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진지함
복음의 진지함
이름 : 이근호(IP:117.55.135.100)
복음의 진지함
2009-06-03 09:46:28 이름 : 이근호
복음의 진지함이란 나에 대한 진지함이 아니라 실은 하나님에게서 진지함이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죽음에 던져 넣으시고 ‘복음의 진지함’을 만드셨다. 이 ‘하나님의 진지함’에 동조할 사람을 모집하신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진지함’을 이해 못한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자기 진지할거리가 항상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몸이 아프니 건강 챙기는데 진지하고, 자식이 남들보다 뒤쳐질까봐 자식 챙기는데 진지하고, 자기 살 궁리하는데 진지하고, 목회를 시작했으니 교회 부흥 챙기는데 진지하고, 노후를 위한 여유 돈 챙기는데 진지하고, 외로움을 잊게 할 마음 맞는 사람 챙기는데 진지하고, 이것저것 나름대로 진지할 거리가 가득 있으니 이런 일들이 그만 자신의 진지함으로 굳어져 버렸다.
이러니 정작 하나님의 진지함에는 근처도 못 간다. 입만 떼면 바쁘다고 한다. 하나님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자기 생존 문제가 매우 진지하고 최고한 진지한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은 자기 아드님을 죽여 놓고 그 죽음의 자리에 누가 찾아오는 가를 지켜보신다.
자기 자식의 죽음보다 하나님의 아드님 죽으심이 더 진지한 현실인 것을 아는 자는 찾아온다. 자신의 다급한 생계 문제보다 하나님의 아드님의 죽으심이 하나님에게 더 진지하게 보심을 아는 자들이 그동안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고 꾸역꾸역 찾아든다.
예수님의 죽으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진지함에 동참하려는 자에게는 더 이상 공포란 없다. 자신의 진지함을 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아무런 진지함이 성립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덮쳐진 진지한 현실이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셔서 그 시체가 이 땅 바닥에 내동강이 처졌다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 왜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일부러 죽어셔야 했습니까?” 이 하나님의 진지함 앞에서 그동안 자신에게 진지했던 모든 것은 진지한 것이 아니라 몽상에 불과한 것임을 안다. 삶의 공포란 이처럼 예수님 죽은 시체 앞에서만 사라진다.
이미아(IP:115.♡.200.13)
09-06-03 12:57
왜? 인간은 복음에 대한 진지함이 없을까요???
왜? 인간은 자기 밖에는, 자기 외에는 다른 진지함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을까요?
왜? 인간은 복음만 빼고 다 진지할까요?
왜? 인간은 예수님만 빼놓고 모든 사람들에게 진지할까요?
왜? 인간은 세 끼를 챙겨 먹는 메뉴에만 진지할까요?
왜? 인간은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에만 진지할까요?
왜? 인간은 얼굴이 예쁘냐 못생겼냐에만 진지할까요?
왜? 인간은 상대방에게 자기가 어떻게 보여질까에만 진지할까요?
왜? 인간은 자기 소유가 많냐 적냐에만 진지할까요?
왜? 인간은 지금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에만 진지할까요?
왜? 인간은 이 세상에만 진지할까요?
고관규(IP:218.♡.108.42)
09-06-03 15:15
하나님의 파토스...하나님의 슬픔..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십자가에 달리신 아들예수를 아프게 보시는 하나님..
그러기에 우리의 어떤 고통도 비교할 바가 없게됨을 압니다.
가장 공포스러운 현실은 십가가에 달리신 그 음성 ,알리알리라마사박다니와 그 순간의 하나님이시겟죠.
하나님의 진지한 슬픔과 그 초대를 능가할 무엇도 없슴을 알며.
어떤 고통도 아버지의 슬픔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귀와 눈과 지각이 미처 알지 못 했을 때에 아버지는 이 비밀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는 현대의 이 말은
본질이 실존보다 앞선다는 것으로 그 허위가 폭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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