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7월 10일 고후12장 18절 동일한 성령과 평화(공동승리)
안산 7월 10일 고후12장 18절 동일한 성령과 평화(공동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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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10 고후12:18 동일한 성령과 평화 (공동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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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7 10:45
안산090710고후12장18절
안산090710고후12장18절‘동일한 성령과 평화’ / 이근호 목사
2010-10-14 11:30:05 이름 : 박온정
오늘은 고린도후서 13장을 합니다. 13장을 하는데, 여기 12장18절을 보게 되면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여기에 “동일한 성령” 이라고 돼있죠? 그런데 세상 살다보면 사람마다 과거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함’이 성립이 안 되죠? 친구로서 가까이 지내고 부부로서 가까이 지내도, 심지어 부부라도 친정집이 있고, 시가집이 있기 때문에 동일한 성령이 잘 안돼요.
정목사님 와야 내가 물어볼 수 있는데, 부부간에, 오래 사셨는데 동일함이 되던가요? 나이가 들어도 안 돼요, 택도 없죠, 동일함이... 그런데 성경에서는 ‘동일한 성령’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성경에서 ‘너희들 동일한 성령 받았지?’ 라고 물으면 ‘예, 동일한 성령 받았어요’ 라는 말을 할라치면 뭔가 동일한 공통점이 있어야 그 말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로는 동일한 성령 해놓고 제각기 형편에는 ‘동일한 성령’ 성립이 안 됩니다. 오늘 강의에서 ‘동일한 성령’ 할 때, 성령께서 분명히 주셨으면 성령 받은 사람끼리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오늘 고린도후서 13장 3절4절을 중점으로 할 건데, 하기 전에 이것부터 결론 맺고 하겠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동일한 것이 나오는데, 그 동일한 것이 뭐냐! 한다면 저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그것이 뭐냐면, <평화>예요. 평화.
기독교에서 ‘평화’라는 말 잘 안쓰는데 천주교에서는 천주교 다니는 사람의 가게에 가면 ‘이곳에 평화가 깃들지어다’ 라는 문구가 나오죠. 여기에 평화란 말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마태복음 10장12절에 나옵니다. 그 대목을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만약에 어떤 집에 가든지 간에 ‘제가 여기 평화를 주러 왔습니다.’ 할 때 ‘싫소!’ 하면
그 평안은 그 집에 머물지 않고 그 몫은 너에게 되돌아올 것이고, 만약에 ‘그 평안을 주시옵소서,’ 라고 한다면 ‘너나 당신이나 다 같이 평화 될 것입니다.’ 라는 거예요. 자, 여기서 조금 어렵습니다. 평화라는 것이 개인 소유용입니까 아니면 공통적으로 누리는 겁니까. 공통적으로 누리는 거여요. 평화가 개인 소유가 아니죠? 더불어 함께 누리는 거죠?
여기 A라는 사람이 있고 B라는 사람 있고, 동일한 평안, 같은 평안을 누리려면 이 평안은 내부에서 만들지 못하고 외부에서 주어야 되는 겁니다. 외부에서. 이 평화가 외부에서 주어져야 되는 겁니다. 이 평화가. 늦게 오신 분들을 위해서 다시 합니다. 지금 고린도후서 12장18절 설명중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동일한 느낌을 받는다. 성령을 받게 되면 성령 받은 사람끼리는 너, 나 차이 없이 동일한 느낌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평화입니다.
그런데 이 평안이라는 것을 언제 들어봅니까. 평화라는 말을 전쟁개념, 남북대치개념, 정치적 개념으로 사용하거든요. 전쟁이 끝난 상태. 여러분 예수 믿으면서 우리가 아는 상식은, 예수 믿으면 고난의 길을 가잖아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는데, 맞죠? (맞습니다 -녹취자)
십자가에 남들은 넓은 길로 가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좁은 길로 가죠. 좁은 길로 가는 것은 길이 협착하고 찾는 자가 적고, 외롭잖아요. 이걸 가지고 고난의 길이라고 하죠. 그래도 우리가 그 길을 포기 못하는 것은 그 좁은 길 끄트머리에 뭐가 있습니까? 좁은 길 끄트머리에 ‘영생’이 있잖아요.
그리고 넓은 길로 가면 뭐가 없다? 넓은 길 끄트머리는 멸망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언젠가 제가 그랬잖아요. <마지막 웃는 자가 승리자다.> 토끼하고 거북이하고 시작에는 토끼가 빨랐고 나중에는 거북이가 빨랐잖아요. 거북이는 한 정상에 있는데 토끼는 중간에 잠을 잤지요. 왜 잠을 잤냐 하면 하나님께서 잠이 오게 하시니까 자야 돼요.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리자인데, 마지막에 영생이 있기 때문에 좁은 길로 간다면, 우리는 늘 아는 게 뭐냐 하면, 그게 무슨 길이다? 바로 고난의 길로 알고 있다 이 말이지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뭐냐 하면, 너희에게 뭐가 있을지어다? ‘평화가 있을지어다’ 하니까 이론상 일치가 안 되잖아요. 일치가 안 되죠. 그런데 예수님 입장에서는 너희에게 고난과 평화가 일치 된다는 겁니다. 고난이 찡그림이 아니라는 겁니다. 찡그림이. 전에 교회에서 제가 그 소리 했어요. 고난을 찡그림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금식하는 대목에서 그랬습니다. ‘여러분, 금식하세요. 밥 배터지게 먹으면서 금식하세요.’ 이렇게...
배터지게 먹으면서 금식하라! 이게 무슨 뜻이냐 말이죠. 여러분 철야하세요. 이불 속에서 잠 주무시면서 철야하시기 바랍니다. 교인들이 못 알아들어요. 물론 못 알아들으라고 한 것이지만. 여러분, 그게 예수님의 뜻입니다. 세상에서 하는 말과 반대로 하면 되요. 세상에서 힘들다 어렵다 하는 것은 우리가 지레짐작 겁을 집어먹고 주의 좁은 길로 가면 이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고 찡그리는 것, 불편함, 힘듦, 억지, 허겁지겁, 자꾸 그런 것을 생각하는데, 고난과 은혜에 뭐가 있다? 비로소 평화가 있다.
이제 평화를 설명해야 되겠어요. 평화를 설명해야 그 다음에 설명되니까. 성령을 받은 사람이 있다 합시다.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을 육이라 하죠? 예를 들어, 대통령은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이고 성경 받은 사람은 거지다. 어느 것이 팔자가 더 좋습니까? 거지 나사로다 할 때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부자고, 성령 받은 사람은 거지 나사로다. 어느 것이 팔자가 더 좋습니까. 분명히 성령 받은 사람이 낫지요? 그 이유가 뭐냐면 성령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거듭나야 하늘나라를 보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교회 당회장인 제가 규정하는 게 아니고 세상의 모든 성경에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교회가면 입구에 서서 ‘성령 받았습니까?’ ‘못 받았다고요?’ ‘가시기 바랍니다.’ 이런 교회를 못 봤어요.
제가. 그런 교회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천국에 못 들어간 사람들의 집결소가 되어버려요. 천국에는 못 들어가고 자기들끼리 단골 동호회, 친목계, 틈만 나면 놀러가고 등산 가고, 이런 노는 장소로서의 교회지, 구원은 못 받고 자기들끼리 잘도 노는 그런 교회가 되어버렸지요?
분명히 성경에는 성령 받지 아니하면 하늘나라 볼 자가 없음이라. 이건 뭐,‘ 죄송시러워도 할 수 없어요. 성경이니까. 그런데 육적인 사람은 부자가 되고 재벌이 된다 하더라도 하늘나라 못 가니까, 하나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이 평화입니까. 성령 받은 사람이 평화지요. 이건 다른 말로 하면 ‘평안함’ ‘안도감’ 또 다른 말로 하면 ‘여유만만’
분명히 좁은 길로 가야되는데, 좁은 길로 가고 고난 받으면서 우리 마음에 화~ㄱ 하고 퍼지는 것은 여유만만, 안도감(휴~클날뻔했다), 평안함, 평화. 여기 부자가 재산이 2천억 되고, 거지는 재산 50만원 된다 합시다. 남들 보기에는 2천억이 부럽겠지만 거지는 2천억에 기죽지 않습니다. 왜?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자, 이제 묻습니다. 성령 받은 특징이 뭘까요? 전 재산 50만원이고 옆 사람은 2천억이면 묻습니다. 성령 받은 특징이 뭡니까? 목사님 얘기해보세요. 옆집에 2천억 있는 거 알아요. 그 집이 어찌 사는지 알고, 자가용 3대인 거 알고, 촌에 부동산도 10만평 있다는 거 알아요. 해외여행 다니는 것도 알아요. 두 눈으로 그걸 보면서 무엇을 느낀다? 이 거지가 무엇을 느낀다? ‘여유만만!’ ‘에휴~ 부자되면 클날뻔했다’(안도감), 평안함, 평화. 이게 바로 성령 받은 ‘동일함’입니다.
성령을 받게 된 목사, 그런데 교인 수는 자기 부인까지 합해서 네 명, 앞에 있는 성령 안 받은 목사는 3만5천명, 그걸 늘 쳐다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죠. 성령 받은 사람이. ‘아휴, 큰일 날 뻔했다, 주여! 감사합니다.’ 3천명 모아야 구원받는다 하면 나는 지옥 갑니다. 왜? 무슨 재주로 3천명 모입니까. 나는 기껏 해봐야 4명인데, 4명밖에 안 되도 성령 받은 게 어딘데... 천국가게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안도감, 평안,’ 그게 성령 받은 사람의 동일함입니다. 동일함.
그래서 그 대목에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에 베드로가 옥에서 평안하게 잠을 잤어요. 요즘 같으면 옥에 갇혀있으면 사식 넣고 면회 오고 구치소에 교인들 와가지고 찬송 불러주고, 기도해주고, ‘목사님, 참으이소! 우리가 꺼내 줄게요.’ 난리 할 건데 베드로는 감옥에서 잠잤어요. 전도하면서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지요? 편안하게 잠을 잤습니다.
어느 정도 잠을 잤느냐면 흔들어 깨워주어야 할 만큼 잠을 잤습니다. 누가 흔들었냐 하면 천가가 깨웠어요.
천사: 일어나~ 일어나~
베드로: 누군데 잠 깨우고 난리야?
천사: 나가자
베드로: 뭔데!! 좀 더 자자
천사: 옥 문 열렸어! 빨리 나가자!
그래서 나가서 잠도 못자고 또 일했잖아요. 짜증스럽게! 이걸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고 했어요. 세상이... 톱으로 켜는 것과, 돌에 맞는 것과, 광야에 유리한 것과 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사람들. 그 사람이 바로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열두 제자처럼. 열두제자가 오순절 성령 받고 난 뒤에는 이제는 거칠 것이 없어요. ‘거침없는 하이킥!’
거칠 것이 없어요. 거칠 것이... 바로 그런, 성령 받은 사람의 하늘나라 카메라가 줌~인, 쫘악 땡기면서 하늘나라 천사들이 카메라 찍을 때 부자들을 찍은 것이 아니고, 거칠 것이 없는 안도감과 여유만만 한 사람에게 초점을 계속 맞춥니다.
이게 제 이야기가 아니고, 누가복음 16장에 거지나사로가 죽을 때 누가 오지요? 부자가 죽을 때 아무도 안 왔는데 거지 나사로 죽을 때 누가 왔어요? 천사가 왔잖아요. 천사에 의해서 VIP 대우 받으며 받들려 갔어요, 카메라에... 천사에게 받들려 갔어요. 지금 우리는 여유만만함과 안도감과 평화를... 하나님께서 이런 평화를 주시는지, 평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내력을 알아야 되는데, 그전에 평화라는 것에 우리가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지 그게 고린도후서 13장 4절에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13장4절:『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약하나” 저는 시험칠 때 괄호를 딱 했으면 좋겠어요. ‘... 우리도 저희 안에서 ( ) 괄호에 들어갈 말: 1) 강하다 2) 힘세다 3) 잘났다 4) 약하다. 몇 번입니까? ’약하다‘ 약하지요?
‘...약하나 너희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신앙이라 하는 것은 약한 나를 안 보는 게 신앙이에요. 내가 약한지 강한지를 몰라야 돼요. 내가 안 보여야 돼요. 마치 조명발에 비치면 자기가 안 보여요. 저 하늘의 태양이 가까이 와버리면 태양의 광채 때문에 내가, 내 자신이 생각 안 나요.
복음의 광채가 다가왔을 때, 이사야 6장5절에 뭐라 했냐면, “화로다, 내가 망하게 되었구나.” 했죠. 그때 이사야 기분 째졌습니다. 드디어 만났어요. 말로만 나불나불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경책에 강의하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그냥 양이나 갖고 제사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에요. 진짜 아다리! 진짜 만나고 난 뒤에는 자기를 마음껏 주저앉히고 내려 앉혀도 기분 좋아요.
자기를 부정해도 기분 좋아요. 어느 정도 부정하냐면, “화로다, 내가 망하게 되었구나. 내가 망하는 백성과 함께 있었습니다.” 기분 좋게 이야기한 겁니다. 기분 좋게. 주님 만나고 난 뒤에는, <저까짓 거 망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뭐라 하냐면 ‘그렇다면 나를 위해서 누가 가지?’ 하니까 ‘저요! 제가 가겠나이다’ 왜? 봤으니까! 제가 봤으니까.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제일 먼저 3층천 나오지요? 사도바울이 3층천 보고 나서 뭐라 했습니까?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신경을 뚝, 끊었어요. 자신의 한달 수입이 얼만지, 교인 수가 몇 명인지 그것도 관심이 없어요. 아내가 집 나갔는지 관심이 없어요. 아들이 공부하는데 대학에 또 떨어져 3수를 하는데도 관심이 없어요.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하는데요뭐, 여유만만, 안도감, 평안.
그래서 이 평화가 어떻게 오느냐? 로마서 3장 봅시다. 이제 이것을 본격적으로 설명을 하려 합니다.『로마서3장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간과看過라 하는 것은 ‘그냥 넘어가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집 안에 있는 모든 죄인은 죽음의 사자가 와서 맏아들 죽이는데, 어린 양의 피만 보고 죽음의 사자가 어떻게 나와요. 그냥 넘어가죠? 그게 간과예요. ‘이 집에는 해당사항 없음’ 하고 그냥 넘어가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피를 보고 넘어간 거예요. 이걸 가지고 ‘화목제물’ 하니까 말이 어려워요. 화목제물이라고 하면 뉘앙스가 잘 떠오르지 않아요. 화목제물, 이게 뭐냐 하면 ‘평화’입니다 평화.
<평화>라는 말의 뉘앙스는 ‘고요’입니다. 고요. 예를 들면, 어떤 아파트가 있는데, 그 아파트는 완벽하게 화제에 예방조처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깨끗한 아파트가 있다고 칩시다. 만약에 그 아파트 주변 전체에 불이 났다, 불이 났는데 다른데는 ‘불이야~!’ 하고 도망치고 이러는데, 그 아파트 안에서는 ‘고요’ ‘평화’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이 평화가 계속 살아있는 것. 그것이 성령이 주는 ‘동일함’ 성령 있는 사람의 특징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의 고요함과 평화를 알게 하기 위해서 우리 바깥에 요란함을 일으켜요. 요란함을 일으키는데 그중에 예를 들면 ‘북핵문제’ 오늘 아침 같은 경우의 ‘컴퓨터 바이러스문제’ 경제문제, 석유문제, 석유 값 인상, 주태문제, 주식 값 폭락, ‘학교가기 무서워요’ 하는 온갖 사회문제, 노무현태통령의 붕어바위에서 뛰어내리는 문제, 온갖 분주함과 요란함을 발생케 합니다. 그리고 서울 시청 앞의 끊이지 않은 시위, 그리고 삼성자동차의 비정규직 문제, 온갖 정치, 사회, 문화, 교회문제까지 온갖 것을 다 일으켜요.
무엇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성령이 주는 이 고요함, 평화가 가치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온갖 것을 다 동원해 들썩거려요. 누가요? 하나님께서. 누구를 시켜서? 마귀를 보내가지고 이리 쑤시고 저리 쑤시고, ‘네가 이래도 혼란 안하나? 이래도 네가 여유만만?’ 이런 식으로 계속 들쑤시는 겁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나오죠.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이 일곱 가지 조항은 인간사에서 우리가 마주칠 수 있는 최악의 상태를 나열한 겁니다.
특히 기근, 적신, 가난. 아...가난하면 눈에 뵈는 게 없습니다. 집에 돈이 없으면 예수도 하나님도 없어요 그냥. 하나님 원망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끊어집니다. 그 정도로 돈 문제,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매춘부와 인터뷰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기자가 물었지요.
기자: 매춘행위가 나쁩니까?
매춘부: 아니요
기자: 안 나빠요?
매춘부: 예, 안 나쁩니다.
기자: 아주머니에게 딸이 있습니까?
매춘부: 딸이 있지요.
기자: 그럼, 딸도 매춘부 시킬 겁니까?
매춘부: 아니요!
기자: 아니, 나쁘지 않다면서 따님은 왜 창녀를 안 시키려합니까?
매춘부가 없으면 성폭행이 더 생기기 때문에, 자기는 포주인데, 자기 행위는 정당하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포주 말고 매춘부와 인터뷰하는데, 지금까지 매춘부 생활 스무 살부터 했는데 ‘앞으로 또 할 겁니까?’ ‘또 할 겁니다’ ‘왜 또 합니까?’ 사회에서 직장 구해주고 다른 직장 구해주었는데 왜 매춘부 하려 합니까? 다른 일, 노동해봐야 한 달에 천만 원 못 번다는 겁니다. 한 달에 백만 원 아니고, 천만 원...공장가서 아무리 일하고 십일조 해봐도 연봉일(?)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매춘부도 돌아옵니까?’ 묻자 80퍼센트가 돌아온다는 거예요. 돈 씀씀이, 또 쓰는 가락이 있기 때문에 그 수입이 안 되는 이상은 돌아온답니다.
결국은 우리가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라, 돈 되는 곳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뭐든 돈 되면 뭐든지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돈 땜에. 그런데 이 돈이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고 예수고 안 보이지요.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평화는 뭡니까. 돈이 있을 때만 평화고 돈 없으면 불안하죠. 천국도 그런 사람은 파킹 안 시켜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에 넣어주기 위해서 돈과 관계없고, 가족의 이별, 배우자의 죽음, 또는 자식의 죽음, 자식이 대학에서 떨어지는 것.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천국 가게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을 준 거예요. 그런데 성령 받은 우리가,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요? 몰라요? 잘 몰라요.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귀를 보내가지고 작대기로 우리를 들쑤시는 거예요. 자꾸만.
자꾸 쑤시니까, 자꾸 쑤시면 우리는 ‘하나님, 이럴 수가...’ 첨에는 그래요, 사람 속에 신자 없으면 신자 아닙니다. 이 말은 주도권은 본인이 쥐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이 나의 인생의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그 주도권을 쥔 성령께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고요함과 여유만만과 안도감과 평화롭게 하는 그 전략, 그게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분명히 남들 같으면 하나님 버리고 도망쳤을 거예요. 진짜 성령 받은 사람은, 자기가 만들어낸 가짜 성령 말고, 지가 조작해낸 성령 말고, 진짜 성령 받은 사람은 언제 하나님 은혜를 아느냐 하면, 왠지 넉넉해지고 왠지 평안해지고... ‘무슨 일 있어요?’ ‘아이고, 제사 지내는데 어쨌다 저쨌다, 네 형수가 한바탕 하고 갔다야,’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물을 정도로 물을 정도로 ‘그게 어쨌는데, 무슨 문젠데?’ ...
『천하 아들이나 자식이나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치 않다.(마10:37)』모든 성경말씀들이 뭔가 우리 속에는 세상을 이긴 큰 분이 우리 인생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배치로써 적재적소에 깔아놓은 엑스트라입니다. 모든 성경말씀에는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오죠? 율법을 지켜서 의를 만드는, 자기 의죠. 율법을 자기가 지키니까 그 의는 자기 의죠. 율법을 지켜서 자기 의로 삼는 사람이 바로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아서 구원받은 사람은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은 율법을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을 받고 난 뒤에 뭐라 하냐면 이 사람들이 <나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았어!>라는 말을 해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런 말을 못합니다. 유대인들이 그 예수를 죽여버렸어요. 특히 사울.
사울이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을 이단으로 몰아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이야기하기 전에 베드로 설교 듣고 유대인들도 하는 말이, 우리는 율법으로 ‘자기 의’를 이루어서 그래서 하나님 나라 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베드로가 하는 말이, 그렇다면 왜 이방인들을 율법교라고 할 것이지, 갑자기 성령이 왔겠느냐. 성령이 왔다는 말은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너희들을 시기 나게 하기 위해서 율법... 율법 속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대표적인 게 뭐에요?
안식일, 또 하나는? 십일조.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건 이 두 가지에요. ‘주일성수’와 ‘십일조.’ 우리나라의 복음은 이 두 가지밖에 없는 것 같아요. 교회는 주일성수 하시고 십일조 하세요. 광고 듣고 십일조하고 주일성수하면 교회 되요. 그런데 이 율법! 율법과 상관없이 성령을 받고 난 뒤에 부터는 이런 십일조 했니 않니, 주일성수 했니 않니, 이거 여부와 관계없이 마음은 안도감과 평안함 있습니다.
교회에서요, 당신이 서리집사에서 안수집사 되려면 목사 앞에 나가가지고 서약서 써야돼요. 서약서 쓰고 (이거 저도 경험있습니다. -교회를 박차고 나온 온정이 이때부터 잘 내던 십일조 안 내고 절을 도망쳐 나왔음, 그래서 집사 된 지 30년도 권사 못됨-) 안수집사 시켜줍니다. 장로는 말할 것도 없지요. 제가 알던 어떤 장로님이, 장로가 되려면 노회 가서 심사를 받는대요. 그 장로님이 전에 내가 있었던 시골교회 장로님인데,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이근호 목사가 십일조 없다’고 했다면서요? 노회에서 첫 번째 묻는 겁니다.
노회에서 첫 번째 묻는 게 제 이름(이근호 목사) 거론합니다. ‘이근호 목사가 십일조 없다고 했다면서요?’ 그 장로님이 ‘성경 신약 어디에 그런 게 있습니까?’ 그리고 뛰쳐나와 버렸어요. 그래도 장로 되기는 됐습니다.(장로가 무슨 권세라고..녹취자) 10퍼센트를 하든지, 20퍼센트를 하든지 그거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성령님과 그 사람과의 대화 할 문제지 목사라는 제 삼자가 또는 타인이 관여할 사항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2장27절에 보면 나오죠?『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너희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지시하는 대로 살아다오! 부탁한다 제발! 목사, 총회장,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당신 속에 성령 없으면 애초부터 당신은 구원 못 받을 사람이니까, 교회와도 장로도 목사도 소용없는 거고. 만약에 당신 속에 성령 있다면, 구태여 남에게 물을 필요가 있다? 없다? 없다는 거예요. 왜?? 어느 누구도 성령님을 대신할 수 있다? 없다? 어느 누구도 성령님을 대신할 수 없어요. 왜?? 여러분 죄를 위해 죽으신 분은 예수님이지, 이목사도 아니고 어느 누구도 아니예요.
그래서 그 뒤에 연리지 재판을 하는데 또 나오는 거예요. ‘이목사는 주일성수 않는다는데, 그러면 사도행전에서 이방인들 율법으로 구원받았습니까?’ 막 뭐라고 해줬답니다. 아무소리도 못하더랍니다. 나에게 물어요. ‘무엇으로 구원받습니까?’ ‘예수님의 의로 구원받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니까 사회 보는 목사가 ‘예수님의 의라...예수님의 의라...’ 아직 잊혀지지 않아요 제가. ‘예수님의 의라...’ 자기는 첨 들어본 모양이라,
목가가 돼갖고, ‘예수님의 의라...’ 반박은 해야 되겠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 말이 맞거든요. 구원받는데 율법으로는 ‘자기 의’가 나오지만, 성령 받으면 누구 의로 온다고요? 예수님의 의. 목사 자신은 재판 중에 있는데, 자기가 ‘재판장’이다 말이지요. 제가 이 말 첨합니다. 오늘 안산 사람들 앞에서 첨합니다.
재판장이 세 명 있잖아요. 세 명이. 자기가 내게 묻는 거예요. ‘당신은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그래서 내가 ‘예수님의 의로 구원 받는다’ 하니까 아마도 신학교 다닐 때 들은 기억은 있고 자기가 평소에 하지는 않았지만 가만 들어보니 맞거든요. 반박해야 되는데 반박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고 난 뒤에 보따리 싸들고 나와 버렸어요.
이 싸움이 영적세계 안에서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데, 일반교인들은 주 관심사가 뭐냐면, 자기의 가족문제, 취직문제, 결혼문제 등 이 세상적인 문제가지고 자꾸 고난을 언급하고. 노아홍수 때처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이거면 그만입니까? 노아는 그때 방주 만들었어요. 그 방주 만든 아이디어가 세상 아이디어인 줄 압니까? 노아 아이디어 아니에요. 성령으로 받은 아이디어예요. 언약으로 하나님께 받은 아이디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성령 받았으면, 성령 받은 아이디어가 있어서 다른 사람이야 먹고 마시고 시집장가 가든 말든,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대로 살아가는 안도감과 평안함, 여유만만. ‘세상에 무슨 일 있습니까?’ 북한에서 미사일 쏘았다. ‘무슨 일 있어요?’ 하는 마음. 그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거 있으나 없으나 오늘밤 죽어도 구원받습니다. 왜? 성령 때문에.
제 말이 아니고 로마서8장10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너희는 죄로 인하여 죽을 몸이나 너희 속에 계시는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것이니라』거기에 십일조가 왜 있으며, 주일성수가 왜 필요하며, 재직회가 왜 필요하며, 당회가 왜 필요한지 그래서 몇 주 전에 이런 설교했어요. 우리교회에서.
여러분, 교회 없이 구원받는 재미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아멘) 여러분 교회 없이 구원받은 재미를 느껴볼래요?(지금 느끼고 살아여-녹취자) 한 달 되었네요. 그게 성령이 주신 자유함입니다. 자유함. 넉넉함이에요. 그런데 로마서 3장에서 왜 이런 자유가 주어지는가? 도대체 왜 이러한 넉넉한 평화가 주어지는 근거가 뭐냐 하면, 바로 로마서3장24절에 보면:『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감사헌금해서 생기는 게 아니죠? 어떤 드린 것도 없이 ‘의로움’ 받는 거예요. 그렇다면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이 뭐냐, 구속이란 말이 나왔는데 이거는, 값을 치루고 건진다는 뜻이 구속인데, 요즘말로 하면 이걸 <포클레인>, 코끼리란다. 이 말입니다. 포클레인이 여러분 어깨죽지를 집어서 올리는데, 대롱대롱 매달려 발버둥 쳐봤자 포클레인이 찝었으면 끝나는 겁니다. 이걸 구속이라고 합니다. 구속이란, 잡혔다면 못 빠져나와. 어쩔 수 없어. 이건 운명이야.
이방인에게 갑자기 성령 임하니까 이방인에게 묻습니다. ‘당신 어떻게 구원받았어요?’ ‘왜 저에게 묻습니까? 예수님께서 구원했어요.’ 라고 자기를 포클레인으로 집어준 그분을. 구체적이에요. 구체적. 석가모니가 아니고 대통령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예수라는 분이... ’ 구체적으로 지명해야 돼요. <예수라는 분이 그분의 피 값으로 값없이 우리를, 나를 건졌다.> 라고 고백하는 거, 이것이 성령의 기적이고요, 이 기적 앞에 모든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천재들이 하는 기적은 죄송하지만 기적이 아닙니다. 악마의 시험거리입니다. 악마의 유혹입니다.
토정비결을 봤는데 7월 달에 귀인이 와가지고...아이고 족집게네. 이런 거 있잖아요. 우리가, ‘꿈에 뭐 했는데 에고...그게 맞데’ 사람들은 은근히 기적이 맞기를 고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마귀가 그걸 알고 딱딱 맞아떨어지게 해 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적 쪼가리들을, 업적들을 목걸이 달듯이 쭉 모아져 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얘기한 요나의 기적밖에 없어요. 죽었던 내가 살아난 그 기적 말고 다른 기적 없어요. 예수님께서 나를 찝었다는 기적 외에는 없어요. 다른 것은 악마의 기적입니다. 그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거지꼴로 살아도 오직 편안한,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은 편안함이죠.
창기나 세리가 너희보다 천국에 먼저 간다 했어요. 제가 지금 뭘 이야기 하냐면, 평화, 이 평화의 근거가 뭐냐 이게 중요합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평화롭다.’ 왜 평화로우냐, 내 마음이 왜 고요한고.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왜 이리 평안한가.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주께서 포클레인, 구속하사 값없이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었다.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왜 평화냐 하면 이 의롭다함에 대해서 좋아하시는 분이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니고 누구냐 하면, 우리를 ‘의롭다’ 해놓고 혼자 좋아서 ‘하하하하’ 웃으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에요. 교회가는 것보다 더 좋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에요. 지금, 사람들이 어떤 점에서 제 말을 이해하냐면 ‘의롭다’하고 ‘구원받았다’ 하면 나 구원받았다, 해가지고 자기가 자기 구원을 ‘소유할라케요.’ 소유하면 그때부터 평화 끝났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 구원을 소유하면 구원은 끝났어요. 왜? 그다음부터는 벌벌 떨게 되요.
사람은 뭔가 가지면 가진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너무 조심조심 살아가요. 그러게 되면 그 사람 두려워서 못 살아요. 진짜 성령대로 하면 이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가지라고 준 의가 아니고, 이 의로 말미암아 ‘포착’된 의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콩고물이고 진짜 앙꼬는 뭐냐, 주님이에요. 예수님의 의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우리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내 솜씨, 내 자랑, 내 행위 이야기할 이유 없어요.
내 안에 주님 의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기뻐하는 게 뭐냐, 로마서 3장22절에 보면『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음에’ 기분 좋은 하나님 존재가 못 됐는데, 여기에 하나님 의를 집어넣어 놓고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낄낄낄’하는 거예요. 왜? 우리 행동이 똑바라서가 아니라, 자기가 집어넣어준 예수님의 의를 보고 그렇게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깐, 하나님에게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보존하기 위해서 우리 모든 행동거지와 우리의 모든 사생활이 ‘하나님의 의’ 내 의가 아니고, ‘나는 죄인이고 예수님만 의인입니다,’라는 쪽으로 행동을 하도록 조치를 해요. 모든 행동을. 그런 조치에 의하면 자동적으로 우리는 뭐가 됩니까? 죄인 되어야죠. 우리는 날마다 죄인 돼야 되요. 그래야 ‘나 같은 죄인도 내 속에 있는 주님의 의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라는 걸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 모든 성경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는 죄 지을 것밖에 없구나.’ ‘뭘 해도 죄구나’ 깨닫게 하는 겁니다. 오늘 아침입니까? 어젠가 오늘아침인가 누가 질문을 했어요. “마리아가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예수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예수님이라는 걸 믿지 않았다면 과연 아기 예수가 마리아 몸에서 나왔겠느냐?” 라는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분의 질문 의도는 뭐냐 하면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할 때, 우리의 영과 혼과 의논해가지고 우리 의지를 충분히 인정하는 가운데 일을 하는 거 아닙니까? 라는 질문을 한 거예요. 그래서 마리아가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면 과연 아기예수가 태어났겠느냐 하는 걸 묻는 거예요. 답변을 이렇게 했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변보고 싶지 않더라도 아무리 참아도 어느 시점을 넘으면 화장실에 앉게 되어 있습니다. 임산부가 아기 놓을 때 아무리 참아도 아기가 요청하는데, 엄마가 못 버티고 아기는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과 마리아와 의논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마리아의 몸만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답변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 몸을 자신의, 예수님의 의를 보여주기 위해서 빌려온 겁니다. 사용한 것뿐입니다. 괜히 자기 행동에 주도권을 쥐지 마세요. ‘주여! 행동이 개차반인데 구원되겠습니까?’ 네 행동에 대해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왜!! 값없이!!
우리가 얼마나 더러운지 우리에게 묻지도 않아!! ‘돈 천 만원 내!’ 묻지도 않습니다. 왜? 중요한 것은 네 안에 들어있는, 너 같은 죄인도 값없이 건졌다는 자기 사랑이 하나님께는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의 자기 사랑. 하나님의 자기 사랑이 우리의 완벽한 행동보다 더 중요해요. 더 가치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잘난 것은 가치도 없어요. ‘나 같은 인간을 건지다니...’ 라는 것이 바로 로마서 3장20절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에게 오는 ‘평화’에요. 평화. 이게 화목제물이에요. 화목제물! 그래서 예수님의 피를 가지고 화목제물이라고 합니다.
피=화목제물. 이 피가 더 이상 너희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고, 네 속에 있는 그리스도 의만 보겠다는 뜻에서의 ‘화목제물’입니다. 화목제물은 제사 5가지 중에서 마지막 제사가 화목제물이에요. 앞에 번제 드렸죠? 번제, 소제, 속건제, 속죄제 드리고 난 뒤에 다섯 번째 마지막 드린 것이 모든 제사의 종결을 표시하는 게 화목제물이에요.
화목제물로 피가 주어진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 피 안에 들어 있으면 피 안에 뭐가 들어 있다? 주님의 평화가 들어있으니까 우리는 그 평화가 내 속에 있으면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심지어 자기가 교도소 가는 일이 있더라도, 구원받는 것은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성령 때문에. 그래놓고 고린도후서 한번 봅시다.
고린도후서 13장3~5 :『3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5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사도바울이 목사라고 합시다. 목사가 되어서 설교시간에 설교한다 합시다. 고린도후서 13장을 그대로 설교한다고 합시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그리스도가 없으면 여러분은 버린잡니다.’ 그것을 힘차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용기 있는 목사가 드물어요. 그러면 그 설교 끝나고 난 뒤에 장로부터 권사, 집사부터 들고 나옵니다. “목사님은 예수 믿으라고 애를 쓰는데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설교에 의하면 저는 버리운 자네요.” 할 때, “예! 버리운 자 맞습니다.” 라고 말하면 그 목사 보따리 싸야 됩니다.
그정도로 교회가 위험한 곳입니다. 왜냐면 교회라하는 곳은 외로운 사람, 정붙일 친구, 또는 개업해서 새로 단골 모집하는, 그리고 애를 가졌으면 염가에, 저렴한 가격에 자기 자식 가르칠 영어선생님 구하는, 온갖 세상적인 이득과 이용할 수 있는 집합체. 외국에 나가서 교회라 하는 곳은 세금낼 때 영어를 모를 때 도움 요청하는 곳. 친목단체로 완전히 90퍼센트 이상으로 다 바뀌었습니다.
성령을 얘기한다든지 영생을 얘기한다든지, 예수께 버리운 자니라, 이런 것은 거의 없어요. 대신 뭐가 있냐면, 등록하세요. 세례 받으세요. 구역예배 참석하세요. 대심방합니다. 주로 이런걸로 대체했어요. 이런 거는 쉬워요. 참석하면 되고, 따라다니면 되고, 구역예배 참석하면 되고, 콜라 한 잔에 카스텔라 하나 내오면 되잖아요. 등록하는 건 몇 자 쓰면 되고, 세례 받을 때 물 뿌리면 좀 참으면 되고, 이런 것 없이! 직분 없이! 구원받은 재미 한번 누려보실래요?
이런 거 하나도 없이. 구원받아 희희낙락, 여유만만, 안도감, 즐거움, 만약 그런 사람 있다면 성령 받은 사람? 100프롭니다!! 100프로 성령 받은 사람. 그 정도로, 성령 받은 자의 특징이 뭐냐 하면, ‘도대체 내가 뭔데!! 주께서 나를 구원했습니까’ ‘평생가야 나는 돈밖에 좋아하지 않고, 내 자존심과 내 위신만 챙기는 인간인데, 뭐가 좋다고 나를 구원하셨는가? 할 때에 <너는 죄인이거든?><너는 죄인이야> <너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는데 딱이여! 딱! 딱 들어 맞아요.
세상 좋아하고, 육신의 안목과 이생의 자랑거리, 그런 것이나 기껏 좋아하는, 그러니까 주님의 구원하는데 딱이에요. 딱! 그야말로 <이방인> 율법도 모르고, 들어도 모른척하고, 실제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위신과 명예와 돈과 내 생존, 내 자식 잘되는 거. 우리가정 잘되는 것. 우리남편 사업 잘되는 것. 우리교회 부흥되는 것. 세상적인 부귀와 영화. 그런 것밖에 모르는데... 이런 인간에게 주께서 평화를 주시는데, 그 평화는 뭐냐!
<안다!>
‘됐나?’
‘뭐요!’
‘피 없잖아!’
‘아, 있네요!’
‘됐나?’
‘됐심다’
그게 뭐냐, <우리는 약하나 우리보다 센 분이 우리를 건졌심다.> 이 이야기가 고린도후서 13장 4절5절입니다. 그런 안도감과 동일함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속에 그리스도가 계신 분입니다. 있다 없다 물을 입장이 못 되긴 하지만, 정말 바라기는, 정말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계셔서 이제는 그 누구한테도 제발 속아 넘어가지 않게,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의 기도에, 여러분들의 열심에 속아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 이만큼 했습니다. 주여, 이만큼 헌신했습니다. 여러분의 그런 선행에 여러분이 속아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거 주께서 하신 겁니다!! 여러분이 한 게 아니고 주께서 하셨어요. 그러나 그거 했다고 구원받는 건 아닙니다. 돌아서면 내가 했다고 우기는, 그 자만심. 그 죄인. 그 죄를 보시고 주께서 하나님의 의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신 겁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하나님 말씀 보게 하옵소서. 우리 경험이나 상식 믿게 하지 마시고, 하나님 말씀에 하나님께서 어떤 원칙과 규칙을 가지고 구원했는지 깨닫게 해주시고, 늘 성경말씀과 가까이 하면서 구원받은 것이 예수님의 의 인 것을 새삼 알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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