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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녹취]2009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8강자유게시판히브리서

[녹취]2009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8강

이름 : 이종호(IP:124.216.3.145)

시작하겠습니다.

교제 8페이지 밑에서 6째줄 봅시다. ‘내가 다가가는 미래가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가 메시아로 인하여 현재에 덮쳐지기를 원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전이 공간개념의 성전에서 시간개념의 성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이 70이레이고, 따라서 다니엘은 성전을 짓기 위해서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70년을 통해서 원점, 곧 무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객지에서 죽습니다. 죽어도 다니엘은 성전을 아는 사람입니다. 70이레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성전이기 때문에 미래가 우리에게 덮쳐 오는 것입니다.

시간인 70이레가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가?

다니엘 9:18에 보면 주의 긍휼이 주의 이름이 있는 성소에서만 나오고 다른 곳에서는 안 나온다는 말인데,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소를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 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단 9:18)

주의 성전이 있으면, 우리가 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성전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단 9:19)

그런 다음에 가브리엘이 와서 지혜와 총기를 주는 것이 70이레입니다. 24절에 70이레의 마지막 장면이 나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단9:24)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니엘은 성전을 달라는데, 갑자기 인물이 오게 됩니다. 이것을 70이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70이레의 마지막 장면은 성전이 무엇으로 바뀌게 됩니까? 70이레가 마감되었다면, 부동산인 성전이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인물이 내려옵니다.

인물이 내려올 때, 그 인물의 명칭에다가 다니엘에게 예언한 그 예언이 어깨에 얹혀서 내려오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 자체가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전 안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예수님은 성전 자체가 제물이 됩니다.

그 말씀이 히브리서에 나옵니다. 예수님 자체가 성전이고, 예수님 자체가 제사장이고, 그리고 예수님 자체가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북치고 장구 치면서 사물놀이를 혼자 다 하는 격입니다.

이러한 성전중심으로 하시는 예수님의 인자로써의 기능이 시간의 성전화를 인물로써 구체화하고, 시간의 성전화가 이루어지면 더 이상 시간이 진행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마지막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는 마지막 시간이후의 묵시적 시간만 남게 됩니다. 예수님 영이 임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 나라가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아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에서 묵시적 시간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특징이 무엇이냐? 이미 인자가 몸으로 와서 십자가에서 언약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묵시적 시간은 항상 7단계로 처음부터 시작해서 층층이 7층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새삼스럽게 역사적 시간 순서로 분해하면 요한 계시록 해석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우리에게 적용될 뿐입니다.

조직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인자의 기능을 잘 모르고, 칼빈의 삼중 직인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로써의 기능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삼중 직은 성경에서 분명하지 않습니다. 왕과 제사장이 결합된다는 것은 멜기세덱 가문에 속할 때, 그 사람은 왕이요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과 제사장은 예수님의 몸 자체에서 하나로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성전이요/ 제사장이요/ 제물이 될 때. 이 세 기능을 섞는 것은 정말로 섞이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의 왕과 제사장을 섞는 것은, 같은 인간의 직종이기 때문에 섞일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전과 제사장과 제물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전은 부동산이고/ 제사장은 인물이고/ 제물은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섞임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이 집에서는 아버지이고, 회사가면 사장님이고, 교회가면 장로님이 되는 것과 같은 섞임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에 칼빈의 삼중직 이론은 잘못된 것입니다. 적어도 묵시세계라 하는 것은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것을 섞어 놓았기에 성령이 오지 않으면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직책상으로만 섞게 되면, 집에 가면 아버지/ 회사가면 사장님/ 교회가면 장로님이 되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된다는 것은 묵시라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선지자가 아니란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인자라고 하면서 적용시키는 것은 칼빈의 삼중 직이 아니고, 성전/제사장/제물처럼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될 수 없는 섞임이 이루어질 때, 주님께서 홀로 하셨다는 사실이 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의 이중직(왕과 제사장)은 성전이 사라진 후에 만들어 낸 유대인들의 자구책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나라가 망하여 국가가 없었기에 왕은 없게 되었고, 제사장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다윗 계통의 제사장들은 도비야 파와 오니아 파라는 두 파가 있었습니다. 두 파가 있어도 그들은 헬라라는 짐승 밑에 있는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바다에서 오는 짐승과 땅에서 오는 짐승이 있습니다. 그들은 큰 짐승 밑에 있는 작은 짐승일 뿐입니다.

그 제사장들은 돈만 알았습니다.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가 통치할 때, 오니아(Onias)3세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안티오쿠스가 오니아 제사장에게 돈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여 오니아의 동생인 야손(Jason)에게 거액의 돈을 받고 제사장직을 넘겼습니다. 3년 후에 메네라우스(Menelaus)가 안티오쿠스에게 더 많은 금액을 주고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제사장직의 직위는 매매할 수 있는 정치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큰 짐승인 안티오쿠스를 따라 제사장이 작은 짐승으로 흉내를 낸 것입니다. 거기서 유대교가 마카비 전쟁을 통하여 유지되었지만 작은 짐승에 불과합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 모습과 똑같은 경우입니다.

정치에 편승하여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생겨납니다. 누가 정치권력의 힘을 빌려서 자기의 종교적 파벌을 형성하느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그때부터 앙숙이었습니다. 그들이 헬라화 된 지경 내에서 유사종교인 유대교를 형성하는데, 큰 짐승인 헬라정부가 작은 짐승인 유대교를 키워서 주님을 잡아먹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에 앙숙이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동조한 것입니다.

성전이 없는 가운데서 그들의 종교를 유지하기 위해서 서기관들의 주석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전이 없어도 말씀 이야기하고 말씀 풀이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비판했었던 유대교의 전통과 전승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서기관들이 성경을 필사하게 된 것입니다. 필사할 때, 주석을 달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을 지키라는 성경을 필사하면서 안식일에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을 상세하게 주석으로 달게 된 것입니다. 어떤 법이 있을 때, 그 법을 이루기 위한 보조 법들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조법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한 정성으로 간주하여 전통과 전승으로 하나님 말씀처럼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서 예수님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에 보면, 성전에는 물이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성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항아리로 성전에 물을 퍼붓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무엇하느냐? 물을 퍼부으면 생명들이 사느냐? 그것을 법 지키는 것이라고 하느냐? 이것이 옳으냐?”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안 맞지만 수렴하는 것이다.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서 성전에 물이 흐르는 것을 인간들이 납득이 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라며 폼을 잡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미 완성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가 나오리라.”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당신은 누구시죠?” 예수님이 가라사대 “나는 메시아다.”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율법도 안 지키는 메시아가 어디 있느냐? 모세가 오면 당신은 죽어!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오면 네가 죽어!” 바리새인들이 말하기를 “이거 이단 아니야?” 그때에 예수께서 갈 길을 가셨다.

다음에는 성전에 가셔서 말씀하시기를, “여기가 무엇 하는 곳이냐?” 하면서 성전을 엎어버렸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반항하는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나를 환영하지 않으면, 돌들이 환영할 것이다.”라며 갈 때까지 갔습니다.

이때에 생긴 파들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외에 쿰란 공동체, 열심당원, 그리고 에세네파입니다. 똑같은 인간들입니다. 왜냐하면, 짐승을 닮아서 동질성으로 뭉쳤기 때문입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공동체 운동입니다. 자기들은 그 안에서 의인이라고 하는 운동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행함으로 의롭고 저들은 말씀을 안 지키기 때문에 우리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악한 자들이다.’라며 분리시킵니다. 그중에서 바리새인이 제일 낫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너희는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못 간다.”라고 했습니다. 더 줄여서 말하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하늘나라에 못 간다. 영원히~~~”

유대인: 율법에 ‘살인치 말라’고 해서 살인 안 했습니다.

예수님: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다.

유대인: ‘간음하지 말라’고 해서 간음 안 했습니다.

예수님: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

유대인: 맹세한 것은 지켰습니다.

예수님: 맹세하지 말라.

우리를 미치게 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유대인: 금식했습니다.

예수님: 머리에 기름 발라라.

유대인: 어떤 사람이 뺨을 때리는데요?

예수님: 왼편도 돌려대라.

유대인: 어떤 사람이 돈 빌려 달라는데요?

예수님: 거저 주어라.

이렇게 예수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다.

무리들: 어떤 사람이 옷 빌려 달라는데요?

예수님: 속옷도 주어라.

무리들: 예수님 당신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 비판하지 말라! 비판하려거든 네 눈에 들보를 빼고 남의 눈의 티를 보아라.

아무리 작은 들보라도 눈동자보다는 클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6-11절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좋은 것(성령)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제일 듣기 어려운 말은, “길이 있거든, 좁은 길로 가거라!” 갈수록 외로운 길이다. 처음에는 3명 가다가, 나중에는 2명이 가고, 결국에는 혼자 가는 길이다.

7장 15절 이하에는

예수님: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무리들: 누가 거짓 선지자입니까?

예수님: 열매를 보면 안다.

무리들: 열매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나더러 주여, 주여 외친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다.

무리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예수님: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래서 산상수훈의 결론은 ‘모두가 망한다! 그리고 망한 다음에는 구원받을 생각을 하지마라.’는 것입니다.

무리들: 그러면, 누가 구원 됩니까?

예수님: 내가 건져주는 사람만 구원된다. 나는 죄인을 부르려고 왔다.

무리들: 전부가 죄인인데요?

예수님: 전부가 죄인이지만, 내가 필요한 죄인만 건져준다.

무리들: 그러면 우리가 율법을 지키면 안 됩니까?

예수님: 율법은 헌 부대이다. 새 포도주는 생명의 부대에 담아야지 율법의 부대에 담는 것이 아니다. 헌 부대에 담으면, 터져서 귀한 포도주만 버린다. 생명의 법, 곧 사랑은 사랑으로 받고 믿음은 믿음으로 받으면 된다. 행위 안에서 동원될 수 있는 모든 것은 철거해라.

이런 식으로 마태복음을 이어 가십니다.

무리들: 그러면 당신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예수님: 나는 이사야 53장을 이루려 왔는데, 너희들의 무거운 모든 짐을 하나님께서 내게 담당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이 이런 일을 하시려면, 필히 짐승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큰 짐승인 로마정부 말고, 큰 짐승의 하부구조로 있는 작은 짐승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도움으로, 특히 가룟 유다라는 제자의 도움으로 예수님은 무사히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수 있었습니다.이제 우리를 무사히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누가 도와주는 가는 가야산에서 내려가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스가랴에 보면 우리를 도와 줄 짐승들이 나옵니다. 스가랴의 마지막에 보면 두자로 나옵니다. ‘목자’ 무섭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거짓 목자는 너희들로 하여금 구원되도록 악한 역할을 하는 목자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지만, 목자가 아니면서 목자 행세를 하는 사람은 양을 등쳐먹는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양을 등쳐먹는 목자 속에 우리가 놓여 있어야 진짜 목자가 우리를 위해서 죽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가랴에 나오는 모든 환상들은 목자의 차별성, ‘어떤 목자가 진짜 목자인가? 왜 예수님이 진짜 목자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스가랴의 목적입니다. ‘성전이 깨어진 것은 목자를 잘못 만난 탓이다. 목자 때문에 너희들이 망했다.’는 것을 스가랴에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헤롯이 짐승다운 짐승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마태복음 2장에 헤롯이 헛짓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크리스마스 때, 동방박사가 조용히 예수님만 만나고 가면 되는데, 공연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됩니다. 별이 사라지게 되어서 동방박사가 주유소 같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길을 묻게 됩니다. 주유소 직원에게 묻고, 직원은 군수에게, 군수는 청와대에 묻게 됩니다. 청와대 보좌관 중에 종교담당 전문보좌관이 있었습니다.

헤롯은 헬라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좋아했던 에돔 출신이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동방박사의 출현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힘 있는 놈이 접수하러 왔구나. 어른이 되면 제거하기 힘드니까, 어릴 때 제거하자.’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에서 난다는 소리를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는데, 마치 별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대목이 이상합니다. 별이 어느 곳을 지명하려면, 형광등 3개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201호를 지명하려면, 너무 커서는 안 됩니다. 너무 크면 건물 한 동 전체를 다 덮게 됩니다. 너무 어렵게 말고 딱 집어서 어느 집이냐 하면, 별이 축소되어서 꼭 집어 주어야 합니다.

별이 사라진 다음에 동방박사가 헤롯에 인사하러 가려고 하는데, 꿈에 벌집을 건드려서 난리 났다며 그만 두라고 하십니다. 아기예수와 짐승과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별과 동방박사는 사라지게 됩니다.

아기예수는 야곱과 마리아에 의해서 애굽으로 도망갑니다. 문제는 아기예수가 애굽으로 가고 난 뒤에 헤롯이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아기를 모두 죽인 것입니다. 이것은 다니엘에서 원 주인은 없어지고, 대 환란 시대에 장차 메시아 때문에 환란 받는 그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 된 백성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장면이 묵시적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아기를 노친 짐승인 용이 화가 나서 여자의 후손을 상대해서 마지막 한 판 붙기 위해서 강가에 서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라는 것이 종결되었기 때문에 모든 역사에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시나리오 짤 필요 없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적인 성전이 인간성전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70이레라는 시간적인 성전이 인간적인 몸으로 바뀌려면 사전에 준비가 있어야 하고, 사전적인 준비의 용어가 인자입니다. 인자가 받은 계시이기에 인자가 그대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자라는 호칭을 가지고 70이레를 이루어서 자신의 몸이 성전이기 때문에, 성전으로 와서 십자가에서 짐승에게 잡혀서 파괴되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몸으로 부활된 성전은 어떤 몸도 손 못되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손을 못 된다는 의미는 부활된 성전인 몸이 용서한다고 하면, 어떤 행위나 어떤 세력도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그래서 로마서 8장에 보면 아버지가 자기아들을 우리 대신 내어 주었는데 어느 마귀가 도대체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송사하리요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심으로 어떤 환란이나 핍박이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서 어떤 권세자나 악마라도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이렇게 로마서 8장이 끝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스가랴에서는 왜 인간의 손에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는가? 우리 몸이 성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성전이 된다는 것은 세포가 성전이 된다는 말이 아니고, 성령이 새 언약대로 다루시면 70이레에 포함 된 그 성전이라는 말입니다. 다니엘에 보면 인자가 오면 인자만 오는 것이 아니고, 인자 앞에 인자가 무언가를 생산합니다. 인자에 속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로 생산하기 때문에 그 거룩한 백성을 위해서 인자가 먼저 왔고, 인자가 부활하면 첫 열매가 되고 우리가 둘째열매, 셋째열매가 되어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스가랴 4장6절을 봅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이것은 스가랴가 이야기 했지만, 그 전에 에스겔도 이것을 이야기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으로 만든 성전의 특징은 하나님의 신에 의해서 계속해서 물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스겔에 나오는 측정 하는 것은 공사가 아니냐?

측량을 측정할 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들어진 성전이 이미 확정된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에 나오는 성전의 치수는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그 치수대로 12지파가 거기에 소속되어 있고, 문마다 12사도의 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참여하게 될 리스트, 곧 구원받을 사람들의 숫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신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교제 9페이지 중간에 봅시다.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사51:12)

여기서 인자는 보통사람을 말합니다. 이 말은 이미 실패한 인간들을 의지하지 말라. 이 말은 주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으로 받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제대로 된 인간이 옵니다. 그분은 누구냐 하면 스가랴에서 다윗언약을 따라서 나올 어떤 분이라고 하는데, 다윗의 뿌리에서 나올 순(荀)이라고 합니다. 다윗 줄기를 하나의 나무로 봅니다. 나무줄기가 잘린 곳에서 새싹이 돋아나면, 그 새싹은 잘린 채 돋아나기에 죽어도 안 죽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반석이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교회의 머릿돌이 되고, 그 순을 믿는 사람도 죽어도 안 죽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절에 보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무엘하 7:14에 보면 다윗언약에 의한 다윗의 자손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삼하7:14)

다윗의 자손은 적어도 죽었다가 살아나야만 하는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에스겔이나 스가랴가 말하는 것과 일치되는 다윗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다윗의 자손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다윗은 그냥 무덤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을 믿으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죽었다가 살아 난 이름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을 맛본 후에는 모든 것이 상황 끝입니다. 더 이상 줄 것이 없습니다. 십자가 그것만이 마지막 최종계시를 다 준 것입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십자가 마을입니다. 부활이란 것은 십자가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를 확대 시킨 것입니다.

교제 9페이지 밑에 봅시다. 본론. 말 탄 사람들의 비유에서 도입구: “내가 이 날 밤에 환상을 보니” 환상이란 것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 수 없고 그냥 주어지는 것입니다. 홍마, 화석류나무, 자마, 백마가 스가랴 1장8절에 나옵니다. 화석류라는 것은 석류나무입니다.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이 저주를 복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입니다. 전환시킬 때, 먼저 제거작업을 하는데, 순이 나기위한 평토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1:12에 보면, 노하신 지 칠십년이 되었습니다. 스가랴 시기가 B.C 520년경인데,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짓지 않고 머뭇거릴 때 입니다. 그래서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금식을 했는데, 사기로 한 것이라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성토작업을 해야 한다고 천사가 와서 말한 것입니다. “내 주여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답변이 세상에 보낸 순찰자, 하나님 말씀의 선포자라고 했는데, 선포는 너희들이 70년이 되었다. 하나님이 직접 제거작업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비유가 4 뿔, 4 대장장이입니다.(1:18-21)

내가 눈을 들어보니 4 뿔, 4 대장장이가 있어서 “이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유다와 예루살렘을 흩어지게 만든 뿔, 그 뿔을 자르러 온 기술자라고 대답하십니다.

유다를 건드리는 놈, 곧 다윗언약을 건드리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비록 유다백성이 잘못 된 것은 맞지만, 그래도 이방인들이 건드리라는 것은 아니기에 하나님은 유다백성을 건드린 이방인인 뿔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비유는 측량 줄 잡은 사람입니다.(2:1-13)

내가 눈을 들어보니 측량 줄 잡은 사람이 있어서 “그는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하고 물으니, “유다와 예루살렘의 폭과 길이를 측량한다.”는 것입니다. 목수가 왜 측량합니까? 새로 짓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언약은 끊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집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손으로 다윗언약을 존속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비유가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선 여호수아입니다.(3:1-10)

1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기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사탄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와는 아론지파입니다. 원래 중심적인 지파가 두 개 있는데, 유다지파와 아론지파입니다. 유다지파는 왕이 되어야 하고, 아론지파는 대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 두 기능이 잘 돌아가면, 이스라엘은 거룩을 생산해서 죄 있는 자도 용서받는 그러한 기계가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언약입니다. 다윗언약은 왕 하나 잘 만나서 모두가 복을 받는 왕 체제입니다.

2절에 보면,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입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사탄이 붙었는데, 하나님이 사탄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무엇을 잘못해서 책망을 받습니까? 사탄은 여호수아가 선악을 알기 때문에 악한 존재라며 구원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하나님께 여호수아를 고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다윗언약을 등장시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언약의 혜택을 입은 사람에게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새 옷을 입고 사탄 앞에서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특징은 선악에 의해서 고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자신이 우리를 고소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정죄치 않겠다고 하시는데, 왜 우리가 우리를 정죄합니까? 왜 우리 속에 있는 기제를 작동시킵니까? 그래서 괜찮다는 소리를 들을 줄 압니까? 그런 것을 반성이라고 하죠? 반성은 칸트가 잘 하죠, 여러분은 반성하지 마시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선악과 가지고 또 나를 책망했습니다. 또 기죽어 살았습니다. 주께서 주신 것이 있는데, 그것을 귀한 줄 모르고 내 뜻대로 안 된다고 또 내가 강탈 부렸습니다. 라고 하는 식으로 자책하는 것은 우리 주님을 슬프게 하고, 다윗언약으로 보내준 십자가의 은혜를 무산시키는 것이고, 주님의 십자가를 얕잡아 보는 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어떠한 남루한 사람이든지, 어떠한 잘 난 사람이 오던지 간에 그 사람은 모두 불에 그슬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잃어버린 옷 한번 끄집어 내어보세요”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 받은 옷 한번 입어 보세요. 잘 입었죠? 그러면 집에 갑시다.

그 옷만 자랑하시고 다른 것 자랑하면 안 됩니다. 그 옷이 왜 필요한지 압니까? 그 옷 밑에 있는 여러분은 더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윗언약으로 옷을 입혀 주셨기 때문에 여러분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행함의 세상이기에 그런 소리가 공장기계의 소음에 묻혀서 안 들립니다. 이야기 하나하고 이번시간을 마치겠습니다.

대구에 있는 서문시장에 수련회 간식으로 땅콩을 사러 갔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성경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를, ‘장사하는 사람이 행함의 세계인 어둠의 세계에서 저렇게 성경을 보고 있다가 불교신자가 지나가면 사겠느냐?’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로써 속으로 책망했습니다. ‘영업시간에는 성경을 안 봤으면 좋겠다.’

아마 그분이 아침에 성경 3장 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2장만 보고 1장 안 봐서 벌 받을까봐 자신을 정죄해서 스스로 자신을 벌세운다고 한 장 더 읽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될 수 있으면 성경을 안 봐서 불교신자에게 안 들키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책을 보지 않아도 ‘불교신자가 와도 주님의 은혜구나! 무엇이든지 감사하다!’

항상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이 비록 성경을 보지 않아도 주께 영광을 돌리는, 받은 것에 감사하고 되돌려 줄줄 아는 그러한 성도입니다. 이번시간 마치겠습니다.

첨부파일 : 시작하겠습니다.hwp (44.5K), Down:28

이종호(IP:124.♡.37.46)

09-08-12 10:48

서경수목사님께서 리모델링 해주셨습니다...죄송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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