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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4.10/25. 인천강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계시론 1-2)자유게시판로마서

2004.10/25. 인천강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계시론 1-2)

이름 : 이종호(IP:124.216.74.117)

지난 시간에는 죄에서 나온 계시론이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봤습니다. 죄에서 나오게 되면 인간속에 장치가 있는데, 그것은 신의 계시를 납득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장치가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였고, 그 형상은 인간의 가능성 여부에 따라서 많은 신을 많이 알고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주장들은 결국에는 아담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아담안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약속이 빠져있다. ‘아담안에서 허락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가 해 낼 수 있는 그러한 계시를 인간이 창의해냈다.’라고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죄라면 하나님의 진짜 계시는 무엇인가? 의(義)입니다.

아담안에는 모든 것이 죄다. 아담안이란 장소개념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영역개념이죠. “아담의 형상안에서 인간은 죽으리라! 죽으리라!” 아담의죄 아래에서 인간은 결국 죽습니다. 그것을 로마서 5장에서 ‘죄가 왕노릇 했기 때문에 죄 짓고 꼭 죽어야 된다.’라고 합니다.

죄 짓는 것 중에 하나가 ‘인간이 만든 계시론’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이 죄 아닌 계시를 내리죠. ‘죄 아닌 계시’는 어디서 내리느냐? 마지막 아담에서 시작됩니다. 마지막아담, 다른 말로 두 번째 아담을 통해서 죄가 아닌 의의 계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아담은 잘 아시듯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따로 계시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비로소 의를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안에서 아담과 상관없는 계시를 하십니다.

아담안에는 인간의 가능성, 다른 말로 인간의 행함이 나옵니다.

“아담안에는 인간의 가능성이 나오지만, 예수님안에는 예수님의 필연성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필연성, 다른 말로 예수님의 행하심을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예수님의 행함이다. 예수님의 행함으로 내가 여기있다. 라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의 행함을 주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울의 행함은 죄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함은 죄가 되고, 반대로 예수님의 행함은 자기안에서 의가됩니다. 죄인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는 것도 예수님의 행함의 항목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의인이 되는 것도 내 숙제가 아니고, 예수님이 숙제를 하시다보니까 내가 구원 된 것이다. 구원받고 싶다고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될 자만이 구원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자신의 일을 성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6:39)

이것은 어느 누구도 도와 줄 수 없고, 어느 누구도 협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혼자 이루실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안에 있는 자는 모든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해방된 자입니다. 모든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면제된 자입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안 믿는 사람은 기겁합니다. ‘모든 법을 안 지켜도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법을 안 지켜야 됩니다.’ 이 뚜꺼운 성경을 안 지켜도 됩니다. 그러면 이 성경이 왜 있느냐? 주님의 행하심 때문에 있습니다. 주님의 행하심이 우리를 가지고 성경의 기록에 따라 적용시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함만 있고, 예수님의 행하심은 없는 줄 알고 ‘아무것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남용하는데 예수님의 행하심이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다 이루시기에, 자신의 행동으로 우리를 가지고 다 이루어 내십니다. 단, 우리는 이 말씀을 벗어나서 율법을 지킬 의무는 없습니다. 만약에 율법을 지킬 의무를 가진자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입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라디아서 5:4)

그러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주어지느냐? 예수님의 행함의 열매만 주어집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자기 백성 사랑하기입니다. 이 숙제는 우리가 행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숙제입니다. 우리 사랑하기! 자기백성 사랑하기! 한 번 성도 된 사람은 내쫓지 않기! 이것은 예수님이 행해야 할 숙제입니다.

“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7)

이 말씀에 우리가 개입하거나 협조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앞에 왔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 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사로 오지 않았기에 주님의 손아귀에서 못 벗어납니다. ‘내쫓지 않는다’는 말은 주님이 내쫓을 경우에만 내쫓기는 처지에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나가!”라고 하는 경우에만 쫓겨날 수 있고, 인간이 스스로 뛰쳐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쫓아낼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쫓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께로 온 자는 두 번 다시 내쫓겨남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을 우리의 행함이 아닌 예수님의 행하심으로 다 이루십니다.

사람은 구원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을 하는데,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차도 없는 사람이 운전을 배우는 것과 같이,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구원받을 연습을 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소관이 아닌데, 자신의 소관으로 생각하고 무엇을 믿을까 고민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과거사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인간들이 상상을 합니다. 인간의 상상은 실제적인 천국이 아니고, 과거와 다른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상상합니다. 신은 언약을 통해서 나타난 아브라함의 하나님인데. 인간은 그렇게 보지 않고 전지전능한 신으로 자기마음대로 만들어 냅니다. 진짜하나님은 언약을 통해서만 나타난다고 해도 믿지 않고 계속해서 인간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하나님을 만들어 냅니다. 신을 만들어 내기에 천국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잔디가 깔리고 시냇물도 흐르고, 악한 마귀는 없는 천국을 만들어 냅니다. 이 천국을 자기의 미래상으로 첨가 시킵니다. 과거(교회생활)는 고생했지만, 참고 견디면 좋은 곳을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관심사는 예수에게는 없고, 자기가 좋은 곳으로 가는 것에만 있습니다. 일반교인들이 교회가 엉망진창이라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죽은 후에 장래해줄 목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다 노림수가 있습니다. 죽은 후에 장례식을 불교식으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더럽지만 참자’ 하는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이곳은 천국이 아니고 지옥의 다른 얼굴입니다. 그러면 진짜 천국이 무엇인가? 언약이 만들어낸 천국이 진짜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만들어낸 신은 짚신이고, 고무신이고, 다 쓸데없는 신발입니다.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율법을 주니까, 자신만만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율법대로 살기만 하면 복 받고 영생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의기양양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시비를 겁니다.

“너희들이 모세의 말을 아느냐?”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아니까 우리에게 법을 주었지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의 법을 해석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참 신기하죠? 모세의 십계명(살인하지말라, 간음하지말라,..)은 누구나 쉽게 이해가 되는 말이지요? 이해된다는 말은 감정이 따르고, 감정이 따르면 행함의 의지가 생기게 됩니다.

이런 규칙에 의해서, 탐내지말라!는 계명이 이해가 되고,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는 감정이 생기고, 하지 않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명을 지키면 복이 되고 영생을 받는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하자가 없어 보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모세가 화낼 일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예수님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십계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장차 누가 와서 이 율법을 설명해줄 것이라는 것을 모세는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탐내지말라!’는 무슨 의미일까요? ‘너는 탐 낼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모세가 온 것입니다. ’간음하지말라!‘라는 율법도 예수님께서 ‘마음에 음욕을 품는 자마다 간음함이라’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십계명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계명은 십계명을 주신 언약의 주인공과 연결시켜서 해석해야만 합니다. 십계명만 따로 해석하면 죽이는 해석이 됩니다.

“문자는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린도 후서 3 :6)

‘그러므로 모세의 글을 모세의 글로 본 사람은 모세에 의해서 심판받을 것이다.’

얼마나 어려운 해석입니까? 예수님의 해석이 너무나 엉뚱해서 우리는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외면하고 다시 자신의 지적, 감정적, 그리고 의지적 가능성으로 되돌아보게 되는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영역개념은 다 박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언약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왜 언약에 대해서 이야기 하느냐?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고, 언약이 아니고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언약에서만 의가 나오고, 나머지에서는 죄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의한 계시가 아니면 하나님에 의한 계시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언약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이란, 하나님의 자기맹세를 언약이라 합니다. 단순한 맹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게만 하신 맹세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끼어 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언약은 자신을 위한 언약이지 인간을 위한 언약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은 끼어들거나 관여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에게 한 맹세란, 성부와 성자에게 한 맹세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왜 빠졌는가? 시편 110편1절에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라고 말씀 하면서 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한 다윗 언약이 맺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주께서 다윗언약을 다윗에게 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윗에게 준 것이 아니라 성부께서 성자에게 준 언약을 다윗을 통해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모세의 율법도 우리들에게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 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지킬 수가 없습니다. 지킬 수가 없는 것을 어떻게 지킵니까? 지키다가는 공연히 지켰다고 자기자랑만 하게 됩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미분, 적분이나 삼각함수를 풀라고 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어린아이 같은 다윗을 통해서 어려운 숙제를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 예수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차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언약의 내용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언약의 내용은 오직 언약된 사람만 구원하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계약된 내용이 하나 밖에 없는데, 그것은 “예수안에서 택하심”뿐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에베소서 1 :4)

이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따라 오는 것이 예수님은 희생이 되어야 되고, 우리는 죄인이 되어야 된다. “죄인과 희생” 이 내용이 창세전에 맺어진 언약의 내용입니다.

창세전이란 의미는 우리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머니, 왜 날 낳았습니까?’라는 하는 질문은 만들어진 입장에서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질문을 하라고 하나님이 입술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이 왜 태어났느냐 하면, ‘어머니, 왜 날 낳았습니까?’라는 질문을 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낳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 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예수님, 왜 저를 만들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온 몸으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런 은혜를 무시하고, 하나님을 하나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당신 잘못한 것 아닌가?’라며 따지며 복수하려고 합니다. 원래는 인간에게 그런 마음이 없었는데, 마귀가 와서 심어 준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아니라 마귀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껍데기는 인간의 형상이고, 속에는 마귀의 형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언약이란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서 하신 맹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관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율법을 지킬 필요도 없고, 지킬 수도 없습니다. 또 지켰다고 해도 지킨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야고보서에서 인간은 그러한 권한이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13-14)

혹시 주의 뜻이면 장사하기도 하고, 서울가기도 하고, 혹시 주의 뜻이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리니 너는 안개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안개는 오래살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외부의 힘에 의해서 놀아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뜻이면 하겠다고 해야지, 내가 스스로 어느 도시에 가서 장사하겠다는 것은 다 악한 것입니다.

결국에는 말을 끄집어 낼 때, 근거가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나님의 은혜이냐 아니면 나의 자존심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을 할 때, 행동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봅니다. 인간의 행함은 근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네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이 말을 하느냐?”

은혜에서 나왔다는 근거는 인간이 죄인이고 예수님이 희생하셨다는 내용과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하셨다는 언약을 내용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에 의한 행동은 ‘죄와 희생’이라는 내용과 창세전에 택하심이라는 언약을 고백하는 근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요한복음 6:37에서 약속하신 예수님께서 “내쫓지 아니하심”의 은혜성에서 나온 것이지, 우리의 믿음의 고백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성과 인간의 자존심의 구별이 어렵기 때문에 기나긴 구약이 기록된 것입니다.

이 구별이 잘 안 된 예를 몇 가지 들겠습니다.

첫 번째로 아브라함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언약의 사람, 선택받은 사람이였다는 사실을 결과적으로 알 수 있지만, 아브라함 자신은 죄를 뿜어내면서 알아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죄를 질 때마다 하나님은 용서하면서 기어이 맹세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창세전에 택하신 자들이기에 자주 일을 만드십니다.

예를들면, 고3학생이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제가 찬양대에서 봉사하는데, 대학에 꼭 합격하게 하셔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나게 하옵소서.” 들었던 풍월을 총 동원해서 미사여구를 구사합니다. 그러나, 대학에 불합격 했을 때, 그 학생은 대학에 왜 떨어졌는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내가 교만할까봐’ 재수하면서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남들은 떨어져서 원망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나를 인정해주옵소서.’ 그런데, 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성질 낼 때까지 떨어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이여, 너무 하십니다. 저보고 어찌하라 십니까?” 이고백은 오늘날 개척교회 하는 목사들의 기도제목입니다. 목사들은 하나님께 달려들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인생 책임지세요!”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제야 너의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진작 그렇게 하지 공연히 감사하는 척 하지 말고 성질대로 살아!”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질대로 살아야합니다. 성질대로 살아야 택하심 때문에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택하심이 바로 희생입니다. 우리의 착한 가능성 때문에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내가 이렇게 십자가를 지는데, 네가 양심이 있으면 감동을 받겠지?”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감동은 순간입니다. 우리는 다만 죄인으로 드러나야 되고, 주님의 희생과 우리의 죄가 짝이 되어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2)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 피를 흘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속죄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우리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죄가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죄인이 아닌 척 하면 안 됩니다. 고상한 척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죄가 있어야 속죄가 되는 것입니다. 22절에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것이 피흘림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에 의한 예수님의 자기숙제입니다. 우리가 관여 할 바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숙제중의 하나가 ‘우리 죄 용서하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우리들의 죄 용서하기가 예수님의 행함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은 그 일을 차질 없이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차질 없이 죄를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는 것이 안 짓는 것보다 더 수월합니다. 예를 들어, 탐내지 말라면 바로 탐을 냅니다. 우리는 탐내는 것이 주특기입니다. 우리는 그의 나라 그의 의는 보지도 않고 이 땅에서 보람을 갖고 잘 살아갑니다. 불신자들은 이런 사람을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주장하면서 말씀을 변명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약사람입니다. 언약사람에게서 죄와 희생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희생해야 할 이삭이 있고, 내어 쫓김을 당해야 할 이스마엘이 있는데, 이 두사람은 모두 아브라함을 통해서 나온 자식들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생각하기를 ‘우리는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기에 죄악 된 모습은 나타나지 않아야지’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언약의 사람 이였지만 언약의 내용- 죄가 무엇인가? 희생이 무엇인가?-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나와야만 됩니다. 다시말해서 아브라함은 평생을 통해서 언약의 내용을 보여주기 위해서 언약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하는 목사는 자기자랑을 합니다.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느 목사에게 교회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목사가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돈을 밝히지 않고, 복음만 전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생각하기를, ‘역시 이근호 목사님이랑 공부하더니 제대로 배웠구만.’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6개월도 못 가서 본색이 드러났습니다. 목사가 이렇게 이야기 한 것은 정신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수법이였습니다. 교인들이 참신한 목사로 받아들이기 위한 작업용 멘트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교인들과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는 이근호고 삼근호고 다 버리고 노회를 등에 업고 세상법에 소송을 걸어서 2년반동안 싸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왜 처음하고 다르게 나옵니까?”

“처음에는 복음적으로 하려고 했는데, 교인들이 안 따라주더군요.”

“주님에게만 사랑받으면 되었지, 왜 교인들에게 사랑받을려고 합니까? 왜 교인들과 싸웁니까?”

“양이 먼저 대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싸운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섬기는 사람인데, 어떻게 양에게 먼저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까?”

구속사, 언약, 그리고 복음을 외쳐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교인들이 말하기를, “그 목사 말뿐입니다.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목사는 말하기를, “ 내 말만 듣지. 내 행동까지 왜 본받으려고 하느냐?”

교인들이 이렇게 말해도 되지만, 목사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그 목사가 지옥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희생은 그 목사의 행동까지도 속죄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공부 좀 했다고 목회하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교인 8명이 되는 교회에 있는 목사님은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경험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한 명 밖에 없는데, 그 원인은 ‘나는 교인들을 위해서 희생하는데, 교인들은 왜 안 도와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목사는 주님만 바라 본 것이 아니고, 좋은 결과를 신의 섭리로 보며 신의 존재를 결정 하려고 합니다. 스데반처럼 돌에 맞더라도 주님 바라보며 가면 되는데, 결과를 바라보며 신의 존재를 측정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두 번째 한 경우와 같습니다. ‘높은 성에서 뛰어 내려서 안 다치면 맞고, 다치면 사기다.‘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증명 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식으로 살아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스데반이 죽는 것으로 시험을 끝내는 것입니다. 우리야가 ‘저 화살이 나에게로 날아 올 것인가?’라고 시험했습니까? 그대로 정통으로 와서 맞아 죽었습니다. 아벨이 ‘형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나의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이 설마 나를 죽이시겠는가?’라고 시험했습니까? 하나님은 아벨을 죽임을 당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벨은 희생쪽입니다. 아벨을 통해서 가인의 죄가 드러나게 됩니다.

노아같은 경우는 성질대로 술을 마시고, 성질대로 벌거벗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가리워주는 희생의 은혜와 얼레리 꼴레리 하는 저주스러움이 공개되는 것이 노아언약입니다. 현재 우리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언약을 드려내면 되는데, 완전해 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며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들어 쓰십니다. 조용히 죽음으로 들어 쓰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영웅심리에 의해서 다르게 쓰임을 받으려고 합니다. 언약의 사람은 실패가 없습니다. 기껏 실패하더라도 천당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쫓지 않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실패해도 다윗은 회개하면 받아들이고, 사울은 회개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언약안에 있는 사람이고, 사울은 언약바깥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짓는 것으로 구원이 취소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뻔뻔스러운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5분간 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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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