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3:28-33 (깨어있으라)
막 13:28-33 (깨어있으라)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69)
본문 : 마가복음 13장28-33절
제목 : 깨어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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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9-06-28 13:33
깨어 있으라
2009년 6월 28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13:28-33
(막 13:28, 개정)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막 13:29, 개정)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막 13:30, 개정)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막 13:31, 개정)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막 13:32, 개정)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막 13:33, 개정)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사람들에게 종말이나 심판이나 멸망 이야기하게 되면 어리둥절합니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반듯하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아기가 몸이 아프다. 그래서 가장은 밖에 나가 일을 하여 돈을 벌어와서 그 돈으로 병원에 가서 폐렴 주사를 맞추었더니 드디어 아기는 다시 방실방실 웃게 되었다. 자신의 희생으로 아이를 살린 것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라나서 청소년이 시기를 맞이하자 나쁜 친구를 사귀어 남의 물건을 훔치게 되어 구치소에 갇혔을 때, 아버지는 다시 한번 열심히 일한 대가로 얻은 돈을 합의금쪼로 내어서 그 아이를 구치소에서 빼내고 이런 점에 감동한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에 탐복하여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들어갔다면 이 얼마나 훌륭한 삶입니까. 이런 사람에게 저주니 죄인이나 멸망이나 지옥이나 심판이니 말한다는 참으로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꼭 믿어야 하는 겁니까? 그것은 마지막 때에는 인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자(人子)형 인간, 즉 예수님과 같은 인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1절에 보면,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 말씀에 충실한 사람만을 하나님은 인간으로 인정하십니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만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마땅히 해야할 일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날 때부터 모두 이단으로 태어났기에 그 어떤 행위를 해도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에게 돌려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준해서 보면,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존재는 저주와 심판과 지옥과 멸망이 주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원래 그 제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단들인 인간이 어떻게 자신이 이단이라고 고백하면서 원래 인간으로 돌아설 수 있을까요?
이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2:17-18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고 되어 있습니다. 즉 새로운 인자형 인간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입을 벌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놓게 됩니다. 이것은 자기 영광만을 최종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기이한 현상입니다. 사람들이란 자신이 수고하고 고생한 모든 것은 반드시 자기에게로 최종 영광을 돌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자형 인간은 모든 공적과 노고와 업적을 예수님에게 돌리고 있는 겁니다.
이들은 당당합니다. ‘확정 진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천하는 없어지겠으나 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아니하라’는 원칙 때문에 천하가 요동처럼 당당함에 사라지지를 않는 겁니다. 스데반 집사님처럼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살기등등해서 돌을 던졌지만 스데반집사님이 전하는 ‘확정 진리’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입장에서 복음이 복음댁로만 전하면 만사 OK인 것입니다.
교회는 잊어주세요. 교회가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주입되면 그 능력으로 구원됩니다. 여기에는 경쟁이 필요치 않습니다. 새로움의 도출입니다. 이것이 인자의 나라입니다.
인자 속에는 십자가와 부활이 담겨 있습니다. 이점은 인간의 세계와 다릅니다. 집안에서 혼자 성질낸다고 해서 100km 떨어진 어느 시골집의 지붕이 날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행함이 전 우주에 새로운 변화를 주는 일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자되시는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2장에서 엘리야는 불수레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중력을 거슬리는 역중력 작용입니다. 이것을 절대로 엘리야의 능력이라고 하지 마세요. 엘리야는 그럴 재주가 없습니다. 순전히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즉 ‘죽어도 사는 능력’입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기적은 개인 중심적 기적이요 자기 잘 되는 기적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제공하시려는 기적은 요나의 기적입니다. 죽어도 사는 기적일 뿐만 아니라 온 우주가 인간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으로 자리잡히는 그런 기적을 말합니다. 그래서 인자가 마지막 때에 구르타고 내려오시는 겁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기적이 아니라 만물이 예수님 중심으로 자리잡혔다는 것을 알려주는 확정 진리입니다.
수직적으로 엘리야의 불수레 뿐만아니라 수평적으로 주어지는 기적에도 이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 호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병자들이 여기저기 앉아 있다가 물결 일 때, 제일 먼저 뛰어들어가는 자가 사좌의 은총을 제공받는 다는 호수입니다. 거기에 38년 병들었던 자도 있었지만 늘 선착순에 밀려서 여전히 죽치고 있었습니다.
즉 아무리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얼른 낚아채지 못하면 구원되지 못한다는 것이 인간의 나라에서 주장하는 구원론입니다. 여기에 경쟁이 유발됩니다. 따라서 경쟁이 난무하는 교회는 잊어야 합니다. 경쟁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경쟁없이 그 38년된 병자를 낫게 했습니다. 이제 그 병자 속에는 예수님의 피가 들어있습니다. 인자의 십자가와 부활이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비해서 ‘인간의 나라’는 어떠합니까? 인간의 나라는 바벨탐에서부터 시작해서 애굽을 거쳐 바벨론 제국에 이릅니다. 모두다 인간의 이름을 빛내고 모든 영광을 인간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는 영역입니다. 즉 ‘본인이 본인을 만들어야 한다’의 철학이 진리가 되는 세계입니다. 심판이니 저주니 멸망이나 지옥을 외면하고 자기 수고로 인하여 자신이 존재 가치를 챙기는 곳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고 하셨습니다.(누가복음 23:28) 왜 이런 섭섭한 발언을 하시는 겁니까? 그동안 인간들은 꾸준히 ‘인간들만의 세계’를 꾸려고 왔던 것입니다. 사고 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고 마시고 하는 모든 행위들이 자기네들만의 세계을 꾸미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 되지 마시고 인자, 즉 예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확정 진리로 당당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요나의 기적이 저희들을 통해서 재현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 기도합니다. 』
우리교회
09-10-20 15:55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마가복음-2008/68강-막13장28-33(깨어있으라)-mar090628.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