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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박용기 라는 사람? 누구죠?묻고답하기[신학]

박용기 라는 사람? 누구죠?

이름 : 관리자(IP:125.190.2.45)

박용기 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데
자주 이 사람의 해석들이 대화 중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립니다.

이 사람의 사상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입장이오니 상세히 알려주시고(일반인에게)

이 사람의 사상의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부탁드립니다.

이근호(IP:117.♡.145.62)

09-07-03 12:40

언약적 구속사를 박형용 조직신학이라는 테두리에 맞추어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 그 신학 체계를 구성면서 '성경신학'이란 체계를 수립하고자 노력한 분입니다. 복음은 모르고 신학이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즐기는 분입니다. 즉 ‘이단이라고 욕 안 먹어먹는 범위 내에서 자아 도취해 빠져 자기 정당성을 내세울 수 있는’ 놀이거리를 정리해서 오랜 세월동안 유포하신 분입니다. 이런 점에서 노련한 보수 개혁주의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해서 '그리스도 밖'에서 노는 인물입니다.

김성환(IP:125.♡.0.183)

09-07-03 13:40

목사님~이름 수정 필요한듯...합동신학교 전총장이었던 '박형용'이 아니라 총신대학교 조직신학교수를 지녔던 '박형룡'입니다. 한국축구대표선수인 '이근호'가 우리교회 '이근호'목사님이 아니듯...ㅋㅋ...박용기 목사는 '박형룡'의 신학을 목사님 말씀처럼 '성경신학'이란 이름하에 새롭게 업그레드된 또 다른 개혁신학입니다. 아래는 '박형룡'박사가 추구했던 '사회개혁'에 참고로 좀 올립니다(십자가의 피가 여기서 또 한번 작렬하게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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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박형룡의 사회참여관> _퍼온 글

1950년대와 60년대 말 이전까지만 해도 박형룡은 사회문제에 관하여 이렇다 할 논문을 발표한 일이 없다. 다만 그는 복음의 수호와 전파 그리고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전파하는 것이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1972년에 쓴《신복음주의 비평》이라는 책의 “개혁(칼빈)주의 약해”라는 장(章)에서 개혁주의의 사회관과 국가관에 관하여 논하고 있다. 이 소책자는 앞서 말한 대로 박형룡이 기독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의 최종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개혁주의자들 중에서도 근본주의에 가장 가까운 우파적인 견해에 근접해 간다. 그러면서 이를 그가 가장 진정한 기독교의 모형이라고 생각하는 ‘개혁주의’와 동일시한다. 물론 그는 “문화와 기독교는 서로 반대된다고 주장하는 어떤 기독교 단체들,” 즉 근본주의자들에 대하여는 반대한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죄악성에 항거하여 하나님의 보통 은혜가 역사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사회의 문제에서도 그는 칼빈주의자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적극적으로 가정과 학교와 국가를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이론적인 개혁주의는 단지 이론뿐이었다. 이는 그의 개혁주의 사회관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볼 때에 드러난다.

최소한 세 가지의 점에서 박형룡의 사회참여관은 ‘자유주의자들’과 혹은 사회참여를 주장하는 개혁주의의 사회관과 다르다. 첫째 박형룡은 무엇보다도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무로 위정자(爲政者)에 대한 존경․복종․납세(納稅)․병역(兵役) 등 국가의 명령하는 의무들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가르친다”고 하여 의무를 앞세운다. 당시 박정희의 유신정권에 대하여 국민들의 저항이 거세었을 때에 의무를 앞세우고 있는데, 이는 자칫 현정권과의 타협으로 보이기 쉬운 것이다. 실제로 박형룡은 1969년 박정희의 삼선개헌에 관한 〈개헌문제와 양심 자유 선언〉이라는 성명에 보수적인 기독교인 242인의 한 사람으로서 서명을 한 일이 있다. 또한 〈개헌 문제에 대한 우리의 소신〉이라는 성명을 통하여 박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영도력을 지닌 지도 체제”를 찬성하며 기존의 질서를 옹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재준과 같은 진보적인 인사들은, “자기 자신을 신화(神化)하여 하나님을 무시하고 오만한 자리에 앉은 자로서 망하지 아니한 자가 어디 있었던가? 로마의 시이저, 독일의 히틀러, 일제 등이 우리의 증인이 아닌가?”라고 하여 현 정권을 비판하는 데 앞장을 섰던 것이다. 여기에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 일제 때에는 일본 정부의 악함에 대하여 저항을 하고 그 정권의 무신성(無神性)을 드러내었고 똑같은 강도를 가지고 공산주의에 대하여 반대하던 보수주의 학자들은 유신정권이 가지고 있는 그 무신성에 대하여는 외면하고 현 체제를 고수하고자 하였던 반면에, 일제에 영합하고 미국의 선교사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하였던 ‘자유주의자들’은 유신정권에 항거하였다.

둘째, 박형룡은 국가의 일에 간섭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극히 제한시켰다. 즉 “교회적인 사건 이외의 사건으로 국가에 대하여 명령을 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오직 비상한 사건에 진정(陳情)의 방식으로 충고할 것”을 가르친다고 하였다. 즉 국가가 종교에 간섭을 하거나 박해를 가할 때에는 저항을 하지만, 정치의 문제나 인권의 문제와 같은 “세속적 사건”에 관하여는 교회가 국가의 일에 대하여 간섭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는 당시의 진보적인 기독교인들과 WCC계에서 “사회개량에 맹렬한 활동”을 하며 “사회적 정치적 투쟁을 지향”하는 것)에 대한 반대이다. 사실 당시의 정부는 보수적인 교회에 대하여 박해를 하지는 않았다. 교회 쪽에서 국가가 교회의 일에 방해를 할까봐서 먼저 숙이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1969년 삼선개헌 당시 박형룡이 교장으로 시무하던 총신에서는 총회신학대학의 대학 인가를 위하여서 문교부와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던 때였다. 또한 재단이사장 백남조 장로는 “사업확장을 위한 차관 도입을 하는 일에 전국 교회가 서명하여 정부요로(政府要路)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 정권에 불리한 말을 하기를 꺼려한 총회의 실권자들은 총회에서 개헌에 대한 지지성명을 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였다. 박형룡은 “불가피한 일이니 신학교를 위하여서도 [전남노회가 제출한 반대건의서]를 철회하고 [삼선개헌을] 지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정규오 목사를 ‘종용’하였다. 정부에서 이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는 교회를 박해할 리가 없었다.

셋째, 교회가 국가에 대하여 그와 같은 사회적 의무를 할 때에는 “모든 기독교 신도들의 이행할 일이요 교회 단체로서나 교역자들이 직접 할 일은 아닐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국가에 대하여 의무를 감당할 때에 “기독교적 감화를 국가 사회의 모든 방면에 미치도록 노력”할 것을 말한다. 즉 복음전파하면서 윤리적인 원리들을 가르치고, 기독교적 학문을 진흥시키고 또한 출판물과 방송과 강단을 통하여 “일반 민중의 호의(好意)를 얻도록,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 하였다. 이는 당시의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이 “세속적 사건에 관한 국가의 법령에 반항하여 군중을 모아 가두(街頭) 데모를 벌리고 목사들이 경관에게 붙들려 투옥되는 따위의 추태”를 벌이는 데 대한 반대의 견해였다. 박형룡의 스승들이 과거 일제시대 때에 목사의 신분으로 교회라는 조직을 이용하여 3․1운동에 참여하고 잡혀가서 투옥되고 고문과 악형을 받던 것을 어떻게 설명할지 알지 못하겠다.

초기 사상과 후기 사상의 차이

박형룡의 이와 같은 1970년대의 글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해방 전에 가지고 있던 사회참여에 관한 생각과 그의 사회참여에 관한 후기 사상의 불연속적인 면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겠는가? 물론 일제시대에는 외국인이 한국 사람들을 압박하였고, 해방 후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적대적인 세력이었던 반면에, 군사독재 정권의 경우 일제나 공산주의자들과 비교하여 그 무신성과 적그리스도적인 성격을 깨닫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박형룡이 20대에 3․1운동에 참가하고 설화사건을 일으켰다 하더라도 이제 70세가 넘어서까지 그러한 정열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박형룡이 적극적으로 사회의 개혁과 대독재정권투쟁을 감행하지 못한 데에 몇 가지의 다른 원인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박형룡은 자신의 사회참여관을 진보주의적 교단의 신학자들과 목사들의 그것과 차별화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박형룡은 50~60년대의 한국판 근본주의-자유주의 논쟁을 거치면서 자신의 신학을 ‘자유주의자들’과의 차별성에 의하여 규정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신학에 근거하여 이와 같은 적극적인 반정부활동에 나서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그들이 사회복음에 근거하여 사회 문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지 정통적인 신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였다. 그는 1935년에 쓴 “사회복음의 신학”을 다소 과격하게 개조한 논문 “사회복음과 천국복음”에서 “금일 교회 앞에는 복음의 목적은 속죄구령(贖罪救靈)인가 혹은 사회개량인가 하는 두 문제가 대립하여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천국복음에 대항하여 사회복음이 전파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사회문제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복음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교회에 운동, 오락의 설비를 하며 농촌교회의 신프로그램을 가지며 여러 가지 사회사업을 힘쓰는 것 등은 사회복음의 감화로 말미암은 것”이라고까지 하였다. 교육․의료․자선사업과 같은 것도 반드시 “전도의 방도”로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라 한다. 또한 WCC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바로 이 WCC와 WCC계의 선교운동들이 모두 사회복음을 따라가고, 심지어 빌리 그래함 등의 ‘신복음주의’도 “WCC 사회복음 운동에 따라간다”고 말한다.

둘째, 박형룡은 다소 진보적이고 집단적인 사회참여를 공산주의와 일치시키는 경향이 있다. 공산주의는 박형룡과 같은 보수적인 기독교인들 특별히 월남한 기독교인들에게는 일제보다도 무서운 ‘붉은 용’이다. 그가 WCC를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들이 공산주의에 대하여 지나친 호의를 가지고 있고, 공산국가들이 자신을 선전하는 장이 되고 있으며 또한 공산국가에 결국은 이익을 주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신복음주의자들도 그들이 공산주의자들과 친교를 가지고 있고 “WCC의 사회적 정치적 투쟁에 협력”하고 있으며 마틴 루터 킹의 행진과 같은 “공산주의자들과 인종문제 선동자들”을 지지하고 있기에 그들을 반대한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사회적 활동의 방식에서 WCC를 따라가니 결국 WCC가 하듯이 무신론 유물론에 기초한 공산주의와 악수하게 될 때 있을 것”이라 하여 이를 의심하였다. 신학적 좌경과 정치적 좌경이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보수주의와 보수주의적 기독교의 연합밖에는 없다. 박형룡은 집단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당대의 박정희 정권이 창조한 매카시즘(McCarthyism)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특히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칼 맥킨타이어(Carl McIntire) 박사와 교제를 가지면서 그리고 국제기독교협의회(ICCC)의 기관지인 〈크리스천 비이콘〉(Christian Beacon)이 한국교회 내에서 많이 읽혀지면서 박형룡도 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요컨대 후기 박형룡의 윤리관은 ‘근본주의적’이라 할 수 있다.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온건한 개인윤리를 통하여 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는 믿음,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급진적이고 집단적인 행동을 공산주의로 매도하여 이를 격렬히 반대하는 것, 그러면서도 국가와의 관계에서 사실은 정권과 야합하고 우경(右傾)된 정치참여를 시도하는 것 등이다.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적응하는 사회참여의 방법을 개발하지 못하고 과거 19세기에 가지고 있던 개인윤리적인 사회관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결 론

한국의 보수주의 교회와 신학자들은 처음부터 사회의식이 없었고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정치적 압박에 대항하기 위한 인권운동이나 통일운동 등의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사회적 문제들에 일찍부터 눈을 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고 하는 해석이 오랜 동안 정설로 되어 왔다. 그러나 그 이론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이 논문의 중요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1960년대와 70년대를 단면으로 잘라서 본다면, 보수주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정치적 권위와 야합하고 군사정권의 불법적 쿠데타를 묵인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해방 전은 물론이고 해방 후에도 박형룡과 같은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보수주의자들이 사회의 개혁에 적극 참여하였고, 또한 그들의 1960~70년대에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도 사실은 그들의 사회참여의 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본 논문을 통하여 증명하려 하였다. 즉 그들은 영적인 변화와 개인적 윤리를 통하여 사회가 개혁될 것이라고 믿었다. 현대와 같이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이러한 개혁을 꿈꾼다는 것은 분명 소박한 이상주의자의 생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의 마음속에서 민족 구원에 대한 그리고 통일에 대한 소망이 한번도 사라졌던 적은 없다.

보수주의자들 특히 박형룡의 사회참여에 관하여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본다면 그의 초기 사상과 후기 사상 간에 연속적인 면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개인적인 신앙과 선행을 통하여 국가를 개혁하고 사회를 기독교화한다는 것이다. 그가 자라나고 교육받았던 때는 빅토리아식의 윤리관을 가지고 있던 선교사들의 시대였다. “춤이나 담배․카드놀이 등은 기독교 신자들이 빠져서는 안될 죄”라고 보고 있는 ‘퓨리탄 형’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교육을 받았다. 박형룡은 그가 중등교육을 받았던 도시 선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장날이 안식일이 되면 기독교 신자들이 철전(撤廛)하고 매매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폐장(閉場)”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와 같은 의식개혁이나 교육사업 등을 통하여 사회가 개혁될 것이라고 믿는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이 실제로 조금씩 일어나고 있던 시대에 10대를 보냈다. 그가 23세 때에 설화사건을 일으킨 설교의 내용도 같은 방법에 의한 사회개혁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보수주의 장로교회가 그 사회활동에서 가장 왕성하던 시기인 20년대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내었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기독교의 변증 쪽에만 관심을 두고 활동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사회를 위하여 무엇이라도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 의무를 이행치 못하면 그 동안에는 실용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불평을 진정시키지 못합니다”라고 기독교인의 사회적 의무를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막연한 것이고 그의 머리 속에는 당시의 농촌운동이나 계몽운동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에 대한 무력투쟁과 같은 생각은 그에게는 없다. 그 당시 평양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도 물산장려운동이나 국채보상운동과 같은 ‘개량주의적’인 온건한 운동을 하였을 뿐이다. 해방이 된 후에도 박형룡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도 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대신, 단지 바른 신학 위에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통하여 세계에 빛을 비출 수 있다는 소박한 방법을 택하였다. 개인적인 윤리가 바로 서면 이 세계가 바로 설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승만의 부정선거에도, 3선개헌에도, 유신에도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교회가 빛을 비추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 설교를 하면서 그 방법이 첫째는 우상숭배한 것을 회개하고 신앙의 절조를 회복하는 것, 둘째는 정통신학을 고수하는 것, 그리고 “교회의 구성원인 신자들의 실천하는 미덕과 선행의 생활”을 불신세계에 보여줄 것을 들고 있다. 박형룡이 남긴 마지막 원고 중의 하나인 “정결한 교회”라는 강연에서 그는 한국장로교회의 윤리적 모범에 대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 신앙과 생활의 법칙으로 믿고 부지런히 공부하되……개교회 사경회와 개인전도에 치중하며 안식일 성수, 경건생활 장려, 청렴, 기도, 금주, 금연,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의 열렬한 대망” 등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가져야 할 것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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