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은 뱀을 못 쳐다 본다.
뱀은 뱀을 못 쳐다 본다.
이름 : 김대식(IP:220.81.176.169)
뱀은 뱀을 못 쳐다 본다.
(자신의 자아상을 못 쳐다 보는 뱀)
불가능한 것이 있다.
십자가는 뱀이 때려죽어도 못 증거한다.
그런데 뱀은 이 십자가가 유일한 구원임을 안다.
그래서 그들 뱀은 이 십자가를 어떻게 증거하는고 하니
십자가를 행함으로 증거하는 것을 하나님의 허락으로 인해 미혹하는 사명을 받게 된다.
십자가를 행함으로?
무슨 소리인고 하니, 십자가를 쳐다보자 라고 행하면 십자가를 믿는 것으로 쳐준다는 것을 심어 넣는 것이다.
(수학의 미분 적분 어쩌고 저쩌고 하는 부분이 이번 수련회 강의에 나온다. 수학에 대해 모르지만 뒷부분 설명에서는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란 바로 그것을 거부한다.
십자가란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기에
십자가를 대상으로 본 주체자를 십자가에 못 밖으러 온 것이다.
그래서 뱀은 뱀을 때려죽어도 못 본다.
자신의 일그러진 자아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미화 시켜야 한다.
가급적이면 아름답고 순수하며 자연스럽고 거부감이 없는 친근스럽고 부드럽게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대해서 일체 양보가 없으시다.
그래서 직접 그 십자가에 자신을 갈기 갈기 찢어버리신다.
모두다 그 갈기 갈기 찢겨진 몸을 보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너무나 참혹스럽기 짝이 없고, 불길하고, 너무 너무 저주스럽고, 공포적이며, 싫어하기 싫어도 싫어할 수 밖에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어떤 누구도 십자가를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하거나, 의사를 환자가 고를 수 없듯이
자의적은 것은 모조리 다 단절시키고 차단하는 것이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그러나 인간들이 조작해 내는 십자가는 열린음악회처럼 친근하고 부드럽다.
오늘도 악마의 목소리는 친근하고 부드럽게 다가온다.
다급함도 아니다. 그저 장난 스럽게 툭 던져 보는 것이다.
오늘 못 쳐다 봤으면 내일 쳐다 보시면 됩니다 라고 친절하게 안내양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이다.
김대식(IP:220.♡.176.169)
09-08-07 09:50
왜 불뱀일까? 인자 되신 예수님은 불뱀을 거쳐 오라는 것이다. 불뱀을 거쳐 오지 않고서는 인자를 못 알아보도록 하신 것이다. 거쳐 오라고 또 행하라는 말인가? 은혜를 더하고자 죄를 지으라는 말인가? 아니다. 행함이 아니라 믿음이다는 말이다. 믿으라를 행함도 아니다. 믿음이란 닭의 노선, 창세전의 확정된 노선 즉 예정이다. 십자가만이 예정이기 때문이다.(어린아이 벤또)
사단의 가시를 안 통하고서는 네 은혜가 네게 족함을 알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마치 어두움이 없이는 빛을 알 수 없듯이 그 차이를 알 길이 없게 된다.
마귀를 빼 버리고 예수님을 운운하는 것은 예수님이 마귀만을 상대로해서 싸우신 전쟁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예수님만의 승리이다.
김성환(IP:115.♡.26.5)
09-08-07 12:43
누가 뭐라해도 오늘도 주님은 십자가의 기적을 택한 자녀들안에 행하고 계십니다^^불뱀쳐다 본 자들이 '아이쿠! 이게 뭔가? 놋뱀이네!' 복음은 참 신기합니다. 예상 밖의 사건을 자꾸만 택한 자녀들에게 날마다 일으킵니다^^글 잙 읽었어요^^
관리자(IP:220.♡.176.169)
09-08-08 10:16
불뱀은 바로 너가 불뱀이다.
이윤자 권사님에게 작년에 준 글을 찾다 찾다 드뎌 찾았습니다.
http://crosslamb.tistory.com/187
2008/10/19 14:03
불뱀은 바로 너가 불뱀이다.
인자가 왜 달려야 하나? 너가 달리기 싫어하기에 너를 달려고 먼저 인자가 달리시는 것임
불뱀은 바로 너가 그렇게 싫어하고 거부하고픈 너 자신의 모습이다. 라는 자아의 실체 입니다. 이 불뱀을 해결할려고 불뱀의 모습으로 오심 (선악을 아는 인간을 다 지옥보내는 단절로써 오심)
그리스도의 형상이란 바로 이 전 것은 지나갔다 라는 이 이전의 모습의 실상을 들추어 내고(불뱀) 이 불뱀(선악)에게 갇혀 있는 자를 인자가 뚫어버리는 희년 곧 안식(쉼)을 완성이다.
안식(70이레)을 날짜(역사)로 계산하는 거짓선지자와 그래서 회복의 문제로 인간의 숙제로 봄
이 안식(뭐뭐가 아닌 뭐뭐)을 인물 곧 인자(묵시: 타인)로 해석하는 참 선지자의 대립이 선지서이듯이
안식은 예수님이다 라는 표현이 인간의 문자 어법상 벗어나버리기 때문에 소통이 단절되어 버림
이 소통의 단절로써 소통의 관계를 잇는 영의 일을 증거함
불뱀이 바로 너다 라는 문법 또는 인간의 이해에서 벗어나는 개념이나
안식이 7이라는 숫자를 앞세워서 숫자가 아닌 어떤 인물로 묵시적(단절적)으로 증거하는 거나
항상 이 뭐뭐뭐 아니요 이거다 라는 이 경계선이 바로 영의 일이다. 즉 성령은 항상 어떤 인물이 완성한 사건을 모든 구약의 의미의 완성으로 보고 이것을 기준으로 인간을 발가벗겨 버린다.
결론적으로 새피조물이란 바로 인자와 같은 고난받는 모습으로써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믿음의 주체자이신 인자(고난받는, 부정적인)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에 의해 창조받는 십자가(불륜,묵시적인 사건)에서의 지음을 받는 자이다. (비창조와의 확연한 차이성을 드러내는 새피조물)
불뱀에게 사로 잡혀 있는 너의 실상에
예수님이 불뱀 속으로 뛰어드심 단절 속으로 뛰어드심
예수님은 인간을 나를 상대 안하고 마귀만 상대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