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5a 울산강의-출애굽기1장
20090605a 울산강의-출애굽기1장
이름 : 한윤범(IP:119.192.174.148)
20090605a 울산강의-출애굽기1장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부터 창세기 끝나고 출애굽기 시작하겠습니다.
출애굽기에 들어가기 전에 ‘출’이란 말은 ‘빠져나온다’는거든요. 첫 번째 문제되는 것은, 어디로? 보통 교회 나올 때는 교회 나오면 좋은데 가십니다. 그때 세상 사람들이 묻지요. “좋은데 있기는 있습니까?” ‘천국’있다고. “가봤어요? 당신 가봤냐고?” 그런데 이게 뭐냐 하면, 교회 나옵니다. 그런데 교회 나옴으로 말미암아 딴 데 또 갑니다. 이런 뜻이거든요. 교회 왜 나옵니까? 딴 데 또 가기 위해서 나옵니다.
근데 그 딴 데 이 세상, 울산에 어느 동입니까? 울산에는 없고. 그러면 서울 어느 구인데? 강님구입니까? 아니고. 그럼 뭐예요? 서울, 울산도 아니고, 지구상의 미국도 말고 여기 말고 딴 데 갑니다. 딴 데 있기는 있습니까? 있답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음이 되려면, 첫째는 어디로? 여기 말고 어디로 할 때 딴 데, 딴 곳. 이게 마음에 있어야 돼요. 여기 말고 내가 사는 이 동네 말고 딴 데. 이게 성립돼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린 나그네라 하죠. 여기 교회 왔으니까 복을 쏟아부어주세요. 자꾸 여기에 쏟아부어달라고 하지 말고 제가 이곳을 옮길 테니까 제대로 옮기게 해주세요. 이래야 ‘출’이 된다고.
“여기 말고 딴 데 주께서 마련한 곳 있잖아요.” “아, 거기 말인가.” “딴 데 갈 테니까 전 떠나는 사람이니까 잘 데려가서 그 딴 데 가게 해주세요.”라고 할 수 있어야 그게 믿음이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이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게 만드는 게 믿음입니다. 이 세상에 믿음 두지 않는다는 말은 회사에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가정에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결국 그게 중요하지 않는, 진지하지 않는 일이 되지요. 그게 바로 믿음이지요. 나그네에 있어서. 이게 ‘출’이고.
출애굽기 내용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출애굽기의 내용은 첫 번째는 가자. 어디로 갑니까? 글쎄. 와보면 알아. 떠나는 의미가 있고. 두 번째는 떠날 때 어떻게 빠져나오는가? 첫 번째, 딴 곳으로 가자. 딴 곳도 하나님이 친히 마련해줘야 되고, 어떻게 빠져나오는가? 빠져나오는 그 능력도 친히 하나님이 해야 되고. 우리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천국은 딴 곳이 아니고, 그저 몽상에 불과하니까 그건 안 되지요. 좋은데, 좋은데 하지만 그건 하나의 몽상이고, 실제로 있는 곳, 딴 곳으로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제로 갔습니다.
그런데 누가 갔느냐? 세 번째 이스라엘이 가요. 이스라엘이 딴 곳으로 가고, 빠져나옵니다. 그럼 이스라엘은 뭐냐 하면, 개인은 아닙니다. 이런 게 어려워요. 출애굽 할 때 지금 제가 어떤 점을 유념해야 될 건지 해야 돼요.
전에 이스라엘였던 사람이 있지요. 야곱이죠. 야곱이 죽어서 이스라엘을 남깁니다. 개인이 죽어서 집단을 남기죠. 이근호 죽으면 이근호 집단이 있습니까? 없잖아요. 이근호 해봐야 몇 명 된다고. 축구선수 이근호 하고 몇 명 안 되잖아요. 그런데 야곱은 죽어서 집단을 만들었어요. 야곱이 살아있을 때 이스라엘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당사자가 죽어야 이스라엘이라는 집단이 생기죠.
그건 뭔 뜻이냐 하면, 모르겠다. 처음부터 어렵게 해봅시다. 어떤 개인도 바로 이스라엘 될 수가 없고, 죽었던 야곱을 거쳐야 이스라엘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죽어서 이스라엘 남겼는데, 원래 야곱 이름이 이스라엘 아닙니까. 야곱이 죽어야 이스라엘이 집단화 되는데 이 죽음을 다른 사람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걸 단체 죽음 사건이 나지요. 이게 뭐냐? 유월절 사건. 집단 죽음이죠. 집단으로 죽을 때 야곱과 더불어 함께 죽고, 그 다음에 이스라엘 되는 것은 하나님 소관이죠.
하나님께서 딴 곳 마련해주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빠져나오는 능력이야기하고, 하나님께서 빠져나오는 것뿐만 아니고 누구만 빠져나온단다. WHO? 누가요? 누가 빠져나오는데? 어디로 갑니까? WHERE? HOW? 어떻게? 어디로 가십니까, 누가요, 어떻게? 이 세 가지가 어디에 담겨졌습니까? ‘출’ 빠져나온다, 여기에 다 담겨있는 겁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게 실제로 역사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가 상상한 게 아니고, 소설책이 아니고 실제로 그들은 구박을 받았고, 실제로 모세는 사람 때려죽였고, 실제로 그들은 홍해 통과했고, 실제로 유월절 잡았고, 실제로 광야를 거쳐서, 실제로 약속의 땅에 도착했습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실제라면 같은 역사에 쭉 뻗어 나온, 이게 BC 1440년 이라면, 지금은 2009년도. 이게 같은 선상에 있죠. 같은 수위에 있죠. 아파트의 같은 층에 있잖아요. 201호이나 202호이나 같은 층에 있단 말이죠. 같은 층에 있으니까 주님께서 출애굽이 역사라면,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같은 층이니까 역사적으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출애굽은 되풀이 된다 이 말이에요. 쉽게 말해서 출애굽이라 하는 것은 그때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되풀이 된다. 뭘? 어디로? 뭘? 어떻게? 뭘? 누가?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작용에 의해서 독특하게 지금도 피어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출애굽에 대해서 제가 대략적으로 설명했어요. 그런데 하나하나 설명한다는 것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지요. 특히 야곱이 가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이 집단적으로 간다. 개인이 가는 것이 아니고. 그러면 딴 곳, 천국은 개인 받아준다, 안 받아준다? 안 받아줍니다. 집단으로 몰려와야 떼로 몰려와야 받아줍니다. 왜 그러냐? 출애굽을 되풀이하는 거예요.
출애굽을 되풀이하는 식으로만 구원합니다. 목사님, 달리 구원방법 없습니까? 없습니다. 이 세 가지 식 말고 다른 식으로 없습니다. 2009년도 오늘날도 그렇게 구원하지 않습니다. 하여튼 이 땅은 어디로 가는 딴 곳이니까 이 곳은 아닙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빠져나오는가? 인간의 행함은 소용없습니다. 모세가 의분에 차서, 정의로워서, 민주화를 위해서. 아마 노무현 쯤 되는 모양이죠. 모세가 정의롭게 사람을 때려죽였다? 하나님께서 그 방법 사용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못 빠져나옵니다. 그런데 빠져나왔어요.
첫 번째는 어디로 가야 된다는 것, 두 번째는 방법에 있어서 인간이 손 쓸 수 없다는 것, 세 번째는 이게 개인 자격으로 가지 못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집단화 돼야지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첫 번째부터 봅시다. 가자! 어디로? 사람들이 가겠습니까? 택도 없지. 안 갑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마련해놓으시고 자기 백성 보고 ‘가자’ 해도 이 사람들이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꿈적도 안합니다. 펀드를 나무 많이 넣었어. 얘 공부 시키고 유학 시키고, 이 땅에 투자를 너무해서 안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압박이 들어와요. 그 압박이 출애굽기 1장입니다.
사람이 압박 안 들어오면 엉덩이가 무거워서 절대로 엉덩이 안 뗍니다. 예배당 지금 듬성듬성하지만 예배당이 꽉 차서 사람들 빈 자리가 없다. 예배당 짓겠습니까, 안 짓겠습니까? 안 짓습니다, 그래도. 그런데 예배당 천장이 무너졌다. 그때 짓습니다. 사람은 한 번 단골 됐으면 딴 가게 못가요. 마누라 바꾸는 것도 얼마나 힘든데. 남편 바꾸는 것도 더욱더 힘들고. 자식 바꿔보세요. 그런 프로 있데. 자식 바꾸는 것. 힘들지요. 사람 사는 이력이 있고, 자기 버릇이 있고, 속도가 있기 때문에. 절대로 자기 엉덩이 떼지 않습니다. 안 갑니다.
딴 곳이 아무리 좋다 해도 가질 않아요. 차라리 딴 곳 좋게 하지 말고 이 곳이나 좋게 해줘. 이게 인간들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압박을 가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딴 곳으로 질질질질 끌려가듯이 끌려가요. 2009년도 오늘날 우리 모습 같아. 우리는 울산 버리고 딴 곳 안 갑니다. ‘천국? 미쳤나. 천국가게. 더 살아야지. 지금 천국가면 아이 장가는 언제 보내고, 시집은 언제 가고.’ 6월 25일 날 결혼식하는데 19일 날 가버리면 안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딴 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매일같이 2009년도 오늘날 우리에게 계속해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실망을 하게 되고 믿을만한 친구가 사기치고, 믿을만한 식구가 내 결혼을 인생을 망쳐놓고, 믿을만한 자식이 꼭 사고치고.
하여튼 내가 허겁지겁 믿는 것은 다 빼버려요. 이것 믿으면 이것 빼버리고, 이것 믿으면 이것 빼버리고. 도대체 성도로 하여금 주님의 약속, 주님의 딴 곳, 천국, 이것 아니면 딴 것 믿을 게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매일같이 주께서는 뺏고 치우고. 그 싸움이 매일같이 주님하고 우리하고 싸우는 게 그거에요.
‘하나님, 이것?’ 빼버리고. ‘저건 안 됩니까?’ 저것도 빼버리고. 없으면 또 만들죠. 만든 것 빼버리고. 매일같이 우리로 하여금 딴 곳을 크게 생각하게. 딴 곳이 더 좋다는 것을 크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사도 바울 같으면 삼층천이죠. 사도 바울은 삼층천을 봤지만 자기 꼬라지는 사탄의 가시가 들어서 힘들어 죽겠는 거예요.
보기야 봤지요. 삼층천. 하지만 현재 자기의 역사는 뭐냐? 힘든 역사죠. 그래서 힘든 역사가 천국을 바라본다. 일종의 변비라는 것입니다. 더럽게 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만 힘든 역사가 딴 곳을 바라보게 만들어요. 조이죠. 그래서 빠져나온다. 화장실 이미지가 있어서 미안합니다. 그냥 빠져나오는 겁니다. 힘주니까 빠져나오는 거죠. 애 낳듯이. 힘주세요, 힘주세요. 빠져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빠져나올 때 개인이 아니고 이스라엘이라는 아주 특수한 집단화 되어서 빠져나와야 되죠.
지난 주일날 설교할 할 때 말로 했지만 그림으로 그리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팔 벌리고 있는 것은, 이 천국이라는 하나님이 만든 딴 곳은 어떤 인간도 못 가요. 가도 되돌아와요. 피니까. 그것도 누구 핍니까? 자기 피 같으면 자기가 들어가지만 자기 피가 아니고 예수님 피니까 되돌아가는 거예요. 자기 땀방울이 아니고 예수님의 땀과 피니까. 아무도 못 가는데 여기에 간 사람이 있더란 말이죠.
좋아서 입이 걸렸어요. 만세 부르면서. 도둑놈 같아. 좋아서 간단 말이죠. 그럼 여기서 ‘저 사람은 우에 갔습니까?’ 이 사람들은 피가 발렸다. 저는 그걸 피 칠했다. 피 칠 한 걸 뭐라 하느냐? 그리스도, 메시아라 합니다. 기름 부은. 피가 발린 사람은 천국에 가고, 예수님의 피가 없고 자기 피 있는 사람은 천국 못 가죠.
그래서 이게 오지 마라. 하지만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예수님의 피 칠 해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피 칠해서 천국 가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것이 오늘날 십자가 상태에서 이렇다면 출애굽 상태에서는 이 피 칠이 이게 뭐냐? 여기에 예수님 있고, 야곱. 이런 건 참 어렵다. 제가 생각하기도 어려운데
야곱이 여러 가지 새끼를 까죠. 이걸 네 자로 ‘이스라엘’이라 하죠. 야곱의 그 새끼들. 욕하는 것 아닙니다. 뉘앙스가 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야곱의 그 새끼들이 이스라엘이에요. 그러면 왜 예수님이 야곱의 자리에 섰는가? 이 성경대목이 요한복음에 나오죠. 나다나엘이 놀랬죠. “아이고, 예수님께서 내가 무화과나무 밑에 있는 것 우에 알았습니까?” “그것 보고 놀라나?”
그것보다 확 뒤집어질 놀랠 일이 있죠. 뭡니까? “인자 위에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리라.” 이건 옛날 야곱이 사다리 꿈꾸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과 똑같이 되풀이하는 겁니다. 옛날 출애굽에 있었던 상황을 되풀이해서 오늘날 그대로 역사 속에 집어넣어버리죠.
예수님이 야곱의 자리에 서서 야곱의 자식들 되는 이스라엘을 야곱의, 여러분 잘 아시는 이야기, 잘 알아도 어려운 이야기, 잘 알아서 뭔지 모르는 이야기, 그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야곱의 언약의 자식들, 야곱의 언약의 힘으로 또는 언약의 결과물로, 이게 좋네. 하나님의 약속을 지킨 결과물이 한 보따리 이스라엘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질문 드립니다. 이 이스라엘을 우리가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내 새끼는 내 자식밖에 못 낳으니까. 그리고 날 낳은 것은 우리 아버지지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내 자식을 낳고, 아버지 계통, 족보를 따져도 이게 야곱이 아니고, 우리는 딴 사람이죠. 언약 밖의 사람이니까 아무리 새끼 까도 우리 경주 이씨 가문만 쫘악 나열될 뿐이에요. 안동 권씨 이런 것.
그러니까 딴 곳, 천국에는 출입구가 언약이고, 그 언약이 출애굽 때는 야곱의 언약이었고, 야곱의 언약이기 때문에 반드시 뭐가 생겨야 되느냐? 자기 언약의 자식들, 언약의 결과물, 언약의 성과물이 생겨야 되는데 누구냐 하면, 이스라엘이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들은 어린양 유월절의 피가 발렸다는 특징을 갖고 있어요.
어려운 이야기만 할 게 아니고 슬슬 성경 보면서 쉬운 이야기를 해야 되겠지요. 하여튼 전체적인 대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딴 곳에 가려면 언약을 성취한 분이 계셔서 그분의 공로, 그분의 용서하심, 그분의 피가 발려야 갈 수 있기 때문에 ‘누가요?’ 하는 것은 성립이 안 되죠. 아무도 갈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과 어디로, 어떻게 하는 것 모두는 하나님에 속하고, ‘누가 갑니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언약 계열에 있어서 새로운 피조물 된 사람만 갈 수 있습니다.
이거는 뭐냐 하면 인간은 못 간다. 사람은 못 들어가고 이스라엘은 들어가고. 이스라엘도 인간이잖아요. 이스라엘은 그냥 인간이 아니고 언약의 인간이거든요. 언약의 인간하고 그냥 인간의 차이점은 언약에 의해서 새로 만들어진 인간이 언약의 인간이고, 보통 인간은 그냥 인간이고. 그래서 네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 못 간다.
이걸 지금 제가 어렵게 설명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성경 보면서 쉽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잊어버리기 전에 하나 당부합시다. 크게 쓸게요. 뭐지요? ‘딴 곳’ 하여튼 ‘출’ 하면 우리보고 딴 데 가자고 하는 거구나. 여기 울산 말고 대구 말고 딴 데 가자고 교회에 불러 모았구나, 주께서. 여기에 소망 걸고, 여기에 좋은 집 짓고 그것 말고, 딴 데 가자고 교회오라 했구나. 그러면 딴 데 가기 위해서 교회 나와야지. 정리를 그렇게 간편하게 하세요.
그렇다면 성경을 봅니다. 여기 출애굽기 1장 7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창세기 46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히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아, 이게 보세요.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시는데 언약은 우물, 우물 밑에 파였지요. 여기 물이 고여 있죠. 너로 하여금 애굽나라에 가서 네 자식들을 많이 배태해서 다시 풍덩하고 도로 올라오게 하리라. 이게 창세기 46장 3절에서 4절 맞지요. 분명히 약속했지요. 그렇다면 현재 야곱의 자식들이 하나의 칙칙폭폭 하는 기차의 객차라면, 이 객차에 뭐가 실리겠습니까? 뭐가 실려야 될 것 아닙니까. 앞에 기관차가 풍덩하고 빠지고 도로 올라온다면 뭔가 실리겠지요. 뭐가 실리겠느냐 이 말입니다.
만약에 화차 같으면 석탄도 실리고, 여러 가지 다른 공산품도 생산품도 실리고. 맞습니까? 현대중공업에 기차 들어갑니까? 하여튼 공장 크면 기차 들어가잖아요. 공장에 들어갔다 빠져나오잖아요. 화물이. 그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객차로 봐서, 화차로 봐서 거기다 뭔가 실어서 나오는데 소복소복 뭐가 실리느냐 하면, 실리는 것이 A, B, C라면, 이런 게 모아모아서 천국을 이뤄요. 나중에 딴 곳을 이룬다고.
제가 이 말 하는 것은 사람이 ‘나 구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가는 게 아니고 반드시 천국에 가서 사명을 가지고 내 화차에다 실어서 빠져나올 때 빠져나오는 거예요. 그냥 애굽에 갔다 그냥 애굽을 나오는 게 아니고. 들어갈 때는 그냥 빈 몸으로 들어가는데 나올 때 장차 천국에 들어갈 만한 것을 가득 싣고 빠져나와서 언약의 나라를 이루는 겁니다. 그게 바로 창세기 46장 3절, 4절의 예언입니다.
그렇다면 출애굽기의 1장은 뭡니까? 그 중에서 어디에 해당되느냐 하면, 들어가서 나오려고 하는 그 순서에 출애굽기 1장이 있다고 보시면 돼요. 그러면 앞으로 2장부터 나오는 이야기를 뭡니까? 들어갔다가 도로 빠져나오는 전 과정의 무엇이 묻히고, 무엇이 잘리고, 어떤 투쟁이 생겼고, 어떤 야단법석이 생겼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출애굽이었다.
그러면 그 뒤에 객차에 가득 실린 게 뭐였는가? 크게 쓸게요. 그게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이걸 줄이면 ‘법’,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천국 시스템. 이 율법의 중심은 뭐냐? 제사법이죠. 어린양의 죽음. 우리들이 구원받는다면 뭔가 짊어지는데 배낭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어린양의 죽으심이 들어있을 때 우리는 천국에 통과됩니다. 이게 바로 새 언약입니다.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법이 있고, 그 법의 중심은 제사법. 그것이 생명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 뒤에 화차 뒤에 우리 배낭 안에 들어있는 이걸 창세기 3장에서는 생명나무라. 생명나무가 선악과 만날 때 그냥 올라오지 못하고 선악과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한다? 죽이고 생명나무에 의한 결과물만 나오죠. 그러니까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결국은 뭐냐 하면, 나는 죽다. 다른 말로 하면, ‘선악을 아는 나는 죽고, 생명을 아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천국에 가게 된다.’ 선악을 아는 나는 죽다. 이걸 두 자로 줄이면 그냥 죽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죽으려고 사시면 행복합니다. 이게 모든 진리의 해답입니다. 죽으려고 사시면 그때부터 행복 시작입니다. 살려고 하신다면 불행 시작이에요. ‘죽었는데 왜 밥을 먹었지?’ 감사합니다. 이렇게 되거든요. ‘죽어야 되는데 왜 자꾸 깜빡깜빡 눈이 부시지?’ ‘죽었는데 왜 살았지? 아, 생명이구나.’ 죽어야 담기는 것이 생명이거든요. 내가 살아있으면 선악이 자꾸 튀어요. ‘나는 살아있다. 잘났지. 역시 훌륭하지.’ 내가 살아있으면 선악과가 튀고, 내가 죽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으면 그 나머지는 모든 것은 생명나무의 은혜고 이렇습니다. 간단해요. 참 쉽죠, 잉.
회사 갔다. ‘나 같은 인간이 왜 살아서 회사 갔지.’ 그럼 그 회사 자체가 은혜죠. 사랑이고 생명이고 고맙고 감사하고. ‘살아야지, 살아야지.’ 이러면 그 자체가 자기의 의로움, 자기의 선악으로 한 거예요.
우리교회 어떤 분이 질문을 던져놨는데 그 질문이 정말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에요. “목사님, 십일조 꼭 해야 됩니까?” 그래서 답변을 했어요. 갈라디아서 2장 17절에. 십일조는 하나님의 의를 요구하는 것이 율법인데 십일조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의가 안 나올 것 같으면 율법 지키나마나 소용없다 했어요. 그런데 갈라디아서 2장 17절 보면, 율법 지켜서 의가 나올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나오기 때문에 그래서 율법으로서는 할 일을 다 한 거다.
관심사가 ‘하나님의 의를 내가 드릴 수 있을까요’에 관심이 있어야지 ‘내가 뭘 지키느냐’에 관심 두면 안 된다. 지켜도 의가 안 나오면 그건 아니라니까요. 하나님의 의는 율법으로 말고 율법 외의 것으로, 생명나무로 의를 받습니다. 여러분 꼭 밑줄 쫙 그어놓으세요.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는 거예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했지요. 그게 복음이라 안 합니까. 의인은 믿음으로 살지 율법의 행함으로 안 나와요.
자기가 게으르다 이건 딴 문제고, 성격상 문제고, 그게 아니고 부지런해도 의가 안 나오고 게을러도 의가 안 나오고, 오직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믿음으로 하나님 영광에 이르는 의가 됩니다. 그게 배낭에 하나님의 의가 담겨서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이게 창세기 46장 4절에 보면,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과정을 통해서 이것이 듬뿍 담기게 하죠.
나중에 화차에 보면 율법이 제사 중심의 하나님의 법이 여기에 듬뿍듬뿍 담길 때 이름이 이스라엘이라는 기관차를 막을 자 누구뇨? 모압, 암몬 어떤 이방나라도 브레이크 없는 기차를 막을 수 없습니다. 발람이 와서 저주해봐야 축복으로 다 바뀌었어요. 발람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기관사로 돼있는데 누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를 누가 막아 서리요? 하나님이 달린다는데. 하나님이 자기 그곳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데 어느 마귀가 그걸 막아섭니까? ‘에이. 저주받아라.’ 해도 저주가 아니고 저주 뚫어버려요.
여러분 속에 예수님 있으면 저주 받고 싶어도 못 받아요. 여러분 향하여 저주하면 그게 복으로 바뀝니다. ‘에이, 돌멩이 맞아라.’하고 돌멩이 던질 때 오다가 20센티 앞에서 오만 달라. 돌멩이 큰 건 천만 달라. 저쪽엔 저주인데 이쪽은 복이 되죠. 왜? 우리와 함께 있는 주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서 전부다 생명나무에 적합하도록. 선악과를 던졌는데 선악과 돌멩이가 생명나무의 은혜로서 로봇 변신되듯이 변신되어서 나한테 은혜로 주어지는 겁니다.
생명나무 주는 것은 뭔 뜻이냐 하면, ‘너는 이제 따먹어도 될 사람이다.’ 처음에 아담은 선악과 따먹었기 때문에 따먹지 마라 이렇게 되거든요. 따먹지 말라고 땅으로 쫓아 보냈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면, ‘또 먹어. 다 먹어. 더 먹어. 이젠 먹어도 될 사람이야.’ 이게 축복입니다. 어떻게 아비가 고기 달라는데 전갈을 주겠습니까? 어떻게 아비가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를 주지 않겠는가? 아담도 못 따먹은 생명나무를 우리한테 주신다 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애굽이라는 우물 속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면서 뭐가 뭐로 바뀌는가? 그걸 설명하겠습니다. 오늘 덥기도 하고 피곤도 하신데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기관차처럼 달리는데 어떤 저주도 막을 수 없는데 중간에서 어떤 변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여기 들어갈 때 무슨 언약이라 했습니까? 야곱 언약이죠. 야곱 언약이 뭐냐 하면, 육을 영으로 바꾸는 거예요. 아브라함 언약도 그렇고, 이삭도 그렇고, 야곱 언약도 육을 영으로 바꾸는 겁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영으로 나지 않으면 네가 하늘나라에 못 간다.” 이 과정 속에 반드시 육으로 될 사람이 영으로 바꿔져야 하늘나라 가요. 딴 곳에 간다고요.
지금 새순교회나 우리교회나 하나님이 하시는 작업이 뭐냐? 육적인 것을 영으로 바꾸는 작업을 주께서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통해서 하고 계셔요. 주님은 지금 바빠요. 그분 할 일 많아요. 우리는 모든 걸 자꾸 외면하고 기피하고 말씀 안 보고 도망가지만 도망간 사람 붙들어서 육을 영으로 바꿉니다.
육을 영으로 바꾸려면 첫째, 육을 알아야 되고, 두 번째 영을 알면 되죠. 쉽지요. 육은 뭐냐? 번식입니다. 이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창세기 3장에 나옵니다. 여기도 출애굽기 1장7절에 나오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번식해도 이 사람들은 육이에요.
육에서 영으로 바뀌어야 되지 그냥 번식했다고 애굽에서 나가자. 택도 없어요. 안 나갑니다. 그들이 안 나가려 해요. 여기 살기 좋은 육을 왜 빠져나가요. 빠져나가면서 육에서 영으로 바뀝니다. 수다한 사람들이 전부다 육의 사람이 영으로 바뀌어서 나와요. 물론 영의 레벨은 신약의 성령 레벨이 아니고, 하여튼 육과 다른 새로운 그 당시 언약의 레벨이 따로 있긴 있지요. 지금 성령 받았다는 건 아니고요.
육의 번식인데 이게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 플러스 하와죠. 둘이 혼인을 하죠. 혼인을 해서 여기서 자식을 낳잖아요. 이것은 아까 기관차를 이야기했지만, 이게 바로 육이에요. 창세기 3장에 하나님께서 육은 그대로 번식하게 하고, 여기에 뭐가 실립니까? 창세기 3장 15절. 하나님의 약속이 여기 실려 버려요.
그러면 아담은 육은 육인데 육이 세냐, 자기한테 담긴 약속이 세냐? 어느 쪽이 더 셉니까? 어느 게 강자에요? 약속이 세니까 가인 같은 자식도 낳고, 아벨 같은 자식도 낳는 거예요. 아벨, 가인 누가 낳은 거예요? 자기가 낳은 게 아니에요. 자기가 구상한 게 아니고 누가 한 겁니까? 창세기 4장에 보니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가인을 낳고” 이건 안 찾아봐도 있어요. “내가 여호와 말미암아 자식을 얻었다” 하나님이 더 세니까 나밖에 모르는 육을 어디에 사용한다? 약속을 보여주는 그런 육이에요. 육은 육이로되 뭘 담고 있다? 약속을 보여주는 육으로서 오늘날 저와 아담과 여러분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나 잘났다 하지 마시고, 내 인생에 약속이 어떤 대목이 약속이며, 약속으로 인하여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보라 이 말입니다. 약속으로 말미암아. 나같이 자기 자랑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십자가 앞으로 가면 ‘주여 저는 죄인 맞습니다.’ 이게 보통 기적입니까? 어느 누가 자진해서 죄인이란 말을 누가 합니까? ‘주님 앞에 저는 죄인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이게 뭐냐? 그 변화가 창세기 3장 15절과 관련 있는가를 조사해보세요.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과 그 다음에 뱀의 후손 나오죠. 이 두 가지 요인이 이 두 가지 요건을 내가 알고 있느냐 이 말이죠. 맞습니다. 나는 마귀 짓입니다. 하지만 마귀 짓도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습니다. 이러면 둘 다 포함되어 있지요. ‘나는 죄인입니다. 이건 나는 뱀의 자식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습니다.’ 한꺼번에 두 가지 다 있어요.
성경 한번 찾아봅시다. 이사야 53장 8절 누가 읽어보세요.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여기 보면,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이죠. 7절에 보면,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이죠.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낼 때는 저쪽에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 죽음으로 가는 어린양 배치해놓고, 그 맞은편에 누굴 배치했습니까? 여기 8절에 보면,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 했잖아요. 그러면 우리 자신이 예수님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걸 언제 생각하느냐 하면, ‘나 자신을 마땅히 형벌 받아도 맞습니다.’라고 ‘주님의 처벌과 처단은 합법합니다. 정당합니다. 나를 처벌하시고 형벌내리는 것은 정당한 조치입니다.’라는 걸 아는 순간 비로소 도살장에 끌려가는 주님의 뒷모습이 보인단 말이죠. 그게 바로 약속 아닙니까. 창세기 3장 15절 아닙니까. 그게 우리 화차에 실리는 거예요.
그런데 언제 안 보일까요? 자식이 사법고시 합격할 때, 갑자기 교인이 한 이백 명 더 불었을 때, 로또 일등 당첨 되서 40억 탈 때, 그때 예수님은 빠이빠이. 이제는 예수 없어도 살 수 있죠. 도살장 그런 것 생각 안 해도 살고, 나는 마땅히 형벌 받는 게 아니라 반대로 마땅히 축복받을 인간으로 자랑스러워하겠지요.
그럴 때 뭐가 없어집니까? 자기 속에서 화차에서 창세기 3장 15절이 사라져버렸지요. 하나님의 약속이 사라졌으니까 약속 없는 자는 그곳을 보는 게 아니고 바로 나로 성공자로 만든 땅을 보겠죠. 그러면 ‘출’이 그 사람한테는 그 순간 빠져나온다는 걸 잊어버렸죠. ‘살만 한데 뭘 빠져나와.’ 이렇게 된다 이 말이죠. 여러분 자식들이 공부 못하는 걸 영광인 줄 알아라. 그래 되는 겁니다.
제가 언제 심방을 갔더니만 “남편 된 집사님 훌륭하죠.” 부인되는 분이 “지겹습니다.” 부부 같이 앞에 두고 있는데 남편 편을 들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도 화투 안 치고 바람 안 피고. 만날 남자들은 결혼하고 난 뒤에는 자기 인생 찾는다고 낚시 가고 등산 가고. 가게를 같이 하거든요. 같이해도 같이 하는 게 아닙니다. 여자한테 맡겨놓고 저는 놀러갑니다. 그리고 저녁 때 술 먹고 와서 “난 너 덕분에 산다.”
여자는 죽으라고 일하는 거예요. 왜 일합니까? 아까 했는데. 번식이에요. 자기 새끼. 남편이 안 낳았어요. 자기 낳았잖아요. 남편은 나 몰라라.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의 특징은, 남편은 새끼 낳고 돌아서서 다른 여자, 다른 암컷 찾잖아요. 그런데 여자는 자기 새끼 위주에요. 누가 잘났다가 아니라 둘 다 육이에요.
제가 했잖아요. 창세기 3장의 특징이 뭐냐? 이런 육을 영으로 바뀌는 거예요. 창세기 3장 15절을 가지고. 나를 형벌 받을 죄인으로 간주하고 그것마저 용서하시는 주님의 어린양의 피가 용서해준다. 그것이 창세기 3장이 또다시 출애굽에서 되풀이 되는 겁니다. 반복되는 거예요.
이삭을 줘놓고는 ‘이삭을 잡아라.’ 하잖아요. 피곤하시니까 자꾸 시계 보는데 조금만 더 봅시다. 이삭을 하나님께서 주셔놓고 그걸 육으로 삼을까봐 영인데, 약속인데, 약속 덩어리인데 이걸 육인 줄 알고 ‘내 것이라’ 할까봐 ‘바쳐봐라’ 시험했잖아요. ‘예. 약속이니까 바쳐야죠.’ 이제서 네가 어떻게 바꾸는 하나님을 네가 믿는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벌이시는 일을 믿는 게 믿음이에요. 하나님께서 나를 바꾸는 사업, 부지런히 벌이는 무슨 일, 작업 믿어야 돼요.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그건 믿는 게 아닙니다. 그건 철학적 하나님이고.
나는 형벌 받아 마땅함을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성경 보니 먹는 것, 입는 걸 족한 줄 알라 하는데 그 말씀 비하면 난 인간도 아니다. 죽어도 싸.’라는 말씀을 보면서 깨닫게 하는 겁니다. 특히 목사 같은 경우에는 베드로후서에 ‘노아가 그때 물에서 구원받은 사람이 단지 여덟 명이다.’라는 그 대목에 목사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통감합니다. 아홉 명 안 된다고 얼마나 속으로 화를 냈습니까. 노아가 여덟 구원했다고 지옥 갔습니까? 아니잖아요.
사람은 숫자에 속아 넘어가지만 주님께선 숫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한 명이 오던, 두 명이 오던, 탕자가 오던, 뭐가 되던 네 뒤에 배낭에 뭐가 담겨 있느냐?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있으면 그 사람은 영적 사람, 영의 사람이죠. 그 사람은 딴 곳에 갈 수 있습니다. 그걸 우리는 못 가고 압박이 육으로 있기 때문에 육적인 압박이 밀려오는데 밀려오는 방법이 출애굽기 1장에 보면, 번식의 방해에요.
출애굽기 1장 봅시다. 1장 16절.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것은 뭐냐? 여자를 살려둬서 남자 없이 여자 있다는 말은, 자식 낳을 때 누구 자식입니까? 더 이상 이스라엘 자식, 히브리인들은 안 되고, 그 토종에 있는 애굽인들과 피가 섞이겠지요. 그러니까 번식을 방해하는 거예요.
그럼 이 사람들이 영적이고 약속이고 히브리인들이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까? 모르지요. 우리도 돌아서면 세상만 아는데 그 사람도 오직 자기 새끼만 모르는 거야. 자기 육밖에 몰라요. 구원받은 사람이나 구원 안 받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이 예수 구원되지 인간성 좋아서 구원되는 것 아닙니다. 똑같이 자기 육밖에 몰라요.
목사가 아무리 봉사하고 해도 나중에 나가라 하면, ‘내가 얼마나 힘들 게 목회했는데’ 육적인 발언이 툭툭 막 튀어나와요. 설교할 때는 ‘주의 은혜로 설교해야지 내 힘으로 안 됩니다.’ 이렇게 복음 흉내를 내다가 이 교회 누가 키웠는데. 이거는 다 마찬가지지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고. ‘회사가 죽으라 하면 죽고, 살라하면 살겠습니다.’ 해놓고 회사 죽는다 하는데 난 살겠습니다. 나오니. 어디든 다 육이니까.
그런데 육에 대한 압박, 번식에 대한 방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바로 왕을 통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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