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해석 당한 괴수 VS 말씀을 해석 하는 인간
말씀에 해석 당한 괴수 VS 말씀을 해석 하는 인간
이름 : 관리자(IP:220.81.176.150)
말씀을 해석 하는 의인 VS 말씀에 해석 당한 죄인 괴수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vs 죄인 중의 괴수
말씀을 가장 잘 해석했다고 자부했던 한 인간이 있었다.
말씀을 가장 잘 실천했다고 자부했던 자이다.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다.
요즘식으로 따지면 성도 중의 성도, 믿음 중의 믿음,
믿음의 달인이다. 개혁의 달인이요 성화의 달인이다.
누구든 그를 부러워 하며
그를 모방하고 그를 따라하며 닮고자 본으로 삼았을 정도이다.
그의 말씀 실천적인 삶에 감탄을 하였다.
마치 신학생 1 2 학년이 그 당시 최고의 목사를 존경하면서
그 목사의 책을 접하는 것으로 영광스러워 하듯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보였다.
그런데 누가 봐도 복 중의 복을 받은자로 보였던 그가
거치는 반석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똥 밟았다.
얼마나 그의 넘어짐이 전모습과 차이가 났던지
그 걸림돌(십자가)에 걸려 넘어지고부터
이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재수 없는 인간으로 교체 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무슨 약을 잘못 먹었는지
헛소리만 외친다.
그의 말로는 다메섹에서 넘어졌단다.
그리고 예수 귀신을 만났단다.
그리고 그는 예수 라는 이단의 앞잡이가 되고 말았다.
저런 저런 쯧쯧쯧 예수 귀신이 씌여버렸다.
참으로 아까운 인간이다.
귀한 인재가 이단 예수 추종자에 의해서
맛이 완전히 가버리고 말았다.
자기 입으로 죄인 중의 괴수 라고 하지를 않나
날마다 죽노라 라고 하지 않나
십자가가 밝히 보이는데 누가 꾀더냐 라고
십자가 우상 숭배에 빠져서
완전히 미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왜 그런 길로 가게 된 것일까?
모세가 믿음에 의해서 해석 당하니까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히 11:24, 개역)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파라오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왕자의 신분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혹시 나중에 왕까지도 될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의 신분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의인의 신분을 거절하고 죄인 중의 괴수의 신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1급 살인자이다. 죄인 중의 괴수 이다.
예수님을 세 번 씩이나 부인한 베드로와 같은 배신자 중의 배신자이다.
배 배 배신이야 배신
도대체 믿음이 뭐 길래?
인간들이 믿어대고 믿음을 해석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죄인 중의 괴수가 되는 방식은 없다.
그저 자기 챙기기의 달인의 모습만 남발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구원에 대한 집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그런 믿음 만이 인간 세계에 통용되는 믿음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완전 딴판이요 정반대이다.
사람 완전히 조져버린다.
이건 뭐 사람이 완전 개 취급 보다 더 못한 짐승으로 취급당하는
믿음은 그야 말로 접근불가이다.
가까이 할 수가 없다.
인간들이 해석하는 믿음과는 달리
믿음이 인간을 해석한 성경말씀을 보니 가장 확정적인 사건의 예가
예수라는 인간이 갈기 갈기 찢겨 버리움을 당하는
하나님으로 부터의 저주인 버림당한 십자가 사건이다.
편애 받은 믿는자 동아리의 소박한 취미 동호회가
졸지에 살벌한 피범벅 거리는 시체의 살인극이 벌어지는
지독한 미움을 받는 그 길에 모세가 놓여지고
더욱더 가관은 그 피를 기념하고자
당대의 최강국인 애굽을 슬슬 긁어댄다.
메뚜기가 당대의 거인 나라의 영웅을 시비거는 것과 같다.
(민 13:33, 개역)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였던 말씀을 기가막히게 해석 잘하는 인간들은
당대의 거인 나라를 시비 걸 생각 조차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다.
그런데 그 인간이 죄인 중의 괴수가 된 이후로 부터는
그 당시의 거인국인 로마를 깨뜨리고자
믿음에 의해서 방향이 재편성 된다.
육의 소욕의 집단화 된 곳에
딸랑 혼자 투입이 된다.
죽으라는 소리이다.
이것이 성령의 행전에 의해 배치 당하는 육과의 차이성을 드러내는
믿음이다. 약속이다. 언약이다.
육들이 생명을 외치면
말씀에 의해 죄인 중에 괴수가 된 이 인간은 죽음을 외치고
육들이 구원을 외치면
죄인 중의 괴수는 심판을 외친다.
무조건 반대로 하겠다는 저 이해할수 없는 배배꼬인 심뽀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말씀을 해석 하고 실천하는 인간들의 모든 공통점들은
원수의 성문을 닫고, 죽음의 두껑을 열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의 죄악을 자기 스스로 뒷걸음질 쳐서 덮을려고 하는 회개의 달인들이며
사망과 저주와 심판에서 멀리 멀리 간격을 벌리고자 (강도만난자를 그냥 지나쳐 버리듯:선한사마리아비유)
그래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 되고파했고
말씀 실천의 대가가 되기를 원했다.
(마 5:20, 개역)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런데 엉뚱한 인간들이 나타났다.
죄인 중의 괴수들이 말씀에 의해 해석당해서 등장하니
남들이 모든 인간들이 열고 싶어 하지 않는 죽음의 두껑을 열고자 하며
원수의 성문을 열어재끼고
사망의 권세와 맞딱뜨리는 심판을 자신의 신체에 담는
지독한 미움을 받는 길로만 골라 골라 가는 듯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저주 받은 모습을 기뻐 즐거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십자가 라는 불륜이라고 외치면서
이 불륜만이 은혜라고 하니
이건 완전히 부정 중에 부정인 십자가에 목숨 걸었다는
십자가에 해석 당하는 인간이다는 뜻이다.
자 그럼 이제 이 십자가 라는 부정 중에 부정의 길로 갈 자는 아무도 없다.
도리어 긍정 중에 긍정의 길로만 종교는 더욱더 치장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십자가가 멈춰지질 않는다.
아무리 막고자 하여도 막을 재간이 있는 능력이 없다.
죽음의 두껑을 열어재꼈으니
졸지에 난처하기 짝이 없는
죄인 중의 괴수들이 도처에서 불쑥 불쑥 발생했다가 사라지고
또 불쑥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누가 이 부정 중에 부정인 십자가 라는 스캔들을 해석할 수 있으랴?
모든 인간들이 이 십자가 라는 처참함을 모래 속에 파묻어서
더 이상 끄집어 내지 말자고 무언의 약속을 한 마당에
무슨 수로 해석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십자가 스스로 일어나서
인간을 해석해 나가는 사건이 벌어짐으로써
죄인 중의 괴수 가 발생하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인
장대 높이 달린 구리놋뱀을 쳐다 보기만 하면 낫는다는 소리가
인간 속에 삐집고 들어와서 외쳐지기 시작한다.
(요 3:3,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개역)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 3:5, 개역)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6, 개역)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7, 개역)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8, 개역)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9, 개역)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요 3:10, 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요 3:11, 개역)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요 3:12, 개역)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3, 개역)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3:14, 개역)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개역)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개역)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7, 개역)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8, 개역)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 3:19, 개역)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20, 개역)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1, 개역)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저런 소리를 듣고 따랐다가는 미친놈 취급 당하며
죄인 중의 괴수가 되고 만다.
서로 서로가 의인 중에 의인이 되고파서
교회 다니고 서로가 그런 길로만 가자고 다짐한 그 삶 속에
저런 이상한 소리가 삐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단속을 하면서 말이다.
내가 사랑해야 사랑이 되고 내가 긍정을 해야 긍정이 되는 구원이 되어야지
내가 실천하는 것이 아닌
인자가 들림으로써 이루어지는 구원과 영생은 있을 수 없다.
어디까지나 나의 숙제요 내가 사랑을 실천해야할 입장이다.
바로 이것이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 아닌가?
그런데 십자가는 모든 것을 망쳐 놓는다.
죄인 중의 괴수로 해석 당하게 되니
비로소 니고데모도 알지 못한 저 이상한 소리를
원치도 않았는데 알게 된다.
긍정 중의 긍정인 내가 아닌
부정 중의 부정인 십자가가 옳았다는 것을 말이다.
관리자(IP:220.♡.176.150)
09-07-04 08:29
잠결에 생각난것 잊어버릴까봐 메모를 했다.
실컷 기가 막히게 성경 해석 잘 하는 인간은 지옥에 갔고
성경 해석 제대로 한 적 없고 순 엉터리로만 보던 자인 거지 나사로와 같은 자가 천국에 갔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고 하니
말씀이 일방적으로 해석해서 그 해석에 당한 자가 거지 나사로요 탕자이다.
그러나 기똥차게 해석 잘 하던 인간들은 탕자비유의 첫째아들처럼
일방적인 편애에 졸지에 걸려 툭하고 막혀 버렸다.
평생을 실컷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 말씀 한번도 어긴 적이 살았는데 말이다.
이 수수께끼 언 놈이 풀랴?
그냥 수수께끼 비밀에 해석 당하는 길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