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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녹취]2009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 제7강자유게시판다니엘

[녹취]2009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 제7강

이름 : 서경수(IP:116.37.101.7)

09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7강 (녹취: 최형중 목사)

시작합니다. 수련회가 끝날 때 쯤 되면, 뭐가 어떻게 정리되었는가? 딱 하나가 정리된 것이 있어야 수련회 값을 하거든요.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또렷하게 떠오르는 거나 남는 것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소용없는 수련회잖아요.

우리가 다니엘서를 하면서, ‘할 게 있다’와 ‘할 게 없다’가 대립되어 나옵니다. 하나님은 할 게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어요. 하나님이 하시니까 할 게 없다고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나온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는 행함이 있다. 할 게 있다고 우기는 그런 세력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하면,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하면, 다니엘에서 이거만 떠오르면 돼요. 깜짝 생일 파티인데, 친구나 직장 동료의 방에서 생일 파티를 열면서 그 주인공의 오피스텔에 자기들이 문 따고 들어가서 불 다 꺼놓고, 꽃 장식부터 해가지고 그 모든 소품과 케익 준비를 다 해 놓고,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거예요. 그러면 주인공은 ‘아이, 자식들, 선배가 생일인 줄도 모르고, 참, 생일 차려 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 나 혼자 술이나 마셔야지.’하고 문을 여는데, ‘생일 축하합니다.’하고 폭죽을 탁 터트리면 갑자기 여기에서 장(場)이 형성되지요.

나는 세상에 나 혼자 밖에 없다고 여겼던 것이 얽히고설키고, 어떤 보여지는 많은 엮어짐 속에서 어떤 관계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인자가 등장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다니엘이 보여주는 깜짝 쇼입니다.

나는 나밖에 없어. 나는 내 몸밖에 없어. 이렇게 여겼던 것이, 나를 형성하기 위해서 많은 세력들이 이미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그만큼 깔려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나 혼자, 자기 할 게 있다. 자기 할 게 있다에 몰두해 버리니까 오히려 이러한 주변 사람에 의해서 받쳐져서 오늘날 ‘나’라는 인생이 생겼다는 것을 놓쳐버린 거예요.

놓쳤는데, 하나님은 다니엘을 통해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혈혈단신. 믿을 사람 아무도 없는 그런 객지에 가서 오히려 다니엘이 대장 노릇을 하더라는 겁니다.

만일 여럿이 도와줄 때에는 어떤 행함을 가지고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할 것도 없는 다니엘이 도리어 할 것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과 부러움을 사는 그런 깜짝 이벤트를 다니엘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16세기 서양철학 이후에 주체라는 것이 데카르트에 의해 발견되면서 그 때부터 주체가 발견되면서 민주주의가 그때 나와요. 자본주의와 더불어서 민주주의가 발전되면서, 민주주의는 결국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세상입니다.

주변에 어떤 장이 없어요. 그래서 내가 내 혼자 사는데, ‘할 게 있다. 할 게 없다.’를 계속 자기에게 퍼 부으면 결국 자기가 기대하는 대로 된다는 식으로 21세기까지 왔어요. 이건 다니엘하고는 정반대죠. 그런데 그것은 바로 행함 책에 있는 것으로 지옥 가는 것이고, 할 게 없는데 책에 기록된 대로 이렇게 주어질 때, 이것이 바로 다니엘서가 말하는, 우리가 수련회하면서, ‘아하, 장이라는 것이 우리를 받쳐주고 있었구나. 나는 신앙생활을 나 혼자 하는 줄 알았더니만 그것이 아니구나. 좋은 의도든, 나쁜 의미든 누가 도와주지 아니하면 안 되는구나. 우리는 신앙생활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뒤에서 받쳐줌으로써, 장이 형성되면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장이 형성 될 때에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하면, ‘할 게 있다.’ 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뭐냐 하면, ‘우리는 할 게 있다.’라고 여기는 세력들. 우리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세력들을 다니엘 옆에 깔아 둬요. 깔아 두면 다니엘은 ‘그것은 아니잖아.’ 라고 하지요.

그런데 할 게 있다고 자부했던 이 사람들이, 뭔가 아쉬워서 자꾸 다니엘에게 물어요. 그러면 다니엘은 이 사람들에게 특별히 뭔가 관계가 나쁠 의도는 전혀 없어요. 그런데 외부에서 어떤 사건을 유발시켜 버리면 그 사건으로 하여금 다니엘과 주변에 연결되어 있는 이 세력들과의 확연한 질적인 차이를 보이는 되는 겁니다. 이것은 다니엘이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니에요.

‘내가 예수 잘 믿는 것을 내가 한 번 보여야지. 내가 빛과 소금인 것을 남에게 자부해야지.’이렇게 좀 나서지 마세요. 빛과 소금 한다고, 안 믿는 친척들에게 추잡스럽게 7만원씩 부조하지 마시고, 어떤 사건이 주어지게 되면 그 사건은 내가 의도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할 것이 없으니까, 내가 예수 믿는 것을 티내려고 하지 않았는데, 어떤 사건이 오면, 다급해지는 것은 저 쪽이 다급해져요. 저쪽이 다급해서 오히려 나에게 묻는 거예요. 우리에게, 성도에게 묻도록 그렇게 조치함으로 말미암아 성도됨을 밝히는 것조차도 할 게 없는, 그것조차도 나는 할 게 없었고, 주께서 조명시설을 깔아서 나로 하여금 할 게 없이 주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남들 앞에 밝히 드러내는 그러한 영역으로 여기에 돌입이 되는 겁니다.

쉽지요. 문제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깜짝 생일 파티. 이것 하나 기억하면 모든 내막이 드러나게 됩니다. 돼요.

그러면 제가 아까 시간에 ‘외부 사건’에 대해서 했는데, 할 게 있다는 사람들은 외부 사건을 찾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자기가 하는데 무엇 때문에 ‘신이시여!’ 하고 빌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데 외부사건이 주어지게 되면, 이것은 어떻게 나로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외부에서 주어지죠. 다니엘에서는 그 예가 뭔가 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잠을 자는데, 갑자기 요상하기 짝이 없는 꿈을 꾸는데, 기억이 안 나서 환장하지요. 이것은 자기로써는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럴 때 다급해서 다니엘에게 이야기하니까, 그 때 다니엘과 느부갓네살 두 사람 사이에 ‘할 게 있다, 할 게 없다’ 이것이 사건이 없으면 구분 할 것도 없어요. 구분 안 해도 돼요. 그런데 사건이 주어지게 되면 ‘너는 할 게 있다’는 식으로 살았고, ‘나는 할 게 없다’는 식으로 살았다가 확연히 드러나는 결과를 주기 위해서 외부 사건이 주어지죠.

그렇다면 ‘할 게 있다’ 측에서, 지난번에 뭐라 했습니까? 이것은 고정된 신상이지죠, 지난번에 했죠. 신상을 만드는 건데, 신상을 만듦으로 말미암아 다니엘 빼 놓고, 인자 빼 놓고 나머지는 반드시 확정된 힘의 골조라고 했죠. 골조. 골조공사. 인부들이에요. 인부들. 힘의 골조 공사에 돌입하게 되는 겁니다. 확정된 거예요.

그리고 돌아서서는 이 사람은 잊어버리죠. 왜? 이 사람은 할 게 많기 때문에. 이 사람은 옛날 꿈 생각 못합니다. 그 때에는 ‘야, 다니엘아,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라고 이렇게 예의상 멘트를 날리고 그것으로 끝나버려요.

다시 조용하게, 늘 생일일 수 없잖아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요. 그냥 조용하게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역시 다니엘도 그냥 공무원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아무 일 없어요. 그런데 이 골조 공사를 좀 더 세밀화, 상세하게 세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싶으면 또 다시 뭐가 생기는가 하면, 또 외부 사건이 터지는데, 이것도 느부갓네살이 전에는 꿈을 꾸고 기억을 못했는데, 이번에는 어떤 꿈인지 알긴 아는데, 주변에 있는 보좌관들에게 백날 물어봐야 시원한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시원한 해석이.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꿈을 꾸는데 해석이 안 된다는 말은 느부갓네살이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거예요. 왜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하면, 만약에 제가 꿈을 꿨다. 저를 속이죠. ‘아, 꿈은 꿨는데, 해석이 안 되더라.’ 할 때, 아무나 ‘목사님 제가 꿈 해석하겠습니다. 꿈 해석은 이렇습니다.’ 그러면 제가 뭐라고 합니까? 아무것도 기억 못한다고 해놓고 ‘이게 어디서 사기를 쳐’ 이렇게 나와요.

목사님들에게 교인들이 꼭 이런 심정이에요. 교인들이 ‘목사님 설교 들으면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돌아서면 잊어버립니다.’하면, 목사님들이 순진하게 그 말을 믿고, 석 달 전의 설교를 해 본다고요. ‘에이, 지난번에 했던 건데.’ 잊었다면서요? 나도 잊은 줄로 알았지요.

그러니까 지금 느부갓네살이 해석을 못한다는 것은 빈말이고, 온갖 해석을 다 끄집어내도 자기가 잠재의식 속에, 벡터 자리죠. 자기가 알지 못하는 어떤 움직이는 운동성 속에서 뭔가 일치되는 해석이, 마음에 쏙 드는 해석이 없었던 거예요. 자기 마음에 든다는 것이 아니고, 뭔가 자기가 표현이 안 되지만, ‘이건 아니다’ 정도는 아는 거예요. 그런데 다니엘이 해석하니까, ‘맞아, 그거였었어.’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꿈의 해석을 모른다고 해서 함부로 해석하다가는 나중에 들킵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애기를 낳았는데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는데, 제가 한두 번 안 속습니다. 그 말만 들으면 그 어떤 이름도 채용하겠다는 뜻인데, 막상 이름을 이야기하면, ‘어이, 마음에 안 듭니다.’ 그럼 이 이름은 ‘아, 그것도 마음에 안 듭니다.’ 그러면 어쩌라고?

그래서 교인들의 기도가 거짓말입니다. ‘주여 뜻대로 하겠습니다.’하고 찬송 부르면, ‘내주여 뜻대로’ 찬송가 불렀지요. 막상 뜻대로 하면, ‘그건 영 내 마음에 안 듭니다.’ 뜻대로 하라며?

이게 바로 아직도 자기 마음대로 할 것이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할 게 없다’가 성립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꿈 이야기가 다니엘 4장에 보면 나오지요. 다니엘 4장에 보면 거기에 해석이 나옵니다. 그 해석은 아까 있었던 힘의 골조, 금, 은, 놋, 철과 진흙으로 되어 있는 역사의 끝, 역사의 끝이에요. 그 기억이 안 나죠. 제가 분명 첫 시간에 했잖아요.

다니엘 1장과 2장 이 전부는 사실 그 이후에 그 어떤 계시가 있더라도 이미 시작과 끝이라고. 이미 역사 속으로 --- 묵시성은 좀 남아 있고, 그렇다고 이야기했죠. 여기 녹화되기 때문에 다시 생각이 있거든 보시기 바랍니다.

하여튼, 장이 있다.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주변에 조명을 켜 보니까 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뭔가 분주하게 돌아가요. 하나님에 의해서 분주하게 돌아가요.

사람이 저 스스로 열심히 하니까 주위에서 열심히 하는 것이 안 보이는 거예요. 자기가 열심히 하다가 낙담하니까, 그 때는 주께서 조명등을 켜주니까, ‘아, 지금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라는 옆에 있는 장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발견해봐야 3초, 또 불 꺼지는데.

또 ‘내가 열심히 할게’ 이렇게 나오잖아요, 내 인생 내가 만든다고. 안 되면 다시 조명등 들어오면, ‘아, 그동안 주변에서 도와줘서 되었구나.’ 또 다시 이것을 알고, 만날 깜빡 깜빡입니다. 남행열차에요.

자, 이걸, 힘의 골조를 세밀화 시키는데, 힘의 골조에서 힘의 원천이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상세하게 보여주는 해석이 외부 사건의 이름으로 다니엘을 통해서 느부갓네살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면 이것은 뭐냐 하면, ‘할 게 있다’의 왕초, ‘할 게 있다’의 세계, 행함의 세계의 왕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왜 나머지 그 사람들은 여기서 제가 두 번째 시간에 얘기 했죠? 동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짐승은 우리하고 친밀성이 있고, 친화력이 있다. ‘하면 된다.’에 왠지 내가 끌리고 당기는 거예요. ‘믿으라. 할 게 없다.’는 것보다는 ‘하면 된다.’가 훨씬 당기는 거예요.

왠지 동질성이 있으니까 나보다 더 으뜸이 되는 사람에 대해서 상당히 호감을 느끼고, ‘나도 언젠가는 되고야 말거야’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단 말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힘의 구조가 밑에 사람을 빼놓고, 힘의 구조를 대표할 수 있는 왕초가 어떤 사고방식이 있는지를 세밀화 할 필요가 있었던 거예요. 세밀화 하는데, 그 세밀화 하는 것이 뭐냐 하면, 먼저 느부갓네살이 자기 꿈 꾼 것을 이야기했죠.

꿈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무가 하나 자라잖아요. 높이가 하늘에 닿았어요. 그래서 온갖 새들이 와서 깃들면서 ‘그것참 풍요롭다’하고 있는데, 어디서 깡패 같은 순찰자가 날아오더니만, 전기톱을 가지고 밑동부터 잘라내기 시작하는데, 방금 풍요한 것을 봤다가, 방금 밑동채로 자르니까 그 허탈감이 상처가 되었어요. 이 느부갓네살이. 얼마나 허탈한지 꿈에서 잊을 수가 없죠. 그 허탈감을.

자기가 좋아하는 유명 가수, 특히 마이클 잭슨, 이런 사람이 주사를 잘못 맞아서 죽었다고 할 때, 평소에 마이클 잭슨이 좋아서 맨 날 뒤로 걷고, 뒤로 걷다가 자빠지고 하던 그 사람이 얼마나 허탈하겠어요. 자기 사는 목적을 잊어버린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꿈에 느부갓네살이 보면서 ‘야, 나도 저 나무처럼 저 하늘까지 닿았으면 좋겠다.’ 했는데, 그것이 그 꿈에 본 것이 끝이 아니고, 무서운 순찰자가 와서 그 나무둥치를 잘라버리죠. 그 다음에 15-16절에 보니까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두고 -- 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리라.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인생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리라.” 라고 자기 나름대로 꿈 꾼 이야기를 했단 말이지요.

이것을 설명해 달라고 하니까, 17절에 보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뭐라고 하는가하면, ‘네 행한 대로 안 된다. 어디 감히 너 마음대로 해. 너 혼자 사는 게 아니야. 생일 파티 혼자 하는 게 아니야. 이 세상은 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도대체 이 이야기가 무슨 뜻이냐고 다니엘에게 이야기 하니까,

여기서 일곱 때라는 것이 중요해요. 일곱 때라는 것이 뭐냐 하면, 일곱 때는 유를 무로 돌리는 기간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 일곱 때냐? 처음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무에서 일곱 때 지나서 유가 되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유가 되고 난 다음에는 뭘 잊어버리느냐 하면, 누가 일방적인 권위로 나를 만들었다, 내 안에 누군가가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잊어버려요. 요즘 아이들 같아요. 부모가 나를 낳고 길렀다는 것을 기억하는 어린 아이는 없습니다.

자식들은 다 자기가 뭘 해서 현재의 자기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부모가 키웠다는, ‘할 게 있다’에서 ‘할 게 없다’로 건너가는 자식 없습니다. 거의 없어요. 여지를 남기면 안 되겠다. 아예 없어요.

혹시 부모를 생각한다면 아마 하나님께 작용해서 일곱 때를 지난 사람입니다. 일곱 때를 지나 버리면 뭐가 되냐면 하면, 나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죠.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뭐냐? ‘나는 인간도 아니고, 그냥 짐승입니다. 그냥 소 떼라고 해도 그걸로 족합니다. 나는 개입니다. 나는 저주받을 인간 맞습니다. 주께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옵니다. 제가 뭐 할 게 있겠습니까? 다 주시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지요.’라는 것이 나를 만드신 하나남의 창조의 능력이고, 재차 창조의 능력이 발휘되게 되면 우리는 유에서 졸지에 무로 돌아가서 일곱 때를 지나게 됩니다. 없는 상태로 가게 됩니다.

없는 상태로 지나고 난 뒤에 보니까, 그게 16절인데, 일곱 때 지나고 보니까, 17절에 뭐라 합니까? ‘야, 진짜 내가 나무처럼 높아질 인간이 아니고, 주님께서 세상을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을 줄자에게 주고, 안 줄자에게 안 준다는 것을 제가 알았습니다.’라고 ‘할 게 있다’에서 뭐로 건너갑니까? ‘할 게 없다’로 잠시 건너갔죠. 누가? 느부갓네살이. 잠시 건너간 거예요.

그러면,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뭡니까? 외부사건이잖아요. 외부사건이 일어나봤자 며칠 안 갑니다. 다시 잊어버리고, 뭐로 갑니까? ‘나는 할 게 있고, 너는 할 게 없다.’로 다시 돌아가요. 하지만 이미 신상의 우두머리 되는 이 왕초의 정신은 바로 언젠가는 손 좀 봐야 될 자들, 어떻게 손 보는가 하면, 외부 사건에 의해서 손 좀 봐야 하는 존재가 되지요.

‘할 게 있다’를 극단으로 높였을 때에, ‘할 게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인데, 뭐가 일이 잘못되었는지, ‘할 게 있다’라고 우기는 악마적 요소가 발현 할 때, 이 악마적 요소는 외부 사건이 없으면, 이것은 영적인 세계가 안 되고, 그냥 왕이고, 신하고 그게 있어요. 그러나 외부 사건이 터져버리면, 여기에 갑자기 근본적인 무에서 나왔던 창조의 장이 형성 되죠. 이거 이해하시겠습니까?

나 혼자 산다고 여겼던 것이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도왔다는 영적인 세계가 뿜어져 나오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이 ‘할 게 있다’가 뭐를 노리는가가 이렇게 금에서 은, 은에서 놋, 놋에서 철로 옮겨가면서 점점 더 노리는 바가 구체화 돼요. 구체화 될 때 이 발 밑에 뭐가 있는가 하면, 돌이 날아와요. 발밑에 돌이 날아온다고.

하나님께서 여기에 있는 장들, 이것이 하나님의 인자의 나라의 장으로 바뀔 때까지는 이쪽에서는 뭐냐 하면, ‘뭔가 할 게 있어, 우리가 행하고 살아’라고 했던 그들이 노리는 것이 있어요. 점점 내려갈수록. 금에서 은, 은에서 놋, 놋에서 철로 내려가면서 점점 노리는 바가 있다면, 그 노리는 바가 뭐였던가? 나중에 봤더니 이것이 성전이었어요. 성전.

왜냐하면,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이 아무런 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있는 ‘할 게 있다’, 그러니까 언약이 없죠. 비언약적인 그런 상황에 둘러 쌓여도 이스라엘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내부에서 아무것도 힘이 없고, 할 게 없어도, 힘이 빠져도 주위에서 뭐가 형성되었는가? 이 장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도와주듯,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이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에 없는 데서 있게 하고, 없는 데서 있게 하고, 또 없는 데서 있게 하고, 매일 같이 성도에게 매일 없는데서 있게 하는, 우리를 매일 같이 살려주시는 그 능력이 있었기에 그들은 ‘할 게 있다’로부터 버틸 수 있었건 것입니다.

그럴 때 그들은 하나님의 아무것도 할 것도 없는 우리가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가? 그 하늘의 원천,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가 궁금했는데, 그 이유가 뭔가 하면, 하늘에 성전이 있어요. 하늘에 성전이 있는데, 그 성전이 그물처럼 내려오게 되면 지상이 성전이 되는 겁니다. 지상이 성전이 돼요.

그러면 지상의 성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매일같이 제사 드리잖아요. 그 제사가 뭔가 하면, 흠 없는 자의 희생으로 흠 있는 것의 어떤 저주가 주어지지 않는 그러한 시스템입니다. 흠 있는 자가 흠 없는 자의 희생 덕분에 흠이 있더라도 거기에 대한 합당한 저주나 징벌이 오지 않는 그러한 영적 장치가 제사입니다.

제가 언젠가 그런 이야기했죠. 뭐냐 하면, 기독교의 근본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목숨을 바친 것이 근본이고, 이게 시작이 돼야 한다. 신앙생활 오래하고, 목사쯤 되면 뭘 잊어버리는가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목숨을 바쳤다는 것을 잊어버려요. 그걸 잊어버리면, 뭘 잊어버리는가 하면 그 다음부터는 삐치기 선수에요.

‘하나님, 왜 내 뜻대로 안 해줍니까? 왜 이렇게 힘들게 합니까?’ 이게 삐친 거거든요. 자아가 퉁퉁 부었어요. 자아가 퉁퉁 부으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자아가 퉁퉁 부었으니까 자기 안에 자아가 가득 차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께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 말은 뭡니까? 우리도 뭘 바쳤더니만 보답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먼저 바친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 바친 것 때문에 구원받는 거예요. 바친 것 때문에 구원받는데, 우리는 맨 날 하나님께 바칠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 바친 것 가지고 잘도 즐기고 있어요. 하나님께 안 바치면 뭔가 죄 짓는 줄 알고 있어요. 하나님이 보기에 죄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너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 그 하나님의 비밀을 가리는 것 그게 바로 죄입니다.

왜 그 죄가 떠오르는가 하면, ‘할 게 없다’에 머무르지 않고, 자꾸 ‘할 것이 있다’로 가기 때문에, ‘할 게 있다’가 주께서 그냥 주신 희생을 흐릿하게 막습니다.

제가 아침에 목욕을 하는데, 유리창 밖에 풍경이 좋은데, 목욕탕 넓은 유리에 하얗게 김이 서려 있어요. ‘저게 없어야 밖의 멋진 풍경을 볼 텐데’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어떤 뚱뚱한 똥배 나온 아저씨가 물을 확 뿌리니까 유리가 깨끗하게 되었어요. ‘아하,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깨달았지요.

하루는 제 칫솔에 뭐가 끼어 있어서 어떻게 이물질을 뺄까 고민하면서 궁리하고 있는데, 제 아내가 와서는 툴툴 털어버리니까 이물질이 빠졌어요. 작용과 반작용으로 툴툴 털어버려요. ‘아하, 저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구나.’

여러분 쉽게 삽시다. 주님께서 목숨을 바쳐서 구원 받습니다. 새삼스럽게 보답할 필요가 없어요. 그저 준 것이나 잘 챙기세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안 귀하기 여기지기 때문에 자꾸 내 쪽에서 바치려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기에게 뭘 받겠습니까? 세금 받겠습니까? 세리와 창기를 천국에 보낼 때, 십자가 강도를 천국 보낼 때는 전부다 100% 예수님이 바친 것을 가지고 그들은 천국에 골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트클럽에 갈 때에 웨이터한테 잘 보여서 들어가려고 하지 말고, 주민등록증 보여주면 돼요(나는 미성년자 아니다). 그러면 들어가요.

‘할 수 있다.’가 빈번해지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목숨 바쳤다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게 돼요. 잊어버리고 그 다음에 삐치고, 짜증내고, ‘인생 왜 이렇게 힘들게 합니까?’라고 쏘아대고,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가해자가 됩니다.

그래서 이 골조 공사 밑으로 내려올수록, 성전에 대해서 아주 예민한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성전에 대해서 몰라요. 3번째 이야기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일 때 메시아로 죽인 것이 아니고, 일개 정치범으로 여겨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십자가에 못 박은 겁니다. 우리 보기에는 예수님이 중요하지만, 그 당시 다른 사람에게는 신문에 나지도 않아요. 신문에는 났겠다. 하도 유명하니까. 그러나 별 관심 없어서 곧 잊어버립니다. 그들에게는 별로 안 중요해요.

왜 로마 역사에 예수님이 안 나오지? 안 나올 수밖에, 안 중요하니까. 가이사랴 이런 인물은 잘 나오고, 안토니우스 연애하는 것은 나오지만, 예수 이야기는 안 나와요. 이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우리에게는 중요하지만.

따라서 ‘하면 된다.’는 이 바벨론 제국은 성전을 노리고 공격한 것은 아닙니다. 노리고 공격 안 하고, 뭐냐 하면, 자기들끼리 예선전, 준결승전, 결승전을 해요. 제일 먼저 예선전은 뭐냐 하면, 바벨론 다음에 나온 나라가 바사입니다. 느부갓네살, 다리오, 벨사살 다음에 바사라는 나라가 나와요. 이 바사가 바벨론과 예선전에서 이겨요.

바사나라 바벨론을 이기니까 기분 좋지요? ‘야, 나는 역시 세구나. 나는 강하구나’ 이렇게 뻐긴단 말이지요. 이번에 금메달 딴 중국 수영 선수 이름이 뭐죠? 장린이죠. 그 사람 소감이 뭐냐 하면, ‘엄마, 내가 수영을 이렇게 잘 할 줄은 나도 몰랐어.’ 자기가 자기에게 감동하는 거예요. 바로 바벨론 대제국을 꺾는 보람이 뭐냐 하면, 내가 이 큰 제국도 이길만한 힘이 있는 줄을 몰랐다고 자기에게 감탄하고, 자기에게 매료되는 겁니다.

이걸 흔히 세상에서는 자신감이라고 하죠.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런데, 이 바사가 바벨론을 칠 때 꼭 이 밑에 바벨론 밑에 나왔던 이게 꼭 선배를 존중 하면서 선배를 꺾음으로써 선배보다 더 세다는 것을, 자기 우월감을 나타내겠죠. 이게 예선전입니다. 다음은 준결승에 들어가죠. 준결승전은 바사하고 헬라하고 붙어요. 그래서 헬라가 이겼습니다.

헬라 다음에는 로마가 올 건데, 이 헬라가 내부에서 메이저리그가 벌어져요. 메이저리그가 헬라 내부에 4명의 왕이 있는데, 다니엘에 나와요. 리그전을 해서 이긴 두 팀이 결승을 벌입니다.

상위 두 팀이 남았어요. 남쪽에 있는 톨레미, 북쪽에 있는 셀루쿠스라는 두 팀이 남았어요. 톨레미를 SK라고 하고, 북쪽에 있는 것을 두산으로 봅시다. 처음에는 SK가 이겼어요. 초반에는 SK가 10연승하고 난리 났어요. 그건데 지금은 역전이 되었어요. 지금은 기아가 1등해 버렸어요. 삼성에게 3연승을 해서. 일단 기아는 뺍시다. 복잡하니까. 기아는 빼고

두산에게 붙어서 1.2.3 차 남쪽이 이겼어요. 이겼다고 좋다고 내려오면서 유다 나라의 섬들을 작살내는 거예요. 그런 성황당 정도밖에 안 되니까. ‘여기 금이 왜 이리 많노? 하나님 성전 섬기는 사람들 정성이 대단하네. 미안하다. 가져 갈게.’ 기분 좋다고 빼어가고, 졌다고 빼어가고. 또 이번에 두산이 이겼다고 좋다고 애굽 치면서 한 번 올라가면서 하고, 졌다고 내려가면서 빼어가고, 다 빼어가고, 점점 더 성전은 황폐화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62이레입니다.

‘할 게 있다’가 본의 아니게 무엇을 자꾸 막아 버리는가 하면, 만약에 여러분이 땅 속에서 천국과 이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구원의 통로가 맨홀처럼 있다고 합시다. 이것이 천국과 통하는 세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여기다가 'Keep Out', ‘주의’ 여기에 빠지면 안 됩니다. 라고 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음주운전 하는 사람들은 그냥 슥 밟고 지나가고, 이게 반복되면 그곳에 맨홀이 있는지도 몰라요. 천국이 어디 있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이쪽 사건에는 다니엘에게도 외부사건이 안 일어나고, 선지자도 뚝 끊기고,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는 선지자가 없어요. 세례 요한 오기까지 뚝 끊어졌어요. 말라기가 BC 444년인데 그 이후에 선지자가 뚝 끊어졌어요. 그러면 뭐 하느냐? 그 나머지 빈 시간에는 하나님이 활동을 하는데, 금, 은, 놋, 철을 통해서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성전에 대해서,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할 게 없을 정도로 이 세상을 주제하는 그 은혜가 나오는 곳을 마음껏 유린하도록 그냥 두는 거예요.

그러면 유대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에스라, 느헤미야가 와서, 책망까지 들어가면서, 여기 바사 나라 왕 아닥사스다 같은 왕들의 도움을 받아서 어설프나마, 옛날 성전만큼은 안 되지만 성전을 세워가지고, 그래서 울면서 통곡하면서, ‘하나님이여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라고 좋아했던 그 성전.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하나님의 무관심 속에 사람들 손에서 망가질 때 그들의 심령이 찢어지죠. 그게 뭐냐 하면, 바로 70년 너희들이 약속의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들 손에서 만든 성전이 묵사발 될 때 깨닫게 하는 겁니다.

“봤지? 아깝지?” ‘예, 아깝습니다. 이 세상 깡패들이 다 동원되어, 그들이 뿔이 있는데 그 뿔로 들이받아서 다 부서졌습니다.’ “그래 너희들이 처음에 약속의 땅에 있었을 때 성전 창피하게 봤지?” ‘예, 창피하게 봤습니다.’ “이제 네 손으로 만들었다가 깨어지니까 기분이 어때?” ‘참담합니다.’ “그래, 그게 바로 너희들이 회개할 거리다.”

네 손으로 만든 성전이 깨어질 때 참담하듯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의 성전, 죄인들을 구원해 하기 위해 하나님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바쳤던, 어린 양을 받쳤던 그 성전이 소위 자기 백성에 의해서 무참히 박살 날 때, 이 하나님의 심정은 어떻겠냐? 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심정을 알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가장 사랑스러운 독자 이삭을 받치라는 것과 똑같죠. 바칠 때 누구에게 바치는가? 하나님에게 바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야, 네 자식이야? 분명히 해! 네 자식을 위해 하나님인 나를 버릴 거야, 하나님을 위해서 네 자식을 버릴 거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자기 자식을 하나님께 원대 복귀 시키지요. ‘이건 하나님 것입니다.’ 하고. 그래서 그 바친 이삭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에 별만큼 쏟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와중에 아브라함은 내가 할 게 없음을 알죠. 아무것도 할 게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서 그동안 쥐고 있던 것을 놔게 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일곱별, 다시 무로 돌아가는, 무로 돌아가 줘야 유에서 무로 돌아가고, 그 다음에 무에서 다시 유로 돌아갈 때, 그 유는 없던 것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목숨을 바침으로써 제가 천국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는 것을 증거하는 이유가 된다 이 말이죠.

그러면 무로 돌아가는 그 과정을 하는 것이 뭔가 하면 십자가를 날마다 성도에게 십자가가 보이게 함으로 말미암아 항상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며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숨을 바침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늘 깨닫게 합니다.

이게 바로 다니엘이에요. 그렇다면 이 밑에 내려오는 결승전에서 누가 이기는가 하면, 셀루쿠스의 가문에 속한 안토오쿠스 4세가 드디어 최종 승리를 합니다. 안토오쿠스가 승리해서 예루살렘에 내려갑니다. 자기는 이미 승자잖아요. 이미 시합에서 1등을 했어요. 1등 했으면 어디까지나 점령자가 됩니다. 점령자가 갔는데 아직도 성전 섬기고,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협조해라!’고 했는데도 협조를 안 해요. 그래서 안토오쿠스 4세가 뭘 하는가 하면, 일단 유대인들이 무엇을 의지하는가를 봤어요. 일단 율법, 그 다음에 안식일, 할례, 성전에 더러운 것 안 가져가기. 이 4가지를 뽑아서 이 4가지를 전부 다 반대를 해 버렸어요. 두루마리 불태우기 등. 마치 아기 벤 놈 배 차기,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 완전 놀부 심보죠.

그러니까 지금 안티오쿠스 4세가 뭘 믿고 그런 짓을 하는가 하면, 지금 자기가 저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라요. 모르는데, 자기의 통치권 밖에서 따로 노는 장난감, 유대교라는 장난감을 조사해 보고, 그 장난감을 부스면 내가 얼마나 센 놈인지, 너희가 믿는 하나님보다 세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이 빼앗는데, 그것이 뭔가 하면, 율법 가르치는 회당 없애 버리고, 성전에서 돼지 피를 바르고, 성전에다가 뭘 세우냐 하면, 독수리 날개를 세우는데, 독수리가 뭔가 하면 로마를 비롯한 이방 지역에서 섬기는 우상이죠.

그런 식으로 그것들을 세워놓고, 그리고 안식일을 비롯한 모든 제사를 없애버린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할 게 있다’와 ‘할 게 없다’의 역사적 관점에서 하나의 모델케이스가 돼요. 8장 14절에 보면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했어요.

그런데 혹독한 것은 바로 1290일 동안, 너무나 혹독하기 때문에 그 시기를 한 때, 두 때, 반 때, 42달 혹은 3년 반. 가장 혹독한 시기예요. 가장 결정적 시기예요. ‘악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보여주는 최고로 올라가는 시점을 한 때, 두 때, 반 때로 해가지고 그 결정적 시점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그 때에는 시간을 균질화 시키는 것이 아니고, 슬로비디오로 보여주는 거예요. 막 달려오다가, 한~ 때, 두~ 때, 반~ 때. 조심스럽게 단계를 나누어서 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이게 역사적인 모델케이스가 되는 거예요. 묵시가 확산 된다. 앞으로 모든 것을 할 때 이게 바탕이 돼요. 이렇게 할 때, 그것이 뭐냐 하면 바로 성전이 어떻게 해서 무의식적으로 이 세상 세력으로부터 무시당하는가를 다 보여줍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어떻게 되는가 하면, ‘성전이 없을 때 하나님의 언약의 연속성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그 문제입니다. 성전이 없는데,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그 출처가 완전히 막혀버렸을 때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겁니다.

다시 성전을 만들까요? 구멍 파서? 그 때는 공간으로 탈출구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에이, 예루살렘에 없으면 애굽에 만들지.’ 그래서 실제로 애굽에 성전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것은 가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건 가짜인거예요. 그러면 서울? 대구에다 만들까요?

이걸 공간적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만들어버려요. 시간적으로 만들어버리면 마귀가 따라와도 시간을 무슨 수로 바꿉니까? 아예 못 따라올 시간으로 옮겨 버리는 것이 바로 ‘다니엘아 네가 지혜를 깨달을 지니라.’ 할 때 그것이 바로 70이레입니다.

성전은 시간 속에 있는 성전입니다. 공간 속에 있는 성전은 찾아 갈 수 있지만, 부술 수 있고, 불태울 수 있지만, 시간 속에 있는 성전은, 시간 속에 있는 성전으로 가 버림으로 말미암아 동시에 우리 인간의 힘으로 성전 만들어서 성전 된다는 시대는 끝났어요. 이젠 우리 손을 넘어갔어요. 유대인이라고 해도 할 수 없어요. 끝나버렸어요.

그러면 그 성전은 뭐냐? 스가랴에 나오죠. 스가랴에 보면, 이건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나님의 신에 의해 세우지는 성전이 오는데, 여기에 사람의 손이 개입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면 누가 하느냐? 여기에 천사가 개입 돼요. 천사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꼭 티를 내요. 무슨 티? 꼭 이렇게 사람들하고 함께 안 놀아요. 환상을 몰고 와요. 천사가 올 때는 꼭 환상을 몰고 와서, 환상을 몰고 오면 인간들은 환상을 이해하지 못해서 꼭 물어요. 이것은 뭡니까? 이것은 뭡니까?

교재 한 번 봅시다. 9페이지 봅시다.

2. 본론

(1) 질문과 답변

환상 1) 말 탄 사람들(1:8-17)

다. 질문: “내 주여 이것이 무엇입니까?”

다음 10페이지.

환상 2) 4뿔, 4대장장이

다) 질문: “이것이 무엇입니까?” 계속 묻지요.

환상 3)의 질문에서도 “그는 어디로 가는 길이냐?” 라고 묻고

환상 4)에서 “무엇이 보이느냐?, 내 주여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이유가 뭡니까? 인간의 손은 끝났고 시간 속에서 성전이 때가 되면 내려올 거예요. 그때까지 고생을 좀 해야 돼요. 1290일 동안. 그래서 다니엘 마지막 12장 12절에 보면 뭐가 나오는가 하면 “기다려서 1335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공간에서 성전 찾지 말고 이제는 시간에서 성전 찾게 되면 그동안 공간적으로 성전을 박살 낸 자가 두 종류가 있어요.

교제 3페이지. 본론을 봅시다. “구약 선지자들의 글에 의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두 민족을 대상으로 다 이루어진다. 하나는 자기 민족에 대한 심판이요, 다른 하나는 이방 민족에 대한 심판이다.”

첫 번째 자기 민족 심판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주신 성전을 그들이 모독했죠. 그래서 자기 민족 쫓아냈죠. 두 번째 이방 민족 쫓아 낸 것은 뭡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그나마 포로 잡힌 자들이 세웠던 그 성전을 누가 박살냈어요? 이방 나라가 무심코 박살냈잖아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성전 건드리면 맞는다. 성전에 누가 있다? 주의 이름이 있죠. 달리 말하면 주의 이름 건드리면 저주 받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요? 주의 이름을 믿으면 되지. 주의 이름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2장에. 참 쉽죠.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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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