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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녹취]2009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 제5강자유게시판스가랴

[녹취]2009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 제5강

이름 : 서경수(IP:116.37.101.7)

09여름수련회(다니엘, 스가랴) 5강

다니엘 1장부터 12장까지의 전체 내용이 주제별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주제별로 나누어진 것이 환란. 그리고 앞으로 다니엘이 겪었던 환란은 인자가 인자로써 먼저 겪었던 환란이고 그 다음에 다니엘이 죽고 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어야 될 환란을 다니엘을 통해서 미리 예언했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대 환란을 다니엘이 이미 예언을 해 놓은 겁니다.

그러면 환란을 받아야 되는데 환란을 받으려면 환란을 제공하는 그러한 세력도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같이 등장해야 되겠지요. 제가 이것에 대해서 설명할 텐데 우선 그전에 질문을 하겠습니다. 다음 중 어느 것이 더 좋은지 말씀해 보세요. 1) 내가 안 죽는 것. 2) 하나님의 사명.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만약 하나님의 사명이 중요하다면 사명을 위해서 본인이 죽어도 괜찮다는 이야기입니까? 사람들의 모든 행동, 심지어는 성경 공부하는 것까지도 살겠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어쨌든 한 번 살아보겠다는 것인데, 살겠다는 사람에게 살 방법을 이야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재미 하나도 없어요. ‘우리는 그것에 대해 관심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살겠는지 그 이야기만 해 달라는 거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사명을 주고 이런 문제에 대해 저는 관심 밖입니다.’ 라고 이야기하기 쉽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명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걱정을 안 하셔도 됩니다. 이게 다니엘의 사명은 아니기 때문에. 무슨 말인가 하면, 이 다니엘이나 성경 전체에서 우리가 감당할 사명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데, 그 굿을 누가 하는가 하면 하나님이 스스로 하시는 거예요. 우리보고 그 숙제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숙제를 할 때 우리는 어떤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약간 겁이 난다는 것. 뭐 그 정도입니다. 아슬아슬하다는 것. 뭐 그 정도예요. 목사가 개척교회를 했는데 교인이 안 모인다는 그 정도.

모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데 우리는 약간 겁이 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자 굴에 던져지는 그런 아슬아슬한 정도. 때로는 불 속에 던져지는 그 정도입니다. 굿은 하나님이 하시고(불 속에 던지고) 떡은 우리가 먹으면 됩니다(불 속에서 걸어 다니면 됩니다). 그래서 ‘나만 살면 되겠습니다.’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굿하는 것이나 잘 보세요. ‘아하, 굿을 저렇게 하니까 내가 사는구나.’ 그러시면 되는 겁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 하나님의 파트너가 있어요. 파트너가 뭐냐 하면, 환란을 주게 되면 환란을 제공하는 주체가 있어요. 이것을 다니엘에서는 ‘짐승’이라고 하는데(사람이 아니란 말이죠) 이것을 가지고 ‘힘의 골조’라고 합니다.

느부갓네살이 난데없이 번뇌스러운 꿈을 꿉니다. 해석을 못해서 억지를 부리지요. 부하들을 불러다가 ‘내가 어젯밤에 꿈 꾼 것을 말해라.’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인줄 느부갓네살 본인도 알아요. 그러나 답답했어요. 자기도 미칠 지경이라 신하를 닦달할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파트너니까 악의 역할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꿈 해석을 누구한테 묻느냐 하면 다니엘에게 묻지요. 그러면 그 때부터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다니엘이 꿈을 그냥 해석해서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다니엘이 해석한 그 꿈의 전부는 빼도 박도 못하고 앞으로 세상 끝 날까지 이뤄질 그 구조로 확정되는 겁니다. 이것을 제가 울산에서 강의할 때 ‘확정 날짜’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느부갓네살이 환장해서 가만히 있는 다니엘을 건드렸고, 그 일 때문에 다니엘은 약간 아슬아슬 했지요. 그 꿈 해석 못하면 죽게 되니까. 다니엘에서 뽑아낸 모든 시스템은 확정적이고 고정적이에요. 고정적이라고 하면 어떤 요소가 날아가 버리는가 하면 더 이상 시간을 끈다는 게 의미가 없게 됩니다. ‘혹시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은 더 이상 할 수 없어요. ‘혹시 남은 계시는 없습니까?’ 남은 계시는 없어요. 모든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버렸어요.

하나님께서 굿판을 벌이는데 그 모든 순서와 절차는 얼떨결에 다니엘이 내뱉었던 그 꿈의 해석 안에서 다 이루어지고 절대로 그 밖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다니엘을 생각할 때 굉장히 편해요. ‘아, 더 이상은 없구나.’ 그렇게 아시면 됩니다. 그러면 미래는? 미래라는 것도 없어요. 이제 시간적 요소는 끝장났어요. 이미 끝이 왔어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궁금한 게 그 확정된 시스템, 확정된 힘의 골조. 이 공사의 설계도가 나와 있습니다. 그 설계도를 다니엘에게 준 것이 아니고 느부갓네살에게 줌으로 말미암아 느부갓네살은 하나님과 충돌함으로 자기의 나쁜 역할을 충실히 해야 될 그런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다니엘 2장에 그 설계도가 나와 있어요. 세상은 이렇게 해서 끝장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 그 결과로 사는 거예요.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돼요. 하여튼 여기에서 심판이 있는데, 느부갓네살은 교만하다고 심판받고, 5장에서 벨사살 왕은 객기를 부리죠. 술처먹고 이스라엘 성전에서 가져온 잔에 술을 부어 마시다가 난데없이 벽에 손가락에 나타났어요.

손가락만 보였다는 것은 나머지 안 보이는 몸체부분은 묵시의 부분입니다. 역사 부분은 나타난 손가락 부분이고 나머지는 안 보이는 일종의 투명인간이죠. 그렇게 되니 벨사살 왕이 술을 마시다가 술이 확 깼습니다. 하나님이 벌이는 굿판은 항상 이렇습니다. 이렇게 일이 벌어지니까 또 가만히 있는 다니엘에게 그 해석을 물어요. 또 해석합니다.

“다니엘아! 네가 지혜가 출중하지? 글씨가 벽에 나타났는데 그 글이 무슨 뜻이냐?” 다니엘도 죽을 지경입니다. 자꾸 자기한테 물어보니 쉬지도 못해요. 2장을 보기 전에 5장을 봅시다. 하여튼 다니엘은 순서대로 봐서는 해석이 안 돼요. 뒷부분을 봐야 해석이 돼요.

5장 25절에 보면 손가락이 나와서 벽에 글을 기록했어요. 요즘 같으면 문화재로 지정해서 관광 사업을 했을 거예요. ‘하나님이 친히 쓴 글씨’라고 하면서. 그랬으면 아마 떼돈 벌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벽에 나타난 한 구절의 글씨는 놀라워하면서 성경 전체가 기록된 이 성경책은 하나도 귀하거나 소중하게 생각 안 해요. 차 뒷좌석 위에 올려놓거나 교회 뒷자리에 두고 다녀요. 벨사상 왕의 술자리에서 벽에 나타난 글씨만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쓴 것이 아니라 성경책에 기록된 모든 글씨가 다 그런 기록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가볍게 생각해서 ---

벨사살 왕은 이 글씨를 보고 술이 확 깼는데 우리는 술 안 마셔서 그런지 성경을 읽으면서 확 깨는 것도 없고 성경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어요. 수련회 교안에 보면 맨 처음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사람은 죽게 된다. 그 이유는 말씀 안에 종말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 속에 종말이 포함되어 있어서 말씀을 안 보면 종말을 모르게 되고, 종말을 모르면 내가 누구인줄 모르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끝나는지 모르니까 이것은 본인이 살아 있어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거예요.

벽에 나타난 글씨가 뭐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인데, 그 뜻이 뭐냐 하면 ‘끝났다. 끝났다. 부족하다. 그리고 페르시야.’ 이것도 문젯거리가 돼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벽에 글씨를 기록하지 말고 벨사살 왕이 맨 정신으로 있을 때 조용히 찾아가서 “끝났거든. 네가 많이 부족했다. 네 나라 페르시아에 넘겨.” 이런 식으로 좋게 이야기하면 되잖아요.

제가 강의 끝난 후에 꼭 듣는 비판이 뭐냐 하면, ‘좋게 이야기해도 될 것을 너무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왜 벨사살 왕이 술 취했을 때 그 이야기를 했는가 하면, 자기의 객기, 자기의 짐승적 본성이 나올 때 심판의 당위성(네 속이 짐승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교만할 때 7년 동안 짐승이 되었고, 벨사살이 객기를 부릴 때 손가락이 벽이 나타나 기겁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세상 제국들이 하는 역할은 교만해서 하나님께 대항하며 객기를 부리는 그런 짓을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이 벌이시는 굿판이 성립됩니다.

벨사살 왕이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요. 그런데 뭘 건드렸습니까? 감히 여호와와 관련된 집기나 성물에 자기의 존재적 우위를 드러내려고 할 때, 건드리면 맞지요. ‘끝났다. 끝났다. 부족하다. 그리고 페르시아.’

따라서 하나님이 일을 어떻게 하시는가 하면, 안 건드리면 건드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요. 참 하나님도 짓궂어요. 예수님께서 그냥 조용히 전도했으면 십자가 형틀에 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초반에는 그냥 비폭력적으로 조용히 활동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대라.” 이렇게 했는데, 막판에 가서는 성전에 가서 난동을 부렸어요. ‘이렇게 해도 자극 안 받나?’ 하는 식으로 뒤엎었어요. 그러니까 그들이 정신이 뻔쩍 들어서 ‘저놈은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 라고 해서 예수님을 죽였어요.

성전에서 동전 바꾸는 사람, 비둘기 파는 사람들. 그들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당시 통용되는 로마 화폐는 로마 황제의 얼굴이 그려져 있어서 하나님께 드리기는 적당하지 않아서 성전에서만 통용되는 돈이 따로 있었고, 그래서 동전 바꾸는 사람이 필요했고, 멀리서 성전에 찾아온 사람들은 제물을 가지고 오기 힘들기 때문에 성전 입구에서 제물 파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산상설교의 특징이 뭐냐 하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성경 말씀대로 살았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눈에 들보를 안 뺀 상태에서 성경을 보니까 모두가 죄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 눈에서 들보를 뺄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없어요.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그냥 죽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억지는 말릴 수가 없어요. 사울은 회개해도 버리고, 다윗은 살인을 해도 용납해 주시고. 그런 불공평한 게임이 어디 있습니까. 사울은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왜 없는가? 이미 T.O(인원 편성표)가 찼어요. 이미 나라가 다윗에게 넘겨진 입장에서는 자기 역할을 해야 됩니다. 악한 역할을 해 줘야 됩니다.

엑스트라가 죽는 장면에서 죽지 않고 계속 카메라를 보면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연기력을 과시하면 감독이 그런 엑스트라 뺍니다. 제 말은 이미 스케줄은 확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스케줄은 뭐냐? 2장을 봅시다. 계획표, 골조공사가 어떻게 되는가 하면 28절에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제가 첫째 시간에 이야기했죠. 죄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비밀을 가리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비밀은 뭐냐?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이유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구원 받는다.’ 이게 하나님의 비밀이죠.

가야산 정산을 보면 바위가 아주 멋있습니다. 그런데 오늘같이 구름이 끼면 산 정상이 안 보여요. 그러면 산 정상이 있는 바위가 없어진 것입니까? 바위가 있어도 구름이 가려서 안 보이는 것뿐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밀한 비밀은 있는데 죄가 가려요. 우리 행위와 무관하게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구원은 받는다는 것이 확정된 하나님의 비밀인데, 자꾸 행함으로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이 먹구름으로 하나님의 비밀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먹구름을 치우면 될 것 아닌가?’ 하는데, 문제는 그 먹구름을 우리 자신들이 생산해요. 우리 자신들이 측면으로 서면 될 것을 정면으로 서서 우리 행함이 펑펑 쏟아져요. 자기 행함을 쏟아놓고 그 행함대로 안 된다고 울고불고 낙담을 하고 있는 거예요.

가야산 정산에 있는 바위는 그냥 묵묵히 있는데 본인이 행함으로 가려놓고 ‘주여, 왜 행한 대로 복을 안 주십니까?’ 지금 하나님은 의아해 하세요. “뭘 어쩌라고?” ‘철야 했는데 왜 응답이 없습니까?’ 라고 하면, 하나님은 “뭘 어쩌라고?”

우리 힘으로 쏟아놓는 행함을 우리가 철거할 수 없어요. 그런데 고맙게도 도와주는 분들이 있지요. 누구냐? 마귀가 와서 ‘더 열심히 해. 조금만 더 하면 성화될 수 있어.’ 라고 하면서 자꾸 도와주지요. 그러다가 와장창 깨어지지요.

깨어질 때 ‘아하, 내가 가야산 바위를 가렸구나. 남이 가린 것이 아니고 내가 가렸구나.’를 알지요. 죄인이면서 새삼 죄 짓는 것처럼 착각한, 그냥 가만히 있어도 죄인인데 행동 잘 하면 죄인 아닌 것처럼 그렇게 착각을 했지요. “주여, 주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시 51:17).”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밀한 것을 나타내지요. 그 설계도가 그대로 나옵니다. 31절을 보면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이게 금상입니까, 은상입니까, 동상입니까? 재료가 무엇인지는 관계없어요. 무엇이 되었든지 신상입니다. 그러면 느부갓네살이 해야 될 일은 무엇인가? 신상을 세우는 일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느부갓네살은 여호와 아닌 다른 신을 제조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전을 건방지게 차지했던 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고 이미 느부갓네살부터가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 신상을 세워 적그리스도 노릇을 톡톡히 하는 원조가 되지요. 결국은 신과 신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을 알려면 창조 이전으로 돌아가야 돼요. 노아 언약에 의하면 절대로 바다는 육지를 침범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5장에도 나옵니다. 절대로 바다는 땅을 넘보지 못하고 바다는 바다 따로, 땅을 땅 따로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 창조 언약입니다. 이것이 노아 언약에 나와요.

그런데 창조 이전에 보면 이제는 마지막 판이기에 무기를 아낄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바다가 가지고 있는 땅을 침범할 모든 무기들은 다 가지고 나온 겁니다. 마치 [주라기 공원]처럼.

교안 6페이지를 보겠습니다. “(2) 권력의 구조 및 힘의 좌표들”이 있지요. 어떤 짐승이 나타나도 그것은 오직 하나의 신성을 섬기는 곳이란 말이지요. “느부갓네살, 벨사살, 고레스, 아하수에르, 다리오, 남방 왕, 북방 왕, 메대와 바사, 헬라 왕 --- 이들에 의해서 바벨론의 묵시적 구조가 짜여진다. 이들이 구조의 좌표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힘의 구조가 골조를 만든다. 그 만들어진 골조로 인해 힘의 이동과 분산과 재배치가 일어난다. 골조를 만드는 이들의 역할이 주목된다.”

백날 배치돼도 그 범주에서 안 벗어나요. 이게 역사 끝까지 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점이 좋은가 하면 역사 끝을 미리 다 알았다는 점에서 저와 여러분은 행운입니다. 역사의 모든 골조를 이미 다 알게 되었으니까. 그 골조가 무엇인가 하면 새로운 신의 등장입니다. 그리고 이 신의 특징은 다른 것은 노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 새 언약을 통해 다 이루었다는 것을 무산시키고 그것을 취소시키는데 진력을 다해요.

여러분 교회에서 진력이란 용어가 주로 어떤 경우에 등장합니까? 목사 위임식 할 때 교인들에게 선서케 합니다. “당회장 목사님에게 여러분이 정한 생활비를 진력을 다해 드릴 것을 맹세하십니까?” 이 부분에서 당회장 목사는 흐뭇해하지요. 속으로 ‘주여, 감사합니다. 이제는 살았다.’

그런데 믿을 것을 믿지 교인을 믿어요? (또는 목사를 믿어요?) 서로서로 믿으면 안 돼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사 2:22)”고 했어요. 갑자기 왜 분위기가 냉각됩니까?

‘진력’이라는 용어는 성경에 나옵니다(딤전4:10). 성경에 나온다고 아무렇게나 사용하지 말고 그 용어가 어떤 경우에 사용되었는지 앞뒤 문맥을 잘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귀하신 성경 말씀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꽂히는 것이 아니고 기존의 교회 유지와 질서를 위해 이용된다면 그것은 성경 해석이 잘못된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했는데, ‘먹든지 마시든지 교회를 위해서’로 바꿔요. S.F.C가 있어요. 뭔지 아십니까? 고신측에서 만든 학생회입니다. 여기에 이상한 강령이 있어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입니다. 원이 3개 있어요(화살 표적을 생각하세요). 결국 화살이 어디에 꽂입니까? 중앙, 교회에 꽂이지요. 맨 바깥 원(하나님 중심)에 꽂이면 5점, 중간(성경)은 7점, 정 중앙(교회)은 10점입니다.

수상하기 짝이 없어요. 이 ‘교회 중심’이 고신측 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 교회가 다 그래요. 모든 교회가 교회 조직이 중심입니다. 이게 말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오직 말씀대로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18:32)”

주님의 노선은 하나뿐입니다. 말씀대로 되는 것. 그리고 누가 구원 받고 안 받고도 인간들의 행위에 따라 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기록한 말씀대로 ‘믿을 사람은 믿고, 안 믿을 사람은 안 믿는다.’ 그러니까 그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네가 말씀대로 구원 받지 않더라도 그 말씀을 믿나?”

“예 믿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진짜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너는 지옥 가도록 되어 있는데 그래도 좋으냐?”

“싫습니다.”

이것은 말씀 외에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지옥 갈 사람입니다.

너 중심이냐, 말씀 중심이냐를 그렇게 평가하는 겁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5:10)’이라는 말씀에 충실하자는 겁니다. 말씀이 나를 생산했지 내가 주님의 말씀을 생산할 수는 없다 이 말입니다. 그게 바로 다니엘의 꿈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이 꿈을 꾸려고 노력하거나 꿈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고 하는데 그놈의 굿판이 자기를 뒤덮은 거예요. 가만히 있는 왕이 다니엘에게 꿈을 해석해 달라고 해서 초반에는 다니엘이 당황하면서 고민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고민하지 마라. 내가 알려줄 게.” 해서, 그 알려준 것을 그냥 이야기한 것입니다.

다니엘도 벽에 기록된 글씨를 몰랐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알려주니까 알았지요. 결국 다니엘이 알고 있는 바를 외부적으로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 투명인간의 손가락이 나와야 했습니다.

다니엘 2장을 다시 봅시다. 첫 번째 신상입니다. 신상이란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은 필요치 않다. 그러면 이 신상에 통하는 원리는 누가 제공합니까? 바로 느부갓네살이 제공하지요. 느부갓네살의 속성에서 못 벗어나요.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보면 나옵니다.

느부갓네살의 원리에 따라서 더 교만한 자가 계속 뒤에 줄줄이 나오겠지요. 그런데 처음에 나오는 것을 보면, 32절에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고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그렇다면 금이든 은이든 놋이든 철이든 진흙이든 이것이 반드시 등장해 줘야 그 다음에 인자의 나라(하늘나라)가 등장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원리, 교만해서 느부갓네살이 7년 동안 짐승으로 변하지요. 그런데 이 짐승은 땅의 짐승은 아닙니다. 바다에서 올라 온 짐승임을 일러줌으로 언약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게판이 되는 겁니다.

왜 이렇게 악마가 게판을 만들었는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거든요. 그러니까 그 창조마저 악마가 무효화시키려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을 훼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 언약같은 소리하고 있네. 모세 언약 다 필요 없어. 새 언약도 필요 없어. 그런 것은 다 무시해.’ 라고 모든 언약을 다 무시하는 거예요. 이것을 ‘교만’이라고 하는 겁니다.

따라서 이 신상의 나라가 성립된다면 더 이상 여호와는 명함조차 내지 못하게 되는데 그러한 것이 이 짐승의 창조이전부터의 본색이었습니다. ‘제발 여호와가 하신 일은 잊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짐승의 의견에 우리가 무척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잖아요(롬1:28). 그 이유는 하나님께 간섭받지 않고 하나님의 손이 안 미치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거예요. 같은 가야산호텔에 와서도 1층과 3층에 있는 일부 사람들은(휴가를 위해 투숙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수련회 강의 시간에 참석 안 하잖아요. 왜? 십자가마을 수련회에 참석한 자가 아니라고.

이게 인간의 본성이에요. ‘너는 십자가 믿고 살아라. 나는 십자가 없이도 당당하게 산다는 것을 세상에 보이리라.’ 라는 심보가 우리의 하루 24시간 중에 몇 퍼센트입니까? 교회고 하나님이고 예수고 좀 안 들리는 곳으로, 혼자 무엇을 하든 간에 내 잘난 맛에 살고 싶다는 것. 그런 마음이 우리의 비중을 많이 차지해요.

짐승과 우리는 친밀성을 갖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짐승의 원리는 행함으로써 서열화 시켜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월 수입으로 결정해요. 자본주의 원리에서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있다고 마르크스가 이야기했어요. 장 보드리아르는 하나 더 추가했어요. 상징가치를. 이것은 맨버쉽 가치. 처음에 비싼 값을 매겨서 그것을 구입한 우리끼리의 어떤 조직을 만드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 회원권 얻으려고 환장을 합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단지 그 회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뭔가 사회적으로 큰 힘을 얻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것을 가지고 ‘권력은 실체는 없고 효과만 있을 뿐이다.’라고 합니다.

친화력과 친밀성은 바로 우리가 행위로 말미암아, 행위가 원인이 되어 결과가 나오는 이 체제를 굉장히 좋아한단 말이지요.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좋은 말로 ‘개방 사회’라고 합니다. 폐쇄적인 것이 아니고 개방된 것. 이것이 짐승입니다.

그런데 이 안에는 효과기 때문에, 이 안에는 어떤 원리가 작용하는가? 행함의 원리죠. 그러면 행함의 원리가 그냥 법으로만 제정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효과가 아니잖아요. 법으로 제정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장(場)이 형성돼요. 그 장(field)을 가지고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벡터(vector 크기와 방향으로 정하여지는 양. 힘, 속도, 가속도 따위를 이것으로 나타내며 화살표로 표시한다)라고 합니다.

벡터는 힘인데 방향을 갖고 있는 힘을 벡터라고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y=x². 이것을 dy/dx로 미분을 해버리면 이게 2ax가 됩니다. 꼭 수학 공식이 등장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y=x²같으면 그래프가 이렇게 되거든요(이 부분은 동영상을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될 텐데). 이렇게 될 때 수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 선이 y=x²의 선이라고, 실체가 등장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아니에요.

이것은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뎃생을 할 때 사람의 턱을 그린다면 한 번에 다 그리지 않고 조금씩 윤곽을 잡아나가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뭐냐 하면, 이것을 미분해 버리면 dy/dx=2ax. 이것이 뭐냐 하면 y=x²의 접선 부분이에요. 윤곽을 잡아나가지요.

윤곽을 잡아나가는데 이것을 다시 미분하면 y=ax²+c가 됩니다. 이게 처음에는 y=x²인데 나중에는 라는 독특한 y=ax²+c 변수가 나와요. 이 말은 여기에 이러한 윤곽이 되기 전에 많은 잠재되어 있는, 미분이란 말은 세밀하게 조각을 낸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조각을 내면 0.9999… 를 1로 쳐 주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칙입니다. 0.9999… 계속 나가도 1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차이만큼 윤곽을 잡아나가는 것입니다.

윤곽을 잡아나간다는 말은 모든 것은 반드시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를 우리가 답답해하니까 그것을 실재라고 보자는 것입니다. 인간의 두뇌는 전기 자극으로 흐른다. 그러면 여기에 활동하는 것이 신경성 전달물질인데, 신경 전달물질이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정보를 전하고 그것을 인식하는가 하는 것을 아무리 연구를 해봐도 그만큼 차이가 있는 거예요.

쉽게 합시다. R과 L을 발음해 보세요. 비슷하지요. 그러나 그 비슷한 것도 사람마다 다 달라요. 이처럼 정확하게 R을 발음할 수도 없고 정확히 L을 발음할 수도 없어요. 그러나 R과 비슷하면 이것을 R로 쳐주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차이가 있지요. 그 차이가 무(無)인에 그 차이에서 새로운 사건들이 나옵니다.

그러면 확정된 이것 외에 뭔가 돌발 변수가 나오면 ‘이건 뭐야? 이건 우리가 몰랐던 것인데.’ 그 차이 속에서 묵시가 등장합니다. 사람이 뭔가 동질성을 차지해버리면 그 순간 내 것이 돼버려요. 예를 들면 우리교회에 어떤 집사님이 계시는데 교회 올 때마다 와이셔츠 주머니에 담배를 넣고 옵니다. 아주 당당하게. 그래서 부인 집사님이 “제발 안 보이는 주머니에 넣든지 하지.” 라고 하면, 그분은 “뭐 어떤데?”

그분은 담배와 천국은 관계성이 없다는 거예요. ‘담배 피우는 것과 천국 가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그분 가정에 심방을 했거든요. 그 때 그분이 “목사님 한 대 피우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어요.

평소 이근호 목사님은 식당에 가서도 담배 피우는 사람 있으면 담배 끄라고 소리를 치고 해서 온 식당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고 하는데, 우리교회 집사님 집에 심방 갔는데 그분이 제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거예요.

그러면 그 분이 생각하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의 차이점이 있어요. 우리는 교회 다니는 사람은 담배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 저와 여러분에게는 동질화 된 거예요. 그 동질화를 뒤엎어 버린 것이 뭐냐? 목사 앞에서 담배 피워도 된다는 차이점입니다. 그게 무(無)이고, 그게 사건입니다. 묵시적 사건.

그런데 그 사람이 일부러 목사를 모욕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했다면 제가 말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목사님, 담배는 복음과 무관하지요?” 라는 태도로 하기 때문에 “어떻게 저럴 수가! 아, 그럴 수도 있구나.”

교회 법대로 60년 동안 신앙생활 해도 61년에 ‘이건 뭐지?’ 하는 그 차이가 튀어나오는 이것이 바로 동질성으로는 다 잡아낼 수 없는 그 틈바구니에서 주께서 더 키우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한테 포착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우리보다 더 크지요.

다니엘이 계시 하나 알았다고 그걸 근거로 구원 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자기가 예상 못한 차이(무)에서 나오는 사건이 또 다니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든 뭐든 다니엘이 감사할 것은 이미 이 골조공사는, 이 모든 원리는 행함으로 뭘 친다? 행함으로 여호와가 직접 작성한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구원 받는다는 그 원리에 대해 항변 하는 것이지요.

생명책 리스트에 대해서 무엇이 대립된 원리라는 것이 확정되어 있지요. 아무리 나라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항상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구원받는 하나님의 일관된 계획에 대해서 항상 저쪽은, ‘인간은 행함으로 구원 될 수 있다’는 쪽으로 나온단 말이지요. 그 원리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다 안 셈이 되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강의 5.hwp (96.0K), Down:22

서경수(IP:116.♡.101.7)

09-08-08 15:31

녹취록 중간에 수학 공식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한글 파일로 올리니까 사라져 버렸네요.첨부파일 열면 정확히 알수 있습니다.

관리자(IP:219.♡.86.34)

09-08-08 16:18

바꿔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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