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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산 6월 12일 고후12장 11절 다른 사도와의 차이로 주객을 드러내는 십자가가 벌리는 사건강의고린도후서

안산 6월 12일 고후12장 11절 다른 사도와의 차이로 주객을 드러내는 십자가가 벌리는 사건

이름 : 관리자(IP:125.190.2.45)

090612 고후12:11 십자가사건이 벌리는 주객교체작업

관리자(IP:125.♡.2.45)

09-06-13 12:09

http://media.woorich.net/신학강의/2009안산/안산090612고후12장11절.hwp

관리자(IP:220.♡.41.203)

10-10-17 10:51

안산090612고후12장11절

안산090612고후12장11절: 십자가사건이 벌이는 주객교체작업 / 이근호 목사

2010-10-16 15:05:27 이름 : 박온정

『고후12:11: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제가 강의 초반부터 조금 어려운 이야기 할게요. 왜냐면 본문 자체가 오늘 고린도후서 12장11절부터 하는데, 껍데기는 이렇습니다. -정목사님 얘기하신 그대로- 본문 그대로 쉽게 하면 그렇습니다. ‘나는 다른 사도와 다르다고 너희가 이야기하는데 맞다. 다른 사도와 다른데, 그 다른 점이 뭐냐 하면, 다른 사람은 너희에게 복음을 이야기함으로 말미암아 반대급부,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데 비해서 나 사도는 다른 사도와 틀린 게 있다.

뭐냐면 될 수 있는 대로 너희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제정적인 문제죠?- 짐이 되지 않는 쪽으로, 차라리 내가 고생하면 했지, 너희들로 하여금 나를 섬기는데 쓸데없이 힘들게 하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점에서 내가 다른 사도와 차이 난다. 그런데 나라는 사도바울이 왜 그렇게 얘기했냐 하면, 복음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기 때문에.

그 중요한 것을 부각하기 위해서 너희들이 쓸데없는 신경을 안 쓰게 나는 배려하고 싶다. ‘아, 사도를 힘들게 하는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구나.’ 우리는 사도 섬기는데 열의를 다했는데 아 그게 아니구나, 정말 강조하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관심을 가져 주십사,해서 다른 것들은 변두리로 밀어내버렸다.

나는 그런 식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다른 사도와 사도바울과 비슷하다고 여겼는데 너무 다르니깐,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나오죠? 다른 사도라 지칭하는 사람들 하는 말이, ‘바울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이단임에 틀림없습니다.’ 라는 말을 유포시켜 놨어요. 유포를...

왜 사도바울은 우리와 같이 아니한가. 우리와 같이하지 않는 이유 때문에 그들은, 사도바울이 수상하기 짝이 없고 문제성이 많으니 주의하라. 라는 소문이 고린도교회에 퍼졌습니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이럴 거예요. ‘참 하나님도 너무 심하다,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이 관리한다고 하면서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성령 전하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고. 놀라운 사실들은 다른 사도 다른 예수 전하는 사람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그 분위기 자체가 제 삼자인 우리가 보기에 답답할 노릇인데,

우리는 왜 하나님이 그렇게 의도적으로 했는가... 진짜 사도는 힘들게 하고 가짜는 배불랑~하게, 세상에서 존경은 다 받아가면서 세상이 반대가 돼도 왜 이렇게 반대가 되는지. 소위, 영적인 세계라는 교회마저 그렇게 돼버리게 되면 일반 교인들이 사도를 판단할 때 무슨 기준이 없지 않나, 모호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 거예요.

그런데 그거는 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을 누구나 봐도 알 수 있는, 문자로 보면 그런 거밖에 보이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사실은 깊은 내막이 있어요. 그 내막을 제가 설명하려는 겁니다. 과정을 설명하려면 복잡하기 때문에 명료하게 결론부터 내리고 그 다음에 과정이 어떻게 내리는지 설명해 드릴게요. 어렵기 때문에 글로 한번 적어봅니다.

사람을 사건으로 분해해보셨습니까? 그 사람 키가 몇 센티-이건 사건이 아닙니다.- 그걸 어려운 말로 속성이다 얘기합니다. ‘그 사람의 머리카락이 노랑머리다.’ 그 사람의 속성이죠? 집에 가도 노랑머리 밖에 나와도 노랑머리. ‘그 사람 인물이 못 생겼다,’ ‘그 사람 돈이 많다,’ 전부 다 그 사람에 속해 있는 거죠? 속성을 분해한 겁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사건으로 분해 해본 적 있느냐...사람을 사건으로 분해하면, 사람이 사라집니다. 그 사람 자체가 사라져요. 뭐만 우수수 땅에 떨어지냐 하면, 사건과 사건의 나열로만 우수수 그 자리에 있죠. 애한테 레고 랜드나 로버트 사 주면 조립 잘하잖아요.

만약에 그걸 조립했는데, 발로 툭, 찼다. 로버트를 조립을 다 했는데 발로 툭 차면 로버트는 없어지고 뭐만 남죠? 부속품 쪼가리만 남죠. 바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했죠. 말씀으로 창조했으면 사람을 어떤 속성, 키 나이 재산 성격 이런 걸 보지 마시고 창조 사건이 그 인간에게 부딪히게 되면 그 인간은 졸지에 레고 랜드가 됩니다.

조립형 마징가제트가 되요. 때려보면 우르르 떨어지면서 그 사람은, 예를 들어, 이근호 사람은 어디로 가고 흔적도 없고 그동안 이근호라는 인간을 만들게 된 사건들만 그 현장에 소복이 쌓이게 되죠.

그렇다면 왜 그렇게 조립의 사건으로 환원돼야 되는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야 되는가. 그 사건을 조각조각 조사해보면 그 사건이 하나님이 원했던 사건, 예수그리스도의 사건과 같은 사건이라면 그 사람은 성도요, 만약에 악마와 유사한 사건도 악마가 작업하는 사건들의 뭉치로서 떨어져 있으면 그 사람은 악령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인간을 분해한 책을 본 적이 없어요. 그려봐야 돼요. 그려봐야 일관성이 있어요. 하나님이 천지를 말씀이라는 사건을 통해서였어요. 그때는 뭐가 없었다? 인간도 없었다. 의논할 수 있는, 나는 너를 이렇게 만들 건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라고 물을 대상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는데서 유가 나왔다는 것은 무엇이 투입되니까 유가 되었다? 사건. 말씀은 반드시 역사 속에서 사건이 되고 말씀을 조립하면 그것이 사물이 되든지 개체가 되든지 인물이 되든지 된다 말이죠. 나중에 이 사건을 가지고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유명한 언약 사건이라고 합니다. 언약 사건.

제가 어렵게 얘기했는데 쉽게 얘기하면 출애굽 이후에 홍해를 건너갔던 사람의 특징이 뭐냐, 각자 자기 집의 아들이 어린 양의 피로써 구원받았다는 사건이 아들마다 조립되었을 경우에만 홍해가 쫘~악 열리게 마련이에요. 자, 그렇다면 홍해에 눈이 있고 귀가 있다고 한다면, 바다인데, 바다가 귀가 있고 눈이 있다면, 앉아서 뭘 보겠습니까. 어떤 자에게 길을 열기 위해서 대비해야겠어요.

하나님의 언약적 사건에 의해서 구원받은 자만 통과해. 통과하란 말이야. 라는 그 사건을 기다렸겠지요. 그러나 실제적으로 애굽인이나 히브리인이나 눈 두 개있고 코 하나, 입 하나 있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람이 사람을 볼 때는 사건으로 보지 않고 나타난 이미지 또는 어떤 형체, 외형, 그게 인간의 한계입니다. 인간의 한계여요.

그 이상은 보지 못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교인들이 거짓사도에게 넘어갔어요. -아, 이거 설명해야 되는데- 왜 교인들이 거짓사도에게 뿅 넘어갔느냐 하면, 거짓사도에게 애 현혹되었냐 하면, 거짓사도가 교인들의 욕망을 채워주겠다 했습니다.

그러면 교인들은 사도라는 사람에게서 뭘 끄집어내느냐 하면 내가 내 속에 기대하는 것, 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이런 것을 미리 알아서 챙겨주었을 때 진짜 사도라고 여기서 일치점, 어떤 공감대, 통하는 것, 그걸 원하는 거예요.

이걸 좀 더 깊이 얘기하면, 사람은 누구를 대하게 되면 그냥 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게 되는데, 기대하는 것을 채워줄 때 일단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일단은 이용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에 사도가 나왔죠? 사도바울이 나왔죠? 진짜 사도를 보니까 고린도 후서 11장, 12장 보니까 이 사람은 뭘 받고 있다? 고난 받고 있죠?

그렇다면 교인들은 뭘 싫어합니까. 교인들이 교회를 왜 나오겠어요. 고난 받으러 나옵니까? 고난 없애려고 나옵니까? 만약에 나를 따르시면 고난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습니다. 하면, 구원이라는 말은 안 들리고, 앞의 고난 받습니다,라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마세요.’ ‘입을 다무세요.’ 하고 브레이크를 건다 말이죠.

그런 세상을 보는 관점을 어둡고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보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하고 오히려 충고를 하겠지요. 교인들이 사도에게... 그런데 사도는 사람을 볼 때, 저 사람을 어떻게 꼬실 수 있느냐, 이렇게 보는 것이 아니고 방금 뭐라고 보겠습니까. 사도가 볼 때는, 인간은 없어지고 그 인간을 뭘로 본다? 혹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구원사건에 의해 조립된 성도만 보는 거예요.

하나님의 ‘빛이 있으라,’ 하는 말씀. ‘너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 ‘소경아 네가 눈을 떠라’는 말씀, 다 창조의 말씀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그 말씀이나, 소경에 눈을 떴다는 말씀이나 동일한 창조주께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그 말씀이나 창세기 1장에서 빛이 있으라, 하는 말씀이나, ‘나사로야 무덤에서 나오라,’ 하는 말씀이나 셋 다 똑같은 창조의 능력이고 구원의 능력입니다.

말씀이 사건화 되고, 사건이 사물화 되었다 하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모델케이스입니다. 모델케이스라 하면 아파트 짓기 전의 모델하우스 있죠? 모델하우스가 창세기 1장입니다. 이 말은 뭐냐, 앞으로 어떤 아파트가 세워져도 이 아파트 짓는데서 벗어난다, 벗어나지 않는다? 벗어나지 않는다. 일체 너는 벗어날 수 없고 오직 그것만 고수한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 고집 셉니다. 절대로 창세기 1장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요? 창세기 1장,2장에 나온 그 인간 아닙니다. 흙이에요! 하나님이 얼마나 고집 센데요. 하나님은 창세기1장에 만들어진 인간만 인간입니다. 창세기 3장의 죄짓는 것은 흙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말씀에서 흙이 될 때 여기에서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흙에서 사람 될 때 뭐가 있다?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남아있으면 인간이고 이 사건이 남아있지 않으면 흙이 되는 겁니다. 흙이 되는 ‘사건’에 불과합니다.

말씀에서 흙 되는 여기까지는 아직까지 사람이 안 나타나 있어요. 사람이 없어요. 없다는 말은 사람은, 흙에서 새로운 사건이 있어야 사람 되는데, 그 새로운 사건을 ②라하고 처음 흙이 있던 사건을 -이것도 좀 있다 설명할게요, 어렵습니다 - ①이라 한다면, 사건 ②가 없는 한 사건 ①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흙이라 하는 것은 땅에서 나오죠? 땅이라 하는 것은, 창세기 1장에 보면 땅이라 하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다에서 나와요.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바다 짓고, 땅 짓고, 이렇게 되어 있죠? 그렇지 않습니다. 바다 지어놓고 갈라지면 땅 나옵니다. 마치, 홍해 갈라지면 길 나오듯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이럴 때 어려운데 - 방향이, 우리는 지금 땅에 살고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접근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접근할 수는 없고, 현재 내가 있는 이 자리로부터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이쪽, 내 쪽부터 시작합니다. 내 쪽부터 시작하면, ‘하나님 저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 맞지요?’ ‘첫 단계 통과!’ ‘제가 딛고 있는 땅 하나님 만드신 거 맞지요?’ ‘통과! 점점 더 가깝다.’ 하나님 저 별도 하나님 만드신 거 맞죠? 그래요 맞다고 고백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 더 가깝다, 항상 내가 있는데서 출발하는데 그 길 엉터리이니다.

하나님이 저쪽에서, 하나님 쪽에서 와버리면 내 중심이 아니고 누구중심이냐면 골로새 1장에 의하면 예수님 중심입니다. 내 중심이 아니고 예수님 중심이에요. ‘하나님. 땅 만들었지요? 맞지요?’ 라고 할 때는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해요. ‘제가 지금 세는 게 땅이 맞는데요? 이게 물이 아니고 땅 맞는데요?’ ‘이 땅도 저는 하나님 만드신 땅이라고 제가 높게 고백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정답 아닙니까?’ ‘정답 아니다 그래!’

그 땅은 그리스도를 위한 땅이라는 겁니다. 이게 구약에 보면 약속의 땅이죠. 네가 서 있는 땅은 너를 위한 땅이 아니다, 그거예요. 만약에 네가 그 땅에서 나오는 언약을 위한하면 그 땅으로 말미암아 저주받는다.(창4:11)

성경을 해석하는데, 사람들이 전부 다 자기 좋아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 좋아라고 한 게 없어요. 분명히 창세기 1장에서 인간 이전에, 인간 이전에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어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 만들고요, 그러니까 형상에 흙을 만나서 사람 되었다, 생각하면 될 텐데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인간이다, 위대한 인간이다. 나는 최고다. 왜!’

하나님 형상이기 때문에 사고방식이 자기 좋아라고 해요. 자기 옹호, 자기 가치, 자기 사수, 자기 수효, 자존심 유지. 그래서 시집간 아주머니들이 그러잖아요. ‘하나님은 교회 잘 다니는데 남편이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합니까.’ 맨날 이런 소리 하지요. 교회 잘 다니는데 왜 남편이 돈을 잘 갖다 주지 않고 왜 나를 힘들게 하냐, 남자 잘못 만나 내 인생 평생을 조지느냐. 그런 소리 하죠? -사모님 왜 웃으십니까. 해당사항 있는 모양이죠? -

그게 예레미야에 나옵니까, 에스겔에 나옵니까? 어디 나옵니까? 골로새서에 나와요? 어디 나와요? 그 이야기가. 없지요! 성경에서는 ‘네가 사나 죽으나 내 것이다’ 간단하게 얘기 하죠. 그러면 또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내가 주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힘들구나,’ 또 결과적으로 뭔가 노리면서 내가 주의 말씀대로 살면 결혼생활이 행복할 건데, 주의 말씀대로 안 살아서 벌 받아 그렇구나, 또 이렇게 나와요.

방향이 문제입니다. 방향이. 방향이 자기로부터 출발해서는 안 되는데, 항상 성경을 봐도 자기로부터 출발해요. 여기 중요하기 때문에 늦게 오신 분을 위해 다시 합니다. -다시해도 괜찮죠? 흐흐흐...- (애교 모드)

지금 무슨 이야기 하냐면, 사람을 분해하는 이야기 합니다. 사람을 분해하게 되면 물체가 남죠. 의학적 분해하면, 목 잘라내고 갈빗대 자르고, 시체 부검하고 잘라내면 뭐가 남아요? 자르고 자르면 남는 것은 뭐가 남아요? ‘사람’이라는 물체만 남지요. 사람이 물체가 될 때 성경에서 이걸 뭐라 했습니까. 물체는 나중에 흙 되지요?

사람을 분해하면 뭐 됩니까? 흙이 되지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사람을 칼 가지고 분해하는 것이 아니고 뭘 가지고 분해하냐면 사건으로 분해한다 말입니다. 사건으로. 사건으로 분해하면 뭐가 남아요? 물체가 남는 게 아니고 사건으로 남아요.

성경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냐면, 사람을 분해할 때, 사람을 볼 때 사람 덩어리로 보지 말고 거기에다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분해하는 식으로 우리가 같이 봐야 하는데, 그 사람에게 말씀이 부딪히게 되면 그 사람은 와르르 무너지는데, 마치 로봇 조립할 때 하체를 탁 때려버리면 로봇이 무너지면서 부속품 조각조각 부서지듯이, 사람이라 하는 것은 그냥 흙뭉치가 아니고 사람은 속에 사건과 사건의 뭉치였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사건으로 딱, 떨어지면 이게 뭐가 됩니까. 이게 사건의 조각으로(쪼가리가 아니고 조각입니다) 산산조각 나죠.

쪼가리가 되면 고린도전서 15장10절 같은 경우에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그 사건으로 인하여 사건들로 뭉쳐져서 지금의 ‘나’라는 둥치가 만들어졌음이 되죠.

그런데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있을 때, 복음이라는 사건, 복음은 반드시 사건입니다. 아시죠? 교회 다닌다고 구원받는 거 아니지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된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적을 봤다, 체험했다, 병 고쳤다, 환상을 봤다, 말짱 소용없고 뭐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면 그 믿음만이 구원받은 믿음이요, 아무리 체험을 많이 해도 하나님 말씀에 갸우뚱 하면 그거는 구원받지 못할 믿음이고 그 믿음은 가져도 소용없는 믿음이다 이 말입니다.

반드시 믿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이 체험했고 얼마나 많이 기적을 베풀었고, 기적을 입었느냐가 아니라 성경말씀에 눈이 가 있고 귀가 가 있느냐 이걸로 결정되다는 거예요. 말씀에는 관심 없는데 구원받았다. 이거는 거짓말입니다. 말씀에 관심 없으면 구원될 수가 없어요. 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여호와의 말씀에서 나기 때문에.

그래서, 복음은 말씀인데, 복음은 말씀으로 되어 있어요. 물 위를 걷고 병고치고 그건 복음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은 말씀으로만 주어지게 되어 있어요. 아무 기적도 없는데도 믿어지느냐 묻는 거예요. 아무것도 네가 생기는 게 없는데...돈벌이할 것도 없는데, 그럼에도 네가 말씀 자체를 믿느냐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복음이 치게 되면 어떤 사람은 복음을 거부하지요? 거부한다는 말은 그 사람 분해하니까 그 사람은 사건들의 뭉치인데, 그 사람은 사건 사건들 하나하나 뭘 반박하게 되어 있다? ‘복음이 들어오기만 해봐라, 가만 안 두겠다.’라는 식으로 평소에 그 사건들이 뭉쳐져서 오늘의 자아라는 걸 형성한 겁니다.

사람을 부검한다고 해서 사람이 해부되는 게 아니에요. 사람 부검은 병원에서 하라 하세요. 그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하라 하세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분해할 때는 말씀으로 분해해요. 말씀으로 분해해버리면 그 인간은 사라져버리고 뭐만 뭉쳐있다? 사건 사건들만 뭉쳐져 있다. 사건, 하나 하나가 사도바울 같은 경우 뭐가 됩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되죠.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어요. 그 말씀은 뭐냐, 내가 한다는 게 없어요. 그냥 사건이 오면, 나는 그냥 ‘사건화’ 될 뿐이에요. 사건으로 변모되어서 나에게, 떨어지는 사건은 이러이러한 사건입니다. 라는 것을 그냥 보여줄 뿐입니다. ‘나’라는 덩치가 없어요.

그래서 로마서에 보면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주의 것이로다” 한 말은, 죽고자 하는 사건이 오더라도 그 사건을 통해서 주의 복음은 나타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할 게 뭐냐 하면, 고린도후서 12장 하는데 공부할 게 뭐냐 하며는, 어떤 사람에게 복음 사건이 들어올 때, 그 사람은 반응을 나타내더라, 그런데 이걸 거부하죠? 그런데 사도 바울은 어떻게 했는가? 여기 지금 사도가 있고, 빨간색으로 표시한 ‘거짓사도’가 있는데, -지금 반응 보는 겁니다.- 복음적인 사건이 주어졌을 때 고린도후서 12장11~21절까지 보면, 봉사와 희생. 이걸 우리말로 하면 ‘고맙습니다’ 봉사와 희생을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데레사 수녀처럼 구제하고 사회봉사하는 걸, 봉사와 희생이라고 하잖아요.

구약에서 봉사와 희생이라는 걸 뭐라 하냐면, ‘여호와로 인하여 감사하노라’입니다.

구약에서의 제일 큰 봉사의 결정이 뭐냐 하며는, ‘성전에 올라갈 때’입니다. 시편에 보면 “너희들은 감사함으로 성전에 올라가라” 여호와와 인간이 유일하게 만나는 지점이 성전이에요. 만나는 지점이 뭐냐 하면, 구약에는 성전이에요. 성전에 올라 갈 때만큼은 감사함으로 올라가야 돼요.

그러면, 이스라엘이 하는 모든 일들은 무엇을 위함이다? 감사를 유발해서 성전에 가서, 하나님 이름이 계시는 성전에서 희생제물 드리는 그 일 하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사건 사건을 유발시켜 준 겁니다. 그 사건들이 하나님의 사건이 아니냐 하는 것은, “누가 감사함으로 성전에 올라갈 자가 누구뇨” 누구냐! 성전에 올라가서 감사할 자가 누구냐!

성전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인데, 그게 성전인데 그 성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 전에 하나님께서 사건을 유발시켜서 어떻게 하냐면, 자기한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감사한다고? ‘야...이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구원해 주시니까 주님, 너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가 터져 나오는 계기를 만들어서 집단적으로 성전에서 제사하게 되어 있어요.

그게 이스라엘 만든 목적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 나오죠?

‘모세야!’
‘예!’
‘신발 벗어!’
‘아니, 왜요?’
‘네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어서 네가 벗은 이 자리에 다시 오게 하리라’
‘너 뿐만이 아니고 네 백성들 이 산에서 나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나는 애굽에서 내 백성을 끄집어내서 끄집어 낸 그들 가운데 있음으로 말미암아 성소가 되리라.” 성소. 그 성소가 너희의 상속분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거는 뭡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사건이 주어지지 아니하면 우리는 꿈도 못 꾸죠.

상상하는 것도 사건이 와야 상상하지요. 천국이 어떤 거냐, 천국도 사건이 와야 상상하지 그냥 상상한 것은 개꿈입니다. 그건 소용없는 거예요. 그냥 상상해버리면 감사가, 조작된 감사가 나와요. 내가 기대한 것,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어줘버리면 그 감사는 내가 원했던 것에 대한 감사기 때문에 온전한 감사가 아닙니다.

진짜감사는 예상치도 못했던 것이 주어질 때 우리는 감사가 아니라 감격해버립니다. 눈물이 나버립니다. ‘주님, 나 같은 인간 왜 살려주십니까.’ 나 같은 인간 왜 살려주십니까.

요새 개그콘서트 보니까 맘에 드는 것이 하나 있어요. 거기 보니까, ‘선배님~’ 하고 아양을 떠는 대목이 나와요. IMF보다 더 어려운 요즘 시대에 ‘주님~’ 하고 아양 떠는 사람 있습니까. 요즘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서 주님이 좋아서 아양 떠는 사람 몇이나 있겠습니까. 이 경제가 어려운데...

북한의 개성공단이 어떻고 난리 치는데, 이런 가운데서 ‘주님 왜 저를 구원해주셨어요, 너무 기뻐요’ 라고 감격 할 기회라도 있었습니까? 아니면 남편 월급 가지고 따지고 이렇습니까? 이렇게 경제가 어렵고 살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돈밖에 모르는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까. 하는 감격. 예상 못할 감격.

우리의 철학은 뭐냐면, 돈이 생길 때만 감사하겠다고 마음을 다졌어요. 우리는. 애 공부잘하고, 애 좋은 대학가고, 내 교회 부흥되고, 나라장로교회 2천명 되고, 드럼 치는 아이 스무명 오고, 반주 서로하겠다고 난리치고, 어려운 청소년 2천명 오고, 그럴 때 감사하겠다는 리스트 항목 자기가 다 작성해 놨어요.

놀랍게도 그거 다 피해주시는 감사. 그거 하나도 듣지 않아주시는 그 고마움. 세상 부귀영화만 찾는 나 같은 철딱서니 없는 나를 구원하시다니!! 그런데서 오는 감격. 이것은 예상 못한 감격입니다. 그럴 때 망치가지고 그 사람 탁! 때려버리면 그 사람 산산조각 나겠지요. 산산조각 났는데 가다가 그 조각이 전부 다 살아있어. 펄펄 뛰어. 왜 뛰는가 봤더니 ‘주께 감사합니다’ 감사가 뛰는 거예요.

하나하나가 사건이라. 평소에. 평소에 자기 아내가 건강할 때는 당연히 건강한 줄 알지요. 만약에 아내가 몸이 아파서 밥 한 끼를 제대로 못할 때, 남편 되는 사람이 손수 라면 끊여 먹다 보면, 밥 한 끼, 따뜻한 밥 먹는 것도 평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비로소 잃어버렸던 감사를 소급해서 감사하게 되요. 소급해서.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것이 이렇게 고마운 일인데...평소에 아내가 늘 건강하고 늘 잘해주니까. 당연히 하는 것으로 여겼던 그 오만함과 교만함. 그것이 깨어질 때의 감사! 지금 제가 이야기한 게 성경에 없는 게 아니고 사도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사도바울이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뭐 가지고 다가갔냐면, 이거 성경에 나옵니다.

고난을 갖고 오는 사도를 거짓사도로 제껴버리고 고난이 없는 사도를 뭐로 봤다? 진짜 사도로 보니깐 사도바울 하는 말이, ‘고난 없는 사도는 사단의 일꾼이다. 그들이 전하는 예수는 가짜 예수고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가짜 복음이고 고린도후서 11장 나오지요? 고린도후서 11장4절. 그들이 전하는 성령은 다 가짜 성령이라 했어요.

여기 14절보면, 오늘 본문 12장 14절: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특히 15절에 보면,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 이런 말을 시찰회에서 하던가요? 노회 가면 하던가요?

‘허비’가 뭡니까? <나 같은 것은 더 이상 살 목적 없습니다> 라는 뜻이에요. 나 같은 인간은 고물상에 가셔야할 대상이다, 이 말 아닙니까? ‘줄 것 다 주었으니까 더 이상 줄 게 없네요.’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게 폐건전지 아닙니까. 빼먹을 것 다 빼먹었잖아요. ‘빼먹을 거 다 빼먹으세요, 그래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런 뜻이에요.

내가 볼 때 사도바울이 미친 것 같애. ‘쓸게고 간이고 다 빼먹으세요.’ ‘다 가지고 가세요.’ 여러분만 얻을 게 있다면 저는 감사하겠어요. ‘그게 평소에 내가 기대했던 바입니다.’ 이런 뜻이에요. 나는 사도바울 거 홀라당 다 빼먹었거든? 하신다면 내가 평소 원했던 교인상 맞습니다. 내가 원했던 교인이 바로 그런 교인입니다.

제발 빼먹어 주세요. 제발...그런데 여러분들은 내가 이렇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도들처럼 ‘사도입네,’‘종입네’ 하면서 대우를 안 받는다는 이유 때문에 나는 거짓사도로 취급받게 되었으니깐, 그 배후의 인물이 누구냐 이 말이죠. ‘나오라!’ 이 말입니다. 모든 사고방식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그 배후에 누가 있냐 말이죠.

여러분 좋아했던 자들의 정체를 한번 밝혀보라 이 말입니다. 그게 바로 ‘악마’라 하잖아요. 악마. 사실 오늘 본문에서 깊이 있는 게 있어요. 뭐냐 하면, 창조를 다시 한 번 봅시다. 제가 아까 했는데 어렵기 때문에 다시 반복해 보겠습니다.

창조는 말씀이 뭐 된다? 사건화 되어서, 사건화 되면 뭐가 생깁니까. 물체가 생기든지 사람이 생기든지 뭐가 나오죠. 나왔으면 이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면, 창조에서 나오게 되면 반드시 뭘 거쳐야 된다 했습니까? 만약에 사람이라면,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왔던 길을 거쳐야 되겠지요.

거치려면 중간에 뭘 거쳐야 됩니까. 사건 거쳐야 되고, 그 사람이 믿는 것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 했지요. (롬10:15) 듣는 그 내용물이 무엇이어야 한다? 그리스도 말씀 외에는 딴 게 있으면 안 된다 했어요. 간증집회 해서 믿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게 가짭니다. 왜!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온 것을 믿는 믿음이어야 되고 믿음은 말씀을 거치기 때문에 그래요.

만약에 간증에서 시작한 믿음은 간증에서 가버려요. 간증에서... ‘나도 간증꺼리 없나?’ ‘나도 믿음 좋다고 뽐내고 싶은데 뽐낼만한 실적 같은 것 없나?’ 바로 그걸 찾게 된다고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씀을 전하는데, ‘야... 그 목사 말씀 잘한다.’ 목사한테 가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그렇게 설명했는데 과연 그런가? 하여, 말씀에 꽂히고 말씀에 관심 있을 때, 그게 바로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누가 뭐라 하는가? 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경말씀에 뭐라 되어 있는가? 가 중요하다 말입니다.(아멘) 이걸 다시 도식화 시키면 하나님의 창조에서, ‘빛이 있으라!’하매 빛이 있었고, ‘땅이 있으라!’ 하지 않았죠? 물을 만들고 물을 중간에 쪼개버리니까 뭐가 나왔다? 땅이 나온 거예요. 이것은 뭐냐, 땅 중심으로 생각하면 안 되고, 그 위에 말씀 중심으로 생각하라는 겁니다. -압권-

자칫하면 땅은 어떻게 돼있어요? 노아처럼 홍수에 덮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땅은 땅으로서 자체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윗선에 있는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 땅이 유지되게 되어 있습니다. -압권!-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게 아니고, 창조에서 물체화 되고 사람이 되었으니까 사람이 창조의 하나님을 알려면 반드시 어떤 과정을, 어떤 경로를 돌아가야 되는데, 돌아가는 가운데 사건이 있고 사건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게 되어 있죠.

그렇게 되면, 이걸 여러분들이 아신다 치고, 문제 하나 내겠습니다. 문제 간단해요. 창조된 것을 취소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1)취소된다. 2) 취소 안 된다. 취소가 안 되죠! 그럼 만약에, 태어날 때부터 키가 작다. 그걸 하나님께 불평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참 이상하죠? 지금 12장8절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뭐가 바뀌었습니까. 사단이 준 가시가 박혀있지요. 자기가 박아 넣은 건 아니죠? 사단의 가시가 있을 때 그게 창조의 일부라면 그걸 사도바울 자신이 취소시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취소 못하죠. 취소 못한다는 말은 사도바울은 이미 창조물이잖아요. 창조물은 자기가 자기를 조종 안 되잖아요.‘하나님 이거 이렇게 저렇게 바꿔주세요.’ 안 될 것 같으면 어디에 봉사해야 됩니까. 어디에 희생해야 되요.

지금 내가 이런 창조물 된 것은, 내가 무엇을 거쳤다? 말씀을 거쳐서 내가 되었기 때문에 어차피 나는 취소 안 되는 이상은, 나라는 존재는 말씀 전파에 봉사하면 되고, 말씀 전파에 희생하면 그게 ‘딩동댕~!’ 정답입니다. 정답인데 별로 좋아하지를 않네요. 이게 정답이거든요.

그런데 몸이 아파 보세요. 정답이 나옵니까? 불평이 나옵니까? 불평이 나오죠. ‘왜 나는 건강하지 못합니까.’ ‘왜 나는 부자 아닙니까,’ ‘왜 우리 교회는 부흥되지 않습니까.’ 그 소리가 왜 나와요. 정신을 지금 어디에 팔고 있어요!

제가 왜 이런 얘기 하냐면, ‘봉사’와 ‘희생’이 안 나온다는 것은 봉사, 희생정신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고 근본적으로 내가 하나님의 사건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봉사, 희생이 안 나오는 겁니다. 거기다 안 나오는 것을 억지로 봉사, 희생 하려고 하면 거짓사도의 주특기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봉사 희생을 원하면 해준다는데 있습니다.-충격-

그래서 사람들은 속아 넘어갑니다. 나 부족합니다. 나 고생 많이 했습니다. 나는 사도바울처럼 굶어가면서 복음 전했습니다. 이 말에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요. 다...사도의 봉사와 희생은 뭐가 없다? 대가가 없다. 어떤 대가가 없는 이유가, 아까 12장15절: 나는 내 모든 것을 뭐했다? 내 자신까지 허비했다. 하지만 거짓사도는 자신까지 허비한 척, 그거는 일종의 투자죠 투자.

이거는 하나의 장삿속이죠. 이만큼 해주면, 2배로 해주면 10배 들어온다 말이죠. 30배,60배, 100배 라고 하잖아요. 씨 뿌리는 비유 이야기 하면서. 돈 놓고 돈 먹기 아닙니까.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컵이 없으면 못 먹는다, 는 말 나오잖아요. 땀흘려 기도하면 축복권 아닙니까 그래. 그게 뭐가 희생입니까. 투자지.

투자의 중심에는 누가 있다? 내가 있고. 나를 소비한다? 아니죠! 나를 살찌우잖아요! 그거는 누구 중심이다? 나로부터 시작한 말씀연구. 말씀해석. 모든 것을 나 잘되기 위한 말씀해석. 나라는 둥치. 나의 가족. 노후대책. 내 영업수완. 이 모든 것은 자기를 분해할 줄을 몰랐어요.

우리는 뭘로 분해한다? 말씀으로 분해해버리면 육체덩어리가 남는 게 아니고, 소복이 쌓이고 소복이 깨지는 것은 사건들만 쌓이는데, 그 사건들 하나하나가 기쁨으로서 춤춰야 된다고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17살 때 담배피우는 것도 하나님 은혜! 20살 때 교도소 잠깐 갖다오는 것도 주님의 은혜군요. 이게 전부 다 은혜에요. 전부 다...

전부 다 주님 주신 걸로만 감사하게 하기 위한 사건의, 예비사건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예비사건. 만약에 그날이 없었다면 얼마나 교만하고 자만했을 건데 그야말로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예비사건. 그걸 가지고 사도바울은 뭐라 하냐면, 그걸 가지고 “창세전에 나를 예정하사!” 창세전부터 나를 예정하사, 모태의 태중에서부터 나를 택하사! 선택하사! 그렇게 하사, 나로 하여금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따라서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노라. 누굴 위해서? 사건을 위해서. 무슨 사건? 창조로 돌아가서 창조 때 말씀이 먼저 있었고, 나는 말씀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창조주를 만나려면 반드시 이 골목을 거쳐야 돼요. 이게 무슨 골목? 내가 말씀화 되는, 내가 말씀의 덩어리 되는 그 과정을 역으로 가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중요한 것 아직까지 반밖에 얘기 안했어요. 이제 더 어려운 게 남아 있어요. 이제부터 어려운 거 시작하겠습니다. 이거 진짜 어렵네? 창조에 대해서,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했습니다. 사건 덩치(둥치) 사건 덩어리죠? 사건 덩어리이기 때문에 이제는 인간이 뭐냐는 알 수 없고, 내 안에 어떤 사건이 뭉쳐져 있는가를 알면 되요. 이거는 제가 여러분 안 들은 얘길 하려니 어렵게 들리겠지만 되풀이 하겠습니다.

인간은 없고 사건 덩어리인데, 이 사건이 어떤 덩어리 됐는가 보는 것으로 가는 과정에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라는(창세기3장) 사건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하나님 만나기는커녕 여기서 졸지에 뭐가 되어버렸습니까? 흙이라는 덩치로 빠져버렸죠. 자, 두 개의 사건의 만남입니다. 인간이 되었다는 사건.

너는 흙에서 생명을 주니까 너는 산 사람 되어라, 산 사람 되었죠? 산 사람 되었다는 사건이 어떤 사건에 부딪히니까 흙이 되는 사건이 되었습니까. 따먹지 말라 하는 선악을 따먹었을 때 졸지에 흙이 되어가는 과정이죠. 지금 제 강좌 하는 거 여러분들 이해 못하는데, 흙이 되었다는 것은 별로 안 중요해요.

뭐가 중요하냐 하면, 왜 사람이 서서히 흙으로 되어 가나, 그 과정, 그 과정에 누가 개입합니까? 하나님이 개입하잖아요. 여러분들에게 지금 제가 매직펜을 던지면 ‘어, 빨간 거 던졌다?’ 이걸 던졌을 때에 보이지 않은 힘이 작용해 던져졌고, 손에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에 딸어지는 것도 누구 힘이 작용했는가, 보이지 않은 분을 봤냐 이 말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그런데 우리는, 기분 나쁘다, 피곤하다, 농사지어도 나 괴롭다, 농사 잘 안 된 것, 힘든 것 땀 흘리는 것, 이것만 생각했지, 누가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했나, 그거 생각 하십니까? 누가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 말이죠. 누가...

왜 사람은 코가 하나입니까. 그거 생각해본 적 없지요? 왜 눈이 두 개냐, 누가 나를 코 하나에 눈 두 개 만들었나, 누가... 이거는 늘 잊어버려요 사람들이. 누가 만들었나를 모르게 되면 그 사람은 사건이 날아가 버리고, 남은 것은, ‘누구든지 날 건들기만 해봐라 내가 가만 안 둔다.’ 라는 복수심.

영화 ‘박쥐’ 감독한 사람이 누구죠? 박찬욱 감독이죠? 박찬욱 감독 영화의 모티브가 뭐냐? ‘복수’에요. ‘친절한 금자씨’ ‘올드 보이’ 복수입니다. ‘박쥐’도 인간의 신에 대한 복수죠. 착해지려고 헌혈했는데 마귀가 들었으니까, 나는 흡혈귀라도 착한 흡혈귀 되어서 하나님의 창조를 부끄럽게 만들겠다. 착한 흡혈귀도 있을 수 있다는...착한 악마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영화입니다. -아이디어 굿! -

이웃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착한 흡혈귀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영화 ‘박쥐’에요. 복수입니다. 여러분 어떤 때 복수되던가요. 나만 생각하면 무조건 복수고, 내 생각 안 나면 복수도 사라지지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사람은 눈만 뜨면 복수 생각합니다. 왜? 눈만 뜨면 자기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하는 이상은 반드시 뭘 생각한다? 복수를 생각한다.

한번 적어볼까요? ‘누가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가?’ 하루 스물 네 시간 이것 말고 할 게 뭐가 있습니까. 스물 네 시간 종일 이 생각입니다. ‘누가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가!’

아마, 아내는 남편보고 잔소리 할 거고, 아내가 남편에게 잔소리 한 마디 할 때마다 이게 포함되어 있어요. ‘네가 뭔데 날 힘들게 하느냐!’

남편은 또 하나님 향해 할 거예요. 결국 누구 책임입니까. 결국 욕은 누가 얻어먹어요? 하나님이 얻어먹어요. 감사함으로 성전 들어가요? 감사는커녕, 복수하려고 성전 뛰어들겠죠. 누가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느냐! 이 주제 말고 인생에 할 만한 생각 있습니까? 이거 빼놓고는 인생이 재밌는 거 할 게 없어요.

‘어디 누가 건들기만 해봐! 죽여 버릴 거야.’ 이거 말고 스물 네 시간 이것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삽니까. 이 재미로 사는데. 모든 인간이...모든 인간이 이 재미로 살아요. ㅋ

경찰서 들어가서 휘발유 붓고 음주운전 단속했다고 자살한 사람 얼마전 있었잖아요.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누가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가. 여러분 오늘 좋은 거 하나 배웠습니다.

모든 드라마. 아내의 유혹부터 해서 티브이와 뉴스와 모든 인생 주제가 ‘누가 나를 힘들게 하는가!’ 복수 아닙니까. 복수...그런데 이 복수도 ‘나’가 없으니까 뭐가 안 보여요? 과정이 안 보입니다. 과정이. 나라는 인간이 흙으로 된 과정에 하나님이 개입했다는 것을 모르죠.

그런데 인간은 자기밖에 몰라요. ‘누가 나를 힘들게 하는가’ 이걸 짜증만 낼 뿐이지 몰라요. 그런데 아는 분이 두 분 있어요. 인간은 몰라요. 그런데 아는 분은 두 분 있어요. -그게 누구게요?- 예수님과? 악마! 그래서 예수님과 악마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하나 있어요. 창세기 3장15절. 창세기3장15절을 신약에서는 뭐라 하냐면, 원래 약속이라 하죠.

3장15절 알죠? “뱀의 후손이 여자의 발꿈치를 물어버리고” 물기를 기다려서 뱀의 머리를 딱, 물었제? 물었제? 무는 걸 보고 손뼉을 치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은 반드시 어떻게 되요? 물려야 되죠? 누구에게 물려야 됩니까. 악마에게 물려야 되는데 자기만 아는 사람들 눈에는 악마는 안 보이고 그저 바리새인, 유대인, 로마군병, 사도신경에 나온 사람,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사... 본디오 빌라도는 정치인인데, 그냥 보통 남자에요. 50 몇 살인데 아무 죄도 없어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사... 이러죠? 이렇게 생각한 자체가 인간은 뭘 본다? 과정을 모른다 말입니다. 그 과정을 알면 예수님과 악마밖에 없어요. 다른 건 몰라요. 악마와 예수님은 우리를 뭘로 보냐면, 우리를 사건으로 봐요. 무슨 말이냐면, 너는 내가 영에 임한대로 놀아날 뿐이라는 것을 뻔히 알죠.

디모데후서에 보면 하나님께, 디모데후서 2장을 봅시다.『딤후2:26: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보세요, ‘...저희로 깨어’ 인데 어디서 어디로 깬다 말입니까. 무엇의 올무에서? 보세요, 마귀 나오잖아요. <마귀>의 올무에서 깨어났는데 그 다음에 ‘야~ 나 구원받았다.’ 지맘대로 삽니까? 어떻게 됩니까.

그 뒤에 하나님께... 그 다음에 무슨 단어죠? <사로잡힌바> 이런 얘기 교인들에게 하기 목사로서 정말 힘들죠. 왜냐면 ‘하나님께 사로잡혔습니까?’ 물으면 아무도 답변 않거든요. ‘내가 무당입니까?’ 이럽니다. ‘내가 왜 사로잡혀요 멀쩡한데.’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나는 똑똑하고 의사고 변호사고 판산데, 나보다 똑똑한 사람 없는데. 사로잡하긴 뭘 사로잡혀요. 무당에게 찾아가세요.

그런데 성경은 뭐라 합니까. 너는 하나의 기계에 불과한 거야! 악령이다 하면 악령에 의한 기계. 성령이다 하면 성령에 의한 기계. 인간은 첨부터 투입되는 과정에 의해서 나타난, 움직이는 하나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힘에 의한 과정에 의해 가느냐입니다. 어떤 힘에 의해서...

사람이 성경을 안 보니까, 자기중심이니깐 ‘하나님이여 제가 어떻게 제가 바르게 살면 됩니까. 바르게 살 수 있는 말씀을 주옵소서. 제가 족히 듣겠나이다.’ 맨날 이런 식이에요. 이건 자기가 기기가 아니고 어떤 말씀이든지 내가 말을 굳게 잡고, 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 문자 한번 썼습니다.

정신이 하나가 되면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 뜻이에요. 내가 맘만 단단히 먹으면 어떤 일도 어떤 말씀도 착하게 살 수 있다고 다짐했는데, 성경은 ‘그게 바로 마귀야,’ 그게 하나님 주신 은혜라는 과정은 모르고, 나로 하여금 이렇게 되게 하신 은혜는 다 커트해버리고, 다 끊어버리고. 지금 덜렁 남아있는 ‘나’라는 자체가 나의 작품인양 오해하고 있어요.

사도바울이 사도행전에서 그랬잖아요. ‘내가 하나님의 영광 돌리리라’ 했잖아요.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이랬어요. 내가 죄 지었다는 말이 아니고, ‘죄가 나를 완전히 덮쳤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다윗도 그런 고백했죠? ‘내가 모친의 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여기 -이거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그리고 악마에 의해서 들어오게 되면, 예수님에 의해서 들어오게 되면 -마지막입니다 잘 들어보세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죠? -마지막 대목입니다. 잘 들어보세요.- 예수님이 이땅에 와서 평소에 어떻게 살았습니까? 봉사와 희생으로 살았지요?

봉사와 희생으로 살았는데, 오늘 본문 다시 한 번 봅시다. 고린도후서 12장18절 끝에, ‘동일한 성령’이라고 되어 있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봉사와 희생으로 했는데, 이것이, 우리 인간이 기계니까 뭐가 들어오죠? 뭐가 들어옵니까? 성령이 들어와 버리니까 사도바울은, -기계는 사건에 의해서 움직이니까.- 예수님의 봉사와 희생이 성령을 통해 들어와 버리니까 사도바울이라는 기계는 뭘 나타냈다? ‘봉사와 희생’을 드러내게 되어 있죠.

그래서 “... 나 자신도 너희에게 허비하노라.” 이거 누구에 의한 정신이에요? 바로 성령에 의한 정신이고 누구중심입니까. 예수님 중심이죠. 예수님은 누구 중심입니까. 예수님은 아버지와 사건화 되어있어요. 예수님 하는 일이 아버지 하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사도바울 하는 일이 누구 일입니까. 결국은, 하나님 아버지가다 하신 일이에요. 자, 거기에 비해서 봉사와 희생이 아니고, 악마가 와버리면 예수님과 싸웠던 것이 악마지요.

이것은 여러분도 동의하시죠? 예수님과 싸웠던 건데, 대표적인 것이 바리새인이고 사두개인입니다. 바리새인보고 너희 애비는 뭐다? ‘너희 애비는 마귀다!’

그렇다면, 마귀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대들었다면, 사도바울의 정신이 뭡니까. 이게 악마정신입니다. 그게 뭡니까. 누가 살아있어요? ‘내가’ 살아있어요. 나의 가치, 나의 가치가 살아있다는 겁니다. 신이시여! 나는 바르게 살았나이다.

속에는 ‘누가 감히 나를 힘들게 해!’ 이게 속에 들어있으면서, 겉으로는 뭡니까. ‘신이시여, 나는 신을 위해서 바르게 살았나이다. 고로, ’나를 힘들게 하지 마세요.‘ 나 힘들게 하면 짜증납니다. 나 정말 힘들게 하면 하나님이라도 가만 두지 않습니다. 저도 한성질합니다. 내 성질 나오기 전에 나를 건들지 마시고, 내 나름대로 신에게 할 도리 다하겠습니다. 이거, 악마입니다! 백퍼센트입니다.

결국은 하나님, 예수님 앞에서 실컷 얘기해놓고, 누구 영광입니까? 자기 영광. 이것은 무엇을 무시해요?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과정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자기가 약속의 중심으로 본 거예요. 약속은 예수님과 악마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악마에게 사로잡혀 있는 자를 해방시킨,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지요.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은 뭡니까. 자신의 공로로 구원받지요. 그 다음에 끝으로 12장21절:『......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

사람이 봉사와 희생이 없으면, 다시 말해서, 나라는 것을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사건’이라고 보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만든다고 보면 이 세상은 악마의 유혹이 오게 되면,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그 욕망과 욕정을 자신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요. 마그마입니다. 마그마!

‘나는 돈 좋아한다.’ ‘나는 돈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한 5만원 정도? 십일조 할 때, 초등학생 십일조 할 때, 엄마에게 100원 받았으면 10원 십일조 합니다. 중학생 만원 받았으면 천 원 합니다. 어른들이 10억 벌었으면 1억 못합니다. 못하죠.

아무리 유혹이라 해도, 유혹은 나보다 더 셉니다. 그래서 유혹 따와요. 악마의 유혹 세 가지, 첫 째는 ‘돈’입니다.(돌이 떡 되게 하라 -생존유지) ‘네가 밥 먹고 살아야 목사 하지’ 두 번째는 ‘추종자’ ‘목사님~ 목사님~’ 추종자 많아봐라. 기적 한번 베풀어봐라, ‘믿슘네다, 믿슘네다’ 세 번째, '네가 갖고 싶은 것은 세상 부귀영화지?‘ ’우리 합작해서 다 갖자.‘ 그거잖아요.

그것은 이길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가 못 이기게 되었습니다. 못 이기는 것을 이기려고 하는 자체가 마귀의 시험에 홀라당 넘어간 겁니다. 이걸 생각하지 마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인간도 구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누구덕분에?’ ‘예수님 십자가 덕분입니다,’ 이게 바로 주님이 그 사람 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세상 유혹 이겼다고 자랑하는 그 순간, 우리는 엎어지고 자빠지게 됩니다. 쓸데없이 남과 비교해서 더 훌륭한척하고, 신앙 좋은척하고 경건한척하고, 멋있는 척 하지만 그것 자체가 마귀의 시험에 빠지는 줄 아는 겁니다. 저희들, 오직 우리 자신을 하나님 사용하는 대로, 복음을 위해 쓰여 질 뿐인 것을 진작 알아야 할 사실을 이제 알았사오니, 그저 감사함으로 천국들어가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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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