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5:10-15 (불이 되는 말씀)
렘 5:10-15 (불이 되는 말씀)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예레미야 5장 10-15절
제목 : 불이 되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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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9-07-15 21:00
불이 되는 말씀
2009년 7월 15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5:10-15
(렘 5:10, 개정) 『너희는 그 성벽에 올라가 무너뜨리되 다 무너뜨리지 말고 그 가지만 꺾어 버리라 여호와의 것이 아님이니라』
(렘 5:11, 개정)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이 내게 심히 반역하였느니라』
(렘 5:12, 개정)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하지 아니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아니하니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할 것이요 우리가 칼과 기근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렘 5:13, 개정)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
(렘 5:14, 개정)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을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을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르리라』
(렘 5:15, 개정)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집이여 보라 내가 한 나라를 먼 곳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민족이라 그 나라 말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해서 평생을 걸쳐 시험하고 실험하게 됩니다. 과연 하나님의 존재와 그 말씀이 믿을 만 한지를 결정짓기 위해 여러 모로 시도하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이 내리신다는 그 재앙에 실제로 떨어지는지 궁금해 합니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재앙이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나님이 없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이미 있다고 여겨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부터 모든 것을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어디서부터 왔느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내가 여기 있잖아’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45에 보면,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살아있다고 보고 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살려 주는 일이 없다면 결코 살 수 없는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차이가 하나님으로 그 어떤 말씀이 제공되어도 사람들은 말씀을 가지고 왜곡하고 곡해하게 됩니다.
특히 사람들은 자신을 자기 힘으로 유지하려고 하니 ‘재앙’에 대해서 대단히 민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재앙에 대해서 방어해야 될 자들이 아니라 복을 받아야 될 자들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본 사람들은 다 압니다. 복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래 인간만 된다면 오지 말래도 퍼부어지는 것이 복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은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인간상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재앙에 대해 거부 방어에만 나선다는 겁니다. 즉 지금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인간이냐를 따져 볼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하는 그 모든 것에 건드리지 말라는 식으로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환경과 상황도 하나님의 약속을 위하여 반드시 같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저 인간만 달랑 만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즉 인간을 둘러싼 환경도 나름대로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위하여 예비되고 준비된 상황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는 겁니다. 마치 금붕어 사면서 금붕어만 새끼에 매달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어항에 물 담아서 그 전체를 집으로 가져 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인간 창조 때에도 인간과 더불어 조성된 모든 자연 환경도 다같이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만들어진 그런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모든 것이 자기 중심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할 때, 그저 평범한 땅으로 추방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 땅은 예사로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위한 땅이기에 그 땅 사방에서 저주가 뿜어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땅에는 뱀이 작용합니다. 뱀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아무리 일해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환경 속에서 인간은 살게 됩니다. 자신을 낳는다는 축복적 행위도 결국 그것마저 죽음의 연속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이 원칙이 새겨진 것이 이 땅이요 대지입니다. 창세기 8장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약속을 했습니다.
노아방주에는 인간만 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땅에 거했던 짐승들과 함께 했는데 그 짐승들의 운명을 통해 인간이란 결코 단독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는 존재임을, 그리고 복과 저주란 자신이 원한다는 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새겨진 원칙대로 이루어짐을 알리시고자 했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 가족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시하십니다. 창세기 9:4-6에 보면,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땅이란 그저 맹목적으로 존재하기만 하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원칙을 그대로 뿜어내는 공간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과연 이 공간이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주느냐 여부를 가지고 과연 너희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이해하느냐 여부로 보겠다는 겁니다. 그 기준이 바로 ‘피’입니다.
‘피’를 내어서는 아니되고 만약 피를 흘린다는 저주받아 당연히 재앙을 얻어맞는 세상으로 이미 들어와버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공간에서 예수님은 피를 흘렸습니다. 이로서 이 세상은 재앙과 저주를 마땅히 받아야 될 처지에 있습니다. 바로 이런 세계에서도 하나님께서 복을 얻을 수 있는 근거를 역시 모세와 약속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그 희망은 바로 이스라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다움이 무엇이지 이미 규정해놓은 적이 계십니다. 출애굽기 19:5-6에 보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준에 의하면 먼저 하나님의 언약이 심겨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언약이 확장되어 나라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언약에는 복도 있지만 재앙도 있습니다. 즉 재앙을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만들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물론 복을 주기 위해 이스라엘을 만들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은 ‘살려주시는 은혜’를 잊고서, ‘자신이 자기를 살리는 비언약적으로 나아가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언약적으로 재앙 떨어짐을 거부하면서 더나아가서 아예 하나님조차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오늘날 교회 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대세가 되어있습니다.
이들은 현실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유리한 대로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TV를 도적 맞았다면, 지금은 그 TV가 없는 겁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것으로 복이라고 아는 자라면 지금 ‘TV 없는 이 현실’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봅니다. 하지만 자기 중심적으로 인생을 사는 자들은 ‘TV 없음’에 화가 나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는 ‘늘 TV가 있어야 마땅하다는’ 자기 중심적 현실을 포기 못하기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런 비창조적인 인간들은 나무로 간주해서 불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르버린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불-나무’ 관계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원래 인간형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우리들의 본심 속에 살려주시는 영이 들어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우리교회
09-10-20 23:51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예레미야-2009/019강-렘5장10-15(불이되는말씀)-jer090715.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