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2009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제 9강
(녹취)2009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제 9강
이름 : 이장우(IP:220.84.179.115)
2009.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환상속의 그대(다니엘 스가랴) 제 9 강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첫날엔가 그런 이야기 하였지요! 저분은 어떠한 분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볼 때에 그 기준이 무언가 하면 예수님의 몸은 우리의 몸과 같은 몸을 지니고 있는데 왜 예수님의 몸은 우리의 몸과는 다른 몸으로 작용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 몸이 두 개입니다. 두 개의 몸인데 바람과 바다가 우리에게는 순종하지 아니하는데 예수님의 몸은 어떤 몸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면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몸의 특수성을 증거 하였습니다. 이것을 학문적으로 말하면 언약이 집중되는, 언약의 중심이 되는 몸인 반면에 우리의 몸은 언약의 중심체가 아닙니다. 언약의 혜택은 입지만 언약의 중심체는 아닙니다.
스가랴를 하면서 스가랴서가 무언가 하면, 우리가 세워놓은 성전은 성전이 아닙니다. 그것은 언약의 중심이 아닙니다. 진짜 언약의 중심은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몸에 의해서 세워질 성전이 언약의 중심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몸이 새롭게 나타나는 몸입니다. 그런데 새롭게 태어나는 몸이 무엇이냐 하면 다윗 언약에 준하여 태어나기에 그 이름을 ‘순’이라고 합니다.
‘순’하면 여러분은 무엇이 생각납니까? C.C.C 가 생각이 나지요! 신문에 작은 칼럼도 나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 언약에 의하여 예언된 어떤 몸이 오게 되면 그 몸은 특수한 몸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지만 이 몸이 등장함으로 어떤 결과나 나타나는가 하면 우리 몸은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흙덩이입니다. 소멸되어야 하고 사라져야 하고 두 번 다시 기억해서는 안 될 흙에서 흙으로 돌아갈 빠이빠이 할 그런 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육이라고 하고 예수님의 몸을 놀랍게도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영하면 무엇이 없다고 합니까? 육체가 없는 것을 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 의하면 영의 개념이 그런 개념이 아니라 육체가 있는데도 예수님의 몸을 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몸과 관련되어 나오는 성령을 영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몸을 분리해서 이야기 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집에 가셔서 스가랴서를 볼 때에 스가랴서는 이러합니다. 다윗 언약은 아무리 성전이 깨어져도 하나님의 언약은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현재 금식하고 하는 것은 인간의 몸이기에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는 것은 우리 손으로 못하고 하나님의 다음 조치에 의하여 다윗 언약은 이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언약을 이루시는 조치가 사람은 못하기에 누가 동원되는가 하면 천사가 동원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새순이 동원되어서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천사가 동원된다는 것은 시간개념이 처음과 끝이 함께 다 동원되는 것입니다. 항상 일곱 개가 나오는데 일곱 개 하나하나가 처음과 끝을 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몸 중심이기에 항상 내 중심으로 반경 몇 킬로를 생각하고 며칠을 생각합니다. 이런 기준으로 저는 이렇거든요! 저는 이런 인간이거든요! 불과 어제 있었던 기억들을 가지고 말합니다. 기억을 말하니 어제 한시 넘어서 어느 집사님과 이야기 한 것이 생각납니다. 죽으면 기억이 없어집니까? 그래서 제가 답변했습니다. 안경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제 아내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최일규 집사님이 수고한다고 눈 나쁘면 안 된다고 안경을 하나 맞추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에 책 찾아 보다가 주머니에 넣는다는 것이 그만 덜렁 잊어버렸습니다.
그 안경을 그냥 산 것이 아니라 안경점에 가서 20분 넘게 눈에 대하여 조사를 하고 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경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정보가 안경점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안경점에 전화를 해서 제 정도가 거기에 남아있지요? 그러니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경테 아무 것이나 해서 안경 만들어 놓으면 내가 돈 들고 찾으러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최일규 집사님이 이 안경을 공짜로 해 주었는데 결국은 돈 주고 샀습니다. 얼마나 억울한지! (청중 ㅎㅎㅎ)
예수님 안에서 창세전부터 우리 정보가 우리는 잊어버려도 우리의 몸과 함께 날아가 버려도 주님의 예정 안에는 그 정보가 들어있어서 골백번 죽어도 골백번 죽어 또 죽어도 그 정보가 있는 한 골백번 또 살아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야곱이라는 그 정보에 따라 야곱에 합당한 몸이 입혀지고 에서의 몸은 지옥에 가서도 에서에 합당한 몸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이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악한 정보는 악한 정보의 몸을 가지고 선한 정보는 선한 정보의 몸을 입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대목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이 불교처럼 여러분이 업보를 쌓은 것이 여러분의 몸이 아니라 창세전에 주님께서 가지고 있는 정보에 따라서 마땅히 그렇게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업보를 쌓으려고 하지 말고 성화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것들은 껍데기이며 허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나옵니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이기에 우리가 죽어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생명 되시는 분의 솜씨가 얼마나 좋습니까? 죽은 인간 또 살리면 되지 않습니까!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다시 살려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시간에 ‘할 게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냥 사세요! 어떻게 살면 됩니까? 기양 사세요! 사시면 되는 것입니다. 살면서 아하 창세전에 나의 정보가 이렇게 되어 있구나! 살면서 나는 누구를 만나게 되고 누구와 결혼하게 되어 있고 이혼하게 되어있고 정보가 다 되어 있습니다.
그런 몸은 기초가 우리 몸이 아니라 창세전에 예수님 안에서 예정 되어 있기에 그런 몸이 빨리 나오기를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 내 죄 때문에 언제 돌아가십니까? 좀 기다려 봐라 열두 제자 데리고 내가 땅에서 별세해야 하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별세에 대하여 의논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의 근거는 마련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 인물이든 미래인물이든 십자가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시간이라는 것이 역사로 보면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을 묵시로 잡아 당겨버리면 십자가에서 나왔던 것들이 스펙트럼처럼 흩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먼저 계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다니엘 7장에 보면 무엇이라고 합니까? 영원한 보좌에 계신 분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그 분의 이름이 누구입니까? 인자라고 합니다. 다니엘이 먼저 계신 분이 구름타고 오시는 분을 인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인자가 구름타고 오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어이 인자야! 인자는 구름타고 와야 인자인데 너는 지금 옆에 구름도 없는데 왜 호칭을 인자라고 하느냐?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서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기에 곧 구름타고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곧 구름타고 올 것이라고 하십니다. 왜? 인자이기 때문입니다. 왜? 다니엘이 예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구름타고 온다고 한 그 사람도 미친놈이 되고 그것을 믿는 우리는 더 미친놈이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우리는 그런 입장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모를 것은 바람과 바다는 우리에게 순종하지 않지만 예수님께는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밑줄을 쳐야 합니다. 예수님의 몸은 우리의 몸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가랴서는 ‘순’ ‘새싹’을 말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올라오는 새싹 다윗언약에 의하여 다윗이 올라오게 되면 그분이 올라와서 우리를 구원하는데 그분이 할 일이 많습니다.
그분이 와서 할 일이 무엇이냐 하면 성전을 만드는 것입니다. 성전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제부터 어렵습니다. 이 성전을 만드는데 아까 심 목사님과 이야기 하면서 이 대목이 나왔습니다. 성전을 만드는데 흩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스가랴서에 보면 그 내용이 나오는데 2장 6절에 보면 성전을 만드는데 자기 백성을 온 천하에 흩어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씨앗처럼 흩뿌려 놓고 그 다음에.... 이것을 말로 하니 어렵습니다. 그림으로 그리겠습니다.
제가 모든 스가랴서는 시간의 처음과 끝을 다 보여준다고 하였지요! 이것을 공간적으로 하면 사방 전체를 다 덮는 것입니다(커다란 사각형을 그려놓고). 그러면 여기서 다윗언약에 속한 자기 백성을 전 세계에 흩어버리는 것입니다(그 사각형 안에 점을 여러 개 찍어놓음). 사방 끝이라고 하니 체조하면 마루운동이 있습니다. 그것 생각하면 됩니다. 마루운동은 한쪽 구석에서만 움직이면 점수가 안 나옵니다. 2점밖에 안 나옵니다. 그런데 온 마루를 뛰어다니면 9.1이 나옵니다.
이렇게 흩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간적으로 처음과 끝을 공간화 시키는 것입니다. 천년을 하루 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를 흩어버리시고 이 흩어버린 후에 무엇이 등장하는가 하면 뿔들이 등장합니다. 그것이 1장 8절에 나옵니다. 옛날 이스라엘을 포위하여 이스라엘을 힘들게 한 이방들이 흩어진 백성들을 여전히 공격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십니다. 천사를 보내셔서 누가 내 백성을 건드려! 하면서 자기 백성 치는 자들을 천사가 치는데 이것을 바람 부는 것처럼 하시기에 이것을 바람이라고 합니다. 이 바람을 일으키는 주체가 무엇이냐면 네 분의 천사입니다. 이 천사는 구석구석 일하는데 이것을 순찰자라고 합니다. 다니엘도 스가랴도 그러합니다. 이것을 순찰자라고 합니다. 순찰할 때 구석구석 가로등 없는 곳 까지 다 들어갑니다.
순찰자가 일하게 되면 여기에 순이 올라옵니다. 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그림으로 끝냅시다. 순찰자가 활동하면 ‘순’이 올라오는데 다윗 언약에 의하여 이새의 줄기에서 나옵니다. 이새가 누구냐 하면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의 뿌리에서 순이 올라오면 이 ‘순’은 무슨 정기를 받는가 하면 창세전에 예정된 다윗 언약이 해야 할 모든 기능을 이 ‘순’이 혼자 받게 됩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는가 하면 제일 중요한데 성전을 만들어 버립니다.
성전을 만들려면 촛대 있어야 하지요! 감람나무 있어야 하지요! 성전 있어야 되지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자기 백성을 포로로 이미 흩어 놓았기에 이들을 성전으로 만들려면 ‘전 우주의 성전화’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2~30년 전에 북한에 무슨 운동을 했습니까? 전 인민의 군대화 운동이 있었지요! 이처럼 전 우주의 성전화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어느 구석 어느 지구 우간다 알라스카 어느 동네인들 성전 아닌 곳이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보통 성전은 깨끗하다. 거룩하다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스갸랴의 성전은 무엇이냐 하면 누가 내 백성 건드려! 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온 세상 구석구석에 임하기에 하나님의 거룩함이 작용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성전화를 이룬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스가랴 끝났지요! 그만큼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그림하나 그림으로! 그러면서도 이 ‘순’이라는 분이 목자로 다가가서 흩어져 있는 백성들을 하나로 모으면서 전체를 심판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교회라고 생각하기에 하나로 모은다고 하면 어떤 개념입니까? 마치 우리 십자가 마을이 가야산에 이렇게 한곳에 모으듯이 어떤 공간에 모아야 그것이 하나의 모임이 되고 교회가 된다고 합니다. 스가랴는 그렇게 하지 않고 흩어진 그대로 전체를 성전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전을 보면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성전이 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인간들은 전 우주의 지옥화 심판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마루 운동하는 곳과 같은 이 공간 전체와 시간 전체를 하나님께서 누가 내 백성 건드렸어! 하면서 돌아다니면서 치는 과정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인 것입니다. 그 일에 활동하는 하는 자가 천사입니다. 그 배후 주동자가 누구인가? ‘순’입니다. ‘순’그러니 순하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윗 언약, 다른 말로 하면 창세전에 예정된 뜻, 생명책에 정보가 입력된 자만 건진다는 다니엘서의 책에 기록된 자만 건진다는 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구원되었다면 어 구원되었네! 하지만 그 밑에 작용은 굉장히 많습니다.
이제 이성희 집사님이 내시경 이야기를 하는데 간호사가 와 가지고 “자 마취 들어갑니다.” 하는 순간 잠을 잔 것뿐인데 나중에 끝났습니다. 하는 소리 듣고 깨어보니 시간은 지나갔는데 간호사가 말하기를 그렇게 소리 지르고 고함을 질렀다고 하는 것입니다. 맞지요? 내가 대충 비슷하게 옮겼지요! 그런데 기억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발광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깨어보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가랴에서 우리는 구원하는 모습은 할 게 없는 모습으로 만듭니다. 예수 믿었으니 이제 제대로 살아라! 전에는 성령이 없어서 율법을 제대로 못 지켰는데 이제 성령이 왔으니 율법을 지켜야지! 말씀이 폼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쉐마! 쉐마! 하면서 들으라. 이스라엘아 한 것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니 지켜야지! 왜 그렇게 못하는 것입니까? 이미 그런 것은 다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런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결국 최종적인 성전은 위에서 관리되던 성전이 아래에서도 오직 하나님과 천사에 의해서만 관리될 뿐입니다. 우리 힘으로 주물럭거려서 하나님의 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피에다가 무엇을 섞지 마세요! 우리의 행함을 섞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언약대로 그 언약도 ‘순’아닙니까! 우리가 아니라 특수한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 특수한 분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노시는 분이 아니라 마취 들어갑니다. 하면서 마취제를 집어 넣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성희 집사님은 마취제가 들어갈 때에 발광을 했답니다. 발광은 제가 한 말입니다만 지금 오늘 예수 믿는 우리가 발광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고함 처음 지릅니다. 아직 목도 안 쉬었고 여력이 있으니 고함을 지릅니다. 우리가 가야산에서 마치고 내려가 보세요! 목회 하는 사람은 또 주여! 내 교회 키워주옵소서! 우리 교회 부흥케 하옵소서! 이렇게 발광하고 또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 잘 되게 하시고 앞집은 망하게 하옵소서! 할 것이고, 교사하는 사람은 제발 우리 아이들 말썽 부리지 않게 하시고 엄마들이 학교 와서 봉투나 챙겨주고! 아이들은 공부 안 해도 점수 잘 나오게 해달라고 발광할 것입니다.
우리는 마취된 상태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하셨잖아요! 너희는 너희가 하는 짓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구원은 시켜줄게 왜? 마취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몸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억지를 부립니다. 왜 바람과 바다가 우리에게는 순종하지 아니하느냐고 합니다. 네가 무언데? 너는 허상인데! 그런데 몸은 있지요!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몸은 내 것이라고 여깁니다. 나이 60만 넘어가면 몸이 귀찮습니다. 이것 안 아프게 누가 좀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만날 허리 툭툭 치고 있고 서경수 목사처럼 그러니 이 몸을 좀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나이 좀 더 들면 온 관절 머리 어깨 무릎 발 다 아픈 것입니다. 류마티스에 치통까지!
오발탄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는데 치통 때문에 괴로워하는 서민이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러니 세상의 문학이나 드라마가 무엇이냐 하면 악마의 마취에 의하여 발광하고 헛짓하고 있는 속에서 자력으로 안식을 얻고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발광 몸부림이 모든 드라마와 문학이며 노벨 문학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드라마도 아니고 소설도 영화도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을 이미 선악과 따 먹고 독약을 마시고 맛이 가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창세전에 정보가 입력된 사람은 어떤 힘과 노력으로도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를 이 다윗의 언약을 통해서 다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맡겨만 주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 카 서비스처럼 주께서 다 하시고 나중에 꿈 깨어 여기가 어딥니까? 깨어보니 거기에 이미 앞섰던 분들이 박수치면서 수고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에 나오지요 허다한 증인들이 환영한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죽고 나서 그곳에 가면 수고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이 노아야 방주 만드느라고 고생 많았지! 아브라함아 아들 바친다고 고생 많았지! 모세 너는 재벌 2세 자리 공주의 아들 자리 포기하느라고 고생이 많았지! 이사야는 톱으로 켜인다고 고생이 많았지!
하지만 믿음은 네가 믿은 것이 아니라 믿음이 미리 너를 이끌어서, 믿음의 주체되신 예수님 속에 있는 능력이 나와서 마취 속에 있는 우리를 기어이 창세전에 있는 정보대로 맞추어 만들어내신 것입니다. 그 안경을 가지고 면류관이라고 합니다. 그때는 이 안경이 필요 없습니다. 이 안경 주님이 쓰시지요! 하면서 면류관을 도로 주님께 반납하며 사는 것이 천국의 모습이지요!
그 어린 양의 보좌에서 물이 나오지요! 스가랴 13장을 봅시다. 1절입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무엇이 나옵니까? 샘이 나옵니다. 이 비슷한 이야기가 독일동화에 나옵니다. 독일 동화에는 이렇게 각색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 나그네가 목이 말라서 갔더니만 그 마을에 노인들은 없었다. 다 젊었다. 왜 그런지 몰랐는데 그 마을의 분수를 떠먹었더니 먹을 때 마다 3년씩 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번 떠먹으면 6년이 젊어지겠지요!
그런데 그 동화에서 무엇을 빼 먹었습니까? 죄와 더러움 때문에 죽는다는 요 사실을 빼 먹고 마신다는 행위만 집어넣으면 누구든지 젊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성경이 아니라 동화입니다. 십자가는 반드시 걸림돌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들어올 때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복음이 들어올 때 반드시 너의 몸은 죄로 인하여 악마가 들끓고 있다는 정체를 밝혀주면서 복음이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때 맞습니다. 저는 개입니다. 죄인입니다. 하면 그 사람에게 스가랴 13:1절에 나오는 이 샘이 용서라는 효과를 주는 것입니다. 이 샘을 마시는 자는 어떤 죄라도 용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인자의 개념이 무엇입니까? 다니엘서에서 70이레의 마지막 때를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영속이라는 말이 나오지요! 영원히 구속함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70이레 마지막 이레 때에 기름부음 받은 자가 와서 영원히 용서받는 일이 일어납니다. 또한 그 구원받는 자는 이 역사 끝 날까지 죄인으로 남는데 왜 그런가하면 용서가 되기 때문입니다.
스가랴 13장에서 죄를 씻어주는 샘이 나오는 것은 여기서 예루살렘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합시다. 다윗언약이 오게 되면 무엇을 만들게 됩니까? 성전을 만들게 됩니다. 성전이 만들어지고 나면 마을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이 성전 중심의 마을이 조성되는 것이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에스겔 제일 마지막에 보면 ‘여호와 삼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골로 가면 커다란 돌멩이 입구에 세워서 산촌 2리 이렇게 나오지요! 그 돌멩이 속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여호와 삼마'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기에 계시다는 것으로 에스겔은 끝납니다. 에스겔은 무엇이냐 하면 성전이 깨어지고 물이 흐르는 새 성전 만들고 그 성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성전을 중심으로 새로운 촌락 빌리지가 있는 것입니다. 크로스 빌리지가 아니라 빌리지가 있고 그 빌리지가 있을 때 거기에 하나님이 영원히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신학자들과 학자들은 여호와께서 최종적으로 계시는 곳이 여호와 삼마인데 왜 자꾸만 임마누엘로 보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임마누엘은 심판의 의미이지 함께 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임마누엘이 무엇이냐 하면 저는 이제 죽었다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임마누엘의 최종실현은 임마누엘이 아니라 임마누엘을 거쳐서, 심판과 분류작업을 통해서, 창세전에 예정된 그 정보에 따라서 사랑 받을 자는 사랑 받고 미움을 받을 자는 미움을 받는 자로 분류하는 작업을 임마누엘로 하시고 여호와 삼마로 끝내시는 것이 코스입니다.
이런 장면이 에스겔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 9장에서 62이레에 보면 성전 만들고 나서 해자, 해자는 여자 이름이 아니라 성을 짓고 나서 방비책으로 수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해자와 거리가 조성이 될 것인데 성전만 박살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촌락도 박살이 나면서 그 다음에 전 세계로 흩어지는 것입니다. 흩어진 백성을 모아서 성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그 구석구석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을 스가랴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윗언약을 통하여 목자가 들어올 때에 신약성경에서 스가랴서를 인용한 유명한 대목이 있습니다. 스가랴 9:9절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그런데 아직 예루살렘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을 만들면서 이미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이것은 무엇을 의식하느냐 하면 악한 목자 다윗 자손도 아니면서 사이비, 가라, 이단 양을 약탈하기 위하여 목자도 아닌 주제에 목자 흉내 내는 인간들과 극히 대비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하여 일부러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나귀타신 겸손하신 왕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우리는 겸손해야 하는데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겸손하신 왕을 원하겠지만 영웅을 원하는 자는 영웅을 원할 것입니다. 유유상종인 것입니다. 그래서 스가랴 13장에 보면, 왜 이렇게 성경을 왔다 갔다 하느냐 하면 스가랴 다니엘도 그렇지만 시작과 끝을 층층이 쌓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주제를 말할 때 앞에 있는 주제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층에서 끄집어내고 아래층에서 끄집어내다 보니 시간상으로 나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묵시이다 보니 책 자체가 그런 순서로 되어있지 않습니다. 층층이 끄집어내라는 것입니다. 물론 내 변명일 수도 있습니다.
13:4-6절에 보면 “그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이런 식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섯 자로 이야기 하면 ‘부족합니다(목소리를 저음으로 깔고).’가 되는 것입니다. 금식하는 표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스가랴가 이 내용을 금식일 날 씁니다. 그런 금식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금식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금식을 하나님이 받아주신다면 인간은 애초부터 흩어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흩어놓으셨다는 것은 그곳에서 가만히 벌서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것도 내가 찾아 갈 테니 너는 아무소리 하지 마! 그런 뜻입니다.
그들이 흩어졌다가 예루살렘에 모여가지고 여기가 예루살렘이니 여기서 금식합니다. 스가랴서에 보면 그것을 불태워버립니다. 사방에서 너를 포위하여 불태운다고 합니다. 물론 예루살렘을 불태우는 자들을 천사가 와서 사방 끝까지 추적하여 그들의 뿔을 잘라버리는 환상은 지난 시간 끝에 보았습니다. 대장장이나 전기톱 가지고 뿔 자르는 작업을 동서남북 사방에서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으로 할 수 있다든지 사람의 행함으로 할 수 있다면 애초부터 창세전에 그런 구원의 계획은 없습니다. 사람이 무언가 행하게 되면 그것이 업이 되어 나에게 마일리지로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일리지가 차라리 없으면 쉽게 벗어나는데 그것이 있으면 그것마저 포기하기가 굉장히 힘이 듭니다.
개만 되면 되는데 개에서 소, 소에서 점잖은 목이 긴 사슴 이렇게 올라가니 사슴에게 너 개라고 하면 듣는 사슴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사슴 되려고 20년 동안 수고 하였는데 개라고 하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개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것이니! 그런데 왜 그렇게 했느냐? 어이 천사 간호사! 예! 마취주사 놓아라! 마취 중에 자기 되고 싶은 것이 되려고 발광하고 있지요! 깨어보니 이미 구원받았는데! 누가 구원시켰어요? 이렇게 발광하고 있는 나를? 나 다윗의 자손 ‘순’이다. ‘순’이요? 그래 다윗의 줄기에서 나온 ‘순’인 내가 했어! 이것이 스가랴입니다.
그러면 나를 괴롭힌 자들은? 그들은 천사를 보내서 작살을 낸 것입니다. 마지막 최후의 전쟁에서 구석구석 다 작살을 내는데 여기에 보면 납이 나옵니다. 환상 가운데 납이 나오는데 그 납 부분을 한번 봅시다. 스가랴 5장입니다. 환상 가운데 보는 것인데 이 환상이 시작부터 끝까지 다 나옵니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에바가 나오지요! 에바는 한말 두말 하는 곡식을 담는 용기입니다. 그 에바 안에 한 여인이 앉아있는데 그것이 악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납으로 그 에바의 뚜껑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악을 에바로 덮어 버렸기에 어떤 인간도 자기 힘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어떤 인간도 죄의 심판에서 자기 자력으로 나올 인간이 없다는 환상을 스가랴 5장에 나오는 환상입니다.
그다음 6장에 보면 하늘나라 경마장에서 경마하다가 쫓아온 네 말들이 색깔별로 나옵니다. 경마하는 사람들이 보면 어느 말에 걸까 그럴 것입니다. 이 말들은 사방 전체에 하나님의 앞으로의 계획을 전파하는 천사입니다. 교재 한번 봅니다. 교재 10페이지 보시면 척량 줄을 잡은 환상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새롭게 만들기 위하여 기존의 예루살렘을 작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스는 척량도 되고 새로 만드는 척량도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4장에 보면 아까 말했지요! 하나님의 ‘순’이 나타나면 성전을 만들고 성전은 전 세계에 전 우주에 성전화를 만들기 위하여 순금 등대, 7등잔, 7관, 2감람나무가 등장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천사가 답하기를 하나님의 눈, 기름발린 두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전체 성전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5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온 천지를 돌아다니면 저주를 퍼 붓는 일을 하나님의 천사가 합니다. 그 다음 6장이 방금이야기 한 것이 됩니다. 이런 환상 하나하나가 이 세상 처음과 끝을 다 층층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재 11페이지에 보면 그 에바에 있는 여인이 무엇이냐 하면 땅에 가득한 죄악, 여인의 악입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도 이 납으로 된 뚜껑을 열고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7장을 봅시다. 여기에 보면 금식을 합니다. 그런데 금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금식을 하면 무슨 효과를 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옛날에 하였습니다. 사무엘 당시에 블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에 금식하여 효과 본 것을 흉내 내지만 이미 흩어진 자들에게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 당시 예루살렘 자체가 가짜인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이 안 되는 이유가 율법을 어겼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양을 도로 찾습니다. 그 찾는 작업이 나옵니다. 8:6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라고 합니다. 왜 기이한가하면 늙은 노인들이 앉아있는데 군인 같지도 않은데 승리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갑옷을 입었을 때는 건장한 군인인줄 알았는데 막상 벗겨보니 늙은 노인네인 것입니다. 무슨 이런 노인네가 승리하였는가? 정말 기이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노인이 승리하였습니까? 어떻게 제가 한 것이겠습니까? 이런 것이 기이한 일입니다.
8:13절에 보면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이 말씀이 이 그림하나로 다 되지요! 하나님의 백성을 흩어지게 해 놓고 그것을 공격하게 해놓고 주님께서 ‘순’을 개입시키시면 저주가 축복된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촌락이 형성되며 여호와께서 영원히 거하시는 곳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금식이 무엇이 됩니까? 8:19절에 보면 금식이 필요 없고 금식이 잔칫날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금식일 날 무엇을 하셨습니까? 자기 제자들과 잔치를 하였습니다. 아니 신랑이 있는데 웁니까? 신랑이 없을 때는 울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랑이 있는데 왜 우는 것입니까? 이 말씀도 스가랴서의 이 말씀을 인용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9장에는 세상의 영광이 나중에는 다 없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9:13절에 보면 유다 자신을 군대로 군사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헬라 자식을 치게 하고 용사의 칼이 되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승리할 때에 형통한 그런 환경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0장에 의하면 약속의 땅이 가지고 있는 효과, 이런 것이 참 어려운데! 애굽 땅이 나쁩니까? 애굽 사람이 나쁜 것입니까? 답변 해 보세요! 우리는 애굽 사람이 나쁘다고 하지요! 성경은 애굽 땅이 나쁘다고 합니다. 땅에서 저주가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살면서 신앙생활 잘하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땅을 버려야 합니까? 그 땅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나오는데 스가랴서는 출애굽 개념 더하기 성전입니다.
이것이 다윗언약으로 되는 것입니다. 땅 자체가 물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땅에 살아남기만 하여도 저절로 복을 받는 그런 옛날 약속의 땅을 재현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그분 덕분이지요!
10:9-10절을 보세요! 그들을 자녀와 함께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돌아오면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했지요! 흩어진 백성들을 끌어 모으는데 옛날에 약속의 땅으로 끌어들이는 그 동일한 능력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천사에 의하여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10:8절에 보면 무엇을 붑니까? 휘파람을 불지요! 휘파람을 분다는 것은 우리들끼리만 아는 신호입니다. 고구마 감자 이렇게 암호를 주고받으면 같은 요원이 되는 것입니다. 휘파람을 불면 불신자는 미쳤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은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서 아! 스가랴 10:8절의 그 휘파람 하면서 그 목자에게 모이는 것입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만 들을 것입니다. 그것을 세자로 말하면 휘파람!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아나니! 그것이 마지막 때에 분류작업 하는 것입니다.
양은 양대로 염소는 염소대로 분류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전에 예정된 정보대로 안경의 정보대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 안경은 천 원짜리입니다. 또 잊어버리면 안 되기에 그러나 잊어버려도 그 정보가 남아 있기에 다시 만들면 됩니다. 영원히 세상이치가 그러합니다. 이 말에 안 웃는 것을 보니 개콘을 안 보는 사람입니다.
11장에 보면 새로운 목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목자와 약속의 땅, 예수님만이 참 목자! 그것을 위하여 가짜 목자가 어떠합니까? 5절입니다.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가짜 목자와 참 목자를 구별하기 위하여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참 목자는 가치가 너무 떨어졌습니다. 시장에 내어 놓았더니 노예의 몸값인 은 30냥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룟유다가 예수님 팔아먹을 때를 예언한 그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하게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안 믿었을까요? 이 사람들은 스가랴를 신약의 십자가의 복음의 관점에서 볼 줄 모르고 인간이 문자를 해독하는 그 당시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자기 시간관을 가지고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스가랴를 보니 스가랴에서 나오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 이미지와 맞지 않으면 메시아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 최고의 해석 전문가가 누구인가 하면 사도바울이 사도가 되기 전에 사울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니 이 율법은 지킬만하다고 해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고 율법에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 성경을 볼 때에 나는 못 지킨다. 나는 죄인이다. 지킬 수 없다고 본 것이 아니라 하면 된다. 이것은 지킬 수 있다면서 잘 지키고 있었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입니다. 십자가에 죽고 난 뒤에 예수님의 남은 자를 또 죽이는 것은 예수님과 연결된 하나이기에 계속하여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일조한 것입니다. 결국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율법의 행함을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두 번 죽이고 세 번 죽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세상 끝 날까지 영원히!
그래서 이 성경 스가랴를 볼 때에 나는 지킬 수 있다고 보게 되면 메시아가 코앞에 있어도 못 알아봅니다. 그러면 이 성경을 보면서 무얼 합니까? 나는 못 지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이런 식으로 보게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왜 흘렸는지를 알게 됩니다. 주님이 다 이루셨지 우리는 못 지킨다는 것을 알고 주님의 피가 우리에게 도달되어 그것으로 우리가 구원받는 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목자가 스가랴 11:13절에 은 30냥에 팔리는 그 목자입니다.
12:8절입니다. “그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거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천국이지요! 그 다음 10절에 보면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천국을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십자가 이야기가 또 나옵니다.
그 다음 14:8절에 물이 나옵니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왜 이렇게 둘로 갈라지는 것입니까? 그 만큼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이 둘로 갈라지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인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둘로 갈라지는데 둘로 갈라지는데 14:4절에 보면 감람산이 나오는데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버립니다. 이 말씀은 이미 죄 지은 상태에서는 죄는 죄대로 따로 분류해서 지옥을 만들고 이쪽은 이쪽대로 천국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예수님은 손을 털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삼분의 이는 저주를 받아야 하고 삼분의 일은 남은자로서 연단을 받으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13:8-9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제가 말을 많이 하였는데 딱 이 그림 하나입니다. 흩어져서 고생 조금만 해라 그러면 내가 천사를 보내서 작살을 내고 너희들은 옛날 다윗처럼 여기서 천국을 만들어 주겠다. 모든 일은 다윗 언약으로 나오는 ‘순’이라는 분이 감람산에서 서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초막절이 나옵니다. 절기라는 것은 모든 공로가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버리고 주님의 공로만 바라보는 것이 주님의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초막절이라는 절기를 통해서 말방울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기록될 것이라고 합니다. 스가랴 14:20절에 나오지요! 거룩함이 하나님의 힘에 의하여 모든 구석구석에 다 미친다는 것이 스가랴서입니다.
그래서 스가랴를 한마디로 말하면 괜찮은 몸 하나 와서 우리 더러운 몸으로 이루지 못하는 그 에스겔 성전을 ‘순’이라는 이름의 그 몸 하나가 오셔서 그 분이 이 땅에서 겸손하게 나귀 타시고 고생해 가면서 결국은 악한 자는 악한자로 분류시키시고 구원받을 자기 백성만 건져낸다는 그런 이야기올시다.
다니엘은 인자라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분이 이 땅에 오셔서 다니엘 속에 들어가서 다니엘과 함께 있으면서 70이레 시간적 성전을-공간적 성전은 깨어져 버리고-시간적 성전을 그대로 이루어서 십자가로서, 돌멩이로 모든 세상을 박살내고 태산을 이루어서 인자의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 다니엘입니다.
결국 정답은 무엇이냐 하면 네 자입니다. 질문은 기도하고 나서 받겠습니다. 결론은 ‘할 게 없다’ 이유는 모든 정보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태어나기 전부터 계획 잡혀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몰랐습니다.
부모에 의하여 태어난 줄 그것까지만 알았습니다.
먼 먼 미래에 우리가 이미 태어나기로 작정해서 태어난 줄 몰랐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시작도 알았고 우리의 끝도 영원히 주님과 함께 거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살아가는 모든 것이 날마다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사실로 인하여
오늘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