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얼만 전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아하, 한 인간이 이렇게 온 나라를 슬픔에 잠기게 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실감나게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한번도 만나 뵌 적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분이라서 슬픔이 아직도 가슴을 여미는데 말입니다.
특히 과거 대통령 시절에 고위관료들을 불러서 국정을 논하던 진지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국정홍보TV에서 새벽 2시까지 녹화로 방영을 해주곤 했는데, 그것을 보면서 잠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힘든 식당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저에게는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은 이 목사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잠이 들곤 하는데, 그런데 그만 자장가가 되어서 10분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ㅋㅋ).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거 동영상들이 인터넷에 많이 떠도는데, 특히 그 중에서 명연설로 꼽히는 것이 아마 '2002년 대통령 후보 출마연설' 이지 싶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는 순간에 소름이 끼쳤는데, 왜냐하면 히틀러가 떠올라서 말이다. "만약 저분이 전폭적인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라고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온 나라를 광풍(狂風)에 휩싸이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히틀러를 뺨치는 타고난 웅변가의 모습이고, 왜 노무현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뿐만 아니라, 제 주위에서 여러 건의 그런 안타까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와 30대의 청년, 90이 넘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그만큼 죽음은 결코 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는데, 물론 내일도 그러한 사건들은 계속해서 일어나겠지요? 제가 알든 모르든 말입니다.
최근에 이근호 목사님의 강의 녹취하다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신앙 속에는 예수님이 들어 계시는데, 그러면 예수님이 그 신앙을 통해서 활동을 하지 않겠는가? 들어와서는 그냥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마냥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활동을 하시는가? 정죄를 하시는데, 즉 "이것은 신앙이 맞고, 저것은 신앙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진짜로 성령을 받은 새롭게 거듭났다고 하면 남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자기 내부에서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매일같이 자기 내부에서 싸운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어디에 눈을 돌린다는 말인가? 외부를 향해서, 도대체 세상이 더럽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더럽고 추악한데 말이다."
과연 지금 주님은 내 마음 속에 무엇을 하고 계실까? 무슨 쓰레기를 치우고 계실까? 노무현? 이근호? 박정애? 구예찬? 한 평생을 자기 자신과 싸워야만 하는 우리의 운명, 그런데 그것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 참으로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는 희한한 것 같습니다.
두서없이 적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오늘도 우리 대신 우리 자신과 싸워서 승리하시는 주님에게 영광을 돌려드리는 시간들이 많아지길 소원합니다.
2009,06,10 구득영
관리자(IP:125.♡.2.45)
09-06-10 06:18
노무현이가 외친 개혁이든 어떤 인간이 외치는 개혁이든
또 앞으로도 외쳐질 개혁이든
그거 다 거짓말이겠지요.
왜냐 구 목사님 말대로 최종적으로 자기자신은 때려죽어도 개혁 못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위선적인 거짓말이 아니겠습니까?
죄인이라는 고백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닐겁니다. 천지가 개벽해도 불가능한 고백이요 기적 중의 기적일 겁니다.
(오죽하면 죄인 하나 돌아오면 천사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정도로 불가능 중에 불가능일테니까요)
오직 예수의 마음이 예수님이 직접 집어 넣지 않는 이상은 아무나 죄인이라는 고백을 할 수 없겠죠.
평생을 살아봐도 아마 목사 중에, 또는 교회 다니는 자 중에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는 아마 만나보길 힘들 겁니다. 아예 없겠죠. 그런 기적은 번개 맞을 확률 보다 더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거든요.
차라리 개혁 이라는 소리 외치는 자들의 노무현과 같은 최후만을 우리는 마치 우리 자기자신의 모습인냥 자주 매일 매일 봐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을 악하다 하심으로 마귀들은 충실하게 광명한 천사 소리를 외치면서 악하고 강퍅한 진면목을 더욱더 확실하게 보여줄테니까요
이근호(IP:117.♡.145.190)
09-06-10 07:12
노무현 사상을 반대하는 보수 계열이 주장은 이러합니다. 현재를 현재로만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젊은이들은 민주주의 이론을 현재의 다복한 삶에만 적용하지만, 연세 많은 보수적 입장을 가진 분들의 생각은, 현재 삶이란 현재의 상황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6.25 을 야기시킨 속성이 바탕이 되어 현재 상황이 형성되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국민들이 의사가 고루 반영되고 개인의 성향과 취향이 그 어떤 장애를 받지 않고 자유로운 소통에서 만들어내는 그때그때의 지혜의 집결과 모음을 '민주주의'의 구현이라고 보고 있는 노무현류의 주장은 참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몽상가들의 배부른 소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란 아품과 희생이 만들어진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예를 들면, 재벌인 아버지를 젊을 때부터 죽도록 고생하고 먹을 것 못 먹어가면서 한푼두편 절약해서 돈을 모아놓았는데 도무지 고생이라고는 한 적이 없는 재벌 2세는 마치 자신이 그 돈 한푼에 관여할 권한이 있는 듯이 흥청망청 써대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철이 없는데 이런 소리하는 겁니다. "아버지, 내가 외제 골프채 사는데 나름대로 얼마나 고심하면서 사는데 아버지는 그 아품을 알기는 아십니까? 아버지는, 왜 아버지 일방적인 의사가 고집하십니까" 라는 식으로 나오는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철없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민주주의적 자유로운 의사 소통을 주장하는 그 시간에 윗집에 있는 도둑이 그 재벌의 집에 폭탄을 계속 설치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아들은 결코 알 리가 없지요. 옆집에 있는 도둑은 재벌 2세의 안목에서 볼 때에는 극히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으로 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6.25를 거친 재벌 아버지는 그 옆집 도둑이 도무지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없는 제 정신이 아닌 마귀들인 미친광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하지만 여유있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재벌집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안목을 도무지 이해못하는 겁니다. 같은 인간이기에 불쌍히 여겨야 한다는 주장만 게속 늘어놓는 겁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현실을 그 어떤 경우에도 고생없이 진행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고생은 여유있는 재벌 2세가 느끼는 고생과 동정심과, 아무 것도 없는 맨 땅에서부터 시작한 자의 고생과 동정심이 질이 다르다는 겁니다. 옛날 보수측은 우리 나라가 선진국이며 경제대국이며 이제는 없고 가난한 이웃과 소외된 자를 돌보아야 할 정도로 여유있다는 입장이라는 결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주장들의 밑바닥에는 자신들만큼 고생을 안해봤는데서 나온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처럼 죽을 고생을 매일같이 해보지 않으면서 겉 멋만 '이웃 사랑', '소외된 자 돌아보기'는 실은 그런 동정도 오락이나 취미에 불과한 겁니다. 보수측이 결코 독재를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젊은이들이 너무나도 세상 보기가 안일하다는 겁니다. 보수측은 여전히 못 입고, 못 먹었던 시절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정신적 분위기는 결코 비현실이라서가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낮아짐을 견지하고 유지하는 것만이 도리어 앞으로 더욱더 세차게 불어올 국가 생존에 있어 유일한 저력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고생에 대한 질적 견해의 차이에서 확인됩니다. 보수측은 여전히 전쟁중입니다. 북괴하고의 전쟁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근원적 생존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반면에, 젊은 진보측에서는, 이제는 밥먹고 사는 것을 벗어나 낭만적으로 사람답게 살되고 골고루 다 잘 살고 있다는 사회주의적 이상을 눈으로 목도하면서 자기 시대의 성공적 사회상을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이요, 이것이 곧 자연스럽게 나오는 인간의 범인류적 자애심의 발로라는 겁니다. 너무 늘 긴장하며 살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북한 주민도 사람이요 노동자들도 한 시대를 더불어사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보수측을 말합니다. "한 톨의 살알도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법은 없다. 내 목숨만 맞바꾸어서 목숨을 건지는 것이다. 북괴는 인간도 아니며 노동자는 남 탓하지 말고, 사회적 구조 탓하지 말고, 잘 사는 사람 비난하면서 덩달아 조급하게 잘 살려고 하지 말고 어려운 현실도 감사할 수 있어야 적은 소득에서도 놀라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행복은 자신의 분수를 낮추는 것이지 남들 사는데 부러워하다가는 설사 큰 돈이 주어져도 전혀 행복못한다. 왜냐하면 어렵게 살아온 사람은 비록 큰 돈이 생겨도 그 큰 돈 때문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돈 있을 때도 감사하는 낮은 마음 때문에 결국 행복한 것이다"는 겁니다.
'이제는 여유 좀 부리자'는 진보측과 '다시 옛날 가난햤던 그때의 낮은 마음으로 돌아가 작은 소득에도 감격하는 겸손할 줄 알자'는 주장이 어느 것이 현실 적응에 합당한 태도일까요? "우리가 먹을 것,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라는 마음이 있다면 아무리 돈만 아는 기업가도 그 노동자를 자신의 과거를 보는 사람으로 이쁘게 대하지만 반면에 그게 아니라 "너만 사람이냐 나도 같이 해외에 나가서 골프치는 팔자 고친 당당한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같이 소통의 사회를 같이 형성할 수 없는 겁니다. '소통'이란 '고생하겠음'을 근거로만 성사되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요 하나님이 내려주신 저주성입니다. "내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고생없는 세상살이, 악마의 반(反) 복음 정신입니다.
강구만(IP:118.♡.241.144)
09-06-10 09:47
게임은 게임일 뿐 오해 하지맙시다!
살려 주시는 은혜를 모르면 진보든 보수든 목숨걸고 올인 할수 있겠지요
그러나 진리가 아님을 아는 이상, 목숨 던져 진리인양 왜곡 시키려는 어설픔에 장단마출 이유는 없지요 .오히려 진리를 기롱하는 배후 세력의 굿판 으로 보입니다. 그 굿판에 성가대 까지 동원되는 현실을 보면서 오늘도 내일도 돌아서게 하시는, 건져 내시는 은혜만 빌 뿐 입니다.
관리자(IP:125.♡.2.45)
09-06-10 10:32
1. 목사님이 언급한 진보 보수에 대한 이야기가 6,25만 없다 뿐이지, 지금 미국의 진보와 보수에 관한 이야기가 이 목사님이 말한 내용과 동일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어쨋든 고생했기에 보수는 항상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대비해서 항상 근검 절약 검소 라는 공통점이 있더군요.
그런점에서 한국의 분위기는 이런 미국 없이는 나라는 망할수 밖에 없다는 시각이던데(특히 보수의 시각 - 6.25 전쟁에 주도적인 참전국가로써 해방군이였기 때문이겠죠)
2. 방금 언급한 이 목사님의 저런 사회적 정치 분위기가 교회 안으로 들어 왔을때에
한국기독교 종교계 속의 진보와 보수는 어떤 성향인지요?
제가 보기에는 보수가 오히려 개혁을 외치고(항상 역사성을 앞장 세우기 때문에 자신들이 더 루터와 칼빈 답다 라는 주장이겠죠)
진보는 뭐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이 없어 보입니다.
결국 오히려 보수인 자신들이 더 개혁적이다 라는 것으로써 승부를 걸면서
누가 더 개혁적인 수준이 높냐 낮냐 로 가는 분위기인것 같은데요.
(내가 더 보수야 아니야 내가 더 보수이니까 개혁정신을 잇는 정통주의다 라는 식으로)
교회 안에서의 저런 사회적 분위기가 안으로 들어왔을때의 상황을 평가 해 주시지요?
이근호(IP:117.♡.145.190)
09-06-10 11:44
'교회'라고 말씀하시지 마시고 '절'이라고 하세요. 교회는 거의 없고 온통 절간 뿐입니다. 세상은 돈이 절대진리입니다. 절도 돈이 절대진리입니다. 보수신학이 돈되느냐 아니면 진보 성향의 신학이 돈되느냐를 결국 도달됩니다. 오늘날 '교회'라는 이름의 절간이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교회라는 이름의 부동산에 진정 누가 기여를 많이 했으며 누가 과거에 목돈들을 내었느냐가 관권입니다. 즉 누가 교회 주식 지분을 많이 갖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누가 과거 교회에 헌금을 많이 했느냐는 교회라는 이름의 부동산 기득권 문제입니다. 신학이란 결국 인간 노동(교회 헌금이라는 이름의 노동)이 가치를 어떻게 가치 있게 쳐주느냐와 관련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과거 연세 많은 분들이 아낌없이 헌금한 그 건물과 부동산 속으로 얍삽빠르게 헌금 한 푼에 인색한 젊은 것들(?)이 쳐들어와서는 신학이 어떠니 저떠니, 신학이 너무 보수적이라니 따지는 것은 너무나 얄미운 짓입니다. 과거 헌금을 아끼지 아니한 분들은 이런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젊은 것들을 벽돌로 머리통을 때려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늙은이나 젊은이는 돈이 귀중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이들 젊은 이들은 과거 노인네들의 눈물나는 희생을 날로 먹을려고 덤벼들면서 개혁을 운운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의 연세 많은 분들은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참으로 진리를 외치고 싶거든 돈이나 듬뿍 헌금해 놓고 입을 나불거려라. 네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얄미운 자들아!"
관리자(IP:125.♡.2.45)
09-06-10 11:58
아따 말을 뭐 그리 섭하게 하신다요?
듣는 절간 주인들 섭섭할텐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