은 자존심이 상하는 사태를 하나님께서 일으키자 보란 듯이 당당하게 교회 출석을 끊었습니다. 즉 근본적으로 교회가 뭔지 조차를 모르고 교회 나왔다가 튕겨버린 겁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복음만 증거되어야 하고 제직회의 주제는 오직 '피복음이 제대로 전파되고 있는지 여부'와 관련된 사항만 의논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전부가 아니라 천국이 전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교회가 무관심할 때는 제직회를 열어서 "우리가 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지"를 생각하는 모임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따라서 1. 인간은 부족하지만 교회 구석구석 예수님의 공로가 어떤 작용을 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2. 인간은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도와주심이 얼마나 큰 지를 알아야 합니다.
3. 왜 어떤 이들은 복음을 들어도 복음에 관심두기 보다는 자기 자존심과 자기 기분과 자기 의를 여전히 포기못하는지를 알아보는 겁니다. 얼마나 교회를 우습게 보면 그런 세상적인 태도를 피에다 섞어 넣으려 하는지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 교회는 8년간 예배 시간 내내 제직회를 해왔고 당회를 해왔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결같이 모두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의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바보같이...
하지만 여전히 저는 신뢰합니다. 지금보다 더욱더 바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전달되게만 하신다면 그 속에서도 교회까지만 왔다 가는 사람이 아니라 천국까지 가야될 분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직 구름타고 재림 안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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