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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산강의 2007년02월09일(고린도후서 2, 3장) (3/3)자유게시판고린도후서

안산강의 2007년02월09일(고린도후서 2, 3장) (3/3)

이름 : 조현창(IP:220.76.191.49)

사람이 최종 판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자기가 최종 판단자가 되요.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최종 판단자를 만나게 되면 자기가 최종판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판단은 주님께 일임해 버리면 그 분이 누구냐 사도 바울이예요. 이미 자기는 십자가에 일임했기 때문에 따로 걱정할 것이 없어요.

자기가 없지요. 자기에게 가치가 없으면 그 사람은 그 다음부터 혼자 살지 않지요. 사랑을 주신 주님과 함께 살지요. 이것을 예수 안이라고 하고, 성령 안, 성령이 이미 보증으로 들어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 사랑을 이야기해 보면 되요. 십자가 사랑을 들이대면 성령이 없는 사람은 십자가 사랑을 배척하게 되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감사합니다, 하고. 참으로 언제 적 고백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라는 것을 받게 되지요.

죄송합니다만 만약 사모님이 아파서 오늘 내일 한다면, 자식 셋이나 있고 철없는 남편 있고 그냥 가려니 안타깝다 말이죠. 그럴 때 주님이 찾아와서 자식이고 남편이고 세상일이고 간에 지금까지 그걸 버리고 안 버리고는 누구 소관이냐 하면, 요한복음 6장에 보니까 내가 택할 자는 내가 알아서 택하고 버릴 자는 내가 알아서 버리는데, 너는 침대에 누워서 왜 쓸데없이 걱정을 하느냐 이 말이죠.

걱정한다는 말은 결국은 그동안 주님하고 안 놀았다는 이야기 밖에 안되요. 주님하고 바이바이 했다는 고백 밖에 안되요. 주님은 저 쪽에서 놀고 나는 이쪽에서 놀면서 ‘만나지 맙시다.’ 주님과 안 만난 상태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 밖에 더 되요? 그러면 몸이 아프다는 것은 뭡니까? 몸이 아파 볼 때 비로소 내가 와장창 깨어지잖아요.

그 깨어진 틈 사이로 뭐가 들어옵니까? 주님의 사랑이 들어온 거예요. 물론 퇴원하면 마찬가지 되지만. 또 답답해가지고 내가 설쳐야 또 일이 되는 것처럼 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그러니까 주님께서 환란을 주신 것은 우리로 근심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님께서 주신 사랑과 약속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고 감사하도록 앞으로 더 큰 환란이 오더라도 기뻐하도록, 주께서 지금도 우리를 손수 쥐었다 놓았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증거 할 때 상대방들은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받게 되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 그 이야기가 나오는데....(고후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여러분 평소에 생활하면서 이겼다는 느낌을 받을 적이 있습니까? 참~ 드물잖아요. 하는 일마다 안 되잖아요. 그것이 왜 이기는 것입니까 실패지. 실패가 (사람을) 무서운 것이 아니고, 나는 실패하지 않을 자존심이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나를 실패하게 하십니까 하면서 짜증내는 것, 화를 내는 것이 무서워요.

예, 이것이 무섭다구요. 이것이 독소예요. 내가 주님을 미워해요. 왜? 성공하는 나를 건드리지 말라고. 실패하게 만들지 말라고. 나는 실패해서는 안되는 존재입니다. 알아서 하세요. 라는 식의...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것이 아니고 뭐든지 그 자체가 실패가 아니고 뭐였다? 이김이었다. 이기었는데 얼마나 어떻게 이겼는지 봅시다.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니들이 예수님을 알아? 그리스도께서 이미 대신 죽으셔서 확정된 미래를 우리가 보장받았다는 것을 너희들이 알아? 라는 냄새.

이 하나님의 냄새는 망하는 자에게는 악취가 되고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향수가 되죠. 목사가 교인들에게 교회에 가서 그리스도의 향수를 뿌렸는데 날아오는 반응은 짤리는 것이죠.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 교회는 통째로 무엇이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망하는 자이죠. 그러면 그 목사가 졌습니까 이겼습니까? 이겼죠. 결국은 그 복음을 아는 자의 이김은 다른 것이 아니고 본인이 매일같이 복음 앞에서 복음이 자기를 이기고 자기는 복음 앞에서 져야되요. 자기의 계획 ..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지 나를 위해서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주여 졌습니다! 하고 매일같이 주님 앞에 져버려야 그 사람은 복음에 의해 이긴 사람이 되고 복음으로 이긴 사람이 되면 나중에 어떤 반응에도 상관없이 그 사람은 복음으로 이긴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각처에 무엇을 나타내었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풍겨대었다. 이 외에 다른 해석은 있을 수 없어요. 전도 많이 했다고 이기었다면 뒤에 망하는 자에게라는 말은 없어야 되요. 빠져야 되요. 망하는 자들이나 구원받을 자들이나 그런데 개의치 않고 하는데, 문제는 이것을 인간의 힘으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16절 끝에 나오죠. (고후 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두 식당이 있는데 한 식당에서 돼지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고 한 식당에서는 고등어 굽는 냄새를 풍길 때, 아무리 두 친구가 오더라도 고등어 좋아하는 사람은 고등어 굽는 집으로 가게되어 있고, 돼지고기 좋아하는 사람은 돼지고지 굽는 집으로 갈라지게 되어 있지요.

그렇게 갈라지게 하려면 냄새가 제대로 풍기게 구워야 되요. 고등어 굽는 것을 돼지고기로 오해할 수 있으니까. 그게 그 이야기입니다. 사망에 이르는 자는 고등어는 고등어로 가고. 돼지고기는 돼지고기로 가게 하는 것. 그런데 문제는 누가 이것을 감당하랴. 왜 감당 못하는 겁니까? 전부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성공자로 만들려고 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만약 이렇게 되면 자기 말 안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한 명도 못 얻잖아요. 그러면 자기는 뭐가 되어요? 실패자이죠. 그런데 스스로 실패자가 되려는 자는 아무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것을 아무나 감당하지 못하는 거죠. 함부로 감당 못하죠.

너무나 막중한 일입니다. 누가 감당하리요. 특수한 사람이 아니면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발을 미래에 두고 현재에 자기의 얼굴이 있고. 발은 미래에 있고. 미래가 현재를 잡아당기는 식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아무도 이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뭐 기계에 목쳐서 순교한다, 이래서는 안 되요. 순교가 성공이 아닙니다. 무엇을 전했느냐가 중요하지 순교하냐 안하냐는 자기 과대망상일 수 있어요. 주여 내가 순교하나이다, 이것도 하나의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다시 정리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냄새가 아니고 누구의 냄새입니까? 그리스도의 냄새죠. 이것이 제일 중요해요. 그리스도의 냄새. 그런데 사람은 항상 그리스도를 빙자해서 자기를 나타내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성도에게 환란을 (주시고) 아예 실패자로 만들어서 실패자가 두 번 다시 자기를 성공자가 되겠다는 낌새조차 안 나오도록 무엇을 해도 실패자로 아예 만들어 놓고 그 실패자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통해서 성공하시고, 주님이 그 실패자와 더불어 일을 하셔서 주님만 늘 성공하시고, 나는 그 가운데 나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깨닫게 하는 식으로, 짝이 되어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의 일입니다. 그 외에 다른 성령의 일은 찾지 마세요. 이것 뿐입니다. 성령은 주 그리스도 밖에 몰라요.

성령은 우리 일에 하나도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죄를 지어도 관심이 없고 잘 되어도 관심이 없어요. 오직 주님의 복음이예요. 대신하여 죽으심, 그 복음이지 쓸데없이 자기 일에 주께서 관여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 올무, 자기 가상현실에 불과한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고후 2: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자기가 자기 자신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께서 다 해 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깔끔하게 하십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하겠습니다. 3장 봅시다. 3장을 이해하려면 고린도후서 11장을 먼저 봅시다.

(고후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이미 고리도 교인들이 무엇을 받았다?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사도, 다른 목사를 이미 받아 들였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고린도후서 3장에서 무어냐 하면 여기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짜들 즉 악마의 종이 사도행전 19장에 나오잖아요. 마귀가 하는 말이 내가 예수도 알고 그 다음 누구를 안다고요? 바울도 안다고 했잖아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죠.

마찬가지로 고린도 후서 11장에 보면 이 사람들은 누구의 종입니까. 양의 탈을 쓴 악마의 일꾼들이죠. 이들은 다른 사람은 신경쓰지 않고 누구만 지금 거짓말로 잡으면 되요? 사도 바울만 가짜 사도가 잡으면 되는 거예요. 그 소문이 퍼져서 지금 두 번째 편지를 보내는 겁니다. 그래서 3장에 보면 우리(사도바울 일행)가 가는데 누구를 천거하겠느냐 우리가 진짜 사도입니다는 말을 다른 백(back) 있는 사람의 천거를 받겠느냐 나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편지다 했어요.

한 번 3장을 봅시다. 아니 그게 아니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뭐다? 그리스도의 편지다 라고 했어요. 이것은 몸으로 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다. 내가 전에 썼던 것(고진도전서)은 이 편지가, 너희들이 편지를 받을 때에, 내가 만약 바울이라 하고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합니다.

바울; 너희들 내가 전에 편지 줬잖아

고린도교회; 예 받았습니다.

바울; 편지 받았을 때 그게 뭐였었나?

고린도교회; 문자였습니다.

바울; 아하 그게 문자가 아니라니까. 그것이 바로 영으로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다.

너희가 편지라는 말은 이미 너희가 그리스도의 편지를 이미 받은 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받고 영이 있는 사람은 ‘야~ 사도바울이 진짜 참된 사도구나’ 할 것이고, 가짜같으면 영으로 해석 못하고 문자로 해석하는 사람 같으면 ‘그 사도바울은 사기꾼이다.’ 라고 할 거란 말입니다.

그래야 망하는 사람이 있고 그리스도의 생명에 이를 사람이 있잖아요. 그 이야기를 한 겁니다. 그래서 편지를 볼 때에 너희가 어떤 식으로 편지를 읽었느냐 되묻는 대목이 이 3장의 대목이예요. 내가 전에 보냈던 편지를 어떻게 읽었느냐? 문자로 읽었지요. 어허 그러면 안된다니까. 흐름이 이런 이야기입니다. 저는 영으로 읽었습니다. 어허 그게 맞다니까.

자 그렇다면, 성경 구절 자체를 가지고 여기서 영과 문자로 갈라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되지요. 성경 문자 자체에서는 영과 문자를 구분해 줄 방법이 없지요. 문자로 보는 사람은 문자로 보고, 영으로 보는 사람은 영으로 보지 성경 구절 자체에서 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성경을 100독 한다고 해서 영이 아니다 말이죠. 성경 100독해도 육이면 육으로 끝나지 영이 될 수가 없고 성경 1독을 봐도 영으로 보면 영이지 육이 될 수 없다 말이죠. 성경 구절가지고 결정되지 않는다 말입니다. 성경 구절 플러스 성령님이 와야 된다 이 말입니다.

만약 진짜 성령님이 와서 성경을 영으로 읽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참된 사도로 본다, 이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자기 논리의 모순에 빠질 수가 있지요. 내가 사도니까 내가 사도다, 라는 논리일 수 있죠. 그런데 사실은 모든 논리가 다 그래요. 처음 선입관 문제로 다 귀환하게 되는 게 모든 논리예요. 그래서 논리 잘 따져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당신은 내 편이냐 네 편이냐 가름하는 수단으로 모든 학문도 그렇고 성경도 그래요. 망할 자는 망하는구나 이래 되는 것이지. 이단도 똑 같은 말을 쓸 수가 있단 말이죠. 문자로 해석하면.

자 그러면 여기서 영으로 할 때 , 6절에 보면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를 만족한다. 뭐의 새 일꾼입니까? 새 언약의 일꾼. 새 언약과 옛 언약의 차이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옛 언약은 출애굽 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손 잡고 나와 끌어 당겼습니다. 마치 엄마가 시장 갈 때 애를 어떻게 해요. 손목 잡아서 안 잃어버리도록 하죠.

우리는 그 정도만 해도 단단히 붙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시장에서 애들은 두리번 거리면서 무엇을 살핍니까? 엄마 시장보는 것보다 자기 군것질만 탐내죠. 그러니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게 옛 언약이고.

새 언약은 손목 잡고 다니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하나님의 말씀을 심비에, 우리의 마음 밭에다 심어요. 그게 새 언약이예요.

한번 찾아봅시다. 예레미야 31장

(렘 31: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렘 31: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여기 보면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이것이 옛 언약이죠. 그때 남편이 되어도 내 언약을 파괴하였잖아요. 손목 잡고도 파기했잖아요. 그런데 새언약은 33절에 나의 법을 어디에 둔다? 그들의 마음에다 둔다. 마음에다 기록하겠다. 마음에다 기록했기 때문에 정말 마음에 영이 기록된 사람은 사도 바울의 편지를 무엇으로 읽는다? 마음으로 동감하게 되어있죠. 마음으로. 건성이 아니고. 어떤 윤리 도덕이 아니고 마음으로. 아! 주여! 하고 마음으로 동감하게 되어 있죠.

억지로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그러니까 아침에도 주님을 생각하고 주여 저 혼자 있지 않고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늘 생각하죠. 마음으로 생각하죠.

주여 제가 헌금 요것밖에 못 한 것 주께서 아시죠? 이렇게 하는 것 하고 이게 만약에 남을 사람을 의식하게 되면 목사님 헌금 이렇게 했습니다. 감사헌금 했습니다. 이렇게 나오는 것이란 말이죠. 문자라 하는 것은 결국 남을 의식하는 것이죠. 문자라는 것은.

마태복음 5장에 보면 기도할 때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기도합니까? 길거리에 나가서 자기가 목사값 하고 하죠. 목소리를 높여서. 주여! 이렇게 하죠. 이것은 누구를 의식한다? 남을 의식하죠. 본인은 엉터리이면서.

그런데 진심인 사람은 남들이 보던 말든 그것에 개의치 않죠. 자기도 자기를 판정하지 않고 남들의 판정도 그런 것에 신경 쓸 필요도 없어요. 그 걸 무엇이라고 하느냐면 자.유. 아닙니까. 자유. 마음에 주님이 들어 있는데 남이 뭐라 하는 말을 왜 신경쓰느냐 말입니다. 왜 나의 말을 안 믿느냐. 내가 복음을 전했는데 나를 쫓아내다니, 이 괘씸한 놈.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 말이죠.

뭐 손목 잡고 잡아당깁니까? 그들 속에 나처럼 마음에 영이 있는 사람은 누구냐 찾아 간 것이지. 손목잡고 심방하러 다니면서 몇 사람 만들어 놓고 어디 한나라당 세울겁니까? 뭐 목회 교회가 누구껀데. 주님 껀데요.

요번에 대전에서 수련회 할 때에 로마서 강의했거든요. 나중에 한 번 들어 보세요. 거기서 내가 이렇게 했어요. 교인들이 교회 예배당에 교인들이 있으니까 목사는 생각하기를 내 교회 100명 되었구나! 오늘 밤에 너의 영혼을 데려가면 저 교회 어떻게 되나? 어리석은 놈아. 교인 100명이 되든 50명이 되든 내 것이 아니다 말이죠. 그 말은 겸손하라는 말이 아니고 너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이제는 고백해라. 너의 마음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너의 힘으로 구원받으려 했는지, 대신 죽으심이 들어 있는지. 네 마음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해라. 새로운 영, 새 영이 들어오면, 새언약이 되면 그 사람 속에 주님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이 들어 있으면 그 사람은 3장 17절에(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자유함이 있어요. 자유함이란 얽매임이 없다. 사람이라든지 율법이라든지 심지어 자신의 행동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왜?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몸이 아프든지, 애가 말을 안듣든지, 하는 일이 안 되든지, 돈이 회전이 안되든지, 교인수가 떨어져 나가든지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아야되요. 그래야 주님의 종이단 말이죠. 예 할 것은 예,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면 되지 왜 목회에 대해 내가 걱정해야 됩니까? 내가 목회자도 아닌데. 목회자는 따로 계신데. 그 분께서는 자기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살린다는데.

걱정은 왜 내가 쓸데없이 걱정을 하느냐 말이죠. 참모가 왜 걱정하느냐 말이죠. 주몽이 다 알아서 하는데. 주몽은 고구려 세우잖아요. 참모가 왜 권력을 쥐려고 하느냐 말이죠. 소??이 왜 왕이 되려고 하냐 말이죠. 둘이 결혼하니까 다 끝나버리네요. ???은 울고 있지만 ^^.

그래서 나 혼자 살아가니까 내가 일을 안 하면 일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게으르면 난 실패자고 열심히 하면 성공자가 된다. 이런 세상적인 세상 사람들이 옛 언약적 방식, 문자로 보고. 성경을 봐도 뭐로 보냐하면 내가 지켜야 할 규칙으로 보죠. 이거 지키면 복을 받고 안 지키면 벌 받고, 지키면 복 받고. 이래 보는 거예요.

마음속에 없고. 마음속에 없는 거예요. 마음속에 이미 왔습니다,가 없고 항상 내 마음은 미완성이라. 내가 새삼스럽게 뭔가 꼼지락꼼지락 해야 뭐 하나 더 하면 복이 하나 더 들어오고 내가 게을러서 소홀이 하면 복이 안들어오고. 이래 생각한다 말이죠.

근본적으로 새언약은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밑에 나옵니다. 십자가 같으면 십자가가 주인입니까 내가 주인입니까? 십자가가 주인이고 나는 십자가의 똘마니예요. 십자가의 복음에 의해서 내가 구원받은 거예요. 나는 내 것이 없고 십자가가 무엇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않기를 원한다, 했잖아요. 그것이 바로 새언약의 일꾼이라고 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도 바울과 우리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참 한심스럽습니다. 사도 바울이 돈 때문에 근심한 적도 없고, 사도 바울은 빨리 죽고 싶어서 환장했고, 사도 바울이 이 세상의 정치 경체 때문에 고민한 적도 없는데, 우리는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살려고 했기 때문에 그런 줄 압니다. 이미 성령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이, 이미 다 이루었다 하심이 우리에게 생명으로 다가와서 고마움과 감사와 환희와 기쁨으로 이어져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안산강의 2007년02월09일.hwp (96.0K), Dow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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