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전도
룻에게서 031116 전능자의 희한한 전도저번주에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낳은 아이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한 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 이후로 다윗은 주님의 낮추심으로 인해 낮아진 자로서 주님의 모습을 미리 앞당겨 보여줍니다. 불법을 행하고도 주님을 몰라봤던 죄가 가리움을 받고, 주님과의 새로운 관계, 주님 쪽에서 베푸신 낮아지심 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는 제사를 원치 않으시고 상한 심령을 원한다 즉, 주님 자신이 친히 상한 심령이 되어 불쌍히 여겨주심으로 직접 죄값을 치르지 않으면 용서의 길, 자비의 길, 은혜의 길, 생명의 길, 상한 심령의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자 그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왜 이렇게 인간 쪽의 어떤 것도 아무리 깨끗한 새생명의 삶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세계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룻에게서 알아보겠습니다.사람은 무능력하다는 것에서는 어떤 집념의 사람일지라도 참기 힘든 치욕꺼리입니다. 사업하는 분은 빚이 많아 그것을 갚을 능력이 없을 때 참기 힘들 것이요, 목회하는 분은 목회를 통해 교회를 크게 부흥성장 못 시킬 때 본인과 그 교인들은 견디기 어려운 치욕거리로 자리잡고 있으며, 운동 선수는 경기에서 승리를 못하고 패배 했을 때 자신이 가장 비참해 보이기도 합니다. 장애우는 평생 누워 있어야 한다는 그 자체로써 자기에게 아무것도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죽고 싶을 정도로 자신이 미울것이며 그런 미운 자신을 죽일 힘 조차 없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공포로 다가 옵니다. 아기 엄마는 젖먹이에게 분유통 하나 살 능력이 없다면 죽기보다 더 괴로운 견디기 힘든 일일겁니다.이처럼 힘의 고갈, 무능력, 밑바닥 인생, 아무것도 할수 없는 처지 이순간은 자기 스스로도 무가치한 존재로 취급하며,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지우개로 지우고플 정도로 심판을 가합니다. 현대는 자기 PR 시대이기에 뭔가 자꾸 자신을 내세울만한 것이 있어야 존재 가치를 둘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면 이미 그는 사라진 겁니다. 광고선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품의 물건의 특징을 내세워야만 팔 수 잇습니다. 물건의 아무런 특징이 없다면 그 상품은 폐기처분 대상입니다. 이렇게 생존세계에서 오로지 살아갈 길은 존재 가치 증명입니다. 어떤 수단 방법, 동정심 유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선전해야하고, 자기 존재 가치를 알려야 함으로, 그 수고로 인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 겁니다. 자 그럼 반대로 자기를 자기 스스로 이번에 심판이 아닌 기특하고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존재로 여길 때는 어떤 경우에 그런 상상을 펼칩니까? 남들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소유(예를 들면 로또 1등 당첨), 또는 자기가 판단하기에 남이 못하거나 남이 가지 않는 나만의 세계에 가치를 둠으로 그 세계를 자기만이 안다는 그 포만감 등이 기쁜 상상으로 인도할겁니다. 그렇다면 지우개로 지우면 절대 안되기에 자신의 부활 자기 삶의 연장 영속 등이 더더욱 자기 가치를 굳건한 반석처럼 북돋우어 주는 복 덩이 그 자체로 여길겁니다.이렇듯 선악과로 인해 죄가 가입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가치는 전도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가치를 무엇에 어디에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진리는 인간의 손에서 요리 당하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식으로 가치 전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여기 한 가정이 있습니다. 룻기 1장에 엘리멜렉이라는 가장이 한 가정을 이끌고 모압 땅으로 이주 이민 갑니다. 그 이유는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거룩한 땅이 가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룻 1:1) 『영웅들이 세상을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 때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시골에 가서 몸붙여 살려고 아내와 두 아들을 거느리고 길을 떠났다.』(룻 1: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며 아내는 나오미, 두 아들은 마흘론과 길룐이었는데,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 태생으로 에브랏 집안 사람들이었다. 모압 시골에 가서 얼만 동안 지내다가』(공동번역)(룻 1:1) 『사사들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대에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 그때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모압 땅에 가서 살았다. 그들은 모두 유다 베들레헴 태생으로 에브랏 사람들이었다.』(현대인의 성경)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왕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즉 왕이신 하나님은 최고다 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과연 하나님 자신은 그런 최고인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사기를 통해서 우리가 배운 것은 결국 인간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모습이엇습니다(삿 17: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자 그럼 엘리멜렉은 유다 땅 갈렙이 가장 좋은 땅으로 차지했던, 다른 이스라엘 지파 사람보다 더 믿음이 무엇인줄 가까이서 봤을 것이고, 사사들의 활약상을 통해서 더욱 더 유다 지파에서는 하나님의 세계가 어떠했느냐를 봤을 것인데, 왕이 없어서 다 엉망진창된 이스라엘에게서 그래도 왕의 통치를 보았던 유다 태생인 에브랏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가뭄이 드니까 생존을 위해 모압 땅으로 이민하는 겁니다. 믿음 없다고요? 정상적인 모습 아닙니까? 약속의 땅이 가뭄이 들수 있는 겁니까?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가뭄이 들었습니다.왜 가뭄이 다른 땅도 아닌데 약속의 땅이 거룩한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가뭄이 들었다는 것은 뭔가 비정상적이다 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인데, 사람은 그 비정상적인 세계를 자기 판단으로는 골치 아프기 때문에 차라리 이민 가는 겁니다. 약속의 땅이 우찌 됐건 말건, 다른 땅을 선택하면 그만인 겁니다. 아니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우리 속내의 모습 아닙니까? 너무 노골적으로 솔직한 것 아닌가요? 우리는 그래도 눈치 보면서 적당히 조율을 하는데 말이지요.자 이제 이 비정상적인 상황의 심각성을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처참하고 참담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피하고 말면 그만인 그 세계에 이민해 버리면 그만인 그 상황인 겁니다. 가나안 땅은 이제 더 이상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닙니다. 굶주림과 헐벗음과 죽음이 덮어버린 저주의 땅이 되엇습니다. 마치 에덴동산처럼 말이지요. 이제 갈렙과 여호수아가 증거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증거 되던 그 동산은 없고 비참한 죽음만이 남아 있는 땅이 된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언약 파기 때문이지요.그렇기에 하나님이 왕이라고 고백한 나는 어쨌든간에 살아남아야 하기에 이 척박한 현실을 이기기 위한 나 하나 챙기기, 자기 가족 챙기기에 돌입합니다. 이렇게 각기 제길로 가는 그 상황에 동시에 하나님도 개입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의 전능함을 보이시고자 자신의 세계가 어떠함을 증거하는 전도가 시작 됩니다. 이 비정상적인 죄의 세계에,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닌 비거룩이 침투해 버린 악이 번성 된 그 속에서 주님의 세계가 또 시작 됩니다. 아무도 이 죄의 심각성에 마음 아파하는 이 없는 이 상황에 주님은상한심령으로 개입하시는 겁니다. 먼저 엘리멜렉과 두 아들을 주님은 죽이시고 시작합니다. 약속의 땅을 떠났던 그들을 죽여놓고 시작합니다. 누가요? 전능자가요. 에이 설마요?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이상하게 흉년들었던 그 땅이 풍년이 드니까 이제 남은 식구 나오미랑 두 며느리는 돌아오게 되는 겁니다.(룻 1:6) 『그로부터 얼마 후에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축복하여 그 땅에 풍년이 들게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 땅을 떠나기로 작정하였다.』괜히 내려갔네요? 조금만 참았으면 ! 아닙니다. 자기 백성을 새로 형성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왕이시다 라고 믿음을 과시하고 뽑낼때는 언제고, 막상 가뭄이 드니 약속의 땅을 저버리고 가버린 그런 믿음 좋은 남정네들 씨를 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흩어버리고 다시 모으시는 거지요. 상상의 하나님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을 비로소 알게 하시는 겁니다.(룻 1:7) 『그들이 그 곳은 떠나 유다 땅으로 돌아오는 도중에』(룻 1: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모두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너희는 죽은 너희 남편과 나를 정성껏 섬겼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너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원하며』(룻 1:9) 『또 너희가 재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기 원한다.' 그리고서 나오미가 그들에게 입을 맞추고 작별하려고 하자 그들은 큰소리로 울며』(룻 1:10) 『`아닙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룻 1:11) 『그러나 나오미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딸들아, 돌아가거라. 너희가 어째서 나와 함께 가려고 하느냐? 너희 남편이 될 아들을 내가 다시 낳을 수 있겠느냐?』(룻 1:12) 『얘들아, 너희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나는 너무 늙어 재혼할 수도 없다. 만일 아직도 내가 희망이 있어 오늘 밤이라도 재혼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룻 1:13) 『그들이 자랄 때까지 너희가 어떻게 기다릴 수 있겠느냐? 그들을 바라보고 너희가 어떻게 남편 없이 살 수 있겠느냐? 내 딸들아, 너희가 그럴 수는 없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상처를 주어 나를 벌하셨으니 내 마음이 더욱 아프구나.'』(룻 1:14) 『이 말을 들은 두 며느리는 다시 소리를 높여 함께 울다가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을 맞춰 작별 인사를 하고 친정으로 돌아갔으나 룻은 계속 시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룻 1:15) 『그래서 나오미는 `얘야, 너의 동서는 자기 백성과 신들에게 돌아갔는데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하였다.』(룻 1:16) 『그러나 룻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에게 억지로 어머니 곁을 떠나라고 강요하지 마시고 어머니와 함께 가게 해 주세요.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저도 가고 어머니께서 사시는 곳에 저도 살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룻 1:17)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묻힐 것입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에 만일 제가 어머니 곁을 떠나면 여호와께서 저에게 무서운 벌을 내리시기 원합니다.'』(룻 1:18) 『나오미는 룻이 가기와 함께 가겠다고 굳게 결심한 것을 보고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현대인의 성경)나오미가 알게 된 하나님은 유일한 여자의 희망인 남편과 아이를 빼앗은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되돌아 오는 중에 두 며느리에게 각자 갈길로 가라고 합니다. 서로의 비천한 처지를 위로하며 통곡하는 가운데 각자 살길로 권유를 하는데 며느리 룻은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떠나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만 대답도 희한합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며 만약 어머니 곁을 떠나면 죽게 된다는 죽음을 담보로한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나오미가 이방 모압여인인 룻에게 어떻게 전도했길래, 이렇게까지 룻이 고백하는 겁니까? 나오미는 이렇게 외칩니다. 그가 베들레헴 유다로 돌아오니 동네사람들에게 이렇게 증거합니다.(룻 1:19)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룻 1: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룻 1: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자신이 만난 하나님은 나오미(기쁜자)라는 이름을 갈아 업으시고, 마라(괴롭다)로 만드셨다고 증거합니다. 누가요? 전능자께서요. 전능자 하나님이 말이지요.자 그럼 이상하지요. 나오미가 알게된 하나님은 전능자입니다. 그 전능자는 빼앗는 하나님이다는 겁니다. 남편도 자식도 모두다 빼앗는 하나님. 풍족한 재산도 모두다 다 빼앗고 새로 시작하시는 하나님 이다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을 전능자라고 표현한다는 자체가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희한한 고백을 하는 것도 이해가 안되지만, 이 희한한 증거에 동참한 자가 있다는 것도 도통 이해 할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 전도나 복음 증거는 모두 하나님의 몫이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다는 겁니다. 인간이 증거해 봤자 상상의 하나님만 토할수 밖에요. 주님은 자신을 이렇게 증거하셨습니다. 그 참 하나님을 만난후 나오미는 남편을 통해 알던 상상의 하나님이 아니라, 제대로 만난 전능자를 소개합니다. 그 증거에 룻이 영접을 합니다.자 그렇다면 이 말씀대로 되는 것이 맞지요.(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믿음 허세부리는 남정네의 혈통을 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이 하시고 하나님 뜻에서 나게 하시는 창조의 능력이니 말이지요. 그렇다면 그 전능하심이란 무엇이 선행 되는 것입니까? 죄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죄의 악의 실체를 먼저 뿌리뽑고, 긍휼과 자비로써 은혜의 세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시작하시는 겁니다. 그럼 그 악의 실체가 된 것이 무엇입니까? 혈통, 육정, 사람의 뜻을 먼저 작살 내는데 그 혈통 육정 사람의 뜻이 엘리멜렉이 알던 하나님 상상의 하나님을 심판하는 전능하심이다는 겁니다.바로 이 룻이 영접한 전능자 하나님의 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세계가 시작하는 겁니다. 그것은 나오미가 룻에게 증거한 날 괴롭게 한 전능자의 찾아오심이 약속의 땅에서 약속을 저버리고 은혜를 거부하고 긍휼을 거부한 그 믿음 좋다고 허세부리는 남정네의 씨를 말려놓고, 새로 시작한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찾아오신 전능자의 개입으로 인해 두 여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끊어질수 없는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그러니 끊어지는지 안 끊어지는지 전능자 하나님은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협 칼 등을 멀리 두시는게 아니라 늘 가까이, 보다 가차이 두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 아닙니까? 전능자가 하시니 누가 말리겠습니까? 며느리도 못말리고 아무도 못말립니다.(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이런 주님의 세계에 자기백성을 주님이 직접 모으시는 겁니다. 이 기쁜 소식을 증거하는 우리는 세상에서 누가 뭐래도 가장 행복한 자입니다.주님 ! 참으로 놀랍고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전능자 되신 하나님을 내 소원 들어주는 주님으로 착각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들어주는 전능자로 잘못 알았습니다. 또 그런 설교와 그런 증거를 좋아했으며 이런 상상의 전능자를 소망했습니다. 주님! 전능자 주님은 하나님 께로 난 것 외에는 모조리 다 빼앗으시고, 오직 주님의 사랑만을 남기고 다 배설물로 만드십니다. 그 은혜를 알도록 간섭하시고 개입하셔서, 제대로 된 전능자를 만나게 하시고 또한 증거하게 하소서. 죄로 인해 모든 가치가 전도(뒤바뀐)된 이 세상에서 가진게 없으면 자기자신도 초라해지고 가진게 많으면 자기자신이 위대해 보이는 스스로 심판하고 스스로 과시 하는 이 허구에서 건져주시고, 오로지 전능자 앞에서 죄인의 괴수임을 발견하는 놀라운 은혜를 전능자에게 빼앗김으로 알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