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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5대구강의08(교회를넘어서)16-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3자유게시판-

05대구강의08(교회를넘어서)16-그리스도의몸으로서의교회3

이름 : 구득영(IP:203.223.97.192)

[05 대구강의 8] - 교회를 넘어서 16 -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3

05,05,30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참 교회는 '없음의 정신'으로 !!

먼저 교재 276페이지 중간 부분을 살펴보자.

** 신약시대에 와서는 참 교회는 '없음의 정신'으로 성전을 유지한다.

여기에 없음의 정신' 이라고 참으로 어려운 말이 나오는데, 그렇다고 하면 '있음의 정신'은 왜 교회가 되지 않는가? 그런데 만약에 이것을 '있음' 이라고 한다면, 그 있음은 반드시 소유주가 있고, 그렇게 되면 주인행세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렇게 교회가 있다면, "이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 라고, 사람들이 묻는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런 추상적인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왜냐하면 그 양반은 지금 하늘에 계시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실제로 교회를 관리하는 책임자가 누구냐는 말이다.

◈ 지금 이 시대는, '있음'이 모든 것의 출발점 !!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지금 이 시대는, 사람의 있음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러한 사람의 있음에서 교회의 있음도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교회는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말을 하다가 보니 어떻게 말장난 비슷하게 되었는데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사람의 있음에서 교회가 되었다고 하면, 교회는 사람의 모임이니 말이다. 그러면 교회의 있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고 하면, 교회는 교회의 있음이 되면 안 되고, 교회의 없음이 되어야 하는데, 이 말은 교회가 없다는 게 아니라, 없음으로서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교회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사람의 있음과는 관련성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낚시 동우회의 경우에는 서로가 다 낚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모였는데, 그렇게 되면 그것은 있음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의 경우에는, 이렇게 교회가 있다고 하면, 그러면 왜 교회가 있는가? 그것은 주님이 불러주셔서 그러하다면, 하지만 주님은 현재 보이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있다고 여기는 사람만 있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없음의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즉 우리 인간들의 있음을 허용이 되지 않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있음의 교회가 되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대번에 나오는 소리가 "이 교회는 누가 관리하지?" 라는 것인데, 다른 말로 하면 "이 교회의 주인은 누가 되지?" 라는 것인데 말이다.

◈ 교회의 주권은 '교인'에게 ??

대한예수교장로회헌법에 보면,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고 하니, "주권은 교인에게 있다" 라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말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러면 교인이 없으면 교회가 없는가? 교회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인데 말이다.

지난 시간에도 말했지만, 교회는 반드시 성령론에서 나와야 하고, 성령론은 그리스도론, 즉 메시야론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 메시야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인데, 즉 성령님은 그 몸을 보편화(?)시키고 편재화시킨다는 것이다.

◈ 교회의 방향성은 '몸' !!

그러니 교회는 어떤 특징이 있는고 하니, 몸으로 소급이 된다는 것이다. 즉 방향성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교회의 주인이 교회라고 하면, 그것이 어디로 올라가겠는가? 인간에게로 소급이 되는데, 그러면 주님을 지향해야될 교회가 교회 구성원들인 본인들을 지향하게 되고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 99명이 원하는 대로 !!

그렇게 교회의 모든 행정이 움직인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무엇을 결정하더라도 다음과 같이 되는데, 즉 만약에 교인이 100명인 교회에서 어떤 의견에 대해서 99명이 찬성한다고 하면, 그렇게 99명이 원하는 대로 진행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이고 뭐고 간에 그런 것은 다 때려치우고, 그냥 99명이 원하는 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없음이 아닌 사람 있음의 교회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없음의 정신이 유효한 교회가 아니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여기 있잖아" 라고 하게 되면, 교인이 있음의 교회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전혀 예수님 중심의, 즉 말씀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결국에는 사람 중심으로 전환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없음이 아니라 있음의 교회로 말이다.

◈ 복음을 아는 목회자들의 싸움은?

그래서 복음을 아는 목회자들은 바로 이런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즉 "교인들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말씀을 따를 것인가?" 라고 말이다. 바로 그러한 갈등 가운데 늘 싸우면서 살아가는 목회자가 복음을 제대로 아는 목회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전혀 갈등하지 않고, 그냥 좋은 것이 좋다고 하면서 교인들의 의사대로 나아간다면 성령을 받은 적이 없는 목회자라는 말이다. 본인이 말씀에 관심이 없고, 그러니 예수님의 지시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그러한 본인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나 있음' 밖에 없다는 말이다.

◈ 다시 '몸'에 대해서 !!

그런 의미에서 제가 몸에 대해서 다시 설명을 해드리겠는데, 우리의 몸은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그런데 자아는 자기 몸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자아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직접 관리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몸을 관리하는데, 그런데 인간은 자아가 자기 몸을 관리한다고 우긴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이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그것을 '바사' 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 몸을 우리의 자아는 자기 방식대로 끌고 가려고 하고, 또한 예수님은 예수님 방식대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여기서 갈등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 목사님,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어떤 분이 저에게 한번은 아주 당돌한 질문을 해왔는데, "도대체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라고 말이다.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말이다.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저의 주특기인데(ㅋㅋ), 그래서 저도 질세라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 그 사람이 기대한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간절히 기도하면 교회가 부흥되고 어쩌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그런 종교적인 업적과 성과들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하나님이 없어도 인간적인 속임수로도 얼마든지 끌어 모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 그것은 바로 '죽음' !!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증거는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죽는 것은 결코 우리의 소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은 자기 몸이 해체되는 것인데,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몸을 자기 것이라고, 즉 자아의 소유라고 여기고 살아왔는데, 그러나 막상 죽음 앞에서는 이 몸이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분명하게 자기 몸은 자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자아가 뭐라고 우기는가? 태어날 때부터 자기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그런 우김을 계속해서 해왔다는 것이다. 우기고 또 우기고 말이다. 심지어 기도하면서 우기고, 찬송하면서 우기고, 또한 성경말씀을 보면서 우기고 말이다. 물론 교회에 다니면서도 우기고 말이다. 즉 "하나님이여, 내 몸을 왜 이렇게 하십니까?" 라고 하면서 말이다.

마태복음 6장에 참 재미있는 말씀이 나오는데, 한번 찾아보자.

(마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마 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마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 예수님, 성장 호르몬 주사를 ??

여기 7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라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물론 키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말이다. 즉 "현재 너의 몸은 너 자신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몸이 자기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키가 한 자나 더 컸으면 좋겠다고 여기는데, 그러나 주님은 그럴 권리가 우리 자아에게는 없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그 키가 한 자가 더 큰 것이고 말이다. 150이든 160이든 간에 말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와 솔로몬의 영광을 비교하시는데, 솔로몬의 영광도 들꽃보다 못하다고, 즉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 예수님과의 충돌 - 내 것이다 !!

결국 이러한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성경말씀을 보기 이전에 인간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기 몸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고 성경을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이라는 말이다. 즉 예수님은 예수님 것이라고 하고, 우리는 우리 것이라고 하고 말이다. 이런 충돌 속에서 성경말씀을 보게 되니, 성경이 전부가 다 엉터리로 보인다는 것이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목사가 목회를 한답시고 자기 교회라고 한다는 말이다. 전에도 제가 몇 번 이야기를 했지 싶은데,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제일 괴로운 것이 바로 보여야될 교인이 보이지 않을 때, 30분을 화딱지가 왕짜증 설교(?)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막 휴대폰으로 오늘 참석하지 못한다고 문자 메시지가 왔을 때인데, 차라리 모르면 예배를 드리면서 기대라도 하는데, 이것은 처음부터 절망토록 한다는 것이다. 오늘 그 사람을 위해서 설교준비를 했는데, 그런데 하필 그 사람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 하나님은 장난꾸러기 ??

이것은 마치 짜장면을 주문해놓고 오지 않았을 때와 같은데, 짜장면이 불어터지면 맛이 하나도 없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설교를 해도 재미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목사가 자기 것이라고 하니, 약을 올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장난꾸러기인데, 하나님은 항상 예상 밖의 일을 하신다는 말이다.

◈ 준비됐나요? 아니요 ??

교인들이 보통 생활이 어려우면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이번에 닭집을 할까요? 김밥집을 할까요?" 라고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돈까스집을 해라" 라고, 그렇게 항상 인간이 뽑아든 카드를 무시하고 다른 카드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기도하기를 "하나님, 이번에 돈까스집을 할까요? 감자탕집을 할까요?" 라고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중국집이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인간들이 내민 서류에 결재사인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은 바로 '날마다 순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닭집을 하든 김밥집을 돈까스집을 하든지 간에, 항상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느냐고, 바로 그것을 묻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학대를 가든 법대를 가든지 간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학대학을 하면 신학을 버리고, 법대를 가면 법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이 전혀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서 인도하더라도 순종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순종이 제사보다 나으니 말이다.

◈ 인간은 걱정 근심할 자격조차 없어 !!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아가 있기 때문에, 이 자아가 자기 스스로 무슨 역할을 하는고 하니, 이 자아가 소유주라고 착각을 하는데, 무슨 소유주인가? 자기 몸이 자기 관리하에 있다고 말이다. 즉 자기가 원하는 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착각인데,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남의 몸을 자기 몸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자아에게서 나온 것이 걱정이고 근심인데, 그러나 인간은 근심 걱정할 자격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이 짜장면은 내 꺼 !!

어제 동은교회에서 그런 설교를 했는데, 중국집의 주방장이 짜장면을 뽑았는데, 그런데 그 짜장면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이 짜장면은 내 꺼" 라고 웃기는 짬뽕같은(?)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짜장면인 주제에 말이다. 하지만 짜장면은 누구 것인가? 주방장의 소유라는 것이다. (중국집 주인 것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을 만들었다고 하면, 그것을 믿는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지 어떻게 자기 자신의 소유가 되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는 "저 사람은 짬뽕인데, 나는 왜 짜장면이지?" 라고 한다는 말이다. 짜장면은 짜장면대로 필요해서 만든 것이고, 짬뽕은 짬뽕대로 필요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 공중 나는 새를 보라 !!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에 나는 새를 보아라. 들에 핀 들풀을 보아라. 그들이 염려를 하던가?" 라는 말씀인데, 새가 농사도 짓지 않고 창고도 필요로 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새들이 염려한 적이 있느냐는 말이다. 들풀이 내일 아침에 불쏘시개로 사용이 된다고 해서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라는 것인데, 얼마나 고마운 말씀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보면서 이러한 새와 들풀 등을 적용할 때, "그래, 나는 염려하지 말아야지" 라고 하면 안 되고, 그런 것을 몇 시간을 아니, 단 5분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근본을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여기 마태복음에서는 "그래, 염려하지 말아야지" 라고 하고, 다른 성경말씀을 보면서 그만 다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 하지만 '자아'는 결코 없어지지 않아 !!

그 근본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 자신에게는 주님의 몸을 자기 몸이라고 우기는 말도 안 되는 자아가 있는데, 그 자아가 항상 말썽을 일으킨다고 하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자아를 없애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할지 몰라도, 그러나 자아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말이다. 만약에 없어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아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자아는 계속해서 주님의 몸을 자기 몸이라고 우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몸의 개념을 왜 자꾸만 강조하는고 하니, 여기서 과연 여러분이 알고 있는지 테스트를 한번 해보겠는데, 구약에서 성전의 정의가 무엇인가? 정답은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는 곳인데, 그것이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데, 즉 "내가 너희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어서 너희들 가운데 있음으로서 너희들의 처소가 되고 성전이 될 것이다" 라고 말이다.

(출 15: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그래서 이것을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전이 함께 거하시는 '처소' 라는 개념이 된다는 말이다.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이 계신 곳 !!

그러므로 이 성전개념은 하나님의 이름이 계신 곳인데,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이것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고, 즉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한다는 것이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다시 말해서, 성령이 계신 곳이 곧 성전인데, 그래서 고린도후서 6장 15절에 보면, 어떻게 그리스도와 벨리알(사단?)이 조화가 되겠느냐고, 즉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떻게 일치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성령이 계신 곳을 성전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고후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니 우리가 성전의 개념을 이야기할 때는 "내 몸이 성전이다" 라고 곧 바로 이야기해버리면 안 되고, 그러면 참 위험한데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자기가 그 무엇을 해도 진리가 되고 마니 말이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래서 성전을 이야기할 때는 자기 몸부터, 즉 자기 자아로부터 출발을 하면 안 되고, 물론 모든 성경말씀이 다 그렇지만 말이다. 즉 "예수님이 머물고 계신 곳이 성전이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이 머물고 계신 곳에 성전이라고 한다면, 전에도 언급했지만, 메시야론에 있어서 이러한 예수님이 계시는 몸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성도라고 하면 그러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었기 때문에, 왜냐하면 성령이 계셔서 말이다. 그래서 교회가 성전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자아' 라는 것이 동원이 되면, 과연 이 자아가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있겠는가? 전혀 그런 틈이 없는데, 그래서 "너는 짬뽕, 나는 짜장면" 이라는 것이다.

◈ 주제 - 어떻게 구약에서 건축물이 신약에서 몸이 되는가?

이것을 지난 시간에 '분여(分與)' 라고 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어떻게 구약에서 건축물이 신약에서 몸이 되는가?" 라고 하는, 바로 그 관계를 설명해주어야만 이 '교회를 넘어서' 라는 책의 주제가 다 풀린다는 것이다. 이 책이 흐름이 바로, 건축물인 성전이 어떻게 몸이 되는지, 그것을 주제로 해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몸은 자아가 관리하는 몸이 아닌데, 만약에 자아가 관리하는 몸이라고 하면 성화론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거룩하세요" 라는 설교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은 자아가 주체가 되는 그런 거룩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증거하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희는 거룩하니, 따로 떨어져 나오너라" 라는 것이다. 물론 떨어져 나온다고 해서 동창회도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것은 바로 "이제는 너는 너가 관리해야 할 입장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자기 몸이, 자기 몸이 아니니 말이다.

◈ 여기 목사님께 짜장면 한 그릇 ??

이것이 참 중요한데, 즉 "내 몸은 내 행동여하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질 몸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알다시피 야곱은 에서가 태어나기 전이 이미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사랑을 받고, 에서는 미움을 받기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야곱이나 에서의 행동여하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야곱이 언제 자기가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는가?

마치 짜장면이 자기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주방장의 계획에 의해서 만들기를 짜장면을 만들고 짬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번 짜장면은 영원한 짜장면이고 한번 짬뽕은 영원한 짬뽕이라는 말이다. 짜장면에 침이 좀 튀었다고 해서 짬뽕이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인간의 행동여하에 따라서 신분이나 운명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믿는 자가 성도이고, 반면에 자기 행동여하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하는 것이 곧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고, 또한 악마의 종들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 몸은, 자아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약속에 의해서만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만이 영적인 사람이고, 바로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만이 성전이 된다는 것이다. 주님의 몸으로서의 성전이 말이다.

◈ 자아는 성전을 만드는데 관여할 수 없어 !!

그렇다고 하면,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아가 이러한 성전을 만드는데 관여되는가? 되지 않는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성전이 되는 것은, 예수님이 계심으로 해서 완결되고 종결되는 것이지, 자기 행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절제하고 조절해서 행동을 바르게 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더욱 더 성전이 되고, 못한다고 해서 덜 성전이 되는 것은 일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믿지 않는데, 마치 자기가 죄를 짓는다면 자기 속에 있는 성령님도 쫓아낼 수 있는 것처럼 여긴다는 말이다. 자기가 죄를 지으면 성령님이 쫓겨나간다는 것은 무엇을 모르기에 일어나는 현상인고 하니, 그것은 자기가 죄를 짓지 않고 착실하니 성령님이 들어와서 계신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러한 전제가 있기 때문에 자기가 죄를 지으면 나간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요?

그러므로 성전, 혹은 몸의 개념을 예수님께서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완성된 행위에 의해서 왔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것은 자기 행동에 준해서 그렇게 움직인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이 구원을 받고 말고 하는 것은 자기 행동여하에 결정된다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야곱의 생각이 아니라 에서의 사고방식인데, 그러면 야곱은 무엇인가? 자기가 야곱이 된 것은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이미 사랑을 받기로 작정이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야곱은 사랑의 화신으로 이 땅에 등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 '몸'을 다시 정리하면, 1, 2, 3, 4 !!

다시 정리해보면, 먼저 신약의 '몸'이라는 것은, 일체 인간의 행동과는 상관이 없는데, 여기서 말하는 행동은 행동뿐만이 아니라 마음씨와 사고방식 등등, 그 모든 것이 다 포함이 되는데 말이다. 아무튼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몸은 인간의 행동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 몸은 비대해지지 않아 !!

두 번째는, 이러한 논리에 의해서 몸이 더 커지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다. 몸이 몸답게 더욱 더 뚜렷하게 표출이 되는 것이지, 몸이 더 커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모이는 숫자가 더 많다고 해서, 몸이 더욱 더 비대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목사님, 왜 그런가요? 사람이 더욱 더 많이 모이게 되면 몸이 커지는 것이 아닌가요?" 라고 질문을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몸은 어떠한 양(量)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면 그것이 곧 몸이고 성전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첫 번째에서 내린 정의인데 말이다.

여러분들이 헛갈리지 싶어서 다시 말씀을 드리는데,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는 곳인데,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기 때문에 숫자가 몇 명이든 간에 거룩한 곳인데, 왜냐하면 거룩한 분이 계시기 때문에 말이다. 성령은 말 그대로 거룩한 영인데, 거룩한 영이 있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인데, 다른 말로는 '성도' 라고 한다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가 그렇게 커도 탄 사람은 몇 명이 되지 않는데, 8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방주가 열을 받아서 자폭을 했는가? 손님이 없다고 해서 그만 삐쳐서 문을 닫고 말았는가? 일체 그런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독특함인데, 즉 하나님은 약속을 보고 일을 하지, 사람의 숫자를 보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사람들은 숫자에 관심을 두지만 말이다.

◈ 인간의 수작으로 성전을 만들 가능성이 전무 !!

이제 두 번째를 해보면, 이 '몸' 이라는 것은 비대해지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즉 양적으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세 번째가 되는데, 첫 번째와 같은데 일체 인간의 수단과 수작으로 성전을 만들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즉 열 명이 성전이 아니라고 하면, 천 명이 된다고 해도 성전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성전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기에 말이다.

◈ 자아에게서 나온 몸을 죽이는 기능으로서 !!

그렇게 보면 이 몸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고 하니까, 그것이 네 번째가 되는데 말이다. 첫째로, 이 몸 자체가 인간의 행동에 상관하지 않고, 둘째로, 더 이상 비대해지지 않고, 셋째로, 일체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로는, 이 몸의 특징이 곧 인간의 자아에게서 나온 몸을 죽이는 기능으로서 역사에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재림, 즉 마지막 심판대에까지 십자가의 능력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한번 보자는 말인데, 이 십자가의 능력은 마지막 심판까지 이어지는 능력이니 말이다. 왜냐하면 중간에 그만 흐리멍텅해지면 심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장에 보면, "찌른 자도 볼 것이요" 라고 했는데, 마지막 심판은 동일한 십자가의 능력이 계속해서 유효하게 지속되어야 심판이 가능한데, 그러면 그 중간에 있는 우리는 무엇인가? 2005년도 5월 30일에 있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 능력 - 그것은 원래 내 거야 !!

예수님은 십자가를 가지고 이 몸이 자아가 자기 소유라고 우기는 것을 공격하시는데, 자꾸만 '자아' 라고 하면 어려우니, 아무튼 예수님이 십자가를 가지고 자기 몸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그것을 두고 "야 임마, 그것은 원래 내 거야" 라고 공격하는 것을 두 글자로 '능력'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고백하는데, 즉 자아는 날마다 죽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은 날마다 '나'를 죽이는데, 왜 그렇게 죽여야 하는가? '나' 라는 것이 살아있으면, 자기의 온갖 수단을 다 부려서 몸을 몸 되게 하는데, 숫자를 늘려서 하든지 말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이 정도로 열심히 했으니 교회답다고 여기는, 바로 그런 자아가 요구하는 엉뚱한 교회가 그만 생긴다는 것이다. 즉 교인들 각자의 자아가 요구하는, 그렇게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되는 말이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은 날아가 버리고 없는데, 그런 자아가 만든 새로운 엉뚱한 교회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 '다른 복음' 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하는고 하니, 주님의 뜻에 의해서 도저히 참지를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1장 8절에 보면,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하는데,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이다.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러니 목회자는 당연히 이 저주에 대해서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데, 축복이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저주를 받는가? 그것은 분명한 원인이 있는데, 그것은 곧 '다른 복음' 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목사가 되어서 강단에 섰을 때, 김 집사가 없고, 또한 최 집사가 없어도, 그런 것에다 신경을 쓸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새로 온 사람이 있다고 너무 의식해도 안 되고 말이다.

◈ 난 나나, 난 나나, 나나나나 ??

그것은 바로 그 교회를 목사인 '나'가, 집사인 '나'가, 그렇게 '나'의 교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고 하니, 다른 복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 갈라디아서를 보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번 일로 김 장로가 삐치면 안 되는데"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오랜만에 돈 되는 장로가 왔더라도 말이다. 모든 교인들이 그 양반만 쳐다보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할 문제가 아니라 신경을 쓸 것이 무엇인고 하니, 목회자는 "주여, 다른 복음이 무엇입니까? 제가 하는 설교 가운데 만약에 다른 복음이 섞였다고 하면 안 됩니다. 혹시나 다른 복음이 들어있지 않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이렇게 다른 복음이 무엇인지, 여기에 대해서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기에 말이다.

◈ 십자가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것이 곧 다른 복음 !!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다른 복음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몸과 관련해서 이야기하면 말이다. 이 십자가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것이 곧 다른 복음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간단한데, 그렇다면 십자가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제 아무리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재림을 이야기하고, 심판을 이야기해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취지가 오직 십자가만을 위한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가마저도 들러리로 동원을 시킨다고 하면, 그래서 결국은 '나'를 위해서, 즉 목사나 장로나 집사를 위한 말이다. 그렇게 자기들 교회를 위한 십자가라고 하면, 그런 십자가는 아무리 십자가를 강조해도, 전혀 심판대에서 구원되는 십자가가 아니기에, 그것은 결국 다른 복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얘들아, 저것이 무슨 바다이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 그렇게 되면 목회를 하기가 참 어려운데요?" 라고 하는데, 하지만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렵다고 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에 말이다. 예를 들어서, 동해바다를 건너라고 하면 엄청 어려운데, 아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무슨 물고기도 아니고 도저히 건널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그렇게 동해바다를 건너라고 하는 아니라, 그것은 물고기들에게 맡기면 되면 되고 말이다. 우리는 선생님께서 "얘들아, 저것이 무슨 바다이지?" 라고 하면, "예, 동해 바다입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 어려우냐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언제 주님이 목사에게 교회를 만들라고 한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이 언제 목사들에게 성전을 만들라고 했느냐는 것이다. 오랜만에 좋은 말을 했는데, 아까 주님의 몸으로서의 성전의 특징이 뭐라고 했는가?

그 첫째가 바로 성전은 인간의 행함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성전에는 인간의 이름이 아닌 주님의 이름이 담겨져 있기에 말이다. 즉 예수님 본인의 숙제이지 우리의 숙제가 아닌데, 예수님 본인이 거하고 싶으면 그것이 곧 성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사가 교회를 자기가 만들려고 하니 어렵지, 하지만 말씀대로 하면 전혀 어렵지 않는데, 즉 "여러분, 다른 복음은 이것이고, 진짜 복음은 이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뭐가 어려우냐는 말이다. 즉 "학생 여러분, 저것이 무슨 바다지요? - 예. 동해 바다입니다. - 예, 참 잘했습니다" 라고 하면 되는데, 도대체 무엇이 어렵고 힘드느냐는 것이다.

◈ 목사님, 우리는 바다를 건너지 못합니다 ??

하지만 목사가 되어서 실제로 설교를 해보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즉 "여러분, 저것이 바로 동해바다입니다" 라고 하니, 교인들이 난리라는 것이다. "목사님, 우리는 전혀 동해 바다를 건너지 못합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누가 그 바다를 건너라고 했느냐는 것이다. 물고기가 아니면 건너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말이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하니, 교인들이 뭐라고 하는가? "목사님,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런 소리를 많이 듣는데, 아마 최 간사님도 학생들에게 많이 들었지 싶은데 말이다.

아무튼 그들은 말하기를, 그런 예수님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목사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그렇게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교인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가? 믿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기들은 믿지 못한다고 아우성이라는 말이다. 믿고 말고 하는 것은 주께서 하시는 것인데 말이다.

◈ 목사 본인이 교회를 만들려고 하기에 !!

지금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의 근본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교인들이 문제가 아니라 목회자 본인에게 있는데, 즉 자기가 교회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처럼, 자기가 날마다 죽으면 되는데, 자기는 죽고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다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목사는 예수님에게 손목을 잡힌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밖에 없는데, 즉 자기가 교회를 만들어서 예수님에게 바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목사 본인이 이미 그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니, 본인부터가 성전이, 즉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울이 아무리 그렇게 해도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데, 즉 순종하는 것이 그렇게 제사를 지내는 형식과 제도보다 낫다는 말이다. 순종한다는 것은 옆에 어른이 계신다는 뜻이고, 즉 자기는 짜장면에 불과하고,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 지금은 교회자체가 불경기 ??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목회가 결코 어렵지 않은데, 지금 같이 성경공부를 하는 목사님들의 딜레마가 무엇인고 하니, "목사님,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부흥이 안 됩니다" 라는 것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부흥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교회전체가 부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수 십억의 빚을 내어서 크게 지은 교회도 부흥이 되지 않는데, 과거에는 그렇게 일단 지어만 놓으면 교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는데 말이다. 마치 옛날 중세에 지은 교회가 지금은 그냥 관광 코스밖에 되지 않듯이 말이다. 동부교회든, 서부교회든 간에, 지금은 동서남북의 모든 교회가 다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다.

◈ 국민소득이 일만 불이 되면 !!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국민소득이 일만 불을 넘어가려고 하면, 온 집안이 모두 나서서 벌어야만 겨우 그 일만 불을 유지하게 되는데, 아버지는 벌고 엄마는 교회에 가서 쓰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유럽이 어디 놀면서 소득이 일만 달러가 되었는가? 마누라고 자식이고 간에 다 나서서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현재 일인당 국민소득이 12000불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과거에 농사를 지을 때는 삽과 호미를 들고 논과 밭에 가서 쑤시면 그래도 밥은 먹으면서 살았는데,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는가? 농협에서 융자를 받아서 기계영농을 해야하는데, 농번기에는 도시에 나간 아들도 주말에는 불러야 하고, 물론 목사도 가서 거들어주어야 하고 말이다. 그렇게 해야 어느 정도 도시의 소득과 균형이 맞아지는데, 그렇게 해야 도시와 농촌간의 간격이 줄어들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은 과거처럼 성경공부를 하고 교회에 다니고 말고 할 시간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큰 교회이든 작은 교회이든 교회전체가 다 불황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부가 돈을 벌기에 혈안이 되어있으니 말이다. 교회에 나올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 투잡과 쓰리잡을 해도 안 되니 !!

그러니 제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고 하니, 물론 복음을 모르는 목사들은 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복음을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투잡과 쓰리잡에 나서는데, 하지만 투잡과 쓰리잡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걷어치우는데, 하지만 교회를 걷어치울 때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인고 하니, "내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사명을 믿음이 없어서 스스로 발로 차는 것이 아니냐?" 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야곱의 원리(?)로 봐야 하는데, 야곱은 태어나서 그가 그 어떤 짓거리를 하든지 간에, 그런 것에 전혀 상관이 없이, 그런 짓거리조차도 사랑으로 전환이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면서, "이것이 과연 믿어지는가?" 라는 쪽으로 그 목사를 만드는 수도 있다는 말이다.

◈ 우리가 목회를 하든 말든, 주님은 뜻은 뜻대로 !!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묻고 계시는고 하니, "니가 교회를 걷어치우기 이전에, 즉 목회를 할 때도 과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느냐?"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즉 "혹시 니가 그때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서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여기지는 않았는가?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인데, 그 목회는 본인이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주님께서 하신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목회가 잘 될 때는 자기가 한 것처럼 착각을 하고는 "하나님이여, 제가 이상적인 교회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꾸만 그렇게 오해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장사가 되지 않으니, 투잡과 쓰리잡을 하는데, 하지만 그것도 안 되니 이제는 목회도 그만 걷어치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일요일에 다 놀고 하면 취직이 안 되는데, 물론 자기 가게가 있어도 일요일에 놀지 못하고 말이다. 장사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주일성수 !!

물론 교인들은 말하기를, "목사님, 과거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일성수를 제대로 못했지만, 이제는 김밥 집을 하니 제대로 잘 지키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 한 두 달은 잘 참고 견디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시험삼아 저주를 받는지 안 받는지 해본다고 하면서 가게문을 열었다가, 장사가 더 잘되니 그 다음 주일부터는 문을 활짝 열어버린다는 것이다. 코스가 딱 그 코스라는 말이다.

그러니 성경공부를 하더라도, 그 성경공부가 11시 정각에 시작을 하면, 처음에는 10시 반에 나오다가, 그 다음은 10시 50분, 그 다음에는 11시 정각, 그 다음은 11시 10분, 그 다음은 11시 10분, 그리고는 결국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코스로 간다는 말이다.

◈ 자아가 생각하는 예수가 따로 있어 !!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고 하니, 인간은 자아가 있어서, 그 자아가 꿈꾸는 성경말씀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즉 자아가 생각하는 예수가 따로 있고, 천국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주님에 의해서 그것이 교정이 되는데, 즉 그런 것은 다 무너지고 부수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목사를 때려치워도 그 사람은 성전이고 본인이 곧 교회인데, 자기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한다고 해서 교회가 아니고 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성전은 예수님이 계신 곳이 성전이니 말이다. 자기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면 할 수 없고 말이다.

◈ 십자가의 의미가 자기 행위와는 상관없이 !!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그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는가? "아하, 내가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믿어지는 자가 곧 성전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성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의미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의 행동과 전혀 상관없이 이미 창세 전부터 사랑을 받았음을 믿는다고 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간에 그 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믿음이 좋고 올바른 행동을 해서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 구원은, 예수님의 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 !!

그런데 구원파의 박옥수의 주장처럼, 자기가 십자가를 믿어줌으로서 사랑을 받았다고 하면, 그렇다면 그 사람이 5년을 믿고 그 다음에 믿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아하,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닌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처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자기의 능력으로 믿었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자아가 생각한 구원관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예수님의 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는다고 여기는 것은, 그것은 자아가 믿음을 만든다고 보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자아가 빠진 상태에서 형성이 되는 것을 두고 믿음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 믿음은, 주님과 그분이 만든 피조물인 몸과의 관계 !!

다시 말해서, 자아가 빠진 상태에서 원래 주인인 주님과 그분이 만든 피조물인 몸과의 관계를 두고서 믿음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주님이 몸에게 작용한 그 무엇, 그것이 곧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원래 주인이 주님이 원래 피조물인 자기 몸에다가 어떤 작용을 가하게 되면, 거기에서 믿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해서 믿음이 발생될 때, 그것은 자아가 믿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이 몸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 몸에서 믿음이 발생되도록 했다고 하는데, 바로 그 관계를 두고서 '믿음'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결코 행함이, 즉 자아의 행함이 아니라는 말이다.

◈ 결론은, 착하게 삽시다 ??

하지만 성경을 해석해놓았다고 하는 신학책들을 보면, 도대체 이 신학자라는 인간들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기가 찬다는 것이다. 유명하다고 하는 불트만이나 몰트만, 그리고 칼빈을 이야기하다가 결국은 "착하게 삽시다" 라는 것인데, 그것은 믿음이 아닌 자아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신학을 하니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목사도 마찬가지인데, 간절함으로 하면 교회가 부흥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간절함' 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자아를 깔작깔작 건드리는 것인데, 즉 어떤 사람은 간절히 기도해서 그렇게 되었고, 또 어떤 사람은 간절히 헌금을 해서 되었고 말이다. 그러니 자아를 죽이는 게 아니라, 자아를 더 곤고히 하는 것인데,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자폐증과 같은 정신병자들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날마다 자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자기 자아를 더 키워나간다는 말이다. 나중에는 너무 많이 키워서 교인들끼리 서로 어르렁거리고 말이다. 즉 "니가 믿음이 좋은지, 내가 믿음이 좋은지 한번 붙어볼까?" 라고 하면서 말이다. 심지어 "목사 당신이 믿음이 좋은지, 내가 좋은지 한번 해볼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 나는 짬뽕, 니는 짜장면 !!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어떤 목사님이 개인 사정상 목회를 그만두고 교회를 걷어치운다고 해서 이제는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교회관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주님께서 뜻이 있어서 자기에게 그런 일을 시킨다고 여기면 되는데, 그리고 그런 생각을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짬뽕이 나오면 짬뽕을 먹고, 또 짜장면이 나오면 짜장면을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짬뽕이기에 죽어도 짜장면은 안 될래" 라고 하면 안 되는데, 그런 인간은 다들 고집이 있어서 자기가 나중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목회를 그만두게 된다고 하면, 본인이 그만 엄청난 딜레마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면서 괜히 주님에게 짜증을 내는데, 즉 자기는 최선을 다했는데, 주님이 바쳐주지 않아서 목회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렇게 그 책임을 그만 주님에게 돌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그러한 태도가 더 큰 문제라는 말이다.

◈ 사도바울은, 자기 변화의 폭이 엄청나게 커 !!

하지만 사도바울의 경우에는, 자기 변화의 폭이 굉장히 큰데, 즉 "나는 부한 자 같으나 가난한 자이고, 죽은 자 같으니 산 자이다" 라는 것이다. 즉 죽음과 삶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것이 아무리 바뀌어도 자기는 그리스도의 성전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목사들은 김 집사 한 사람만 보이지 않아도 삐쳐서 설교를 하지 않는고 난리라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최 집사마저 보이지 않으면, 그 날은 마치 교회가 파업을 한 것처럼 화를 내면서 30분을 씩씩거린다는 말이다. 그러니 보는 눈이 얼마나 좁은지, 그것을 소갈머리가 없다고 하는데 말이다. 아닌가?

하지만 사도바울은 어떠했는가? 그는 실제로 돌에 맞아서 죽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죽은 줄로 알고 갖다 버렸는데, 거기서 그만 깨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언제 주님에게 짜증을 내었는가? "나는 이제 주님의 성전을 하지 않을 거야" 라고 하면서 말이다. 사도바울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더 많은 수고를 했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노는 폭이 얼마 넓은지, 사도바울은 66000평(?)이라고 하면, 요즘 목사들은 0.2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냥 자기 코앞에서 왔다갔다하면서 그것밖에 모른다는 말이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 너무 구축된 자아가 관습상, 즉 너무 많은 이 세상의 관습이 들어와서 해체가 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택함을 받은 자는 주께서 일일이 다 해체를 시켜주시는데, 다리가 하나 부서지고, 귀퉁뱅이(?)가 날아가면서 말이다.

◈ 껍데기를 홀라당 벗고 !!

그렇게 해서 껍데기를 홀라당 벗겨버리니까,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 줄을 비로소 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죽을 때 깨달을 수도 있는데, 즉 그리스도가 덩어리이고 실체이지, '나' 라고 하는 자아는 껍데기고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귀걸이이고 목걸이에 불과한 것이고, 자기를 째면 그 안에 그리스도의 덩어리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은 창세 전에 이미 예정하신 그 약속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지, 결코 우리의 행함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을 깨달은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전이라는 것이다.

혹시나 '헐크' 라는 미국 TV 드라마를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80년대에 유행을 했지 싶은데 말이다. 그 양반이 원래 박사인데, 평소에는 아주 얌전한 사람인데, 그런데 흥분할 일이 생기면 그만 괴물로 변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그만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다가 약물을 잘못 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 예수님은 난닝구를 째는 헐크 ??

그런데 그 '헐크' 라는 괴물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변할 때에 보면 난닝구(?)가 마구 찢어진다는 것이다(ㅋㅋ). 바로 이 자아는 난닝구인데, 그러니 그 안에 있는 예수님이 발작(?)을 하면 그냥 마구 째지고 만다는 것이다. 자아가 말이다.

지금도 우리교회나 여러분의 교회는 주님이 목회를 하시는데, 그런데 문제는 목회자가 바로 방해꾼이라는 것이다. 매일같이 자기 교회라고 하면서, 주님의 목회를 훼방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금 '교회를 넘어서'를 하면서, 지금 주님의 몸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이런 주님의 몸을 막을 자가 없다는 것인데, 주님의 활동을 말이다.

◈ 다시 기억을 새롭게 !!

다시 기억을 되새기는 의미에서 복습을 하겠는데, 그 몸에서 마지막 심판대에까지 무엇이 나온다고 했는가? 그 몸에서 십자가의 능력이 나오는데, 그것이 무슨 일을 하는고 하니, 자아가 생각하는 모든 엉터리 복음을, 즉 자아가 생각하는 하나님론, 성령론, 교회론 등등을 완전히 부수어 버린다는 것이다. 즉 십자가의 능력이 이 자아를 그만 박살을 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마지막 심판 날까지 이어진다는 말이다.

◈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는 무너져야 하는가?

그렇다면 하면 여기에서 응용문제를 하나 내겠는데, 이렇게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가 있다고 한다면, 이 교회는 부서지겠는가? 그렇지 않겠는가? 반드시 부서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까, 몸이 이렇게 따로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있는 일곱교회는 일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역사는 몸에 의해서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하면서, 그것이 되풀이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완전한 교회를 꿈꾸면 결코 안 되는데, 물론 교회개혁을 하려고 해도 안 되고 말이다.

◈ 개척교회를 하더라도 !!

예를 들어서, 개척교회를 한다면 약 20명이 모였는데, 그래서 서로 약속을 하기를, 가게세 40만원에 목사님 월급 100만원으로 해서, 그렇게 140만원을 골고루 나누어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가정에 15만원씩 내면서 6개월을 잘 갔는데, 그런데 그 이후로는 그만 두 가정에서 15만원이 아닌 그만 오천원밖에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그때부터는 교회에 적자가 쌓이기 시작하는데, 재정을 받은 집사가 회계보고는 하는데, 흑자가 200만원이라고 하면 설교도 기분이 좋아서 잘 되는데, 그만 적자가 그렇게 쌓이기 시작하니, 복음이고 뭐고 설교자체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가 아이디어를 내어서, 자기 월급을 깎을 수는 없고, 이제는 목사 집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그러니 가게세가 나가지 않으니, 적자를 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부터는, 그 이전에는 두 가정만 오천원을 내었는데, 이제는 그만 힘이 들어서 다른 가정도 그렇게 오천원을 내는 가정이 두 가정이 더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또 재정이 그만 적자가 나게 되데, 그래서 이번에는 목사 월급도 할 수 없이 깎이게 되고, 그래서 목사는 자기 집에 방을 두 개를 세를 내주고 하나만 사용하면서 거기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처음의 두 가정이 나가고, 또 그 다음의 두 가정도 그만 떠나가고, 그렇게 해서 예배를 드리던 가정들도 점점 떠나가게 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이상적인 교회로 가는 길인가? 그렇게 쪼개면 교회가 되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 교회에는 의외로 가라지가 많아 !!

그 목사는 무엇을 몰랐는가? 교회에는 의외로 가라지가 많을 수 있음을 그만 잊고 있었다는 것이다. 교회는 어차피 모두 무너지게 되어있고, 주님께서 마지막 심판은 교회에서부터 시작을 하기에,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자를 교회에다 붙여놓았으면, "아하, 교회에 이런 자들도 있구나" 라고 하면서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전에 제가 이야기한 것은 실제로 그런 개연성이 많아서 지어낸 것인데, 아무튼 그 목사는 생각하기를, 가라지를 쫓아내면 다시는 가라지가 생기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머지는 계속해서 15만원씩 낼 줄로 알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착각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목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즉 "돈과 복음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라고 하면 다른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되는데, 그러면 그것이 교회라는 말이다. 예배를 드리는데 집주인에 세를 내지 않았다고 쫓아내면, 주섬주섬 마이크를 챙겨가면서 복음을 전하면 된다는 것이다.

◈ 교회가 교회를 망쳐 !!

그래서 목사는 할 수 없이 "이제 우리도 그만 나갑시다" 라고 한다면, 그때 오천원만 내던 두 가정이 자기들 때문에 그렇게 되었으니, 미안해서라도 앞으로는 그 교회에 나오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두 가정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이 교회를 우리가 어떻게 얻었는데, 그런데 목사님은 그것에 대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만 나오자고 하니, 그런 무능력한 목사님은 저도 싫습니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뛰쳐나간 가정이 또 두 군데나 있다고 하면, 그러면 그것도 역시 주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뛰쳐나간 네 가정은 모두가 하나같이 복음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재정이 돌아가야 교회가 교회답다고 하는, 기존의 그런 한국교회가 만든, 즉 마귀가 만든 자아들이 교회를 망친다는 것이다. 제가 전에 강조했지만, 그렇게 기존교회가 교회를 망친다는 것이다.

◈ 오직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 곧 교회 !!

복음을 전하면 그것이 곧 교회인데, 그런데 거기에는 관심이 없고, 재정도 되고, 부흥도 되고, 또 목사생활도 되고, 그런 것이 다 갖추어져야 교회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데, 그러니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것을 그대로 수용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오직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 바로 교회이다" 라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상태로 있어야 바른 복음이고, 거기에 다른 인간적인 행위를 첨가시킨다고 하면, 그것은 바른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라는 말이다. 역시 깨어져야 할 교회이고 말이다. 물론 그런 교회에서 목사다 재정집사가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런 와중에 얌체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교회 재정상태가 어떠한지, 주보에도 나오고 하니 계산을 해보면 다 뻔히 나오는 것인데, 그런데도 헌금을 달랑 천 원만 한다는 것은, 그것은 마치 가게에서 물건을 사듯이 그렇게 하겠다는 말이다. 즉 주님의 복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챙기고 내빼겠다는 것이다.

◈ 학원생은 학원을 사랑하지 않지만 !!

예를 들어서,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학원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 지식만 돈을 주고 사는 것인가? 당연히 지식만 사는 것인데, 결코 학원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굳이 환자가 병원을 사랑해야 하는가? 전혀 그것이 아닌데, 병원은 병만 고쳐주면 되지, 병원을 사랑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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