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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90703a 울산강의-출애굽기3장자유게시판출애굽기

20090703a 울산강의-출애굽기3장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48)

20090703a 울산강의-출애굽기3장

(강의:이근호 목사)

출애굽기 3장. 거기 모세가 하나님 만나는 장면입니다. 근데 성경이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어떻게 사귀느냐, 어떻게 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반듯하게 살 수 있느냐, 자기 인격을 도야하고, 정신을 수양하고 성격을 조절하는 그런 책이 아니고, 신과의 만남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신의 계시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거는 유엔 사무총장이라든지, 청와대 계신 대통령 만나는 것, 북쪽의 국방위원장 만나는 것, 이건만 해도 큰 뉴스거리인데 하나님을 만나는 건 뉴스거리가 안 돼요. 왜? 너무 센 분을 만나서. 너무 윗분을 만나서 사람들이 하나님 만난 사람 같으면 사람 취급을 안 해주잖아요. 그렇잖아요. 자기들은 존재도 있는 지도, 없는 지도 안 되는 그분을 만나버렸으니까. 자기들 노는 세계하고 완전히 딴 세계거든요.

그림으로 그리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사람들하고 사귄다는 거예요. 그런데 모세가 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하고 만남이 있어버리면, 이건 수평적인데 이건 수직적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이 모세가 하나님 만났다고 하면 이스라엘 히브리인들도 놀렸습니다. “당신이 무슨 하나님을 만나?”

문제는 이렇게 이 사람들이 모세가 하나님 직접 만났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 이 수직적인, 사다리 아닙니까. 수직적인 백층 건물이라 해도 되고. 수직적인 건물이 이걸 덮쳐버려요. 참, 저로선 이것보다 더 쉽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만난 이것이 무엇이 된다? 계시가 되죠. 계시가 덮쳐버리면 이스라엘 역사가 됩니다.

인간은 가까운 이웃과 수다 떨고, 같은 아파트에 복도의 몇 호, 아래층하고 이야기하고, 항상 대화가 좁아요. 직장에 가도 자기 상사, 부하직원하고 사귀지 옆에 직장하고 이야기 안 하잖아요. 항상 인간은 상대하는 사람들이 좁아요. 선생님 같으면 애들하고 상대하고, 교사하고 상대하고 좁잖아요. 가정적으론 남편과 자식 그것밖에 안 된다 이 말이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잘 들어보세요. 인간 대 인간의 만남에서 ‘난 십 년 뒤에 어떻게 될까?’ 그런 아이디어는 인간 대 인간의 만남에서 나온 기껏 얼마 안 되는, 몇 년 사이 있잖아요. 이것도 엉터리죠. 자기가 예상할 뿐이죠. “이번에 현대자동차 주식 사놨는데, 잘 됐나?” “삼 만원.” “아이고, 삼 만원? 잘 됐다.” 막 올라가는 거예요, 주식이.

이게 불과 몇 년 아닙니까. 그런데 진짜 장래는 뭔가 하나님께 계시를 받은 이것이 그들 위에 덮쳐버리면, 그들 위에서 이스라엘한테 엄청난 상황이거든요. 자기들 이웃 사람밖에 모르는 이 사람들의 운명은, 모세에게 덮쳤던 그 계시가 그들에게 덮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가 되는 겁니다. 참 쉽지요. 이스라엘 역사.

보통 철학하는 사람은 역사를 누가 만드느냐 하면, 인간이 만들죠. 참 애 많이 썼습니다. 세웅이 때문에. 보통 역사를 인간이 만들죠. 인간이 만드는데, 이것을 이번에 수련회 할 때 확실하게 자세하게 할 거예요. 과거, 현재, 미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역사라 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의 기억이 만들어요.

뭔가 이게 아니고 덮쳐버리면, 이 사람들이 자기 이웃집 아줌마밖에 모르는, 자기들 좁게 보는, 울산 같으면 울산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들도 본인이 원치 않는 운명 속에 그들이 빨려 들어갑니다. 이게 바로 성도의 미래에요. “목사님, 하나님. 어떻게 하면 내 미래를 개척합니까?” 이건 사태파악을 못 한 거예요.

자기한테 덮친 자체가, 사다리라면, 나에게 덮친 이 계시란 사다리가 우리의 운명을 걱정 안 해도 이미 운명은 결정돼버렸어요. 우리는 운명을, 역사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고, 이미 그 만들어진 역사에 휙~ 송풍기 바람이 불면 우리는 거기에 빨려 들어갑니다. 마치 프로펠러에 빨려 들어가듯이. 우리는 이미 확정된 것에 빨려 들어가죠.

이것이 요한복음 1장 15절 보면 나옵니다. “나보다 뒤에 오신 분이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그게 세례요한의 운명의 결정이에요. 그분은 흥해야 되고 나는 쇠해야 되고. 그래서 세례요한은 갈지를 못했습니다. 자기도 자기 운명 마음대로 못하는데 뭐하려 사람들한테 기죽어요. “네가 내 운명 결정했어?” “아니.” “그럼 네가 왜 큰소리 쳐. 너야?” “아니야.” “그럼 네가 왜 나한테 위협하고 협박을 주냐?” 이 말입니다.

성도의 자유라 하는 것은, 앞서서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 덮쳐져야 됩니다. 제가 오늘 올린 글 있죠. 예수님께서 세상을 살 때 사람들에게 타협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예수님이 순종하는 것도 다 좋고, 옳지만 이미 자신의 운명은 십자가 죽음으로 가는 걸로 확정지었기 때문에. 이걸 ‘확정 진리’라고 제가 주일날 우리교회에서 했지요.

‘확정 진리’에서 뭐가 나온다 했습니까? 당당함이 나온다고 했죠. 확정 진리 또는 확정 날짜. 또 뭐가 있겠습니까? 확정 날짜, 아파트 살 때 있잖아요. 확정 진리가 있으면 당당하다는 말 나온 것처럼 예수님의 확정 진리는 십자가에 죽게 돼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은 십자가 좁은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따라서 사람한테 겁내고 할 필요가 없어요. 모세도 마찬가지에요.

다시 이야기할게요. 출애굽기 3장 강의하고 있는데 3장의 첫 번째가 지금 누굴 만난다 했습니까? 사람을 만난다 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죠. 그러면 하나님 만남의 특징이 뭐냐? 잘 필기 해놓으세요. 질문을 못합니다. 질문을 안 해도 돼요. 질문은 누가 하느냐? 그분께서 하죠. 진짜 맞는가 봅시다.

4절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누가 먼저 질문합니까? 하나님이 먼저 했죠. 창세기 3장에서 누가 먼저 아담에게 말 걸었습니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먼저 말 걸었지요.

그래서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못 믿어요. 왜냐? 자꾸 자기가 질문을 해대요. ‘신이시여, 신이시여.’ 점쟁이 신앙의 특징은 ‘행함’입니다. 인간의 가능성을 이야기해요. “순하 선녀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보자, 보자, 보자. 하하. 살이 끼었어, 살이 끼었어. 살이 끼어서 자꾸 바깥으로 돌아다녀.” 그 다음에 나오는 게 “어떻게 행하면 됩니까?” 행함이 나오죠. “굿을 한번 해야 되겠어.” 행함이 나오죠.

그러니까 점쟁이를 찾아가는 그 행함을 얻고자 오늘날 교회 교인들이 교회에 나옵니다. 그러면 목사가 처방전을 써주죠. “이렇게 하세요.” 그러면 처방전 들고 집에 가서 시험해보는 겁니다. 안 되면 자기가 믿음이 부족한 거예요. 처방전이 잘못 된 게 아니고. 그래서 약국 많고, 교회가 잘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진짜 복음의 교회는 그런 질문에 입을 대일밴드로 틀어막아버려요. “목사님, 우리 집안에 우환이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입 다물라. 왜 입 다물라 합니까? 죄인이기 때문에 그래요. 죄인은 입을 다물라.

기존의 교회가, 점쟁이는 죄인이 아니고 당당합니다. 찾아온 것도 장한데. 진짜 같으면 십자가 앞에서 입을 다물라. 어떤 분이 그런 질문하대요? 자기가 자식도 못 키워서 늘 우사하다 하기로 제가 처방전 써줬잖아요. 거울을 바꾸라고. 찌질이 같이 하지 마시고, 십자가 피가 흐르는 거울로 바꾸시면 순식간에 싹없어진다고.

질문 권한은, 하나님이 질문해야 돼요. 왜? 그분이 창조자기 때문에 그래요. 질문이 하나님부터 나온다면 그 사람, 백 프로입니다. 성도 백 프로에요. 그런데 자꾸 질문을 해대면, 이거 약간 어려운 건데 해봅시다. 출애굽기 3장하고 있는데, 진짜 하나님 만났을 때 우리는 질문할 권한이 없고, 하나님이 질문한다. 그게 정식이다.

근데 사람이 질문하게 되면, 이 질문 만들기를 누가 하느냐 하면, 자기가 하죠. 그런데 여러분, 자아 또는 자기 구분합니다만 어려우니까 그냥 같다고 보고, 자기 자아 속에 자아라 하는 것은 테두리를 자기라 해요. 알맹이는 자기가 없고, 자아가 없어요. 그럼 알맹이는 뭐가 들어 있느냐? 테두리를 가지고 자기라 하는데 붕어빵에 붕어 들어있습니까? 아니지요. 그냥 모양, 테두리만 붕어잖아요. 안에는 밀가루고. 그건 밀가루 빵이지 붕어빵이에요. 모양새 보고 붕어빵이라 하잖아요. 인간이라 하는 게 없어요.

인간이라 하는 것은 그 모습이 개 아니고, 사슴 아니니까 인간이라 하는 거예요. 안에는 힘이 들어있어요. 무슨 힘? 존재의 힘이 들어있어요. 어떤 사건이 뭉쳐져요. 사건을 여기서는 기억, 습관이라 합니다. 여기 안에는 뭐냐 하면, 외부에서 끌어 모았던 정말 잡다한. 그러니까 사춘기 애들의 서랍장을 보세요. 그야말로 잡다하지요. 특히 소녀들. 딸 키우는 사람들, 서랍 열어보세요. 서랍채로 갖다 버리고 싶어. 뭐 동방신기, 이렇게 찢고, 조그마한 것도 있고, 귀걸이 있다가 떨어져서 뭔지도 모르고, 잡다한 게.

우리의 자아라 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주워들은 기억들과, 기억이 뭘 만드느냐 하면, 습관을 만들어요. 기억이 습관을 만들어내니까 그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가정상황을 압니다. 선생님 아시죠? 그의 관을 보면 그 집 뭐하는지 대충 알아요. 교사생활 하다보면 거의 점쟁이 다 되기 때문에. 그 집 형편을 압니다. 결손가정인지 어느 정도 알아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적응하려면 습관화 됩니다.

자기 자아 속에는 자기가 욕하는 아버지, 술 처먹는 아버지, 거기다 잔소리하는 엄마, 만날 화투치는 엄마 그런 것이 잡다하게 들어오면서 ‘나는 안 그래야지’ 하는 반발심까지 얽히고설켜서 안 돼요. 어떤 때 아버지 성격 나오고, 엄마 성격 나오고. 온갖 것이 다 들어있다고. 이게 우리의 자아라는 거예요. 트라우마라 하잖아요. 어릴 때 상처를 받아버리면, 예를 들어서 잡채 먹다 채하면 평생 잡채 안 먹어요. 저 같으면 개, 오리, 돼지국밥, 곱창, 순대 이런 것은 안 좋은 기억들이 있어서 못 먹죠.

그게 뭐냐? 안 좋은 기억이 그 다음에 습관화 돼요. 습관화 되면 자아가 형성되면서, “나는 개고기 못 먹어요.” 이렇게 습관이 막는데 뭐라고 핑계 대느냐 하면, ‘나는’ 자아가 되어 “나는 원래 개고기 못 먹어요.” 자아가 대표자가 되어 모든 기억과 습관의 대변자로써 자아가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원래 클래식을 잠 오고 안 좋아요.” 하다가 만약에 사랑하는 어떤 여자가 클래식을 좋아하면 그때부터 새로운 기억이 들어오면서 클래식을 좋아하는 자아가 형성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아가 믿을 게 못 돼요.

남편이 교회를 못 나가게 한다. 그런데 남편이 개고기를 좋아한다. 개고기를 며칠 해줘버리면 ‘교회가라’ 이런다고. 갑자기 교회 가기 싫어하는 자아상이 ‘교회가도 돼’라고 너그러운 자아상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죽은 최진실이 한 말 있잖아요.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그걸 다른 말로 자아는 새로운 기억을 주입하기 나름이라고.

어렵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이런 자아에서 질문을 해댄다는 말은, 그 질문을 내는 바탕이 이미 한정돼있지요. 그런데 이 자아는 어디서 나온다? 바로 이웃사람들, 넓게 보면 자기가 속해 있는 국가, 사회, 교회 주로 몸과 몸이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좁디좁은 그 이웃사람들의 문화에서 자아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기껏 질문한다는 것, 기도한다는 것이 자기중심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죠.

우리가 대한민국 살면서 여기서 수천 킬로, 수만 킬로 떨어진 루마니아 농촌 아줌마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원합니까? 왜 루마니아 집시 문화를 안 좋아합니까? 그것은 내 자아를 만드는데 거리가 너무 떨어져서 그 집시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들끼리 모여 봐야 어디까지나 그 역사라 하는 것, 그 문화라 하는 것은 짧은 역사만 간주하는 거예요.

여기에 모세는 출애굽기 3장에서 누굴 만납니까? 하나님을 만나니까 질문을 누가 한다? 모세는 못해요. 하나님이 질문하니까 수평적인 사다리가 통째로 자빠져서 자기밖에 모르는 자아밖에 없는 이스라엘을 덮쳐버리니까 이것이 이스라엘을 앞으로 규정할 수 있는 역사가 돼버렸단 말이죠. 이스라엘 역사가 이렇게 생긴 거예요. 계시 없이는 이스라엘 역사가 안 생깁니다.

과연 그 본문이 있느냐? 있습니다. 출애굽기 2장 24절.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사” 그렇다면 앞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주장할 수 있는 자빠지고 엎어진 사다리, 그 사다리의 약속의 내용은, 인간들이 질문하고 싶은 내용은 들어갑니까, 안 들어갑니까? 안 들어가지요. 오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의 내용만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공사장 무너지듯이 덮치고 만다 말이죠.

그래서 ‘세웅이 결혼해서 잘 살기를 바란다.’ 이렇게 할 게 아니고, 세웅이에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이 덮치기를 원하다. 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이 완성되면 뭐가 생성됩니까? ‘복’이 생성돼요. 복 받을 자라 하는데 자아가 있는 사람에게 복은 개인적 복이죠. 그러니까 진짜 복이 무슨 복을 부셔버린다? 우리 이기적인 복을 때려 부술 때 영광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복 받은 거예요. 우리가 있으면 우리 역사를 위에서 덮쳐서 함몰시켜버리고 그 확정 진리, 확정된 계시 따라 가는 겁니다.

여기서 오늘 강의 어려워지는데 새순교회 수준 높으니까 어렵게 해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받은 게 아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선택받은 거죠.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희는 선택하신 족속이요” 하는 말은 결국은 이스라엘의 선택이 아니고 그들이 누구 자식이란 것 때문이 선택이 됩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선택됐기 때문에 이 언약이 덮치니까 이들은 졸지에 뭐가 됩니까? 선택된 민족 됐지요.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이 오늘날 울산에 있는 우리한테 덮쳐버리면 뭐가 됩니까? 우리가 이스라엘이 되지요. 우리가 선택된 민족이 된다 이 말이죠.

그래서 선택된 아브라함에서 나온 자손과 자기가 선택받고 싶어서, 이 말이 얼마나 어려운가 보세요. 이스라엘에서 출발해서 아브라함을 추구하는 선택을 ‘나는 선택받고 싶어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을 모셔야지.’라고 나갈 때 이스라엘 조상인 아브라함과 만나겠어요, 안 만나겠어요? 안 만납니다. 이게 어려워요. 이게 신학자들도 무수히 실수를 해요.

백부장이 예수 믿을 때 예수님이 뭐라 했습니까? “야, 이런 믿음 처음 봤다. 너같이 믿는 자가 천국가고, 소위 자칭 선택받았고 천국의 백성이라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이를 갈면서 통곡하면서 어두운데 지옥에 쫓겨나야 돼.” 했습니다. 출발점을 “우리는 육적으로 아브라함 자손인데.”라고 해서 나가봤자 핀트가 어긋나게 돼있어요. 안 맞게 돼있다고요.

그러면 여기서 무슨 일이 등장하느냐? 오뎅 꽂이 이론이에요. 오뎅, 표준말은 아니지만 표준말은 어묵. 표준말 어묵보다 오뎅하면 실감나지 않습니까. 오뎅에 작대기가 꽂혀 있지요. 갈라디아서에서는 완전히 바비큐를 해버려요. 갈라디아서 3장에 아브라함에서 나온 복이 오뎅 작대기가 어디까지 이어졌느냐 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어졌지요. 그러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갈라디아서 3장에서 두 명이라 했습니까. 세 명이라 했습니까? 몇 명이라 했습니까? 단 한 분이죠. 그 자손이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그러면 중간에 있는 이 사람들은 뭐냐 하면, ‘아브라함 자손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라는 걸 증거하기 위해서 꽂이로 관통 당하는, 참 상스런 말로 배때지 하면 안 되지요. 이런 말 쓰면 안 된다니까. 그런데 배를 관통한다는 게 바로 배때지 하는 게 훨씬 쉽지 않습니까.

사람의 배를 아브라함에서 나온 오뎅 꽂이가 뚫으니까 이 사람들은 누굴 증거하게 돼요? ‘나 구원받았다.’ 이걸 증거하는 게 아니고 누굴 증거합니까? 이 꽂이는 예수님 덕분에 꽂혔어요. 내 운명이. 큐피드 화살에. 나 같은 인간, 죄인이 예수님 증거하라고 구원받았어요. 이래 돼야지 ‘나 구원하려고 예수님 오셨구나.’ 이렇게 전도된, 거꾸로 되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참 어렵지요. 갈라디아서가 어려워요. 사도 바울이 보통 분이 아닙니다. 성령 받은 분인데.

아브라함의 자손이 여럿이 아니라고 하면서 소위 아브라함 자손이란 사람은 제발 착각하지 말라 말이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 아브라함을 보내줬구나. “아니옵니다. 그거는 아니 되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네가 뭔데 구원해. 하나님은 한 분만 구원해요. 예수님만 구원이 돼요. 왜? 그분만이 말씀을 이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냐? 이걸 꿰기 위해서 여기에 달랑달랑 물방울처럼 붙어 있는 사람을 뭐냐 하면, 죄인이죠.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언약의 특징이 뭐냐 하면, 죄인을 관통해서 의인은 누구밖에 없다? 예수님밖에 없다는 걸 증거할 때 언약이란 오뎅을 들어보면 언약의 오뎅에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이 빛나기 위해서는 누가 불쌍하게 꽂혔나 보니까 우리네. 불쌍하기 가엽기 짝이 없는 죄인이 진짜 배에 완전히 언약이란 작대기가 팍 꽂혀서 그리스도만 증거하는 거예요. 그런데 기존의 언약체계를 보면 전부다 우리 구원하려고 언약 줬다는 거예요. 참 이단 아니라고 약을 써도 이단입니다.

우리 구원하려고 만약에 언약을 줬다면 그건 바로 아까 점쟁이와 똑같아요. 점쟁이는 항상 행함을 이야기해요. 언약이든, 행함을 하시든. 아니에요.

그 어려운 선택문제 다 풀려버렸지요. 선택에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인간 쪽에 구원받고 싶어서 “저 선택받았나요?” 묻는 관점. 근데 그러한 질문은 진짜 하나님 앞에선 해도 된다, 안 된다? 질문은 하나님만 해요. 진짜 하나님을 만나면. 그러니까 하나님 못 만난 사람들이 만날 질문해요. “신이시여, 난 어떻게 됩니까?” 만날 하나님이 없으니까 그런 식으로라도 위로 하는데

진짜 하나님 하면, “입 다물라” 하고 대일밴드로 틀어막아요. 질문은 내가 한다. 질문을 내가 한다는 말은 자동적으로 뭐가 성립되느냐? 빨간 걸로 써야 돼. ‘순종’ 말씀 듣고 순종이 아닙니다. 말씀 자체가 오게 되면 그 자체가 이미 순종 관계가 성립돼버렸어요. 따로 순종하고 자시고 할 쨉이 못 돼요. 왜? 내 입은 막혀버렸지, 일방적 지시는 따라오지. 남는 것은 그 말씀이 나한테 폭발하는 것, 덮쳐버린 것 계시가, 언약이 날 덮치는 것밖에 없죠.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순종해서 구원받았습니까,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때 순종했다, 안 했다? 분명히 순종은 안 했거든요. 모세한테 대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니까 강제 순종. 강제로 순종 돼버렸어요.

시장 통에 애들이 엄마하고 갈 때 애들은 아주 잔득 기대해서 신바람 나고 좋아해요. 오늘도 시장하면 맛있는 떡볶이 사주고, 장난감 사주고 하는데 언제 그게 깨지느냐 하면, 시장 통에서 우연히 옆집 아줌마 만났을 때 애는 죽습니다. 왜? 이야기가 끝나질 않아요. 그때 아는 치마 붙들고 집에 가자고, 안 되면 찹니다. 그때 엄마는 마박을 때리면서 이야기하죠. “너 오늘 집에 가서 죽는데이.” 어릴 때 엄마 따라 가서 아는 사람 만나면 그 다음부터 그날 일정은 다 깨졌어. 여자들은 길에 서서 왜 그렇게 이야기를 잘 하는지.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하고 주님하고 시장 통에서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자기 기대대로 안 된다고 주님 발로 차고 때리고 난리 나.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놔주는 게 아니고 마박을, 오늘 집에 가서 보자. 결국은 주께서 자기 할 일 다 하고 집에 가서 네가 오늘 밤에 반성해봐라. 네가 오늘 그렇게 나와서 되나. 하나님하고 이야기하는데 네가 그렇게 하면 되나. 따지고 들면 회개하죠.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렸습니다. 그런 관계를 긍휼의 관계 아닙니까. 그만큼 우리는 복종하지 않는 거예요. 순종은 우리한데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순종이 안 되는데 마귀가 보기에 결국 순종한 것처럼 만들어버려요. 자기가 보기에도 우리는 한 순간도 하나님께 순종한 적이 없어요. 만날 대들고 불평하는데 마귀 쪽에서 보면 순종한 게 돼버려요. 그만큼 주님의 완력이 셉니다. 우리를 안 놔줘요. 기어이 데려간다고. 기어이 구원시킨다고. 지금 그 작업을 출애굽기 3장하는 거예요. ‘모세야’라고 부르지요.

선택이라 하는 것은 인간 쪽에서 하는 선택과 주님 쪽에서 하는 선택이 다르다. 핀트가 안 맞다. 그러면 주님 쪽에서 하는 선택은 뭐냐? 반드시 그 안에 꼬챙이가 있는데 꼬챙이가 누굴 겨냥한다? 장차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과 연결된 그런 꼬챙이가 꽂혔으면 그 사람은 선택받은 사람이고, 영적 사람이고 그렇지 않고 자기 육적인 구원을 탐낸다면 그건 꽂힌 게 없기 때문에 그 사람, 자기가 괜히 구원받고 싶어서 선택론 주장한 사람이다 말이죠. 캘빈의 선택론. 그런 선택론은 성경적 선택론이 아니지요.

아무리 창세전에 예정됐다 해도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내가 죄인이다. 하는 거기에 나와요. 오늘 집에 가거든 보이소. 배때지에 뭐 꽂혔는가.

그러면 방금 제가 순종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하나 어려운 게 있어요. 주님 앞에 모세가 순종했잖아요. 질문입니다. 주님 앞에 모세가 순종하기 전에 딴 데 순종했습니까, 순종 안 했습니까? ①순종했다. ②순종 안 했다. 순종하고 있었어요. 기존 체제에. 이걸 바로 미셀 푸코란 사람이 상세하게 풀어냈지요.

인간은 자기가 인간이 근대 과학이 발달한 주체가 주체라 했는데 가만히 조사해보니까 인간은 주체라 하는 것은 주체가 아니고 허수아비였습니다. 기존에 있었던 체제, 사회, 국가, 가정, 교회. 모든 체제 속에 사람은 순응하지 않으면 이 땅에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순종하지 않고서는 하나도 순종하지 않는 법이 없어요. 기존에 있는 모든 도덕과 윤리와 법도라는 것, 상식이라는 것 여기에 사람은 다 주눅 들면서 거기에 자기 행동을 결정짓게 됩니다. 이 분위기에서 내가 이 행동을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 이 자체가 벌써 순종이에요.

그래서 이걸 제가 왜 이야기하느냐 하면, 기존 체제에서 이미 순종하고 있는 인간을 주님께서 입 다물라 하고 떨기나무에 나타나서 새삼스럽게 모세에게 지시를 내렸다는 것은 모세로 하여금 기존 자기도 자유롭게 자의로 자기 뜻대로 마음대로 선택하며 살아왔다고 하지만 모세 본인도 모르는 기존 체제 안에서 모세가 갇혀 있음을 새삼스럽게 밝혀내는 새로운 체제가 도입됐다 이 말입니다. 어렵다, 어려워.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게 되면, 하나님의 계시가 모세라는 개인을 향하여 주는 계시가 아니고, 현재 모세 본인도 몰랐던 기존 체제, 이게 애굽이죠. 기존 체제가 이미 등어리 뒤에 엄청난 검은 세력으로 있음을 아울러 밝혀내면서 이 체제를 주님 주시는 언약 체제 속으로 새삼스럽게 순종하도록 바꾸는 작업을 모세로부터 시작한다 이 말입니다.

그 대목을 봅시다. 그 대목이 바로 3장 12절입니다. 누가 읽어볼까요?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됐습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그 다음에 지명이 무슨 지명입니까? 어디에서? ‘애굽’이라는 지리적인 애굽이 아닙니다. 애굽적인 사고방식, 애굽적인 기존의 체제입니다. 애굽의 문화, 애굽의 삶의 방식, 육적인 방식. 그 애굽에서 빠져나와서 하나님을 섬기게 함으로 말미암아 기존에 애굽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죄악을 남기느냐를 우리가 알아야 ‘아하, 이런이런 것들이 주께서 싫어하는 거고, 나중에 제사법에 나오는 이런 것 때문에 어린양이 우리 대신 죽어야 되는구나. 왜 유월절의 피가 이런 것 때문에 애굽 같은 데서는 피가 아니면 우리는 용서받을 길이 없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된다 이 말이죠.

젊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피 하면 이렇게 생각해요. 애들은 율법적이기 때문에. 콜베르그의 신앙발달과정이란 게 있어요. 대략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어릴 때부터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선악과 몰라요. 하여튼 자기가 연구해 본 것에 의하면, 인간은 날 때부터 선과 악, 악과 선의 대립체계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항상 선은 취하고 악은 버리려고 한다는 거예요. 어린아이들도.

따라서 애들 때 예수 믿으라고 하면 그걸 어떻게 받느냐 하면, 예수님이 누구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엄마 예수 믿는 게 옳은 일이야.”라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애들 관점이 뭐냐? 옳은 일에는 복 받고, 나쁜 일에는 벌 받는 겁니다. 선악 체계니까. 그래서 “예수 믿으면 컴퓨터 게임 두 시간 더 하게 해줄게.” 할 때 그게 보상체계가 되는 겁니다. “아하, 착한 일 하면 이런 보상을 하니까 그 착한 일 중 하나가 엄마 말대로 예수 믿으면 하나님이 나한테 착하다고 해서 앞으로 행운이 찾아오고, 만약에 교회 안 가고 예수 안 믿으면 이게 나쁜 짓이 되서 오는구나.”라고 그런 체계가 오는 거예요.

이것은 어린애만 그런 게 아니고 어른이라도 교회 나오기 직전까지 일반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교회 나오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착한 일이기 때문에 교회 나오고 난 뒤에 지금보다 사업도 잘 되고, 가정도 화평해서 교회 나오는 착한 일 때문에 절에 가는 것보다 복을 더 받기를 원하는 심보로 교회 나오는 거예요. 영적으로 어린애 아닙니까.

어린애는 텅텅 비어있는 게 아니고 율법으로 가득 차 있지요. 그 체제를 안 바꾸고 그냥 교회 다녀버리면 자기 의를 놓치면 안 되지요. 놓치면 지옥 가는데. 그러니 교회 와서 뭐 해야 합니까? 마일리지를 계속 쌓아야 되겠죠. 교회 다니기 전에 미처 못 했던 술도 끊고, 담배 끊고, 헌금도 많이 하고, 계속 해야 되는데

심지어 어떤 교회 가면 뒤에 그래프를 그려놨어요. 막대그래프를 그려서 주일학교에 보면 달란트 줘요. 헌금한 사람 하면 빨간 걸 올려주고. 그러면 교회 올 때마다 비교하는 거죠. ‘최 집사, 저만큼 올라갔네. 나는 이만큼. 더 높네.’ 그걸 비교 시켜서 경쟁심을 유발시켜서 스티커 붙이고, 가끔 행운권 추첨하고. 온갖 것 다 하죠. 행함이죠. 점쟁이처럼. 점쟁이는 반드시 뭘 준다? 행함을. 이걸 하시면 효과 봅니다.

우리는 걱정 안 해도 돼요. 왜? 배때지에 뚫리는 게 뭔가 파이프가 배때지에 관통해서, 아프리카 토인들 바비큐 묶어서 불에 구워먹으려고 춤추기 직전에 우리는 꽂혀있는 심정으로 우리는 배때지에 주님의 언약이 관통해서 죄인으로서 빙빙 돌려가면서 천사가 와서 소스 바르고 주님은 떠나시고. 그래서 주님이 소스 바르면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 지금 우리는 그런 사정이에요. 얼마나 감사합니까. 확정 진리, 확정 날짜에요. 이사한다고 확정 날짜 잡았어요.

확정 날짜도 있지만 확정 금리. 이걸 왜 생각 못 했을까? 아무리 주식 떨어져서 우리 알리안츠에서는 반드시 확정 금리 쳐줍니다. 펀드 넣으면 해줍니다. 확정 금리 있네. 진리가 이래 다가와야 돼요. 아무리 못 해도 우리는 뚫리면 구원받습니다. 얼마나 그동안 시달렸습니까? 소스 바른다고.

애굽을 거치지 않고 시내산에서 그냥 농사짓다가 그냥 하나님 섬기는 것은 섬김의 의미 없어요. 애굽을 거쳐 와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는 혼자 있는 게 아니고, 우리가 혼자 있다고 여겨도 무언중에 계속해서 세상에, 마귀에 굴복하고, 고개 숙이고, 절하고 있습니다.

지금 출애굽기 하면서 이걸 다시 해봅시다. 모세가 여기 있고, 하나님께서 계시를 줬지요. 사다리죠. 모세는 질문 못 합니다. 언약이기 때문에. 사다리가 넘어지면 이스라엘의 앞으로 역사가 확정돼버리죠. 이게 넘어질 때 이 언약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바로 아브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들어있겠죠. 언약 안에 이삭적인 인간이 있고, 야곱적인 인간이 있죠. 이것이 덮쳐버리면 결국 언약을 위해서 애굽적인 이스라엘이 필요하죠.

그래서 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애굽에 순종하는 그 체제, 도대체 내가 순종한 내가 평범하게 사는데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도 이 악한 세상에 순종하고 절하면서 사는 게 된다는 것을 새삼 까발리는 그러한 경우를 충분하게 겪어야 돼요. 겪는데 조금만 하고 오 분 쉽시다.

홍해 있잖아요. 애굽 군대가 홍해로 몰아넣죠. 그러면 애굽 사람들 보기에 홍해가 애굽의 끝이죠. 애굽 땅은 자기가 사는 땅이죠. 생존 땅이죠. 그럼 홍해는 못 살잖아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어디다 집어넣습니까? 사람들이 살 수 없는 홍해에 집어넣음으로 말미암아 홍해로 인하여 애굽인과 히브리인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죽음을 사용한다는 거예요. 환장하지요.

“저 인간들 어디로 도망가. 바다로 도망간다는 거야. 왜 사람이 살지 못하는 바다로 가는 거야.” 사람이 살지 못하는 바다로 하나님께서 쫓아버림으로 말미암아 애굽인들은 죽었다 깨나도 히브리인들이 가는 길을 올 수가 없다는 거예요. 애굽 군대가 뒤따라오다가 죽잖아요. 어딜 감히 넘봐? 어딜 감히 언약 세계에 들어옵니까.

성도가 어느 정도로 자부심을 가져야 되느냐 하면, 애굽인 같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도 닦아도 올 수 없는 그 한계마저 넘어버린 세계, 그게 뭐냐? 죽음을 넘어버린 세계. 홍해에 기어들어가는 것은 죽으려고 환장한 거예요. 애굽인과 히브리인들은 겉만 보면 같은 인간이라서 별 것 없습니다. 같이 하루 세 끼 밥 먹고, 옷 입고 하지만 막상 하나님의 언약이 개입해버리니까 하나는 죽어도 사는 집단이고, 하나는 살아도 죽은 집단이고. 그래 되는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이 홍해 건너고 시껍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죽음에서 살려주다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했잖아요.

지금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왜 구원하시는가? 십자가가 아니고, 기적 받았나, 병 고쳤나 이것으론 세상 사람과 구분이 안 돼요. 세상 사람과 천국을 구분 되는 방법은 중간에 뭘 집어넣는다? 죽음을 집어넣어야 되는데 결국은 이건 뭐냐? 인간으로선 불가능성. 이번 주 설교 할 것 다 나온다. 설교할 것도 없다.

그래서 홍해 건너고 난 뒤에 광야가 불가능한 세계에요. 인간이 가능한 것은 전부다 다 치워버렸어요. 가능한 걸로 한 발자국도 이동할 수 없습니다. 왜? 이 안에는 이미 죽음 속의 세계기 때문에. 죽은 자가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죽은 자가 어떻게 구원해요. 안 되지요. 그러면 여기는 하나님의 언약만 작용할 뿐이죠. 그 언약이 만나가 되고, 생명의 떡이 되고, 생명수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애굽에 살던 시절의 히브리인들은 우리는 지금 드라마를 다 봤기 때문에 “아이고, 홍해 건너가 산데이.” 하여튼 영화 미리 다 봐서 이야기해주면 재미 하나도 없어요. [마더]란 영화에 진짜 범인이 아들 맞나, 안 맞나? 하는 그건 입 다물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어떤 놈이 보고 와서 아들이 죽인 것 맞다 해버리면 재미 하나도 없잖아요.

이미 우리는 드라마를 보고 홍해 건너가 살고 알지만 지금 막상 항상 사람들은 그래요. 막상 애굽인들 입장에서 보세요. 이건 미친 짓이에요. 이거는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어떻게 홍해에 가서 삽니까. 그래서 데모 했잖아요. 홍해 앞에서. 우리가 죽을 데가 없어서 이렇게 몰아넣는가?

신자와 불신자가 교회 나오고, 안 나오고가 아닙니다. 내가 얻은 생명은 어느 정도로 세냐 하면, 설사 죽는다 할지라도 죽음도 내가 갖고 있는 생명을 안 빼앗긴다는 그걸 알고 있어야 그 사람이 신자입니다. 그게 신자에요. 홍해의 흔적을 갖고 있어야 돼요. 가슴 속에 철렁철렁해야 된다고. “나는 예수의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노라” 무슨 흔적 말입니까? 개한테 물린 흔적 말고. 죽어도 살아난 흔적이 있어야 돼요. 그게 바로 십자가입니다. 목걸이만 달랑달랑 달고 있으면 안 됩니다.

내 안에 뭔가 관통하고 있는 것, 예수님까지 연결돼있는 그 꼬챙이, 파이프 때문에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하나밖에 없는 아브라함 약속에서 흘러나오는 성령과 생명이 꼬챙이를 통해서 우리 몸에 작용할 때 죽었던 우리 몸도 매일같이 죽고, 매일같이 살아나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20090703a 울산강의.hwp (53.5K), Dow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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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3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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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