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영원한 주제 = 삼각관계
성경의 영원한 주제 = 삼각관계
이름 : 김대식(IP:124.59.85.46)
성경의 영원한 주제 삼각관계(십자가 스캔들) : 시기케 하는 구원
불공평 중의 불공평
성경에 이스라엘로 개명이 된 야곱에게 두 아내가 있다.
그러나 두 아내란 있을 수 없음을 약속의 개입으로써
이 3명은 약속에 의해서 배치당하게 된다.
누가 한 몸이냐 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야곱이 태어나기 전부터의 구조와도 같다.
아무리 쌍둥이 에서와 야곱으로 똑같이 생겨먹은 쌍둥이 일지라도
그 속에서 하나는 버리움을 당하고 또 하나는 데려감을 당한다.
또 원가지와 버린가지와 접붙이는 자의 삼각관계
어리석은 다섯처녀와 슬기로운 다섯처녀 그리고 신랑의 삼각관계
맏아들과 탕자 그리고 아버지
이 모든 것이 삼각관계이다.
사랑을 이런식으로만 증거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저희의 넘어짐으로 인해 부요함이 충만케 된다.
(롬 11:11, 개역)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롬 11:12, 개역)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롬 11:13, 개역)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롬 11:14, 개역)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롬 11:15, 개역)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인간은 항상 구원 마저도 자기 소유로 생각할 수 밖에 없기에
율법의 정신인 이웃사랑 조차도 소요욕으로 추구한다.
(부자청년 때려죽어도 자기가 챙긴 구원 남 못 준다, 그래서 부자청년을 치니까 그 부요함이 가난한자에게 흘러 넘친다. 예수님이 아니였다면 그 부자청년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발광빛에 속아 넘어갈뻔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서로를 수셔대어야 한다. 자체발전기에서 발현되는 빛은 허상임을 참빛이신 예수님과 비교해서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인간을 넘어뜨림으로써 그 주머니 속에 가득한
부요함이 흘러나와서 세상사람들의 목마름을 채워준다.
원가지를 짤라서 버리운 가지를 접붙임으로써 주의 사랑의 충만을
쫌생이 이스라엘 만의 하나님이 아닌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으로써 증거하심이
바로 예루살렘을 쳐서 그 터진 댐의 물이 흘러 흘러 넘쳐서 모든 메마른 땅이 촉촉이 젖도록
예루살렘의 넘어짐이 구원의 댐이 터진 생수가 흘러 흘러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이 되도록 하신 것이 바로
십자가의 예수님의 달려 대신 죽으심의 원리이다.
이 일방적인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반드시 삼각관계의 한 쪽은 완악함과 한 쪽은 긍휼로써만 창세전에 정해진 것이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여부로 인해 그 제사의 실적과 효력에 따른 것이 아닌
이미 창세전에 정해진 삼각관계의 십자가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
그들은 그 계획을 발현할 수 밖에 없도록
미래에서 땡기는 것이다.
사울과 다윗도 삼각관계요
유대인 바리새인과 창녀 사마리아인과의 구조도 삼각관계이다.
한 쪽을 시기케 하지 않는 이상은 구원이 설명 될 길이 없다.
구원은 한 쪽을 시기케 함으로써 성사된다.
질투의 사랑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다.
죽음 보다 강한 질투의 사랑이다.
죽음을 시기 하지 않는 사랑은 거짓이듯이
구원을 시기하지 않는 악마는 악마도 아니다.
한 쪽이 세워짐은 한 쪽은 넘어짐이요
한 쪽의 넘어짐은 다른 한 쪽의 부요함이 된다.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마저도 빼앗긴다.
구원은 영원한 삼각관계라는 불륜이요 스캔들이다.
이 시기의 구원을 고상하게 풀려는 작당들은 그저 돈 되는 쪽으면
십자가 신학이든 구원신학이든 창조신학이든 개혁주의이든 성화론이든 뭐든지 다 끌어당긴다.
바로 그 완악함으로써 시기의 구원을 차이성으로 증거하는 십자가이다.
인간은 긍휼의 그릇이든 진노의 그릇이든
양 쪽 다 발차기 당하면서
양 쪽 모두 십자가만 증거하도록 되어 있다.
한 쪽은 십자가로 인해 그는 흥하고 나는 망해야 함을 고백하고
또 다른 한 쪽은 십자가로 인해 바로 그런 구조를 거부하는 방식인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비유 속에 나오는 땅에 파묻은 원금 그대로를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천재 중의 천재인 자로서 스스로 발로 차버리는 십자가(사랑)를 거부하는 자이다.
종말은 바로 예수님이다. 그 종말이라는 스캔들(불공평)을 피할수 있다고 여긴 것이 그 악한 종의 종말이 된 것이다.
(삼각관계 라는 말을 들으면 항상 메두사를 떠올리게 된다.
여자들의 우을증 히스테리 등등의 모든 증상은 결국 남자 때문이다.
결국 십자가야 말로 가장 불공평 중의 불공평인 것이다.
이 불공평인 십자가로 공의의 사랑을 이룬다는 것이다.
과연 인간은 동의 할까? 일부러 동의 못할 것만 골라서 골라서 불공평한 광야로만 인도하듯 하는데?)
(마 13:12, 개역)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 25:29, 개역)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막 4:25, 개역)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눅 8:18, 개역)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눅 19:26, 개역)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