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25 대전강의 사도행전 3강
20090625 대전강의 사도행전 3강
이름 : 이미아(IP:115.41.199.154)
지난번에 사도행전을 하면서 간단히 복습해 보면 사도행전 앞에 반드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있었다고 했었습니다. 그 앞에 뭐가 있었느냐면 구약이 있었죠. 그래서 제가 지난 번에 강의하면서 사도행전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복음서라 하는데 이 복음서를 알아야 하고 복음서 이전에 구약을 알아야 하는데 지난 시간에 구약의 핵심이 뭐냐 하면 아브라함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뭐냐 하면 축복과 저주를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준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린다고 창세기 12장에서 했는데 기억나시죠? 그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는데 여기에 본인 아브람이 아브라함 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아브람을 아브라함 되게 할 때 여기 누가 관여하는데 하나님이 관여하시는데 요게 바로 그냥 아까 한 맺힌 하나님 말고 여기 하나님이 언약으로 관여하시는 것입니다. 언약이란 말이 생소하면 다른 말로 바꾸면 약속으로 관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우리보고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보고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이 지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인천에서 주례하는데 주례할 때 이랬습니다. 남자와 여자하고 두 사람이 한 몸 되게 할 때 그 한 몸 되게 하는 것을 신랑 신부보고 하라는 말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그렇게 짝지어 준 것을 누가 나누랴. 다시 말해서 이미 한 몸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이 하는 거예요. 우리 재원이 있는데 재원이가 태어날 때 너 누구하고 의논했어? 안했지. 마찬가지로 죽을 때도 너 죽고 싶다고 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는 것입니다. 그럼 재원이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걸 믿느냐 구원받고 요걸 믿지 않느냐 지옥 가는 것입니다. 왜 자기 바탕이니까. 하나님의 의해서 태어나서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갑니다 라는 것을 믿어야 해요.
그래서 아브람이 아브라함 될 때 약속인데 약속을 설명하면서 이 약속이란 말이 어렵기 때문에 예를 든 것이 방주. 노아의 약속은 뭐였습니까? 노아의 약속은 노아가 뭘 만들고? 방주를 만들고. 방주 안에 들어가면 홍수에서 살아남고 방주에 들어가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는다라는 것이 특별히 노아에게 준 약속이었습니다. 그 때 노아 방주에 몇 명 들어갔습니까? 1번 오천명 2번 이만명 3번 십이만명 4번 여덟명. 한 식구 여덟명 밖에 안 들어갔습니다. 보세요. 방주는 크게 지어놓았을 때 그 규모상 몇 천 명 들어갈 것 같았지만 달랑 여덟명 들어갔습니다. 여덟명 적다고 홍수가 안 왔습니까? "얘 좀 더 채워라" 홍수가 지연되었습니까? 아니죠. 홍수는 홍수대로 약속대로 오고 여덟명만 구원 받았습니다. 이게 바로 노아의 약속이었습니다. 노아의 약속.
그런데 신약 성경에 오면 이 약속들이 그때그때마다 약속들이 다 달랐어요. 이걸 지난 수요일에 한 내용을 예를 들면 여기 세탁기 안에 물통이 있죠. 물통에다 세탁물을 넣고 짜면 바깥에 물이 나오죠. 노아를 집어넣고 짜면 방주가 나오고 아브라함을 집어넣고 짜면 이삭이 나오고 다윗을 집어넣고 짜면 죄인을 용서하시는 다윗의 자손이 나오죠. 예수님을 집어넣고 짜면 예수님의 피와 살이 나왔어요. 이 바깥에 튀어나온 것이 뭐냐면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음으로서 이 세탁기 안에, 약속 안에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가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아까 제가 이야기한 한 맺힌 하나님하고 아무 상관이 없죠.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만들었다. 그런데 인간은 너무나 힘들다. 이 한을 하나님은 들어 주신다. 이런 하나님은 성경에 없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있는 약속들이 신약에 오게 되면 예수님께서 쭉 뭐 병도 고치시고 귀신 쫒아 내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했는데 그런 기적 기적하니까 사람들이 “예수여 우리 앞에서 기적을 보여 주세요” 하니까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보여 주신 기적이 뭐였던가요? 나는 무슨 기적만 보여주겠다. 요나의 기적.
요나의 기적은 죽었는데 사흘 만에 살아난 것입니다. 결국 뭡니까? 십자가죠. 다른 기적은 기적 받아도 구원 얻는데 영향이 있다? 없다? 영향이 없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는데 천국 가겠습니까? 못가겠습니까? 못갑니다. 그것은 요나의 기적이 아니니까. 요나의 기적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육에서 영으로 바뀌는 방법이 뭔 줄 알아요?
니고데모가 이야기 했죠. 니고데모가 예수님 보고 하나님 나라 이야기 해달라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그 때 니고데모가 제안한 것이 뭐냐면 내가 어떻게 하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엄마 뱃속에 들어갔다 다시 태어나야 합니까? 예수님 하신 말씀이 육으로 난 것은 골백번 태어나도 육이다. 육으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육에서 영으로 바뀌겠는가? 죽으면 되요. 죽으면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에게 죽으면, 죽는다는 말을 해서 상당히 미안스러운데 애들은 죽는 것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
죽이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1번 연탄가스 이것은 어느 탤런트가 이렇게 했고 2번 부엉위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것 노무현씨가 이렇게 했고 한강에 뛰어내리는 것 어떤 대법원 판사가 이렇게 했고 죽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는 방법은 뭐냐 하면 우리의 자아를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니까. 우리의 자아를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면 죄인에게서 나올 것은 죄 밖에 없기 때문에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가 되요.
그래서 육에서 영으로 바뀌는 것은 뭐냐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육에서 영으로 바뀔 수가 있죠. 참 쉽죠. 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하면 육에서 영으로 바뀐 것입니다. 아까 같이 나는 한 맺혔습니다 하면 절대로 안바뀝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너만 한이 있냐 다른 사람 한 다 있다. 나는 한이 맺혔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되고 나는 죄인입니다 해야 합니다. 죄인일 경우에 지금 여기에 있는 시계나 칠판이나 모든 식구들은 다 뭐가 되겠어요? 죄인인데 죄의 값은 뭐라? 죄의 값은 죽음이죠. 죽었는데 지금 심장 만져 보세요. 심장이 뛰고 있죠. 죽었는데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요즘 제가 머리카락이 빠져요. 오십대 중반쯤 빠졌는데 젊을 때는 머리카락이 그냥 나는 것을 은혜로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슬슬 빠지니까 은혜인줄 알죠. 그렇다면 이 사람은 죄인인데 지금 살아가니까 머리카락 나는 것만 은혜겠어요? 다른 심장 뛰는 것 손톱 발톱 자라는 것 다 은혜죠. 그럼 이 사람은 무슨 덩어리? 죄인이면서도 그걸 용서해주는 무슨 덩어리? 은혜덩어리 되겠죠. 은혜덩어리.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한 번 봅시다. 2장 12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학생들 무슨 뜻인줄 딱 들어옵니까? 우리 전체가 은혜 덩어리인 것을 어떤 경우에만 안다? 뭐가 왔을 때만 눈치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성령이 임하면 "아하 내가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은혜 받고 있구나" 를 비로서 그 때 안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피아노를 쳤을 때 다른 사람이 피아노 이렇게 치다니 “정말 훌륭하구나 재주가 뛰어나구나”라고 했을 때 “아이구 제가 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할 수 있죠. 그럴 때 진짜 복음을 아는 사람은 “아이구 학생 방금 뭐라고 이야기 했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그렇게 함부로 할 수가 없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해야만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교회가 뭘까요? 아니면 아까 이야기한 한 푸는 곳이 교회입니까 아니죠. 나는 이렇게 못난 죄인인데 나는 이런 은혜 받았어 나는 이런 은혜 받았어 그런 것을 내놓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교회에서 하라 하면 안되요. 만약에 하라 해서 하면 그건 은혜가 아니고 뭐가 되겠습니까? 자기 능력이 되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자 여기 매직을 다른 사람은 두 번 돌리는데 나는 세 번씩이나 돌렸다. “봐 당신 할 수 있어?” “아 ..아 이거 안되네..”그렇다면 이것은 나의 은혜가 아니고 나의 행함이 되겠죠. 그래서 교회가 행함을 이야기하면 은혜가 깨어지고 자기 자랑을 하는 마당이 되겠죠. 나는 이것 자랑하고 돈 자랑하고 뭐 자랑하고...근데 교인들은 전부 다 죽은 자들이 모인 것입니다.
보통 교회 꼭대기에 뭐가 있어요? 십자가. 십자가가라는 것은 원래 그 안에 누가 죽었다는 뜻이예요. 아시겠어요. 서양 영화 보면 나오죠. 언제 십자가를 꽂죠? 어떤 사람이 죽어서 무덤 만들어 놓고 십자가 꽂죠. 십자가 밑에 뭐가 있다? 사람 죽었노라 이 말 아닙니까? 죽은 거예요. 이씨가 십자가 달리면 이래서 죽었습니다 라고 해야 되요. 그렇지 않습니까? 십자가 밑에, 십자가를 믿는 다는 것은 나는 죽었습니다.
죽었는데 왜 살아 났어요? 복습해 보면 죄의 값은 죽은 잔데 죽은자가 왜 살아나요? 뭐 때문입니까? 은혜.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에 와서 뭘 이야기 합니까? 지 자랑하는게 아니고 누굴 이야기 해요?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받고 삽니다. 황공스럽게도.” 그걸 내놓을 때 하나님께 비로서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쉽죠. 아주 간단해요.
자 사도행전. 여기서 예수님 공생애 다음에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셔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한 뒤에 그 다음에 나온 것이 사도행전 이예요. 그래서 사도행전 쓴 사람이나 여기 누가복음 쓴 사람이나 같은 사람이라 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같은 책이라고 봐도 괜찮아요.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 이렇게 나오죠.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을 이야기 하고 내가 먼저 쓴 글에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쓴 글 누가복음하고 사도행전하고 이것이 어떻게 연결 되는지 그림으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12제자들 전부 다 예수님 십자가 지셨을 때 다 버렸죠. 다 예수님 배반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만 배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다 도망갔어요. 심지어 요한은 벌거벗고 도망갔습니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면 여기 누가 남아 있습니까? 예수님만 남아 있죠.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했죠.
그러면 여기 제자들의 노선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세상적인 노선으로 가 버렸어요. 그래서 예수님하고 헤어졌죠. 예수님은 어디 갔다가? 죽었다가 부활했잖아요. 그렇다면 제자들은 뭡니까? 아직까지 도망가기 바빴지 예수님이 가신 길, 죽었다가 부활에 이르지 않았죠. 그러면 제자들은 구원을 못받죠. 왜? 예수님이 가신 곳이 천국인데 이들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지 못하고 겁이 나서 도망을 쳐 버렸습니다. 자 어떻게 할래요? 자 여기 재원이다. 주님 십자가... 엄마야 나 살려라 하고 대전 자기 집으로 도망을 쳐 버렸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아야겠어요? 그 구원을 받는 방법이 요한복음에 나옵니다.
요한복음 12장 32절.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 구절을 여러분들이 잘 안봤던 구절이죠. 내가 땅에서 들리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하겠다고요? 모든 사람을 어디로 이끌겠노라? 내게로 이끌겠노라. 여기 모든 사람은 자기 택한 백성 모두 입니다. 전 세계에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묻습니다. 제자들은 죽는 것이 겁이 나서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은 죽는 것이 겁나는 것이 아니고 죽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죽음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죽은 예수님을 살려 주셨지만 제자들은 그냥 도망쳤죠. 자 그럼 제자들하고 예수님하고 헤어졌는데 만약에 예수님은 동쪽으로 가시고 제자들은 서쪽으로 갔다고 하면 어떻게 다시 모입니까? 그 모이는 방법이 요한복음 12장 32절을 보니까 너희들이 찾아 오는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올라가면 이끌겠노라 그러니까 무슨 뜻인가 하면 예수님이 동쪽으로 가신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위쪽으로 위로 갔어요.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지금 제자들은 아래 그대로 있죠. 예수님은 구름타고 위에 계시고 제자들은 밑에 있으니까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필요하겠죠. 그 엘리베이터를 누가 설치 해준단 말입니까? 우리 쪽예요? 예수님 쪽이예요? 요한복음 12장 32절에서 이끌겠노라 하셨으니까 하늘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엘리베이터가 내려와서 우리를 태우고 위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예요. 그럼 우리가 할 일은 없죠. 놀랍게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혹시 어떤 사람이 와서 “우리 재원이 어떻게 구원 받았어요?” 라고 묻거든 없어요. “내가 한 것이 없어요.” 왜 없는데 묻거든 은혜거든요. “아니 너는 똑똑하고 머리도 좋고 뭐 이렇게 잘하기 때문에 너 힘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예쁘게 봐서 구원해 줄 것이 아니냐?” “저 죄인이거든요.” “죄인은 죽어야 되는데 그럼 어떻게 구원을 받아?” “주님이 선물을 줘서 엘리베이터가 와서 올라갔어요.” 그거 누가 이야기 하는데 저 대구에서 오신 이근호 목사님이 이야기 했어요. 그게 성경에 있대? 성경에 있대요. 요한복음 12장 32절이래요.
지금 교회 문제가 뭐냐 하면 바로 주께서 이끄시는게 없으니까 자기 힘으로 팔짝 팔짝 뛰는 거예요. 박수 치면서 헌금 하면서 기도 하면서 새벽기도 하면서 자꾸 뛰면 목사들이 좋아해서 더 뛰면 당신도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구 당신도 좀 더 뛰어야 겠네요.” 더 부추기죠. 이렇게 해서 경쟁들을 붙이는 거예요. 돈 내라고 열심히 하라고 전도하라고 소용없습니다. 구원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당신이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는가 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엘리베이터란 말이 성경에 있습니까? 20세기에 나오는 말인데 그럼 엘리베이터란 말 대신에 무슨 말입니까? 사도행전 1장 8절에 나와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너희가 뭘 받고? 권능을 받고. 이 권능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권능이 아닙니다. 이 권능은 그야말로 주신 권능입니다. 권능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여기 대전까지 이르러 누구의 증인?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 성령이 임하면, 성령이 임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뭔가 뒤집어 씌이는 것입니다.
여기 만약에 이불이 있다면 이불을 확 던져버리면은, 갑자기 밝았는데 이불이 덮쳐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불 속이 깜깜하겠죠. 그러면 다른 사람이 "야 너 뭐하고 있어?" "나 지금 이불 밖에 안보여 이불밖에.." "왜???" "이불이 갑자기 와서 뒤집어 씌워 이불 밖에 안보여" "나는 지금 이불만 보입니다." 그 사람을 뭐라고 하냐면 이불의 증인된 겁니다.
나는 죄인인데 뭐가 뒤집어 쓰였어요. 예수님의 용서가 뒤집어 쓰니 눈에 보이는 것이 이래도 용서하심 저래도 용서하심 나같은 인간을 용서하심으로 이끌어 가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 바로 은총. 사죄의 은총, 사죄의 은혜, 믿음 소망 사랑 이런것들 ..뭔가 믿음 소망 사랑이 뒤집어 쓰이니까 내 소망, 내 믿음, 내 사랑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믿음과 주님의 소망이 나한테 뒤집어 쓰인거예요.
여러분들이 만약 내 힘으로 믿는다고 한다면 기분 좋을 때 믿는 것하고 기분 나쁠 때 믿는 것하고 어느 것이 더 믿음직합니까? 여러분들이 기분 좋을 때 사랑하고..형은 동생을 사랑하지. 기분 나쁠 때 사랑하는가? 봐 사랑이 자꾸 바뀌잖아. 그럼 사랑이 변동되잖아. 헷가닥하는 사랑이잖아. 그 사랑은 믿을게 못되요.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의 사랑은 우리가 잘나도 용서하시고 못나도 용서하시고 뭐 우리 잘난것도 없지만 하여튼 항상 이불 뒤집어 쓰듯이 쓰니까 내가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고린도 전서 15장 10절."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예수님의 은혜를 증언하는 것을 다른 말로 능력이라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적인 기적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형편에 있든지 감사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능력입니다. 목사님 이 성경 근거 있습니까?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4장 7절에서 10절. 우리 신직수 전도사님이 읽어 보세요.
7 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9 절.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절.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읽을 때 이렇게 읽어도 좋지만 이렇게 읽어보면 답~땁한 일을 당하여도~낙심하지 아니하고 핍~빡을 받아도~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항상 예수 죽인 것을 우리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하심이라...엘리사의 시체가 어떤 사람의 시체에 딱 닿으니까 시체가 살아났어요. 희한하죠. 죽은 엘리사의 시체가 피부에 딱 닿으니까 이미 먼저 선배망자라 용어가 희한하다만은.. 선배 시체. 먼저 죽었던 시체가 그 엘리사의 시체에 부딪히는 순간 무덤에서 살아났어요.
그것은 무엇을 뜻하냐면 장차 죽은 자도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생명이 그 안에 임해서 죽은 너희들도 살리라 믿습니까?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 났잖아요.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난 거 맞죠? 이런 예까지 들어야 되는지 자 보세요. 만약 안경집이 어떤 버릇이 있냐면 딱딱딱하는 버릇이 있다고 합시다. 그걸 내가 삼켰어요. 삼키니까 식당에 들어가면 가만 들어보면 딱딱딱 소리가 나겠지요. 지금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뭐냐 하면 예수님은 죽은데서 살아나죠. 그럼 안경집이 예수님이라고 하면 죽었다 살아난 안경집이 식당에 들어가면 나는 어떻게 되요? 비록 나는 몸은 죽어도 내 안에 있는 죽었다가 살아난 예수님의 능력으로 죽을 우리도 살아요? 죽어요? 살지요.
로마서 8장 11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저번에 한 것 같은데..."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어찌 우리가 예수님께 감사 안할 수가 있겠습니까? 돈 한 천 억 있으면 살겠습니까? 천 억 있어도 몸 아파서 죽으면 그만입니다. 진짜 우리가 사는 것은 예수님의 영이 임해서 우리가 사는 것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문제 하나 나갑니다. 아까 예수의 영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안다고 했죠? 분명 잊어 버렸을 거예요. 예수님의 영이 있어야 사는데 예수님의 영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안다고 했습니까? 그럴 줄 알고 반복하는 것입니다. 두 자. 고린도 전서 2장에 나오는 말씀. 아버지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되면 그게 어떤 사람이라고요?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12절). 미안하니까 더 물어보지 말고 진도 나갑시다.
사도행전 1장 계속해 봅시다. 그렇다면 이 엘리베이터를 내야 하는 작업을 해야겠어요? 안해야겠어요? 해야겠지요. 자 묻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 온다면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1층으로 내려옵니까? 2층에서 1층에서 내려옵니까? 쉬운 질문은 답변 좀 해주세요. 1층에서 1층 갈 때 엘리베이터를 탑니까? 2층에서 1층으로 내려 올 때 엘리베이터를 탑니까? 2층이 있어야 되겠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현재 1층에 있어야 합니까? 2층에 있어야 합니까? 1층 2층 다 있어야 하겠죠. 그걸 바로 사도행전 1장 10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승천이라는 겁니다.
지금 사도행전 1장은 예수님께서 뭐까지 보여주었느냐면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 까지 보여 주었죠. 부활하셔 가지고 제자들 옆에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아까 요한복음 12장 32절 말씀처럼 주님께서 들려 올라가면 뭐한다? 반드시 주님께서 올라가면 "나는 구원 받았다. 너희들은 볼 일 봐라" 이게 아니고 이미 올라가면 그 다음부터 무슨 작업한다고 했어요? 올라가고 난 뒤에 너희들을 어떻게? 자기 있는 쪽으로 끄집어 당기는 일을 하죠. 그 때 제가 엘리베이터 내려온다고 했지요. 그 엘리베이터 내려 올려면 예수님이 먼저 앞장서서 같이 있으면 안되고 죽었다가 부활해서 반드시 뭘 해줘야 해요? 승천을 해줘야, 저 윗동네 가야 다시 저 밑에 있는 사람을 끄집어 당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 찾아 봅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저는 이 대목 보면 소름이 끼쳐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렸다는 이 말은 우리도 뭘 뜻합니까? 아 사는 수도 있구나 죽는다 죽는다는 것은 아는데 사는 수도 있었네. 하나님이 살려주면 삽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3절) 이렇게 되어 있죠. 엘리베이터가 뭐라고 했습니까? 성령이죠.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뭐가 온다?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그 때는 우리가 하나님이 공짜로 주신 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우리가 죄인인데 어떻게 죄 없이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질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인데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죠? 죄를 없애주는 뭐가 있어야 되요? 죄를 없애주는 은혜가 와야 되겠죠. 은혜는 본인들이 열심히 착한 일 하면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죠. 우리 죄를 씻을려면 우리의 지은 죄를 대신 벌 받은 분이 있어야 되겠죠. 이건 정말 쉬운 거예요. 내가 벌 받을 것을 대신 벌 받으면 나에게 돌아올 벌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처리하시고 처리해 놓고 엘리베이터식으로 우리에게 내려오면 우리는 뭘 느끼는가하면, 성령이 오게 되면 “아 내 죄는 없어졌구나 예수님이 다 처리 하셨구나”라는 것을 기뻐할 때 그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그러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다시 한 번 질문 던집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성령을 주실 때 성령을 안 받고 자력으로 천국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되죠. 그래서 사도행전 1장 5절 봅시다.
거기 보면 요한이라는 사람이 뭘 줬습니까? 세례를 주었죠. 그 세례가 무슨 세례죠? 물세례죠. 물 퍼부으면 죄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안되죠. 물세례 받으면 용서 받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물세례를 왜 주었느냐 하면 잘 들으세요. 여러분 물고기 아니죠. 물고기 아니니까 사람이 물에 들어가면 죽잖아요. 물세례 주는 것은 그냥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 잠기는 거예요. 그러면 죽은 자가 되요. 세례 요한이 물세례 주는 것은 너는 죽은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뭣 때문에 죽습니까? 죄로 인하여 죽어요. 원래 죄를 짓게 되었으면 죽게 되어 있어요. 하늘 나라 재판에는 징역 50년 이런 것이 없어요. 하나 밖에 없어요. “죄 지었나?” “예.” 죄 지었으면 이건 죽음이예요. 사형 밖에 없어요. 로마서 1장에 나와요.
32절에 보면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이같은 일들이 수군수군 시기 불의 추악 마음에 하나님 두기 싫어하는 것 부모를 거역하는 것...전부 다 하나님 보시기에 사형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형 안 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요만큼이라도 흠이 있으면 사형을 시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요만큼이라도 흠이 있으면 사형을 시킬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컴퓨터 고장나면 컴퓨터 죽었죠. 하나님이 만든 인간인데 인간에게 뭔가 악마가 들어와서 흠이 있으면 그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이것은 고장 난 것 죽은 것으로 간주해요.
하나님께서는 처음 자신이 만든 완벽하고 흠도 티도 없는 인간을 원하는 거예요. 흠도 티도 없이. 이것은 베드로 후서에 보면 나와요. 흠도 티도 없이...그런데 사람이 태어날 때 부터 남한테 시기와 미움 이런 것이 없을수가 없어요. 늘 생긴단 말이예요. 이 몸 가지고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더러워서 안 받아요. 길거리에 과자 떨어지면 주워 먹습니까? 개는 주워 먹어요. 그러나 사람은 더럽다고 휙휙 불어도 나중에 안 먹잖아요.
인간이 완전 죄로 코팅 되어 있어요. 더러워서 못 먹어요.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기에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깨끗해야 해요. 깨끗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사람 보고 깨끗하라고 할 수 없고 그 사람을 죽이는 방법 밖에 없어요. 죽이는 방법이 뭐냐 하면 세례죠. 그래서 세례 안에는 뭐가 들어 있다? 세례에는 두 가지 들어 있는데 하나는 죽어라 또 하나는 살아나라 재미있죠.
세례가 뭐냐 하면 이 엘리베이터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죽었는데 산 채로 들어 있는게 엘리베이터 성령안에 삶입니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이 제 강의를 듣고 뭐냐 하면 “내가 죽은 인간인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이제 아느냐 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했습니다. 나중에 성령께서 알게 하시지 않으면 몰라요. 아무리 신학을 해도 모릅니다. 사람이 살이 있으면 한이나 맺혀요. 한이 맺힌다는 것은 못죽겠다는 것입니다. 죽기 싫다는 것입니다. 살려줘!!! 살려줘!!!
그런데 만약 내가 시체라면 모든 것이 감사하죠. 애들 둘이 잘 커주는 것도 감사 그나마 비 올 때 잠 잘 수 있는 집이 있어서 감사 신직수 전도사 집이 얼마나 좋은지 전세 삼 천 얼마?? 전에 집보다 훨씬 좋죠? 얼마나 감사 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아침에 눈 떠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설교 했잖아요. 참새하고 백합하고 우리하고 동기 동창이라고. 참새도 누가 기르시나니? 하나님이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이 기르시고. 하물며 인간은 누가 기르시고? 하나님이 길러주시고.
길러 주신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니까 문제는 죄 문젠데. 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세례가 와야 하는데 세례의 기능이 있는데 첫째는 죽어라 둘째는 살아라 죽으라는 것만 알면 너무 섭섭하니까 살아라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살아나라 결국 죽었다는 말입니까? 살았다는 말입니까? 죽을 때는 죄로 인하여 죽고 살 때는 뭐로 인하여 살고? 하나님이 주신 의로 인하여 살고.
그래서 예수님의 의가 우리 속에 들어 와야 되는 거예요. 그냥 죽었다가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일 때는 죄 때문에 죽이기도 하시고 살릴 때는 근거가 뭐냐 하면 살릴 때는 의로와야 사는데 우리는 의로울게 없어요. 근데 누가 의로와요? 우리 속에 예수님의 의로우심이 예수님의 순종하심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의 의 때문에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예수님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인이 되었도다 사람은 행함으로 의롭다 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행함으로 착함을 착하다고 하지만 하늘 나라에서는 너가 죄인이며 예수님의 의를 믿는자가 곧 하나님의 의라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혹독한 강도라도 세리고 창기라도 예수를 믿으면 의인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를 받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런 의를 모르고 자기가 열심을 내어서 교회가서 충성해서 의를 채울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결국은 그것이 예수님의 의는 멀리하고 자기 애썼던 자기 공로만 자꾸 누적이 되어서 예수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자기 잘남에 살아 가는 그런 사람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정리해 봅시다. 정리해 보면 쉽습니다. 문답으로 해봅시다. 그게 쉬우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셨을 때 제자들은 어디로 갔다? 다 도망쳤다. 그래서 예수님 혼자 죽음의 길로 가셨고 제자들은 죽음의 길로 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심의 혜택을 입었죠. 제자들은 혜택을 입었다? 못입었다? 못했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애들아 너희들과 빠이빠이다 하고 헤어졌습니까? 다시 찾아 왔습니까? 다시 찾아 왔잖아요.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있는다고 하면 제자들은 옛날 식으로 다시 돌아간 셈이 됩니다. 자기는 죽기 싫어요. 구원은 받고 싶은데 죽기는 싫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엘리베이터를 내려 주신다고 했죠. 그 엘리베이터를 두 자로 뭐라고 했어요? 성령. 성령인데 성령이 어떤 식으로 온다? 성령이 오긴 오는데 어떤 식으로 온다? 세례식으로 온다고 했죠.
세례식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했죠. 하나는 “에라~ 죽어라!!!” 죽는 이유가 뭣 때문에 죽죠? 우리가 죽는 이유는 죄 때문에. 또 하나는 “에라~ 살아라!!!” 왜 삽니까? 뭣 때문에 살죠?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뭐가 있어야 살아지는데 뭐가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의. 내일 렛슨이 있더라도 이것은 알아야 합니다. 죄 때문에 죽고 하나님의 의 때문에 삽니다.
어떤 강도가 있는데 죄를 지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예수를 믿었어요. 천국에 갈까요? 지옥에 갈까요? 천국에 가죠. 그 사람의 죄 때문에 이미 죽은 자가 되고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의 때문에 그 의를 보고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내가 천사다 "너 어디가?" 붙들었다 말입니다. "천국갑니다." "뭘 믿고 천국가?" 라고 하면 뭘 내놓을껀데? 예수님의 의. 예수님의 의가 있으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천사가 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